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144)
제24장 이능을 찾아서
준성의 충격 발언에 이어 세 사람은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이미 짐작하고 있는 그와 달리 세희와 이나는 갑작스러운 사실에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음료를 각 자리 앞에 놓기 무섭게 이나가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우선, 최예성을 안다고 했지? 이나는 잘 알아?”
“네? 아, 아니요.”
작년에는 연예인 활동을 하면서 준성을 찾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했기에 아는 바가 없었다. 고개를 젓는 그녀와 달리 세희는 즉각 대답했다.
“최예성은 작년에 저와 이나랑 같은 반 학생이었어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어서 말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어떻게 지냈는지는 대충 알고 있어요.”
“한번 말해줄래?”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세희가 자신이 본 부분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학급에서 튀는 학생이 아니었어요. 말도 거의 없고 사교성도 전무해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오늘처럼 누가 찾아오면 같이 나갔다가 들어오곤 해요.”
“그게 전부야?”
“학교 성적은 중상위권이며 체육은 그럭저럭해요. 아! 결석이 좀 잦았던 것 같아요.”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는 준성을 보며 두 여인이 설명을 요구했다. 앞에 놓인 음료수를 들고 한 모금 마시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우선 말하자면 최예성은 이능을 사용하는 능력자가 맞아.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편의상 능력자라고 할게. 내가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어렵지 않아. 바로 이거야.”
준성이 가리킨 것은 자신의 머리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는 세희와 이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말했지만 이곳의 능력자들은 의지력을 바탕으로 능력을 구현하지. 저번에 흉내를 내봤지만 이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제약이 따르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극대화시킨 면이 있어. 나도 긴가민가했는데 오늘에서야 알게 됐고.”
“대체 어떻게 아신 건데요?”
“바로 기세야.”
“네?”
“전혀 알지 못하겠던데…….”
강한 힘을 지닌 실력자가 기세를 발산하면 그것을 모를 두 여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본 최예성은 그저 존재감이 없고 불량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부분은 바로 그 점이지. 우리는 마나를 쌓을수록 은연중에 주변을 잠식해 나가지만 저들은 정반대야. 의지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기 위해 주변의 마나를 밀어내고 있지.”
“아!”
“존재감이 없던 것도 그것 때문이야. 주변에 기운이 맴돌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차릴 재간이 없는 거지.”
준성의 설명에 두 여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최예성은 존재감이 없어서 헷갈리게 만들고는 했다.
“어쨌든 능력자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건드리셨군요.”
“우리는 그쪽을 알지만 그쪽은 우리를 모를 확률이 높으니까. 살짝 건드리면 알아서 반응을 하겠지. 그럼 알아서 주워 먹기만 하면 돼.”
사악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그의 모습에 이나가 몸을 가늘게 몸을 떨더니 새초롬한 눈으로 준성을 바라보았다.
“난 준이 이렇게 음흉한 줄 몰랐어요.”
“음흉하다니, 모두를 위해서인데.”
“그래도요. 금탑주님이 이렇게 음흉한 정치가일 줄은.”
“이나도 그랬어? 나도 방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마디 거드는 세희의 얼굴에 장난기가 역력히 배어 있었다. 멈칫한 준성은 그대로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하하, 이거 참.”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우선 반응을 봐야겠지만 저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고, 얼마나 강한 힘을 지녔는지 조사하려고 해. 이 세계의 전체적인 힘을 파악할 수 없겠지만 서울을 알면 우리나라의 대략적인 능력자 숫자를 유추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다 우리가 들킬 수도 있어요.”
“그래서 신중하게 움직이려고. 집에 돌아가면 리엔에게도 말을 하고 상의를 해봐야겠지.”
현재 가장 큰 힘을 지닌 것은 엘리엔이고, 학교에서 자유로운 만큼 능력자의 본거지를 찾아내는 데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들킬 수 있겠지만 깊게 파고들려는 건 아니야. 차원의 문도 범람하고 있고, 상대가 우리의 정체를 모른다면 기회는 무궁무진하니까. 무리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알겠어요, 준성을 믿을게요.”
“저도요!”
세희가 말하기 무섭게 끼어들면서 한마디 거드는 이나였다. 사소한 것에도 질투하는 모습이 귀여워 준성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그럼 음료수나 마시자.”
“네!”
할아버지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전해 들은 진우는 한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 그의 건강을 염려한 식구들이 어떻게든 방안을 마련해 보려고 했지만 굳건한 그의 의지를 꺾는 것은 불가능했다.
약 일주일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할아버지가 있는 서재였다.
“제게 힘을 주십시오, 할아버님!”
“무슨 힘을 말하는 것이냐.”
“저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입니다.”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진우는 수많은 생각을 했다.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간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자신이 지닌 능력을 자신했고, 그동안 이뤄놓은 성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느 어떤 여자라도 유혹할 자신이 있었고, 억만금도 뚝딱 만들어낼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도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토록 원하고 구애하던 이나가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진우는 자신이 했던 행동이 얼마나 어린아이 같고 저급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이나가 뒤에서 얼마나 비웃었을지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전신을 휘감고는 했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로 바뀌었다.
강력한 힘을 지닌 그녀는 자신의 술수를 보면서 얼마나 비웃었을까.
모든 것이 자신의 실수였고, 욕심이었지만 누군가를 탓하기 시작하니 그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상대는 이나밖에 없었다.
진우가 힘을 원하는 것도 자신을 비웃었던 이나의 얼굴에 금이 가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줄 수 없다.”
“어째서입니까!”
“어빌리티 오너(Ability Owner)는 아무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네게 재능이 있었으면 내가 순순히 해외 유학을 보냈을 것 같고?”
“…….”
“오로지 순수하게 타고난 재능을 각성하고 갈고닦아야 사용이 가능하다. 네게는 어빌리티 오너가 될 자격은 없다.”
시리도록 차가운 선고가 아닐 수 없었다. 휘몰아치는 무력감에 진우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능력자가 될 수 없다고 했지만 이대로 물러날 생각은 어디에도 없었다.
“왜 저는 없는 것입니까. 할아버님은 능력을 지니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능력이 있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네가 뭐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능력이 없으면 기업을 이끄는 능력이나 기르도록. 그것이 기업을 위해 할 수 있는 길이다.”
“정말…… 정말 안 되는 것입니까?”
압도적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진우에게 있어 다른 것은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했다.
반드시 힘을 얻고 싶었다. 만인의 앞에 우뚝 서고 싶고,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취하며 대적하는 자를 짓밟고 부숴 버리고 싶었다.
들끓는 파괴 욕구로 붉게 물든 눈동자가 할아버지를 향했다.
콰우우우!
동시에 살벌한 기세가 폭사하며 전신을 휘감기 시작하자, T그룹의 창시자이자, 명예 회장인 정기정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재미있군.”
쏴아아.
가볍게 손을 휘젓기 무섭게 바람이 일어나면서 진우 주변으로 휘몰아치는 기세를 지워 버렸다.
멈칫한 진우는 멍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네 능력을 보여라. 내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다면 네가 갈 길을 일러주도록 하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건 알아서 찾도록. 이 할애비가 네게 모든 길을 일러줘야 하나?”
시리도록 차갑고 무서운 모습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진운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는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하지.”
최예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준성은 엘리엔이 힘을 보태주길 바라는 마음에 조마조마함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수락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손쉽게 떨어졌다.
“알았다, 돕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준성은 최예성을 쫓을 때 주의해야 할 점과 해야 할 범위를 일러두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엘리엔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신과 미행이라면 자신있다.”
“에, 엘프인데요?”
엘프라면 자연을 사랑하고 평화를 숭상하는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은신과 미행에 자신이 있다고 선언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채울 수 없는 짙은 괴리감이 형성되었다.
“나는 엘프 수호검주다. 모든 엘프를 수호해야 할 의무를 지녔지.”
“알지요.”
엘리엔이 겪은 기구한 사건들은 그녀를 동정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준성 또한 그녀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한바탕 대결을 벌인 적이 있지 않은가.
“수호검주가 되기 위해서는 검술과 마법, 정령술을 모두 익히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시되는 게 바로 은신이다. 숲과 동화되면 그 누구도 우리를 찾을 수 없기에 어떤 적이라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지. 그 과정에서 배운 추적술도 완성에 다다랐다.”
“…….”
준성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처음 그녀와 만나서 죽을 뻔한 경험이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도 납치를 하려고 했지. 그 과정에서 죽어도 상관이 없었겠지만 결국 날 막아내고 오해를 풀었으니 오늘의 행복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 하하! 그렇지요?”
진실만 말할 수 있는 엘프라, 숨기는 면이 없어서인지 더 무섭게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에 이어진 그녀의 말은 준성으로 하여금 소름이 오싹 돋게 만들었다.
“걱정하지 마라. 들키는 순간 죽여서 입막음을 할 테니. 내 걱정은 말도록.”
‘상대를 걱정하는 겁니다요…….’
‘적당히’라는 것을 모르는 엘프를 보며 상대에 대한 동정심이 무럭무럭 샘솟는 준성이었다.
☆ ☆ ☆
여느 때처럼 평범한 나날이었다.
경계심을 갖게 된 최예성은 종종 힐끔거리며 준성을 바라보곤 했다.
짙은 탐색의 의미가 담긴 눈빛.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준성은 모르는 척, 세희와 이나랑 어울리며 평범하게 행동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열흘 동안 이어졌고,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한 예성은 더 이상 그를 감시하지 않았다.
“그럼 아무것도 찾지 못한 건가요?”
“생활이 단조롭더군. 학교 아니면 집, 그리고 친구들에게 끌려다녀서 폭행을 당하는 것뿐이다.”
“폭행이라, 왜 폭행을 당하는지는 모르시나요?”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저항하지 않더군. 우리가 모르는 능력과 관련이 있는 것 같지만 실체를 파악할 수는 없다.”
“음, 그렇군요.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빠르게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턱을 매만지는 준성의 눈가는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얼마 전부터 엘리엔은 최예성을 감시했다. 그의 존재가 국내에 활동하는 능력자들을 찾아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성과물은 전무했다. 기껏해야 최예성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그가 능력자가 확실하다는 것 정도만 알게 되었다.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였고 준성보다 엘리엔이 더 아쉬워했다.
“어차피 차근차근 시간을 들이기로 했으니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계속 수고를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이다, 우리의 안전을 위한 일이니까.”
“예, 근데 굳이 이렇게 장을 보러 올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의 식사 준비를 위한 일이다, 한 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주변을 둘러본 준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둘이 향한 곳은 인근 시장이었다. 엘리엔이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요구한 것은 함께 장을 보는 것이었다.
데이트 신청이 아니었기에 이나는 안심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장을 보는 것이나 데이트나 다를 바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 채 장을 본다는 것은 주변의 시선을 잡아끌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래서는 곤란한데.”
“곤란한 일은 없을 거다. 사진을 찍는 자들에게 존재감을 지우고 있으니까.”
이미 사진을 찍힌 적이 있는 엘리엔은 어떤 방식으로 전자 기기에 간섭하는지 파악했다.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뇌전 마법 종류의 전자파를 발산하면 제대로 된 형상이 잡히지 않게 된다.
“그래도 채소 종류만 사면 이나가 싫어할 텐데요.”
“싫어도 건강에 좋다. 마나를 쌓기 위해서는 몸을 관리해야 할 이유가 있다.”
“맞는 말이죠.”
이래저래 만류하는 말을 꺼내도 엘리엔이 강권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준성이었다.
그렇게 장 보는 것을 마친 둘이 사이좋게 장바구니를 나눠 들고 집으로 향할 무렵이었다.
“……이건?”
“왜 그러지?”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흔적을 발견하게 된 것 같습니다.”
“흔적을?”
준성의 시선이 향한 곳은 ‘진퉁 골동품’이란 간판이 달려 있는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준성이 고민에 잠겼다.
“예, 그런데 가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고민이라면?”
“저곳에 갔다가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으니까요. 괜히 의심을 살 수 있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지만 흔적을 발견했으니 이래저래 고민이 됩니다.”
“그럴 땐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간단하게?”
“저지르고 보는 거지.”
“예? 그냥 저지른다고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준성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제 막 저들의 실체를 향해 접근하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엔의 생각은 달랐다.
“힘을 가진 것은 우리다. 저들의 능력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어도 우리의 힘 또한 저들에게 미지의 능력이겠지. 여차하면 탈출할 수단은 많다. 그러니 부딪쳐 보면 된다.”
“하아!”
“그럼 나라도 들어가 보지.”
“예? 자, 잠깐만요!”
깜짝 놀란 준성이 붙잡으려고 했지만 엘리엔은 이미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그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골동품점 안은 한적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었다. 벽에 배치된 진열장에는 척 봐도 귀해 보이는 물품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뭘 사러 오셨습니까?”
“예, 보다가 신기한 물건이 많은 것 같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엘리엔이 다짜고짜 정체를 물을 수도 있어서 준성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오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골동품점 주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보시면 신기한 물건이 많습니다.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행운을 가져다주는 목걸이? 아니면 사랑이 이뤄지는 반지? 물건은 많으니 천천히 살펴보시길.”
“알겠습니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준성의 눈이 예리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물건의 대부분은 특별한 능력이 담기지 않은 평범한 것이었다. 그저 세월의 흐름을 타면서 애호가들에게 비싼 값을 치를 수 있는 물건일 뿐, 하지만 몇 개는 준성의 감각을 건드리고 있었다.
엘리엔도 마찬가지였는지 그와 같은 곳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건 뭡니까?”
“오르골입니다. 제작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안에 담긴 음악을 들으면 불면증에 걸린 사람도 쉽게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물건이네요. 오르골에 수면약이라도 들어 있는 건가요?”
“허허!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그런 힘이 깃들었다는 뜻입니다.”
확신에 담긴 말에 준성은 잠시 오르골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한번 들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
주인이 오르골을 열기 무섭게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강렬한 수면 욕구가 밑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준성이 눈살을 찌푸리자, 주인은 오르골을 덮으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효과는 확실하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정도일 줄은.”
“그래서 마법의 오르골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좋은 이름 같습니다. 그걸 구입하고 싶은데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 비싸지는 않습니다.”
딸랑.
문을 열고 가게를 나선 준성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내내 침묵하고 있던 엘리엔의 표정도 비슷하게 바뀐 상태였다.
“느끼셨죠?”
“느꼈다, 매직 아이템도 아닌 아티팩트(Artifact)를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매직 아이템과 아티팩트의 기준을 나누는 것은 간단했다.
그만큼 대단한 수준을 지니고 있는지 여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구매한 오르골은 능히 아티팩트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물건이 서울 시내 골동품점에 자리하고 있을 줄은…….
“그리고 보셨죠?”
“느꼈군.”
“골동품점 주인도 능력자였어요.”
무엇보다 준성의 경계심을 끌어냈던 것은 능력자의 존재 때문이었다. 골동품점 주인은 상당한 수준의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의 기세를 느낀 준성은 한 치도 방심하지 않았고, 엘리엔도 좀 더 많은 것을 파악하고자 집중을 하고 있어야 했다.
“일단 좀 더 자세한 조사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지부 같은 곳이 아니라 이렇게 산재해 있으면 숫자를 파악하는 게 더 힘들 것 같군.”
“그것도 그러네요.”
한숨을 푹 내쉰 준성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의 만남이 오히려 더 많은 혼란을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아서 이래저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단 가시죠, 오르골을 연구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평범한 물건은 아닐 테니.”
고개를 끄덕인 엘리엔이 준성의 뒤를 따랐다.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다.
세희와 이나는 학교에서 수련을 한 뒤 집으로 오기로 했기에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저녁을 하기 전, 준성과 엘리엔은 골동품점에서 구입한 오르골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인 마법이 적용되지 않았어요.”
마법이 인챈트되었다면 준성이나 엘리엔이 모를 리 없었다. 이 오르골은 마법과 궤를 달리하는 다른 형태의 것이었다. 준성은 뷰 마나 포스를 통해 오르골을 들여다보니 마나와 다른 이질적인 힘이 오르골에 잠들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마나와 다른 형태?”
“예, 제가 말했던 의지력으로 구현한 힘 같습니다. 마나와 비슷하지만 좀 더 시전자의 의지가 강력하게 깃든 힘이지요.”
“그런 게 있군.”
“아직 이 세계의 힘이 어떤 원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마나와 다른 형태…….”
“굳이 말하자면 드래곤과 비슷합니다. 그 위력은 드래곤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요.”
“그럼 기존의 힘보다 훨씬 질기겠군.”
“하하!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독특한 그녀의 표현에 준성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웅! 우우웅!
준성이 손을 뻗자, 마나가 발산되면서 오르골을 뒤덮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용언은 중간계 수호자의 의지력을 담은 절대적인 언령으로서 파훼하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의지를 담아야 했다.
지금 오르골에 담긴 의지력 또한 마찬가지. 더 큰 힘을 발휘하면 자연히 의지력이 흩어지고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극! 그그극!
오르골에 담긴 의지력은 거세게 저항하면서 준성의 힘을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한 반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건…….”
어느 순간, 준성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엘리엔을 향해 외쳤다.
“리엔! 공간 왜곡 마법진을!”
다급함이 담긴 목소리에 엘리엔은 곧바로 마나를 운용하여 공간 왜곡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웅! 파아앗!
푸른 마나가 날개처럼 활짝 펴지면서 공간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이는 장내의 공간 흐름을 비틀어 버림으로써 좌표를 읽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쾅!
그리고 공간 왜곡 마법이 장내를 뒤덮을 무렵, 오르골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제길.”
화상 입은 팔을 보며 준성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의 부상을 보고 놀란 엘리엔은 황급히 치료 마법을 시전했다.
“괜찮나?”
“예, 그것보다 아쉽게 되었네요. 비싼 물건이었는데.”
“왜 공간 왜곡을 펼치라 한 거지?”
갑작스러운 준성의 외침이 엘리엔으로 하여금 의아함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화상 입은 손이 빠른 속도로 나으면서 고통이 가시자 준성이 말했다.
“오르골의 의지력이 어떤 원리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 힘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물건에 서린 힘이 사라질 때 제작자에게 위치를 전달하는 추적입니다.”
“추적이라?”
“디바인 마크처럼 기이한 문양이 떠올랐습니다. 힘의 체계가 달라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상대가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수도 있겠군.”
“예.”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 ☆ ☆
“이건……!”
뇌리를 자극하는 감각에 사십대 초반의 중년 사내가 표정을 굳혔다. 동시에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이동한 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파앗!
푸른 광채가 전신을 휘감으며 미약한 회오리를 일으켰다. 그 중심에 선 그는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이내 허탈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추적할 수 없다. 분명 능력은 발동했는데 쫓을 수 없다니. 적어도 나와 동급이거나 더 뛰어난 실력자라는 의미인데…….”
이러한 사실은 전해 들은 적이 없었다. 눈을 감고 남은 흔적을 쫓고자 했지만 역시나 느껴지지 않았다.
“오르골이군.”
능력자는 능력의 향상을 위해 종종 아티팩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중 수면의 능력을 담은 오르골을 만들어 가게에 판매했다.
현재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아티팩트에 한해 세상 여러 곳에 풀려 있고, 박근태는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아티팩트 제작자였다.
“본부에서는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그 말은? 디멘션 게이트가 열렸다는 뜻인가? 아니면 타국의 능력자가 왔다는 건가?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군.”
한국 A.O(Ability Owner) 본부 소속이자, 정신계 능력자인 박근태는 표정을 굳힌 뒤 골목길을 벗어났다.
타국의 능력자인지, 디멘션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몬스터인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가 나타났다는 것.
그것은 추후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준성과 엘리엔의 움직임은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냈다.
창문을 힐끗 바라보는 이나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서렸다. 요 며칠 사이 벌어진 일들은 그녀로 하여금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저 사람들 또 왔네.”
“대체 몇 번째인지.”
한숨을 푹 내쉰 이나의 목소리는 처연했다. 어떻게든 좋게 끌고 가고 싶었지만 당면한 상황은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다는 뜻 아니겠어?”
“분명 좋은 말이지만 이런 형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주제는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T기획사와 계약 만료가 된 이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이에 따라 대대적으로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떠돈 루머는 그녀가 연예계에서 은퇴한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어린 나이임에도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어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모으고 있는 그녀가 홀연히 은퇴를 선언한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스케줄도 하지 않은 채 학교생활만 즐기고 있는 것이 전해지자, 가장 먼저 팬클럽부터 들썩이기 시작했다.
단 일 년밖에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이나의 팬클럽 ‘팔방미인’의 정회원 숫자는 십만 명에 육박했다. 그들은 나이답지 않게 당당하고 다방면에서 재능을 과시하는 이나를 흠모했고, 성공을 기원했다.
전폭적으로 지지하던 연예인이 한순간 은퇴를 해버리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이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팬클럽에서는 매일 학교에 찾아와서 이나에게 부탁을 하기 일쑤였고, 학교 학생들을 붙들면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처음에는 극성팬이겠거니 싶었지만 그 강도가 더해 가자 이나가 겪는 곤욕은 만만치 않았다.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까?”
“그럴까요?”
“전적이 있잖아.”
“하아!”
그녀가 한숨을 내쉬는 이유는 얼마 전, 야산에서 수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교문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을 보아서였다.
당시 집으로 돌아가던 시간이 열한 시가 훌쩍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독한 독종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나도 마음을 바꿔보는 건 어때? 연예인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말씀 마세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야. 이나를 좋아해 주는 팬들을 매정하게 외면하는 것도 좀 아니잖아.”
“그건 맞는 말이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자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음 같아서는 준성이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대처해 줬으면 싶었지만 오히려 연예인을 하라고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우리도 수련을 하러 가자고.”
“네.”
최근 야산의 마나를 많이 흡수하면서 더 이상 매일 수련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월, 수, 금에 가서 마나를 흡수하여 최대한 건전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었다.
그날 수련은 날을 넘긴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나의 컴백을 기다리는 팬들이 끝까지 남아 있다가 자정이 넘고 나서야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열성적이군.”
“전 괴로워요. 고맙긴 하지만 이제 내 인생도 좀 존중해 줬으면 좋겠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나였지만 준성은 특별히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잠들지 않고 거실에 모였다. 멀뚱히 소파에 앉아 있던 엘리엔도 대화에 참여해야 했다.
“아무래도 결정해야 할 것 같은데, 세희는 어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더 이상 학교에 피해를 끼치면 동아리 생활도 쉽지 않고, 이래저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어요.”
“이나는?”
“……저도 그렇게 찾아오는 건 부담스러워요. 좋게 해결할 수 있다면 해결하고 싶어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나도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곳은 전의 세계처럼 신의 위세가 먹히는 곳도 아니고,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곳도 아니다. 그녀는 공인이라 취급받는 연예인이기에 좋아하는 팬들을 함부로 대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봤어요.”
“스토리? 갑자기 스토리는 왜?”
“이나의 돌발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스토리죠. 요즘은 다양한 분야에 스토리가 적용되잖아요? 이나의 행동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에요.”
“흥미가 생기는데, 어떤 거야?”
흥미를 드러내는 준성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 세희가 설명을 시작했다.
“복잡할 것 없어요. 이나가 준성과 커플인 것은 그대로 유지하는 거예요. 현재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건 이나의 은퇴가 준성의 사주로 이루어졌다고 말이 나오는 거예요.”
“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언니?”
이나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펄쩍 뛰었지만 세희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야. 여자 친구인 이나의 인지도가 높아지자, 남자 친구가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연예인이 그만둘 것을 종용했다, 이런 루머가 조금씩 퍼지고 있어.”
“말도 안 돼…….”
“그게 연예계야. 일 년 동안 있었으니 어느 정도 알고 있잖니?”
“그럼 준에게 피해가 가잖아요!”
단지 루머였지만 준성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것이기에 이나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루머에는 스토리로 맞서자는 거지. 우선은 루머를 막을 필요가 있어. 그러니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돼. 저번에 준성이 찻집을 다시 시작하자고 했던 이야기, 기억하죠?”
“기억하지.”
“그걸 이용하려고 해요. 이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찻집을 차리는 거였지. 그리고 연예인을 하면서 돈을 모으게 되자 꿈을 위해 그만둔 걸로 포장이 돼야 돼.”
“내 꿈이 찻집 주인이라고요?”
“알려지기에는 그렇다는 거지.”
미소를 지으며 이나를 달랜 세희는 준성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저번에 찻집을 다시 차리자는 말을 했었어. 그러니 그걸 활용해서 찻집을 차리는 거야. 이나, 네 이름을 대대적으로 걸고. 그리고 방금 이야기했던 소문을 퍼뜨리면서 운영하는 거지. 평일 저녁때나 주말에 가끔 나가는 걸로.”
“그걸로 먹히겠어요?”
“양념을 좀 쳐야겠지. 연예인을 하면서 너무 큰 인기를 얻어서 사람들의 관심이 두려웠다, 자신의 꿈은 작은 찻집 하나를 운영하는 건데 가끔 따라다니는 사람이 생기고, 심지어 스토커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말을 하는 거야.”
“사람들이 믿겠어요? 강도를 검으로 때려잡았는데.”
이나의 인지도가 껑충 뛴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강도를 목검으로 때려잡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현역 고등학생이자 모델인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다.
“후후, 그러니 스토리가 필요한 거야. 강도를 잡았지만 그날 이후로 남자들이 무섭게 보인다. 그래서 연예인 생활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당분간 꿈에 충실하면서 공부에 매진하겠다고 이야기하면 돼. 이나, 넌 사람들의 관심과 강도의 침입에서 상처받은 가녀린 소녀가 되는 거지.”
그야말로 청산유수의 설명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모든 스토리를 머릿속에 담아낸 듯한 자연스러운 이야기에 준성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것은 이나 또한 마찬가지. 오히려 그녀의 반응은 그보다 더했다.
“우엑!”
가녀린 소녀라는 말에 오돌토돌 돋아난 닭살을 매만지는 그녀였다.
자신이 가녀리다니!
그랜드 마스터이자, 전장을 종횡무진 휩쓸며 악마라 불리던 자신의 모습과 전혀 매치되지 않았다.
“내 말대로 따르면 모든 게 완벽해질 텐데, 계속 고집부릴 거니?”
“정말 언니 말대로 하면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어요?”
“물론이고말고! 이 언니가 이 세계로 넘어와서 읽은 것들을 생각해 보렴.”
“…….”
수많은 로맨스와 BL소설들, 책장을 점령한 순정 만화, 그리고 무수히 많은 드라마들까지.
모든 것을 섭렵한 세희의 머릿속은 이미 대한민국 스토리 공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이미 가슴이 납득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이나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미간을 찌푸렸다.
“괜히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요!”
“물론이야.”
“으으, 왠지 당하는 것 같지만 준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결국 세희의 뜻대로 따르기로 결심한 이나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