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194)
제74장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
“거대한 힘이 충돌했네요.”
“누구의 힘입니까?”
신, 그의 중얼거림에 도열해 있던 크랙이 반응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든든하게 보좌하는 섀도우와 헌터, 썬더 스톰 등도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그를 보좌하는 칼버족 출신 인원으로, 신족에 대한 원한이 대단히 큰 존재들이다.
신실한 그들은 자신의 ‘격’이 떨어져도 끝까지 따라주는 이들로, 신족에게 대항을 하다가 결국 종족의 구성원 대다수가 희생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목표했던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은 모른 척 넘어가고 앞을 향해 나아갈 때였다.
차원 너머에 있는 동족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야 했다.
“저는 그들이 아닐까 싶네요.”
“……신족입니까?”
“예, 다른 힘은 누구인지 알 수 없네요. 이 정도의 힘은 대신족일까요?”
“신족끼리 서로 상잔을 한단 말입니까?”
“아니, 아니네요. 그의 권역은 대신족의 것과 달라요. 분명한 건 그가 신족을 압박하고 있어요. 우리에게는 굉장히 좋은 전개죠.”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듣는 그들의 얼굴에는 진한 희망이 떠오르고 있었다. 신족 하나가 소멸되면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드래곤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 신족은 지금에 와서 상대가 불가능할 만큼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이런 운만 원해서는 원하는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좀 더 세력의 확대를 꾀해야겠죠. 능력자들의 모집은 어떤가요?”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국의 능력자가 빠져나가는 것만큼 국력이 약화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점점 자국의 대우가 좋아지면서 합류했던 인원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신앙으로 채워 나갈 테니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기존 인원이 이탈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 될 것 같아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반 능력자 연맹으로 넘어온 능력자의 숫자는 2천여 명에 달했고, 그 숫자는 미국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었다.
개개인의 질은 떨어진다고 해도 체계적인 수련을 곁들이는 만큼 전력의 상승은 순조로웠다.
다만 각국이 능력자를 철저하게 단속하면서 합류하는 숫자가 대폭 줄어든 상황이었다.
여기에 좋지 않은 소식은 하나 더 있었다.
“얼마 전 아바타 계획은 실패했어요.”
“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일이 어렵게 되었어요.”
“그럼 능력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실력 향상을 꾀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세요.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더라도 작게나마 전력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크랙을 비롯한 모든 칼버족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짧게 여러 말이 오간 뒤, 잠시 멈칫한 크랙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더니 고했다.
“좋은 소식입니다.”
“무엇이죠?”
“적합자의 반응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곳이 어디죠?”
되묻는 그의 음성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속에 깃든 들뜬 감정을 크랙은 놓치지 않았다. 좀처럼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적합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에 그가 기뻐하자 크랙 또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한민국입니다.”
다시 한 차례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는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몬스터 웨이브는 저번처럼 타격을 주지 못했다. 이미 한 차례 사건을 겪은 만큼 A.O. 본부에서 상당수 인원을 배치해 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몇몇 공간 이동 능력자가 능력을 발휘하여 다른 능력자를 이동시키니, 안정적인 전력을 갖춘 뒤 필드를 뛰쳐나온 몬스터를 어렵지 않게 격퇴시킬 수 있었다.
“어떻게 되었지?”
성공적으로 막아 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능력자를 잃지 않고 격퇴하는 것이다.
그들 한 명을 키워 내는 데 막대한 금액과 노력이 드는 만큼 누구도 죽지 않길 간절히 원했다.
“성공이에요! 피해도 크지 않아요. 중상자 다섯 명에 경상자 스물여덟 명이고, 모두 생명에 지장은 없어요.”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죠.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번질 수 있었으니까요. 미리 준비해 둔 게 참 다행인 것 같아요.”
한숨을 푹 내쉰 한소영의 음성에서 진심이 절절하게 묻어 나왔다.
김기정도 굳은 표정을 풀며 고개를 나직이 끄덕였다.
“부상자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게 최선을 다해 지원하도록 하지. 나라를 위해 노력한 그들이 칭찬받을 수 있도록 언론을 이용하고.”
“네, 바로 조치를 취할게요.”
“그런데 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는지 결과는 나왔나?”
“그게…….”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피던 한소영은 아무런 이목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김기정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아무래도 김준성 씨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역시.”
이미 예상한 것처럼 김기정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상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곳에서 다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지 않는다. 대격변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을 감안해도 사례가 하나도 없었는데, 김기정이 제주도 지부에 인원을 파견한 것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제주도 몬스터 필드가 세계 최초로 두 번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곳이 되었다.
그 숫자가 기존의 것보다 훨씬 적었기에 여러 가지 의혹이 존재했는데, 한소영은 그 원인을 김준성으로 꼽은 것이다.
“물론 김준성 씨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없어요. 하지만 몇 가지 정황은 포착했어요.”
“어떤 정황이지?”
“우선 공간 이동 여부예요. 얼마 전 공간 이동이 발생한 건 알고 계시죠?”
“알고 있지.”
준성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김기정과 한소영이 합심하여 대한민국 A.O. 본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한 가지 계획이 있다. 바로 그의 움직임을 파악하고자 여러 차례 연구 끝에 개발한 계측기가 집 주변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밀기계로 공간 이동 여부를 계측하는 것이기에 준성도 눈치챌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김기정과 한소영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큰 관련이 없지만 방금 전 다시 한 번 공간 이동 시전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도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죠.”
“그것만으로는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 같군.”
“네, 그렇죠. 그런데 제주도에서도 공간 이동 여부가 파악되었다면요?”
“제주도에는 언제 설치했지?”
“혹시 몰라서 테스트 중인 간이 계측기를 곳곳에 설치했죠. 그래야 국내에서만큼은 확실하게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지 않겠어요?”
“…….”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한소영을 보고 참 무서운 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김기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내색할 만큼 그는 어수룩하지 않다.
“일단 이 부분은 비밀에 부치도록 하지. 곧장 사실을 밝히면 우리가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는 걸 알아낼 수도 있을 테니.”
“저도 동감이에요. 오히려 몬스터 웨이브를 어렵지 않게 막아 냈으니 우리들의 힘을 세계에 보여 줬다고 생각해요. 좋게 생각해야죠.”
그 이면에는 김준성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있었으나 둘 누구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아리스턴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이동한 곳은 고비 사막이었다.
그들이 대한민국에 숨어 지내면서 탐색한 것은 신족의 수족 노릇을 하는 관리자들의 거처였다.
그들 대부분이 몬스터 필드 내에서 거주하고 있기에 공략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담당하고 있는 관리자가 중간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비 사막에 거처를 마련한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다.
아리스턴은 즉시 이곳을 공략하자고 제안을 했고, 멜리사는 적의 계략일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으나, 여러 차례 관찰 끝에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다.
“주변의 적은?”
“없다.”
“지면에 함정은?”
“발견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리스턴은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이었지만 이미 파악한 지점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해 나가고 있었다.
“이곳!”
파앙!
아리스턴이 가리키기 무섭게 자예프가 주먹을 내질렀다. 순간 지면이 움푹 파이는가 싶더니, 여타 다른 땅과 다른 철로 구성된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걸음을 옮긴 멜리사가 조작하여 문을 개방한 뒤 여섯 인영이 빠른 속도로 지하로 들어갔다.
“주변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아요.”
가장 감각이 예민한 멜리사의 대답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머지 인원이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에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건물 속을 가로지른 그들이 도착한 곳은 널찍한 공동이었다.
그곳에는 한 인영이 높은 옥좌에 앉아 있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에는 오만함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그를 본 자예프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내지 못하고 일갈을 터뜨렸다.
“12호!”
“호오, 이곳에 너희들이 올 줄은 몰랐는데.”
“오늘 이 자리가 네 무덤이 될 것이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입꼬리를 말아 올린 12호의 태도는 자신만만함 그 자체였다. 그 모습을 본 자예프가 당장이라도 뛰어들 것처럼 날뛰었지만 아리스턴의 제지에 멈칫했다.
“저 녀석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 지금은 주변의 녀석들 처리가 먼저다.”
“너희들이 사랑하는 패배자 녀석들부터 넘고 내게 오도록.”
12호가 손짓하기 무섭게 그들 주변으로 스물이 넘는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규칙하게 좌우로 흔들리며 움직이는 그들은 능력자들이 일컫는 침략자였다.
불사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그들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였는데, 시크릿 코드 개개인은 침략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 모두 한때 자신들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존재였던 것이다. 함께 등을 맞대고 적을 상대했던 만큼 지금 순간이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마음을 굳게 먹어라.”
이미 여러 차례 저들과 격전을 벌였기에 그들의 손속에 망설임은 없었다.
아리스턴이 외치기도 전에 저마다 뛰어들며 빠른 속도로 침략자를 상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A.O. 본부에 사로잡혔다가 풀려난 시크릿 코드는 힘을 상실했다가 다시 회복기에 들면서 빠른 속도로 실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한 번 모든 것을 잃었다가 다시 일어선 만큼 그들의 손속은 좀 더 과감해지고 날이 서 있었다.
그런 압도적인 무위 아래 침략자 스물이 다 쓰러지는 데에는 채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너 혼자 남았군.”
“순순히 항복하면 편안한 죽음을 약속하마.”
아리스턴에 이어 자예프가 사나운 목소리로 12호를 향해 살기를 드러냈다.
“후후후!”
수하인 침략자가 모두 쓰러졌음에도 12호는 여유가 넘쳤다. 무엇을 믿고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단 한 명, 멜리사는 그가 아무런 계책도 없이 허세를 부리는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꼈다.
“소개하지, 너희 같은 도망자 녀석들을 처리하기 위해 새로 탄생한 존재들이다.”
스스슷!
12호의 외침이 터져 나오기 무섭게 지면에서 여섯 인영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마치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검은 기류에 휩싸여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 음산함이 물씬 풍겨 나왔다.
“패배자 녀석들 중 상태가 나은 놈들만 엄선해서 만든 역작이다. 사냥꾼이라고 하지.”
“저들은…… 결코 우리에 비해 부족하지 않아요.”
잔뜩 굳은 멜리사의 중얼거림을 들은 동료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그들 개개인의 무위는 마스터라 불리는 수준, 능력자들 중에서 세계 10강 중 상위권에 속하는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사냥꾼도 그에 못지않은 기운을 발산했다. 처음부터 12호는 자신들을 맞이하기 위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이제 사냥의 시간이다.”
파앗!
그와 동시에 여섯 사냥꾼이 빠른 속도로 시크릿 코드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 ☆ ☆
“요리요?”
세희는 다짜고짜 찾아와서 요리를 가르쳐 달라는 엘리엔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요리를 배우고 싶다.”
“배우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말끝을 흐린 세희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요리는 그야말로 최악의 궁합을 자랑했던 걸 잊지 않았다.
“전에는 내가 실수를 저질렀다. 내가 요리하는 것에 심취했고, 먹는 사람의 입장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했지. 나도 인간 세계에 살고 있으니 그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걸 만들고 싶다.”
“실력이 늘어나면 준성에게 대접하고 싶고요?”
“물론이다.”
“흐음!”
경쟁자인 자신의 앞에서 대놓고 준성에게 요리를 대접하겠다고 선언하는 엘리엔을 보며 세희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이상한 레시피를 가르쳐 줘서 다시 한 번 점수를 깎이게 만들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가르침을 청하는 그녀에게 이상한 것을 가르쳐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요, 가르쳐 드릴게요. 대신 제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와야 해요?”
“물론이다, 열심히 배우겠다.”
“좋아요. 그럼 오늘은 김치전을 만들어 봐요.”
마침 만들기 쉬운 음식이 세희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김치전의 맛은 김치에 의해 좌우된다고 봐도 무방해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잘 부치기만 하면 되니까 요리를 막 시작한 언니가 준성에게 선보이기 쉽죠.”
“…….”
행여나 그녀의 설명을 놓칠까 싶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엘리엔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열성적인 모습에 미소 지은 세희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완성된 반죽을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려놓기만 하면 돼요.”
국자로 반죽을 뜬 세희가 프라이팬에 올려놓기 무섭게 치이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기름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부쳐지면 뒤집어 주기만 하면 돼요.”
적당히 시간이 흘러 세희가 김치전을 뒤집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모습이 드러난다.
“다 부치면 이렇게 접시에 올려놓으면 끝이에요. 먹어 보세요.”
세희가 내민 김치전을 받아 든 엘리엔이 한 조각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다가 탄성을 터뜨렸다.
“오오…….”
“맛있죠?”
“이렇게 쉽고 간단하면서 맛있는 요리가 있을 줄 몰랐군.”
“일단 간단한 요리로 준성의 인식을 바꿔 놓으면서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 나가면 돼요. 제가 보기에 충분히 재능이 있어요.”
“고맙다.”
“고맙긴요, 그럼 저처럼 해보세요.”
세희의 말에 엘리엔이 국자로 반죽을 떠서 프라이팬에 올려놓았다.
치이익!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세희가 뒤집으라는 소리에 군말 없이 따른 엘리엔은 두 눈을 빛냈다.
“아, 조금 덜 익었네요. 이럴 땐 다시 뒤집어 주면 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알았다.”
“그리고…….”
띵동!
세희가 더 설명을 이어 나가려고 하는 순간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이틀 전 새로 나온 로맨스소설과 순정만화를 주문한 게 떠오른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엘리엔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냥 뒤집어 주기만 하면 돼요! 택배 좀 받고 올게요.”
“알았다.”
빠른 속도로 뛰어가는 세희를 일별한 엘리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프라이팬에서 익어 가고 있는 김치전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만든 김치전의 맛은 분명히 뛰어났다. 그리고 같은 재료와 같은 조리법으로 만들었으니 자신의 것도 떨어지지 않겠지.
그래서는 의미가 없다.
세희보다 좀 더 뛰어난 맛을 지닌 요리를 만들어야 했다.
검을 겨룰 때도 실력이 비슷하면 승리를 하는 것은 강력한 오러를 지닌 쪽이다. 세희의 김치전을 이기기 위해서는 더 강렬한 맛이 김치전에 담겨야 한다.
결심을 굳힌 엘리엔의 시선이 조미료가 담긴 통에 고정되었다.
그녀의 눈에 이채가 스친 것은 그때였다.
“이것만 넣으면…….”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그녀가 조미료 통으로 손을 뻗었다.
세희가 다시 나타난 것은 십여 분이 지나고 나서였다. 빠르게 달려온 그녀는 먼저 사과부터 했다.
“죄송해요, 늦었죠? 배송 중 오류가 생겨서요.”
“아니다, 내가 몇 개 부쳐 볼 수 있었으니 나쁜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완성했네요? 와! 맛있어 보이는 걸요?”
엘리엔이 부친 때깔 고운 김치전을 보며 세희는 감탄사를 흘렸다. 그랜드 마스터가 아니랄까 봐 한두 번 시행착오를 거치더니 기가 막히게 김치전을 부쳤다.
“한번 먹어봐도 될까요?”
“그것도 좋겠지.”
“그럼 먹어볼게요.”
김치전을 향해 손을 뻗는 세희.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엘리엔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제주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준성은 집 안 가득한 맛있는 냄새에 주변을 둘러보다가 주방에 있는 엘리엔을 보고 멈칫했다.
“세희는요?”
“피곤하다며 방에서 자고 있다.”
“그래요?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다음에 해야겠네. 그런데 이건 김치전이잖아요? 설마 리엔이 한 거예요?”
“세희에게 요리를 배우기로 했다. 초보가 만들기에 적합한 음식이라고 하더군.”
“하긴, 부치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거 정말 맛있어 보이는데요?”
“세희도 그렇게 말하더군. 널 위해 만들었으니 한번 먹어 봐라.”
“그럴게요.”
한 차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기에 적잖이 배가 고팠던 준성은 세희가 도와줬다는 말에 안심하고 자리에 앉아 김치전을 향해 젓가락을 내밀었다.
그 곁에는 기대감이 가득한 엘리엔이 눈을 빛내며 바라보고 있었다.
큼지막하게 잘라서 단숨에 한 입.
그리고…….
준성은 이 세상에 와서 처음으로 정신을 놓아야만 했다.
제주도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낸 뒤 대한민국 A.O. 본부의 위상이 한껏 치솟았다.
단 두 개에 불과하던 몬스터 필드 중 한 곳을 소멸시켰고, 다른 한 곳에서 발생한 두 차례 몬스터 웨이브를 모두 막아낸 쾌거를 거둔 것이다.
다른 국가들은 몬스터 필드의 숫자도 많거니와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면 피해도 만만치 않았기에 일약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안정된 국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사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그리고 원치 않던 소식이 급보로 전해졌던 것이다.
“바다에 몬스터 필드가 생겼습니까?”
“예! 현재 예측기에 거대한 파장이 발생했고, 바닷속에 몬스터 필드가 생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보고를 받은 김기정은 할 말을 잃었다. 곁에 있던 한소영도 심각하게 표정을 굳힌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몬스터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현재로서는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감시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만약 바닷속에서 몬스터가 활개를 치면…… 상황은 굉장히 어려워질 것입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이번 몬스터 필드 생성은 비단 대한민국 A.O. 본부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 분위기에 전염된 전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고개를 숙인 전령이 나가고, 심각하게 굳은 표정의 김기정을 보며 한소영이 말했다.
“다른 조치도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겠지. 이건 우리가 단독으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니까.”
“그럼 알릴까요?”
“아마 그들도 파악했겠지만 먼저 운을 떼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 특히 몬스터 필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우리가 아닌 일본일 테니까.”
태평양 한복판에 수중 몬스터가 활개를 치게 되면 섬나라인 일본의 타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클 터였다.
“알겠어요.”
“그 부분은 부탁하지.”
“믿고 맡기세요. 아, 그리고 일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동태가 심상치 않은 건 알고 계시죠?”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더군.”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는 건 상관이 없는데 역사를 봐도 자기들 혼자서 아웅다웅하는 자들이 아니잖아요.”
연일 일본 A.O. 본부 소속 능력자들의 움직임이 보고되고 있었다. 그것도 비밀리에 움직이는 만큼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음이 분명했다.
“유의를 해야겠지.”
“이래저래 할 일이 많네요.”
한숨을 푹 내쉬는 한소영을 보며 김기정은 위로하기도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거 미치겠군.”
몬스터 대책본부 소속 차장 이현기는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받고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명령을 내리는 이들이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대놓고 척을 지겠다면서 N그룹을 지원하더니, 이제 와서는 친분을 다지란다.
대책본부장이랍시고 자리를 차지고 있는 녀석들의 머리를 쪼개보고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만큼 그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다시 친해지라고 해도 방법이 없는 걸 어떻게 하라는 거냐.”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은 이현기로 하여금 김준성과 다시 친해지라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척은 척대로 져놓고 다시 친해지라고 덜렁 명령만 내려놓으면 그것을 실행에 옮겨야 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죽어나는 셈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래도 하라고 하니 해봐야겠지.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손해 볼 일은 없을 테니.”
그것 하나만큼은 사실이었기에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걸음을 옮겼다.
엘리엔의 음식 폭격으로 정신을 놓았던 준성은 깨어나기 무섭게 안절부절못하는 그녀를 자리에 앉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세희 또한 엘리엔의 요리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준성은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대체 왜 요리를 한 겁니까? 리엔이 굳이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저번에 말했잖아요.”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엘리엔이었다. 세희에 이어 준성까지 쓰러지는 것을 보고 뒤늦게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나 먼 길을 왔다.
자신이 만든 김치전을 먹고 그녀 또한 정신을 잃을 뻔했으니 말이다.
세희가 만든 것을 뛰어넘고자 조금 더 톡 쏘는 맛을 위해 고추냉이와 겨자를 넣고, 간을 세게 하려고 소금과 후추를 넣은 것이 이런 후폭풍이 되어 돌아올 줄 몰랐다.
자신의 실수를 자각하고 있지만 이렇게 몰아붙이는 준성의 태도가 서럽기도 했다.
더 열심히 해서 그가 좋아하는 여자가 되고자 했을 뿐인데. 의지에 따라오지 않는 요리 실력이 오늘 만큼은 원망스러웠다.
“리엔?”
“미안하다.”
“사과하지 않아도 돼요. 리엔이 저를 위해 열심히 한 건 알고 있으니까. 다만 제가 듣고 싶은 건 왜 갑자기 하지 않던 일을 하는지 그 이유예요.”
“그건…….”
말을 해야 오해가 풀릴 테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남자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는 일이 이렇게 험난한 일임을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입을 다문 그녀를 보며 준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당분간 생각을 해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기로 해요. 저도 리엔에게 무엇을 섭섭하게 했는지 생각해 봐야겠어요. 대신 리엔도 다른 행동은 보이지 말아 주세요. 이게 피해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알았다.”
“그래도 저를 위해 요리를 해준 건 진심으로 고마워요.”
“…….”
끝내 고마움을 표하는 그를 보며 엘리엔은 목이 따끔거리는 걸 느꼈다.
자신의 실수가 부끄러웠고, 그것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는 그가 고마웠다.
샘솟듯 솟아오르는 감정을 꾹 억누르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갔다.
‘……이제 요리는 하지 않겠지.’
준성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축복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