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55)
제135장 동상이몽
[미안하게 됐수다, 주인.]말을 하는 영웅이의 음성은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지속적인 신족의 개입으로 인해 아틀란티스로 향하는 마법진을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준성은 고개를 저으면서 그의 성과를 칭찬해 주었다.
“아니야, 잘했어. 생각했던 것보다 공을 많이 세워서 기분이 좋아.”
[그렇다면 다행이고.]“신족을 제거할 정도라니, 정말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흐흐! 뭐 이 몸의 재능이야 주인이 잘 알고 있는 거 아니요? 앞으로 더 발전하면 이제 두려울 게 없게 되는 거지.]“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금세 의기양양해지는 영웅이를 보며 준성은 피식 웃었다.
애초에 예정했던 기간보다 짧게 마법진을 지켜냈지만 그동안 영웅이가 이뤄낸 성과는 놀라웠다.
신족 하나를 소멸시키고, 셋을 물리치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비록 두 신족의 등장으로 후퇴를 결심해야 했지만 이제 영웅이의 무위가 신족 하나를 상대로 대등, 혹은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실전을 겪으면서 강해지는 게 느껴졌어?”
[그렇수다. 확실히 이 몸의 하드웨어가 좋아서인지 몰라도 전투를 하면서 최적화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더군. 그걸 바탕으로 무위를 펼치게 되었고, 내 힘을 어떻게 하면 적절하게 발휘할 수 있는지 알게 됐소.]“잘했어. 확실히 그동안 타나가 교육시킨 게 효과가 있나 보네.”
[흐흐! 그야 이를 말이겠…….]“아니야, 아직 부족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던 영웅이의 말은 중간에 끊기고 말았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모습을 드러낸 타나가 부정적인 대답을 한 것이다.
고개를 돌린 영웅이는 푸른 안광을 뿜어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무슨 말이오? 신족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는데 뭐가 부족하단 거요?]“모든 면이 다 부족해. 나는 신족하고 아웅다웅하라고 보낸 게 아니야.”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대답하는 타나였다. 그녀의 목소리에 깃든 서늘함에 영웅이의 목소리는 점점 다급해졌다.
[그래도 주인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왜…….]“내가 원한 건 대신족과 자웅을 겨루는 거였어. 그런데 지금 그게 안 되잖아?”
[크으윽!]신족을 상대로 의기양양했다가 대신족까지 언급되자 영웅이의 안광이 흐려졌다. 타나의 말에 눈에 띄게 동요하는 것이다.
“특훈이야.”
[말도 안 돼! 주인이 인정한 전공을 올렸는데 특훈이라니!]“내가 만족해야 특훈이 멈출 거야, 따라와.”
[으아아악!]비명을 지르며 바동거리는 영웅이였지만 타나의 억센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가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손을 허우적거리며 도움을 청하던 영웅이의 모습을 보며 준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영웅이에게 괴로운 순간이겠지만 더 강해지면 자신에게 나쁠 것은 없다.
그렇게 영웅이는 버려졌다.
“악마 신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왜?”
뜻밖의 말을 들은 준성이 반문했고, 세희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어. 바쁘게 다니는 건 좋지 않다는 걸 알잖아.”
“그렇긴 한데…….”
본래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악마 신이기에 준성은 미간을 모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모르고 있지만 공간 이동 감지기를 통해 세계의 절반 이상을 감시할 수 있게 된 준성이었다. 이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악마 신이나 신족, 그리고 능력자들의 공간 이동 현황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비록 세계 전역을 감시할 순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것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서방이 악마 신의 문제에 너무 태연한 것 같아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만큼 악마 신에 대해서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잖아.”
“그럼 두고 볼 거야?”
“어차피 우리와 맹약으로 묶여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못할 거야.”
준성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악마 신을 맹약으로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지구 신을 제거하는데 힘을 보태기로 한 이상, 악마 신은 준성에게 묶여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잖아.”
“이미 몇 차례 쓴맛을 봐서 함부로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솔직히 내 생각은 그래.”
비록 준성에게 당한 적이 있다고 해도 신이었다. 당한 적이 있으니 오히려 보복을 우려해야 하는데 지나칠 정도로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 당분간 주시하도록 할게. 악마 신이 엇나가면 우리 계획도 헝클어지니까.”
“우리 계획?”
“정확히는 지구 신을 제거하는 계획을 말하는 거야. 시기를 놓치기는 했지만 우리와 적대하고 있는 이상 신족보다 먼저 제거해야 할 대상이지.”
“그러다가 신족에게 습격당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시기를 미루고 있어. 내가 생각하는 건 신족과 문제를 먼저 마무리하고 그다음 지구 신을 정리하는 거야. 귀찮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최우선적이라 생각하거든.”
준성이 말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전개였다. 하지만 세희의 우려는 사라지지 않았다.
“악마 신은?”
“지켜봐야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행동하면 그다음이 되지 않을까.”
“악마 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 그 전에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돼. 세희가 많이 도와줘.”
“알았어.”
준성의 뜻대로 된다면 최고겠지만 과연 그대로 될지 의문이었기에 세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국의 위협!
아틀란티스 대륙이 등장하고 좀처럼 반응을 드러내지 않던 미국이 이를 드러냈다. 그 대상은 바로 아틀란티스와 신족이었다.
‘더 이상 신족의 종교를 퍼뜨리지 말라’라고 경고한 미국은 여차하면 군사적인 움직임까지 보일 수 있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그리고 여차하면 총력전을 펼칠 수 있다고 언급, 이례적인 행동에 세계 각 국이 긴장 상태에 빠졌다.
비록 능력자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최강국이며, 군사력은 건재했다. 첨단 무기가 신족에게 먹혀들지 않는다고 해도 미친 척 움직이면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국제 능력자 연맹으로 지지를 보냈고, 세계의 모든 국가가 이곳으로 집중해 주길 원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세계 각 국은 억지로나마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 A.O. 본부장 더글라스는 김기정과 직접 만남을 가지고 아틀란티스 대륙의 교류단 조직에 있어 더욱 엄격한 기준을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아틀란티스로 흘러드는 각 국의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그만큼 방문자의 비율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공지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아프리카 국가들이었다. 가장 이탈자가 많은 그들로서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교류단에 포함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에 뒤늦게 부랴부랴 대처에 나섰다.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고, 뒤에 숨어 있는 이유는 바로 남수단으로 흘러드는 사람들 때문이다.
세계 최대 곡창지대를 만들겠다며 주변국의 땅을 임차받고 있는 금탑의 농장은 굶주림에 지친 빈민들의 이동을 부추겼다.
몇몇 사람들은 금탑의 이러한 의도를 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으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임차받는 것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해 가는 가운데, 음모를 꾸미는 존재가 있었다.
“킥킥! 이렇게 환대를 받게 될 줄 몰랐습니다.”
“네 녀석이 죽을 자리를 찾아온 거야. 이 자리가 죽을 자리가 될 테고.”
악마 신을 바라보는 테라의 음성은 싸늘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대신족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었다.
신족의 대지, 아틀란티스로 악마 신이 방문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대립각을 세우던 악마 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적이 죽을 자리를 찾아왔다는 사실에 살기를 드러내며 포위망을 구성했다.
그럼에도 악마 신은 태연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안을 하려고 왔습니다.”
“무슨 제안이지?”
“지금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할 텐데요, 금탑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
테라는 입을 다물었고, 다른 대신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금탑과 신족은 전쟁 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김준성은 이미 신에 버금가는 무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의 반열에 올랐다고 자부해도 그를 넘는 것은 쉽지 않죠.”
“닥쳐!”
앙칼진 목소리로 외친 것은 네이트였다. 준성과 대결을 벌인 뒤, 아직 부상이 다 낫지 않았지만 당장 악마 신에게 달려들 것처럼 몸이 들썩였다.
“킥킥! 상처는 다 나았는지? 그의 강함을 직접 겪어보았으니 생생한 체험담을 들려줄 수 있지 않습니까?”
“네놈이…….”
신경을 긁는 말에 네이트에게서 살기가 발산되었다. 그럼에도 악마 신은 여유를 잃지 않고 테라에게 말했다.
“현재 신족의 가장 큰 적은 내가 아닌 김준성일 겁니다. 내 말이 틀립니까?”
“틀리진 않지만 네 녀석도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긴 하지.”
“킥킥! 이러다가 오늘 이 자리에서 소멸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신족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건 김준성이며, 기회를 포착하지 못한다면 당하는 건 당신들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원하는 건?”
“김준성의 제거입니다.”
“그를 어떻게 제거할 수 있다는 거지?”
테라의 음성이 한결 가라앉자, 악마 신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그를 제거하는 데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건 세력의 대립입니다. 신족을 예로 들면 저는 물론 지구 신과 관계가 그리 좋지 않죠. 이 둘을 경계하기 때문에 마음껏 나서기 힘든 것입니다.”
“…….”
테라는 긍정도 부정도 표하지 않았다. 각지에 적이 산재해 있기에 선뜻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관계를 풀어드리지요. 저부터 시작해서 지구 신까지. 둘의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지면 신족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네 녀석을 믿을 거라 생각하나?”
“아아, 물론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를 제거하는 데 제 힘을 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왜지?”
“킥킥! 그야 제가 움직이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존재이니까요. 신족에게도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맞다, 그 녀석이 사라지면 우리가 움직이는 것도 자유로워지겠지.”
“제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악마의 유혹.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손을 뻗는 모습에 테라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받아들인다.”
모든 것은 준성을 제거하기 위한 둘의 합작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의 지지가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김기정이 준성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상황이 호전된 것이 전적으로 그의 도움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제가 그리 고마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세계 평화를 유지해 주신 탑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가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가 그것이다.
아틀란티스 대륙을 향한 포스 러쉬로 인해 세계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그로 인해 국제 능력자 연맹으로 힘이 몰려들었고, 든든한 우군이 없는 김기정은 여러모로 고민에 휩싸여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지지는 모든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의 선포는 김기정의 힘을 강화시켜줌과 동시에 든든한 지지기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일을 하는 것은 의장님이 될 것입니다. 제가 거들어 주었다고 해서 크게 바뀌는 건 없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잘 지도해 주시길.”
-물론입니다. 세계인이 아틀란티스의 위험성에 자각한다면 그들의 뜻을 이루는 것은 굉장히 힘들어질 겁니다. 저는 탑주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것으로 통신은 끝났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했던 준성이었으나, 결국 돕게 되었고 상황은 이렇게 흘러갔다.
남은 것은 김기정의 몫인데, 그의 역량이라면 충분히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거라 생각했다.
“쉽게 흘러가는 건 하나도 없겠지만.”
미국도 뜻이 있으니 김기정을 도운 것이고,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준성은 그가 잘 해낼 거라 믿었다.
미국이 갑작스레 막무가내로 나섰던 것은 준성과 거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먼저 행동으로 보여준 이상, 그다음은 준성이 화답할 차례였다.
“미국으로 가라.”
“네……?”
준성의 부름에 자리에 도착한 제시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금탑에 머물면서 마법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던 제시카에게 미국으로 가라는 말은 뜬금없이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미국을 그리워하는 걸로 알고 있다.”
“…….”
정곡을 찔린 제시카는 입을 다물었다. 아닌 척 해도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A.O. 본부에 들어가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기른 제시카는 떠나온 미국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고국이 잘되길 원했으며, 다시 예전의 성세를 되찾길 기원했다.
“쫓아내는 건가요?”
“아니, 쫓아내는 게 아니다. 미국으로 가서 금탑 미국 지부를 맡으면 된다.”
“미국 지부요?”
“이번에 미국과 거래를 하게 됐다.”
준성은 칼 리빙스턴과 더글라스가 있는 자리에서 했던 거래 내용을 언급했다. 그들의 전폭적인 협력을 얻어내는 대신, 미국에다가 금탑 지부를 설치하여 근거리에서 교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책임자로 제시카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아직 자신이 한참 부족하다고 여기는 그녀로서는 선뜻 준성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라면 충분하다.”
“가능할까요?”
“금탑 지부장이 되면 그곳에서 마법을 공부하면 된다. 기초적인 이론은 전수가 끝났고, 남은 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단계를 높여 나가는 것뿐이겠지.”
“네, 제게 필요한 건 깨달음이라고 하셨어요.”
세희가 말했던 것과 일치하는 부분이었기에 제시카는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널 버리는 것도 아니고 쫓아내는 것도 아니다. 네가 그리워하는 고향이기에 그곳에서 마음을 편안히 하고 마법을 수련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배려는 알지만…… 괜찮을까요?”
“심신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게 마법이다. 향수병에 걸린 사람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깨달음을 추구할 수 없는 법이지.”
“……감사드려요.”
고민하던 제시카는 준성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거기서 명심해야 할 건 네 소속이 A.O. 본부가 아니라 금탑이라는 점이다. 협상을 하거나 부탁을 받을 때 모든 점을 금탑의 이익 위주로 생각해라.”
“네, 그럴게요.”
“그거면 됐다.”
미국에서는 금탑과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고 싶어 했고, 준성은 그들의 상황을 훤하게 꿰고 있는 제시카를 지부장으로 삼았다.
비록 이리저리 휘둘릴 수 있겠지만 본인이 꿋꿋하게 견뎌내고 성장할 수 있다면 더 높은 수준의 마법사가 되는 게 가능할 것이다.
“그동안 수고했다.”
자상한 그 한마디는 제시카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있지만 사랑한다고 밝힌 상대 앞에서 감정을 감추느라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던가.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던 그녀는 준성의 한마디에 모든 섭섭함이 씻겨 나가는 듯했다.
“……네, 감사합니다.”
아틀란티스와 접촉하는 것이 교류단으로 한정되면서 신대륙에 대한 정보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국제 능력자 연맹에서 제2차, 제3차 교류단까지 파견하면서 서서히 정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선 아틀란티스 대륙에는 열 개의 도시가 존재했다. 그곳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마을이 둘러싸고 있고, 제각기 믿는 신이 존재했다.
맨 처음 만난 제8도시 네이티아는 네이트라는 신을 모시고 있으며, 제6도시는 이슈타르라는 신을 모셨다. 그리고 3차 교류단이 방문한 칼리아는 한 차례 등장한 적 있던 칼리를 신으로 모셨다.
그들의 신앙심은 목숨을 초개처럼 여길 만큼 굳건했으며, 모든 생활이 신과 밀접한 연관을 가질 만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도시 내의 규칙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건 힘이었다.
수많은 종족이 어우러진 가운데 우열을 가리기 쉬운 건 학문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었다. 지니고 있는 힘의 유무가 곧 신분이었다.
힘이 있는 자는 곧 상위 계층으로 올라섰고, 힘이 없는 자는 노예로 부려졌다.
신분 사회와 약육강식, 그리고 각 종족들의 풍습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도시를 형성했다.
“……따라서 아틀란티스는 각 종족의 습성을 존중해 주기에 지금의 균형을 이루고, 신을 모시면서 체제를 완성해 나간 것 같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아틀란티스에 대해 연구했다. 거대한 제국으로 세계를 지배했다고 알려진 이곳의 존재유무는 밝혀졌지만 문화의 원동력에 대해서는 아직 감춰진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는데, 바로 드래곤의 존재였다.
이건 매우 우연에 의해 드러난 사실이었다. 교류단에서 몇 가지 물품을 교류하면서 드래곤이 새겨진 물건을 받았고, 몇 마디 묻던 도중, 드래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던 것이다.
동체가 수십 미터에 달하며, 만여 년을 살아가는 생명체의 등장에 세계는 흥분에 빠져들었다.
드래곤을 포획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오랜 세월 살아가는 비법을 알아내어 영생을 취할 수 있다는 엉뚱한 소문이 퍼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곤란할 건 없지.”
“완벽하게 정체를 감춰서요?”
“인간의 몸과 똑같은 구조로 구성되니 의심의 여지가 없지. 무엇보다 여태까지 완벽하게 지내오지 않았던가? 당분간 주의를 해야 하겠지만.”
정기정이 생각하는 계획은 간단했다. 아틀란티스에 드래곤이 산다는 말을 들었지만 전설에 가깝고, 최근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다. 그리고 신족과 전쟁을 통해 패하고 멸종당했다고 하면 더 이상 욕심 부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위험성은 있죠. 신족이 밝혀낼 수도 있고요.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로군. 우리를 등장시켜 원하는 걸 얻어낼 수만 있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들이지.”
“저도 그 부분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 이미 자신에게 한 방 먹었기에 순순히 물러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꾸미는 기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초조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과연 어디에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신족의 동태는 우리도 주의하고 있지. 혹 우리가 파악한다면 즉시 전달할 테니 너무 걱정 말게.”
“알겠습니다. 그 부분도 부탁드리지요.”
“그러게.”
정기정과 이야기를 마친 뒤, 준성은 신족의 입장에서 무슨 일을 꾸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원하는 계획을 헝클어뜨렸으니 어떻게든 기회는 만들어야 할 테고…… 수작을 부릴 텐데 내 주위에 드러난 것을 공략할 가능성도 있다. 일단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는 수밖에 없겠군.”
그것 말고는 다른 대비책이 없었다.
입맛이 썼지만 방비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준성은 재차 마음을 다잡았다.
“오랜만이군.”
“네, 본부장님.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더글라스와 제시카는 오랜만의 해후를 즐기며 인사를 주고 받았다.
함께 차원을 건너갔었고, 위기에서 제시카를 구출해 준 것이 더글라스였다. 그리고 금탑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여 더글라스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줬으니, 둘의 유대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금탑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너를 미국으로 보낼 줄은.”
“소속은 금탑이에요. 이전하고는 아주 많이 다른 셈이죠.”
“그런가.”
예전에는 상사와 부하였지만 지금은 대등한 관계였다. 더글라스나 제시카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세상이 보는 눈은 다른 법이다. 그 점을 유의해야 했다.
“앞으로 지부장님이라고 부르겠다. 그 점이 모두에게 좋겠지.”
“불편하겠지만 적응할게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오는 이곳은…… 조금 낯설어요.”
“그럴 수밖에. 뉴욕이 날아갔으니.”
미국 A.O. 본부가 있던 뉴욕은 사라졌고, 현재는 워싱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주 방문하던 곳이지만 정신계 능력자인 제시카에게 있어 정치적으로 얽힌 이곳은 그리 반가운 곳이 아니었다.
“제시카.”
“네.”
“예전 너의 상관으로 물어볼 것이 있다.”
“말씀하세요.”
존대를 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보여주는 태도는 방금 전과 같았다. 의아한 마음을 갖던 그녀는 이어지는 더글라스의 말에 멈칫했다.
“미국을 위해 일해 줄 수 있나?”
“…….”
제시카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미국으로 오는 순간 이런 제안을 받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더글라스는 미국을 사랑하는 남자였고, 미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기울였으니 말이다.
제시카도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길러왔기에 가슴이 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분명 제 가슴은 뛰고 있어요. 하지만 본부장님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금탑 때문인가.”
“아니요, 이건 순전히 제 의지에요. 저는 본부장님의 도움으로 그 지옥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본부장님도 벗어날 수 있었어요. 우리 모두에게 좋은 전개였고, 미국을 위한 길도 되었어요. 하지만 미국이란 곳은 제 조국으로만 남고 그 이상의 의미는 주지 못했어요.”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겠다는 건가?”
“네,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고, 금탑은 제 집이 되었어요. 이곳으로 오게 된 건 탑주님의 의중이 미쳤지만 절 생각해 준 면도 존재해요. 이곳에 금탑 지부가 생겨나고 미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저도 좋아요. 그러니 이 관계를 지속하는 게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으음!”
제시카의 거절에 더글라스는 침음을 흘렸다. 정신계 능력자인 그녀의 합류가 이루어지면 미국 A.O. 본부는 더욱 단단하게 결집할 수 있다. 비록 금탑과 마찰을 빚을 수 있지만 이래저래 방안을 마련해 놓았던 더글라스로서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마음을 그리 먹었다면 어쩔 수 없겠지. 미국의 문은 언제나 네게 열려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나쁘지 않네요. 본부장님의 뜻을 잘 알겠어요.”
지금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임을 더글라스와 제시카는 잘 알고 있었다.
미국에 금탑 지부가 설치되었다는 소식을 몇몇 국가는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기존에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다른 국가들보다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간 것처럼 비춰진 것이다.
여전히 세계 최강이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국인 만큼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했지만 최근 그들이 아틀란티스 대륙에 가한 위협을 감안하면 금탑과 밀약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독일에도 금탑 지부를?”
“어려울까요?”
“글쎄요, 그 부분은 제가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탑주님이 결정하는 사안이라서.”
독일의 모니카 총리를 보며 이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금탑 지부가 미국에 설치된 것이 거래의 대가임을 감안하면 독일에 설치하는 건 무리였다.
“무엇보다 금탑 지부라고 해서 크게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미국의 영토는 광활하고, 금탑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어요. 그곳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부가 필요한 실정이죠.”
이웃의 중국도 거대한 국가였지만 대한민국에 금탑이 존재했기에 지부가 필요로 하지 않았다.
“독일은 금탑과 좀 더 친밀하게 지낼 준비가 되어 있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전폭적으로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필요하면 말만 해주세요.”
“물론이에요. 저도, 금탑도 독일이 든든한 우군임을 잊지 않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유럽의 맹주이자, MP Trade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독일은 금탑에게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동맹이었다.
미국에 금탑 지부를 설치함으로써 다급함을 느끼고 부탁을 해왔지만 그 의가 변하지 않음을 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미하엘 님은 어떻죠?”
“여전해요. 깨달음을 얻어 부지런히 수련을 하고 있고, 성과가 제법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금탑에 방문했던 미하엘은 깨달음을 얻고 부지런히 수련에 임하고 있었다.
세계 10강에 들 정도로 강했으나, 신족이 등장하면서 그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하고 말았다. 미하엘은 자신의 힘이 어떻게든 독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독일 A.O. 본부와 금탑의 매직 나이트가 교류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퍼뜩 생각이 떠오른 이나의 제안에 모니카 총리가 눈을 빛냈다.
“무슨 교류죠?”
“간단한 실력 교류죠. 금탑에 매직 나이트라는 집단이 있는데 실전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았다는 단점이 존재하거든요. 독일과 교류를 하면 그 부분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A.O. 본부에 관한 결정은 미하엘이 내려야 해요. 한번 물어보죠.”
“긍정적인 대답 기다릴게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지만 독일이 거절하지 않을 것임을 이나는 잘 알고 있었다.
독일 방문을 마치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이나는 금탑에 들렀다가 뜻밖의 소리를 듣고 말았다.
“지구 신을 공격할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에 이나의 얼굴이 경악이 번졌다. 그에 반해 이미 알고 있었는지 세희와 엘리엔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미국의 도움으로 신족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어. 완전히 봉합한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그, 그래도요. 너무 성급한 것 같아요.”
시간을 벌고 조금씩 기회를 노리려고 했던 이나로서는 준성의 결정이 너무 다급하게 여겨졌다.
왜 이렇게 지구 신의 제거에 서두르는 걸까.
현재 지구 신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고, 별다른 적대감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조만간 살기를 드러낼 것 같지만 그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는 것이 더 낫다고 이나는 생각했다.
“성급하지 않아. 오래전부터 말해왔잖아?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 거야.”
“…….”
준성을 말리고 싶었지만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기에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이렇게 확고한 모습을 보이면 자신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준이 그렇게 말하면 전 따를게요. 있는 힘껏 도울 테니 같이 가요.”
“내 결심을 받아줘서 고마워.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요소를 없애고 편하게 살아가자.”
“네!”
따뜻한 그의 목소리에 활기를 찾은 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 신이 머무는 곳은 올림푸스라는 가상의 공간이다.
비틀린 공간인 이곳은 지구 신의 거처였고, 한때 그를 따랐던 엘리엔과 타나가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올림푸스로 향하기 전, 공간을 비틀고자 하는 준성이 이나에게 말했다.
“올림푸스로 가는 건 나 혼자야.”
“네? 왜요? 같이 가야죠!”
지구 신은 온전한 권능을 지니고 있는 신이었다. 준성을 믿고 있지만 자신들이 힘을 합치면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 혼자가 나아.”
“이유를 말해줘요. 저는 받아들이지 못하겠어요.”
준성의 대답에 이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만큼 올림푸스로 혼자 보내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말리는 건 자신밖에 없었기에 그녀는 답답한 표정으로 곁에 있던 세희를 재촉했다.
“언니도 뭐라고 해봐요, 지금 준이 혼자서 떠나겠다고 말을 하잖아요. 이걸 두 눈으로 그냥 지켜보고 있을 생각이에요?”
“서방의 결정이잖아? 받아들여야지.”
“그래도요!”
[지금은 그냥 지켜보도록 해.]“뭐라고 좀…….”
목소리를 높이던 이나는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음성이 멈칫했다. 방금 전 것은 세희의 소리였다.
[행동은 그대로 하고. 못 이기는 척 서방을 보내면 돼.]“말려야죠. 안 그럼 저라도 따라갈게요.”
“대결 여파가 심해지면 휘말릴 수 있어. 그것 때문에 그런 거니 이해해 줘.”
“정말 준 혼자 갈 거예요?”
“그게 최선이야. 만약 올림푸스를 부숴 버리면 그때 나타나서 처리해 줘.”
“제발…….”
간절하게 말하는 이나였지만 준성은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인 뒤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공간의 균열이 일어나면서 틈이 생겨났고, 그 사이로 몸을 던져 안으로 파고들었다.
“…….”
이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세희에게 시선을 옮겼다. 자세한 대답을 요구하는 눈길에 주변을 둘러본 세희가 조심스럽게 메시지 마법을 전했다.
[서방이 갑자기 결정을 내린 건 당연해.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세희는 천천히 준성의 결정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이나의 눈이 크게 커졌다가 작아지길 반복하며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준성을 제외한 세희와 이나, 엘리엔은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두커니 서 있던 그녀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공간 전체가 어그러지기 시작하더니 강렬한 존재감이 사방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스파앗!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성스러운 형상을 하고 있는 악마 신이었다.
“이곳에 무슨 일로?”
세희의 물음에 악마 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놓고 어찌 저를 빼놓은 건지?”
“무슨 의미로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정말 모르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겁니까?”
“지구 신을 같이 상대하기로 한 걸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악마 신은 준성에게 강제로 맹세를 하게 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바로 지구 신을 상대할 때 힘을 보태주는 것. 당시 강대한 힘을 지닌 지구 신을 홀로 대적하기 힘들다고 여겨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올림푸스로 향할 때 악마 신을 부르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서 악마 신이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건…….”
키이잉!
세희가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할 무렵, 공간 균열음이 울려 퍼지더니 그 사이로 준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그는 악마 신을 알아보고 멈칫했다.
“이곳에 무슨 일이지?”
“아아, 거대한 힘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분명 지구 신을 공격하러 가는 길임이 분명했는데, 어찌 저를 부르지 않으셨는지?”
준성 앞에 선 악마 신은 주춤하는 모습이었다.
“본래 내 목적은 지구 신을 공략할 때 불리하면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지구 신은 올림푸스에 없었다.”
“호오…….”
짤막한 준성의 대답에 악마 신이 눈을 빛냈다. 자신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올림푸스를 버리고 떠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도움을 청할 이유도 사라진 것이다.”
“지구 신이 도망칠 성격이 아닌데, 이상하군요.”
“같은 생각이다.”
그극! 그그긍!
말을 하던 도중, 주변 공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곳곳에 구멍이 뚫리면서 힘이 요동쳤고, 바다가 불안정하게 파도가 일어났다.
“올림푸스를 파괴하니 여파가 미치나 보군.”
“파괴했습니까?”
“그의 터전을 보전해 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 자신의 터전을 잃은 걸 알게 되면 분노해서 내게 찾아올 테니 좋지 않나?”
“맞습니다, 킥킥! 정말 멋진 방법입니다. 지금쯤 오만한 지구 신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겠군요. 그를 상대하는데 제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주시길.”
“그러지.”
준성의 대답에 악마 신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준성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인가?”
무엇이 시작인지 의미를 알아차린 여인들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