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184)
제64장 울타리 만들기
언론을 이용한 이미지 흠집 내기는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다.
제주도 몬스터 웨이브의 영웅이자, 최고의 연예인인 강이나가 적극적으로 광고하고 있는 찻집 엘리미스는 이미 하나의 브랜드로 굳어져 있었다.
포스를 마셔 볼 수 있다는 점과 건강에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은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일제히 엘리미스를 성토하기 시작하니 대중들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정말 문제가 있는 거 아냐?”
“나도 차 마시고 속이 안 좋았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언론이 그렇다고 하니 마치 자신도 겪어 본 것 같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지만 받아들이는 상황에서는 달랐다.
이러한 생각은 연일 이어지는 자극적인 보도에 사실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지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에요?”
사실을 접한 이나는 스케줄이고 뭐고 다 뒤로 미뤄 두고 집으로 돌아와 난리를 쳤다. 분기탱천한 그녀와 비슷하게 세희도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이건 음모가 분명해요.”
자신들이 파는 차는 가공된 ‘포스’가 아닌 순수하기 그지없는 ‘마나’였다. 이것이 체내에 잘 스며들게 조치를 취하면 건강이 좋아지고, 사람의 기질이 온화하게 바뀌는 효능을 지닌다.
그에 비하면 지금 받는 값은 헐값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N그룹이겠죠?”
“아마 그렇겠지. 적대적인 인수를 하려고 해도 자금이 만만치 않게 들 것 같으니 흠집부터 내고 깎으려는 게 분명하니까.”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뭘 어떻게 해요? 그냥 찾아가서 다 쓸어버려야죠! 이런 지저분한 녀석들을 용서하라고요?”
“이나야, 좀 진정해. 화를 낸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
“왜 없어요? 힘은 뒀다가 국 끓여 먹는 건 줄 알아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 N그룹이라는 녀석들을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에요.”
“…….”
격앙된 이나의 목소리에 세희도 침묵했다. 대한민국에 정착한 지 삼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들이 더 많은 세월을 보낸 곳은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였다. 가끔은 법보다 주먹으로 나설 때가 더 원활하게 해결될 때가 있었다.
“이나야.”
“네, 준!”
“정말 그들을 용서할 수 없어?”
“제 생각은 동일해요. 엘리미스는 준의 예전 이름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예전을 추억할 수 있는 하나의 소재이기도 해요. 저는 그것을 더럽히려고 한 녀석들을 용서할 수 없어요.”
“그럼 그렇게 하자.”
“네?”
“이나 네가 내키는 대로 행동해 봐. 나머지는 모두 내가 감당하도록 할 테니까.”
“……정말요?”
설마하니 정말로 허락할 줄 몰랐기에 이나의 얼굴에 얼떨떨함이 묻어 나왔다.
그녀의 기색을 본 준성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이나의 말이 틀린 게 없거든. 저들이 금력이란 힘을 쥐었지만 우리에게는 직접적인 무력이 있지. 서로 자신하는 힘으로 대결을 벌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어? 그것을 가장 멋있게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은 이나라고 생각해.”
“물론이죠. 제가 따끔한 맛을 보여 줄게요.”
“그래도 처음이니까 너무 과격하게 대하지 말아 줬으면 해. 적당히, 저들이 경각심을 가질 정도면 괜찮으니까 처음은 그렇게 해줘.”
“그럴게요.”
마지막 말에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의 의견을 받아 주는 것만으로도 이나는 고마움이 들었다.
“조만간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지고 올게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준성의 눈빛도 강렬한 빛을 띠고 있었다.
“미치겠군.”
몬스터 대책본부 차장 이현수는 방을 나서면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회의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자 노력을 해봤지만 상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뭘 받아 처먹은 게 분명한데, 이걸 찾아서 조질 수도 없고.”
기분이 뒤틀린 그의 입에서 곱지 않은 말이 흘러나왔다.
방금 전 열린 회의에서 이현수는 ‘엘리미스’에 이루어지고 있는 N그룹의 공작에 적극적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본부장은 일언지하에 그 의견을 무시하며 이 기회에 그들을 확실하게 길들인 뒤 대책본부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현수는 자신의 상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부패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을 길들여? 이런 희대의 개소리를 들었으면 중국과 일본은 거품을 물겠군.”
김준성, 그 능력자의 존재감 하나만으로 중국과 일본 A.O. 본부는 대한민국에 세력을 뻗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A.O. 본부조차 그에게 도움을 구하고, 저자세로 나오는 상황에서 윗대가리라는 사람들이 헛된 꿈만 꾸고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현수는 N그룹의 편도, 김준성의 편도 아니었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게 알았다.
이대로 두면 N그룹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국내 경제가 그 여파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된다.
이 부분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할 기업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그들과의 충돌로 인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염증을 느낄 김준성 등이었다.
그의 존재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과 같은 강대국들이 마수를 뻗지 못하게 만드는 완충 역할을 하는 걸 알고 있는 시점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그걸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군.”
몬스터 대책본부 차장이라는 그럴 듯한 직위를 가졌지만 권한은 크지 않다.
권한은 상사들이 모조리 쥐고 있었으며, 그나마 자신이 가져온 성과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토를 달면서 은근슬쩍 같이 이름을 편승한다.
지긋지긋한 지금 상황에 염증을 느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처음 일을 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현수는 이를 꽉 물었다.
본격적으로 공세에 들어간 지금,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준성에게 허락을 얻은 이나는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엘리미스’를 향한 비난은 그녀에게도 옮겨 가고 있었기에 기획사에 요청하여 당분간 스케줄을 모두 비워 두었다. 연예인은 어디까지나 부업일 뿐, 그녀에게 있어 준성과 자신의 일상이 최우선이었다.
N그룹 회장 이만정의 저택은 용산구 이태원의 부유층이 사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상당수 재벌 회장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구축한 경비망은 일면식 없는 인간이 드나들 수 없을 만큼 철통 보안을 자랑했다.
“흥, 이런 인간들이 돈은 벌어도 정작 변화는 받아들이지 못하지. 그럼 그렇지.”
하지만 그들의 경계 시스템을 본 이나는 코웃음을 쳤다. 조금 전 언급된 철통 보안은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범주에서 그러했다. 자신에게 있어 이 경계망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는 조금 높은 벽에 지나지 않았다.
타닥!
표홀한 몸놀림으로 저택 벽을 박차고 올라선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계를 서고 있는 경호원과 경호견, 그리고 첨단 장비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그녀가 발각되지 않는 것은 기척을 지우고, 감각마저 속이는 아티팩트를 전신에 두르고 있어서였다.
투명화(Invisibility)까지 시전한 이나의 모습은 첨단 장비로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단숨에 저택 안으로 진입한 그녀는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은 채 당당하게 마당을 가로질렀다. 그럼에도 누구도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택 건물 안으로 잠입한 이나는 널찍한 안의 풍경을 보고 멈춰 섰다. 수십 개로 추측되는 방에서 언제 이만정 회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 순간, 그녀의 감각이 확장되면서 저택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그랜드 마스터의 기세는 일순간 모든 적들을 무력화시키는 것도 가능하지만 감각 안의 모든 존재를 파악할 수도 있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척이 하나둘씩 그녀의 머릿속으로 정리되었다. 그럼에도 이만정 회장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기질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추려 내자 단숨에 파악할 수 있었다.
“……빙고.”
나직하게 웃음을 지은 이나의 몸이 움직였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알고 있는 건지 저택의 경비는 촘촘했지만 그때마다 기척을 죽이고 이동했기에 이만정 회장의 방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곤히 잠들어 있는 이만정 회장의 모습 어디에서도 ‘엘리미스’를 악독하게 몰아붙이는 악덕 기업가의 기질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탐욕이라는 괴물이 언제 어느 순간 활동할지 몰랐다. 그것을 뒤집어쓴 기업가나 상인은 돈에 자식마저 팔아먹는 냉혈한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팔다리를 잘라 버리고 싶지만…….”
준성은 이나에게 ‘경고’에 그치길 원했다.
그것은 이만정 회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나를 위한 의도였다.
이제 대한민국에 살아갈 그녀는 좋으나 싫으나 이곳의 규칙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다. 힘이 있다고 모든 것을 무시하고 그 위에 군림할 생각은 그녀나 준성이나 품고 있지 않았다. 그걸 위한 ‘경고’였지, 이만정 회장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었다.
“뭐, 어떻게 경고할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잠든 이만정 회장을 바라보는 이나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으음.”
손이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자 이만정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준비했던 모든 일이 수월하게 돌아가면서 거칠 것이 없었지만 꿈자리가 뒤숭숭했는지 몸이 좋지 않았다.
특히 오른손 새끼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느낌은 점점 에는 통증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꿈의 경계에 머물러 있던 이만정 회장은 이내 눈을 뜨고 익숙한 침실의 풍경이 들어오자 한결 마음을 놓다가 다시 번져 가는 통증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자신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는 경악을 느껴야만 했다.
“이, 이게 무슨…….”
당장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그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일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처럼 거대한 압박감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검이었다.
누워 있는 그대로 팔다리에 각각 한 자루, 그리고 사타구니 바로 아래에 검 한 자루가 침대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작은 단도 두 자루가 새끼손가락 사이에 박혀 있었다.
검과 손가락이 닿지 않았지만 검에서 발산되는 서늘한 예기는 조금씩 그의 새끼손가락을 잘라 내고 있었다.
“어, 어서 들어와! 들어오라고!”
자신의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광경을 보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이만정 회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외침만 공허하게 방 안을 울리고 있었다.
“안 돼! 누구 없냐! 들어와! 들어오라고!”
마치 저택에 혼자 있는 것처럼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도에서 발산되는 서늘한 예기는 조금씩 새끼손가락을 파고들더니, 이내 자욱한 피 분수를 뿜어내며 잘려 나가고 말았다.
“이, 이이!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기 무섭게 짓눌렸던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회장님!”
마치 기다린 것처럼 경호원이 방 안으로 들어왔고, 안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거대한 충격을 느낀 이만정 회장은 눈을 까뒤집은 채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잊지 마, 이건 경고니까.]차가운 여인의 목소리가 정신을 잃는 이만정 회장의 뇌리를 울리고 있었다.
☆ ☆ ☆
손가락이 잘린 이만정 회장의 접합 수술은 어렵지 않게 끝이 났다.
하지만 집 안으로 침입자가 들어와서 여기저기 다 헤집어 놓았다는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만정 회장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모두 궁금해하는 기색이었지만 그가 입을 연 것은 사흘이 지난 뒤, 이현종 이사가 병문안을 왔을 때였다.
“그 녀석들이다.”
“예?”
“우리가 집어삼키려고 한 녀석들! 엘리미스 그 녀석들이라고!”
“그게 무슨…….”
괴한이 집에 침입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던 이현종 이사는 이만정 회장의 역정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고, 어째 저들이 잠잠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직접 실력 행사에 들어갔던 것이다.
“내 손가락이 잘리는 감각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녀석들은 처음부터 내게 경고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감히 내게 경고를!”
손가락이 잘린 이만정 회장의 머릿속으로 차가웠던 여인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다시 한 번 실수를 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던 그 말투. 두려움에 사로잡힐 만큼 매서웠지만 그럴수록 이만정 회장의 눈빛은 강렬해졌다.
“이현종 이사.”
“예, 회장님.”
“난 이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예?”
내심 포기한다는 말이 나올 거라 생각하던 이현종 이사가 반문했다.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아직 주류를 이끌어 가는 것은 우리다. 어차피 저들은 무력 말고 내세울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퇴원하는 즉시 공세를 높이도록. 세상이 누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보여 주도록 하겠다.”
순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이현종 이사의 머릿속을 스쳤다. 자신이 엘리미스란 회사에 눈독을 들인 것은 앞으로 돈을 갈퀴로 쓸어 담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지,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불이 붙어 버린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이건 미치지 않고서 할 수 없어요!”
N그룹의 공세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기세를 세워 압박해 오자, 이나는 눈에 불을 켜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한 차례 경고를 했음에도 끝까지 죽자고 달려드는 자들의 행태에 느끼는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개인의 신변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라는 건가.”
대충이나마 저들의 속내를 알게 된 준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택까지 침입이 가능하다는 걸 알려 주면 꼬리를 말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순진한 발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준! 이대로 있으면 안 돼요!”
“찾을 수는 있어?”
“아니요, 머리는 있는 건지 거처를 바꿔 가면서 지낸다는 말을 들었어요.”
분기탱천한 이나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곧장 이만정 회장을 찾아 나섰지만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회사를 얻고 싶다는 건가.”
포스라는 것이 담긴 유일한 차인 만큼 탐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말 그대로 황금을 낳는 거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방법이 필요해요.”
“저들이 죽자 살자 나오는데 우리가 발버둥 칠 필요는 없어. 좀 더 좋은 수단이 있으니 그걸 이용하도록 하자.”
“뭔데요?”
“내게 방법이 있어.”
이만정 회장을 찾지 ‘않은’ 것이지, 찾지 ‘못한’ 것이 아니었기에 준성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열이 받은 이나를 달래 주었다.
“이대로 두고 봐도 되나요? 침묵은 절대 좋은 것 같지 않아요.”
“…….”
한소영의 말을 들은 김기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평소라면 그것이 어떤 생각이 있는 거라 생각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하루가 다르게 언론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낀 그녀는 어떻게든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두고 보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거예요. 개입을 해야 해요.”
“개입이라, 분명 필요하긴 하지.”
“시기가 늦어지면 우리나라에 정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그건 곤란한 일이지.”
얼마 전 몬스터 대책본부에서 들어온 말에 김기정도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이대로 N그룹의 폭거를 무시하게 되면 김준성이 다른 나라로 이주할 수도 있다는 것. 그동안 그의 성향에 대해 면밀히 분석해 온 A.O. 본부였기에 그 부분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여겼다.
“일단 적극적인 개입은 곤란해.”
“왜죠?”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지.”
“네?”
“설마 이대로 당하고 있을 사람이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의 성향상 준비했을 것이고, 우리가 그 판을 그르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겠지. 내가 염려하는 건 그 부분이지.”
“그럼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을 생각인가요?”
“그럴 수는 없겠지. 그러기에는 N그룹이 나서도 너무 나섰으니까. 일단 판을 뒤집을 수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하는 게 좋겠지.”
상황을 조용히 주시하던 김기정도 더 이상 침묵하지 못하고 나설 것을 결심했다.
거처를 옮겨 가며 엘리미스의 능력자들의 이목을 피하던 이만정 회장은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보며 불편한 기색을 지우지 않았다.
사람의 이목을 피해서 움직였지만 정확하게 자신을 찾아낸 눈앞의 인물을 보면 마치 그의 손아귀에서 놀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만하게, 이 회장.”
“정 회장님이 나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만정 회장을 찾은 것은 T그룹의 정기정이었다.
부드럽게 권유를 하고 있지만 그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이만정 회장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대화에 임하고 있었다.
“우리가 엘리미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밀접한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리고 언제부터 T그룹이 요식업 쪽에 신경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날 선 목소리였지만 입가에 미소 짓고 있는 정기정의 얼굴을 보면서 차츰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적으로 규정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는 정기정이란 인물은 절대 쉽게 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돌리지 말게. 한 가지 분명한 건 엘리미스와 우리가 먼저 연관이 있었고, 우리 영역인데 이 회장의 독단으로 많이 당황하고 있어.”
“이미 T그룹과 많은 연관이 없다는 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럼 끝까지 가겠다는 이야기인가?”
“상도의상 우리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 회장님이 그 부분까지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군, 그렇게 엘리미스가 탐이 났는가.”
“정 회장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허허.”
이만정 회장의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준성의 부탁을 받고 무거운 몸을 움직인 정기정은 그가 포기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차례 고개를 저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대화를 해봤자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말을 하지 않았군.”
“뭡니까?”
“엘리미스의 사장은 현재 우리 T그룹의 2대 주주라네. 앞으로 일을 벌일 때는 그 부분까지 염두에 뒀으면 좋겠군.”
“……!”
“우리도 마냥 자유로울 수 없으니 그 부분을 염두에 두게. 그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말일세.”
말을 남긴 정기정은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충격적인 말을 들은 이만정 회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곱씹고 있었다.
언론의 공세는 정기정과 이만정의 만남 이후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너무 온건한 방법 아닌가요?”
“지금으로서는 이게 제일 나아. 무력으로 제압하려고 해도 끝까지 반발할 테니까. 주변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경고를 하려면 우리도 더 큰 세력을 동원해야지.”
“그래도 이나는 납득하지 못할 거예요.”
“그게 좀 문제긴 하지.”
가장 큰 관문이 남았다는 것에 준성은 웃음을 지었다.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열성적으로 나서 주는 이나의 존재는 큰 힘이 되었다.
“그보다 더 우선인 문제가 생겼으니까, 잠깐 시간이 필요했어.”
“뭔데요?”
“안 그래도 세희랑 리엔에게 이걸 보여 주고 싶었어.”
아공간을 연 준성이 거대한 물건을 꺼내 들었다. 푸른빛을 띤 보석을 본 엘리엔의 눈이 빛났고, 세희의 얼굴에 의아함이 번졌다.
그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지금 꺼내 드는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이걸 왜?”
“그동안 이곳에 새겨진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연구했어. 그리고 최근에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고.”
준성의 말을 듣는 그녀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대체 무엇이기에 그가 걸어오는 싸움을 잠시 지연시키면서까지 계획을 강행하려는 것인지 쉬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의문 서린 여인들의 눈빛에 준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저번에 차원 이동을 했던 걸 기억해?”
“네, 기억하죠.”
“아리스턴 님의 말에 의하면 차원 너머에 신족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더군. 아직 등급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위 몬스터와 악마라고 불리는 존재들이지. 그들이 중간계에 강림할 수 있다고 하던데,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잖아.”
아리스턴의 말대로라면 그들이 지구에 강림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분명 심각한 문제였지만 다른 발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그들이 중간계에 강림하기 전에 이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먼저 선수를 쳐서 불안 요소를 제거하면 상황을 쉽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준성은 그런 의도였지만 세희의 얼굴에 불안이 서렸다.
“그들과 관련이 있나요?”
“아니, 없어. 적어도 내가 해석한 바에 의하면.”
“그럼요?”
“이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몰라. 하지만 분명한 건 미국 A.O. 본부에서는 사로잡은 시크릿 코드를 이용해서 차원의 문을 열어 한 존재를 소환하려고 했어. 그리고 나와 리엔이 나섬으로써 실패를 했지.”
“그런데요?”
“미국 A.O. 본부에서는 과연 무엇을 소환하려고 했느냐야. 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내용이었지만 언어 체계에는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고, 거대한 존재를 부르기 위한 주술적인 의미의 언어는 그 체계만 짚어 내면 대략적인 의미를 알아낼 수 있다.
“뭔지 알아내셨나요?”
“알아냈어.”
준성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쉽지 않은 내용인 것 같아 세희와 엘리엔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렸다.
“바로 신족, 혹은 그들이 악마라 부르는 존재를 소환하는 진이야. 난 차원 이동을 통해 그들과 만남을 가지려고 해.”
그의 음성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