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08)
제88장 포스 운용법
몬스터 동산으로 알려진 북한에 탑이 솟아났다는 사실은 세계 각국을 비상 체계로 접어들게 하였다.
새로운 몬스터 필드!
이미 북한 지역에 활동하는 몬스터의 힘은 다른 곳보다 더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들이 필드 내에서 하나로 뭉쳐 습격한다면 자칫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문제였다.
특히 인접국인 러시아와 중국, 대한민국이 느낀 놀라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컸다.
북한의 몬스터 동산은 이미 한 국가를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만든 화약고였다. 그곳의 힘이 다른 곳을 향한다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지 쉬이 생각하기 힘들었다.
특히 물러설 곳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경우 연일 속보를 내며 몬스터 동산에 대한 주제를 중요하게 다뤘다.
이를 진화시킨 것은 대한민국 A.O. 본부의 공식발표였다.
기자회견장에 나선 대변인은 취재진에게 북한의 몬스터 필드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곳이며, 보다 효율적인 토벌을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했다.
제주도 몬스터 필드가 사라진 상황인 만큼 모든 여력을 북쪽으로 투자, 몬스터 천국인 북한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돌려놓을 것을 천명했다.
이러한 발표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몬스터 웨이브에 두려움을 갖고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환호하며 당장에라도 북쪽으로 진군하여 통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했다.
러시아나 일본은 사전의 양해도 없이 행동으로 옮긴 것에 유감을 표했지만 이렇다 할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가장 격렬하게 반발한 것은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
그들은 지속적인 동북공정을 통해 북한의 붕괴 이후,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킬 계획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필드의 존재는 능력자들을 외부로 돌리지 못하게 만들었고, 가장 먼저 설정된 명제가 영토 내 모든 필드를 토벌한 뒤 북한의 몬스터를 압박하여 그 부담을 대한민국에게 전가하는 것이었다.
그 계획은 광명시 필드 소멸과, 제주도 필드 소멸로 어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대한민국에서 인위적으로 몬스터 필드를 조성했다고 하자, 당연히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이러한 반응을 정부는 민감한 사안으로 받아들였고, 국회에서는 연일 회의가 열리며 대응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왕천후가 움직였습니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김기정이 말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었기에 준성은 그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큰 문제가 되는 겁니까?”
“예, 왕천후는 중국을 움직이는 암중배후라고 보시면 됩니다. A.O. 본부를 꽉 쥐고 있는 그는 오래전부터 북한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북한 내에 큰 힘이 도사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듯합니다. 그 영향으로 몬스터의 힘도 그만큼 강해졌다고 믿는 것이죠.”
몇 가지 정황을 토대로 북한에 대단한 보물이라도 묻혀 있는 걸로 생각한 듯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몬스터의 강함이 설명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행동에 준성은 실소를 흘렸다.
“그건 잘못된 소문입니다.”
“예, 아주 단단히 헛다리를 짚었지요. 문제는 왕천후가 그 소문을 상당 부분 신뢰하고 있고, 우리가 사실을 이야기하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명분은 만들어내기 나름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는 저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차피 자국 내 몬스터도 막아내기 힘든 상황에서 북한에 신경 쓸 여력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들은 비밀리에 중국 내 엘리미스의 모든 판매를 중지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해 왔습니다.”
“최소한의 정보력은 살아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외적으로 대한민국 A.O. 본부를 규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저를 향한 손짓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의미심장한 준성의 말을 듣는 순간, 김기정의 눈이 번뜩였다.
“그럼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것인지?”
“예, 조만간 속내를 드러낼 것입니다.”
준성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모든 정보가 흘러 들어갔다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왕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정부의 암중배후이자, 철의 카리스마로 A.O. 본부를 장악하고 있는 그는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큰 조직을 이끌고 있다.
국제적인 비난을 사더라도 언제나 중국의 이익과 부합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해 왔기에, 미심쩍은 절차를 보여도 누구도 제지를 하지 못했다.
“조만간 움직임을 보이겠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움직인 것을 눈치 못 차릴 정도로 머저리들은 아니다. 아마 다른 속내가 있음을 깨닫고 지금쯤 진의를 파악하고 있겠지.”
대격변 이전 시절, 북한은 당연히 중국의 차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왕천후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생각이 다소 변해 있었다.
북한 같은 작은 땅덩어리 따위는 언제든지 내줘도 된다. 오히려 영토가 넓을수록 몬스터 필드 숫자가 늘어나서 자신의 통제가 확실한 중앙에 둘 수 있는 능력자가 줄어드는 게 좋지 못했다.
“포스 운용법이라, 북한을 포기하는 걸로 얻어낼 대가치고는 괜찮겠지.”
이미 북한을 반쯤 포기한 상황에서 중국이 격렬하게 반응을 보인 진짜 이유.
그 이면에는 포스 운용법이 있었다.
현재 중국은 이 비기를 손에 넣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일본, 대한민국은 포스 운용법을 손에 넣어 휘하 능력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왕천후가 이 비기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은 수중 몬스터 필드 토벌 과정에서였다.
아들인 왕샤오밍이 비슷한 실력을 지녔던 마츠모토 타다요시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휘하 능력자들도 당하면서 일본 능력자들의 실력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이는 곧 철저한 정보 수집으로 이어졌고, 어렵게 자료를 얻어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흘러나온 정보를 일본이 얻어 실험을 통해 완성했고, 미국은 그 자료를 바탕으로 보완된 운용법을 익히는 중이었다.
반면 대한민국은 김준성, 개인에게서 그 비기가 흘러나왔다.
미국이나 일본이 자신들에게 그 비기를 공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왕천후는 미국과 일본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에 역량을 집중했다.
“조만간 반응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 과실을 얻어내기만 하면 되겠지.”
필요하다면 일본처럼 생체 실험을 할 생각도 있었다.
지금도 호시탐탐 독립의 기회를 노리며 암암리에 분란거리를 만드는 소수민족 능력자들은 많았으니까.
그들의 희생으로 더 강한 중국을 만들 수 있다면 헛된 희생은 아니리라.
왕천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북한의 몬스터 필드화가 선포된 뒤, 본격적인 토벌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능력자들은 조를 이루어 준성이 제공한 지도를 따라 사냥을 시작했다.
몬스터는 여전히 위협적이었으나, 동서남북 외곽으로 밀려난 고블린, 놀 같은 것들은 능력자들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순조롭게 북상하면서 해안가 지방을 장악해 나갔으나, 내륙으로의 진입은 쉽지 않았다. 몬스터 동산이라는 말답게 기존에 상대하던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그것은 비단 북한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세계 각지의 몬스터 필드에서 웨이브가 잦아지기 시작하더니, 침공하는 숫자도 힘도 늘어났던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 각지 A.O. 본부는 비상 대기를 했고, 빠른 정보 공유를 통해 타개책을 내놓으려고 했지만 자국의 안전을 등한시하고 도울 만한 곳은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혼란.
“신족이군.”
돌아가는 상황을 본 준성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유추해 냈다.
“그들이 몬스터 필드를 관리하는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을 테니까. 날 상대했던 엘 하이너나 론 쉐인은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급급했어. 세계에 포스를 퍼뜨려야 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있다가 제대로 일을 하는 신족들이 나서니 몬스터들이 출몰할 수밖에.”
“안 좋은 현상이네요.”
“인구 밀집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나 유럽 쪽은 상관없어. 중남미도 그럭저럭 막아낼 여력은 있겠지만 정말 문제는 아프리카지.”
치안도 최악이거니와 잦은 내전과 굶주림으로 제대로 된 능력자 양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프리카 연합인 AU(African Union)에서는 국제 능력자 연맹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일본, 대한민국 정도만이 참여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때문에 아프리카 각국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저들이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려는 점이야.”
“그게 문제가 되나요? 오히려 좋은 게 아니라?”
세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세계 각지에 포스가 퍼진다면 마나로 변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니 이익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어젯밤 신족 하나가 내 영역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었어.”
“그래서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어. 내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 신족 하나쯤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눈치를 채고 도망가더군.”
“눈치가 빠르네요.”
“이곳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아니란 걸 알아차린 거지. 상대가 신중하다는 건 우리에게 그리 좋은 현상도 아니고.”
“아…….”
신중하면 그만큼 실수가 적고, 경우의 수를 철저하게 계산할 테니 상황이 좋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준성은 그리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앞으로 대한민국에 견고한 성을 쌓을 생각이야. 이곳으로 적이 들어오면 지옥이 되겠지. 그 이후에는 조금씩 영역을 확장하면 될 거고.”
“인내심 싸움이 되겠네요.”
“우리에게는 나쁠 게 없어. 그러니 북한 지역하고 대한민국의 호환에 신경 써줘.”
“네.”
포스를 마나로 변환한다면 북한도 대한민국 같은 환경을 조성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본격적인 충돌은 그다음에 일어날 일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준성은 그 부분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알아왔나? 론 샤레인.”
“예.”
빛으로 이루어진 공간에는 두 개의 인영이 자리했다. 거대한 인영을 향해 정중하게 예를 취한 가녀린 인영은 보고를 시작했다.
“알아본 바로는 기존의 현상과 확연하게 다른 이레귤러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의 포스와는 성질이 확연하게 달라 다루기 어려운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안 부분까지 조사는 했나?”
“죄송합니다, 그 영역의 주인이 엘 하이너와 론 쉐인을 제거한 주범 중 하나로 생각됐기에 무리한 행동은 삼갔습니다.”
“잘했다, 하지만 정보가 부족하다. 넉넉하게 시간을 줄 테니 천천히 정보를 모으도록.”
“명을 받듭니다. 포스 잠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천천히 진행하도록. 그 이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고개를 숙인 론 샤레인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거대한 인영, 열두 명의 대신족 중 하나인 완 제이드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중얼거렸다.
“우리 손에 끝까지 도망치려 하던 위대한 존재가 어떤 몰골을 하고 있는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 ☆
준성은 세희의 결정을 말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결심을 굳히고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는 그녀를 보면 마냥 우길 수 없었다.
“정말 괜찮겠어?”
“격을 상실한 신이 저를 강제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그분을 모심으로써 세계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될 거라 믿어요.”
오래전부터 준성과 대립해 왔던 사안이었다. 성녀의 운명을 타고났으나, 중간의 인위적인 비틀림으로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차원을 넘어오면서 얄궂은 운명은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성녀의 운명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반대하는 마음이 커. 신의 존재가 세희 네게 많은 제약이 될 거라 생각하니까. 하지만 이번 결정은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믿고 싶어. 네게 협력하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어.”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 나오는 음성에 세희는 준성의 품에 안겼다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고마워요, 큰 변화는 없을 거예요. 제가 좀 더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 많은 말을 전달하는 것 외에는.”
“…….”
준성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선 세희는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위에 서서 눈을 감았다.
성녀가 되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적합자로 판명이 된 그날 세희의 마음속으로 신성이 파고들었고, 그걸 받아들여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육체의 재구성을 거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준성이 쳐놓은 빗장을 해제하는 게 먼저였다.
파아앗!
순백의 빛이 그녀의 전신을 감싸며 강렬한 회전을 일으켰다. 눈을 감은 준성은 빛에 익숙해지자 세희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법사로 최적화되어 있던 그녀의 육체는 신성력이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후광을 발산했다.
보는 것만으로 경배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은 신에게 선택받은 성녀만이 발휘할 수 있는 권능이었다.
이미 최적화된 육체였기에 재구성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금씩 사그라드는 빛을 보던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끝났군.”
“제 결정을 믿어줘서 고마워요.”
“무슨 변화가 일어났어?”
“제 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나가 신성력으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제 의지만 발휘하면 그게 신성의 힘으로 발현이 되네요.”
“반 강제로 9클래스 경지에 올랐다는 건가.”
의지만으로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것은 9클래스의 영역이었다.
본래 세희가 8클래스의 경지였던 만큼 9클래스라면 경지만으로 이나나 엘리엔보다 높다는 말이 된다.
“그러네요. 다만 공격력은 강하지 못해요. 사마를 물리치는 힘에 강하지만, 일반적인 공격보다 축복 위주의 마법이 효과가 좋을 것 같아요.”
“신의 변화는 어때?”
“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고맙다고 전해 달라네요. 그리고 그분께서 준성을 한 번 만나고 싶어 하세요.”
“알았어.”
세희가 성녀로 각성한 이상 신과 더 이상 대립각을 세울 수 없었다.
지금은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신이 잃어버린 격을 찾았으니, 느리더라도 조금씩 예전의 위상을 찾아 나갈 것이다. 그리고 온전해졌을 때, 그동안 자신이 해온 모든 행동이 여파가 되어 돌아올 수 있었다.
“다녀올게.”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준성이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그랬으면 좋겠어.”
준성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지저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준성은 몸소 나와 자신을 맞이하는 존재를 보며 멈칫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의 존재감은 그의 영혼에 파장을 일으킬 정도로 강렬했다.
형편없이 뭉개졌던 얼굴,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눈 등,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던 얼굴과 몸은 제 형태를 갖춰 감히 정면으로 응시하기 힘든 자태를 갖추었다.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그는 준성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그 인사는 세희에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녀가 많은 것을 안겨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부디 이 은혜는 잊지 마시길.”
당돌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그의 확답을 얻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신은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리고 미소 지어 보였다.
“물론이에요.”
“그거면 됐습니다.”
“바라는 건 없나요?”
“이제 막 격을 갖춘 분께 원하는 걸 말할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제 힘을 되찾길. 그게 신족을 상대하는 데 더 유용할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들은 내게서 가장 중요한 권능을 빼앗아 갔어요. 모든 것을 빼앗기지 않고 옮겨 놓았기에 이렇게 후일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신족의 존재는 지금도 위협적이에요.”
그 말과 함께 신이 손을 내밀었다. 오색찬란한 구체는 사람의 영혼을 매혹하는 강렬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준성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신을 바라보니, 미소 지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제 권능 중 하나예요. 이걸 선물로 드리고 싶네요.”
“괜찮습니다. 그 권능은 힘을 되찾는 데에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러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서 드리는 거예요. 권능을 얻는 방법은 이걸 손에 쥐고 갖고 싶다는 바람을 품으면 된답니다. 그럼 그 힘의 종류와 발현 방법 등이 머릿속에 떠오를 거예요. 제 선물이니 받아주세요.”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준성은 신에게서 권능을 받아 들였다. 빛의 구체가 그의 손에 놓였지만 여전히 빛을 뿌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힘을 원하지 않는 걸 확인했기 때문인지 신의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이건 세희가 가질 수 있는 힘입니까?”
“유감이지만 적합자는 어려울 것 같네요. 대신 그녀의 격도 높아졌을 텐데, 그것만으로 부족한가요?”
“아닙니다, 필요한 것 같아 물어본 겁니다. 건재한 모습을 봤으니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예전의 힘을 되찾길 기원하겠습니다.”
“노력해야죠. 앞으로 많은 도움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에게서 진심이 느껴지는 걸 깨닫고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결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었다.
“권능이라…….”
지저 세계를 벗어난 준성은 빛을 뿌리는 권능을 보며 중얼거렸다.
분명 매력적인 힘이었다. 신족이었던 론 쉐인이 구사하던 권능은 자신조차 임기응변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노력으로 얻은 힘이 아니기에 망설여졌다. 이 힘을 얻는 순간 언제든지 권능으로 힘을 늘려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자만에 취해 버릴 것 같았다.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마약과도 같은 힘이 주는 매력을 알기에 준성은 신이 권능을 주겠다는 걸 단호하게 거절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재차 권할 때 받아들인 건 혹시 모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수단 하나 정도는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띠링! 띠리링!
길게 이어지던 그의 상념은 요란하게 울리는 벨소리에 끊어졌다. 전화한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 준성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미끼를 풀었으니 입질이 오는 건가.”
모든 일이 그에게 있어 나쁘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중국 측에서 제안을 해왔습니다.”
준성이 A.O. 본부에 도착하기 무섭게 김기정이 용건을 꺼내 들었다.
“무엇입니까?”
“예상했던 대로 포스 운용법이었습니다. 그들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 포스 운용법을 익혀 능력자들의 역량을 키워 나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으로 신경을 돌릴 여유가 없는 중국 A.O. 본부가 북한에 조성된 몬스터 필드에 거세게 반발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수단이었다.
그들은 필요한 것을 얻어내고자 했고, 그것이 바로 포스 운용법이었다.
준성은 이 모든 걸 예견하고 있었고, 김기정은 반신반의하면서 상황을 관망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준성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
김기정은 침묵을 지켰다. 중국 A.O. 본부의 요구는 권리조차 없는 북한을 포기하는 것치고 너무나 컸다. 포스 운용법은 각국 A.O. 본부의 전력 차이를 확연하게 만들 정도로 가치가 컸다.
“허락해 주신다면 중국 A.O. 본부에게 포스 운용법을 전수하고 싶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김기정이었다.
그는 지금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준성이 전수한 포스 운용법을 중국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얻었지만 외부로 유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왜입니까?”
“위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포스 운용법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길 원합니다. 그것이 현재 강해진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포스 운용법을 독점하면 대한민국 A.O. 본부의 힘은 훨씬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영광이 영원히 이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몇 가지 조치를 취해 놓았다고 해도 언젠가 이탈하는 인원이 발생할 것이고, 포스 운용법을 얻어내기 위해 치열한 암투가 벌어질 것이다.
이미 미래가 보이는 상황에서 그걸 아등바등 막으려 드는 것은 더 큰 피해를 야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 평화를 위해?”
비웃는 듯한 준성의 반문에 김기정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평화를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
준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 감탄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인물이 A.O. 본부를 다스리고 있기에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순수한 목적을 위해 조직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궁금한 점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니었다.
“욕심은 나지 않습니까?”
“당연히 납니다. 하지만 우리만 잘산다고 모두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힘이 생기면 필연적으로 인간끼리 다툼이 발생하겠지만 당장은 몬스터의 습격에서 이겨 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 A.O. 본부에 먼저 공개한 뒤, 국제 능력자 연맹에 이 포스 운용법을 공개할 생각입니다.”
북한의 문제를 놓고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게 먼저 선점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중국에게 먼저 제공하는 한 달의 시간은 김기정이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준비를 할 시간일 것이라.
“그럼 제가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준성의 반문에 김기정은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없습니다. 원하는 걸 말씀하시면 최선을 다해 맞추겠습니다.”
상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태도를 보면 뼛속까지 우려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준성도 그런 마음이 불쑥 들었지만 반대로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고 양해를 구하는 게 상대하기 편하고 호감이 갔다.
이미 자신이 얻을 것은 다 얻었다. 북한의 몬스터 필드는 자신의 의중 아래 조종되고, 대한민국은 금탑화시키지 않았던가.
김기정이 이렇게 정중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미 자신의 영향력을 벗어나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다.
“원하는 건 나중에 말하겠습니다. 포스 운용법을 공개해도 좋습니다.”
“정말입니까?”
“물론, 진심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큰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이걸로 능력자들도 보다 수월하게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기정은 감격에 겨운 어조로 준성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