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58)
제138장 준성의 부탁, 드래곤의 결정
“대체 금탑은 무슨 생각입니까? 이것은 우리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인 곳에서 리치앙샤오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쉬이 납득할 수 없었다.
“왜 아무 말이 없습니까? 금탑이 MP Trade를 설치해 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이것은 별개의 일이 아닙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질타하면서 리치앙샤오가 외쳤다.
그러자 자리에 모여 있던 인원 중 한 사람인 박근태가 입을 열었다.
“자세한 사정을 파악하지 않고 금탑주를 모욕하는 행동은 옳지 못합니다.”
“그게 진심입니까?”
“우선 상황 파악이 우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금탑의 행동은 도를 넘은 것입니다! 그의 은혜에 감사하다고 무작정 지금 상황을 끌고 나가는 건 옳지 못하단 말입니다!”
“그 불만을 그에게 직접 말할 수 있습니까?”
“…….”
박근태의 말에 리치앙샤오의 입은 거짓말처럼 닫혔다. 지금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을 금탑주에게 전달할 용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대로 러시아의 움직임을 지켜볼 생각인 겁니까?”
“그럴 수는 없지.”
곧장 부정하고 나선 것은 더글라스였다. 미국과 오랫동안 대립해온 러시아의 도약은 그들로서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하지만 뚜렷한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에요.”
독일의 모니카 총리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러시아를 막고 싶지만 명분도 부족했고, 그들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당장 러시아와 협력하려는 국가들이 더는 나서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리치앙샤오가 대안을 내놓았다.
“어떻게요?”
“독일이 동유럽을, 우리가 중앙아시아를, 그리고 미국이 그 뒤를 받쳐 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현재 러시아가 조직하고 있는 교류단을 막기 위해서는 합류하는 국가를 나서지 못하게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그다음은 러시아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럴 확률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럴 듯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내놓은 제안이지만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그들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헛된 자리로군.”
조용히 듣고 있던 하나다 유지로가 입을 열었다. 리치앙샤오가 발끈했지만 세계 10강인 그에게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 채 차분하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다. 실현이 불가능한 계획을 잘난 것처럼 떠들고 있으니 더는 이 자리에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군.”
“불가능하단 겁니까?”
“아마 금탑주의 뜻을 알고 있을 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깨끗하게 리치앙샤오를 무시한 뒤, 하나다의 시선이 김기정을 향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김기정은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는 고인 물이 썩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미리 조치를 취해 놓은 건가?”
“아틀란티스는 독이 든 사과, 독점하려고 할수록 온몸에 독이 퍼지는 속도가 빠르기 마련입니다.”
비유로 설명을 했지만 그 말이 무슨 의미를 품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만 리치앙샤오는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금탑주의 결정 하나에 각국의 내로라하는 자들이 순응하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중국은 왕천후의 몰락 이후 세계 10강의 실력자를 보유하지도 못했고, A.O. 본부의 전력도 특출하지 못했다.
이곳에 모인 곳에서 입지가 좁게 여겨질 만큼 상황이 좋지 못했기에 괜히 모난 돌이 정 맞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결정했다면 받아들이는 게 순리겠지. 우리 일본은 러시아의 움직임을 지켜보도록 하겠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태야 금탑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이미 결정된 사안이나 다를 바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독일.
둘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확실하게 결정된다고 봐야 했다.
“우리 미국은…… 금탑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독일도 마찬가지에요.”
직접적으로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과 별개로 금탑의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졸지에 홀로 고립된 리치앙샤오는 벌레 씹은 것처럼 표정을 구겼으나 대세에 홀로 불응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중국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당장 불만을 쏟아낼 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잠시 숨을 죽여야 할 때였다.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을지도.’
금탑주라면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지만 결과도 금탑의 결정에 따르는 것으로 결론이 나와 버렸으니까. 고인 물이 썩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건 나쁘지 않지만 모두 금탑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신족에게 불씨를 던져 놓은 준성은 다음으로 착수한 것이 감시망의 확충이다.
세계의 절반을 시야에 둘 수 있다고 하나, 나머지 절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한, 확신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기 힘들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다음부터 곧바로 나머지를 커버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고, 소기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남수단에 농장을 만든 거였어요?”
“그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으니까.”
“그럼 리엔 언니가 그곳으로 간 이유도…….”
“감시망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건 리엔밖에 없어. 이곳에 있어도 별달리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니까.”
얼마 전 엘리엔이 휴식을 이유로 남수단에 갔다. 농장을 일구고 있는 그곳으로 가기에 의아함을 느꼈던 이나였지만 지금은 모든 의문이 풀렸다.
“하지만 마지막 퍼즐을 맞춰야 내가 가진 구상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어.”
“뭔데요?”
“바로 독일이야. 독일에 유럽 전역과 북대서양을 아우를 수 있는 감시망을 설치해야 내가 원하는 감시망이 완성될 수 있어.”
“거기는…….”
“어렵겠지?”
“네, 쉽게 허락할 것 같지 않아요.”
남수단에 설치된 것도 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준성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다. 그곳은 준성의 도움에 크게 의지하고 있으니 상관이 없지만 독일은 경우가 달랐다.
자신들의 국가에 공간 이동을 감지할 수 있는 감시망의 설치를 달가워할 리 없었다.
“그럼 다른 곳을 알아볼 수밖에 없나.”
“그게 나을 것 같아요.”
독일과 협상할 생각이 있던 준성은 이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한다면 아무래도 따르는 게 나은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알았어, 그렇게 해야지.”
“어떻게 하려고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 설치하면 되지 않을까? 마법진을 설치해 놓으면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게 나을 것 같아요.”
“그럼 그렇게 할게.”
“네!”
내심 독일에 부탁하는 것이 꺼려지던 이나는 준성의 확답을 듣고 표정이 밝아져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준성은 마지막 안배를 하고자 했다.
그 역할을 해줄 것은 드래곤이었고, 준성으로서는 특별히 무언가를 내줄 것이 없는,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어려운 부탁이로군.”
“그래서 드래곤에게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정신적 지주인 카슈트론과 정기정, 아델카나와 바스리엘 등 모든 드래곤이 모인 자리에서 준성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난감하군.”
“그만큼 우리를 믿어주는 것 같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안 그래?”
아델카나는 쾌활한 어조로 말했지만 정기정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것과는 별개지 않나. 우리의 운명이 걸린 문제인데.”
“하긴, 자칫 잘못하면 드래곤이 멸족할 수 있는 문제니까.”
“…….”
준성은 긍정도 부정도 표현하지 않은 채 조용히 드래곤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마 자신이 이런 종류의 부탁을 받았다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사안이었기에 묵묵히 대답을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신족을 막아달라는 건 어려운 사안인 것 같군.”
준성의 부탁, 그 내용은 지구 신을 제거하러 나서는 사이 준동할 신족을 드래곤더러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전쟁에서 패하고 도망자로 살아왔기에 드래곤을 이끄는 정기정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해 줄 수 없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안타깝지만…….”
“하지만 무작정 강짜를 부리는 건 아닙니다.”
거절의 의미를 표하려던 정기정의 말을 가로막았다. 의아함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니, 준성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당분간 신족은 외부로 힘을 표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들 사이에 작은 불씨를 던졌습니다.”
준성은 엘 가벨과 대결을 설명하고 헤스티아가 그를 구출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이야기를 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드래곤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설마하니 그런 수를 부릴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동안 내부에서 잡음이 흘러나오겠군.”
“그렇지만 제 수가 먹혀들지 않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드래곤의 존재감입니다.”
“우리가 신족과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잖나.”
“그래서 무리한 부탁인 걸 알면서도 말을 한 겁니다.”
“…….”
정기정은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것은 다른 드래곤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준성의 수가 먹혀들지 않고 신족이 움직인다면 드래곤 모두가 신족에 의해 죽을 수도 있는 도박의 수였다.
“우리…….”
모두가 침묵을 지킬 무렵, 잠자코 듣고 있던 카슈트론이 입을 열었다.
“드래곤이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면 그동안 진 빚은 모두 청산하는 게 되겠지. 안 그런가?”
“물론입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준성도, 정기정도, 다른 드래곤도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는데 어떤가?”
“빚을 지고 살 수 없는 건 맞는 말씀입니다. 알겠습니다,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정기정이 준성을 바라보았다.
“드래곤이 자네에게 입은 은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지. 그걸 갚기 위한 일환으로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고 신족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이번을 마지막으로 모든 빚을 청산하려고 한다. 그에 동의해 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있는 힘껏, 도와줄 수밖에 없겠군.”
“난 찬성이야. 드래곤 하트랑 용언도 얻었는데 실력 발휘할 기회가 없었잖아?”
정기정이 다른 드래곤을 둘러보며 말하자, 가장 먼저 아델카나가 호응했다.
“신족 녀석들을 뭉개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바스리엘까지 수긍하니 분위기는 확 기울어졌다. 그러자 다른 드래곤도 하나둘씩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숫자도 적고 객관적인 전력도 열세였지만 그동안 준성에게 입은 은혜가 그들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모두의 허락을 얻어낸 준성은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드래곤의 도움은 그가 계획한 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다.
“지금 이걸 어떻게 할 거야?”
“…….”
날 선 네이트의 음성에 헤스티아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금 뭐라 말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을 잘 알고 있던 것이다.
“대답을 해. 이건 종족의 안위와 직결된다는 걸 모르는 거야, 헤스티아?”
“그만해, 네이트.”
“너도 마찬가지야, 칼리! 헤스티아와 같이 다녔으면 잘못된 점을 알았을 텐데 그걸 신경도 쓰지 않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 너도 혐의를 벗기 힘들어.”
“…….”
자신에게 불똥이 튀자, 칼리의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헤스티아의 행동은 신족들로서 납득하기 힘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일의 발단은 준성과 엘 가벨이 충돌을 일으키면서 시작이 되었다.
중간에 헤스티아가 난입하면서 가까스로 구해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준성과 거래에 가까운 행동을 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바로 준성과 어떠한 관계인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이미 그와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비틀어진 것이 신족이었고, 헤스티아는 대신족 중에서 수위를 다투는 존재였다. 테라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가 인간과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대답해, 헤스티아!”
“나한테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거야?”
“뭐?”
“내가 그 인간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고 한다면 순순히 믿을 수 있어?”
“…….”
헤스티아의 말에 네이트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잠시, 이내 황당한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 지금 의혹을 사고 있는 주제에 큰소리 빵빵 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줄 알아? 천만에! 설령 협력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안 되는 일이었어.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
“알아, 그래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아주 고약하게 걸려들었단 걸 깨달았어.”
“고약하게 걸려? 그럼 그 인간과 한 치도 협력한 적이 없다는 의미야?”
“내가 인간과 협력하려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걸 잃을 행동을 자초할 것 같아?”
“만약 그랬다면 멍청한 짓을 한 거지.”
확신을 담은 네이트의 목소리에 참고 있던 칼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네이트! 너는 헤스티아가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 거야?”
“드러난 정황은 그렇게 말하고 있어.”
“정말 넌…….”
네이트가 호전적이고, 위로 향하고자 하는 야망이 있다는 건 칼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럴수록 더욱 두텁고 견고한 벽이 되고자 했고, 애꿎은 피해자가 등장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가 온순한 헤스티아를 싫어하는 걸 알고 있고, 이런 상황을 통해 자신의 입자를 확장시키려는 의도를 품고 있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내게 뭘 원하는데?”
듣고 있던 헤스티아가 의문을 꺼내 들었다. 미간을 지그시 모으고 있던 네이트는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신족에서 물러나.”
“네이트!”
“내 요구가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지금 우리 동족들은 헤스티아의 행동으로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어.”
정확하게는 네이트가 만든 혼란이고, 헤스티아는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빠진 상황이었다.
칼리의 표정이 형편없이 구겨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정을 내리는 건 테라야, 그의 뜻대로 따르겠어.”
“멋진 판단이야.”
신족의 지도자인 테라는 누구보다 엄격하고 잔인했다. 평소 헤스티아가 자신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다른 자들과 전투를 치르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통수에 걸려들었으니 테라의 조치는 필시 잔인할 것임이 분명했다.
네이트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을 무렵, 한줄기 목소리와 함께 테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 끌 것 없어, 지금 바로 결정을 내릴 테니까.”
“테라!”
“헤스티아, 네가 저지른 짓에 대해서 잘 들었어. 너답지 않은 실수야.”
“면목 없어. 테라가 말하는 처분대로 따를게.”
고개를 숙인 헤스티아는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와 같은 입장이 되었다. 입가에 호선을 그린 테라는 곧장 그녀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내 결정은 간단해. 헤스티아, 너는 지금 이대로 우리를 보호하도록 해.”
“……!”
“테라! 그게 무슨 말이야?”
“이게 그의 계략인 것도 몰랐던 거야?”
“계, 계략?”
“이대로 헤스티아를 전력에서 이탈시키면 우리의 힘이 줄어들지. 악마 신이나 지구 신을 상대할 때 전력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어. 네이트, 너의 욕심이 너무 과했어.”
“…….”
똑 부러지는 대답에 네이트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상대의 계략에 휘말린 거라면 이보다 더 부끄러운 경우는 없는 셈이었다.
“당분간 쉬면서 나와 사이가 벌어진 척해.”
테라가 내린 결정은 간단했다. 헤스티아라는 전력을 최대한 아낀 뒤, 결정적인 순간 준성에게 한 방 먹이려는 생각이었다.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야.”
테라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걸렸다.
러시아의 교류단이 출발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하던 것과 다르게 반발은 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국제 능력자 연맹에서 정식으로 인정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러시아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은 교류단에 포함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기존의 강대국들은 이러한 조치에 겁을 먹고 허가를 해준 것에 매우 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미 일은 진행되고 있고, 국제 능력자 연맹에서도 이 기회를 발판 삼아 전 세계로 교류단을 확장하고자 했다.
그 결과 기존의 교류단을 제외하고 동남아시아 정상들이 모여 교류단을 조직하고자 했고,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유럽의 변방 국가들이 뭉쳐서 교류단을 조직했다.
“이게 최선이겠지.”
김기정으로서는 교류단의 규모를 최대한 줄이고 숫자도 줄이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허용할 수밖에 없는 건 저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게 되면 남는 것은 이득이 아니라 전쟁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쉬운 게 하나도 없지만, 이 정도면 금탑주의 뜻을 따라준 게 되겠지.”
이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되뇌며 김기정은 세계가 더는 혼란스럽지 않길 간절히 기원했다.
그린란드와 캐나다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섬들.
그중 한 곳으로 향한 준성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감시망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자 분주히 움직였다.
“이제 끝났나.”
이름 모를 섬에 온 뒤, 사흘 동안 부지런히 움직였다. 준성은 북대서양 인근에서 벌어지는 공간 이동을 감지하고자 했고, 마침내 그 뜻을 이룰 수 있었다.
“…….”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대서양을 둘러싼 공간 이동을 말이다.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 그들도 공간 이동을 시전하고 있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때가 온 건가.”
지구 전역을 아우르는 감시망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 이상, 공간 이동을 통해 자신의 이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는 감시망은 힘의 파장을 분석하고, 상대가 누구인지 유추하게 만드는 단서를 와르르 쏟아낼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악마 신인가.”
악마 신을 불러들임으로써 지구 신을 제거하기 위해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공간 이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곧바로 자신의 거처에 악마 신을 초대했다.
“지구 신을 제거할 거다.”
“그렇게 말씀하셔 놓고 제게 의심의 눈을 보내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 유쾌한 대접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의심이 아니다. 이전에는 지구 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그런 행동을 보였지만 이제는 다르다.”
“다르다는 말은?”
“지구 신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뜻이다.”
“호오…….”
확신 어린 준성의 말에 악마 신이 눈을 빛냈다. 어떤 연유로 그가 이렇듯 지구 신이 존재하는 위치를 확신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유는 말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아,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주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유감스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지닌 비밀을 알려줄 이유가 되지 못하지.”
“아쉽군요.”
어깨를 으쓱하는 악마 신이었지만 준성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자신이 지닌 비장의 수단을 알려줄 이유도 없었고, 지구 신을 제거하면 그 또한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유력한 존재였던 것이다.
신이라고 하나 그 본질은 악마였고, 믿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세희! 리엔! 나와 같이 갈 거야.”
“준! 나는요?”
준성의 호명에 이나가 격렬하게 반발했다. 그의 결정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색이 잔뜩 묻어 나오고 있었다.
“지구 신과 대결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없어. 그걸 알잖아?”
“리엔 언니는요? 저도 권능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아니, 부족해. 무엇보다 이곳을 지켜야 할 사람으로 리엔보다 이나 네가 적합하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 그 부분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
“…….”
“그럼 부탁할게.”
“미워!”
고개를 홱 돌린 이나는 그대로 방을 향해 달려갔다. 방금 전 준성의 행동에 섭섭하다는 걸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킥킥! 미움을 사서 섭섭하겠습니다?”
“네가 관여할 사안은 아니지. 바로 떠난다.”
“빠른 결단이 돋보이는군요. 좋습니다. 이번에 반드시 끝을 보도록 하지요.”
준성의 확고한 결의를 느낀 악마 신이 흥에 겨워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의 몸이 빛에 휩싸이더니 그대로 자취를 감추었다.
준성 일행과 악마 신이 향한 곳은 깊은 해저공간이었다.
태평양 한가운데로 파고든 그들의 신형은 빠른 속도로 심해를 향했다.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이 강해질수록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공간에 도착했을 때, 준성을 비롯한 악마 신의 몸이 멈춰 섰다.
키이잉!
준성이 손을 뻗자 공간이 갈라지며 순백의 빛이 강렬하게 뿜어졌다. 연신 공간이 요동치는 가운데 좌표가 뒤죽박죽 뒤엉켜서 흔들리고 있었다.
준성의 외침과 함께 그들의 몸이 공간의 틈으로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두 눈에 드러난 것은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였다.
그 끝에는 지구 신이 자리에 서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그의 표정을 본 악마 신은 몸을 가늘게 떨며 외쳤다.
“아아, 정말 대단합니다. 이 세계를 제 집처럼 누빌 수 있는 지구 신을 찾아오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감동으로 전신이 흥분에 물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준성의 얼굴에는 차분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제 끝을 봐야겠지.”
그의 중얼거림이 장내에 모인 이들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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