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13)
3 최연소 7클래스 마스터
멈칫. 마무리를 하려던 엘이 행동을 중지했다.
그리고 실피르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인하트 후작의 엉망이 된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린 실피르는 엘에게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그만…… 그만 하자, 엘리.”
그녀는 지금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우선 엘의 강함 때문이다. 10년 전 반자크 마탑에서 보였던 천재성은 익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열일곱살이라는 나이에 7클래스에 올랐을 줄이야……
아인하트 후작을 어렵지 않게 꺾은 모습을 보아 7클래스 익스퍼트가 아닌 마스터가 분명했다.
실피르는 엘이 더 이상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아들이 아님을 느꼈다.
누구보다 더 뛰어나고, 누구보다 더 훌륭하게 자라나 자신의 품 안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뿌듯했고 또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골든 나이트의 신위도 놀랍다.
소드 마스터에 든 기사를 단 한 방에 쓸어 버리는 능력. 골든 나이트와 엘이 서로 조합된다면 어떨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아인하트 후작에 대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났다.
자신을 이용하고 엘에게 위해를 끼치려 했던 그가 원망스럽고 밉다.
하지만…… 왜일까.
정작 처참한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자 알 수 없는 감정이 불쑥 치솟았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일까. 분명 가족의 연마저 거부한 저들에게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일까.
글레톤의 처참한 모습, 아인하트 후작의 참혹한 모습.
7클래스 마법사 두 명을 압도적인 힘으로 누른 엘은 확실하게 마무리를 하려 했다. 힘에는 힘으로. 그리고 복수를 꿈꾸지 못하게 마무리는 확실하게.
엘의 행동은 가장 확실하게 결말을 낼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실피르의 마음속에서 다른 외침이 들려왔다. 아무리 밉고 원망스럽다고 해도 피가 이어진 사이다. 엘에게 더 이상 저들의 피를 묻히게 놔둔다면, 사람들은 엘을 패륜아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엘이 하려는 행동은 아인하트 후작을 죽음으로 몰아넣거나 그에 준하는 행동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엘을 말린 것이다.
자신의 외침에 엘이 멈칫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시선을 돌린다.
실피르는 외쳤다. 엘에게, 더 이상 이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그만 하자, 응? 엘리…… 아마 이들도 단단히 혼이 나서 앞으로 우리를 건드리려 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엘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돌아온 엘의 답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엄마 이들은 제가 이대로 놓아준다면 끝까지 복수를 하겠다고 쫓아올 사람들이에요.”
제대로 보았다. 엘이 제대로 본 것이다. 이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실피르도 그 사실을 공감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엘에게 말했다. 최대한 말에 설득력을 담아서.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봐. 엘, 매직 캡처의 내용이 있잖니? 그걸 가지고 가자. 그럼 우리를 섣불리 건드리지 못할 거야.”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매직 캡처에 담긴 내용을 제거하기 위해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매직 캡처에 담긴 내용만 잘 활용한다면 이들의 귀찮은 추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엘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 하지만 말이다.
“으음……”
실피르의 외침에 엘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대로 아인하트 후작에게 더 위해를 끼쳤다가는 위험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단순히 대결로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치더라도 아인하트 후작의 마법적 능력을 제거하면 제국 전체가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륙에 열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8클래스 마법사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축에 꼽히는 아인하트 후작이다. 마법사가 마탑에 소속되지 않고 국가에 충성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제국 내에서 아인하트 후작을 매우 아낄 확률이 높다.
그런 그의 마법 능력을 상실하게 한다면 당연히 제국이 나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난다면 마법 능력을 제거하지 않았기에 단순히 아인하트 후작에서 나서는 문제로 끝이 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매직 캡처에 담긴 내용으로 적당히 위협을 한다면 아인하트 후작가의 추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의 말도 일리가 있다. 여기서 아인하트 후작을 더 몰아넣었다가는 자칫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위험에 처할 수 있어. 찢어 버리고 싶을 뿐이지만……’
결정을 내린 엘. 금빛 안경을 한 차례 고쳐 쓴 엘이 대답했다.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가볍게 손을 젓자 그의 손을 둘러싸고 맹렬하게 회전하던 마나가 그대로 흩어졌다.
허공에 떠 있던 엘의 신형이 지면으로 하강했다.
땅을 밟은 엘이 실피르를 보며 말했다.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요. 다시는 이곳을 오지 않고, 우리 가족기리 요순도순 살아요. 제 능력과 엄마의 능력이면 어딜 가도 귀족의 작위를 얻을 수 있잖아요. 조용한 곳에서 마음 편히 살아요, 우리.”
엘의 말에 실피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엘리. 이 엄마가 어리석었어. 아무리 살아가는 데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나 가족 간의 정이 더 중요한 건데 말이야. 이 엄마가 미안해.”
진정한 행복에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실피르. 하지만 지금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냥 지금처럼 살아도 이보다 더 행복한 것이 없거늘.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런 실피르의 모습에 담담하게 미소 짓는 엘. 그가 실피르에게 손을 뻗었다.
“가요. 어서 이곳을 벗어나죠.”
“그래……”
실피르가 엘에게 걸어갔다.
엘은 연신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레나와 카이나에 게도 손을 뻗었다.
“너희도…… 나와 함께 가 주었으면 해. 저번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너희가 원한다면…… 난 너희와 끝까지 함께하고 싶어.”
그에 세레나와 카이나가 밝은 표정을 짓고 엘에게 달려 왔다. 그리고 엘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저희는 언제나 주인님과 함께예요.”
“저도요.”
“고마워.”
두 여인의 말에 살짝 미소 짓는 엘. 그리고 7클래스 마법 텔레포트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그럼 가 볼까……”
모든 캐스팅을 마친 엘. 이제 시전어만 외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
그때, 묵직한 저음이 엘의 귀에 꽃혔다.
“그렇게는 안 되지.”
갑작스럽게 들려온 말.
그와 함께 노도와 같은 기세가 일어나며 엘에게 폭사되었다.
콰콰콰콰-!
주변의 마나가 모두 한 사람의 통제 안에 갇힌 듯한 착각을 주었다.
그리고 엘에게 쇄도하는 엄청난 기세.
그것은 골든 나이트가 엘의 앞을 막아서면서 자연스럽게 골든 나이트에게 쏘아졌다.
은은하게 빛나는 금광이 폭발적으로 뿜어지며 골든 나이트도 기세를 뿜어냈다.
그러자 충돌하는 두 가지 기운.
파방! 팡!
푸른색 기운과 금색 기운이 팽팽하게 맞서며 물결이 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서로의 기운을 밀어내려 하였다.
‘이건……’
엘이 엄청난 기세를 일으키고 있는 중년인을 보며 안색을 달리했다. 골든 나이트와 대등 아니, 압도하는 기운을 흘리는 중년인의 정체가 범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 중년인 앞에 있는 사내를 보았을 때, 엘의 표정이 또 변화했다.
‘그렇군 황태자…… 그의 옆에 있는 중년인이라면…… 근위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클라이언 공작인가? 대륙에 열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그랜드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
무려 열 명에 이르는 소드 마스터가 합공을 해야 간신히 저지할 수 있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수치상 계산일 뿐, 그랜드 마스터가 정면 대결을 택하지 않으면 최소 오십 명의 소드 마스터를 동원해야 그랜드 마스터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
걸어 다니는 국가의 무기가 바로 그랜드 마스터인 것이다.
엘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그랜드 마스터의 힘을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 힘을 수치화시켰을 때 발휘할 수 있는 힘은 골든 나이트와 거의 대등! 수백 개의 마나석을 품고 있는 골든 나이트와 힘을 지닌 것이다.
엘이 골든 나이트의 마지막 봉인을 풀었다.
“타나! 제3단계 모드를 발동하라!”
그러자 골든 나이트의 주변에서 뿜어지던 금광이 한층 더 강렬해졌다.
“웃……!”
골든 나이트와 기세를 겨루던 클라이언 공작의 입에서 놀라움이 담긴 신음이 터져 나올 때, 골든 나이트의 눈에서 푸른 안광이 뿜어졌다.
“봉인. 해제.”
콰콰-! 콰콰콰-!
폭발하듯 뿜어지는 기세.
한순간 골든 나이트의 기세가 클라이언 공작의 기세를 밀어냈다.
“큭! 황태자 전하, 물러나십시오.”
“알겠소.”
황태자가 옆에 있어 전력을 기울일 수 없던 클라이언 공작이 입을 열자 황태자가 대답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제대로 힘을 방출하려던 순간 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나. 그만.”
그러자 마치 장난이었던 것처럼 골든 나이트의 기세가 사라졌다.
그에 클라이언 공작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골든 나이트의 기세가 마치 장난처럼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하나를 의미한다.
방금 전 골든 나이트가 끌어 올린 힘이 진정한 힘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여력을 남겨 두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클라이언 공작의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뜻이다.
‘쉽지 않겠군.’
아인하트 후작가에 일어난 소동의 주범.
한눈에 보아도 누가 소동을 일으켰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있다.
곳곳에 널브러진 100여 명의 기사들 모두 소드 익스퍼트 기사들인 걸 감안하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분명 기사들은 저 골렘이 쓰러뜨렸을 테니까.
게다가 저쪽에 참혹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두 사람.
그들은 아인하트 후작과 그의 후계자인 글레톤이 분명 했다.
놀라웠다.
세상에 7클래스 마법사인 그들을 이러한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이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외모를 보라.
채 스무 살도 되어 보이지 않은 저 외모를……
정황상 두 사람을 이렇게 만든 이는 저 소년밖에 없었다.
클라이언 공작이 작게 숨을 골랐다. 그리고 엘을 바라보았다. 그랜드 마스터인 자신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물러서지 않는 저 모습. 반짝이는 푸른 눈에 서린 맑은 빛을 보고 그가 작게 감탄했다.
‘어린 나이에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군.’
“그대는 누군가? 지금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그대인가?”
엘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클라이언 공작의 눈을 응시했다.
맑고 강한 눈이다. 권력에 물든 아인하트 후작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강직하고 올곧은 느낌이랄까. 엘이 느낀 바는 그랬다.
대륙 10대 그랜드 마스터 중 한 사람인 그와 척을 지고 싶지 않았기에 엘이 예의를 차려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범인을 찾는다면 제가 그 범인이지요.”
“정말 그대가 이런 일을 벌인 것이란 말인가?”
재차 확인차 묻는 클라이언 공작의 모습.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벌인 일에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었다.
“제가 그랬습니다.”
“허허! 놀랍군, 놀라워! 보아하니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러면서 클라이언 공작은 엘을 한 번 훑어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붙잡고 싶었다.
어찌 안 그러하겠는가.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에 7클래스 마법사를 능가하는 마법 실력. 그리고 자신마저 주춤하게 만드는 저 골렘.
필시 저 골렘은 실전되었다던 나이트 골렘이 분명하다.
만약 저 소년을 끌어들인다면 황제파…… 아니, 블리어드 제국은 한층 더 힘이 강해질 것이다. 클라이언 공작은 저 소년에게 그러한 가치를 느꼈다.
하지만 붙잡을 수 없었다. 아니, 붙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적이라고 하지만 아인하트 후작은 블리어드 제국의 소중한 전력이다. 그의 가문의 힘은 곧 제국의 힘이었다.
그런 그를 상처 입혔다는 것은 즉 제국 전체에 선전 포고를 했다는 것과 같다.
물론 이것은 조금 과장했을 때의 문제다.
정적의 입장에서 보면 엘은 요즘 더 날뛰는 아인하트 후작가의 기를 꺾어 준 이가 된다. 그래서 클라이언 공작은 딱히 그를 잡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래서 그는 엘에게 권유했다.
“나는 딱히 그대와 충돌하고 싶지 않다네. 이대로 물러난다면 눈감아 줄 용의가 있지. 어떤가?”
“……”
클라이언 공작의 말에 엘은 고민에 잠겼다.
마음 같아서는 클라이언 공작 옆에 있는 황태자에게 한 방 먹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클라이언 공작과 기사들은 물론, 블리어드 제국 전체와 척을 지게 된다.
아인하트 후작가를 건드린 것만으로도 큰일이다. 그런데 황태자까지 건드리다가는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어떻게 한다……’
엘이 고민에 빠졌을 때 황태자가 클라이언 공작에게 말했다. 무언가 대단히 불만스럽고 다급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클라이언 공작! 아인하트 후작가를 이렇게 만든 저 역적들을 이대로 보내 주겠다니? 그럴 수 는 없소! 그랬다가는 자칫 제국의 위엄이 무너질 것이오. 제국에 속한 가문을 건드린 역적들을 그대로 보내 준다면 누가 제국의 황가에 충성을 하겠소? 어서 저 역적들을 잡도록 하시오!”
그러면서 황태자의 눈은 엘의 뒤에 서 있는 실피르를 향하고 있었다.
끈적끈적한 음욕이 담긴 그 눈길에 실피르가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엘이 그런 황태자의 눈을 보지 못했을 리 없다. 그리고 그것으로 엘은 결정을 내렸다.
그가 클라이언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공작님의 제안, 무척 감사하지만 옆에 있는 분이 원하시지 않나 보군요. 저 또한 받아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허……!”
클라이언 공작의 입에서 안타까운 소리가 흘러나오려 할 때, 엘이 외쳤다.
“타나! 클라이언 공작을 막아라. 너의 모든 힘을 다해서!”
골든 나이트의 푸른 안광이 번쩍였다.
“주군. 명령. 이행.”
그와 함께 골든 소드에 푸른색 창연한 빛을 머금은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났다. 여태까지 시전한 오러 블레이드와 질적으로 다른, 월등한 위력을 지닌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난 것이다.
쓰! 쓰! 쓰!
처억!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골든 소드를 클라이언 공작에게 겨누는 골든 나이트.
그 기세는 너무나 강렬하여 클라이언 공작 또한 마주 기세를 끌어 올렸다.
쿠콰콰콰콰-!
주변 공기가 팽창하며 무시무시한 폭풍을 일으켰다.
어느새 검을 뽑아 든 클라이언 공작.
그는 방금 전 온화한 표정과 다른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골든 나이트에게 검을 겨누며 외쳤다.
“오라!”
꽈광!
두 기운이 충돌하면서 주변으로 강렬한 충격파가 번지기 시작했다.
대륙을 통틀어 단 한 기밖에 존재하지 않는 무인 나이트 골렘 골든 나이트와 대륙 십대 그랜드 마스터 중 한 사람인 클라이언 공작.
그 둘이 대치하고 틈을 노리는 모습을 힐끗 본 엘이 시선을 황태자에게 옮겼다.
그 순간 엘의 눈에 차가운 한광이 뿜어졌다.
엘의 시선을 받은 황태자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철렁한 기분을 느꼈을 때, 엘의 스산한 말이 흘러 나왔다.
“여관에서도 한 번 참았는데…… 그런데, 두 번씩이나 그런 눈을 해? 용서하지 않겠다!”
그리고 엘은 마법을 시전했다.
아인하트 후작과 글레톤을 꺾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 마법이었다.
“헤이스트! 리터레이트!”
그와 함께 엘의 몸이 살짝 기우는가 싶더니 엄청난 속도로 황태자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빨랐던지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황태자에게 접근한 엘.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짓는 황태자를 보며 엘이 양손을 뻗었다. 글레톤을 곤죽으로 만든 5클래스 근접 마법이었다.
“빅바이스 인터포싱 핸드!”
엘의 양손 앞에 생겨나는 거대한 손!
이것이 적중한다면 황태자는 최소 1년 동안 고생해야 할 것이다.
아니, 황태자니 최상위 신관들이 대동되어 치료에 치료를 거듭하여 몇 개월 안에 거뜬하게 일어설 테지. 그리고 보란 듯이 황태자 노릇을 하면서 세월을 보낼 테고……
그걸 생각하자 엘의 양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와 함께 거대한 손이 더욱 선명한 빛을 띠며 황태자에게 달려들었다.
황태자에게 막 마법이 적중하려 할 때,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위험을 느낀 엘은 재빨리 마법을 시전했다.
“블링크!”
시전어와 함께 공간의 틈으로 사라진 엘의 신형.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푸른색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검이 엘의 마법을 베었다.
서걱!
5클래스 빅바이스 인터포싱 핸드를 단번에 베어 버리는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 자칫하면 자신이 베일 수 있었다는 생각에 저편에 나타난 엘은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어느새 황태자의 주변에 은은한 금빛이 도는 기사 열 명과 은빛 갑옷을 입은 100명의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엘은 은은한 금빛이 도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에게 시선이 향했다.
그들이었다! 처음 황태자를 만났을 때 그를 호위하던 그 기사들……
개개인이 모두 소드 마스터에 올랐고, 그들의 갑옷은 최상급 철제 갑옷에 매직 메탈을 둘러 경량화 마법과 대 마법진을 새겼다. 저 정도라면 3클래스 이하 마법은 모조리 무시할 수 있고, 한 점에 힘을 집중하면 5클래스 마법도 거뜬히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가 아까 전 골든 나이트를 상대하던 롬펠 남작보다 약해 보였으나 그들 두 명이 모이면 롬펠 남작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저들의 실력은 무시할 것이 못 되었고, 피워 올리는 기세는 설사 드래곤이라도 베어 버릴 기세였다.
열 명의 근위기사 중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다른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황태자 전하를 지키는 데 주력하라! 상대는 7클래스 이상의 마법사! 방심하지 마라!”
“옛!”
근위기사 전체가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하며 엘을 경계했다.
“이런……”
열 명에 이르는 소드 마스터를 보고는 엘이 작게 신음을 흘리듯 탄식했다. 아무리 그가 강하더라도 소드 마스터 열 명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골든 나이트를 동원하면 가능했지만 골든 나이트는 지금 클라이언 공작을 상대하는 것으로도 벅찬 듯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 그의 뒤에서 걱정스러움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리……”
엘이 살짝 시선을 돌리니 실피르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피르가 엘에게 말했다.
“이대로…… 이대로 그냥 가면 안 되겠니? 황태자는 건드리기에는 그는 너무 큰 인물이야.”
그녀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짓는 엘.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게 다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다시 시선을 전방으로 향해 옮긴다.
엘은 생각을 바꾸었다. 굳이 정면 대결을 고집할 필요를 못 느낀 것이다.
그의 표적은 단 한 명. 황태자뿐이었으니까.
“열 명의 소드 마스터. 분명 이길 수 없는 전력이지만 굳이 정면 대결을 할 필요는 없지.”
그 순간 엘의 주변에 수많은 매직 애로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인하트 후작을 쓰러뜨린 매직 애로우가 다시 시전된 것이다.
“인피티니 매직 애로우(Infinity Magic Arrow)!”
피비비비빙!
수백 개의 마법 화살이 일제히 지면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7클래스에 이른 마법사가 시전하는 매직 애로우.
마난 호응이 다른 마법사보다 월등함이 그대로 파괴력 상승으로 이어진 매직 애로우.
엘이 시전한 매직 애로우는 3클래스 마법과 비등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에 이른 검사는 일반인이나 마법사와 달리 그 육체가 또 하나의 갑옷과 같다. 그래서 매직 애로우로 큰 타격을 입힐 수는 없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충분히 묶어 놓을 수 있다.
바로 지금과 같이 말이다.
“막아라!”
한 기사의 외침과 함께 그들은 모두 빠르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파삭! 파사삭
매직 애로우가 그들의 검에 부딪치면서 부서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엘이 노리는 바.
날아오는 매직 애로우를 막기 바쁘니 기사들에게 다른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때, 엘이 다른 마법을 캐스팅했다. 허공에 뜬 플라이(Fly)마법과 매직 애로우(Magic Arrow)에 이어 세 번째 마법, 트리플 캐스팅(Triple Casting)을 한 것이다.
엘의 금빛 안경이 은은하게 빛났다. 안경에 걸린 마법 매직 아이(Magic Eye)가 시전된 것이다.
마나의 흐름이 더욱 원활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캐스팅을 마친 엘이 마법을 시전했다.
“포스 해머(Force Hammer)!”
파앗!
그러자 기사들이 매직 애로우를 막아 내기 바쁜 가운데 어느새 여유를 되찾은 황태자의 뒤에 거대한 해머가 생겨났다.
쐐애액!
황태자 뒤에 생겨난 포스 해머는 대기가 찢어지는 파공음과 함께 황태자를 향해 휘둘러졌다.
순간 의아한 느낌을 받은 황태자가 몸을 돌렸다가 경악했다.
“허억!”
그런 경악성에 아랑곳없이 포스 해머는 그대로 황태자를 가격했다.
빠아악-!
포스 해머에 적중된 황태자의 몸이 ‘ㄱ’ 자로 꺾였다.
입에 게거품을 문 황태자가 세상이 떠나가라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엄습해 오는 엄청난 고통!
그가 언제 이러한 고통을 겪어 보았겠는가!
언제나 타인의 고통을 즐겨 왔던 그로서는 이러한 고통이 생소하고 너무나 무섭게 다가왔다.
방금 전 포스 해머로 황태자 내부가 뒤집어졌다. 외상에는 신관의 신성 마법이 잘 먹히나 내상은 꽤 시간이 걸 릴 것이다.
그걸 감안하고 엘이 황태자의 내부를 뒤집어 버린 것이다.
내상은 겉으로 티가 전혀 나지 않으니 말이다.
황태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황태자에게 향했다.
그리고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황태자를 불렀다.
“황태자 전하!”
기사들과 근위병들이 황태자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 순간 거짓말같이 매직 애로우가 그쳐 있었다.
“으음!”
클라이언 공작은 황태자가 쓰러진 모습을 보고 신음을 흘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도 쓰러진 황태자의 상태를 살피고 싶었다.
하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자칫 틈을 보였다가는 골든 나이트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골든 나이트는 클라이언 공작조차 위협을 느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한순간 방심하면 패배를 불러올 수 있는 그런 어마어마한 힘을 품고 있는 존재……
최대한 빨리 승부를 보고 황태자의 상태를 살피고자 했기에 클라이언 공작은 의도적으로 빈틈을 만들었다.
그러자 골든 나이트가 그 빈틈을 보고 반응을 했다.
골든 나이트가 막 골든 소드를 뻗으려는 순간, 엘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만! 네가 할 일은 끝났다. 타나, 공간의 저편에 대기 하라!”
그에 언제 폭발적인 기세를 뿜어냈냐는 듯 모든 기세를 제거한 골든 나이트.
그는 푸른 안광을 뿜어내며 엘의 명령에 응했다.
“공간. 저편. 대기.”
파아앗!
골든 나이트의 전신에서 환한 금광이 뿜어지더니 바로 옆 공간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클라이언 공작이 아니었다.
“이대로 못 간다!”
그는 노성을 터뜨리며 골든 나이트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수십 개로 나뉘어 쏘아지는 오러 블레이드!
정확한 컨트롤로 쏘아진 오러 블레이드는 그대로 골든 나이트의 왼팔과 왼쪽 다리에 적중되었다.
서걱!
오러 블레이드의 예리함을 견디지 못하고 집중 공격 당한 골든 나이트의 왼팔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떨어진 팔이 금광에 휩싸이더니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다시 어깨에 달라붙었다. 그 리고 공간의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허허!”
사라진 골든 나이트의 자취를 바라보며 클라이언 공작이 허탈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어찌 허탈하지 않겠는가!
지겨운 신경전 끝에 공격을 펼쳐 팔을 취했는데 그것이 순식간에 달라붙다니!
클라이언 공작의 시선이 엘에게 향했다. 엘 또한 클라이언 공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은 클라이언 공작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은은한 푸른빛을 띠고 있는 동전을 꺼냈다. 매직 캡처가 걸린 동전이었다. 엘은 그것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윽고 손을 젓자 푸른빛이 흘러나와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후 엘은 동전을 부숴 버렸다. 그리고 쓰러진 아인하트 후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 소거한다고 했지, 복제를 안 한다고는 말을 안 했으니까.”
그 말을 들었는지 누워 있는 아인하트 후작의 몸이 움찔했다.
엘은 시선을 황태자에게 옮겼다. 포스 해머에 가격당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황태자가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엘이 말했다.
“네가 행한 모든 것이 이 매직 캡처에 담겨 있어. 그 내용이 궁금하면 아인하트 후작에게 물어봐. 만약 날 쫓으려 한다면 이 내용을 퍼뜨려 버릴 테니까.”
그리고 다시 클라이언 공작에게 시선을 옮겼다.
엘은 그에게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더니 말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소란을 피웠군요. 이런 소란이 았고 하니 다시는 뵐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럼……”
엘의 주변에 푸른 빛이 반짝였다. 동시에 엘이 시전어를 외쳤다.
“텔레포트(Teleport)!”
스파앗!
그와 함께 엘 일행이 새하얀 기류에 휩싸여 그대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던 클라이언 공작.
잠시 그런 모습을 보인 그는 이내 본래 모습을 되찾고는 강한 기세를 풍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클라이언 공작의 기세에 압도되었다.
장내를 압도한 클라이언 공작이 언성에 강한 마나를 담아 말했다.
“오늘 있던 일은 모두 함구하도록. 이것들은 제국의 큰 누가 될 수 있는 사항이다. 모두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오늘 일을 비밀로 해야 한다. 알겠느냐?”
“아, 알겠습니다.”
한 기사가 대답하는 걸 필두로 모든 사람이 알겠다고 대답을 하였다.
하지만 클라이언 공작도 알고 있다. 이런 함구령을 내려도 이야기는 새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면 그래도 그나마 소문이 최소한으로 퍼질 수 있고, 그것을 제국 자체가 조율할 능력이 있었기에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아인하트 후작가에서 일어난 대소동은 조용히 함구령에 묻혀 지나갔다.
그러나 그 사건의 전말은 조용히, 아주 조용히 소문을 타고 흘러갔다.
그랜드 마스터와 호각을 이루는 황금 나이트 골렘을 데리고 다니는 최연소 7클래스 마법사가 대륙에 등장했다고.
그렇게 엘의 첫 등장은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조금씩 알려져 나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