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30)
제110장 갈등, 대립
신족의 실체를 밝힌 이나의 인터뷰는 전 세계를 들끓게 만들었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북아메리카 국가들은 물론, 유럽과 중동 국가들은 신족의 기적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열렬히 환호를 보내는 중이었다.
곳곳에 신전이 들어서고, 그들에게 기도를 올리며 기적을 기원하는 신자들에게 이나의 인터뷰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들은 아직까지 신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금탑과 강이나를 보며 미개한 이들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신족에게 적대감을 가진 목소리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이나가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몇몇 사람들’에 주목했고, 실제로 신족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의 숫자는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다수의 사람들은 믿음을 보내고 있음에도 오히려 더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제기했다.
기적은 모두에게 미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보여 주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신족의 군림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충돌까지 일으켰지만 정부는 신족의 편이었다.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A.O. 본부는 정부의 직속 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고 정부는 신족의 편의를 봐주는 한통속에 불과했다.
각지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와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잠잠하던 반 능력자 연맹이 움직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가 신족의 개로 전락한 상황에서 그들만이 신족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곳곳에서 번져 갔으나, 실제 그들의 전력은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각국 정부에서 반 능력자 연맹 소속 능력자들을 토벌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희망의 불씨는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었다.
“흥! 그래도 눈치는 있어서 모습은 드러내지 않네요.”
“조금 노골적으로 보였을 거야. 그러니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겠지.”
“이번에 오면 따끔한 맛을 보여 주려고 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너무 아쉬워요.”
인터뷰에서 의도한 바를 이뤄 냈지만 반쪽짜리 성공이었기에 이나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녀가 인터뷰를 하면서 두 가지 의도를 가졌는데, 첫 번째는 신족의 실체를 알림으로써 안정화되어 가는 강대국에 불안요소를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성공했고, 지금도 곳곳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역할을 했다.
두 번째는 바로 신족의 유인이었다. 칼리가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신족을 유인, 그들을 제거하고자 했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준성은 신족의 등장으로 금탑의 감시망 어디가 허술해졌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 알고자 했지만 그들은 미끼를 물지 않았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안 좋게 여기는 건데?”
“전에 보았을 때 저를 보던 눈이 기억이 나요, 한참 못하다고 비웃던 눈동자가요. 그때 저는 반드시 그 녀석을 꺾어 주겠다고 결심했어요.”
칼리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이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들도 이곳이 우리 터전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지구 신의 존재까지 알아차린 이상 무리를 범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대한민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까지 금탑의 영역으로 삼는다면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게 된다. 이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에 예전처럼 천방지축으로 날뛰지 않았다.
“수련이나 열심히 해야겠어요. 그리고 종종 인터뷰를 하고. 계속 긁다 보면 성질 급한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겠죠.”
“좋은 생각이야.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 열심히 지원해 줄 테니까.”
“네, 어서 리엔 언니가 원래 상태로 회복되어야 검을 좀 겨룰 텐데.”
“아마 시간이 필요할 거야. 정신적인 부분은 회복하는 게 그리 쉽지 않으니까.”
“그냥 해본 말이에요. 리엔 언니가 무사히 회복할 수 있도록 기원하고 있어요.”
이나의 말에 준성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늦은 시간 자신을 찾아온 타나를 보며 준성은 의아함을 드러냈다.
좀처럼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심각하게 표정을 굳힌 채 찾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사안이 가볍지 않다는 걸 의미했으니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말해.”
“엘리엔에 관한 거야. 그녀가 지구 신에게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지금까지 좀처럼 상태가 좋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말하려고.”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
타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보통 심각한 게 아닌 것처럼 보였다. 준성이 표정을 굳히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엘리엔을 좋아하지 않아. 처음 보자마자 주인을 죽이려고 들었고, 나중에 뻔뻔하게 사랑한다고 고백했기 때문이야.”
“들어서 알고 있어.”
“그래서 이곳에서 엘리엔을 봤을 때 죽이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어. 한 번 품은 살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엘리엔의 감정 깊숙한 곳에는 인간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었으니까.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고, 어떻게든 파멸시키려고 했어.”
“음!”
타나가 가진 생각이 예상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준성은 침음을 흘렸다.
“엘리엔이 주인을 벗어나 세상에 나왔을 때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어. 그녀를 지구 신에게 데려갔고 계약을 맺게 했지. 그리고 나는 증오의 감정을 제거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속삭였어. 너는 주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미안한 감정만 가지고 있는 거라고.”
“…….”
준성의 표정이 굳었다. 감정을 다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엘리엔이 타나의 속삭임을 들었다면 보였을 반응은 뻔했다.
“그다음은 내 예상대로 되었어. 엘리엔은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갖지 못했고, 지구 신의 계략에 말려들어서 정신이 붕괴되어 갔지. 지금이라도 벗어나서 다행이지만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일이 벌어졌을 거야.”
“이 말을 내게 하는 이유는 뭐야?”
감추려고 했다면 끝까지 숨길 수 있었다.
엘리엔이 누군가에게 먼저 이야기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타나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말을 하는지 준성은 알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잘못한 부분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말하고 싶었어. 숨겨서 좋을 게 없고, 지금이라도 고쳐 나가는 게 좋을 테니까. 나는 누군가처럼 끝까지 감춰서 문제를 만들 생각이 없어.”
끝까지 엘리엔을 향해 독설을 내뱉는 모습을 보며 준성은 실소를 흘렸다.
“만약 그 정도로 리엔이 무너질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지금은 계약 파기의 영향으로 잠시 혼란스러워 할 뿐이야. 일시적인 현상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 그러니 타나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걱정? 내가 엘리엔 따위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야. 단지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을 뿐.”
자리에서 일어난 타나는 걸음을 옮겨 방을 벗어났다. 그때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준성은 혼자 남게 되자, 표정을 굳혔다.
“만약 타나의 말이 리엔에의 마음에 생각보다 깊게 박혀 들었다면…….”
본래 정신이 강하지 않은 엘리엔이기에 그 여파는 클 것이다.
“직접 정신을 살펴야 하나? 하지만 그것도 좋지 않아.”
불안정한 것도 그녀만의 규칙으로 정립되었기에 준성이 살피는 건 좋지 못했다.
이리저리 고심하던 준성이 내린 결정은 엘리엔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만약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진다면 그때 나서서 도와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몽롱했던 정신이 통로를 벗어나 수면 위로 부상하자 엘리엔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엘리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오랜만이야, 엘리엔.”
“…….”
절대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자 엘리엔의 고개가 느릿하게 돌아갔다. 그곳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히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런, 날 대하는 태도가 너무 야박한 것 아닌가? 정상적인 거래를 했다가 일방적으로 배신을 당한 건 바로 나인데 말이야.”
“우리가 만나야 할 이유는 없어. 날 속인 것도 너 아닌가?”
“내용이 어떻든 이미 성립한 계약은 신성한 거라고. 내 말이 틀려?”
“난 그 내용들을 받아들인 적 없어.”
그것 때문에 준성이 치른 대가가 얼마나 컸던가. 뒤늦게 MP Trade에서 거래되는 마나로 대체한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양도 어마어마해서 중소 도시 하나를 사고도 남음이었다.
“하지만 합의를 했지. 불합리한 계약도 계약인 걸 잊으면 안 되지.”
“계약은 파기가 됐어. 난 이제 돌아가겠어.”
“워워, 아직 나는 파기에 합의한 적이 없는데 무슨 파기를 논하는 거야?”
“파기됐어.”
“설마 그 녀석이 한 걸 말하는 건가? 너는 그게 완벽한 파기라고 생각해?”
“……그럼 파기가 안 됐다고?”
“그러니 내가 네 의식에 개입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세상의 일이라는 게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 이렇게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는 법이지.”
“…….”
지구 신에게 휘말리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지만 제대로 아는 내용이 없었기에 엘리엔은 마냥 강하게 나갈 수 없었다.
만약 준성이 계약 파기한 것이 거짓이라면? 자신은 여전히 지구 신에게 얽매인 상황이란 말이 된다.
“너도 알고 있잖아?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단지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단 걸.”
“틀려. 그런 헛소리에 넘어가지 않아.”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한 번쯤 고려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 그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면 지금 네가 이렇게 혼란에 빠져 있어야 할 이유가 없을 텐데.”
“그, 그건…….”
엘리엔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안 그래도 신과 계약을 파기했음에도 혼란스러운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준성은 신이 정신을 헤집었다고 했지만 엘리엔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이해도 못 했다.
준성을 믿고 있지만 신의 말에 흔들리는 것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더 이상 혼란을 느낄 필요가 없어. 나는 네가 지닌 모든 것을 받아 줄 수 있으니까.”
“…….”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자 엘리엔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몸을 움찔 떨며 손을 움직이는 순간, 지구 신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뭐하는 거지?”
뒤에 나타난 지구 신이 반문했다. 몸을 돌린 엘리엔이 어느새 손에 쥐어진 검을 들며 말했다.
“……그래도 난 그를 믿어. 날 사랑해 주던 남자와 날 이용하던 신, 둘 중 누구를 믿을지는 분명해.”
“음! 계약 여파가 남아 있어서 이용해 보려고 했는데 이미 제 상태로 돌아갔음인가.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였으면 됐을 텐데 아쉽네.”
처음부터 자신을 이용할 생각이 가득했다는 걸 깨닫자, 엘리엔의 표정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꺼져!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
“아쉽지만 물러날 수밖에.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 네가 가장 빛날 수 있는 것은 내게 왔을 때란 걸.”
쐐액!
엘리엔은 대답 대신 검을 날렸다.
“리엔?”
준성은 깊은 새벽에 자신을 찾아온 엘리엔을 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녀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했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 내가 신과 맺은 계약이 파기된 게 사실인가?”
“사실이에요. 다만 완전한 파기라고 보기는 어렵죠.”
“완전한 파기가 아니라고?”
“계약에는 엄연히 유효기간이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계약은 끝났지만 그 계약에 관해서 간섭할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해요. 그래서 이곳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라고 한 것이지만.”
“…….”
준성의 대답에 엘리엔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그녀가 말해주길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방금 전…… 지구 신이 날 찾아왔었다.”
“그래서요?”
“내가 속고 있다고 하더군.”
“음! 그리고 신의 유혹을 뿌리쳐서 돌아온 거군요.”
“어떻게 알았지?”
“만약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리엔이 이곳에 있을 수 없을 테니까요.”
“……맞아. 내게 매력적인 제안을 하며 속삭였지만 거절했어. 하지만 나는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어.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니 우습지?”
“전혀요.”
준성은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쇠를 단단하게 하려면 두드리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 것처럼 리엔은 더 강해지기 위해 시련을 겪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흔들려도 좋아요. 나에 대한 믿음만 잃지 않으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가능할까?”
“가능하니까 하는 말이에요. 그 정도도 못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차원도 넘어오지 못했을 테니까.”
준성의 굳건한 표정에 엘리엔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변함없이 자신을 믿어주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아무런 확신도 갖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만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하게. 그러면 자연히 회복될 거예요.”
“노력하겠다.”
고개를 끄덕인 엘리엔이 전의를 다졌다.
이미 계약이 파기된 엘리엔에게 지구 신이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준성에게 경계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는 금탑의 경계망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정신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요소였기에 좀 더 자신에게 우호적인 이들을 확보할 필요성을 느꼈다.
“……완전한 신이 되었군.”
“이 정도면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 도와주신 덕분이니 이 은혜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끝까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던 신의 모습을 한 악마를 보며 준성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겉모습은 달라졌어도 한 번 보는 순간 알아차릴 정도로 악마 특유의 기운이 존재했다.
‘악마의 기질을 지닌 신의 등장이라, 오히려 나을지도.’
기존의 신은 끝까지 본래 힘을 회복하고자 자신을 적대했다. 그에 반해 악마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과거의 원한도 잊을 만큼 유연한 사고가 가능했다.
이 부분을 이용할 수 있다면 유용한 패로 사용할 수 있었다.
‘반대의 경우도 고려해야겠지만.’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었다. 악마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면 자신이 제거했을 것이고, 이는 신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진 드래곤도 부정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별히 은혜랄 것도 없지. 서로 원하는 것을 취했을 뿐이니까.”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네요.”
“……말투까지 따라하는 건가?”
“제 존재 자체가 신에게서 파생된 것. 제가 지닌 수많은 자아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가 뭔가요? 그냥 찾아올 리 없을 텐데.”
“지구 신의 존재를 알고 있나?”
준성의 물음에 악마 신은 잠시 준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럼 이야기가 편하겠군.”
자신이 모르는 지구 신과의 관계가 있는 것임이 분명했지만 계산이 빠른 악마의 성향상,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곳으로 마음이 기울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는 지구 신과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한 뒤 말했다.
“조만간 대립이 이어질 텐데 대답을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어.”
“늦는다면?”
“나와 협력할 생각이 없다고 봐야겠지.”
“후환을 제거하려고 들 가능성이 높겠군요. 이전 기억이 떠올라서 몸이 떨립니다.”
가늘게 몸을 떨며 말하는 모습에 준성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불편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좋은 대답을 기다리지.”
“아아,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얻은 준성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공간 이동을 통해 자리를 벗어났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악마 신은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낮게 웃으며 말했다.
“참 열심히 움직이지. 그렇지 않아?”
“그는 언제나 열심히였지.”
“내가 이렇게 유용한 패를 지닌 것도 모르는 눈치고. 그렇게 대단하게 보이던 그의 운명을 내가 정할 수 있다니, 역시 세상은 살고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지.”
자아도취에 빠져 중얼거리는 악마를 지켜보던 인영이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언제쯤 움직일 수 있지?”
“좀 더 지켜봐야지. 신족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죽으러 가겠다고 하면 말릴 생각은 없다만.”
“…….”
검은 인영은 침묵했다. 그만큼 신족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고들 틈이 없다는 의미였다.
“곧 때가 올 테니 기다리도록.”
“그러지.”
즐겁게 웃음을 흘린 악마 신의 말에 검은 인영은 그렇게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 이것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방금 전해진 소식에 준성과 이나는 허탈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MP Trade 설치 건에 대해서 중국이 입장을 전해 온 것이다.
“모든 조건을 수용할 테니 관리자로 금탑의 인원을 파견해 달라…….”
“파견하는 건 상관이 없죠. 그런데 우리 중에 하나라니요.”
중국 측 입장은 이랬다. MP Trade에 대해서 모든 요구 조건을 들어줄 테니 대신 금탑의 핵심 인원 한 명을 상주시켜 달라고 했다.
그 인원은 준성 혹은 세희, 이나 중 한 명이었다.
“들어줄 수 없기는 한데.”
“너무 괘씸해요. 저들 좋은 일이고 우리를 이용하려고 하면서 찔러 보다니요.”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까 당분간 접어둘 수밖에.”
준성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당분간 MP Trade 설치에 대해서는 보류하는 것. 현재 중국의 사정이 제법 다급한 것을 감안하면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답이 나오게 될 것이다.
중앙아시아를 통해 전해지는 신족의 존재감은 가벼이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주인! 부탁이 있다!]여느 때처럼 조용한가 싶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영웅이는 앓는 소리를 내며 애원했다.
“부탁이라니?”
[날 좀 강하게 만들어 달라!]“응?”
이런 형태의 부탁은 처음 들었기에 준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나와 대련에서 처참하게 당하고는 했지만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것을 통감하는 식으로 말했던 것이다.
“무슨 의미로 하는 거야?”
[주인이 처음으로 만든 골렘! 그 여자 때문이다.]“타나가 잘못이라도 저질렀어?”
[아주 악질이다! 매일 나를 찾아와서 굴리고 있다. 웬만하면 견뎌내겠지만 조금 더 나가면 산산조각 나서 완전히 소멸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강해질 방법이 있다면 제발, 제발 좀 동원해 줬으면 좋겠다.]“미안하지만 더 강해질 방법은 없어. 수련을 하는 것밖에. 기본적인 성능 자체는 타나가 너보다 더 약했거든. 그러니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정말 방법이 없는가?]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에고였지만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미 완성된 골렘인 영웅이를 더 개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준성은 손을 들어 사과했다.
“미안.”
[크윽!]신음을 흘리는 영웅의 음성에서 얼마나 크게 상심했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준성은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더 미안한 게 있어.”
[뭔가, 주인?]“우리 얘기, 타나가 다 듣고 있었네.”
[뭐, 뭐? 히익!]고개를 돌린 영웅이는 뒤에 서 있는 타나를 보고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한 행동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다가온 그녀는 준성을 보며 말했다.
“잠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자리를 비워 주면 안 될까?”
[가면 안 된다! 지금 가면 주군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역작이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 가면 안 돼!]“골렘이 좀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 그걸 시행하기 위해서는 단둘이 있어야 해.”
“그래? 그런 방법이 있다면 지켜보고 싶지만…… 타나가 그렇다니 따르도록 할게. 부탁해.”
그 말과 함께 준성의 몸이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주인! 주인! 안 돼!]영웅이의 절규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지만 그는 못 들은 척 외면했다.
그리고 절규가 비명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준성은 엘리엔이 시간을 가지고 휴식을 취하면 본래 상태로 돌아올 거라 낙관했다. 하지만 세희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정신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걸 바라다니, 서방도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다른 경우에는 순조롭게 나아졌잖아?”
“단순히 인위적인 작용이 아니라 신이 주무른 거라고. 그러니 제 상태를 찾을 리 없지. 이건 휴식도 좋지만 자신이 이상 있는 걸 자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더 중요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치유되어야지.”
세희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알고 시간을 보낼수록 증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엘리엔의 상태는 그리 낙관적이지 못했기에 정신없이 몰아쳐서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이런 방향으로 흐를 줄 몰랐는데. 내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네.”
자신의 무지로 엘리엔이 더 심한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는 것에 준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답답하기는 세희도 마찬가지였다.
“어휴! 난 그것도 모르고 서방에게 맡기고 있었네.”
“어떻게 할까?”
이제라도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는데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시인하며 상태가 더 심각해졌다고 말하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내가 할게.”
“방법이 있어?”
“정신이 바짝 들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도 하고 싶은 말도 있었고, 내가 찾아가서 몇 마디 해서 부지런히 움직이도록 만들게.”
“……믿어도 되는 거지?”
“물론!”
입가에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세희였지만 그 모습이 그리 믿음직한 느낌은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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