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45)
제125장 워프 게이트
워프 게이트의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것은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은 워프 게이트가 설치될 경우 득실을 따지면서 기사를 냈고, 사람들은 진정으로 세계가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정말 설치가 가능한 건가?”
“가능하니 그런 말이 나온 거겠죠?”
결론이 나올 때까지 옆으로 비켜서려던 준성은 갑자기 찾아와서 질문을 던지는 박근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정말 가능한가 보군. 공간 이동 능력자가 아닌 이들이 자유롭게 세계를 누비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이었다니…….”
“몇 가지 제약은 있지만 혁명에 가까운 건 사실이죠.”
“하지만 워프 게이트에 대한 우려가 제법 크지. 특히 켕기는 게 많은 사람들은 더더욱.”
박근태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준성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정부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겁니까?”
“그럴 수밖에. 소수가 아닌 다수가 이동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니 말일세.”
박근태의 우려는 사실이었다. 기존의 공간 이동은 많아야 다섯 이상을 동반하지 못했다. 하지만 흘러나온 소문에 의하면 워프 게이트는 하루에 수백 명을 이동시킬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이동한 자들이 정부에 안 좋은 감정을 지닌 테러리스트라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벌어지는 셈이었다.
“자의식 과잉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말이죠. 워프 게이트가 그렇게 허술하게 운영될 거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실수입니다.”
“실제 워프 게이트를 본 적이 없으니 말일세. 그들로서도 이야기 없던 게 불쑥 튀어나오니 당혹스러울 테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워프 게이트는 대세론으로 부상할 것이고, 세계 곳곳에 설치될 겁니다. 이곳에 오셔서 하는 말이지만, 저는 대한민국 A.O. 본부에서 워프 게이트 설치에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금탑의 이익이 아닌 인류를 위해서라도요.”
“으음!”
강경한 준성의 말에 박근태도 더 이상 주장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워프 게이트 설치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입장이었지만 준성의 의견이 그러하다면 곧 워프 게이트는 세계 곳곳에 설치될 것이다.
지구 신과 대화를 마친 대신족은 올림푸스를 벗어났다.
방금 전까지 둘러싸고 있던 팽팽한 공기가 흩어지면서 한결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협상이 끝날 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네이트가 테라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저자세로 나갈 필요가 있어?”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야. 신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세계에서 파생된 존재에 지나지 않잖아? 우리 힘으로도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문제인데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가 힘드네.”
“차원이 합쳐지는 과정은 우리만으로 감당하기 힘들다.”
“그건 동족을 너무 무시하는 말이야, 테라. 우리 힘만으로도 충분하잖아? 단지 방해요소가 많아서 우려를 하는 거잖아. 그렇다면 이 기회에 신도 그렇고 금탑이라는 인간 무리도 해치워 버리는 건 어때?”
여태까지 해온 테라의 행동을 모두 부정하자, 지켜보고 있던 헤스티아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만해, 네이트! 지금 테라의 판단을 무시하는 거야?”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키는 게 누구인데 이러는 걸까나?”
“뭐라고?”
“왜? 한번 해보려고? 조용히 지켜봐 주니까 우스워 보여?”
엘 카스일을 밀어내고 대신족 반열에 올라선 네이트는 그들 무리에서 하위권에 속하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호전적이고 전투를 즐기는 네이트는 자신이 그런 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안 되겠구나.”
싸늘하게 표정을 굳힌 헤스티아가 양팔을 늘어뜨리자, 네이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들썩였다. 일촉즉발의 순간, 묵묵히 상황을 주시하던 테라가 입을 열었다.
“그만해라.”
“흥! 테라가 살려준 줄 알아.”
“…….”
네이트의 으름장에 헤스티아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테라를 쳐다보며 왜 말렸는지 무언의 질문을 하였다.
“신을 끌어들였지만 아직 모자라. 금탑에 가는 건 네이트 너다.”
“내가?”
“그를 찾아가서 협력을 구하도록.”
“거부하면 후환 제거를 위해 죽여도 돼?”
“된다. 하지만 그게 쉬울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라고 말해주고 싶군.”
“흥! 내가 그걸 무서워할 것 같아? 가서 대체 어떤 녀석들이어서 그런 대우를 받는 건지 낱낱이 살펴보도록 하겠어. 그리고 기왕이면 헤스티아, 저 겁쟁이는 빼주고.”
헤스티아가 폭발하기 전, 네이트는 뒤로 물러나더니 공간 이동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천방지축인 그녀의 행동에 헤스티아가 불만 어린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테라!”
“귀 안 먹었다. 왜 그러지?”
“네이트가 저러는 걸 지켜만 볼 건가요?”
“그러지 않으면? 신의 반열에 올라선 이상 누군가의 조언보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돼. 금탑에 가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할 텐데요?”
“그렇다면 그게 네이트의 운명이겠지. 아마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동족을 사지로 밀어 넣고 태연자약한 모습에 헤스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대체 무엇을 믿고 이렇게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면 좋으련만.”
테라의 의중을 알지 못하는 헤스티아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독일의 지속적인 요구와 워프 게이트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의 흐름은 설치에 급물살을 타게 만들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 생각한 정부에서는 워프 게이트 설치를 위해 몇 가지 요구를 했고, 준성은 부분적으로 수용을 했다.
그중 하나가 정부에서 지정된 장소에 설치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워프 게이트의 안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요구했다.
요구를 받아들인 준성은 곧장 워프 게이트는 설치하고 안정성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에 들어갔다.
“으흐흐! 독일 여행이라고! 독일 여행!”
“그렇게 좋냐?”
“넌 안 좋냐? 이번 실험에서 얻는 돈도 상당하고 여차하면 워프 게이트 관리직에 취직할 수도 있는데!”
올해 스물아홉 살 취업준비생 박현수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옆에 있던 친구, 양호준은 고개를 저으면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했다.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았어. 잘못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 여태까지 금탑이 실망을 시킨 적이 있는 것 같아? 전혀 없어. 엘리미스의 완벽한 운영 능력과 금탑주의 마법이 결합되면 기적은 발생해! 나는 그 기회를 잡은 거고!”
이번 워프 게이트 실험을 위해 모집 공고를 올린 것이 바로 엘리미스였다.
백 명을 먼저 선별하였고, 그들에게 실험 참여를 대가로 삼천만 원의 수당과 보름 동안 이어지는 독일 패키지 여행, 그리고 워프 게이트 관리직 가산점을 내걸었다.
목숨을 건 대가로 삼천만 원은 그리 크지 않지만 금탑주가 직접 장담한 만큼 실패할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박현수는 그 점을 믿었기에 바로 접수를 한 것이고, 양호준도 아는 부분이기에 거절하지 않고 실험에 참가했다.
다만 저렇게 들떠 있는 박현수의 태도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둘은 정해진 날짜에 워프 게이트로 이동했고, 눈앞에 등장한 순백의 빛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저, 저게 워프 게이트?”
“그런 것 같네.”
타원형으로 이루어진 워프 게이트는 약 5미터에 달하는 크기였고, 알 수 없는 힘이 일렁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움직인 박현수와 양호준은 첫 번째로 이동하는 조에 소속되었다.
그 전까지 들떠 있던 박현수는 저도 모르는 사이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호, 호준아! 나 떨고 있냐?”
“방금 전까지 괜찮다며?”
“자,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니까 그러지! 만약 내가 살아서 돌아오면 진짜 착하게 산다. 이거 거짓말 아니고 진심이다.”
“출발!”
관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둘을 비롯한 첫 번째 선발대가 워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순백의 빛이 덮쳐 오면서 시야를 앗아갔지만 눈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너무 환해서 눈을 꼭 감고 보이지 않는 통로를 걷는 느낌, 그 정도였다.
어느 순간 빛이 사라지자, 박현수와 양호준은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광경을 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어?”
와아아아!
눈에 비친 광경은 수많은 서양인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박수를 치거나 휘파람을 불며 격려를 보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던 둘이 눈을 마주치더니 그제야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이거 그러니까…… 성공한 거지?”
“그럼 여기가 독일?”
“독일? 맞아! 독일이야! 와하하하! 어때? 내가 성공한다고 했어, 안 했어? 이거 완전 공짜 돈 먹고 독일 여행도 하는 거잖아! 만세다! 만세! 엘리미스 만세!”
웃음을 터뜨린 박현수는 연신 만세를 외쳤다. 같이 즐거워하던 양호준은 독일인의 주목을 한껏 받고 있는 박현수를 보곤 슬그머니 멀어졌다.
이러한 모습이 사진에 찍히면서 독일의 유력 일간지에 보도되었고, 대한민국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워프 게이트의 안정성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이날 실험에 참여한 백 명의 사람이 모두 안전하게 독일로 여행 떠난 걸 보면 성공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예상했던 거긴 하지만.”
곧 일어날 거대한 변화를 생각하며 준성은 미소를 지었다.
워프 게이트의 등장은 세계를 빠른 변화 속으로 몰아넣었다.
아직 설치된 것은 대한민국-독일로 이어지는 것밖에 없었으나, 이미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유럽 각 국에서는 독일로 모여들고, 대한민국으로 이동하면서 그 효과는 톡톡히 드러나고 있었다.
성공적인 사례가 만들어지자 MP Trade를 설치한 국가에서 워프 게이트 설치에 대한 문의가 들어왔다. 아직 MP Trade가 없는 국가는 발트 3국의 성공적인 사례를 확인하고 컨소시엄을 구성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러한 변화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빨랐으나, 모든 건 신족과 지구 신을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전역을 뒤덮은 감시망에 한 줄기 기척이 감지되는 순간, 준성은 밖으로 나왔다.
“이건…….”
진득하면서 기분 나쁜 기운이 강렬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것을 감지한 다른 여인들도 밖에 나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기운은 더욱 크기를 키워 나갔다.
아직까지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미간을 지그시 모으던 준성은 옆에 서 있던 타나가 골든 피닉스를 꺼내 들고 하늘에 조준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 외쳤다.
“타나!”
피융!
활시위를 놓기 무섭게 푸른 기운이 응집되어 하늘로 쏘아졌다.
마치 하늘을 꿰뚫은 것처럼 치솟은 화살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더니, 수십 개의 균열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직!
실금이 번져 나간 하늘은 부서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풍경임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제법인데?”
테라의 명령을 받고 모습을 드러낸 네이트는 자신의 결계를 손쉽게 깨버린 타나를 보며 싱긋 웃음을 지었다.
“대신족이군.”
네이트의 정체를 한눈에 꿰뚫어 본 준성이 중얼거렸다.
“네가 테라가 말하던 인간이야? 확실히 대단한걸?”
“신족과 우리는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란 걸 알 텐데? 테라의 말을 듣고 온 건가.”
“정답! 협력을 구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내가 오게 되었어.”
싱긋 웃는 네이트의 모습은 아름다웠으나 준성은 현혹되지 않았다.
“협력이라면 차원에 관련된 내용이겠지.”
“맞아, 이야기하기 편하겠네.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거든. 조금 과격한 방법을 사용할까 생각했었는데.”
“과격한 방법이라면?”
“흐응, 알고 싶어?”
“모르는 척할 필요는 없지.”
도발 섞인 준성의 말에 네이트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이내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표했다.
“농담이야, 농담. 엘 카스일이 어떻게 소멸됐는지 알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무리수를 두겠어? 그 눈, 내가 걸려들면 가차 없이 달려들겠다는 의지가 전해지고 있어.”
“그래서 용건은?”
“차원에 관련된 게 맞아. 테라가 어느 정도 이야기는 했다고 들었거든. 말로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빠르겠네.”
파아앗!
네이트가 손을 들기 무섭게 순백의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나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준성의 제지에 더 이상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주변을 장악한 순백의 빛은 고운 가루로 변하는가 싶더니 환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삼인칭 관찰자 시점이 된 그들이 본 것은 푸른 행성 지구였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이었다.
몇 차례 지각변동이 이루어지면서 조금씩 모습이 바뀌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거대한 파동과 함께 바다에서 거대한 대륙이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거대한 힘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면서 영향을 주었고, 곧이어 일어난 것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인간이 쌓아 올린 빌딩은 무너지고 있었으며, 항구 도시는 거대한 해일에 의해 휩쓸려 도시 자체가 수몰되었다.
곳곳에 뛰쳐나온 몬스터의 공격에 인간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한 끼 식사거리로 전락했다.
그야말로 재해, 세계의 문명 자체가 후퇴하는 커다란 재앙이 닥친 것이다.
“…….”
“어때, 무서운 일이지?”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지만 네이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방금 전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지만 준성은 개의치 않는 얼굴로 되물었다.
“이걸 순순히 믿으라는 건가?”
“믿어야지. 안 그러면 큰일이 날 텐데.”
“하지만 아쉬운 게 있어서 찾아온 건 신족이지. 언제부터 신족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여기저기 협력을 요청하고 다녔지? 자신들이 이 풍요로운 문명을 손에 넣으려고 한 게 아닌가?”
“흥! 이깟 문명, 너희 인간들 따위는 없어도 금방 재건할 수 있어. 내가 이곳에 찾아온 건 테라의 부탁이 있어서야. 착각하지 말아줄래?”
“믿는다고 치고, 테라가 우리에게 바라는 건?”
“간단해. 아까 전 영상을 봤지? 곧 차원이 합쳐지면서 거대한 대륙이 떠오를 거야.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발생할 거고, 다른 대륙이 그 여파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거야. 테라가 원하는 건 이 충격파를 같이 해소하자는 거지. 아참, 이곳의 신도 협력하기로 했어.”
“…….”
준성은 긍정도, 부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세계가 멸망할 만큼 커다란 여파가 발생하게 된 이상, 자신이 나서야 하는 건 당연했다.
단지 저들의 말이 어느 정도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단하려고 했을 뿐이다.
“받아들이지. 그 과정에서 인간들이 도울 만한 게 있나?”
“없어. 인간들의 도움이라고 해봤자 별 쓸모도 없을 텐데.”
“그렇군. 알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협력하도록 하지.”
“좋은 판단이야. 난 우리들만으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테라의 생각은 다르더라고.”
“언제 벌어지는 거지?”
“그건 잘 모르겠네. 머지않은 시기일 테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봐. 때가 되면 테라가 말해 줄 테니. 그럼 안녕.”
살랑살랑 손을 흔든 네이트는 목적한 바를 이루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준성은 곧 떠오른다는 대륙을 떠올리며 표정을 굳혔다.
곧 떠오를 대륙의 존재는 은밀하게 각 국 정상에게 흘렸다.
구체적인 크기는 말하지 않았지만 아프리카보다 약간 작은 대륙이 등장할 거란 이야기는 큰 파장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언론의 통제로 일반인은 모르지만 대륙의 등장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계 주가는 요동쳤다.
“서방은 이런 경고가 저들에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아마 먹혀들지 않겠지.”
“그런데 왜 헛수고를 하는 거야?”
“미리 언질을 줘야 저들이 준비할 시간을 주지. 내가 걱정하는 건 각 국 정부의 반응이 아니라 사람들이 겪을 충격 때문이야. 아마 내가 무서워서라도 대놓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없겠지.”
“내 생각은 다른데? 아마 대륙을 차지하려고 열심히 움직일걸.”
“부인할 수 없는 게 슬프긴 하네.”
대륙의 존재를 알리면서 준성은 저들이 자중하고 기다리는 걸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고, 새로운 대륙은 어느 국가의 국기도 꼽히지 않은 곳이다.
즉, 먼저 차지하면 임자가 되는 공백지인 셈이다.
준성은 그 대륙의 지배자가 신족이라고 경고했지만 말로 해서 먹혀들 경고였으면 입이 아프도록 떠들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자중하길 기대해야지. 충격파가 해소된다고 해도 피해가 전혀 없는 건 아닐 테니까.”
“그 신족이 보여준 게 사실이라고 믿나 보네.”
“경박한 태도와 다르게 두 눈에 떠오른 건 진실이었어. 그리고 차원 너머에서 대륙을 보았던 것도 사실이고.”
차원 너머 대륙을 돌아다닐 때, 준성이 본 대륙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것이 고스란히 지구로 넘어온다고 봐도 무방했기에 위화감이 없었다.
“내가 본 거랑 비슷해. 역시 서방이야.”
“그야…… 세희는 신의 눈을 갖고 있잖아.”
“들켰네.”
“들키긴, 내가 확신한 데에는 본 것과 네 반응이 있어서 그런데.”
“날 믿어주는 건 서방밖에 없다니까.”
“그것과 별개로 사람들이 내 경고를 알아들었길 원해. 괜한 피해가 발생하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준성은 진심으로 지금의 상황을 걱정했다.
워프 게이트의 등장은 세계를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정식으로 개설된 워프 게이트는 대한민국과 독일의 왕래가 자유롭게 만들었다.
하루 다섯 차례밖에 운영되지 않고, 회당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이 백 명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워프 게이트의 존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잡아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각 국에서 욕심을 내는 건 당연했는데, 이번에 준성에게서 흘러나온 신대륙설은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신대륙을 손에 넣으면 대한민국은 세계를 호령하는 강국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
몬스터 대책본부 이현수의 부탁에 준성은 입을 다물었다. 싸늘하게 빛나는 준성의 눈을 보며 멈칫했지만 신대륙의 존재는 대한민국에게 반드시 필요했다.
“분명히 신대륙은 신족들이 살아가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금탑주님의 신위라면 신족을 물리칠 수 있지 않습니까? 신족을 물리치면 거대한 대륙의 소유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것입니다. 탑주님이라면 그들의 불만을 억누르고 대륙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대한민국은 그 뒤를 따라 조국의 영광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이렇듯 맹목적인 성향을 지녔다. 그래야 국가의 영광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이현수였으나 신대륙의 등장 앞에서 평정을 지킬 수 없었다.
준성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탑주님!”
“좋은 관계가 유지될 때 조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대륙은 신족이 살아가는 곳이고, 지금 그들을 잘못 자극하면 인류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현수가 말을 이어 나가려고 했지만 다음에 이어진 준성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신대륙을 손에 넣으면 왜 당신들에게 권리를 양보할 거라 생각합니까?”
“…….”
“돌아가는 길은 배웅하지 않겠습니다.”
침묵하는 이현수에게 축객령을 내린 준성은 표정을 굳힌 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양 어깨를 축 늘어뜨린 이현수는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신대륙에 욕심을 내는 건 비단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었다. 준성과 관계가 있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부터 시작해서 아무런 연관도 없는 국가의 관계자가 준성을 만나고 싶어 했다.
모든 국가가 드러내는 영토 야욕에 준성은 고개를 저었다.
“괜히 이야기를 했나?”
지구 신의 초대를 받은 준성은 잠시 망설였지만 수락을 했다. 신족의 존재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고, 저들이 지구 신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냉기가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는 둘이었다.
미리 마련된 의자에 앉은 준성은 지구 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그는 입매를 비틀며 말문을 열었다.
“신족에게 제안을 받았다고 들었다. 힘을 보태겠다고 했지?”
“이 세계가 멸망하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그 말하는 걸 보니 신족들이 제안한 게 맞나 보군.”
“맞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협력하지 않겠다고 말을 하면 나를 소멸시키려고 죽자 살자 달려들 기세였으니까.”
“…….”
사실을 확인한 준성은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와 마주하기 싫은 것은 지구 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늘 초대한 건 차원이 합쳐질 때까지 적대하지 않겠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받아들이지.”
“그리고…… 아니다, 돌아가라.”
뭐라 말을 하려던 지구 신은 더 말을 잇지 않고 준성에게 말했다.
순간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준성의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준성은 생각에 잠긴 지구 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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