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47)
제127장 태고의 괴물
타나를 차원 너머로 보낸 뒤, 준성의 적극적인 개입에 따라 세계 각지에 일어난 혼란은 빠른 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시위에 임하던 사람들은 준성이 내어준 일회용 마나 분사기를 통해 제정신을 차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구심점 없이 집단에 의해 움직이던 시위는 머리가 사라지면서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고, 국정 마비 지경에 이르렀던 몇몇 국가는 위기를 극복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던 혼란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의아한 마음을 가졌다.
자신들이 무슨 이유로 격렬하게 시위에 임했는지 이유를 알고자 했던 것이다.
그다음부터 끝없이 이유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고, 한 가지 도출된 결론은 MP Trade가 설치된 국가는 별다른 시위가 없었던데 반해 그 외 국가는 저마다 시위를 하면서 정부와 격렬하게 대립했다.
MP Trade의 유무와 ‘신족’이라는 키워드가 언급됨에 따라 결론이 나오는 건 간단했다.
바로 신족에 의해 인간들이 움직였고, MP Trade가 설치된 국가는 금탑의 가호를 받아 괜찮았던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차린 사람들은 자국에 MP Trade 설치되길 희망했다.
이전까지 용돈벌이를 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원했지만, 자신들의 의지가 아니라 신족에 의해 조종당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금탑의 가호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맹렬하게 비난하던 것과 사뭇 다른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금탑의 인식이 빠르게 바뀌어 갈 무렵, 금탑에서 한 가지 발표가 이어졌다.
신대륙의 등장은 아직 아는 바가 없고, 그 키워드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신족이라는 점이다.
대륙이 등장할 때 세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며, 그에 대한 준비가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알렸다.
구체적인 내용 언급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금탑의 선언만으로 출렁이는 주가를 붙잡고 사람들의 마음에 안도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반대로 신대륙을 노리던 이들에게 안 좋은 소식이 있었으니, 신대륙은 신족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이며, 신족은 누구의 접근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금탑은 접근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신대륙의 점령으로 한몫을 노리려던 국가들로서는 입맛이 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하루하루가 커다란 변화 속에 놓인 가운데, 소외된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이다.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몬스터 잔당에 의해 하루하루 불안에 떨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사실상 자립의 기반을 잃어버렸으며, 당장 오늘 몬스터 웨이브가 터질까 무서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프리카 남수단의 대통령, 주마 톤스가 이례적으로 금탑의 방문을 허락받았다.
“오시느라 고생했습니다.”
“전혀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주마 톤스는 준성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최초의 몬스터 웨이브로 수도인 주바를 잃어버린 남수단이었다.
국가의 수도를 잃고, 인구의 상당 숫자도 몬스터에게 목숨을 잃는 중이었다.
독립 당시 이뤄 놓은 외교적인 성과가 없었다면 이웃 국가에 합병 혹은 흡수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주마 톤스도 이전 대통령을 보필하던 인물이자, 존경받는 학자였다.
남수단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골몰하던 그는 자립도 힘들고 주변국의 도움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을 끌어들이면 영원히 노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채 괴로워할 것임이 분명했기에 일찍부터 금탑의 문을 두드렸다.
번번이 거절을 하여 포기하려던 차에 허락이 떨어지고, 마침내 금탑주인 김준성을 만나는 데 성공했다.
“오래전부터 만남을 청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예, 이미 무너진 남수단을 재건하고자 금탑의 지원을 요청하려고 합니다.”
“금탑이 도운다고 한들 남수단의 재건이 이뤄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가능합니다. 모든 국민이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주마 톤스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금탑의 지원도 필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의 이름이었다.
국제 능력자 연맹을 누르고 최강의 전력을 지닌 단체로 올라선 금탑과 손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주변국이 눈독을 들이지 못하고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아무런 실익이 없더라도 금탑의 이름을 등에 업고자 이렇게 간곡히 청원하는 것이다.
“첫 몬스터 웨이브 때부터 도움을 청한 대통령님의 행동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주변을 통해 알아보니 진심으로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더군요.”
“과찬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수단과 거래를 하려고 합니다.”
“거래? 저희는 거래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자원이 있기는 하지만…….”
금탑에서 자원을 필요로 하는가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주마 톤스를 보며 준성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땅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경작지가 필요하다고 말을 할 수 있겠지요.”
“경작지라고 해도 몬스터 때문에 황폐하게 변해 있습니다. 메리트가 없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저는 남수단에 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그 일환으로 조건부 MP Trade를 설치하고자 합니다.”
“MP Trade를 말입니까?”
주마 톤스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준성을 만나면서 그 부분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면 거짓이지만 남수단에서 줄 것이 워낙 없었기에 먼 미래를 보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MP Trade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다만 남수단은 MP를 구매하더라도 돈을 쓸 만한 곳이 많지 않은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MP를 판매하는 만큼 곡식을 주고자 합니다.”
“곡식이라면 방금 전의 땅 임차를 말하는 겁니까?”
“예, 그곳에 농사를 지을 생각입니다.”
“면적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많은 걸 원치는 않고 오천 헥타르 정도면 됩니다.”
“오천 헥타르라…….”
엄청난 크기가 아닐 수 없었다. 몬스터 웨이브로 황폐화가 되어 있기에 임차를 하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과연 그 정도 크기를 경작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경작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금방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할 게 아니거든요.”
“예? 사람이 아니라고요?”
“골렘이라고 아시나요?”
놀란 주마 톤스 대통령을 보며 준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남수단 정부와 금탑 사이에 이루어진 메가딜은 세계 각지의 언론에 실리기 충분했다.
오천 헥타르에 달하는 경작지를 금탑에 임차하고, 금탑에서는 남수단에 MP Trade를 설치하는 이 거래는 남수단이 금탑의 가호 아래 들어갔다는 것을 알렸다. 또한 오천 헥타르에 달하는 경작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주목이 되었다.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남수단은 망하기 직전이었기에 이 거래의 의미는 더욱 컸다.
특히 유럽 각국은 이 메가딜에 잔뜩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MP Trade의 설치가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다음 순번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국가를 물 먹임과 동시에 금탑을 비난하던 이들에 대한 간접적인 경고이기도 했던 것이다.
금탑이 남수단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 영문을 몰라 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등장한 일단의 골렘 군단은 세계를 다시 한 번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약 삼 미터에 달하는 움직이는 골렘 백여 기가 거대한 농기구를 들고 논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남수단은 고온다습한 열대기후였고, 이곳은 사시사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백여 기가 넘는 골렘 군단은 순식간에 논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였다.
전 세계의 이목이 주목된 가운데 보인 골렘 군단의 신위가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은 금탑이 지닌 저력에 감탄하는 한편, 앞으로 패권이 금탑으로 쭉 이어질 거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왜 아프리카인 거예요?”
하지만 피폐해진 국가의 국민들은 많은 양의 마나를 보유할 수 없고, MP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했다. 이나가 갖는 의문은 간단했다.
“간단해. MP Trade로 다른 국가에 얻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야.”
“아프리카는 많고요?”
“맞아. 당장은 우리가 수고를 해야겠지만 이렇게 직접 시장을 만들어 놓으면 영원히 우리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우리와 연관이 되니까. 그럼 안전하게 마나를 얻고 곡식을 판매할 수 있는 수단을 얻게 되는 것이지.”
당장 남수단에서 벌어진 일을 지켜본 아프리카 각 국에서는 제발 자신들도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었다.
몇몇 국가는 남수단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금탑을 욕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그것도 배제할 수 없겠지. 이나도 알겠지만 날 욕한 사람들을 너그러이 봐주지 않거든.”
“알죠. 그래서 준을 좋아하는 건데.”
“몬스터 웨이브로 피해가 큰 아프리카는 우리 입맛대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성장 동력이 크기도 하고.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우리를 이용할까 생각만 하지만 굳이 그들의 생각을 따를 필요는 없지.”
“뭐, 준이 알아서 잘 하겠죠.”
“그래야지. 안 그래도 내가 너희를 부른 건 당분간 이곳에서 나가지 말고 있으란 말을 하기 위해서야.”
그 말을 들은 세희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타나가 찾았나 보네?”
“찾았대요?”
“한 번 만났으니 그다음도 어렵지 않은가 봐. 소식이 와서 차원을 건너가야 돼.”
타나가 태고의 괴물을 찾았다는 소식을 보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당장 건너가도 상관이 없지만 행여나 세희와 이나에게 위기가 닥칠까 싶어 당부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리엔.”
“왜 그러지?”
“혹시 저 너머 세계에 엘프가 있다면 다른 걸 해볼 생각은 없나요?”
“……별달리 생각해 본 건 없다.”
“그럼 해볼 생각은?”
“그걸 왜 묻는 거지?”
“요즘 통 기운이 없어 보여서요. 제가 인간의 삶을 강요한 건가 싶기도 하고. 이전에는 인간 사회에 섞여서 살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아니잖아요. 리엔이 원한다면 엘프들을 만나보고, 다시 엘프의 삶을 되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요즘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침묵만 지키고 있기에 한 말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엘리엔은 그가 자신을 배려해서 하는 말임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도 요즘 그 부분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러니 한 번 고민해 보도록 하겠다.”
“긍정적인 대답 기다릴게요. 그리고 리엔도 마찬가지에요. 바람을 쐬는 건 상관이 없지만 제가 없는 동안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요. 그러니 조심해요.”
“알겠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태도에 엘리엔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찬란한 그 웃음에 준성은 멋쩍은 표정을 짓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볼게, 모두 조심해.”
“준이나 조심해요. 괜히 태고의 괴물한테 한입거리로 잡아먹히지 말고.”
“하하하! 난 맛이 없어서 먹어도 뱉어낼 거야.”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린 준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간 이동을 했다.
태고의 괴물을 만나러 가는 중이다.
그그그긍!
차원 이동을 마무리한 준성이 가장 먼저 본 것은 거세게 흔들리는 세계의 모습이었다.
침몰 직전에 놓인 배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던 대지 몇 곳이 빛과 함께 자취를 감추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원인이었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몇 곳이 사라지면 지구에 나타난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지형이 바뀌거나 새로운 땅이 생겨나면서 이전과 다른 형태의 지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츰 지형 변화가 잦아지는 걸 보면 차원이 합쳐지는 과정에 속도가 붙은 것임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차원의 합체에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 무렵, 모습을 드러낸 타나가 준성에게 다가왔다.
“어서 와, 주인.”
“아, 타나.”
“왜 불러도 대답이 없어?”
“생각할 게 있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
멋쩍은 미소를 짓던 준성은 타나에게 아래 방향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곳에 태고의 괴물이 있어?”
“아니, 조금 더 가야 돼.”
“어떻게 이야기가 되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태고의 괴물은 만날 때가 되었다는 말만 남겼어. 나머지 내용은 주인과 이야기하면 된다고 했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이니 내가 찾아다닌 것 외에는 없어.”
“그렇구나.”
태고의 괴물은 자신이 찾아올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세계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지 알 수 없었기에 생각하는 것만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고민을 한다고 한들 답이 나올 리 없었다.
“가자, 태고의 괴물에게.”
준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타나가 앞장서자, 그 뒤를 따랐다.
타나가 준성을 데리고 간 곳은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다 위였다.
망망대해가 펼쳐진 바다를 보며 둘의 몸이 허공에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 심해로 내려가면 돼.”
“내려가기만 하면 돼?”
“이동하면 어느 순간 포근한 기운이 전신을 감싸는 걸 느낄 거야. 그걸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알았어.”
“잘 해결되길 빌게.”
타나의 격려와 함께 바다 속으로 들어간 준성의 전신에는 절대방어가 형성되어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내려감에 따라 전신에 강렬한 압박감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절대방어가 더욱 강화됨에 따라 압력이 해소되었지만 무작정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는지 모른다.
막연하게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걸 느낀 준성은 어느 순간 바다 생물이 자취를 감춘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절대방어 주변을 휘감는 은은한 기운을 감지했는데 그 정체를 파악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나라고?’
이 세계에 절대 볼 수 없었던 마나가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한 줄기 음성이 준성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나를 만나고 싶다고 들었습니다. 제 초대에 응하겠습니까?]정중한 초대를 보내는 주인공이 태초의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 제 기운을 거부하지 마시길.]승낙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준성을 감싼 마나가 더욱 강해지더니, 한 방향으로 소환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파아앗!
“여긴…….”
빛과 함께 자취를 감춘 준성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거대한 동굴이었다.
여전히 절대방어가 전신을 두르고 있었기에 압력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조금 전 있던 곳과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으로 오시면 됩니다.]다시 한 번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준성은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 동안 걸음을 옮기던 준성은 긴 통로가 끝나고 거대한 공동에 들어서는 순간 멈칫했다.
그의 시선은 공동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에 고정되었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거북이와 흡사했다. 하지만 다리가 여덟 개라는 점과 등껍데기에 돋아난 돌기 등은 다른 거북이와 다른 형태였지만 타나가 말했던 점과 동일했다.
“태초의 괴물…….”
[제가 태초의 괴물이라면 맞는 것 같습니다.]몸의 길이는 일 킬로미터를 훌쩍 넘기고 있었으며, 높이만 해도 삼백 미터는 되는 듯했다. 머리 크기만 해도 수십 미터에 달했는데, 거대한 눈동자가 준성을 응시하더니 느릿하게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우리의 인연이 이제야 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묻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알고 있습니다.]우웅! 우우웅!
대답을 하던 태고의 괴물이 밝은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산처럼 큰 몸이 순백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점점 크기가 작아졌다. 점차 작아지는 과정을 거듭한 태고의 괴물은 준성과 비슷한 크기의 인간으로 변신했다.
“오랜만의 변신이라 익숙하지 않군요.”
“몸을 바꾸는 게 가능합니까?”
단순히 태고의 괴물이라 칭해지던 존재가 변신까지 구사하니, 준성으로서는 당황스러웠다.
“태초부터 살아오며 익힌 잡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잡기라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기에 준성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육체의 형태를 바꾸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하물며 드래곤보다 수십 배는 큰 덩치를 지닌 괴물이 말이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태고의 괴물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여행자가 저를 찾아와 많은 것을 물어볼 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제가 뭘 물어볼지 알고 있습니까?”
“아마 세계의 비밀에 대해 물어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차원이 언제 합쳐지는지 궁금해할 것 같고요.”
“맞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행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차원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태고의 괴물이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당장 알아야 할 사실은 이곳 차원의 대륙이 지구에 등장하는 시기였다.
“우리 세계는 지금 차원의 합일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신족은 조만간 커다란 대륙이 등장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저는 그 시기가 언제일지 궁금합니다.”
“대륙의 등장 시기라, 그건 이곳 세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합쳐질 것입니다.”
“시기는 언제입니까?”
“확언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합니다. 이곳 문명을 이루는 인간들이나 이종족이 어떤 형태로 움직이는지 파악을 해둬야 합니다. 그것까지 감안하면 짧게는 반년, 길게는 오 년의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정말 제각각이군요.”
“이 세계의 구성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미소를 지어 보인 태초의 괴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처음에는 대륙의 등장 시기를 물어보려고 했지만 상냥하게 모든 걸 밝혀 주는 태초의 괴물을 보면서 준성은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이 샘솟는 걸 느꼈다.
“혹시 언제부터 존재했습니까?”
“너무나 까마득해서 헤아리기 힘들군요. 생명이 탄생하고 자연의 질서가 정립되면서 저는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의식을 갖고 태초부터 살아온 것도 아주 긴 시간이 되었지요.”
“그 세월을 살아오면서 많은 걸 본 게 아닙니까?”
“눈으로 보이는 걸 모두 믿을 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생존 경쟁이 이어졌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했지요. 그러면서 자연히 지혜가 생겨나고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생겨났습니다.”
즉, 태초의 괴물은 자연스럽게 탄생한 존재이며, 눈이 아닌 드러난 모든 것으로 판단하는 초월적인 감각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그럼 이곳 차원이 인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알고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생명이 다한 이 차원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도 제가 기둥 역할을 하고 있어서입니다.”
그 부분은 테라에게 들은 그대로였다. 차원의 축은 태고의 괴물이 담당하고 있으며, 신대륙의 등장도 그의 뜻에 달린 문제였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이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뜻입니까?”
“그건 어렵습니다. 다만 가속화시키는 건 가능할 것 같군요.”
“가속화라…… 그럼 신족이 차원을 분리시킨 것도 사실인 겁니까?”
“그들은 오랜 시간 치열한 전쟁을 치러온 종족입니다. 굉장히 발전적이고, 뛰어난 문명을 건설했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이해하기 쉬울 것 같군요.”
우웅! 우우웅!
태고의 괴물이 손을 뻗자 마나가 휘몰아치며 주변 공간을 바꿔 놓았다. 그리고 펼쳐지는 것은 수많은 존재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광경이었다.
“이것은 세계가 멸망의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신족의 주도 아래 차원이 분리되는 광경입니다.”
“…….”
준성의 눈에 보인 광경은 마치 노아의 방주와 흡사했다. 신족은 세계의 주류를 주도하는 존재였고, 인간과 이종족은 그들을 따르는 하위 종족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세계가 멸망할 것을 감지한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대륙을 기존의 차원과 분리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마나를 인위적으로 가공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대륙에 고정을 시켜 놓음으로써 강력한 힘을 응집해 나갔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동물과 식물의 종을 확보했다. 그리고 모든 마나를 포스로 가공하자, 태고의 괴물을 찾아가 새로운 차원의 기둥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내 필요한 준비가 모두 갖춰지자, 신족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대륙을 중심으로 새로운 차원에 안착하는 시도를 감행했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여파로 세계의 마나는 고갈되었으며, 버려졌던 소수의 인간들은 원시 상태로 돌아가 힘겨운 생존 경쟁에 돌입해야 했다.
노아의 방주와 흡사한 형태에 준성은 저도 모르게 몰입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나도 세계가 멸망할 거라는 데 동의를 했지만 자연은 위대했습니다. 멸망의 위기가 닥치는 순간, 그것을 기회로 만드는 능력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마나가 사라진 세계는 여전히 존속했고, 끊임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지만 살아남았다.
신족은 이 재해가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멸망시킬 거라 생각했지만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재해가 잦아들고 자연 환경이 안정되면서 문명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와 신족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인위적인 차원의 조성은 큰 부작용을 낳고 말았습니다.”
태고의 괴물이 지적한 것은 좁은 면적의 대륙으로 인한 종족의 갈등과 치열한 다툼이었다.
하지만 준성으로서는 별다를 것 없는 전쟁이었다.
“이 정도 전쟁은 어느 곳에서나 있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다음입니다.”
“…….”
고개를 끄덕인 준성은 묵묵히 다음에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았다. 전쟁이 신족의 승리로 끝났지만 여전히 갈등의 씨앗은 존재했다. 종족 간 골은 깊어지고, 더 이상 대화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들이 전쟁을 치른 전장에 피가 고이고 싹 하나가 자라난 것이다. 그것은 눈부신 속도로 자라났으며, 봉오리가 거대하게 자라났다. 마침내 꽃봉오리가 만개하며 등장한 것을 본 준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 속에서 나타난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우리들의 가장 큰 착각이 낳은 존재. 그것은 바로 신입니다.”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면서 헝클어진 질서를 정리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신이었다.
“…….”
상상을 초월한 진실에 준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테라가 이미 한 차례 언급한 적이 있었다.
당시 테라는 신을 그리 어렵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말을 했었다. 자연스럽게 세계를 아우르는 신의 존재는 전지전능함의 상징이자, 모든 존재의 아비이자 어미였다.
하지만 방금 전 본 신의 탄생은 준성이 알고 있는 부분과 달랐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준성이 입을 열었다.
“……신은 전지전능합니까?”
“전지전능합니다.”
“그럼 세계를 관조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적용시켜 신을 모시는 게 옳은 것 아닙니까?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태고의 괴물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방법론을 들먹이는 게 아닙니다. 신의 존재는 우리가 만들어낸 대상이며, 그는 자연스럽게 세계의 관조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신은 대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이게 자아를 가지고 형태를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하는 경고입니다.”
“경고라…….”
“신족은 처음에 신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발전하고자 하는 그들의 욕구는 드래곤을 꺾으면서 신의 개입을 불러왔습니다. 신의 탄생 비화를 알고 있는 신족은 더 이상 간과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들의 손으로 신을 꺾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제게 이걸 알려주는 이유가 뭡니까?”
따지고 보면 준성이 알 필요가 없는 내용이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태고의 괴물은 그 사실을 굳이 알려주었다.
그 의도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지만 뚜렷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태고의 괴물 입에 미소가 걸렸다.
“여행자는 앞으로 닥쳐 올 혼란을 안정시켜 줄 존재라고 봤습니다. 신족의 등장과 지구에 새로 탄생한 신, 그리고 이곳에서 번영한 문명의 등장은 지구와 커다란 충돌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여행자라면 그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준성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자신이 그만한 역량을 지녔다고 봤지만 실상은 달랐다. 지구 신과 신족, 그리고 악마 신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괜찮습니다. 이미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차원을 지탱하는 축인 저는 자연스럽게 소멸을 맞이할 것입니다.”
“소멸이라니, 무슨 의미입니까?”
“차원을 감당하면서 제 존재는 이 세계와 운명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차원이 합쳐지면 세계는 사라지니, 제 존재도 자연스럽게 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미련은 없는 겁니까?”
태고의 괴물은 고개를 저었다.
“신보다 긴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탄생과 죽음은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고, 그것을 거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죽음을 초월한 담담한 어조에 준성이 뭐라고 할 여지는 없었다. 태고의 괴물이 살아오면서 쌓아온 삶의 무게는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지금 쓰는 그 힘은 포스와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 차원이 하나였던 시절, 우리 세상을 구성하고 있던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힘입니다. 지금은 가공되어 변질되어 버렸지만.”
“이 힘이 아닙니까?”
손을 든 준성에게서 푸른 마나가 넘실거렸다. 그것을 본 태고의 괴물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그걸?”
“제가 사용하는 힘의 근원입니다.”
“역시나. 여행자라면 다른 차원의 존재를 알고 있을 테니 그 힘의 존재를 아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군요. 그 힘이라면 세계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가능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확실하게 묶어놓으려고 했는데 실패했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일말의 희망을 걸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대한 협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이곳의 문명도 존중해 주십시오. 모두 살고자 차원을 건너왔던 생명들입니다. 그들을 존중해 줄 수 있다면 여행자가 생각하는 혼란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예.”
태고의 괴물이 힘을 준다면 준성에게 있어 이보다 더 든든한 건 없었다.
“이야기는 잘 나눴어?”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타나가 준성의 곁에 다가왔다. 그 물음을 들은 준성은 멈칫했다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나눴어. 서로 만족할 만한 내용이었고.”
“그래?”
“약간 말린 감이 있지만 나쁘지 않아. 태고의 괴물에게서 그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었거든.”
“잘됐네.”
태고의 괴물이 알려준 정보는 준성의 머릿속을 정리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들이 왜 신을 뛰어넘으려고 했는지, 신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잠깐 본 대륙으로 갈 수 있을까?”
“왜?”
“저들이 구축해 놓은 문명을 한번 보고 싶어서.”
“상관없어.”
이곳 세계는 신족이 살아가던 본 대륙과 자잘한 수백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준성이 소멸시켰던 섬도 그중 하나였다.
둘은 본 대륙에 도착한 뒤, 신족이 이뤄 놓은 도시로 향했다.
그곳에는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이종족이 바쁘게 오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생동감이 넘치는 저들의 모습은 중세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저마다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
신족의 지배에 벗어나고자 했던 아리스턴은 인간이 노예로 전락했다고 했지만 자신의 눈에 비친 인간들은 일정한 자유 속에서 삶을 누리고 있다.
과연 그것이 나쁜 것일까?
인간은 오로지 인간만 통치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준성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들의 표정이 어둡지 않다는 점이었다.
“세계에 큰 혼란이 일어나겠어.”
“그렇게 생각해?”
“얼마인지 모를 긴 세월 동안 각자 나뉘어 살아온 생명체들의 조우니까. 세계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
신족이 없는 틈을 타 자신이 이들 문명을 멸망시킨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찰나의 순간 그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어 털어 버린 뒤 몸을 돌렸다. 타나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지구로 돌아온 준성은 한동안 고민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얼마나 알려야 할지 수위를 정해야 했던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사실을 알리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일어날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능력자와 금탑을 비난하던 것이 신족의 입김 작용으로 인한 일이란 걸 알아차린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신대륙의 등장이라는 화두와 새로운 문명의 등장이란 것은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결국 준성이 알린 것은 신대륙의 등장 시기였다.
짧으면 반년, 길면 일 년 이내에 신대륙이 등장할 거란 금탑의 공식 발표에 세계 언론이 들썩였다.
연일 신대륙의 정보에 대해 언급을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들해질 무렵, 흘러나온 한 가지 논제는 다시 한 번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과연 신대륙에 인간이 살아가고 있을 것일까?
신족은 다른 차원에서 건너왔으며, 그곳도 생명이 살아가는 곳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할 수도 있으며, 인류가 지금껏 마주한 적 없던 새로운 문명과 조우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인간이 존재할지 여부에 대해서 연일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지구와 달리 신족이 지배하는 세계는 인간이 없을 거란 의견이 있는가 하면, 종족의 한 축으로써 신대륙에 국가를 건설하고 있을 거란 말이 있었다.
하지만 준성에게 중요한 것은 이들의 반응이 아니었다.
신족의 움직임과 신의 탄생이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화두였다.
그래서 세희에게 자문을 구해 보았지만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확실히 그런 방식으로 신이 탄생할 수도 있어. 나같이 인위적으로 신의 반열에 올라선 경우도 있는 걸.”
“지구 신의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 셈이지. 신의 탄생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소멸된 신이고, 지구 신이 있는 이상 다른 변수는 존재하지 않잖아.”
“그렇겠지?”
“지구 신도 그렇게 어려워할 이유는 없어. 진정한 신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 자체야. 신은 자신을 자연과 동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연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전지전능하더라도 더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에게 당하면 소멸할 수밖에 없고.”
“알았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을게. 단지 내가 걱정한 건 세희가 신의 반열에 올라서면서 이 세계의 자연에 소속되지 않을까 싶어서 우려가 되었던 거야.”
“난 달라. 엄밀히 말하면 강탈자 같은 느낌이랄까? 신은 신이지만 신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가?”
“그렇잖아. 신이 지니고 있던 힘을 빼앗아서 신의 육체를 완성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에 준성도 표정을 풀 수 있었다.
“그가 태고의 괴물을 만난 것 같아.”
전 세계가 요란하게 신대륙에 대해 언급하는 중, 생략되어 있는 정보가 있음을 눈치챈 테라가 헤스티아에게 말했다.
“그건 굉장히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태고의 괴물은 세계를 지탱하는 존재, 김준성과 만나게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에요.”
“무슨 말인지 나도 알아. 하지만 태고의 괴물은 우리가 변질되었다며 만나려고 들지 않지. 신속한 차원의 합일을 위해서는 그가 나서는 게 더 나아.”
“하지만 태고의 괴물과 힘을 합치기라도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군, 헤스티아.”
“내가요?”
“차원이 합일되면 태고의 괴물은 더 이상 삶을 이어 나갈 수 없어. 그가 지닌 강대한 힘은 세계의 영양분이 되어 흩어지겠지.”
테라의 말에 헤스티아의 표정이 한결 풀렸다. 태고의 괴물이 지닌 힘은 강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그 존재가 지닌 상징성은 신의 반열에 올라선 신족이라고 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면이 존재했다.
“소멸되는 거라면 마음을 놓을 수는 있겠지만…….”
“좀 더 빠르게 소멸하도록 유도할 뿐이야. 태고의 괴물은 우리 입장에서 방해가 되니까.”
“오히려 테라가 의도해서 시기를 앞당긴 게 다행이라는 의미군요.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요.”
“차원이 합쳐지고 태고의 괴물도 사라지면 우리를 방해하는 요소는 모두 사라져. 그때가 되면 평화를 외치는 헤스티아 너와 널 따르는 동족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거야.”
헤스티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말은 모든 일을 평화롭게 해결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시 상황에서 테라의 권위를 무시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평화는 누군가가 확실하게 소멸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그 말 새겨듣도록 하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