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37)
제117장 길들이기
신족이 세계를 떠난 뒤, 그들의 영향력은 빠른 속도로 축소되었다.
그들을 믿고 열광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기적을 체험했다. 하지만 신족이 사라지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자 믿음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제껏 신족의 기적에 기대왔던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고, A.O. 본부의 독립이 대두됨에 따라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미 독일은 미하엘을 내세워 A.O. 본부를 독립시켰지만 각 국의 정부는 상황에 따라 입장이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족이라는 방파제가 사라지면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전보다 게으르고 약해진 능력자들의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제2의 몬스터 대란.
유럽 각국을 휩쓸며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흐름이 다시 한 번 이어지고 있었다.
꽈앙!
영웅이가 휘두른 환두대도가 탑을 무너뜨리면서 또 하나의 몬스터 필드가 소멸되었다.
[크하하! 이 정도는 어렵지 않지.]압도적인 무위로 몬스터 필드를 소탕한 영웅이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세계 각국이 몬스터 웨이브에 휘말리게 되자 금탑에 대한 중요성이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상승하기 시작했다.
각국 정부에 소속된 능력자들의 실력은 크게 늘지 않은 반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의 숫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수히 많은 능력자들이 전투 속에서 목숨을 잃었고, 몇몇 도시가 휩쓸림에 따라 사람들은 이 혼란 속에서 자신들을 구해 줬던 신의 기사를 찾았다.
그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나이트 골렘, 영웅이였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강력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몬스터를 휩쓰는 그는 전장의 지배자 그 자체였다.
준성은 영웅이를 국제 능력자 연맹의 움직임과 보조를 맞춰 활용하였고, 금탑 소속의 기사가 발휘하는 엄청난 무위에 각 국 정부는 기대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과거 최강의 무장이었던 영웅이는 자부심이 넘치는 성격이었지만 최근에 들어와서는 달라졌다.
[아직은 아니다. 더 강해져야 돼! 그 마녀를 제거하기 위해서는…….]호탕한 웃음을 지운 뒤 날카롭게 안광을 뿌리며 결의를 다졌다.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지만 이 정도로 타나를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욱 강해져서 공간마저 갈라 버리는 검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근거리와 원거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공격에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의 요구였지만 그만큼 영웅이가 겪은 타나의 강함은 완전무결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열의는 모습을 드러낸 준성에게 발산했다.
[주인! 다음은 어디인가?]“프랑스 동부 쪽이야.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니 부지런히 움직이자. 전투를 치르면 치를수록 힘의 운용이 자유로워지고 있으니까.”
[물론이다. 내가 힘을 길러서 반드시 그 마녀를 꺾어 주겠다.]“그래, 응원할게.”
차마 헛된 꿈을 꾸는 거라 말을 할 수 없었던 준성은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들어 김기정은 국제 능력자 연맹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한때 허수아비로 전락한 적이 있지만 현재에 이르러 국제 능력자 연맹은 각국 능력자들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전과 같은 위상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괜찮습니다. 각국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A.O. 본부를 독립시킨 곳에서 전폭적으로 협력하겠다는 공문을 보내고 있습니다.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고, 포스 운용법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세계의 강대국들이 신족의 손에 놀아나는 사이, 김기정은 꾸준히 포스 운용법을 개량해 나갔다. 지금에 이르러 준성이 전해준 것보다 훨씬 발전된 형태가 되어 능력자들의 전력 상승을 도왔다.
“저들이 매달릴 수밖에 없겠군요.”
“소소한 보답에 지나지 않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한 명이라도 많은 능력자가 살아남아야 전력을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 준성은 무감각한 모습을 보였으나, 김기정은 최대한 많은 능력자들이 살아남길 원했다.
“제가 원하는 건 하나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이미 준성이 베풀어 준 것은 평생 갚아도 모자랄 만큼 컸다. 김기정은 자신의 역량이 닿는 한 그에게 협력할 용의가 있었다.
“지원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수석 의장님이 최대한 정치적으로 이득을 얻길 원합니다.”
“왜입니까?”
정치적인 공작에 대해서 김기정은 다소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 맡은 임무를 완벽하게 해낸다면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성의 생각은 달랐다.
“다시 능력자들이 신족의 손에 놀아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으음!”
“그걸 위해서는 수석 의장님이 보다 강한 권한을 쥐고, 모든 능력자들이 존경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정치적인 공작은 당연히 곁들여져야지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리 내키지 않는 제안이지만 지금 사분오열이 된 능력자들을 하나로 규합할 인물은 자신밖에 없었다.
만약 더글라스 브라운이 살아 있었다면 그에게 그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생사를 알 수 없기에 자신이 나서야만 했다.
“제가 원하는 건 그것뿐입니다. 수석 의장님의 달라진 행보를 기대하겠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김기정을 보며 준성은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어?”
헤스티아를 바라보는 테라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테라, 당신이 보는 그대로에요.”
“…….”
테라는 입을 다물었고, 헤스티아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뒤에 도열한 신족들을 보며 테라는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문을 열었다.
“네게 동족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했지만 기껏 저쪽 세계에서 잡은 기반 전체를 날려 버리라는 말을 한 적은 없어. 그런데 네가 하는 행동은 내가 정한 룰을 위반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나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면?”
“내가 생각할 땐 최선이 아니야.”
테라와 헤스티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신경전을 벌였다.
헤스티아는 처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자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이 전해졌다.
“신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우리를 제거하려고 나섰어요. 내 역량으로는 극복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철수한다는 결정을 내렸어요. 처음부터 테라 당신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신까지 나섰다고?”
“인간들이 가진 무기에 부여된 신성이 신의 육체를 무너뜨릴 정도였으니까요. 우리조차 무사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동족의 명운을 걸 수 없었어요.”
“알겠어.”
신과 인간들이 나섰다는 말에 테라는 더 이상 헤스티아를 압박할 수 없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동족의 희생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그녀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런 결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곳의 기반을 버려서는 안 됐어.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어. 지금 우선해야 할 건 신의 제거야. 헤스티아 너도 힘을 보태.”
“물론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시켜 주시길.”
“…….”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헤스티아를 보며 테라는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실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헤스티아의 행동을 보면 먼저 털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먼 곳까지 도달했다.
“곧 깨닫겠지. 지금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진실이 품은 무게는 그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신족이 본래 세계로 돌아가도록 유도를 하여 당초 계획대로 그들을 쫓아냈다는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온전한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걸 준성은 잘 알고 있었다.
차원을 건너간 신족은 악마 신과 충돌을 일으킬 것이고, 어느 쪽이든 승리를 거두면 후에 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적과 적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이이제이와 같았으나, 그와 비슷한 방법을 지구 신이 자신에게 사용하려고 했다는 걸 준성은 모르지 않았다.
그걸 위해 자신에게 신성을 건네주었지 않은가.
받은 것은 많은데 결과물이 신통치 않다면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서방…….”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세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준성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제지했다.
금탑의 전력을 총동원하여 지구 신을 만나러 가자는 말이 있었지만 그와 같은 행동은 대놓고 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자신이 직접 행동을 보임으로써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다음 결정을 내리는 것은 지구 신이었고, 적이 될지 믿고 의지하는 아군이 될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터였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신호를 보내. 내가 모두 데리고 갈 테니까.”
“아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지구 신도 생각이 있을 테고 내가 무슨 의도로 행동을 벌인 건지 모르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차하면 도움을 청하도록 할게.”
“알았어.”
세희는 홀로 지구 신과 담판을 지으러 가는 준성이 너무 대책이 없어 보였지만 그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그가 이뤄낸 성과를 보면 어떤 비장의 수단이 있음이 분명했으니까.
그것까지 말해 주지 않는 게 야속했지만 지금은 믿고 지켜볼 때였다.
우웅! 스파앗!
“……바보.”
준성의 몸이 빛과 함께 자취를 감추자, 세희는 숨겨 놨던 진심을 꺼내 놓았다.
그래도 섭섭한 건 섭섭한 것이다.
준성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구 신과 만남을 가졌던 화단이었다.
올림푸스(Olympus)라 불리는 이곳은 오로지 지구 신을 위한 공간이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존재할 수 있고, 없는 곳이기도 했다.
화단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는 준성의 귓가로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파고들었다.
“이곳에 오다니,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는데?”
모습을 드러낸 지구 신의 눈에서 날카로운 안광이 발산되고 있었다. 전신이 얼어붙을 것처럼 싸늘한 한기가 전해졌지만 준성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원하는 바를 모두 이행해서 찾아왔는데?”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인 준성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여유로운 준성과 달리, 지구 신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당장에라도 살을 저밀 것 같은 기세가 전해졌지만 그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럼 무슨 틀린 말이라도? 신족을 무찔러 달라고 했고 나는 그들이 더 이상 이 세계에 누를 끼치지 못하도록 만들었는데? 원하던 바를 충족시켰으니 서로 좋은 게 아닌가?”
“…….”
지구 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늘 유쾌한 웃음을 짓던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당장에라도 공격을 전개할 것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풀풀 풍겼다.
“한 가지는 알겠군.”
“뭐지?”
“오늘 내 인내심을 시험해 보려 하는 걸.”
파아앗!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구 신이 손을 뻗었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강렬한 힘이 전신을 옥죄었다. 두 개의 힘이 얽히면서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지구 신의 몸이 거세게 흔들렸다.
준성의 공격을 봉쇄했지만 그 여파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것이다.
“먼저 당하고 있을 성격이 아니라서. 역시 신의 육체로군. 별다른 타격이 없는 걸 보니.”
“네놈이…….”
“처음부터 이용해 먹으려고 하더니 이제 와서 배신이랄 게 있나?”
사납게 중얼거리는 지구 신을 보며 준성은 손을 뻗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어느 정도 수위까지 견뎌내는가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살기를 비칠 때, 충돌은 피할 수 없고 한 가지 가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신언을 시전했다.
꽈앙! 꽈과과광!
육체에 과부하가 걸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전력을 발휘해서 지구 신을 압박해 나갔다.
모든 의지를 신언에 실어 지구 신의 육체를 소멸시키고자 했다.
주변에 감도는 강력한 반탄력이 신언을 무위로 돌렸지만 준성의 눈에 보였다. 잠깐이지만 육체 곳곳에 실금이 일어나는 것을 말이다.
곧장 회복을 했지만 한순간이나마 신언이 먹혀들었다는 건 고무될 만한 소식이었다.
꽈아앙!
“으음!”
충격의 여파를 이겨내고자 뒤로 물러났지만 입가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신음을 참을 수는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준성은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지구 신을 바라보았다. 강력한 신의 육체가 모든 충격을 흡수했지만 그것만 보더라도 한 가지 확신은 가질 수 있었다.
“이대로 계속 충돌할 생각인가?”
“…….”
지구 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위협에 벌벌 떨어야 할 준성이 발칙하게 덤벼들었지만,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간 위화감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무엇보다 준성은 아직 필요한 존재였다. 본인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으나, 지구 신 입장에서 준성이라는 체스 말은 꽤나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돌아가라.”
“오늘 일이 마무리 되었는가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
“……신족을 치우는 일을 맡겼으니 완수한 것으로 하지.”
혼을 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지만 지구 신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다.
“이해해 줘서 고맙군. 다음에는 좀 더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도록 노력하지.”
그 말을 끝으로 준성은 몸을 돌려 화단을 벗어났다. 여유가 넘쳐 나는 행동에 손이 꿈틀거렸지만 사라질 때까지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지?”
세희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마법의 기초를 갈고닦던 제시카는 근래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
본래 미국 A.O. 본부 출신인 그녀는 더글라스를 따라 단체를 벗어났다. 하지만 미국의 안보를 위해 움직이던 능력자였다. 그러다 보니 미국 A.O. 본부가 독립하고 새로운 본부장이 선출되었다는 소식에 몇 가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 있었고, 조국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반 능력자 연맹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하나 자신이 입을 열지 않는다면 그 정도 과거쯤은 얼마든지 묻어둘 것이다.
하지만 금탑에서 마법을 배우고 있다는 점이 걸리게 만들었다.
이미 많은 신세를 졌고, 부족한 자신에게 마법이라는 걸 가르쳐 주는데 차마 배신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민이 많은가 보네?”
“아! 네.”
모습을 드러낸 세희가 묻자, 제시카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향이 그리워?”
“네, 네? 조, 조금요.”
귀신같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모습에 제시카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아마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거야. 예전에 속해 있던 조직이 다시 부활하고 활동을 재개한다고 하면 누구나 끌리게 마련이지.”
“…….”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자 제시카는 긍정도, 부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은 쿵쾅거리며 거세게 뛰어 그녀의 심정을 대변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지금 미국 A.O. 본부는 네가 속해 있던 조직과 이름만 같아. 본부장도, 구성원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지.”
“그래도 제가 있던 곳인데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단지 그것뿐이잖아? 네가 그곳으로 돌아가면 그 녀석들이 진심으로 웃으면서 환영을 해줄 것 같아?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할 실력자가 왔는데?”
반년 동안 죽음의 전장을 전전한 제시카의 실력은 일반 능력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세희가 가늠하길 현재 제시카의 실력은 세계 10강이라 불렸던 강자들에게 근접한 수준이었다.
“일단은 실력을 키워. 지금 수준으로는 다른 사람의 질투를 사고 경쟁자로 각인될 뿐이야.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야 해. 그럼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하겠지.”
“정말 그럴까요?”
“그럼! 누가 감히 시비를 걸겠어? 요즘 같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힘이야. 개인의 양심과 선의 따위는 필요하지 않아. 우선 힘이 있어야 말이 먹히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 네가 힘이 있었으면 그 지옥 같은 전장에 끌려갔을 거라 생각해?”
“……가지 않았겠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지옥이 있다면 바로 그곳일 터였다. 이미 깊은 트라우마로 각인된 전장은 힘이 가져다주는 매력이 와 닿게 만들었다.
“그게 바로 힘이 가져다주는 매력이야. 지금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강해지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어.”
“강해지려면 마법을 열심히 익히고요?”
“물론이지. 내가 눈여겨볼 정도로 넌 마법하고 잘 어울려. 수식을 외우는 것도 빠르고. 마나를 쌓기만 하면 훌륭한 마법사가 될 거야. 그러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 지금은 강해질 것만 생각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 말을 따르도록 할게요. 힘이 주는 매력은 거절할 수 없는 거니깐.”
“좋은 판단이야.”
두 눈에 생기가 어리는 모습을 보며 세희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지구 신과 만남을 가지고 돌아오자, 이야기를 듣고자 여인들이 모여들었다.
“이야기는 잘됐어요?”
무사히 돌아온 준성을 보며 이나가 물어보았지만 준성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 최악이야. 지구 신은 처음부터 나를 이용할 생각밖에 없었어. 그런 와중에 뜻대로 따르지 않으니 그 분노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는데…….”
그를 곁에서 지켜봤던 이나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한 차례 충돌이 벌어졌어.”
“준! 괜찮아요?”
“괜찮아. 간단한 충돌밖에 벌어지지 않았어. 그리고 그 행동을 보면서 몇 가지 가설도 세울 수 있었어.”
“가설이라니요?”
“우선 여태까지 보인 행동과 다르게 당장 나를 제거할 수 없는 무슨 이유가 있어. 그게 활용도를 놓고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아니면 힘이 부족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
“우리 전부 힘을 합쳐도 당해내기 힘들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게 아니면 내가 필요하단 뜻이라는 거지. 자신의 분노를 애써 억누를 정도만큼의.”
지구 신의 감정 변화를 옆에서 지켜본 준성이었다. 신이기에 완벽해야 하지만 세월이 주는 경험이 부족한 지구 신은 아직 자신의 감정 변화를 제어하지 못했다.
“전자로 생각하면 이야기도 얼추 맞아떨어져. 아직 신족과 악마 신, 누구도 제거하지 않은 상황에서 날 제거하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질 테니까. 대신 전투를 벌일 사람이 없으니 피곤해지겠지.”
그것 외에도 한 가지 더 생각한 게 있지만 언급하지 않는 준성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몇 가지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 행동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그러니 당분간 외부 활동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수련에 힘써 줘. 돌아다니더라도 안전지역만 다니고.”
여기서 말하는 안전지역은 마나화 시킨 곳을 말했다.
“그러니 A.O. 본부를 최대한 우리 편으로 만들어 둬야 해. 앞으로 세계는 능력자들이 이끌어갈 확률이 높아. 미래를 위해서도 그게 가장 좋고.”
“그래서 자꾸 금탑과 연계를 하려고 하잖아요. 가장 견고한 끈이 바로 MP Trade고.”
신족의 지배를 벗어나기 무섭게 각국에서 속속 A.O. 본부를 독립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MP Trade의 설치였다.
여분의 마나를 판매하여 돈을 받는 이 시스템은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일본,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엄청난 크기의 시장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달리 보면 금탑의 영역이라는 걸 의미하기도 했고, 마나가 담긴 아티팩트를 구입하는 것도 가능했다.
“모두가 우리를 원하는 상황은 나쁘지 않아. MP Trade는 몬스터 필드를 최대한 줄이고 금탑의 가호도 받을 수 있는 수단이니까. 우리가 지닌 최고의 패 중 하나니까 적절하게 활용해야겠지.”
“요즘 자꾸 나한테 매달려요. MP Trade를 설치하고 싶다고.”
“모두 거절하도록 해. MP Trade는 정부와 협상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 아티팩트 판매만으로 감당하지 못하면 힘들 수밖에 없어.”
아티팩트 시장에는 한계가 있고, 준성이 벌어드는 돈의 양이 전 세계를 커버하기에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의 포스를 마나로 바꾸는 작업은 준성에게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MP Trade 설치를 늦춰 시간을 벌면서 구상한 돈벌이가 있었다.
“앞으로 MP Trade의 유지는 아티팩트 판매와 포스 변환기가 주가 될 거야. 그리고 각국의 A.O. 본부는 우리에게 비싼 값에 마나를 사서 포스로 변환을 해야겠지.”
돈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 그래서 준성이 구상한 것은 여분의 마나를 판매하고, 그것을 포스로 변환시켜 능력자들이 체내에 쌓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강물을 퍼서 내다파는 것만큼 날강도에 가까운 수법이지만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만큼 사업의 실체를 알아차릴 수 있는 이도 없었다.
“와…… 진짜 장난 아니네요. 준이랑 같은 편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만약 내가 손님이었으면 고마워하면서 호구 짓을 했을 거 아니에요.”
“다 우리를 위한 거라고 해둬.”
“그래도 어느 한 곳을 정해줘요. 요즘 언론에서 어떻게 할지 촉각이 곤두서 있단 말이에요.”
“그래도 처음 협력한 곳에 도움을 줘야겠지. 난 독일에 가장 먼저 MP Trade를 설치할까 해.”
준성의 이러한 행동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바로 말을 잘 들으면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는 것.
노골적인 길들이기였지만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각국에서는 MP Trade의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확실하게 목줄을 채워 둘 기회는 이번밖에 없어.”
준성의 의견은 확고하기 그지없었다.
악랄하기 그지없는 수법에 다른 여인들, 심지어 감정의 기복이 없는 타나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