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69)
제149장 이나 vs 네이트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나는 듯했지만 어둠을 밝히는 찬란한 광휘가 사방에 드리우자, 이나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렇게 끝날 리가 없지.”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네이트였다. 12호에게 맡겨두고 상황을 주시하던 그녀는 이나의 등장을 보고 뒤늦게 나타난 것이다.
“너는 김준성과 같이 있던 인간이로군.”
그녀의 얼굴을 네이트가 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언젠가 반드시 갈아 마셔 버리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놈의 여자였으니 말이다.
날카롭게 눈을 치뜨고 바라보던 네이트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눈앞의 녀석을 반드시 해치워 버리겠다는 살의. 이나를 죽여 버려서 준성을 고통스럽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한 줄기 빛이 되어 쏘아졌다.
카앙!
단숨에 공간을 가르고 쏘아진 빛의 공격은 이나의 검에 가로막혔다. 연이어 빛줄기가 내려쳤지만 그때마다 검을 휘둘러 튕겨내곤 했다.
“하앗!”
기합을 터뜨린 이나가 앞으로 쇄도하기 무섭게 네이트의 몸이 뒤로 물러났다.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이나와 간격을 유지하려는 네이트의 치열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재빠른 몸놀림과 공간 이동으로 피해내는 네이트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린 이나가 검을 집어 던졌다.
푸른 오러에 휩싸인 검이 단숨에 공간을 가르고 간격을 파고들자, 네이트의 양손에 강렬한 빛이 번뜩였다. 두 힘이 허공에 얽혀드는 순간, 요란한 폭발이 사방에 일어났다.
꽈릉! 꽈과광!
천둥이 연이어 내리치는 것처럼 힘의 여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너어……!”
공격을 받은 네이트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녀의 표정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김준성에게 형편없이 당하여 구함을 받을 수밖에 없던 굴욕의 순간.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그런 굴욕을 겪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멸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네이트는 꾹꾹 억누르며 참아냈다. 지금 살아남아서 힘을 길러 반드시 준성에게 복수하겠다는 의지가 그녀를 지탱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여자로만 알고 있던 이나의 공격에 밀려났다는 것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결과를 낳았다.
파앗!
시력을 앗아갈 만큼 찬란한 빛이 뿌려졌다. 눈살을 찌푸린 이나가 뒤로 물러났지만 네이트의 권능이 발현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상대의 정신을 파고들어 자신이 원하는 광경을 보여주게 만드는 환각, 단숨에 정신을 좀먹어 들어가는 권능의 발현에 이나의 몸이 멈칫했다.
“후후후! 이거야.”
맥없이 정신을 놓아버린 그녀의 모습에 네이트는 웃음을 지었다. 상대가 자신의 환각에 걸려들었다면 목숨을 취하는 것은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만큼 쉬웠다.
맛있는 것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처럼 네이트가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가락을 뻗어 빛줄기로 미간을 겨누는 순간,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아앗!
“이, 이게 무슨……!”
그것은 한 방울의 먹물과 같았다.
짙은 검은색은 순백이라고 할 수 있는 네이트의 권능을 검게 물들였다.
그사이 환각은 깨져 버렸고, 지척에 접근했던 네이트는 날카로운 예기에 황급히 고개를 숙였지만 뺨이 베였다.
“으으!”
자칫 잘못하면 신의 육체에 큰 타격을 입을 뻔했기에 네이트의 두 눈이 부릅뜨여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나가 검을 까딱였다.
“아깝네, 제거할 수 있었는데.”
“네, 네놈…….”
“왜? 그런 허접한 권능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줄 알았나 봐?”
“뭐라고?”
“허접한 거 맞잖아. 이제 보니 별거 아니네. 대신족이라고 해서 제법 기대했거든? 근데 칼리보다 약한 것 같은데.”
“죽여 버리겠어!”
언젠가 테라의 자리까지 올라가겠다고 다짐한 그녀로서는 이나의 말보다 더 모욕적인 것은 없었다. 일갈을 터뜨리며 앞으로 튀어 나간 뒤, 아낌없이 권능을 발현하여 사방에 흩뿌렸다.
수많은 환상이 그녀의 중심으로 펼쳐지면서 공간을 어그러뜨렸다. 곳곳에 치명적인 유혹의 손길이 뻗어 나오며 이나의 정신을 흩뜨렸다.
“이리 와, 우리 같이 가자.”
“그동안 외로웠지? 미안해.”
“당연히 이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지.”
“세희? 세희는 누군데?”
상대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환상이 펼쳐지면서 이나의 눈앞에 낙원이 펼쳐졌다.
준성이 세희보다 자신을 더 원하는 모습. 현실에서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오랫동안 함께해 온 정 때문에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그의 행동에 적잖은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네이트의 환상이 그것을 채워줬다.
“그래 봤자, 환상이잖아. 난 현실에서 행복하고 싶거든?”
와장창!
이나의 일갈에 환상은 맥없이 깨졌다. 세희의 맹훈련으로 신성을 단련한 이나는 이미 신격을 완성하여 신의 반열에 올라선 상태였다.
“네 권능은 안 먹힌다니까? 그럼 뭐만 남게 될까, 대신족 씨?”
“제길! 말도 안 돼!”
네이트는 자신의 권능이 먹혀들지 않는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은 신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면서 가장 강력한 권능 중 하나인 환상을 얻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해주고, 상대가 원하는 오감을 자극한다. 누구나 빠져들 수밖에 없기에 정신적인 허점만 파고든다면 설사 신이라고 해도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대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권능은 무용지물이었다.
악마신, 김준성, 그리고 눈앞에 있는 재수 없는 년까지.
모두 환상 권능을 튕겨내고, 자신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오기가 네이트를 지탱했다. 그녀는 권능에 의지하는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빛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파팟! 파파팟!
빛이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불규칙하게 뒤엉키는 빛줄기는 마치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얽히면서 이나가 빠져나갈 수 있는 모든 반경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본 이나는 피하기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성을 얻은 자신이 너무 강해진 건지 아니면 상대가 약한 건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지금 눈앞의 대신족은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며, 그 원인은 악마의 신성을 온전히 소화한 데 있었다.
“왜 내가 피할 거라고 생각해? 너 정말 별거 아닌가 봐.”
듀란달을 든 이나가 마나 홀에 내재된 힘을 끌어올렸다. 그동안 쌓아온 웅혼한 마나와 악마의 신성에서 흘러나온 힘이 뒤섞이며 이제껏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기이한 힘이 발현되었다.
츠츠츠!
마치 모든 것을 뒤섞은 듯 검은색에 가까운 혼탁한 빛이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일렁이는 힘의 정체는 이제껏 누구도 발현하지 못했던 혼돈(Chaos)의 힘이었다.
꽈아앙!
촘촘하던 빛의 그물망은 혼돈의 힘 앞에 갈가리 찢겨 나갔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네이트의 눈이 커졌고, 이나는 공간을 가르듯 날쌘 움직임으로 그녀의 앞에 도달했다.
“이 정도로 준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우스운 소리는 사양이야.”
퍽!
둔중한 충격이 복부로 퍼져 나가자, 네이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으…….”
무지막지한 공격이었다. 내부의 모든 것들을 산산이 파괴하는 충격은 준성에게 맥없이 당하고 소멸될 뻔한 그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 정도로 신의 육체가 무너지지 않네. 역시 쉽지 않아.”
바로 앞에서 신의 육체에 대한 진단을 내리는 이나의 모습에 네이트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닥쳐!”
자신이 왜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힘을 끌어 올리자, 네이트의 몸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이내 폭주하기 시작했다.
제어력을 잃은 그녀가 자폭을 염두에 두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이나는 이성을 잃은 네이트를 바라보며 검을 겨눴다. 경박하게 말을 내뱉었지만 이 모든 것은 네이트의 이성을 잃게 만들기 위한 도발에 불과했다. 그 도박은 성공했고, 폭주하는 힘을 제어하지 못한 네이트에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에게 부여받은 권능과 악마의 신성이 조화된 혼돈의 힘이 검을 타고 뻗어 나갔다.
그것이 네이트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순간,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파사사!
폭주하던 빛이 그대로 부서지고 있었다. 유리에 실금이 생기는 것처럼 하나둘씩 늘어나던 선은 더 이상 자리할 수 없을 만큼 숫자를 늘리더니 그대로 부서져 나갔다.
저항할 수 있는 수단마저 잃어버린 망연한 네이트의 눈에 미소 짓고 있는 이나의 얼굴이 들어왔다.
“권능을 무효로 돌리는 내 권능과 악마의 신성이 만난 새로운 힘이야. 괜찮지? 사실 난 네가 아니라 테라가 오길 원했어. 월척을 낚기 위해 나라는 커다란 미끼가 온 건데. 아쉽긴 하네.”
“너, 너…….”
“신의 육체가 굉장히 튼튼한 건 알고 있지? 대신 그만큼 소멸시키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 많이 아프겠지만, 잘 가! 다음 생애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고.”
꽈아앙!
이나의 검격이 적중하자, 네이트의 몸이 끈 떨어진 연처럼 떨어져 나갔다. 그와 함께 순백의 빛에 휩싸이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내가 강해진 게 맞겠지? 하나 더 낚였으면 좋겠는데.”
네이트를 처리하고도 전신에 충만한 힘이 거의 소모되지 않은 걸 느낀 이나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파앗!
감각을 파고드는 불길함에 테라의 몸이 멈칫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내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옆의 헤스티아에게 말했다.
“……네이트가 소멸했어.”
“뭐?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네이트가 소멸했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어.”
“말도 안 돼…….”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분명 네이트라면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동족이 소멸할 때까지 지켜보기만 한 건가요? 이럴 수 없어요! 네이트는 대신족이라고요. 우리 종족을 이끌어 줘야 할 그녀가 이렇게 허망하게…….”
완 제이드에 이어 두 번째 대신족의 소멸이었다. 열 명으로 구성된 대신족은 신족을 이끄는 지도자이자,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주축이었다. 그런 네이트의 소멸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네이트라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을 텐데.”
“누구죠?”
“힘의 여파를 보면…… 금탑주의 여인일 확률이 높아.”
“더 이상 그들과 한 배를 탈 수 없다는 의미네요.”
치미는 증오심에 헤스티아는 이를 꽉 물었다. 더 이상 무슨 수를 써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 거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처음부터 이럴 관계였어. 그래서 지구 신과 상잔을 유도했던 거고. 네이트가 목숨을 잃은 이상 헤스티아 너의 온건한 성향도 두고 보지 않을 거야. 이대로 가면 신족은 반으로 나뉜 채 하나씩 사냥당할 테니까.”
“알았어요. 제 생각이 잘못되었던 걸 인정할게요. 처음부터 그들을 깨끗하게 제거했다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겠죠.”
모든 게 자신의 탓인 것마냥 헤스티아는 자책했다.
깊이 자책하는 헤스티아를 보며 테라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네이트의 소멸이 예상 밖이었지만 헤스티아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다는 게 더 의미가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전면전뿐인가.’
하나로 합쳐진 신족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면 지구 신이든, 김준성이든 누구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내부의 불안 요소를 치워내면서 얻어낸 성과에 테라는 기꺼이 웃을 수 있었다.
남수단에서 일어난 천재지변 소식은 곧바로 세계 전역에 퍼져 나갔다.
우간다와 에디오피아&소말리아 연합군이 남수단으로 진격한 가운데, 금탑의 영역이라고 알려진 곳에서 벌어진 알 수 없는 빛의 폭발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인해 식량을 저장해 뒀던 창고 두 개가 불탔다. 그로 인해 입은 피해가 천문학적인 금액이라고 추정되는 가운데, 금탑의 공식적인 발표가 이루어졌다.
-소말리아를 비롯한 4개국의 능력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모두 금탑의 감옥에 갇혀져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그 증거로 제시된 것이 각국에서 활동하던 능력자들의 모습이었다. 복면과 변장이 제거된 그들은 아프리카 4개국에서 활동하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기에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범인으로 지목된 4개국은 절대 아니라며 단호하게 부인했으나 이미 드러난 정황은 금탑 측으로 무게가 기울어져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짐작하기 힘든 상황.
금탑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홀로 이동한 이나는 동부 전선에 도착해 있었다.
“막아! 총을 쏴!”
두두두두!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나는 듀란달을 늘어뜨린 채 천천히 접근했다.
소말리아&에디오피아 연합군은 일제히 사격을 하면서 이나의 접근을 막았다.
콰광! 쾅!
박격포와 곡사포가 불을 내뿜으며 이나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휘감은 반투명한 막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마치 산책을 나온 것처럼 느긋하게 접근하는 그녀의 모습은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와 같았다.
아무리 총을 난사하고, 포격을 가해도 흠집조차 나질 않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군인들의 눈동자에 절망이 서리기 시작했다.
“죽여! 죽이라고!”
지휘관이 외쳤지만 수만 발의 총알을 받아내고도 멀쩡한 괴물이 눈앞에 있었다.
“능력자들! 능력자들은 어디에 있나!”
화기로 제압할 수 없는 괴물임을 확인한 본부에서는 곧바로 능력자들을 출격시켰다. 삼십여 명에 달하는 그들은 이나를 제압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공격했다.
물질계 능력자는 속성의 강력한 파괴력을 운용했고, 정신계는 이나의 정신 부분을 간섭하여 움직임을 방해하고자 했다. 강화계 능력자들은 신체 강화를 통해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려 했다.
그들 모두 각국에서 대접받는 능력자였지만 이나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다.
파사사!
컥! 크윽!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정신계 능력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나의 정신에 간섭을 하려다가 오히려 역공을 맞아 자리에서 쓰러졌다. 신의 힘을 지닌 이나에게 일반인보다 조금 뛰어난 수준의 정신력으로 간섭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파방! 팡!
물질계 능력자들의 공격도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연이어 이나의 방어막을 공략했지만 절대방어의 방어력을 뛰어넘지 못했다.
오히려 이나가 커다랗게 검을 휘두르자, 푸른 오러가 길게 뻗어나가며 그들을 강타했다.
마지막으로 강화계 능력자들은 직접 검으로 한 대씩 때려주었다. 검면으로 후려치기 무섭게 신음을 흘리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사이 이나는 적진으로 진입했다. 그때부터 움직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파앗!
“마, 막아!”
지휘관들이 외치며 총을 쐈지만 이미 통하지 않는 건 증명된 바였다. 능력자들은 모두 제압된 상태였고, 총알이 방어막을 두드리는 건 신경 쓰지 않은 채 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가 목표로 삼은 곳은 단 하나, 바로 수뇌부가 있는 곳이다.
꽈광! 꽝! 꽝!
끄아악!
부랴부랴 도망치려는 수뇌부를 향해 검을 휘젓자, 오러 폭풍이 주변 일대를 뒤집어놓았다.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자, 이나가 사령관으로 보이는 초로인의 앞에 도착해서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끝이네.”
사령관을 잡은 이상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수뇌부가 있는 곳으로 진입한 순간, 총기를 난사하지 못하는 군인들을 보며 이나가 외쳤다.
“끝났으니 모두 항복하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귓가를 파고들어 고막을 진동시켰다. 압도적인 그녀의 신위에 경외감을 느끼던 군인들은 하나둘씩 무기를 내려놓았다. 총기와 포격, 능력자들의 공격으로도 어쩔 수 없는 그녀의 힘은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소말리아&에디오피아 연합군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수뇌부가 사로잡히면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원 사로잡을 수 있었다.
남수단 톤스 대통령은 이나를 보며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넸다.
“남수단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금탑의 우방인데 도와주는 게 당연하죠.”
승전 기념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 톤스 대통령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가장 우려하던 동부 전선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승리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남부 전선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이나의 활약으로 일시적인 휴전 상태로 돌입해 있었다.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금탑이 남수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돼요.”
“물론입니다, 하하!”
짐짓 호탕한 웃음을 짓는 톤스 대통령이지만 묘한 기색이 서려있는 걸 감지한 이나가 물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요?”
“안 그래도 말인데, 혹시 남부 전선의 일도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동부 전선을 정리해 준 것만으로도 큰 도움을 준 셈이지만 우간다와 대치하고 있는 남부 전선은 언제 뚫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남수단의 전력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북쪽의 수단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라 함부로 군대를 이동시킬 수 없던 것이다.
“도와줄게요.”
“정말입니까?”
“도울 땐 확실하게 돕자는 게 금탑의 정책이에요. 그러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이번 일은 저들 외에 다른 의사도 개입되어 있으니까요.”
이나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톤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자 회견에서 소말리아&에디오피아 연합군을 완파하고 전원 사로잡았음을 발표하며, 응징을 가할 거라고 외쳤다. 그리고 남쪽의 우간다 군대에도 조만간 남수단과 금탑의 징벌이 떨어질 거라고 강하게 외쳤다.
수많은 외신 기자가 톤스 대통령의 발표를 메모했지만 그보다 더 집중을 받은 건 이나였다. 톤스 대통령의 뒤를 이어 단상 위에 선 이나는 외신을 둘러보며 말했다.
“금탑이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합류하게 된 이유는 하나에요. 바로 신족이 4국 연합의 배후에 서 있기 때문이에요.”
“그게 사실입니까?”
“증거가 있습니까?”
상상 이상의 반응에 이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이에요. 남수단에서 일어난 빛의 폭발은 저와 신족의 대결에서 일어난 거니까요. 신족을 따르던 수하들도 사로잡았고, 신족 하나도 제거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들은 인간을 사랑하는 척하지만 근본은 인간의 믿음을 갈취하여 신이 되고자 하는 자들이에요. 저는 그들이 내민 손을 잡고 분란을 일으키는 4국 연합을 징벌하겠어요. 이것은 금탑의 뜻이고, 남수단의 뜻이 될 거예요.”
“……!”
다시 한 번 폭탄을 떨어뜨리는 이나였다. 그 말은 전선에 투입되겠다는 이야기였고, 세계 10강을 넘어 최강으로 평가받는 그녀가 전선에 나타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여부는 불을 보듯 뻔했다.
“4국 연합은 신족과 손을 잡으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겠지만 그러지 않다는 걸 직접 알려주도록 하겠어요. 지켜봐요, 인간의 길을 저버리고 권세를 탐한 자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섬뜩한 눈빛으로 말하는 이나의 모습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대로 두고 보면 안 돼요.”
테라의 열렬한 지지자로 바뀐 헤스티아는 이나의 기자회견을 보고 발끈했다. 네이트를 소멸시킨 그녀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적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테라는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가 나타나면 개입했다는 걸 인정하게 돼. 그러면 인간들이 불신을 갖게 될 테고 일이 아주 복잡하게 꼬여 버릴 수 있어.”
“그래서 그냥 지켜보자고요?”
“그럴 수는 없어. 하지만 상대는 네이트를 홀로 소멸시킨 여자야. 우리가 단체로 나서게 되면 부족한 명분도 모두 잃게 돼. 차라리 한 명만 나서서 그녀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알리고 바로잡으려는 모습이 좋아. 그걸 해줄 수 있는 게 여기에는 몇 없지.”
테라의 말을 들은 헤스티아가 직접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에 끼어든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오시리스였다.
“테라, 내가 나서면 안 되나?”
“네가?”
“네이트를 소멸시킬 정도라면 피라미는 아니겠지. 오랫동안 틀어박혀 수련만 했으니 내 힘을 한 번 점검해 보고 싶다.”
“상대를 확실히 꺾을 수 있어? 네이트를 어렵지 않게 꺾었어.”
“내가 나서길 원해서 이런 상황을 만든 거 아니었나?”
“아니라고 말하기 뭐하네.”
처음부터 오시리스를 염두에 두고 말을 했던 테라는 멋쩍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나서주면 모든 게 쉽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오시리스, 너라면 확실하게 처리하고 우리의 명분도 살려줄 수 있을 거야. 헤스티아, 무슨 불만이라도?”
“……아니에요. 오시리스라면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헤스티아가 순순히 수긍하자, 오시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방심하지 않는다. 내가 가겠다고 한 건 그동안 너희들의 노력에 비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네이트가 소멸되었으니 그 복수를 내가 하도록 하겠다. 너희는 다가올 상황에 대비하도록.”
테라가 모든 신족의 지도자라면 오시리스는 언제나 전선에서 앞장서던 전신이었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없고, 신의 목을 꺾었던 것도 다름 아닌 그였다.
테라와 유일하게 견줄 수 있는 신족이 그인 만큼 지닌 바 무위에 대해 믿지 못할 리 없었다.
“믿을게요, 확실하게 복수해 줘요. 우리 동족의 원수를.”
“물론이다.”
오시리스의 대답에 이나도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나가 아프리카를 종횡무진 휩쓰는 동안, 준성 등은 금탑에 머물지 않았다.
모든 것은 신족의 이목을 잡아끌기 위한 잘 짜인 연극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그들은 은밀하게 세계 전역을 탐색하고 있었고, 차원의 도서관에서 자취를 감춘 지구 신이 있는 곳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 결과 지구 신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알래스카 매킨리 봉이었다.
“이제 시작이네.”
잔뜩 굳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세희가 입을 열었다. 준성도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오늘을 위해 치른 희생이 만만치 않은 걸 알지?”
“당연하지, 그 시끄러운 이나를 떼어놓는 일이잖아.”
“굳이 그렇게 표현할 필요는 없는데…….”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이거 참.”
굳이 이나를 깎아내리는 말에 준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 지구 신을 공략하기 위해 이동한 인원은 이나를 제외한 모든 전력이다. 준성, 세희, 엘리엔, 타나가 지구 신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알래스카 매킨리 봉에 이동했다.
“엄호 부탁할게.”
“어렵지 않아. 틈을 허용하면 지원하지.”
타나가 물러나고, 준성과 세희, 엘리엔이 매킨리 봉 안으로 들어갔다.
과거 미국이 비밀 기지로 사용하던 곳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차원의 비틀림이 존재했다. 준성이 손을 뻗자,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반으로 갈라지면서 안의 광경이 드러났다.
널찍하게 펼쳐진 화단은 지구 신이 머물던 장소와 흡사했다. 그곳에 흔들의자 하나가 있었고, 지구 신이 편하게 몸을 묻고 있었다.
“결국 이곳까지 왔나.”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어서. 빛과 어둠의 진영을 알았다면 빠른 결전이 우리에게 좋다는 걸 알겠지?”
“…….”
지구 신은 긍정도 부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기운이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쿠구구구!
거센 파장이 주변을 휩쓸자, 앞장선 것은 엘리엔이었다. 두 눈 가득 분노를 담은 그녀가 손을 뻗자 네이처 소드가 돋아났다.
“죽여 버리겠어.”
거친 말을 내뱉은 그녀의 신형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