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113)
Chap.4 밝혀진 비밀
다이어드 공작은 방금 전 엘에게서 온 전언을 듣고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엘이 그에게 준 정보는 간단했다.
‘현재 마도 제국 진영에는 그레시오스 공작밖에 없습니다. 다른 초인들은 모두 빠져나간 상태입니다. 그러니 곧장 진격을 하여 마도 제국의 사기를 흔들어 주십시오.’
“그래, 그래서 이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었단 말이지……”
왜 전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 놓고 공격을 해 오지 않는지 의아하던 차였다.
그동안 다이어드 공작도 놀고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엘이 이 사실을 가르쳐 주기 전부터 마도 제국군의 초인 유무를 면밀하게 검토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들이 공격해 오지 않는 이유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도 제국 측의 보안이 정말 탄탄하여 정보를 얻는 데 상당한 전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그렇다 하여 결정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몇 가지 정황상 증거는 얻어 내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그랬기에 심증은 강했으나 마도 제국군을 공격하지 못했다.
생각해보아라. 마도 제국군에 8클래스 마법사들이 없다는 가정 하에 공격을 감행했는데 그들이 있다면?
멜뤼스와 코린트의 실력은 나무랄 데 없는 8클래스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이 라이젠과 레이벨보다 부족하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계획은 계획대로 실패하고,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큰 피해를 입은 왕국 연합군은 더욱 더 큰 피해를 입고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하게 될 것이다.
총사령관이란 직책이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했기에 다이어드 공작은 함부로 속단하고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찰나에 엘의 소식이 왔다.
어떤 경로로 얻은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엘의 소식에는 확신이 가득했기에 다이어드 공작은 그를 믿기로 하였다.
일종의 자기 위로였다.
혼자 확신을 못하던 차에 다른 이가 옳은 거라 하니 그걸 믿고 싶어 하는 그런 심정의 감정이었다.
“확실하게 해 주지. 마도 제국…… 여신을 거부하는 이단의 존재들이여.”
마도 제국군에는 그레시오스 공작밖에 없다.
반면 왕국 연합군에는 자신을 비롯한 2명의 8클래스 마법사가 있다.
3명의 초인과 1명의 초인.
이쪽이 질 리가 없다.
다이어드 공작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공격 개시다.
* * *
왕국 연합군에는 2명의 8클래스 마법사가 존재한다.
그들은 다름 아닌 멜뤼스와 코린트. 서부 왕국에 존재 하는 마법사들의 정점인 존재였다.
멜뤼스와 코린트는 곧장 엘과 합류하지 않았다.
엘은 말했다. 떨어진 왕국 연합의 사기를 드높여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큰 힘을 발휘해 줘야한다고 말이다.
그 점은 두 마법사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었고, 강력한 살상 마법들을 메모라이즈 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다이어드 공작의 요청이 들어왔다. 전쟁에 참전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코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금탑주가 다이어드 공작에게도 언질을 준 모양이군. 정말 대단한 젊은이가 아닐 수 없어.”
멜뤼스도 그에 동의했다.
“정말 대단하지. 만약 금탑주가 변심하지 않는다면 서부 왕국은 오랫동안 번영을 누릴 수 있겠더군.”
“변심이라…… 젊음의 상징이라 할 수 있지 않나?”
염려 담긴 코린트의 말에 멜뤼스가 허허, 웃었다.
“뭘 그리 걱정하나, 금탑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했다면 이미 마도 제국으로 갔겠지.”
신중한 코린트에 비해 멜뤼스는 즉흥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멜뤼스의 직관력은 무척 뛰어나다. 어려운 걸 쉽게 보고 풀어내니 코린트는 그 점에 종종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지금의 경우도 그러했다.
“그렇군. 그랬어.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지도 않았겠지.”
아마 초인들이 뭉쳐 보기도 전에 각개 격파당했을 것이다.
그동안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는데 왜 아직도 의심했을까 하고 생각하며 코린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코린트를 보며 멜뤼스는 피식 웃고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일단 전쟁을 유리하게 만드는 데 주력하자고. 우리는 할 일이 많은 몸 아닌가?”
“아아, 그렇지. 알겠네.”
코린트가 나직 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마도 제국군이다.
그들을 압도하여 서부 왕국군이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 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의 사신. 8클래스 마법사들의 출전이었다.
* * *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것은 비단 왕국군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블리어드 제국 측에도 소식을 전했지만 그쪽은 워낙 전황이 팽팽했기에 별다른 기대를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였다.
클라이언 공작이 이끌고 있는 블리어드 제국군을 감히 경시할 수 없는 마도 제국군으로서는 발이 묶여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루한 소모전이 이어질 무렵, 전장의 판도를 크게 바꾸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아일라스 제국의 참전이었다.
현재 아일라스 제국에는 2명의 초인이 존재한다.
1명은 대륙 최강의 검사 아토빌 공작이고, 또 다른 사람은 이번에 새로 초인에 오른 카디어스였다.
아일라스 제국은 마도 제국의 선언의 부당함을 설토하면서 군대를 일으켰다.
그 규모는 무려 30만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아일라스 제국의 군대 중에서도 최정예를 자랑하는 이들이었다.
카디어스가 이끄는 아일라스 제국군은 거침없이 마도 제국으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마도 제국으로 진격했지만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초인은 반드시 초인으로만 막을 수 있다.
물론 그보다 하위에 속하는 소드 마스터들이 초인을 막아 낼 수 있다지만 카디어스 같은 그랜드 마스터를 완벽하게 막아 내기 위해서는 소드 마스터가 최소 50명 이상은 와야 한다.
하지만 현재 마도 제국은 무척 혼란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거대한 덩치를 보유하게 되었지만 아직 그 체제가 완비되지 않은데다 무려 6명의 초인이 실종되고 각지에서 벌어진 공세가 강렬해지자 제국 자체가 마비된 상황이 된 것이다.
카디어스를 막기 위한 초인이라면 제도에 남아 있는 루이넨스밖에 없다.
그러나 그녀는 황제를 수호하는 근위기사단장이기에 제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랬기에 카디어스는 아일라스 제국군을 이끈 채 광활한 마도 제국의 영토를 점령해 나갔고, 그것은 왕국 연합군과 블리어드 제국군을 월등히 뛰어넘는 성과가 되었다.
서부의 왕국 연합군이, 동부의 블리어드 제국군이, 남부의 아일라스 제국군이 마도 제국을 시시각각 공격해 오고 있었다.
그토록 강대하게만 보이던 마도 제국이 져는 첫 위기였다.
“이제 때가 된 건가.”
엘은 곳곳에서 전해져 오는 정보를 접하며 중얼거렸다.
금탑 전체를 불사르며 마도 제국의 여섯 초인을 제거한 엘은 곧장 움직임을 전개했다.
엘프 숲의 대장로 아카벨을 끌어들이고 백탑주 유클레이 또한 끌어들였다.
거기에 아토빌 공작의 협력을 이끌어 내어 아일라스 제국군의 참전 시기를 일러 주었다.
그 외에도 엘이 한 일은 다양했다. 모든 초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 유일하게 그인 만큼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고 움직일 것을 지시해야 하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승전보가 울리고 있어. 하지만 그것은 루이아스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야.”
왕국 연합군이 대승을 거두고 아일라스 제국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전해 들었다.
하지만 엘은 그 승리가 일시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진정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마도 제국의 황제, 루이아스를 제거해야만 한다.
아직 그에게는 600명의 소드 마스터와 청탑이 개발한 골렘이 다수 있었다.
그것들과 마도 제국의 정예병들이 움직인다면 전세는 단번에 역전될 소지가 다분했다.
“먼저 공격을 해야만 해.”
그 전력들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했을 때 습격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엘의 짐작대로라면 현재 루이아스는 여섯 초인의 행방을 제대로 알지 못할 확률이 높다.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확신을 하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 있을 게 분명 했다.
그런 지금이 찬스였다.
만약 루이아스가 한층 더 발전된 생각으로 적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600명의 소드 마스터와 골렘들을 집결시킨 다면 제아무리 다수의 초인들이 습격한다 하더라도 힘들어진다.
그전에 마도 제국의 제도를 습격하여 승부를 봐야만 한다.
엘은 지금 그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루이아스만 제거하면 돼. 그럼 모든 전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어.”
그것은 확신이었다.
600명에 이르는 소드 마스터들이 충심으로 뭉쳤을 리 만무했다.
그들은 각기 벨로세크 제국과 루이디스 제국, 그리고 그레시오스, 트루먼, 지크리스 가문 출신의 소드 마스터 들이다.
지금은 루이아스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있기에 뭉치지만 루이아스만 제거한다면 그들이 굳이 목숨을 바쳐 자신들과 싸울 이유가 사라진다.
엘은 그 점을 노리고 있다.
‘최소한의 피를 보고 전쟁을 끝내야 한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할 수는 없어.’
자신은 영웅도 뭣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모든 일을 끝맺고 싶었다.
그때였다.
“엘 님, 손님이 오셨어요.”
세레나가 방밖에서 손님이 왔음을 알린다.
그에 엘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곳에 손님이?”
현재 이곳은 아직 극비로 치부된 곳이다.
자신이 이곳을 하사받은 것을 아는 사람은 레도프 국왕과 지금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들, 그리고 소수의 초인들 뿐이다.
초인들이 이곳을 찾을 이유가 없고, 그렇다는 건 레도프 국왕이 이곳을 찾아왔다는 것인데 국왕이 왜 이곳을 온단 말인가?
엘이 물었다.
“손님이 누구셔?”
대답은 곧장 들려왔다.
“루비어스 백작님이세요.”
“루비어스 백작님이?”
엘의 얼굴에 의외라는 표정이 생겨났다.
지금 이 시기에 방문한 이가 로웰린이란 것에 무척 의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대할 손님은 아닌지라 엘은 곧장 승낙했다.
자신의 사촌 누나였으니 말이다.
“응, 안으로 모셔.”
“네.”
대답과 잠시 하나의 인영이 다가오는 기척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서는 여인이 있었다.
바로 로웰린이었다.
로웰린은 엘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찾아온 것이 의외셨나 보네요.”
엘은 로웰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이곳은 레도프 국왕 전하에게 극비에 하사받은 곳이지요.
설마하니 루비어스 백작님이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 자리에 앉으시죠.”
그러면서 엘은 로웰린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자리를 권했다.
“……”
자리에 앉은 그들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엘은 로웰린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찾아왔는지 몰랐기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 뭐했고, 로웰린은 한동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침묵은 잠시, 곧이어 로웰린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꼭 깨물더니 엘을 향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금탑주님…… 아니, 엘리미스 님의 아버지가 혹시 레이언이란 이름에 루비어스란 성을 쓰지 않으셨나요?”
묻는 로웰린의 눈은 지극히 날카로웠다. 모든 것을 알 고 온 듯한 표정이었다.
로웰린의 물음이 너무나 뜻밖이었기 때문일까? 엘은 로웰린의 물음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아버지를 알고 있단 말인가?
레이언 루비어스.
그는 전대 루비어스 공작가의 장남이자 마법에 있어 천재라 불린 젊은 인재다.
블리어드 제국의 마인하트 후작가에 납치되어 세뇌된 그는 실피르와 사랑을 하였고, 그 결실이 바로 엘이었다.
그리고 레이언의 동생의 딸이 로웰린이었다.
즉, 레이언 루비어스는 엘의 아버지이자 로웰린의 큰 아버지가 된다.
아인하트 후작가에서조차 찾기 힘든 자료를 설마하니 그녀가 조사를 했단 말인가?
놀라움과 함께 수많은 생각에 스쳐 지나갔지만 엘은 그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알고 온 듯한 로웰린의 모습에 차마 그럴 듯한 말을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한줄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 지금 와서 굳이 숨길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어차피 사실인 것을 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맞습니다. 제 아버지는 레이언 루비어스란 이름을 가지신 분이셨으며 백작님의 생각대로 전대 루비어스 백작님의 큰 아들이셨습니다.”
엘의 말에 로웰린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짐작은 짐작이다. 본인 입으로 시인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로웰린의 눈에 습기가 차오른다. 지난 세월 한 점 혈육 없이 외롭게 자라온 그녀의 내면에 꼭꼭 눌러져 있던 외로움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아…… 그럼……”
말을 잇지 못하는 로웰린.
잠시 어깨를 들썩이던 그녀는 손으로 눈가를 훔친다.
흥건하게 배어 나온 눈물을 꼬옥 쥐듯 손을 움켜쥐며 엘을 바라본다.
그런 로웰린을 엘은 무척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동안 사실을 숨겨 왔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심각한 모욕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일이었다.
“미안합니다. 정말…… 하지만 일부러 속인 것은 아니에요.”
수많은 생각, 수많은 말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들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미안한 안색을 띠고 있는 엘을 보며 로웰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다 저를 위한 것이었잖아요. 괜찮아요.”
그녀는 전혀 화가 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처음에는 무척 화가 났다.
엘이 왕궁에 온 뒤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아버지 모습을 발견한 로웰린은 차분하게 엘의 뒤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았다.
단지 그가 공식적으로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인 블리어드 제국의 아인하트 후작가에서였다.
그는 그곳에서 10대란 나이에 7클래스라는 엄청난 경지를 선보이며 클라이언 공작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금색의 기사를 가디언으로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조사하면 할수록 금탑주에 대한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아라. 통설적으로 대륙에서 7클래스에 오르는건 아무리 빨라도 40대 초반이라 한다.
동급의 경지인 소드 마스터 같은 경우 어렸을 적부터 철저한 지도 아래 고위 기사들의 지도만 있다면 30대 초반에도 충분히 들 수 있다. 하지만 7클래스 마법사는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우선 마법에 대한 이해가 1번째다.
세르디아 대륙의 마법 체계는 무척 복잡하다.
무조건 마나 컨트롤이 뛰어나다고 하여 높은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 하여 마나 컨트롤이 부족하면 마법을 전개할 수 없다.
즉, 마법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마나 컨트를과 마법 수식에 대한 이해가 함께 해야 한다.
이것은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문제로서, 스승들이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선은 존재하나 결국 자신의 길을 개척하지 않는다면 일정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만의 경지를 개척한다는 것. 말은 간단하지만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실패를 넘고 넘어서 비로소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낸 이들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런 영역을 10대의 나이에 도달했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말이 되지 않는 영역을 침범한 이가 엘이다.
여기서 로웰린은 한 가지 가정을 세울 수 있었다.
금탑주 엘리미스는 아주 뛰어난 마법사의 혈통을 타고 태어났을 확률이 높다고. 실제로 그 추측은 맞았다.
이미 엘을 레이언 루비어스의 아들로 대입한 채 상황을 맞춰 나가니 마치 퍼즐처럼 딱딱 맞아떨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로웰린은 엘에 대한 정보를 차근차근 수집해 나갔고, 점차 엘이 레이언 루비어스의 아들이란 심증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하게 되었다. 가문의 깊은 창고에서 레이언 루비어스의 초상화를 구한 것이다.
거기에서 로웰린은 깨닫게 된다. 엘이 진정 레이언 루비어스의 아들이란 것을 말이다.
‘그런데 왜 나에게 비밀로 했을까?’
처음에는 무척 화가 났다.
당장 가서 따지고 싶을 정도로. 왜 자신에게 정체를 감추었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 엘은 은인이었다.
루비어스 백작가의 부흥을 도와주었고, 나아가 루비어스 백작가가 톨리안 왕국 서부의 패자가 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은혜에 비하면 자신에게 감춘 이것은 너무나 사소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로웰린은 차근차근 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이에게 화를 내기 싫었기에 회피할 수단으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을 되짚어 보자 금탑주가 왜 자신에게 정체를 감추었는지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금탑주는 제국의 시각으로 중죄인이다.
감히 제국의 유서 깊은 가문인 아인하트 후작에서 난동을 피웠으며, 황제의 명을 받은 클라이언 공작의 앞을 가로막았다.
제국의 입김이 적게 미치는 톨리안 왕국이 아니었다면 금탑주는 운신하는 것조차도 상당히 제약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와 자신이 친척 사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당장 성세가 기울대로 기울었던 그 순간 제1왕자파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루비어스 백작가는 채 부흥의 꿈도 꿔 보지 못한 채 산산조각 날 확률도 많았다.
금탑주는 그것을 모두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자신이 사촌 동생이란 사실을 밝히면 루비어스 백작가에 손해가 되어 돌아올 것임을. 그리고 몇 년 동안 숨기다 보니 말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그녀는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로웰린이 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원망도 했어요. 왜 처음부터 말해 주지 않았을 까. 왜 나에게 그 사실을 숨겼을까 하고요.”
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의 이야기를 최대한 경청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답은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사실을 숨긴 건 모두 탑주님의 배려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도 분명 있었다.
“물론 그런 것도 있었지요. 하지만 숨긴 것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무슨 이유가 있다고 해도 숨긴 건 숨긴 것이다. 잘못된 건 잘못된 것이기에 엘은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그에 로웰린이 잠시 엘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저 행동 하나하나에 진심이 배어 있다. 그런 그에게 화를 내면 자신은 너무 나쁜 여자가 되는 것 같다.
‘나를 위해, 루비어스 백작가를 위했던 것인데 화를 낼 수는 없어.’
그렇게 생각한 로웰린이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절 위한 것이란 걸 아는데 제가 어찌 탑주님을 책망하겠어요.”
엘은 로웰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정말 자신을 용서하는 듯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절 용서해 주셔서요. 로웰린…… 누나!”
잠시 말끝을 흐리던 엘은 로웰린을 향해 누나라 불렀다. 본래 그녀에게 할 호칭이 이것이었다.
파르르.
엘의 바뀐 호칭에 로웰린의 눈썹이 떨려왔다.
누나, 누나란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 물밀듯 몰려온다.
그것은 외로이 자신의 가문을 지키고자 했던 한 여성 가장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며 듬직한 가문의 남자를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로웰린 그녀에게도 생긴 것이다.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혈육이. 그것도 다른 이가 아닌 대륙 마법사들 위에 군림하는 8클래스 마법사이자 서부 왕국에서 강력한 힘을 끼치는 금탑주가 자신의 사촌 동생 이란다.
그녀는 엘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엘…… 엘이라 불러도 되…… 지?”
여태껏 공대를 해 온 탓일까? 아니면 금탑주가 차지하는 비중에 눌린 탓일까? 로웰린의 입은 쉽사리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런 로웰린을 보며 엘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편하게 말하세요. 저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으니까요.”
“그럼…… 편하게 말할게…… 엘……”
그렇게까지 했건만 로웰린에게는 아직 어색한가 보다.
하지만 어색해하는 로웰린의 모습에서 엘은 이루 말하지 못할 편안함을 느꼈다.
“그럼 저희 엄마에게도 인사를 하세요. 누나에게는 큰 어머니가 되니까요. 이참에 세레나, 카이나도 새로 인사를 하는 게 좋겠네요.”
끄덕.
로웰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엘은 미소를 지을 뿐이다.
잠시 후, 방에 들어선 실피르와 세레나, 카이나는 정식으로 로웰린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실피르는 로웰린을 안으며 진한 애정을 보였고, 세레나와 카이나는 로웰린에게 언니라부르며 친근함을 표현했다.
그것은 여태껏 남으로 대하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로웰린을 대함에 있어 알게 모르게 존재했던 벽은 사라졌고,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었다.
그런 모습에 엘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그의 마음은 무거운 돌 하나를 치워 낸 것과 같이 가벼움을 느끼고 있었다.
엘은 내내 로웰린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던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하지만 모든 비밀이 밝혀지고, 원만하게 일을 해결했으니 더없이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이렇게 된 것이 다행일지도.”
앞으로 큰 접전을 앞둔 시점에서 마음이 편하고 안 편하고의 차이는 크다.
엘은 그러한 점에서 로웰린이 정말 좋은 시기에 찾아와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녀와의 허물을 없앰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대결에 주 력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지배했으니 말이다.
“정말 잘되었어.”
즐겁게 나누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며 엘은 미소를 지었다.
힘이 충만한 느낌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