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5)
5대 교단의 합작과 성국의 의지
“다이어드 공작이 말한 대로 그들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거야.”
엘은 마탑 꼭대기에서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성국의 인물들은 이대로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물러난 건 동료들이 제압당해서 그것 때문에 순순히 물러난 것이지만 다크 포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이상 다음에도 저번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다이어드 공작은 다크 포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가 지닌 워 해머의 위력은 다크 포그를 단번에 갈라 버리는 어마어마한 권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방 오진 못할 테지. 그들을 순순히 내준 것도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엘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전생에 그가 무엇으로 불렸던가. 악신이라 불릴 만큼 상대를 철저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무찌르던 절대무적의 프로게이머가 아니었던가.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앞뒤를 확실하게 계산하고 그 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계산한 뒤 일을 시작하는 게 바로 엘이었다. 엘이 생각이 없어 애써 사로잡은 성기사들을 순순히 내 준 것이 아니다. 처음 다크 포그로 은십자 기사단 절반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을 때, 엘은 이들을 첫 번째 조커로 사용할 생각을 하였다. 행여 골든 나이트로 다이어드 공작을 제압하지 못할 경우 그들을 활용하여 시간을 벌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한 엘의 안배는 멋지게 성공하였다. 다이어드 공작의 실력은 10대 그랜드 마스터 중 하위권 일지 모르나 그가 지니고 있는 성물 사마를 멸하는 신성한 해머는 신의 은총이라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내포하고 있던 것이다. 덕분에 엘은 숨걱 놓은 카드를 활용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성국의 인물들이 순순히 물러나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돌려준다고만 했지, 그들이 온전하다고 하지는 않았어.”
엘은 사로잡은 성기사들에게 깊은 내상을 입혔다. 게다가 신성력을 봉인하는 팔찌와 비슷한 형태의 봉인을 내부에다가 걸어 놓았기에, 그들은 내상을 치료하고 본래의 신성력을 발휘하려면 최소 1달 이상은 요양해야 했다. 때문에 엘은 1달 정도의 시간을 벌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귀하고 값진 시간을 엘은 적극 활용할 생각이었다.
“이미 디벨 님에게 말을 해 놓았으니 결과는 드러나겠지. 남은 시간은 한 달. 그사이 룬 블레이드를 완성해야겠군.”
엘은 마탑에 마련된 연구실로 향했다 골든 나이트의 실력을 배로 키워 줄 최강의 무기, 룬 블레이드를 제작하기 위해서.
그 시각, 대륙 곳곳은 뜻하지 않은 일로 요동치고 있었다. 바로 신을 믿는 신성한 곳, 신전에 말이다. 5대 제국 중 하나인 사막 제국 데이제크에서 가장 큰 성세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레이나드 여신 교단이다. 국토의 절반이 사막이라 오아시스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빈번한 이곳은 포션의 수요가 대륙에서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얼마 전 레이나드 신전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트롤의 피를 공급받게 되었다. 자연히 그 트롤의 피들은 데이제크 사막에 존재하는 레이나드 신전에 옮겨졌고, 신관들은 그것을 가공하여 포션으로 만들어 용병들에게 팔았다. 약 100,000개에 이르는 포션이 정기적으로 공급되자 포션의 귀중함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사비를 털어 포션을 대대적으로 구입하기 시작했다. 값이 떨어질 만도 하지만 여벌의 목숨이라 불리는 포션이었기에 그 가격은 떨어지지 않고 도리어 사재기로 값이 오를 기미가 보이기도 하였다. 그것 때문에 레이나드 신전은 어마어마한 이익을 챙겼다. 100,000병에 이르는 포션을 팔 때마다 신전에서 챙기는 이익이 물경 400,000골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100,000개에 이르는 포션을 제작하게 되자 이 일을 주선한 뷔렉 대신관은 교단 내에서 어마어마한 지지를 얻게 되었다. 신관들에게 있어 신앙심도 무척 중요하지만 금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공급되는 트롤의 피로 어마어마한 권력을 얻게 된 뷔렉 대신관은 뜻하지 않은 난관을 맞게 되었다. 바로 트롤의 피를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디벨 상단에서 갑자기 트롤의 피 공급이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이미 트롤의 피는 레이나드 신전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트롤의 피 공급이 어려워지다니? 애가 닳은 뷔렉 대신관은 곧장 디벨을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약 1달 동안 애가 닳고 닳도록 한 뒤 디벨은 뷔렉 대신관이 있는 신전으로 방문을 하였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디벨을 보자마자 뷔렉 대신 관이 대뜸 말을 꺼냈다.
“디벨 친구님, 트롤의 피 공급이 어렵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애가 닳을 대로 닳은 뷔렉 대신관과 달리 디벨은 지극히 여유로웠다. 그는 신전에서 내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뷔렉 대신관에게 말했다.
“아아,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대신관님.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앉으시지요.”
“아, 흠흠!”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뷔렉 대신관. 그는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디벨에게 물었다.
“자, 이제 말해 주시지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트롤의 피 공급이 어려워졌다는 것입니까?” 디벨이 헛기침을 하며 짐짓 몸을 뺐다.
“흠! 이 게 워낙 비밀적인 이야기라……..”
뒤로 빼며 몸을 사리는 디벨을 보며 뷔렉 대신관은 더욱 애가 닳아 디벨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허어! 디벨 친구님과 나는 이미 한 배를 탄 사이가 아닙니까? 고민은 나누면 가벼워지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는 법입니다. 보아하니 함부로 말하기 힘든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내 기꺼이 들어 줄 테니 우리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봅시다.”
잠시 생각에 빠진 디벨이 뷔렉 대신관을 힐끗 보더니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 동안 고민하던 디벨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단, 제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비밀 보완이 확실해야 하고요. 만약 이 비밀이 새어 나간다면 레이나드 신전에 다시는 트롤의 피 공급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약간 위협적인 디벨의 말에 뷔렉 대신관이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비밀을 꼭 지키지요.”
“그럼 말씀 드리겠습니다.”
디벨이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일단 트롤의 피 출처를 이야기하였다.
“우선 트롤의 피가 어디서 이렇게 대량으로 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대륙 서부에 몬스터 랜드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톨리안 왕국과 접한 곳에 오크 포레트스와 트를 벨리라 불리는 곳이 있지요. 제가 신전에 공급해 드리는 트롤의 피는 다름 아닌 트를 벨리에서 조달해 오는 것입니다.”
“트를 벨리?”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이다. 하지만 그곳이 어딘지 선뜻 생각이 나지 않은 뷔렉 대신관이 의문을 표하자 디벨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예, 그곳에 7클래스 마법사가 마탑을 세우고 트를 벨리에 존재하는 트롤들을 사로잡아 특유의 방법으로 피를 채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계약을 맺어 대륙 각지 신전에 트롤의 피를 공급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요즘 그 분이 무척 어려운 일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이라면?”
디벨이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더니 한껏 목소리를 죽인 채 속삭이듯 말했다.
“바로 그분께서 성녀님을 데리고 계십니다. 때문에 현재 성국과 대치 중에 있습니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 트를 벨리! 바로 그곳에 성녀를 데리고 있는 오만무도한 마탑주가 있어 현재 대륙 10대 그랜드 마스터 중 1인인 다이어드 공작이 파견되지 않았던가? 뷔렉 대신관이 대경했다.
“허억! 성녀, 성국!”
어디 하나 쉬운 단어가 없다. 성녀! 그러고 보니 이번에 신탁이 내려와 수백 년 만에 성녀가 출현했다고 가이아 교단에서 알려오지 않았던가? 대륙에 수많은 교단이 있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은 다름 아닌 가이아 교단이다. 믿는 사람도 많을 뿐더러 가이아 교단은 나라 하나를 통째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레이나드 교단이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가이아 교단은 넘볼 수 없는 벽과 같았다. 놀라 경기를 일으키는 뷔렉 대신관을 보며 디벨이 말을 이었다.
“놀라시는 게 당연합니다. 저 또한 놀랐으니까요.”
“그, 그럼 이제 트롤의 피는 공급을 받지 못하는 겁니까?”
성국의 의지는 곧 여신의 의지와 같다. 성국이 움직이면 가이아 여신을 믿는 수많은 국가가 함께 움직이며, 그 힘의 크기는 제국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국과 등을 돌리다니? 그것은 곧 파멸을 뜻하기에 뷔렉 대신관이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뷔렉 대신관의 말에 디벨은 빙긋 웃음을 지었다.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이쪽이 한 치의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디벨은 타이르듯 말했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마탑주님은 의외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계시니까요.”
그러면서 디벨은 미리 준비했던 말을 하였다.
“솔직히 저는 대신관님이 왜 그렇게 가이아 성국을 겁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레이나드 여신님의 교단을 보십시오. 이 얼마나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까?”
하지만 뷔렉 대신관은 비관적인 말을 하였다.
“그건 디벨 님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성국은 제국이라 하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강국. 분하지만 그 힘의 크기는 우리 레이나드 교단을 월등히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괴감이 드는지 뷔렉 대신관은 고개를 떨어트렸다. 사리사욕이 많지만 그 또한 독실한 신앙으로 대신관에 오른 이였다. 그런 그에게 디벨이 희망을 주는 말을 하였다.
“누가 혼자라고 했습니까?”
“……?”
뷔렉 대신관이 고개를 들자 디벨이 숨겨 놓은 패를 꺼냈다.
“제가 언제 레이나드 교단에게만 도와달라고 했습니까? 분명 가이아 성국은 강합니다. 하지만 한 손으로 여러 손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저는 레이나드 교단에게 부탁한 뒤 다른 교단들에게도 부탁을 드릴 것입니다. 레이나드 교단을 비롯한 네 교단! 오대 제국 에서 막강한 힘을 끼치는 다섯 개의 교단이 설마 가이아 성국 하나를 상대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 ……..!”
디벨의 말에 뷔렉 대신관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로 그 방법이다! 혼자 감당할 수 없다면 여럿이 힘을 합치면 되는 것이다. 각 교단에 어느 정도 인연이 연결되어 있지만 각각이 경쟁 관계에 있기에 절대 뭉칠 수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트롤의 피가 걸린 사항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만큼 트롤의 피는 각 교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자금줄로 굳혀진 상태였다. 뷔렉 대신관에게 약간의 희망을 심어 준 디벨은 결정타를 날렸다.
“그리고 마탑주님께서 여러 교단이 도움을 줄시 3달 동안 십오만 병에 해당하는 트롤의 피를 공급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뷔렉 대신관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십오만 병!”
100,000병으로 교단이 이익을 보는 금액은 400,000 골드다. 거기에 50000병을 추가하면 순식간에 200,000 골드가 더 늘어나는 셈이 된다. 게다가 그 정도의 양을 3달 동안 공급하겠단다. 그럼 200,000골드가 3번, 도합 600,000골드의 추가 이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하고 말 것도 없다. 뷔렉 대신관이 당장 답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내 최고 대신관님에게 보고하여 긍정적인 대답을 이끌어 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대신관님만 믿겠습니다.”
디벨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디벨은 정확히 다섯 군데에서 다섯 명의 대신관과 만남 가졌다. 그리고 모두 디벨이 준비한 한 수에 그들은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때문에 마왕 강림 이후 사상 최초로 5개의 교단이 힘을 합치는 일어났다. 그 배후에는 디벨 상단이 있었고, 5개 교단은 다름 아닌 트롤의 피로 인해 뭉치게 된 것이다. 교단의 자금줄로 뭉치게 되었지만 5개 교단이 뭉친 것은 가히 어마어마한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힘을 합친 5개 교단은 5대 제국에게 막강한 힘을 끼치는 걸 바탕으로 성국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쾅!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오!”
가이아 성국의 교황은 8명의 대신관을 모두 소집하고 언성을 높였다. 교황이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갑자기 5대 제국에서 날아온 편지 때문이다. 갑자기 5대 제국의 황제 옥쇄가 찍힌 편지가 날아왔다. 가이아 성국의 영향력에 제국에 버금간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제국을 무시할 정도로 막강한 건 아니었기에 교황은 그 편지를 무시하지 못하고 읽어보았다. 그리고 그 편지의 내용이 지금 교황을 이렇게 화나게 만든 것이다.
“‘성녀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난리법석 피우지 말라.’라. 허허허! 언제부터 제국이 이렇게 오만했던가!”
확실히 트를 벨리에 성녀가 있는지는 아직 확실한 사항이 아니다. 그런데 성국은 그랜드 마스터인 다이어드 공작과 성국 최강의 기사단 은십자 기사단을 파견했다. 그리고 그들을 파견하기 위해 제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청탑에 도움을 청했으며, 5대 제국에게 서신을 돌려 협력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돌아온 5대 제국의 대답이 바로 이것 이었다. 비록 성국이라 불리지만 제국에게 결코 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교황을 5대 제국의 명령투 어조는 기분을 나쁘게 하기에 충분했다. 화를 내던 교황은 잠시 후,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후우! 그래, 좀 말해 보시오. 아르디모스 대신관, 도대체 오대 제국이 왜 이런 대답을 보낸 것인지 알겠소?”
교황으로서는 5대 제국이 왜 갑자기 이런 대답을 보내 왔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히 성녀를 찾으면 제국에게도 이익이 된다. 여신의 대리자인 성녀가 성국에 소속되고 제국을 돌며 황제와 인사를 나누면 그 자체만으로도 제국의 위상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녀가 어디 이름뿐인 성녀인가? 성녀는 순례라는 이름하에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성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신에게 부여받은 권능은 수명이 다한 사람의 목숨을 몇 년 동안 늘릴 수 있을 정도로 성녀의 힘은 대단하다. 그리고 제국들이 협력하면 자연히 특혜를 받는 것도 제국이 된다. 그런데 어째서 이러한 태도를 보인 것이란 말인가? 교황의 지목을 받은 아르디모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하, 제 생각으로는 이번 일은 제국의 일방적인 의지가 아닌 듯싶습니다.”
그에 교황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방적인 의지가 아니라니? 그럼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단 말인가?”
아르디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예하 제가 생각하기에는 오대 제국에 존재하는 다섯 개의 교단이 이번 일을 주모한 것 같습니다.”
다섯 교단이라는 말에 교황의 눈썹이 꿈틀했다.
“다섯 교단이? 어째서 그들이 주모했다는 거지?”
그에 아르디모스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저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짚이는 것이 있습니다.”
“짚이는 것? 그게 무엇이지?”
교황의 물음에 아르디모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했다.
“그들은 성녀님을 모심으로써 우리 교단의 위세가 한층 더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성녀님의 출현으로 가이아 여신님의 위상이 한층 더 올라갈 것이 두려웠던 것이지요. 때문에 그들끼리 공모하여 이번 일을 주모한 것 같습니다.”
아르디모스의 말은 증거도 없고, 사실로 밝혀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교황이 듣기에는 무척 신빙성 있게 들렸다. 가이아 여신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은 곧, 성국의 위상이 올라가는 일이고, 그것은 즉, 성국의 영향력이 확대된다는 말이니 말이다. 성국의 영향력이 늘어난다면 5개의 교단은 자연히 그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아르디모스의 말을 정확히 이해한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확실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하.”
“아니, 충분히 그럴 수 있소. 다섯 교단은 우리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면서도 은연중 우리들을 경계했지.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말대로 이번 일로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까 봐 입을 맞추고 이번 일을 공모한 것이 분명해.”
확신 어린 교황의 말에 대신관들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아무리 가이아 성국의 힘이 강하다고 하나 5대 제국이 의견을 보내왔으니 마냥 무시하기도 부담스러웠다.
“허면 어떻게 하실 건지……?”
아르디모스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교황에게 묻자, 교황은 잠시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 일은 혼자 처리하면 안 되겠군. 자칫하다가 우리 성국이 오대 제국과 등을 돌릴 수 있으니…… 오늘부터 이 사항을 가지고 매일 회의를 열겠소. 대신관들은 빠짐없이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할 것이며, 십 일 동안 회의를 열어 의견을 나누도록 하겠소. 그리하여 가장 합당한 결론을 내리도록 할 것이오. 모두 알겠소?”
교황의 말에 대신관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알겠사옵니다, 예하.”
대답하는 대신관들을 보며 교황은 인상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성녀님을 다 찾은 마당에 오대 제국이 물고 늘어지다니…… 정말 골치 아프군.”
그래도 트를 벨리에 파견한 다이어드 공작이 잘할 것이라 생각하는 교황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다이어드 공작이 모든 일을 끝마치고 성녀님을 모셔올 테니 말이다.
그 시각, 다이어드 공작은 뜻하지 않은 일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칼리오 대신관에게 물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대신관님?”
칼리오 대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공작님. 우리가 구출해 온 성기사들 모두 깊은 내상을 입었습니다. 최소 한 달은 요양해야 합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현상으로 신성력이 봉인 당했기에 그 치료도 병행한다면 사실상 치료 기간은 한 달이 넘을 것입니다.”
“으음!”
다이어드 공작이 신음을 흘렸다. 왠지 힘들게 사로잡은 성기사들을 순순히 내준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에게 심한 부상을 입혀 놓고 자신들에게 넘긴 것이다. 외상이라면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상에 탁월한 치유력을 보이는 신성력은 며칠 걸리지 않아 모든 걸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상은 다르다. 내부에 입은 상처는 신성력으로 섣불리 치료할 수 없는 영역이다. 사람의 속을 열어 놓고 치료한다면 모를까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알 수 없는 현상에 의해 신성력조차 제대로 쓸 수 없다면 이는 무척 심각한 일임이 분명했다.
“이런 간특한!”
다이어드 공작이 내심 이를 갈았다. 이 모든 게 엘의 소행이 분명했다. 성기사들이 부상을 입었으니 그들을 치료해야 한다. 절반의 전력을 잃은 지금 성국에 지원을 청하는 것이 현명
하다. 다이어드 공작이 코로네 백작에게 말했다.
“지금즉시 성국에 연락을 보내게. 그리고 우리가 겪은 일을 빠짐없이 알리게.”
코로네 백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코로네 백작의 보고에 교황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코로네 백작이 보고한 내용은 그로서 차마 믿기 힘든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성국 최강의 기사단인 은십자 기사단 절반이 당했단다. 게다가 큰 상처를 입어 상처를 치료하는 데에만 족히 한 달은 필요하다고 한다. 게다가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성국 최강의 기사인 다이어드 공작이 마탑에 존재하는 골렘과 평수를 이뤘다고 한다. 위대한 신의 은총이 담겨 있는 삼대 성물을 가지고 있는 다이어드 공작이 그 골렘을 압도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교황에게 있어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개 마탑이 그랜드 마스터와 10명의 마스터, 그리고 100명의 익스퍼트로 이루어진 전력을 막아내다니. 이는 단순히 탐사대를 파견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5대 제국에서 압박이 들어왔지만 그것은 교황이 알 바가 아니었다. 여신께서 선택하신 성녀님을 모시려 하는 자신들에게 이토록 적대하는데 어찌 하겠는가. 5대 제국도 적으로 돌리면 앞으로의 일이 껄끄러워져서 조심하는 것이지, 그것이 여신의 의지를 받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이어드 공작마저 실패했다는 말에 교황은 마침내 마음을 굳혔다. 그는 대신관들을 향해 말했다.
“톨리안 왕국 트를 벨리에 존재하는 금탑. 그곳에 20만 성군을 투입하겠소.”
“예, 예하?”
교황의 결단에 모든 대신관들이 화들짝 놀랐다. 성군이라니! 지난 수십 년 동안 성국에서 성군을 움직인 적은 없다. 성군이 치르는 전쟁은 성전이라 하여 수십만의 생명이 사라지는, 그야말로 누군가 하나는 완전히 몰살을 당하는 그런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순교를 외치며 죽음을 불사하는 성군에게 후퇴란 존재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이 다 죽거나 자신들이 다 죽을 때 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는 신의 군대! 그것이 바로 성군이었다. 교황이 대신관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성녀님을 모셔올 수 있단 말이오! 본 성국의 최강 기사인 다이어드 공작조차 해내지 못했소! 대신관들은 성군 투입 외에 더 나은 방안을 제시할 수 있소?”
“…….”
교황의 강력한 일갈에 대신관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아르디모스조차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또한 교황이 말한 성군 투입보다 더 합당한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황이 강한 의지가 실린 어조로 말했다.
“오대 제국이 본 성국의 행사를 막아도 이번 일은 강행 할 것이오! 우리는 여신의 의지를 받드는 자들이지, 제국의 눈치를 보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오! 내 말이 틀렸소?”
“아닙니다, 교황 예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아르디모스가 교황의 말에 강력하게 지지하고 나서자 다른 대신관들도 교황의 말에 지지하고 나섰다. 제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여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주저 없이 여신의 말씀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여신의 말씀을 따르기 위한 것인데 설사 피를 무서워하랴. 교황의 말에 공감을 하며 대신관들은 교황의 의견에 모두 동조했다.
“예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그것으로 사항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앙으로 뭉친 그들은 이러한 사항에서 더없이 의견을 통일하기 쉬웠으니까. 하물며 여신의 말씀을 따르는 일 아닌가. 교황이 굳은 의지가 빛나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여신의 말씀을 어기는 자, 피로 그 업보를 씻게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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