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153)
제33장 연결된 차원
“흠흠!”
주변에 집중된 시선에 준성은 헛기침을 하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주의를 환기시키는 행동에 사람들의 시선이 트롤에게 향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 몰아붙이던 A제로 등급 몬스터를 손쉽게 제압한 엘리엔의 압도적인 무위에 경악이 가득했다.
“A제로 등급을 혼자서 잡아?”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저런 힘을…….”
상식적으로 말도 되지 않은 일이 벌어지다 보니 그들의 얼굴은 경악으로 가득했다. 비록 약해진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 힘은 결코 개인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엘리엔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묵묵히 트롤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이 명백한 소유권의 주장임을 알았지만 압도적인 힘을 본 이상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준성이 다가가자 엘리엔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는 앞에서 할 생각?”
“별수 있나요.”
몬스터의 사체는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만큼 큰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아공간으로 사체를 보낼 수도 있지만 별도의 가공을 거치지 않은 마나 홀은 아공간 내에서도 빠른 속도로 흩어지기에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 자리에서 마나 홀을 추출해야 했다.
시체를 향해 손을 뻗고 마법을 시전하자 거센 파동이 일어났다.
우웅! 우우웅!
트롤의 내부에 형성된 마나가 거세게 요동치면서 준성의 인도 아래 마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콰콰! 콰콰콰!
조금씩 응집하던 마나가 이내 강렬한 파도가 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그사이 부상을 수습하고 몸을 일으킨 능력자들은 붉은빛이 감도는 마나 홀이 트롤의 아랫배에서 떠오르기 시작하자 놀라움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에너지석? 아닌데.”
“저 힘이 에너지석이 아니라고? 대체 뭐야?”
상식을 벗어나는 광경에 능력자들은 수군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등급이 변하는 몬스터의 존재도, 개인이 A제로 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도 모두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었다.
그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둘의 시선은 오로지 마나 홀에 고정되어 있었다.
“대단하군.”
마나 홀 내부에 꿈틀거리는 거대한 힘을 본 엘리엔이 취한 듯 중얼거렸다. 그것은 준성 또한 마찬가지, 압도적인 힘의 흐름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아, 저도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역동적인 힘이라니.”
“생명력을 불사른 여파로군.”
“상당량이 비어 있지만 순도 면에서는 더 만족스럽습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몬스터의 몸에 이 정도의 힘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이게 A제로라면 앞으로 등장할 수 있는 오우거 종류나 상위 몬스터는 재앙이겠군.”
“아마도 그렇겠죠.”
마나가 희박한 세계의 사정상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별수 없이 대중에 알리고, 강력한 화기를 동원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럼 우리는 돌아가지요.”
“그러지.”
“몬스터 사체는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다음엔 이런 불운이 없길.”
부상 입은 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들에게 말을 남긴 준성과 엘리엔이 모습을 감췄다. 잠시 자리에 모여서 웅성거리던 능력자들은 트롤의 사체를 수습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후, 완전히 떠났던 준성과 엘리엔이 다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에 도착했다.
“왜 다시 오자고 한 거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뭐지?”
어렴풋 이곳과 관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준성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의아함을 드러내는 그녀를 향해 마나 홀을 들어 보였다.
“확인을 하려면 이게 필요한데, 사용해도 될까요?”
양해를 구하는 준성의 행동에 엘리엔은 미소를 지었다. 사소한 것 하나도 의견을 구하는 모습은 자신을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얼마든지.”
“그럼…….”
마나 홀을 들고 있는 준성의 시선은 조금 전까지 차원의 문이 발생했던 곳으로 향했다. 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그의 통찰력은 미미하게 남겨진 좌표를 읽어들이고 있었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우웅! 콰콰! 콰콰콰!
준성의 의지가 일어나기 무섭게 붉은 마나 홀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폭사했다. 그리고 그의 의지에 응집이 이루어지며 오른손에 모였고, 허공을 움켜쥐며 잡아당기기 무섭게 날카로운 굉음이 울려 퍼졌다.
키이잉!
고작 사람 하나 들어갈 법한 작은 크기였지만 그것은 방금 전까지 눈앞에서 열렸던 차원의 문이었다. 준성이 펼친 마법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차린 엘리인의 두 눈이 경악에 가득 찼다.
“이, 이건…….”
“이걸로 확실해졌습니다. 일단 돌아가지요, 집에서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지.”
사아앗.
마나 공급을 끊기 무섭게 차원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자리를 벗어난 곳은 전투의 흔적만 황량하게 펼쳐져 있었다.
☆ ☆ ☆
A제로 등급 몬스터의 등장에 대한민국 A.O.(Ability Owner) 본부는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자칫 잘못하면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멸망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사태에 본부의 인원은 촉각을 기울였으나 상황은 그들의 불안감과 달리 허망하게 끝을 맺었다.
대한민국 서울 본부장 김기정은 트롤의 등급 향상에 놀라워했지만 그것을 홀로 상대한 엘리엔의 존재에 더 감정을 드러냈다.
“혼자서 몬스터를 상대했다고?”
“예,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다는 건…….”
김기정의 시선이 같이 보고를 듣고 있던 박근태에게 향했다.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보고를 마친 남자가 나서기 무섭게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제가 보고 드린 인원 중 녹빛 머리 여인이 맞습니다.”
“혼자서 A제로 등급 몬스터를 감당할 수 있다니, 아직도 믿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믿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습니다.”
근태의 머릿속에는 예측기를 건네줄 때 자신의 뒤를 점하던 광경이 떠올랐다. 자신이 허튼생각을 하기라도 하면 당장 베어버릴 듯 날카로운 예기가 전해지던 순간을 떠올리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대단한 실력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 차례 트롤을 제거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실력입니다, 본부장님.”
“놀라움은 컸지만 결과가 나온 이상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들의 전력을 의심할 생각은 없으니 그만 강조하셔도 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습니다. 다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 아닙니까?”
웃으며 던진 농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지만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김기정과 근태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계산으로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번 등장은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아도 될까요?”
“제가 본 그들은 우리를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몬스터 예측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능력자들이 당할 때 나타난 걸 보면 악감정 상당 부분이 사라진 거라 생각됩니다.”
“저랑 생각이 같군요.”
거짓을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다가간 것의 효과였다. 김기정이나 근태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 이면에는 저들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자 했습니다. 과연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는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등장하게 될 몬스터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제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군요.”
“시간은 많습니다.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A.O. 본부는 각국에 설립되어 있고 커다란 틀에서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각국의 이해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그렇게 말을 한 근태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어김없이 맞아떨어지고는 했다.
“유감스럽게도 A등급 몬스터의 등장은 세계 각국의 A.O. 본부에 보고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쯤 우리가 A등급 몬스터를 제거했으며, 그 제거한 능력자가 누구인지 조사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김기정이나 박근태 같은 유명한 능력자들은 어느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지 파악이 가능했기에 타국에서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능력자의 존재를 알아차릴 것이다.
이 의심은 조사로 이어지고, 베일에 감춰지지 않은 그들의 정보는 드러날 수밖에 없다.
“조치를 취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뿐입니다. 실력에서도 의심할 나위가 없지만 제가 가장 우려하는 건 에너지석 원형 그대로 추출해 내는 능력입니다.”
“음! 저도 그런 능력이 존재할 줄 몰랐습니다.”
“이것은 세계의 경제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입니다.”
대부분의 몬스터 사체에서 추출되는 에너지석은 특수 가공의 능력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유실되는 양은 엄청나다. 그럼에도 에너지석의 성능은 엄청나서 세계 경제에 깊숙이 관여하는 기업들도 몬스터의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에너지 유실을 막고 순도 높은 에너지석을 구하려는 상황에서 원형에 가깝게 취할 수 있는 능력자가 존재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 부분을 강조하도록 하지요. 제가 직접 나서서 설득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절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굳은 각오가 깃든 근태의 목소리에 김기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늘 중대한 사실을 알리려고 해.”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준성은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차원의 문을 직접 목격한 엘리엔의 표정도 심상치 않아 세희와 이나도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오늘 등장한 몬스터는 트롤이었어. 나와 리엔이 한 번 상대해 본 몬스터였기에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지. 그런데 놀라운 건, 트롤이 생명력을 불살라 자신의 한계를 초월했어. 그 힘은 그랜드 마스터와 비견되었고.”
“트롤이 그렇게 강할 수 있어요?”
“내가 본 걸 직접 말할 뿐이야. 더 놀란 것은 그다음이야. 대체 차원의 문은 왜 열리는 거고, 트롤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
“마계에서 오는 게 아닐까요?”
이나가 대답했다. 원래 살던 세계도 몬스터는 마계에 살던 생명체였으며, 마왕을 따라 마계에서 중간계로 건너왔다는 설이 전해졌다.
“그럼 트롤이 왜 마나를 품고 있을까?”
“그건…….”
“이곳과 연관이 있는 건가요?”
“맞아, 차원의 문이 열린 장소를 가면 다른 곳과 달리 마나가 풍부한 걸 알 수 있어. 세희랑 이나도 가봐서 잘 알 거야.”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차이는 미미했지만 다른 곳과 다르게 마나가 더 풍부해서 행동하기 편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극히 작은 변화였지만 준성이 언급한 것에 이유가 있으리라.
“내 가설에 불과해. 하지만 몬스터가 등장하고, 차원의 문에서 마나가 발산되는 것을 보면 한 가지 추측이 가능해. 우선 지구에 마나가 너무 희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저도 이상해요. 이런 환경이면 생명체가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나도 처음에는 무분별한 개발 때문이라 여겼어. 그래도 이 정도 농도는 너무 심해. 난 그걸 몬스터의 등장에서 힌트를 얻었어. 지나칠 정도로 강한 힘과 웅혼한 마나 홀까지. 차원의 문에서 흘러나오는 농도 짙은 마나가 한 가지를 말해.”
“…….”
모두 준성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연결하여 새로운 사실을 도출한 그는 추측에 확신을 담아 말했다.
“지구와 몬스터가 있는 차원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 ☆ ☆
그의 말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그 여파는 그리 크지 않았다. 세 여인 모두 다른 차원의 출신이었고, 이곳보다 무수히 많은 공간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살아왔다. 차원과 차원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큰 충격이 될 리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나가 질문을 던졌다.
“차원의 문은 왜 열리는 거죠?”
“내가 생각하기엔 이동하는 통로의 형성이 원활하지 못한 것 같아. 이 세계는 마나가 부족하지. 그 말은 차원의 문이 형성되기 위한 환경 조성이 힘들다는 걸 의미해.”
“마나 부족이 차원과 차원의 연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거네요.”
마법사인 세희는 준성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대답했다.
“맞아, 차원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의지력으로 한계가 존재하니까.”
“그럼 차원의 문은 계속 열릴 수 있다는 의미네요.”
“오히려 가속화될 수도 있어.”
“가속화요?”
“아직 생각뿐이지만 일단은 그래. 예측기의 알림이 점점 빨라지는 걸 봤잖아.”
“그러네요.”
몬스터의 등장은 예견된 것이고, 그 빈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이는 세계가 더 이상 몬스터의 비밀을 감추기 힘들다는 걸 의미했다.
“무엇보다 몬스터가 왜 인적이 드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
“어떤 의미인가요?”
“여러 가지야. 가장 의심이 가는 부분은 지구의 좌표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야.”
외국의 몬스터 등장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이곳 서울에서 일어난 것만 해도 이미 충분한 자료가 쌓였다. 좌표를 추적해 보면 모두 외곽 지역이고, 사람의 이목에서 벗어난 장소였다.
퍼즐을 맞추듯이 하나씩 그림을 완성하는 순간, 세희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설마…….”
“저쪽 차원에서 이곳의 지리를 알고 있다는 의미겠지.”
다른 차원을 간섭한다는 내용은 놀라운 사실이지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세희와 엘리엔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사인 이나야 말할 것도 없고.
분위기가 처지는 것을 느낀 준성은 화제를 돌려야 함을 느꼈다. 아직 확실한 것이 적은 상황에서 여러 가지 설명은 그녀들로 하여금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더 있지만 우선 우리의 위치에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 할 거야.”
“위치요? 무슨 위치?”
“몬스터의 등장 빈도가 높아진다고 했지? 그럼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몬스터가 등장하게 될 거야. 그에 반해 능력자의 숫자는 적지. 그럼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섭외가 들어오겠네요.”
힘의 역학 구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는 세희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전생에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나와 리엔만 알려졌지만 세희와 이나도 범상치 않다는 걸 파악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럼 이런 생활도 이별하게 되는 셈이지.”
“그건 싫어요!”
“하지만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야.”
“그래도…….”
거세게 반발하는 이나였지만 그녀라고 해서 다른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한 부분이 있어. 들어볼래?”
“물론이죠!”
흔쾌한 수락에 잠시 생각을 정리한 준성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은…….”
“다시 뵙네요.”
“반갑지 않은 얼굴이겠지만 오늘은 부탁할 것이 있어 찾아오게 되었다.”
하교 시간에 준성을 찾아온 것은 근태였다. 세희와 이나를 먼저 보낸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아마 찾아오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으로 갈까요?”
“조용한 곳으로 부탁하지.”
준성이 앞장서고, 근태가 뒤를 따랐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한창 장사로 바쁜 찻집 ‘엘리미스’였다.
“여긴…….”
이미 조사한 바가 있기에 근태의 눈이 이채로 번뜩였다. 호기심 어린 기색에 피식 웃은 준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다.
“제게 할 이야기가 있는 듯하니 차를 사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러지. 요즘 장사가 잘되고 있다는 걸 들었는데.”
“저도 먹고살아야 하니 이래저래 노력하는 거죠. 부양할 가족도 있고.”
“흠!”
너스레를 떠는 준성의 태도에 근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준성과 함께 살고 있는 세 명의 여자에 대한 정보는 이미 파악해 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점유했던 여인을 제외하면 세희와 이나에게서는 아직 이렇다 할 특별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 용건을 들어볼까요.”
주문한 두 잔의 차가 탁자 위에 올라오자 준성이 근태를 바라보았다.
“우선…….”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들을 가능성은 없으니.”
주변을 둘러본 근태의 감각 사이로 밖과 안이 괴리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가볍게 감탄사를 흘린 그의 눈이 준성을 향했다.
“……신기한 재주를 사용하는군.”
“찾아오신 용건이나 이야기해 주시죠.”
오랫동안 대화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를 보며 근태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눈을 빛냈다가 입을 열었다.
“본부의 능력자들이 신세를 졌다고 하더군. 그들을 구해줘서 고맙네.”
“제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A제로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하다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고 있나?”
“제가 그쪽 체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잘 모르겠군요.”
“내 거처도 거침없이 침입하는 걸 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네만.”
“그럴 리가요. 저는 ‘정중한’ 방문을 했을 뿐인데.”
미소 지으며 차를 마시는 준성의 모습에 황당한 표정을 지은 근태가 웃음을 흘렸다.
“정중한 방문? 그도 그렇군.”
나이도 경험도 자신이 월등할 텐데 자꾸만 휘둘리는 느낌이 들었다. 가볍게 헛기침을 한 근태가 막 본론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잠시만요.”
“뭐지?”
“중요한 일은 아니고요.”
어깨를 으쓱한 준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근태도 침묵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모습을 드러내며 접시 두 개를 준성과 근태의 앞에 놓았다.
“입이 심심해서 먹을 것도 주문했습니다.”
“……내가 알기로 이 케이크가 가게에서 제일 비싼 걸로 알고 있는데?”
“하하! 제가 운영하는 가게에 오셨으니 맛을 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럴 거면 매상 좀 올려주는 것도 좋고요.”
“못 당해내겠군.”
능숙하게 상대를 자기 페이스로 끌어당기는 태도만으로도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주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곧장 용건을 꺼내 들었다.
“본부장님을 만나볼 생각이 없는가?”
“우리는 용병(Mercenary)이 될 거야.”
준성이 생각한 것은 의뢰를 받고 일을 해결하는 용병 개념이었다.
“용병이요?”
“그래, 용병. 의뢰를 받고 일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거야. 이 나라의 능력자들은 충분히 오크나 트롤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하지만 이번에 본 트롤의 폭주는 감당하지 못했지. 그걸 A등급이라고 칭하는 것 같았는데 상급 몬스터부터는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 그 말은 높은 등급 몬스터를 감당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다는 의미가 되겠지.”
“우리는 숫자가 적으니 강한 몬스터를 퇴치하는 걸 위주로 모습을 드러내겠다는 이야기군요.”
“맞아, 역시 세희야.”
“흥! 저도 알아들었거든요?”
세희를 칭찬하기 무섭게 이나가 입술을 삐죽이며 끼어들었다. 피식 웃음을 지은 준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아주었다.
“물론 이나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어.”
“별로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믿어줄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한 부분은 그거야. 우리는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상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의뢰를 받는 거지. 그게 현재 우리 생활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이 세계에서 준성과 여인들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평온이었다. 몬스터가 등장하면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고, 이 평온도 오래 이어지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트롤을 처리하면서 우리의 능력을 선보였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 있는 이상 능력자 본부에서 반응이 올 거야. 그럼 최대한 우리 가치를 높이고 주도권을 가져오는 게 중요해.”
말을 마친 준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의를 구하는 그의 모습에 세희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저는 찬성이에요.”
“나도 찬성!”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인 것 같군.”
“그럼 이제 몸값을 높이면 되겠어.”
입꼬리를 말아 올린 준성이 웃었다.
“본부장님이라면 능력자 본부를 말하시는 겁니까?”
“역시 알고 있군. 정확히는 A.O.(Ability Owner) 한국 본부라고 하지. 세계 연맹 소속 대한민국 본부라고 보면 되네.”
자랑스러워하는 근태의 모습에서 준성은 여러 가지를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우선 A.O. 대한민국 본부의 위상이 낮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일반인의 눈을 피해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이었다.
“어빌리티 오너라, 능력자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듯하네요.”
“아무리 영어라고 해도 우리말이 더 좋은 것 아니겠나.”
“틀린 말은 아니네요.”
준성은 웃고, 근태도 웃었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판단한 근태는 좀 더 강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본부장님께서는 자네의 능력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계시네. 그 나이에 A등급 몬스터를 감당할 수 있다면 훗날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강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지.”
“영광이군요.”
직접 찾아가겠다는 기정을 만류한 근태는 준성을 꾀어서 데려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상황이었다. 그 자신감을 보인 이유는 그가 아직 어리다는 점에 있었는데, 세계적인 A.O. 연맹을 모르는 것으로 보아 어린 소년의 치기를 이용할 수 있다고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세계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준성은 흥미를 드러냈다.
근태는 빠른 속도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본부장님은 세계에서 스무 번째 안에 들어가는 강자라네. 그분과 한 번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면 얻는 것이 많을 거라 생각하는데.”
“확실히 제게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수월하게 풀려가는 이야기에 근태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이어진 말을 듣는 순간 높게 치솟은 기대감은 바닥에 곤두박질 쳤다.
“하지만 본부장을 만날 생각은 없습니다.”
“……어째서인가?”
“저는 아직 학생이라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몬스터의 위협도 무섭지만 본부장님을 만나게 되면 지금의 평온이 깨질 것 같습니다. 능력자 본부에 뛰어난 분이 많다고 하니 저는 안심하고 학업에 매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럼 저는 일어나 보겠습니다. 케이크와 차, 잘 먹었습니다.”
황당함에 얼어붙은 근태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난 준성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