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169)
제49장 시크릿 코드
김기정이 준성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사흘 후였다. 외출을 하던 준성과 세희, 이나는 갑작스레 앞에 나타난 그를 보고 멈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잠깐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겠습니까?”
“보시다시피 외출 중입니다.”
“사생활은 존중하지만 그보다 급한 일입니다. 듣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같이 들어도 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습니다.”
김기정의 수긍에 외출을 하려던 준성은 다시 찻집 안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사람이 오지 않는 자리로 안내한 준성은 김기정을 조용히 바라보며 재촉했다.
“최근 준성 씨에게 세계 각국 A.O. 본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걸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아닌 척해도 지척에 깔린 눈을 모른 척할 순 없었다. 대수롭지 않은 듯 수긍하자, 김기정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들 중 대다수는 준성 씨가 하미레스를 꺾은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A.O. 본부를 타격한 것도 같이 묶어서 말입니다. 그들은 준성 씨의 힘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준성이었다. 과거 금탑주였던 시절만 해도 자신의 무위에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세계 10강인 하미레스를 꺾었다고 해도 의구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몇몇 국가에서는 준성 씨가 미국 소속 능력자라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이 그것뿐입니까? 그렇다면 시간을 낸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 자신을 붙잡아두니 준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김기정은 내색하지 않은 채 입맛을 다시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본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일본 A.O. 본부에서는 준성 씨의 이름을 노리고 능력자를 파견했습니다.”
그러면서 김기정은 현재 국제 능력자 연맹의 세력 구도와 동북아 능력자 본부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자신이 세계 10강으로 임명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며, 중국과 일본 A.O. 본부에서 불만을 가지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아무런 세력이 없는 준성 씨는 건드리기 만만한 상대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계 10강 선정에서 떨어진 일본 능력자가 날 쓰러뜨리기 위해 찾아온다?”
“예.”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김기정이지만 조용히 듣고 있던 이나는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풋! 참 어리석네요.”
“맞습니다. 어리석은 판단이지요.”
“제가 어떻게 해주길 원합니까?”
“저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준성 씨를 찾아올 마츠모토 타다요시는 기습에 특화된 능력자입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행여나 준성이 그에게 당할 것을 염려한 것이리라.
준성이 뛰어난 능력자라고는 하나 기습 공격을 감행할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면 패배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주의하지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얼마 전에 있었던 결계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아직 밝힐 때가 아니란 것만 알아주시길.”
“……알겠습니다.”
A+ 혹은 AA- 등급에 해당하는 거대한 충돌, 그 정체가 무엇인지 자세히 캐묻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상대는 절대 대답해 줄 기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적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궁금증을 밀어 넣은 김기정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찻집을 벗어났다.
“아무리 그래도 주의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기정이 사라진 뒤, 세희는 염려 섞인 목소리로 준성에게 물어왔다.
“그래야겠지. 괜찮은 척했지만 아직 능력자들의 능력의 종류를 완벽하게 파악한 건 아니니까.”
“기습에 특화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아마 은신이나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능력을 지녔다는 걸 의미하겠지. 사실 능력의 발현 구조는 이미 파악하고 있잖아?”
고미현과 함께하면서 그녀의 능력을 개발할 때 얻은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다. 대마법사인 세희의 감각 정도만 되어도 숨기고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평소처럼 감각을 확장하고 있기만 하면 돼. 세계 10강을 넘보는 수준이라고 해도 어차피 그 정도에 도달했다는 의미는 아닐 테니까.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네…….”
“그래도 주의는 해야겠지. 그런데 세희는 왜 같이 가려는 거야?”
오늘의 외출은 이나의 광고 촬영을 위한 것이었다. 준성과 이나 둘만 나가기로 했는데 세희가 돌연 같이 가고 싶다고 끼어든 것이다.
“오랜만에 외출이 하고 싶어서요. 둘만 있게 되면 이나가 어떻게 나올지 불안하기도 하고요.”
“언니는 무슨 내가 발정 난 줄 알아요? 내가 준과 둘만 있다고 어떻게 할 것 같아요?”
“혹시 모르지 않니.”
“이익! 후! 알았어요, 같이 가요.”
아닌 게 아니라, 둘만 외출하는 것 때문에 잔뜩 들떠 있던 이나였다.
모처럼 광고 촬영에서 자신의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한껏 매력을 어필하려던 계획이 세희 때문에 무산되니 잔뜩 골이 날 수밖에 없었다.
노골적인 방해였지만 준성은 그런 세희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외출을 많이 하지 않았으니 답답할 수도 있겠지.”
‘하아! 이런 면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준!’
당장 반박하고 나서고 싶었지만 진우를 고자로 만든 사건이 밝혀지면서 자신의 조신함에 타격을 입었기에 이나는 꾹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언니도 연예계의 면면이 궁금할 수도 있죠. 그렇지 않겠어요, 준?”
“그럴 수도 있겠다. 모처럼의 구경이니 같이 가는 것도 좋겠지.”
“물론이죠.”
환한 미소를 지은 세희가 긍정을 드러냈다.
☆ ☆ ☆
“이곳인가, 기분이 좋지 않군.”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도착한 마츠모토는 주변을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취해야 할 세계 10강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김기정이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못했다.
“본부장님의 말씀은 옳으나, 세상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으니.”
일본 A.O. 본부의 하나다 유지로는 김준성이란 소년만 상대할 것을 지시했지만 마츠모토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간 녀석을 확실하게 제거한다.
그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김준성을 무너뜨린 다음, 김기정을 찾아가서 확실하게 무너뜨리는 것.
그리고 세상의 모든 능력자들에게 알릴 것이다.
세계 10강의 자리는 김기정이 아닌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라는 것을.
“……!”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던 그는 얼핏 눈에 띄는 한 남자를 보고 멈칫했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중년인을 보는 순간 전신을 타고 흐르는 강렬한 전기가 그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느낌은 무엇인가.
여태까지 수많은 강자들을 보았지만 감각을 요동치게 만드는 강자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많은 강자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와 비슷한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굴까, 대체 누구일까.
가슴속에서 치미는 호기심을 참지 못한 마츠모토가 중년인을 부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잠까…….”
하지만 그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마치 유령처럼 흐릿해진 중년인의 몸은 그대로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언제 어느 순간 능력이 발현된 건지 눈치조차 챌 수 없었다.
눈에 이채를 띤 마츠모토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번 일, 재미있겠군.”
심상치 않은 느낌이 풍겼다.
☆ ☆ ☆
이나가 촬영하는 광고는 찻집에 관련된 것으로, 이번에 고상준이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써 진행되는 일 중 하나였다.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하면서 제법 시간이 소모되었는데, 그동안 준성과 세희는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준비를 마친 이나가 광고 촬영을 시작하자, 준성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이야, 그치?”
“네, 정말 아름답네요. 카이나 시절을 생각하면 절대 저런 모습은 연상되지 않는데.”
“이나도 나름 경험을 많이 쌓은 귀부인이야. 매번 도발에 걸려드는 왈가닥으로 생각하면 곤란해.”
“그렇겠죠? 전 잠시 다른 곳 좀 들렀다 올게요.”
“응? 아아, 그러도록 해.”
준성의 타박 때문인지 어색한 웃음을 지은 세희가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났다.
개의치 않고 세희를 보낸 준성은 이나가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때때로 눈이 마주치면 파이팅 포즈를 취하거나 손을 흔들면서 친밀감을 표했다.
자연히 촬영장의 스태프들은 준성을 부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순식간에 남자의 공적으로 전락한 준성은 멋쩍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광고 촬영을 지켜보던 준성은 자리를 벗어난 세희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안 오지?”
다른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영혼으로 연결된 그들은 서로의 안위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깊은 사이였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낀 준성은 눈빛으로 이나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추적 마법으로 세희의 종적을 쫓기 시작했다.
그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그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는 세트장이었는데, 그곳에서 세희의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세희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런데 이전과 다른 부분은 늘 조곤조곤 말을 하던 것과 달리 상당히 흥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말 팬이에요!”
“네…… 감사해요.”
더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니 세희 맞은편에 한 여인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인은 눈초리가 올라가 앙칼진 느낌을 물씬 풍겼는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재미있어요! [욕망의 불꽃>부터 시작해서, [처제의 결심>하고, [불륜 속에서 피어난 사랑>, [짝사랑> 등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연기력을 선보일 수 있는 거죠?”
줄줄이 흘러나오는 제목은 하나같이 심상치 않았고, 두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을 갈구하는 세희의 눈빛에 여배우는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절세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인이 다가와서 자신이 촬영한 막장 드라마들의 열렬한 팬이라고 하니 말이다.
범접하기 힘든 세희의 미모에 머뭇거리던 여배우는 세희가 계속해서 친근하게 대해오자, 조금씩 마음을 열더니 이내 두 여자 사이에 막장 드라마의 정수가 흘러나왔다.
“…….”
준성은 그 대화를 들으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해야 함이 옳으리라.
세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막장의 향연은…… 그에게 있어 신세계였다.
가끔씩 이나의 입에서 막장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었는데, 오늘 검열을 거치지 않고 나오는 말들은 보니 중증도 이런 중증이 없었다.
“……조치가 필요하겠어.”
해맑은 세희의 표정을 보며 준성은 그렇게 결심을 굳혔다.
☆ ☆ ☆
김준성이란 능력자의 등장과 김기정이 세계 10강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대한민국 A.O. 본부의 일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세계 10강을 꺾었다고 알려진 김준성을 감시하기 위한 각국의 감시자들과 세계 10강의 자리에 오른 김기정과 친분을 다지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본부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 김기정에게 한소영이 급한 기색으로 달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본부장님!”
“무슨 일이기에?”
“시크릿 코드(Secret Code)예요!”
“…….”
순간, 김기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그 이름이 이곳에서 언급될 줄은 그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알 만한 능력자들에게 있어 ‘그’는 반드시 숨겨야 할 존재와 같다. 애써 외면하고자 미국에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본 그가 대한민국에 온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사안이다.
‘미국에 있어야 할 그가 왜?’
순간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론이 도출되자 김기정의 얼굴에 더 큰 균열이 일어났다.
미국의 산에서 은거하고 있는 그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뿐이다.
그리고 그를 움직이게 만들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사안인지 유추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모든 정보력을 집중합니다. 그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시선을 집중하도록 하십시오.”
“네!”
평소와 다르게 다급한 기색마저 서려 있는 그의 얼굴에 한소영은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 ☆ ☆
충격과 공포가 교차했던 광고 촬영장 방문이 끝나고, 준성 등은 집으로 향했다.
“칫! 데이트할 기회였는데.”
투덜거린 이나는 세희를 보면서 연신 입술을 삐죽였다. 마치 그녀만 아니었으면 둘이서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모습이었다.
“준성과 데이트를 못해서 아쉬운 건 너뿐만이 아니잖니.”
“그냥 하는 말이에요. 오늘 누군가가 양보를 해줬으면 한 사람은 매우 행복했을 텐데.”
“어쩜 나와 생각이 같니.”
“뭐라고요?”
“둘 다 그만해.”
마치 개와 고양이처럼 시시각각 다툼을 벌이는 그녀들을 보며 준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에 둘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미안해요, 준.”
“제가 너무 과했던 것 같아요.”
“너무 싸우지들 마. 가끔 과할 때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니까.”
“네.”
나란히 대답하는 그녀들을 보며 준성은 고개를 저었다. 특히 세희를 볼 때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만큼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자제하라는 것은 이 세계로 와서 갖게 된 소중한 취미를 버리라는 것이기에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걸음을 옮기는 준성을 보며 세희와 이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말다툼에 그가 적잖이 화가 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침묵도 집 근처에 도착할 무렵 깨지고 말았다. 묵묵히 움직이던 준성이 돌연 멈춰 서더니 중얼거렸다.
“불청객인가.”
“좋지 않은 의도가 느껴져요. 뭔가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요.”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준성.”
“그래야지.”
보이지 않는 음습한 기류가 점점 강해졌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기세였지만 준성의 감각에는 세세한 모든 것이 걸려들었다.
파지직!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던 그가 별안간 손을 휘두르자, 강렬한 뇌전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단숨에 쇄도해 들어갔다. 그것은 정확히 다가오는 인영을 향해 날아들었고, 거의 동시에 사라지면서 준성의 앞에 도달했다.
쾅!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인영이 뒤로 밀려났다.
“누구지?”
머릿속으로 김기정이 했던 경고가 떠올랐지만, 예의상 정체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검은 인영에게서는 어떠한 기척도 감지되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던 준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입을 열지 않으면 열도록 해줘야겠지.”
일본 A.O. 본부의 능력자, 마츠모토 타다요시를 향해 준성이 손을 쓰기 시작했다.
☆ ☆ ☆
“이곳에 숨어들 줄은.”
직접 인원을 이끌고 관리자의 인가 인근에 도착한 더글라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뉴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숨어든 것으로 파악된 관리자의 은신처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평범한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드문드문 존재하는 집과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 문명의 혜택을 온전히 보기 힘들어 보이는 것처럼 오래된 세월의 흔적은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랜 추적 끝에 발견한 이상 반드시 섬멸할 대상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 더글라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포위망을 구성하십시오. 내가 직접 지휘를 하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대기조가 주변에 포진하고, 앞장선 더글라스가 이동을 시작했다.
오늘 섬멸전을 위해 동원된 능력자의 숫자는 무려 백여 명이다.
뉴욕에 머무는 능력자 절반을 이번 섬멸 작전에 동원한 것이다.
거침없이 움직인 그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다가 바닥을 향해 손을 뻗자, 바닥이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면서 빈 공간을 드러냈다.
지하로 향하는 길을 향해 움직이자, 능력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 크지 않은 집과 달리 지하 공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약 십 미터 정도 아래로 내려가서 도착한 곳은 운동장만 한 크기의 공동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운 기구를 본 더글라스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이건…….”
공동 벽에는 이 미터 정도 크기의 거대한 유리관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 안은 젤리 같은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려 보는 사람의 속을 매스껍게 만들었다.
하지만 저 물건이 무엇인지 밝혀낸다면 능력자를 습격하는 관리자와 침략자를 상대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질 터였다.
“조사를 시작하…… 아니, 멈추십시오. 아무래도 주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막 조사 명령을 내리려던 더글라스가 돌연 취소했다. 그리고 손짓으로 경계 태세를 취하게 했다. 그의 뒤를 따라온 열 명의 능력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저벅.
나직하지만 또렷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더글라스가 서 있는 반대편에서 한 인영이 걸음을 옮기며 조금씩 다가왔다. 그리고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더글라스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이곳을 찾아올 줄 몰랐군.”
“……하미레스.”
온전히 이지를 회복한 그를 보며 더글라스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갔다.
☆ ☆ ☆
‘제기랄!’
마츠모토 타다요시는 연신 엄습하는 강렬한 공격에 몸을 제대고 가누지 못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귀신같이 자신의 은신을 파악하고 강력한 뇌전을 발산하는 준성은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웠다.
처음 계획은 압도적인 힘으로 그를 꺾은 뒤, 세상을 향해 자신의 힘을 널리 알릴 생각이었다. 그 후 김기정까지 꺾어 세계 10강의 자격이 온전히 자신에게 있음을 알린다면 미국 A.O. 본부도 더 이상 수작을 부리지 못하고 자신을 인정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기습 공격이 무산되고, 반격을 당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지금, 마츠모토 타다요시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란 걸 깨달았다.
눈앞의 녀석은 아직 십대 소년에 불과한 애송이였지만 그 무위는 진짜였다.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의 맥을 끊고 주도권을 쥐는 것은 수십 년 동안 전투 경험을 축적한 능력자 그 자체였다.
김기정을 상대할 때까지 최대한 자신의 전력을 숨기고 싶었던 그였으나, 눈앞의 소년은 여력을 아낄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결심을 굳히고 막 다른 능력을 펼치려고 할 무렵, 거세게 몰아붙이던 준성의 공세가 귀신같이 멎었다.
“더 이럴 필요가 없나.”
“……무슨 의도냐?”
“숨어 있으려면 좀 더 은밀하게 숨는 걸 추천하고 싶습니다만.”
그때까지 마츠모토 타다요시는 준성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헛소리로 치부하고 공격을 하려던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생김새와 옷차림이 어디선가 봤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
모습을 드러낸 중년인은 밤중임에도 형형한 눈으로 준성을 바라보았다. 속내를 꿰뚫어볼 듯 예리한 눈빛이었지만 그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오늘 날 찾는 손님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넌 누구지?”
“내 이름을 알기 전에 자기소개부터 먼저 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난 존 레너다.”
“흠, 그것뿐입니까?”
“질문은 내가 한다. 넌, 누구냐?”
존 레너라 밝힌 중년인의 음성은 낮고 묵직했다. 가슴 깊숙한 곳에 돌덩이를 내려놓는 것 같았지만 준성의 얼굴에 걸린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에 대해 알고 싶습니까?”
“말장난에 놀아줄 생각은 없다. 알려주지 않는다면 강제로 말하게 해주지.”
“대화를 나누기에는 구성원이 적합하지 않은 것 같군요. 일단 이 자리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을 치우고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동의한다.”
준성의 시선은 마츠모토 타다요시에게 향해 있었고, 존 레너도 그 부분에 동의를 표했다.
졸지에 불청객으로 전락한 그는 불쾌감으로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그리고 들끓는 분노를 참아내지 못한 채 버럭 소리쳤다.
“지금 날 뭐로 보고……!”
그의 외침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존 레너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마츠모토 타다요시의 앞에 도달한 것이다.
“헉!”
“대화에 방해된다.”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그의 머리를 움켜쥔 존 레너가 손을 휘두르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몸이 지면에 처박혔다. 잠시 몸을 떨던 마츠모토 타다요시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제 불청객은 치웠군. 일행도 불청객이 아닌가?”
“충분히 들을 자격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손속에 자비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많은 사람이 아는 걸 원치 않을 뿐이다.”
무뚝뚝한 그의 목소리에 준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눈앞의 중년인은 지닌 심상치 않은 기세는 둘째 치고 힘의 발현 방식부터 눈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른 능력자들과 달리…… 마나를 활용하는 자였다.
대체 어떻게 마나를 지니고, 활용할 수 있을까.
마법사의 왕성한 호기심이 그를 미치게 해버릴 만큼 강하게 자극했다.
당장 알아내라고, 입을 열지 않으면 정신을 헤집어서라도 모든 것을 끄집어내라고.
거세지는 심장 박동, 입가에 그려지는 미소. 좀 더 이 세계가 지닌 비밀에 다가갈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쾌감이 준성에게 전해졌다.
“좋습니다. 그럼 대화를 한번 나눠보지요.”
그들이 자리를 옮긴 곳은 인적이 드문 공터였다. 주변을 둘러본 준성이 허공에 선을 그리자, 주변 공간을 뒤덮는 결계가 형성되었다.
그것을 본 중년인의 눈이 빛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제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지요.”
“……확실히, 다른 능력자들과는 다르군. 아니, 나랑 비슷해.”
“저도 당신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처럼 당신도 제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먼 길을 찾아온 듯하니 먼저 질문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렇듯 준성이 호의를 먼저 베푸는 까닭은 의외로 간단했다.
중년인은 이 세계에서 처음 본 마나 운용자였고, 그 형식은 마법과 비슷하면서도 궤를 달리했다.
이 세계에 대한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중년인을 만난 상황에서 작은 호의를 베푸는 것은 길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의 호의를 느낀 중년인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나쁘지 않군. 사양하지 않고 먼저 질문을 하도록 하지. 몸속에 지닌 그 힘, 어떻게 얻었는지 알 수 있나?”
“수련을 해서 얻었습니다. 이번엔 제 차례군요. 저도 가볍게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당신의 그 힘, 이곳 ‘세계’에서 얻은 것이 맞습니까?”
“……!”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던 중년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이전과 다르게 날카로운 눈으로 준성을 찬찬히 훑기 시작했다.
그 침묵은 한참 동안 이어졌고, 준성과 중년인 사이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건 질문이 아니라 확인 과정이라고 하지. 날 추적하려고 왔나?”
“전 오늘 당신을 처음 봅니다. 당신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지요.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습니까? 이제 당신이 제 질문에 대답해 줄 차례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렇다면 말해주지. 자네의 말대로 내 힘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었지. 아니, 좀 더 깊게 말하자면 이 세계의 힘이었던 것이지. 지금은 다른 차원에 대부분 집중이 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모르는 사실을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본래 세계는 하나였고, 지금은 두 곳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몬스터가 나타나는 것은 갈라졌던 세계로부터다.
“답변 감사합니다. 질문하시지요.”
“구사하는 힘의 종류가 다르더군. 내가 생각하는 저 세계의 것과 같은가?”
“우선 저는 저 세계의 일원이 아니란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힘의 운용은 이 세계의 능력자들과 저 세계의 것과도 다릅니다.”
중년인을 보면 마나를 바탕으로 한 힘의 운용이 이곳 능력자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마법의 ‘언령’과 비슷하지만, 그 원리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다르다…… 라, 자네는 이 세계의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으음.”
거침없이 대답하는 준성이었지만 그럴수록 중년인의 머릿속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포스’를 운용한다기에 자신을 추살하려고 온 관리자보다 한 단계 높은 자인 줄은 알았지만, 준성은 그 정도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마나를 운용하기까지 하니…….
‘누구인지 알 수 없군. 더글라스가 말하는 것과 동일하나, 비밀이 더 많군.’
“제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당신이 힘을 운용하는 방식과 이 세계 능력자들의 힘의 운용이 비슷합니다. 당신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까?”
“……있다. 이 세계의 능력자들은 내가 전수한 힘의 운용으로 탄생한 자들이니까.”
“호오!”
이거였다.
원하던 정보를 얻어낸 준성의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처음부터 능력자가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개입’에 의해 능력자가 탄생했고, 그 원인이 바로 눈앞의 중년인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희와 이나도 눈을 빛내며 집중했다.
“내 차례로군. 내 힘과 자네의 힘은 어떤 방식의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나?”
그의 존재로 알 수 있는 것이 없으니 힘의 기원으로 알아내려는 생각이었다. 그 의도를 읽은 준성은 잠시 망설였으나, 서로 대답을 망설이지 않고 해줬다는 점을 상기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간단합니다. 당신의 힘은 의지를 바탕으로 구현을 해내지만 제 힘은 세상에 얽힌 원리를 수식으로 풀어내어 발현합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한마디로 당신은 의지력으로 자연의 섭리를 어그러뜨린다면 우리는 최대한 반발력을 제거하고 순리를 찾아 어그러뜨린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군. 그런 방법이 존재할 줄은.”
마법에 대한 원리를 알지 못하는 중년인의 입장에서는 준성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도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준성 등이 전혀 다른 형태로 힘을 운용하며, 그것이 아직 자신의 세계나 이 세계에 보편적으로 보급된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 차례입니다. 이 세계에 능력자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만드는 것은 혼자로는 무리였을 터, 당신의 능력자들은 얼마나 있습니까?”
“…….”
준성의 질문이 나오기 무섭게 중년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동시에 사나운 기세가 발산되자, 이나가 검을 쥐며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듯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준성이 손을 뻗어 그녀를 제지한 뒤 조용히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그 질문은 대답할 수 없군.”
“좋습니다. 그럼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적입니까, 아군입니까?”
의외의 질문에 중년인이 멈칫했다. 그러다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적어도 적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군. 그런 의미에서 내 이름 정도는 소개를 해야겠지. 내 이름은 아리스턴이다.”
“조금 전과 다릅니다만?”
처음 만날 당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존 레너라고 소개했다. 그 이름의 진위 여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자랑스럽게 밝히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의미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 내 본래 이름을 밝힐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넌 다를 것 같군.”
“기분이 나쁘지 않군요.”
서로를 마주 본 둘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순간 그들이 멈칫하더니 웃음을 지우고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난 것이다.
검을 들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선 이나가 날카로운 눈으로 아리스턴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 함정 아닌가요?”
“아니, 그건 아니야.”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 돼요!”
“난 사람을 무작정 믿지도, 불신하지도 않아. 무엇보다 우리를 잡으려고 들었으면 이 정도 숫자만 동원할 리 없잖아?”
“하긴, 틀린 말은 아니네요. 턱도 없이 부족한 숫자로 뭘 어떻게 해보려고 했다면 저 녀석들이 얼마나 불쌍하겠어요.”
입꼬리를 말아 올린 이나의 전신에서 싸늘한 기세가 피어났다.
그사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침략자는 널찍하게 포위망을 구축했다.
숫자는 무려 오십.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관리자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을 바라보는 아리스턴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쉽지 않겠군.”
“그 정도입니까?”
“저 녀석들은 상대하는 방법이 있어도 관리자 녀석들은 상대하기 어려우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아리스턴의 표정은 마냥 어둡지만은 않았다.
비장의 한 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들이 벗어나면 그도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오늘 자신의 의문을 풀어준 그를 위해 준성은 스크롤 하나를 던졌다.
“이게 뭔가?”
“위급한 순간에 찢어버리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도망갈 예정이라서.”
“도망을 가? 공간 이동 능력이 있다고 해도 저 녀석들은…….”
그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준성 일행 주변으로 새하얀 빛이 뒤덮기 시작했다. 상대가 공격하기 전에 공간 이동으로 몸을 피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뒤로 물러나 있던 관리자 둘이 앞으로 나서면서 손을 뻗었다. 동시에 푸른 기류가 휘몰아치면서 매스 텔레포트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강렬한 스파크가 주변에 튀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아리스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상대 힘의 운용에 간섭하게 되면 능력이 무효화되면서 심각한 내상을 입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저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 돌아가기 힘들게 되리라.
‘한 줄기 돌파구가 될 수 있었는데…….’
그의 참담한 기분과 달리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관리자들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흰색 기류는 여전히 건재했으며, 빛에 휩싸인 준성 등의 몸이 그대로 빛의 폭사와 함께 자취를 감춘 것이다.
스파앗!
“……!”
간섭을 이겨내고 사라진 그들을 보며 아리스턴은 물론 관리자들도 동요하는 기색을 보였다.
설마하니 자신들의 간섭을 이겨내고 공간 이동을 강행할 줄이야.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들은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못했다.
특히 아리스턴이 느끼는 감정은 더욱 그러했다.
여차하면 함께 싸울 마음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졸지에 모든 적을 자신 혼자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될 줄은.”
쓴웃음을 지은 그는 자신을 향해 형형한 눈빛을 뿌리는 관리자들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세계의 무수히 많은 능력자들에게 공포로 군림하는 그들도 저 세계 존재들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선물을 받았으니 뭐라고 하기도 그렇군.”
자신의 손에 들린 스크롤을 바라본 그는 곧장 그것을 찢었다.
동시에 새하얀 빛이 그를 휘감기 시작했고, 조금 전처럼 관리자들이 손을 뻗어 공간 이동을 방해하려 들었다.
파직! 파지직!
하지만 텔레포트 마법이 새겨진 스크롤은 그들의 간섭에 말려들지 않았다. 순차적으로 진행된 마법은 이내 빛의 폭사와 함께 아리스턴의 몸을 휘감았다.
스파앗!
“…….”
졸지에 닭 쫓던 개가 되어버린 관리자들과 침략자들은 입가를 씰룩이며 멍하니 쫓던 이들이 사라진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더글라스와 하미레스의 대결은 싱겁게 끝을 내렸다.
세계 최강의 능력자로 평가받는 더글라스의 능력은 압도적인 ‘강함’을 위해 완벽한 밸런스를 갖추고 있었고, 이는 세계 10강 중에서도 말석이자 만들어진 자였던 하미레스가 견뎌낼 수준은 아니었다.
관리자들의 특별한 처리로 불사에 가까운 능력을 지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크흐! 역시 최강이라는 이름답군.”
“강해졌다고 해도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까?”
“가능할 줄 알았지. 그 빌어먹을 관리자 녀석들만 아니었으면…….”
대답을 하는 하미레스의 음성에는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더글라스의 눈은 차갑기만 했다. 관리자의 손에 넘어가고, 그들의 장단에 맞춰 움직인 순간, 그는 더 이상 자신들의 동료가 아니었다.
“질문에 대답해 주십시오.”
“아아, 그러지.”
“…….”
“왜? 내가 순순히 대답하니 이상한가?”
비웃음 섞인 어조였지만 더글라스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행실을 보면 그렇다는 게 느껴지는군요.”
“크흐흐, 그럴 테지.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엿이나 먹으라며 욕이나 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되니 모든 게 이해가 되는군. 아마 그 녀석들도 이것을 의도했을 거야. 내가 모든 것을 털어놓길. 제기랄! 이 하미레스가 고작 하수인 녀석들이 움직이는 체스 말이 되어버리다니!”
분통을 터뜨리는 그를 더글라스는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언의 종용에 표정을 일그러뜨린 하미레스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내가 들은 정보는 간단하다. 이제부터 녀석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며, 세계는 대격변을 일으킬 것이다. 아마 너희들은 그 변화를 막아서는 것만으로도 역량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겠지.”
“대격변은 무엇입니까?”
“나는 모른다! 단지 녀석들이 주입한 정보만을 말할 뿐.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고, 더 강한 녀석들이 나타나겠지. 너희들은 알고 있나? 관리자라 불리는 녀석들은 사실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보다 더 상위의, 더 강한 녀석들이 나타날 것이다. 과연 너희들이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기대되는군, 기대돼. 날 엿 먹인 너희들이 고생할 모습이. 크흐흐! 절망하고, 절규해라! 난 저승에서 지켜보도록 하마. 크하하하!”
“…….”
미친 것처럼 광소를 터뜨리는 하미레스의 몸은 조금씩 녹아내리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끝까지 웃음을 짓던 그의 모습을 보며 더글라스를 비롯한 다른 능력자들은 표정을 굳혔다.
☆ ☆ ☆
졸지에 주의 대상인 ‘김준성’과 아리스턴을 놓친 두 관리자의 주변 공기가 사납게 일렁였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군.”
“도망자를 놓친 것은 명백한 실수다. 12호.”
“별수 없잖나. 이건 우리의 역량을 넘어선 일이다. 너무 날 세울 필요가 없을 텐데.”
“변수가 작용해도 실패의 책임은 온전히 우리에게 있다.”
“너무 팍팍하군, 그러니 별것도 없는 이곳에서 머물고 있는 것 아닌가, 5호?”
“…….”
비웃음 섞인 12호의 말에 5호라 불린 관리자는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군. 도망자 녀석들이 너무 분탕질을 쳐놔서 충격 요법이 필요할 테니.”
“네 권한인가?”
“상부에 떨어진 결정인데 모르고 있었나?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을 명령받았다.”
“그랬군.”
“모르고 있었나 보군. 앞으로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 거다. 아주 재미있는 일들이.”
담담한 5호와 달리 12호의 입가에 음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세계에 거대한 충격을 줄 전초전이었다.
☆ ☆ ☆
쾅! 콰지직!
“지금 뭐라고 했지?”
대한민국에서 전해온 급보를 받은 하나다 유지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탁자를 내려쳤다.
그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탁자는 반으로 부서졌고, 그의 앞에 선 정보원은 압도적인 완력에 가늘게 몸을 떨며 대답했다.
“그, 그러니까 마츠모토 님이 대한민국 A.O. 본부에서 요양을 하고 계시다고…….”
“내 말은 왜 마츠모토가 그곳에 있냐는 것이다!”
밀명을 받고 대한민국으로 잠입한 마츠모토 타다요시는 세계 10강을 꺾었다고 알려진 김준성을 상대하고 있어야 했다. 지금쯤 조우를 하고, 격전이 벌어졌어야 하는데 대한민국 A.O. 본부에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츠모토 님이 김준성과 조우하는 데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그가 나타났습니다.”
“그?”
“바로 시크릿 코드입니다.”
“시크릿 코드? 미국에 있어야 할 그가 왜 그곳에 있단 말이냐!”
지금 이 자리에서 들어서는 안 될 이름이 언급되자, 하나다 유지로는 다시 한 번 분노를 터뜨렸다.
하지만 정보를 가지고 온 그도 그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지금 보고하는 내용 또한 대한민국 A.O. 본부에서 전달한 것을 그대로 옮겨 말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김준성과 시크릿 코드 간에는 친분이 있는 듯합니다. 마츠모토 님은…… 김준성과 격전 도중 시크릿 코드의 개입에 의해 제압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신병을 대한민국 A.O. 본부에서 수습했습니다.”
“끄응, 하필이면.”
앓는 소리를 낸 하나다 유지로는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기는커녕 최악으로 흘러간 것을 자각한 것이다.
마츠모토의 신병을 수습한 대한민국 A.O. 본부에서 순순히 양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내줘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것은 김기정을 세계 10강으로 인정하고 그만한 예우를 해주는 것이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제기랄.”
이도 저도 못 하게 된 하나다 유지로는 나직이 욕설을 터뜨렸다.
상황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것과 같았다.
일본의 미래이자 추후 세계 10강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마츠모토는 버릴 수 없는 패였다.
“대한민국 A.O. 본부와 협상을 한다. 그리고…… 김준성과 시크릿 코드가 무슨 사이인지 총력으로 알아내도록.”
“옛!”
힘차게 대답한 정보원이 고개를 숙이며 그대로 자취를 감추었다.
☆ ☆ ☆
아리스턴을 두고 무사히 집으로 귀환한 준성은 곧장 엘리엔을 불렀다. 그와의 일문일답은 그동안 애매모호하던 많은 것을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여태까지 알아낸 걸 토대로 설명하도록 할게. 중간에 다른 걸 알고 있으면 말을 해줘.”
“네!”
엘리엔은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었으나, 방금 전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는 이나의 설명에 이내 집중했다.
“우선 이곳 지구는 두 개의 차원으로 나뉘어 있어.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난 적 있던 관리자, 침략자로 불리는 이들이 살고 있는 차원이야. 그곳에는 마나가 풍부하고, 몬스터의 힘도 상당하지. 아마 마나 과잉 현상으로 인해 호흡하는 것 자체만으로 그 정도 힘을 보유하게 된 것 같아.”
“오늘 만난 남자는 어떤 사람이죠?”
애매모호했던 아리스턴과의 만남에서 어떠한 것도 감지하지 못한 이나였기에 의아함이 깃든 음성으로 물었지만 준성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들이 타 차원의 존재들과 적대를 하고 있다는 점이야. 이 부분을 우리는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마 그들을 다루는 상위 존재가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불쑥 끼어든 엘리엔의 말에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희와 이나가 무슨 말이냐는 듯 의아함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이던 준성은 엘리엔에게 확인하듯 질문을 던졌다.
“리엔은 침략자라 불리는 언데드를 보고 예상한 겁니까?”
“맞다.”
“내가 그런 예상을 한 것은 아카식 레코드를 접속해서 다른 차원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을 때였어. 하지만 정보 제공 자체를 거부당했지.”
“왜요?”
“나에 준하는 혹은 나와 동급, 그보다 더 뛰어난 존재가 정보 접촉 자체를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준성의 말에 모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0클래스의 경지에 올라서면서 반신의 경지에 도달한 그는 드래곤조차 상대할 수 없는 최강의 마법사였다.
비록 마나가 풍부하지 않아 온전히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하나 반신에 준하는 그와 대등한 존재가 있다니.
이나가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런! 그럼 준보다 더 강한 존재가 또 다른 차원에 있을 수 있다는 건가요?”
“아마 그럴 테지.”
“맙소사.”
“걱정할 건 없어. 아직 적으로 판명된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마나가 풍부한 그 세계와 접촉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그래도요. 간신히 찾아온 평화고 그것을 누리려고 했는데…… 준성이 다시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아요.”
염려 섞인 세희의 중얼거림에 준성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 세계의 평화는 어디까지나 이곳 사람들에 의해 유지가 되어야 해. 본의 아니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렇다고 평화에 이바지할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본의 아니게 세상이 멸망으로 향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져. 그때는 더 이상 내 의지가 중요하지 않으니까.”
“……어렵네요. 이곳에 와서 오순도순 행복했으면 좋았을 텐데.”
눈에 띄게 어두워지는 세희를 보며 준성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지금도 좋잖아. 아직 닥치지 않은 현실을 너무 불안하게 여길 필요는 없어.”
“네, 그럴게요.”
“하지만 방심할 이유는 없겠지. 우리의 생활을 즐기되, 언제나 만전의 상태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준! 우리는 지금 관심을 받고 있고, 만만치 않다는 인상은 대비할 시간을 벌어줄 거예요. 그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요.”
“이나의 말이 옳아.”
“편견 때문에 그렇지, 제가 준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밤에도 낮에도 열심히 고민만 하고 있어요.”
“하하! 잘 알지. 앞으로 이나의 힘이 많이 필요할 거야. 많이 도와줘.”
“물론이죠!”
이나 덕분에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고, 준성의 입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처럼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만 하면 돼.”
오랜 세월 쌓인 서로에 대한 믿음은 굳건했다. 믿음이 실린 그의 말에 세 여인은 미소를 지었다.
☆ ☆ ☆
“신세를 지게 되었군.”
일본에서 날아온 소식을 들은 김기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츠모토 타다요시의 신변을 확보한 대한민국 A.O. 본부는 일본에게 사실을 알리는 한편, 무언의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래의 세계 10강을 기대하는 뛰어난 능력자인 만큼 일본 A.O. 본부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카드였다.
반대로 대한민국 A.O. 본부에서도 마츠모토 타다요시를 구속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지만 그가 지닌 능력이 대단한 만큼 일본 A.O. 본부로서는 어떤 요구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라 예상했다.
“어차피 신경도 안 쓸걸요? 생각해 보면 김준성 씨가 아니라 시크릿 코드와 관련된 일이잖아요?”
“그렇게 여길 수도 있을 테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 그나저나 시크릿 코드와 무슨 이유로 접촉했는지 알고 싶은데.”
“물어보면 알려주지 않을까요?”
한소영은 낙관적으로 대답했지만 김기정은 고개를 저었다.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말해주지 않을 것 같군. 또 지긋지긋한 협상 자리로 끌려 나가는 것도 내키지 않고. 뭘 내어주어야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복잡하니.”
“하긴, 그렇긴 하죠. 그래도 고마움을 표하면 되겠죠.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을 거예요.”
“음!”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김기정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하미레스의 말을 듣고, 다각도로 조사를 한 미국 A.O. 본부는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곧 대격변이 시작되겠군요.”
“각국에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정보부 톰슨은 더글라스에 이어 가장 먼저 변화를 감지했다. 염려 섞인 표정으로 물었지만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한들 우리의 지위를 시험당할 뿐입니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우리는 타도할 대상이지, 선도하는 대상은 아닙니다.”
“…….”
톰슨도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제 능력자 연맹이 설립되고, 미국의 주도하에 운영되면서 각국의 능력자 본부는 미국을 질시하고, 세력 확장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마 자신들이 얻은 정보를 공유한다고 해도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다.
“한 번의 충격은 필요합니다. 그럼 세상은 변하겠지요. 그때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명령입니다, 톰슨 정보부장.”
“명을 받들겠습니다.”
단호한 더글라스를 보며 고개 숙이는 톰슨이었다.
☆ ☆ ☆
세계는 조금씩 빠른 속도로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동안 암암리에 몬스터가 출몰하던 것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일반 사람들에게도 목격될 만큼 빈도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보도 자체가 되지 않았다.
이미 각국의 A.O. 본부는 권력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기에, 주류 언론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점점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목격했다는 진술이 늘어났다.
이 사실을 접한 비주류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몬스터의 존재가 대중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괴생물 발견? NSA, 사실 판명 중에 있어…….] [우크라이나에서 나타난 거대 생명체! 그 크기는 10미터가 넘는다!] [이번에는 그리스! 지중해에서 발견된 수중 생명체!] [총알도 통하지 않는 괴생명체,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능력자!] [21세기에 등장한 초능력자? 그들은 누구인가?] [세상은 알고 싶어 한다! 초능력자의 존재를!] [밝혀지기 시작하는 초능력자!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권력자들!]하루가 다르게 뉴스가 세상에 퍼져 나갔다.
대중은 21세기에 존재하는 초능력자를 신기하게 여기며 열광했고, 두려워했다.
그리고 사실 여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면서 실체에 접근해 나가자, 사람들은 인류의 운명을 위협하는 몬스터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몬스터는 존재하는가? 아닌가?
초능력자의 유무만큼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그와 동시에 몬스터를 목격했다는 게시글이 범람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괴생명체의 존재는 허상이 아닌 사실로 드러났다.
본격적으로 몬스터가 등장하고 세계가 몸살을 앓기 시작한 지 정확히 보름이 되는 날.
대격변이 일어났다.
[6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