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18)
제98장 파장
이나와 세희의 공개적인 발언은 대한민국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이나가 보여준 현상과 한세희라는 여인이 보여준 것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인간의 손으로 자연의 현상을 조절하는 광경은 그들의 상식 밖에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실시간 인터넷을 통해 더욱 확산되었다.
└야 그거 봤냐, 강이나 편? 완전 개쩔더라.
└왜 그렇게 강한가 했더니 무협 고수래. 보다가 지릴 뻔.
└그나저나 마법사란 게 현실에 있었던 거임? 손가락으로 날씨 조종하는 거 보고 어처구니없던데.
└능력자도 있고 몬스터도 있는 세상인데 모르지. 혹시 아냐? 신도 있고 드래곤도 있을지.
많은 논란을 만들어낸 가운데, 마법사의 존재는 단순히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강이나’라는 이름은 단순히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모델이 아니라 단신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냄으로써 기존의 세계 10강이라 알려진 능력자들과 견줄 수 있는 핫한 아이콘이었다.
그런 그녀의 충격 고백은 그만큼 큰 파장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고, 그 여파로 마법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이 나오기 무섭게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그들은 마법사의 존재를 인정하며, 능력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마나’라는 힘에 반응을 보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는 처음부터 ‘무능력자’라고 판명된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아!”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된 이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의 얼굴에 깊은 골이 만들어지면서 커다란 분노를 만들어냈다.
“이 녀석들이 왜 이러죠?”
“확실히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 준성은 어때요?”
“마찬가지야, 포스 운용법으로 지지를 보내지 않더라도 침묵할 줄 알았는데.”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지지로 금탑에 대한 관심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고, 대한민국 A.O. 본부의 성장과 북한 지역의 몬스터 필드화를 이끌어낸 것이 금탑의 업적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은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게 만들어 주었지만 예상치 못한 암초가 나타났으니, 바로 중국의 입장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등장한 마법사의 존재에 대해 맹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그리고 물밑으로 북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군사적인 움직임을 보이려고 한다는 말이 전해짐에 따라 금탑의 안착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그 녀석들이 문제에요. 미국이 적극 지지를 해도 모자랄 판에.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렸잖아요.”
중국에 이어 일본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이나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일단 지켜보자, 저들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니까. 그래도 제법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요. 일단 필요한 사람들만 걸러내야 하고, 알맹이들을 선별하면 기본적인 소양도 가르쳐야 하니까요. 진짜 고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요.”
“고생이 많아. 나도 있는 힘껏 도울 테니 이나가 고생해 줘.”
“그래야죠. 그래야 금탑이 당당하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테니.”
한숨을 푹푹 내쉬는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토닥여 주는 준성이었다.
금탑의 홍보는 마법사의 자질을 지닌 이들을 선별하는 과정도 있었지만 이면에는 매직 나이트를 선별하기 위한 의도도 존재했다.
귀순한 지 한참 된 5호가 주축이 되어 무력 부분을 담당할 매직 나이트는 이나가 적극적으로 임하여 훈련을 시킨다면 후천적인 재능으로도 성장이 가능했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마법사를 희망하고 찾아오는 이들은 많았지만 이나의 마음에 드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마나가 희박한 세계에서 살아온 만큼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뚫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점점 조급해지는 이나를 보면서 준성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무 급할 이유는 없어. 당장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마법사나 매직 나이트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함이지, 전투에서 힘이 되길 원하는 건 아니야. 그러니 천천히 가도록 하자.”
“그럴게요. 제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일을 벌인 게 이나니까 스스로 책임지는 게 맞기는 하지만.”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거예요? 미워할 거예요.”
“하하, 미안.”
눈을 흘기며 입술을 내미는 이나를 보며 준성은 미소를 지었다.
더글라스는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을 보며 가볍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겉모습만 보면 그녀는 이제 갓 스무 살을 넘은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소름 끼칠 정도로 철저한 무감정한 모습이 존재했다.
상념에 빠져 있는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 더글라스는 자기 소개를 했다.
“더글라스 브라운입니다. 위대한 신의 기사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신의 기사라 칭해진 타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볍게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더글라스는 흠을 잡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스터 김에게 부탁을 드렸지만 정말 와주실 줄 몰랐습니다.”
“내 목적은 간단해.”
타나가 입을 열자, 더글라스는 그녀의 말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몬스터를 처리할 거야. 최대한 빠른 속도로. 보조를 맞추기만 하면 돼.”
“그것만 하면 됩니까?”
“맞아. 다른 건 방해만 되니까.”
신의 기사와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더글라스에게는 내키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타나는 그의 속내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강조했다.
“다시 말할게. 방해는 용납하지 않아. 지켜보기만 해. 그럼 모두 해결될 거야.”
“알겠습니다.”
더글라스의 대답을 들은 타나의 몸은 푸른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그녀의 파장은?”
“기록해 두었습니다.”
대답한 톰슨은 잠시 후, 다시 보고를 가지고 왔다.
“현재 오타와 인근으로 이동한 상황입니다.”
“곧장 움직였나 봅니다.”
현재 오타와 인근은 몬스터 군단에게 포위되어 연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미국 A.O. 본부에서 파견된 다수의 능력자도 마찬가지였다.
“엄호에 나설까요?”
“말한 부분을 어길 이유는 없겠지. 관망하는 형태로 두되, 빠짐없이 기록하십시오.”
“예.”
“그럼 신의 기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군요.”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더글라스가 기분 좋게 웃었다.
금탑의 공개가 예상보다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면에는 중국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주변인 러시아와 일본을 부추겨서 행여나 자국의 인재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엄중히 단속을 하고 있었다.
인재가 빠져나가서 금탑의 마법사가 되면 이는 곧 대한민국의 국력 상승으로 이어지고 인접국은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다.
인접국의 국력 상승을 가로막기 위해서 일본과 러시아는 기꺼이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제재는 커다란 불만을 자아냈지만 그들의 정책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어리석은 선택이에요.”
신은 이러한 준성의 행보에 우려를 드러냈다.
그 속에 섞인 질책을 간파한 준성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도 성급한 면은 있었지만 더 이상 숨기는 것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그것뿐인가요?”
“그럼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금탑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에 드러내고자 했고, 시기가 맞아 떨어져서 공개를 했을 뿐입니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게 세상에 풀린다면 큰 파장을 일으킬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풀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걱정은 잠시 접어 두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그를 보며 신은 조용히 고개를 저어 보일 뿐이었다.
금탑의 등장이 커다란 변수란 걸 모르지 않았다. 신의 입장에서 예상할 수 없는 변수의 존재는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우려하는 부분은 알겠습니다. 충분히 주의하고 있으니 믿어달라는 말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군요. 서로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동맹은 쭉 이어질 것입니다.”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제 행동이 불편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닙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요.”
이제 막 신격을 찾은 신의 입장에서 준성은 거슬릴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은 적합자인 세희가 그의 여인이라는 점이고, 인간임에도 그 자체의 무위가 한계를 넘어서 신조차도 소멸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수준임을 알고 있어서였다.
껄끄럽지만 어찌할 수 없는 존재, 그렇기에 더욱 눈에 밟힐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준성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제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각자의 입장을 말하고 싶은가요?”
“예, 저는 지구의 주민으로 제 안전을 최대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누군가에게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지라도.”
“…….”
준성의 말은 마치 속내를 꿰뚫어 보고 하는 듯했다. 그랬기에 신은 침묵했고, 자신의 속내를 조금도 드러내지 않고자 했다.
그 또한 그 이상 파고들지 않으면서 둘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하고 싶은 말의 의미는 뭐죠?”
“서로 존중할 수 있다면 동맹은 영원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새겨 두죠.”
그 말을 끝으로 신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은 준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과의 대화는 서로 좁힐 수 없는 의견 차이를 확인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준성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든지 갈라질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함으로써 긴장감을 가질 수 있고,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준성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심각하게 굳어 있는 세희와 이나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치미는 분노로 씩씩거리는 이나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었어요.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지만 아주 단단히 작심한 것 같아요.”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텔레비전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화면에서는 한창 중국의 대변인이 자국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보였다.
“…….”
그 내용은 금탑을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세계를 수호하는 A.O. 본부의 뒤를 노리는 세력과 절대 양립할 수 없다는 걸 담고 있었다.
“……따라서 금탑의 무리는 제대로 된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무력 집단으로, 한반도를 집어삼킨 뒤 세계로 손을 뻗고 있는 자들이다. 본국은 그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뜻을 품고 있는지 검증할 것이며, 나아가 그들과 연계된 모든 국가의 뜻을 살펴 철저하게 파악하겠다.”
중국의 대변인은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
유창한 중국어로 한 말이지만 그것을 모두 알아들은 준성 등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저들의 행태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걸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죠? 중국이 간이 붓지 않고서는 이렇게 나올 수 없을 텐데.”
금탑에 대한 소문은 이미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미국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준성이 이끄는 단체였고, 중국 A.O. 본부는 이미 여러 차례 쓴맛을 보았기에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하지만 뻗대는 모습을 보이니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이나는 감을 잡지 못했다.
“저들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차분했지만 세희의 음성에도 미약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준성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 하나는 정치적으로 쉽게 양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서 우리에게 뭔가를 얻어 내려는 것일 테고. 다른 하나는 믿을 만한 무언가가 뒤에 있을 거야.”
“믿을 만한 거라면 어떤 거죠?”
“신족이나 악마, 신과 손을 잡았을 수도 있지.”
“……우리를 노리려고 하면 노릴 자들이 너무 많아서 감도 잡기 힘드네요.”
“그만큼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면목이 없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어서 쓴웃음만 짓는 준성이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죠?”
“굳이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어. 다만 상대의 반응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겠지.”
“그거면 되나요?”
“당분간은.”
“네…….”
준성의 말에 대답은 했지만 이나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드리워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현실로 드러났다.
중국의 언론 플레이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연일 강도 높은 비난과 함께 금탑에 대한 검증을 거론했다.
그와 동시에 약속했던 부분에 대한 재검토를 곁들였는데, 포스 운용법의 전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한에 대한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식의 강짜를 부렸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물론, 시민들도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미 끝난 문제를 뒤집어서 다시 거론하겠다는 것은 중국이 그만큼 강하게 나오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인터넷 상에서도 찬반여론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중국놈들 미친 거 아니냐? 북한 준다고 할 때는 언제고 왜 다시 난리냐?
└문제는 한다고 하면 하는 놈들이라는 점임. 중국에 있는 지인이 말해 줬는데 막 군사 동원하고 능력자들도 소집 중이라고 함.
└중국은 몬스터 막아내느라 똥줄 타지 않았냐?
└요즘 몬스터가 잠잠해져서 능력자를 동원하는 게 어렵지 않음. 지금 하는 모습을 보면 전쟁까지 일으킬 태세임.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정말 금탑이라는 곳을 검증해야 함?
수많은 의견이 오가면서 연일 금탑이 거론되었고, 여론은 조금씩 안 좋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몬스터의 습격이 약화되고, 중국 측에서 능력자들을 동원하고, 군사도 소집하면서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었던 것이다.
이는 금탑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들고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한편으로는 강이나가 금탑이라는 곳에 이용을 당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 금탑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던 정부도 움직일 기미를 보였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늘 차분한 세희도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이나는 아까 전부터 준성을 바라보며 그에게 답을 구하고 있었다.
“…….”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 모습이 답답할 법도 하였지만 이나는 끈기 있게 답을 기다렸다.
“내가 결정을 내려 주길 원해?”
“저는 준의 생각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렇다면 당장은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왜죠?”
마음 같아서는 당장 중국으로 쳐들어가서 모두 쓸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준성이 별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하지만 준성은 의아함이 생길 정도로 차분했다.
“당장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어서 그래. 이건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라고 볼 수 있어.”
“무슨 기회요?”
“우리가 망하길 원하는 자들을 추려 낼 수 있는 기회.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여론은 불리하게 돌아갈 거야. 그럼 우리의 파멸을 바라는 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겠지. 그때 움직여서 일망타진하면 될 거야.”
“준의 생각에 동감은 하지만 기다리는 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이해해. 하지만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일이 대응하는 게 아니라 꾹 참고 기다리는 거니까.”
“준이 그렇게 말하니 저도 참고 기다릴게요. 하지만 제 인내심이 어디까지 버텨 줄지 잘 모르겠어요.”
“한 번 벌인 일이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버티면 될 거야. 힘내자.”
“네…….”
원하는 전개가 아니었기에 이나는 양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중국이 전쟁까지 불사할 기세로 압록강과 두만강에 군을 진군시키자, 정치권에서 움직였다.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인지도 알 수 없는 금탑을 위해 전쟁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리고 금탑의 혈맹을 자처한 A.O. 본부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꽈앙!
“이 녀석들이 기어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금탑을 압박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박근태가 불같이 분노했다.
중국의 반응과 여론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감지하고 다방면으로 힘을 써봤지만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하게 흘러갔다.
결국 중국의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여론이 다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되자, 김기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국제 능력자 연맹에 얽매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국제 능력자 연맹 차원에서 중국의 움직임에 유감을 표명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상황이 좋지 않아요. 금탑 측에서는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요.”
“그들에게 힘이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우리나 다른 곳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는 건데.”
한소영의 보고에 박근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온적인 금탑의 반응은 A.O. 본부를 힘들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떻게 할까요?”
“부본부장의 생각은 어떤가?”
“우선 저들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금탑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어요. 저들의 힘이라면 중국이 멋대로 날뛰는 걸 지켜보지 않고 해결할 수도 있죠.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건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하나는 중국의 전력이 예상 이상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기회에 적과 아군을 확실하게 구분 지으려는 거예요. 저는 그중 후자라고 보고 있어요.”
“위기를 자초해서 옥석을 가려내겠다?”
“네, 그럼 금탑이 뿌리를 내리기 좀 더 좋은 토양이 조성될 테니까요. 우리 입장에서는 더 피곤해지겠지만요.”
고개를 젓는 한소영을 보면서 박근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로군.”
“그래야겠죠.”
“으음!”
금탑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에 박근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위기에서 헤쳐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A.O. 본부의 움직임에 정치권에서는 더 이상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전면에 나선 이나는 금탑의 일원으로서 중국으로 향하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쫓겨나듯 중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금탑의 일원으로 나서서 중국 정부와 A.O. 본부장 왕천후와 만남을 갖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동안 금탑을 비난하던 국민들로 하여금 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끝까지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이나와 달리 자신들은 금방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듯한 중국의 모습에 겁을 먹고 입장을 달리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금탑의 움직임은 비난으로 기울던 국민의 여론을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박근태는 고개를 숙이며 준성에게 사과했다. 정치권의 움직임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늦은 판단으로 짧은 시간 동안 금탑은 모진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아니요, 오히려 우리를 위해 A.O. 본부를 너무 열심히 움직이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한 감정이 듭니다.”
“솔직히 이 상황을 이렇게 악화시킬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확인해야 할 것들도 있고, 지금 상황이 오히려 금탑의 뿌리를 더 깊게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작용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이겠죠.”
준성의 말을 들은 박근태는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금탑은 북한에 위치해 있고, 몬스터 필드를 운용하는 것도 그였다. 만약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대한민국 전체에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키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이 너무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 생각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말이죠. 우리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부디 그 말씀이 진실이길 바랄 뿐입니다.”
“…….”
준성은 작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며칠 뒤, 준성을 비롯하여 세희와 이나가 대한민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일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정부에서는 강력한 힘을 지닌 그들이 반발하여 유혈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때문에 소수의 인원만 파견하여 이동하는 것을 감시했다.
“죄송합니다.”
책임자로 나온 이현수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몬스터 대책본부의 그는 준성 등과 안면이 있다는 이유로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다.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나가 인터뷰했던 것처럼 중국 측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래도 죄송합니다.”
거듭되는 사과에 미소 지어 보인 준성은 가볍게 손을 저을 뿐이었다.
“이제 시작이야.”
준성의 중얼거림에 이나가 눈을 빛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날 이렇게 죽일 년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 대가는 톡톡히 받아내겠어요.”
“그럼 가볼까.”
독이 잔뜩 오른 그녀의 모습에 준성은 미소를 지었다.
파아앗!
그들 앞에 순백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한 걸음 안으로 내딛는 순간, 빛과 함께 셋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