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23)
제103장 분란의 씨앗
차원의 통로 파괴에 나섰던 준성과 이나는 제각각 안도와 심란함을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저는 이해를 못하겠어요.”
“뭘?”
“타나와 리엔 언니가 왜 그런 행보를 보이는 건지 말이에요. 하는 행동을 보면 신족을 적대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데 정확하게 무슨 목표로 움직이는지 알 수 없어요.”
이나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애당초 엘리엔을 죽이고자 달려들었던 것이 타나였고, 지금 붙어 다니는 것도 정상적인 범주에서 이해하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간단해, 둘 위에 누군가가 있어서 그래.”
“누군가가 있다고요?”
“그러지 않으면 물과 기름 같은 둘이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그렇지만…… 정체가 누군지도 모르잖아요.”
타나와 엘리엔을 부릴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이나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준은 알고 있나요?”
“대충은. 아직 확실한 건 없어.”
“그럼 만나봐야 하는 게 아닌가요?”
“안 그래도 한 번 만나보려고 생각 중이야.”
어깨를 으쓱한 준성이 미소 지어 보였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세희와 이나였다.
금탑이라는 새로운 단체 소속으로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대중에게 각인시킨 둘은 중국으로 갈 당시, A.O. 본부 능력자들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든 신위를 선보였다.
이는 세계 10강으로 꼽히는 왕천후를 비롯하여 다수의 능력자들이 바보가 되어 버렸으니 그만큼 대중이 느끼는 충격은 큰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마수를 뿌리쳤지만 대한민국에서 그들을 버린 것과 같아 뜨거운 감자였지만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열풍 속에서 준성은 제외되어 있었는데, 둘이 속한 금탑의 주인이라는 점과 더 강한 무위를 지녔다고 알려졌지만 보여 준 것이 없었기에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렇게 올 줄은 몰랐군. 보고 싶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면목이 없어서.”
대한민국 A.O. 본부장 박근태는 갑자기 방문한 준성을 보며 말했다. 그 속에는 준성 등이 중국으로 갈 때 막아주지 못한 자책의 감정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부탁? 우리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조금 무리가 갈 수도 있을 거라서. 일단 들어보고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뭔데 그러나?”
묘한 미소를 지은 준성은 박근태 옆에 앉아 있는 한소영에게 시선을 옮겼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음에 이어진 말은 둘 모두 뜨끔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제가 머무는 집 근처, 그리고 대한민국 전역에 펼쳐져 있는 공간 이동 감지기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박근태는 입을 굳게 다물었고, 한소영은 눈에 띄게 동요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래전부터 준성의 동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하던 것을 짚고 넘어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피할 길은 없어 보였다. 감춰야 할 사안이지만 그러다가는 사이만 나빠질 거란 생각에 한소영이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이런 말이 믿기지 않겠지만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요.”
“종잡을 수 없는 제 행보를 옆에서 보고 있었으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을 해도 편하게 여겨질 리가 없었다.
어두워진 한소영의 표정을 보던 준성은 박근태에게 시선을 옮겼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바로 공간 이동 감지기를 세계 전역에 설치하는 것입니다.”
“그럴 이유가 있나? 탐지하려고 한 건 미안하지만 공간 이동을 감지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예산을 소모한다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계 전역의 모든 공간 이동의 여파를 감지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세계 전역이라면…… 신족 때문이군.”
김기정이 시크릿 코드를 받아들였기에 신족에 대한 위험도는 다른 국가보다 대한민국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준성도 이 사실을 알기에 과감하게 용건을 꺼내 든 것이다.
“인간 세계에 녹아든 신족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지 짐작하기 힘듭니다. 그런 만큼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지요. 공간 이동 감지기는 꽤 유용하게 사용될 겁니다.”
“국제 능력자 연맹에 건의하도록 하지.”
“당위성을 설명하면 충분히 먹힐 겁니다.”
신족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박근태는 준성을 보며 우려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으로 신족들을 속일 수 있나?”
완곡하게 말했지만 준성에게 들킨 것을 신족을 속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준성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지금은 많이 밀려났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의 위치를 지키며 뭇 다른 국가의 맹주 역할을 해나갔다. 대격변 이후 A.O. 본부가 주요 전력으로 급부상했지만 가장 중요한 곳은 대통령이 머무는 백악관이었다.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능력의 등장으로 백악관의 경계태세는 기존의 무기 체계를 비롯하여 능력자들의 잠입까지 막을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누구도 허락 없이 드나들 수 없는 견고한 요새였지만 지금 그곳을 거침없이 들어선 한 인영이 존재했다.
“자네는 누구인가?”
로저 리차즈.
현 미국 대통령이자, 대격변의 혼란을 강력한 카리스마로 종식시킨 지도자였다. 하얗게 변했지만 굵은 눈썹과 각진 얼굴은 그의 성품이 얼마나 굳건한지 알게 해주었다.
“내 이름은 테라, 신세계의 신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최근에 나타난 신족이라는 이들인가?”
“맞아, 이제 신으로 군림할 그들을 이끄는 게 바로 나니까.”
“미국을, 그리고 인간의 저력을 얕보면 안 될 것 같은데, 너무 오만하군.”
강한 확신이 실린 말에 테라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나는 기본적으로 자기 주제 파악하는 걸 중요하게 여겨서 알아서 숙이고 오는 이들을 좋아하지.”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물론. 그리고 훌륭해.”
짝짝짝!
돌연 박수를 치는 테라. 의아함이 담긴 로저 리차즈 대통령을 보며 말했다.
“나와의 대화에 응한 것 자체가 날 잡아 두기 위해 시간을 끌려고 했던 거잖아. 자신의 목숨을 미끼로 행동하는 인간들은 많지 않은데 정말 훌륭해.”
“나 하나의 목숨으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값진 것은 없다.”
“멋진 말이야. 그래서 더욱 끌리기도 하고. 어때, 내 제안을 받아들여서 인간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건?”
“그런 일은 없다. 우리 미국과 인간들은 승리할 것이다!”
처음부터 변하지 않는 확고한 믿음이었다. 두 눈 가득 실린 신념을 보면서 테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대화는 결렬된 거네. 처음부터 이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뜻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은 인간일수록 겁이 많지만 반대로 책임감이 넘치는 인간은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낸다. 눈앞의 인간도 그럴 만한 자격을 지녔지만 테라의 안중에 없는 사실이었다.
테라의 눈이 녹빛으로 물드는 순간, 잔뜩 굳어 있던 로저 리차즈 대통령의 표정이 풀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렇게 하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지. 다시 대화를 해볼까, 대통령?”
“……그러지.”
처음과 다르게 친근감이 묻어 나오는 어조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테라는 자신의 요구조건을 하나씩 언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상기류를 감지했을 뿐이다.
하지만 드러나는 정황들은 이상기류를 의심으로 바꿨고, 타나의 등장과 엘리엔의 이탈, 재등장은 확신을 굳히게 만들어 주었다.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기에 섣불리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준성은 확신을 가지고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아카식 레코드 접속이다. 차원의 도서관은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지식의 보고였다.
준성은 이곳에서 원하는 걸 얻고, 엘리엔의 육체를 재구성할 수 있었지만 일정 수준 보안이 걸려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신족의 개입으로 그들이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 의도적으로 정보를 막아 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정황이 포착되면서 준성은 다른 존재의 개입을 눈치채게 되었다.
[…….]육신이란 탈을 벗고 차원의 도서관에 모습을 드러낸 준성은 묵묵히 앞을 응시했다.
그가 찾고자 하는 정보는 바로 ‘신’이었다.
오늘의 목적은 정보의 탐색이 아니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다음에 일어난 현상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음이었다.
차원의 도서관은 준성의 의지에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 이전까지 잠금이 걸려 있으면 그러한 기미까지 보였지만 지금은 준성의 키워드 입력 자체가 무효 처리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든 준성이 입을 열었다.
[나오십시오.]육성이 아닌 영혼의 울림이 차원의 도서관 곳곳에 퍼져 나갔다.
끝없이 퍼져 나가는 목소리는 공간에 공간으로 흘러들었다. 생각만으로 의지를 전달하는 최고의 비기였지만 응답할 존재가 없는 곳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그러나 준성에게는 이 침묵이 만들어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단지 찔러 보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고, 그동안 자신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오늘은 물러날 수 없었다.
이미 마음속에 강한 확신이 서 있었다.
[다 알고 있습니다.]다시 울려 퍼지는 것은 준성의 목소리뿐.
이쯤이면 아무도 없는 공간이라 치부하겠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두 번이나 응답하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하나, 협박이었다.
[지켜보고만 있다면 이곳을 파괴하겠습니다. 차원의 모든 지식이 모인 이곳이 파괴되면 곤란한 것은 제가 아니라 당신일 터.]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준성은 양손을 천천히 머리 위로 들었다. 그러자 강렬한 힘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차원의 도서관에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신언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차원의 도서관마저 무로 돌릴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담고 있었다.
그것을 발현하려고 할 때, 한줄기 의지가 신언을 파고들면서 거짓말처럼 차원을 파괴하는 힘을 허공에 흩어버렸다.
“마법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진심이었나?”
준성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인상 좋은 청년이었다. 육신이 존재할 수 없는 차원의 도서관이었지만 그는 육체를 유지하고, 마음껏 육성으로 말을 꺼냈다.
“그렇게 날 찾은 이유가 뭐지, 찌꺼기?”
[…….]눈앞의 청년, 지구의 신을 보며 준성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찌꺼기.
그 단어 하나만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존재할 거라 생각하던 신을 만나는데 성공했지만 눈앞의 그는 자신을 안 좋게 보고 있는 듯했다.
잔뜩 굳은 준성의 표정을 보며 지구의 신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곳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부적합해 보이니 자리를 옮기지.”
딱!
손가락을 튕기기 무섭게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영혼이 빨려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순간, 차원의 도서관에서 튕겨 나가 금빛 잔디가 깔린 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
자신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강제로 이동시킨 힘에 준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강력한 힘이 움직여야 할지 짐작하기조차 힘들었다.
“리엔, 타나…….”
눈앞에 나타난 두 여인을 보며 준성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거센 파도처럼 흔들리는 엘리엔의 눈동자를.
준성이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두 여인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금빛으로 이뤄진 탁자와 의자였다.
신은 자리에 앉아 준성에게 빈자리를 권했다.
“이 정도면 대화를 나눌 곳은 되겠지. 앉아라, 찌꺼기치고 제법 호사스러운 자리지만.”
“나를 적대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가 자신을 적대하는 것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다. 왜 신이 타나와 엘리엔을 거뒀는지, 자신을 찌꺼기라 칭하는지 알아야 했다.
준성의 물음에 신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반문했다.
“차원의 질서를 뒤흔든 것이 누구인지 알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우습군.”
“…….”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정확하게 꿰뚫는 말에 준성은 침묵했다.
“넌 차원에서 분리되어 배출되어야 할 찌꺼기다. 내가 그 이상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럼 지금 가만두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차원의 질서를 흔든 것은 유지해야 하는 신에게 있어 가장 큰 적대행위였다. 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준성은 화제를 돌렸다.
“간단하다. 찌꺼기 네가 신이랍시고 차원을 넘어온 녀석들을 상대하는 데 제법 유용하거든.”
“……고작 그것뿐?”
“그 용도도 없으면 널 살려둘 이유가 없지.”
당장 눈앞의 신에게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큼 준성의 감정이 들끓었다.
신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네 덕분에 제법 쓸 만한 장난감들도 얻었고.”
“당신은……!”
준성의 양손이 붉은빛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두 줄기 기운이 신에게 쏘아졌다.
콰아앙!
공간 전체가 어그러지면서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준성의 눈빛이 더욱 강렬해졌고, 신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지워졌다.
“허튼 짓 하지 마라, 찌꺼기가.”
째앵!
준성이 시도한 제련제강의 마법이 파훼되면서 곳곳에 공간의 균열이 일어났다. 당장 전신을 집어삼킬 것처럼 요동쳤지만 준성이나 신은 서로를 바라본 채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할 말입니다. 괜한 짓을 하면 설사 신이라고 해도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근래 본 개그 중 가장 재미있군. 반쪽짜리에 불과한 네가 그게 가능할 거라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내 변덕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지?”
“…….”
준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두 눈에 각오를 담아 경고의 의미를 보낼 뿐.
“네가 쓸모 있다는 걸 드러내는 이상,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봐 주지. 한 가지 명심할 건, 다음부터 멋대로 차원의 도서관에 접속하면 그때는 소멸시켜 주겠다, 찌꺼기.”
“나를 적대하면 후회할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날 재미있게 해줬다, 가라.”
신의 손짓과 함께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준성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그 힘에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깨진 결계 너머로 보이는 엘리엔과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그녀의 입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참고 기다리라고?’
무슨 의미일까? 당장은 알 수 없었다.
거대한 공간의 균열을 만들어 내며 거처로 돌아온 준성을 보고 세희와 이나가 깜짝 놀라 다가왔다.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한다는 말을 했던 그였다. 하지만 돌연 육체가 사라지더니, 거대한 힘을 동반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영문 모를 현상에 놀라는 건 당연했다.
“준! 괜찮아요?”
이나가 준성의 팔다리를 더듬으며 물었다. 망연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정말 괜찮은 게 맞죠?”
“……맞아, 조금 충격을 받았을 뿐이야. 안 그래도 할 이야기가 있어.”
정신에 큰 충격을 받았던 준성은 세희와 이나에게 자신이 생각으로만 간직했던 내용을 털어놓았다.
오래전부터 보인 타나와 엘리엔의 움직임으로 얻은 정보와 최근 상황의 흐름 등으로 유추해서 탄생한 신, 이곳 지구의 신에 관한 내용이었다.
충격적인 말에 세희와 이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적합자인 세희는 신에게 이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의식의 차단을 설정해야 했다.
“그럼 리엔 언니가 그런 것도 모두?”
“맞아, 아마 신과 어떤 계약으로 얽혀 있는 게 분명해.”
신과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와 동등한 힘을 지닌다. 엘리엔이 지구의 신과 얽혀 있다면 그 강제력에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분명했다.
“맙소사.”
“아마 리엔에게 사정이 있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돌아갈 때 참고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신이 준을 적대한다고요. 어떻게 하죠?”
“아무래도 적과 아군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그동안 자신의 평온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타차원의 신과 드래곤은 이익에 따라 합치고 갈라지길 반복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명확하게 해야만 했다.
“신족과 지구의 신은 도저히 힘을 합칠 수 없는 적이야. 날 제거하려는 마음이 확고하니까. 남은 건 신과 드래곤인데, 세희와 얽혀 있는 이상 일정 수준의 관계는 유지할 수 있어. 드래곤과는 좀 더 강한 협력 체계가 필요하고.”
이전보다 악화된 상황이었다.
“우리가 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어요.”
“예전이라면 괜찮다고 말했을 테지만 지금은 달라.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해.”
“노력할게요, 그게 쉽지 않지만.”
권능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 최우선인 만큼 이나는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졌다. 그러다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세희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세희 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응? 아, 응.”
“충격이 클 수 있어도 정신을 다잡아요.”
“그래야지. 나도 많이 노력할게. 그래야만 하니까.”
평소와 다른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나였지만 끝까지 캐묻지는 않았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걸까?”
대화를 끝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세희는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구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준성을 적대하고, 제거하려 든다는 건 앞으로 생존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준성이 차원 이동을 결심했을 때 만류할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랬다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평온한 나날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자신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방금 전 준성에게 신의 제안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어차피 받아들일 만한 것도 아니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자신 또한 전력에 보탬이 되어 했다. 신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그날, 신과 만남을 갖게 되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세희에게 물어보았다.
“생각은 해보셨나요?”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어요. 제가 신이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저와 비슷하네요, 저도 오랜 시간 동안 세월을 관조하면서 지친다는 감정을 느낄 줄 몰랐으니까.”
신이 짓는 미소는 세희의 것과 흡사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둘의 감정이 정확하게 교차했다.
“만약 신이 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건가요?”
“아직 결심이 서지 않았다면 나중에 듣도록 해요. 신이 된다는 건 어설픈 각오로 할 수 없으니까.”
단호한 말에 세희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 더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적합자인 당신에게 매정하게 대할 수는 없죠. 맛보기에 불과하지만 한 번 느껴만 보는 건 어떤가요?”
“가능한가요?”
“적합자가 원한다면.”
“그럼…… 부탁드릴게요.”
신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잠시 느껴보기만 하는 것이다. 세희의 대답에 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대한민국 A.O. 본부에서 제공한 공간 이동 감지기와 금탑의 영역을 엮으면 이런 반응을 감지해 낼 수 있어요.”
삐빅! 삐비빅!
세희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준성의 앞에 빼곡한 좌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눈을 빛내며 그것을 읽던 그는 이내 탄성을 터뜨렸다.
“대단한데?”
“증폭 기능이 접목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존재해요. 이걸 설치하고 두 가지를 더 조화롭게 만들면 아시아와 태평양 전역을 감시하에 둘 수 있어요. 그리고 준성이 말했던 차원의 통로가 열리는 곳도 감시할 수 있죠.”
짝짝짝!
차오르는 감동을 견디지 못한 준성은 박수를 쳤다. 그만큼 방금 전 세희가 설명한 능력은 그마저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한반도를 뒤덮은 마나를 이용한 공간 이동 감지기의 증폭이었다.
국제 능력자 연맹에서 설치를 약속했지만 지구 전체를 감시망에 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몇몇 지점을 중점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세희는 이것을 두 기능의 접목으로 해결한 것이다.
범위가 아시아와 태평양에 국한되지만 이것만으로도 세계의 절반을 감시할 수 있다.
다른 절반은 알지 못하더라도 절반을 확실하게 손안에 쥘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부족한 예산을 유럽과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배정하고 공간 이동 감지기를 설치하면 되니 말이다.
“이게 가능할 줄 몰랐어. 정말 수고했어, 큰 도움이 될 거야.”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이런 발상이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어떤 원리인지 설명해 줄 수 있어?”
준성의 부탁에 세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정리 중이라서 힘들어요. 이번에 얻은 깨달음이 큰 도움이 된 거라서…… 확실하게 이론으로 정립하면 줄게요.”
“그럼 어쩔 수 없고. 그래도 수고했어. 이게 구현되면 앞으로 많은 부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거야. 세희가 있어서 다행이야.”
준성의 말에 세희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