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06)
제86장 신족의 개입
그날 이후, 타나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학과 사무실로 찾아가 문의를 하니, 휴학 처리가 되었다는 것 외에 다른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정말 그 타나가 맞나요?”
곁에 있던 세희의 물음에 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리엔을 상대했을 때 사용한 두 자루의 검은 골든 소드와 룬 블레이드였고, 결정타를 먹이던 활은 골든 피닉스였어. 어떻게 인간의 몸에 맞게 크기를 줄인 건지 몰라도 위력은 그대로더군.”
“믿기지 않네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세희가 감탄을 흘렸다.
“어떻게 했을까요?”
“쉽지 않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고 있으니까. 폴리모프는 아닌 것 같고.”
폴리모프로 본 모습을 바꿨다면 힘의 운용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모습으로 그랜드 마스터인 엘리엔을 밀어붙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자유롭게 풀어줬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타나는 성장한 듯했다.
여전히 딱딱하기는 해도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어.”
“뭐죠?”
“타나의 이런 변화는 신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야.”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린 준성의 표정에는 복잡함이 서렸다.
신과의 끈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신에게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그였다.
이미 신이라고 칭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격’을 잃은 상황이었고 선과 악의 구분 또한 모호해 잘못 얽히면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낱 부속품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구체적인 정체 또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섣부른 관계 개선은 화만 자초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세희에 이어 타나마저 신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준성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최초의 역작이었고, 위기의 순간 든든하게 뒤를 받쳐 주던 동료였다. 헤어지던 그 순간까지도 행복하길 바랐기에 이렇듯 엘리엔과 칼을 맞대는 상황은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진척시켜야만 했다. 그 해답은 자신이 아닌 세희가 쥐고 있는 걸 알고 있었기에 조언을 구했다.
“그 이후 신과 만남을 갖고 있어?”
“종종 놀러오곤 해요.”
“무슨 이야기를 나눠?”
“소소한 신변잡기가 전부예요. 그분께서도, 저도 각자의 생각을 털어놓을 만큼 친분을 다진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어느 정도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을 만큼은 되었어요. 이야기를 해보고 싶으셔서 그러나요?”
세희가 반색하며 물어오니, 준성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전에는 안 그럴 것 같았는데.”
“별수 없잖아. 세희 너는 내가 강하게 나가면 되겠는데 이번에는 타나도 얽혀 있어.”
“타나가요?”
“아마 차원 이동을 하면서 신의 도움을 받은 것 같아.”
“도움을요? 현재 그분께서는 아무런 힘도 지니지 않고 계신데요?”
다른 것은 몰라도 대화를 나누는 세희로서는 신이라 칭해지는 그가 얼마나 안 좋은 상황에 놓여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까마득하게 긴 세월 동안 세상을 다스려온 지혜는 건재했지만 신을 우러러보게 만드는 신격은 거의 상실된 상황이었다.
그녀가 준성에게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 또한 신이 선택된 적합자에게 강제성을 발휘할 수 없다는 계산이 서 있기 때문이다.
성녀를 선택하는 건 신이지만 지금은 그 반대의 경우였다.
“우리가 모르는 한 수가 있겠지. 웬만하면 믿지 않겠지만 이 말 자체가 타나에게서 나온 거라 믿을 수밖에 없어. 나로서는 외통수에 걸린 셈이지.”
“그것도 그러네요. 사실 저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내가 신과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서로 주고받을 게 명확하다면 그런 관계도 나쁘지 않겠죠. 사실 신족을 상대하면서 적은 줄이고 아군은 늘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은근한 설득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힘을 품고 있었다.
내심 세희와 타나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준성은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것도 틀리지 않은 말이야.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알았어, 한 번 자리를 만들어 줘. 너와 타나의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럴게요.”
세희는 기쁜 마음을 담아 미소 지어 보였다.
김기정은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이곳에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연락을 하지 못해 미안하군.”
말문을 여는 이는 아리스턴이었다. 그의 곁에는 멜리사와 자예프도 동석을 하고 있었다.
12호의 함정에 빠져 대부분의 동료를 잃고, 드래곤에게도 박대를 받으면서 아리스턴 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기에 그들이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 A.O. 본부장인 김기정과 손을 잡는 것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김기정의 시선이 멜리사와 자예프에게 향했다.
그의 눈에 보인 둘 또한 범상치 않은 실력자들이었다.
“이분들은 누구신지?”
“내 동료들이다.”
“그렇다면…….”
김기정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놀라움은 크지 않았지만 아리스턴의 동료들이라면 그 가치는 가볍지 않다.
“너희들이 부르는 시크릿 코드지.”
“역시. 그렇다면 이곳을 찾아온 이유도?”
“앞으로 대한민국 A.O. 본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
고작 세 명에 불과했지만 협력 맺을 것을 요구하는 아리스턴의 태도는 당당했다.
“좋습니다.”
그 또한 깊게 고민하지 않고 흔쾌히 수락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타나의 문제와 신과의 관계 개선 등을 놓고 고민하던 준성은 여러 가지 복잡하게 얽힌 요소들로 인해 바쁜 날들을 보냈다.
가장 좋은 것은 신과 얽히지 않고 타나와 만나 그동안 있었던 감정을 털어내고 예전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그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내에 숨어 있다면 준성의 이목으로부터 몸을 완전히 숨길 만한 실력을 지녔다는 뜻이고, 만약 외국으로 나갔다면 찾을 길은 막혀 버린 것과 같았다.
다만 타나가 왜 자신을 모르는 척하는지,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는지 알아야 대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었다.
하지만 만날 수 없다면 그 기회가 원천 차단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엘리엔의 선언은 준성의 혼을 빼놓았다.
“예?”
“말 그대로다. 잠시 이곳을 떠나 있겠다.”
“…….”
충격적인 말에 준성은 입을 다물었다.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이렇다 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결국 흘러나온 말은 힘없는 반문이었다.
“……어째서입니까?”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전까지 나는 내 스스로 자제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했지만 타나와의 대결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으음.”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던 준성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끝끝내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며 광기에 휩싸이던 엘리엔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살 떨릴 만큼 증오의 화신 그 자체였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준성도 모른다. 엘리엔도 모르는 듯했으나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함께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라 여겼다. 어쩌면 타나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곁에 있으면 네게 더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그런 말은 듣기 싫습니다.”
강한 힘이 실린 준성의 목소리에 엘리엔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저는 리엔이 남길 원합니다. 정말 떠날 겁니까?”
“잠시, 잠시 내게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기다려 줄 수 없나?”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에 준성은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그녀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진심으로 응원하고 기다리는 것뿐이었으니까.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자연 경관이 좋은 곳을 다닐 생각이다. 마음이 편해지면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증오가 씻겨 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바쁜 일상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현실은 엘프인 그녀가 적응하기에는 쉽지 않게 여겨졌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준성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리엔의 자리는 남겨 놓을 테니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지 돌아오세요.”
“물론이다.”
“세희와 이나에게 말했나요?”
“이럴 때는 조용히 떠나는 게 최선이지.”
이별이 길면 아쉬움도 길어지는 법.
만남과 이별에 익숙한 엘프였지만 짧은 시간 준성과 헤어지면서 얼마나 그를 그리워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세희와 이나랑 적잖이 정이 들었기에 조용히 떠난 뒤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다.
“기다리겠습니다.”
“고맙다. 이렇게 부족한 나를 기다려 준다고 해줘서…….”
처연한 미소를 지은 그녀는 고개를 돌려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준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엘 하이너, 론 쉐인.
세계를 집어삼키기 위한 선봉이자, 몬스터 필드를 관리하던 두 신족의 소멸은 필연적으로 신족들에게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을 몰아내고 신의 격을 끌어내린 그들은 의심할 나위 없는 세계의 지배자였다.
이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려던 그들에게 두 동족의 소멸은 큰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론 쉐인과 엘 하이너가 당했다는군. 들었나?”
“애송이들? 우리 입장에서 애송이여도 약하다고 평가받을 정도는 아닐 텐데?”
“드래곤의 소행인가?”
“몇 마리가 도망치기는 했지. 하지만 둘을 감당하기 힘들 텐데? 우리 손에 살아남은 잔챙이들이 한 짓 아닌가?”
“아니, 그들로는 하나도 감당하기 힘들다. 요즘 말하는 악마라는 녀석 아닌가?”
“엘 하이너가 보고했던 인간 녀석도 만만치 않은 것 같던데.”
수많은 말이 나오면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누구의 특정 의견을 들어주기보다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 털어놓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에게 의견 화합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귀는 열어둔 채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이 말하는 걸 듣고 자신의 생각에 변화를 주었다.
그러던 중, 한 신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는 강렬한 빛에 휩싸인 그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곳이라면 쓸모없는 녀석들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 데 그만큼 유용한 것도 없지. 누구도 갈 생각이 없다면 내가 지구로 가겠다.”
“직접?”
“새로운 땅에는 새로운 기회가 기다리는 법. 그곳에서 내 힘을 갈고닦도록 하지. 혹시 아나? 지구에서 얻은 힘으로 너희들 위에 군림하게 될지.”
“…….”
그의 말에 다른 신족들은 소리 죽여 웃었다.
신을 끌어내리고 세계를 차지한 그들은 힘보다 거대한 권능을 얻으면서 더 이상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닌 수련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없는 시간도 권능을 흡수하는 데 할애해야 할 마당에 밑바닥 녀석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준다고 하니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네가 나설 생각인가?”
한 줄기 음성이 주변에 울렸다.
목소리의 진원지는 다른 이들보다 가늘고 발산되는 빛 또한 적었으나, 대신족의 자리 배치가 그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
“너라면 어렵지 않게 해내겠지. 대신 지원자 몇을 데리고 가도록. 어설픈 핑계는 듣고 싶지 않으니.”
“그러지.”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 그가 손을 들자, 강렬한 섬광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잠시 나갔다 오겠다. 돌아올 때는 지구를 선물로 가지고 오지.”
“기대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거대한 덩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리를 완전히 벗어난 것을 확인한 대신족들은 별일 없었다는 듯, 자기들끼리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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