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143)
제23장 전통차 연구부 설립
동아리 신청 일주일 후, ‘전통차 연구부’의 설립 허가가 떨어졌다.
부실로 학생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물리실이 주어지고, 필요한 물건은 자비로 들여온다는 조건이었다.
처음에는 부의 명칭을 변경한다는 사실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인 민주희 선생님이었으나, 세희가 선물한 전통차를 마셔보고는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어 동아리 설립 승인에 앞장섰다.
그 이면에는 전통차를 마시면 피부가 고와지고 숙취 해소에 좋다는 말을 듣고, 효능을 직접 체험한 것이 곁들여져 있었다.
“여기예요?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넓이는 괜찮고, 뒷산과 가깝긴 하네. 그런데 공기가 탁해, 클린(Clean).”
파아앗.
마법 시전과 동시에 주변 공기가 맑아지면서 수북이 쌓인 먼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때요, 준?”
“나쁘지 않네. 차를 연구할 만한 것을 준비하고 뒷산에 올라가면 될 것 같아.”
“천천히 하도록 해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우리에게 중요한 곳은 여기가 아니니까.”
“그렇죠?”
이곳 물리실은 전통차 연구부라는 것을 위장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곳은 바로 뒤에 위치한 야산. 전통차를 연구하겠다는 이름 아래 마나가 풍부한 곳에서 수련을 하는 것이니까.
“뭐부터 하실 거예요?”
“마나 집적진부터 설치해야겠지.”
셋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면서 야산 꼭대기 위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본 준성은 가볍게 숨을 들이켜면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산의 규모에 비해 마나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이 정도면 일반 사람들이 견뎌내기 힘들 정도예요.”
“그러니 의문인 거지. 오죽하면 학교에서도 야산에 올라가는 걸 주의하라고 하겠어?”
민주희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최근 이십여 년 전부터 산의 형태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한다.
산을 오르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운동량에 비해 지나치게 체력이 소모된다는 이야기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줄기차게 방문을 했지만 효과가 없자 단번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마나가 조금씩 빠져나가는군.”
“마나 흡수진이 설치된 걸까요?”
“아니, 마나 흡수라기에는 양이 너무 미미해.”
그렇게 말한 준성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자연적인 지형이 마법진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산의 형태가 마나 흡수진의 형태를 띤다는 건데…….”
“그게 가능한 일이었나요?”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그럴 확률이 높아 보여.”
조금씩 축적된 마나 양은 사람의 접근을 거부할 만큼 풍족함을 자랑했다. 천천히 산을 둘러보며 걸음을 옮기던 준성은 마나가 가장 집중된 장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지점이 괜찮겠군.”
“배드민턴 코트가 있는데, 지워 버릴까요?”
산꼭대기에는 배드민턴 코트와 각종 운동 기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괜히 모습을 바꿔 버리면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 그대로 두자. 그나저나 배드민턴이라, 학교에서 할 때 재미있게 했었는데…….”
“그럼 한번 쳐볼까요? 물론 내기를 걸고!”
이나가 도발이 섞인 눈으로 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이면에는 그랜드 마스터의 육체적인 능력을 자신하는 면이 드러나 있었다.
“해볼까? 세희는 어때?”
“저도 좋아요, 물론 그냥 하면 재미가 없겠지만요.”
“하하! 그럼 내일 리엔도 데려와서 같이 하도록 하자.”
내일 일정을 정해놓은 준성은 본격적으로 수련 장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수련할 수 있는 비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디그(Dig)!”
마법을 통해 구덩이를 파면서 지하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대부분의 대마법사가 마탑을 세우고 던전 하나쯤 만들어두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 만드는 수련장은 던전에 비해 매우 사소한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디그로 공간을 만들고, 마법 코팅으로 무너지지 않는 벽을 두른 뒤, 준비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비치해 놓기 시작했다.
“누가 학교 야산에 이런 던전이 있을 거라 생각할까요.”
말을 해놓고 지금 상황이 우스웠는지 이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마나가 풍부하니 하는 거지, 나도 이런 곳에 만들 줄 몰랐어.”
“들키는 일은 없겠죠?”
“환상 마법진을 설치했으니 드러나는 일은 없을 거야.”
던전 입구에 도달하게 되면 마법진 밖으로 밀어내게 되니 일반인이 오게 될 가능성은 전무했다.
“됐다, 앞으로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 되겠어.”
수련장에 마법진을 설치한 준성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일은 집에서 터지고 말았다.
“준이 배드민턴에서 이기면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요!”
“뭐?”
완전히 뒤바뀐 내용에 준성은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학교 야산에서 내기를 하자고 했던 이야기는 기억하지만 소원이라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이나가 대놓고 바꿔서 말한 것이다. 엘리엔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본 그가 황급히 나서면서 조기 진압에 나섰다.
“내가 언제 소원이라고…….”
“에이! 내기나 소원이나 같은 거죠.”
하지만 실패. 이나는 그녀답지 않게 능글맞았고, 세희는 침묵으로 기회를 창출했다. 그리고 엘리엔의 눈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에휴! 그럼 별수 없지.”
“후후! 기대하라고요.”
먹이를 앞에 둔 맹수처럼 눈을 빛내는 세 여인을 보며 준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배드민턴 코트에는 세 명의 사람과 한 명의 엘프가 비장한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살벌함마저 감돌고 있는 그들에게서는 절대 질 수 없다는 굳은 결의가 비쳤다.
이미 추첨을 통해 상대가 각기 전해진 상황! 배드민턴 라켓을 든 준성이 비장한 표정으로 코트에 섰다.
“승자가 패자한테 소원을 빌 수 있다는 뜻이지?”
“네! 그런 의미에서 준하고 만난 건 정말 다행이에요.”
그의 맞은편에 선 것은 바로 이나였다.
준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에 득의의 빛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얕보지 말라고.”
“절대 준을 얕보지 않아요.”
그렇게 말을 하며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섬뜩함 그 자체였다.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낀 준성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서브를 시작했다.
통! 통통!
네트를 넘나드는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이미 전생에 배드민턴을 해본 경험을 토대로 준성은 맹렬하게 이나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코어가 3 대 0.
초반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이나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서리고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의 압도적인 육체와 인지력.
그것은 준성에게 3점을 내어주면서 그가 지닌 모든 기술을 빠른 속도로 흡수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그녀 또한 완급 조절을 통해 준성을 공략했고, 강력한 스매시를 바탕으로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3 대 0이었던 점수가 7 대 9로 역전을 허용하자 준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그랜드 마스터를 이기기 힘든 건가.”
“그럼요! 제가 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부웅!
강력한 스매시가 이어지고, 셔틀콕이 지면을 강타하면서 카가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이라도 포기하세요.”
“대체 이기면 뭐하려고?”
“글쎄요, 제가 뭘 부탁할까요? 히히힛!”
웃음을 짓는 그녀의 두 눈은 붉은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준성은 주변을 둘러보며 냉정하게 판단했다.
‘이대로는 안 돼.’
그랜드 마스터의 반사 신경과 힘을 마법사가 이겨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이대로 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절대 그럴 수 없다!
‘방법은 하나.’
준성의 눈이 기이한 빛을 발하며 라켓을 휘둘렀다.
토옹!
“아? 아아?”
공이 날아오는 방향을 선점하고 있던 이나의 입에서 돌연 신음이 흘러나왔다.
셔틀콕이 힘의 방향을 무시한 채 그대로 허공에서 뚝 떨어진 것이다.
반대편에는 입꼬리를 말아 올린 준성이 서 있었다.
“이나가 그랜드 마스터의 힘을 발휘한다면 나는 마법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비, 비겁해!”
“쉽지 않을 거야.”
“절대 안 져요!”
급기야 마법을 이용하여 공격을 펼치는 모습에 이나가 한껏 표정을 찌푸리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준성의 기세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그 뒤로 펼쳐진 대결.
그랜드 마스터와 마법사의 진검 승부는 셔틀콕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마법사의 승리로 끝났다.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진 이나는 애처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비겁해요, 준.”
“불순한 눈빛만 안 했으면 마법은 안 썼을 거야.”
“그래도…… 히잉.”
할 말이 없던 이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두 번째 대결은 세희와 엘리엔이었다.
엘프 본래의 육체를 지닌 엘리엔은 민첩하고 날카로운 공격으로 단숨에 세희를 제압했다.
그리고 결승전.
마법으로 셔틀콕을 조종하는 준성이었지만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툭.
준성의 컨트롤로 기이한 움직임을 그리던 셔틀콕이 반대로 돌아와 그의 코트에 내리꽂혔다.
“…….”
“마법은 나도 쓸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으으.”
신음을 흘린 준성은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
패배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랜드 마스터의 육체와 마법 실력을 지닌 엘리엔은 준성이 넘을 수 없는 상대였다.
몇 번의 공방 끝에 승리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양팔을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제가 졌습니다. 리엔이 원하는 건 뭔가요?”
“내가 원하는 거라…….”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나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자 준성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뭐든지 가능한 거겠지?”
“예, 뭐. 그렇긴 하지만 너무 이상한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한 건 아니니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뭡니까?”
“그건…… 나중에 결정하도록 하지.”
“…….”
“실력을 회복하면 더 좋은 걸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
엘리엔이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하니, 인상을 찌푸린 준성은 앓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끙.”
그렇게 배드민턴 대결은 찜찜함만 남긴 채 끝을 맺고 말았다.
던전이 완성된 다음 날부터 수련은 시작되었다.
마나 집적진으로 한결 풍부해진 마나를 바탕으로 준성은 체내에 마나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우웅! 우우웅!
오랜만에 느껴보는 충족감이었다. 전신을 가득 채워 나가는 마나의 기운에 준성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마나 집적이라, 효과가 좋은걸?”
“그러게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멀리 떨어져서 마나 연공법을 수련하던 이나가 준성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쪼르르 달려와서 맞장구쳤다.
던전에 설치된 마나 집적진은 산에 산재한 풍부한 마나를 끌어모으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조성된 환경은 이전 세계와 비슷하다고 느껴질 만큼 풍부한 마나 농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척박한 지구에서 풍부한 마나를 접하게 된 준성은 솜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힘을 회복해 나갈 수 있었다.
“이 추세면 빠르게 클래스를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요?”
세희가 염려 섞인 목소리를 하자, 준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예요, 마나 양은 풍부하지만 이곳만 풍부할 뿐이잖아요. 우리가 흡수하면 언젠가는 동이 날 테고요.”
마나 양은 무한하지 않다. 이곳 야산에 마나 과밀 현상이 발생했지만 일시적일 뿐, 마나 집적진으로 던전에 끌어들인 뒤, 준성과 세희, 이나가 흡수하면 오래 지나지 않아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그다음은?
새로운 마나 과밀 현상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탐색 마법으로도 찾기 힘든 것이어서 언제 찾을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제가 걱정하는 건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바디 체인지에 필요한 마나를 어떻게 확보하는지에 대한 여부예요.”
차곡차곡 마나를 쌓으면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지만 세희가 걱정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바디 체인지.
보다 많은 마나를 수용하고 높은 수준의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최적화된 육체를 말한다.
이것을 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마나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세희의 걱정에 준성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뭐야, 그걸 걱정했던 거였어?”
“제 말이 뭐 잘못된 거라도 있는 건가요?”
자신은 진지하게 말을 한 것인데 웃음을 짓자 세희는 어리둥절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세희나 이나는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육체를 재구성했잖아? 그 과정을 바디 체인지라고 보면 돼.”
인간이 태어날 때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골격과 바디 체인지의 골격은 차이가 존재했고, 준성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새롭게 육체를 구성할 때도 바디 체인지 후의 육체를 구현했고, 지금 세희와 이나는 굳이 그걸 시도하지 않아도 되는 최상의 육체였다.
그제야 사실을 알아차린 두 여인은 감탄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마법을 캐스팅할 때 더 수월했던 거군요.”
“좀 더 몸을 움직이는 게 자유롭더니.”
“그런 거지. 좀 더 원활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정신력을 길러야 돼. 특히 세희 같은 경우에는 의지력을 길러야 마법을 빠르게 시전할 수 있어.”
“노력할게요.”
“의지력이라, 그러고 보면?”
일전에 엘리엔과 함께 보았던 이능의 무리들이 떠올랐다. 마법과 궤를 달리하던 그들의 힘은 기존에 존재하던 것과 판이하게 다른 것임이 분명했다.
‘가능할까?’
의지력은 물리력으로 전환할 수 없지만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드래곤의 용언이 바로 그러하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고등 정신력을 바탕으로 주변을 권역하에 놓는 그들의 마법은 초월적인 의지력이 발휘된 결과의 산물이다.
그리고 10클래스 영역에 도달한 준성도 유사한 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의지력을 일으켜 주변 일대를 관할하에 둔 뒤,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긍! 그그긍!
돌연 던전 전체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진동에 세희와 이나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했다.
“에?”
“이게 뭐죠?”
“……되네?”
자신이 일으킨 상황에 준성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세 사람이 집으로 돌아온 것은 밤 열 시를 훌쩍 넘겨서였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과 섞여 귀가한 준성은 엘리엔까지 모아놓고 말을 꺼냈다.
“음! 오늘 마나를 쌓으면서 한 가지 발견을 하게 되었어. 바로 이 세계의 능력자들이 사용하는 능력의 원리를 알게 된 것 같아.”
“그게 정말이에요? 어떻게요?”
“아까 던전에서 일어났던 진동을 기억해?”
“진동? 그럼 지진이 아니라 준이 일으켰던 거였어요?”
눈을 동그랗게 뜬 이나가 확인하듯 준성을 채근했다. 미소를 지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알다시피 이 세계는 마나 양이 적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이능을 발휘하는 건지 고민을 해봤어. 마나가 부족하니 체내에 쌓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마나를 매개체로 하는 마법을 시전하기도 힘들지. 그러니 의지력을 최우선으로 단련해서 이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가정을 해봤어. 어디까지나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능력자라는 입장하에.”
“…….”
모두 준성의 말에 집중했다. 의지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그들의 정신 단계가 웬만한 기사나 마법사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즉, 마나만 쌓지 않았을 뿐이지 다른 형태의 능력을 얻었다는 걸 의미한다.
“일단 의지력을 바탕으로 하니 위력은 낮지 않을 거야. 굳이 말하자면 다운그레이드 버전의 용언이라고 봐야겠지.”
“용언이요? 정말 대단한 능력이네요.”
설마 그 정도 능력일 줄 몰랐던 이나는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하지만 마나가 적다는 사실을 적용해야 하지 않나.”
“그 말도 맞습니다.”
엘리엔의 예리한 지적에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했지만 용언에 비유할 정도면 대단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으니, 바로 희박한 마나였다.
“용언의 진정한 위력은 의지와 마나가 결합할 때지. 그러니 마나가 부족한 이 세계에서 위력이 현저하게 감소할 수밖에 없어. 이건 예상일 뿐, 얼마나 대단한 힘을 지녔는지는 꾸준히 관찰을 해야 할 거야.”
“그래도 어떤 형식으로 힘을 발휘하는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네요.”
“그렇지, 파워 워드 킬 같은 마법도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비할 수 있다는 뜻이 돼.”
제때 방비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것이 정신계 마법이었다. 하지만 알고 방비하면 오히려 시전자에게 역풍으로 돌아간다.
이곳의 능력 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저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행여나 실수하지 말고. 우선은 힘을 기르는 게 우선이니까.”
준성의 말에 모두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생활은 안정기가 찾아왔다. 준성은 이나의 남자 친구라는 사실이 여전히 관심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교실의 학생들은 어느 정도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교의 밝은 면을 누리며 차곡차곡 힘을 쌓아나가는 준성의 하루하루는 충실함의 연속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시작될 무렵, 일단의 무리가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같이 불량한 기색이 엿보이는 학생들이었다.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듯 주변을 둘러본 그들은 이내 한 학생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입을 열었다.
“야, 나와라.”
호명을 받은 학생은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불량 학생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준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세희야, 혹시 저 아이가 누군지 알아?”
“최예성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최예성? 쟤가 왜 저런 불량 학생들하고 엮이는지 알아?”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얼핏 보면 전혀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데요. 무언가 이상한 점이 보이시나요?”
“…….”
준성은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세희는 그의 상념을 깨지 않기 위해 조용히 그를 지켜보다가 교과서로 시선을 옮겼다.
“한번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아.”
“네?”
“내가 본 게 사실인지 한번 확인해 봐야 할 것 같거든. 최예성이라는 아이와 이야기해 봐야겠어.”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세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준성이 더 말해주지 않자 묻지 않았다. 단지 무엇이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들어온 최예성의 옷은 꽤 더러워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종례를 마치자 학생들은 가방을 싸면서 하나둘씩 교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학생들이 자리를 비우자, 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최예성을 향해 다가갔다.
“최예성.”
“뭐냐?”
까칠한 반응. 처음 다가가는 사람이 움찔할 만한 예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준성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 그의 태도는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었다.
“몸은 좀 괜찮고?”
“갑자기 그걸 왜 신경 쓰는 거지? 언제 나와 친분을 나눴다고?”
“그냥, 굳이 끌려다닐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귀찮음을 감수하는 것 같아서.”
“……무슨 뜻이지?”
순간 예성에게서 날카로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일반인이 견뎌내기 힘든 것, 살기임이 분명했다. 준성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자 아차하면서 기세를 거뒀다. 그리고 짐짓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눈을 부라렸다.
“다시는 나한테 신경 쓰지 마라. 귀찮은 일에 관련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 말과 함께 가방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 버리는 예성이었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세희와 이나가 다가왔다. 둘 모두 얼굴에 의아함을 한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왜 그러셨어요?”
“찾았어.”
“네?”
“최예성은 이능을 사용할 줄 아는 녀석이야.”
“……!”
세희와 이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