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72)
제152장 테라의 제안
“일단 한시름은 덜었지만…….”
지구 신을 제거한 것은 준성에게 있어 커다란 성과였다. 자신을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신을 소멸시켜 버림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위기가 사라지자 다른 위기가 닥쳐 왔다.
바로 신족의 위협이다.
사실 준성은 신족의 위협을 크게 자각하지 않고 있었다.
강하다고 해도 얼마든지 자신의 역량으로 극복 가능한 수준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구 신이 소멸하면서 한 말은 준성에게 있어 커다란 충격이었다.
설마하니 모습을 감춘 것이 자신들의 위협이 아니라 신족 때문이었다니.
그만큼 커다란 두려움을 주는 존재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들과 대적하면 십중팔구 패할 거라고 하니 준성으로서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엘리엔이 수련을 하러 가겠다고 했을 때 순순히 수락했다.
좀 더 강해져야 다른 돌파구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나도 전력상승을 이뤄낸다면 어느 정도 붙어볼 만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엘리엔은 수련에 들어갔고, 이나도 좀 더 강해지기 위한 수순에 들어갔다.
둘이 온전히 전력상승을 이뤄내고 합류할 때까지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신족이 그들을 기다려 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았다.
숫자도 그들이 많고 전력도 우위라면 바로 공격해올 터.
그럼 곤경에 처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괜찮다니까, 서방!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날 못 믿어?”
“나도 세희를 믿긴 하지만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니잖아.”
“쉽지 않긴. 그냥 날 믿고 가기만 하면 되는데. 내 신의 회초리랑 지팡이를 믿어. 신족들을 다 쓸어버릴 테니까.”
“…….”
준성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평소라면 세희의 말에 힘이 나겠지만 지금은 진지한 고민을 하는 중이다.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서 확실한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우우웅!
[우리 이야기 좀 하지?]거센 마나 유동과 함께 준성의 머릿속에 울려 퍼진 것은 테라의 목소리였다.
“……테라?”
준성도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지저분하게 꼬리는 달고 오지 말고. 우리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눈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가봐, 서방. 여차하면 내게 신호를 보내고. 다 쓸어버릴게.”
[그렇다는데.]“알았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그쪽도 자기 목숨을 재촉할 생각은 없을 테니까.”
안전이 확보되지 않지만 테라 정도 되는 신족이 함정을 파고 이렇게 노골적인 유인을 해올 리 없었다.
모든 것은 준성의 생각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우웅! 스팟!
마음을 정한 준성의 몸이 빛에 휩싸이며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세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서방은 하나 모르고 있다? 타나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안 그래?”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세희의 목소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타나였다. 낮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동자에 세희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강한 게 비밀거리는 아니잖아?”
“그 경망스러움이 우리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물론이야.”
“…….”
신뢰도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세희의 행동을 타나는 한동안 조용히 지켜봤다.
스파앗!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준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초옥과 마당이 자리한 곳이다. 풀 내음이 가득한 곳에 자리한 탁자 앞에 테라가 앉아 있었다.
“왔군.”
“날 부른 이유가 뭐지?”
“그렇게 급하게 굴 이유가 있나? 일단 앉아.”
준성은 테라의 권유에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오늘 이 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도 알고 있던 것이다.
짝짝짝!
테라는 난데없이 박수를 쳤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준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무렵, 테라가 말했다.
“축하해, 지구 신을 제거했던데.”
“아아, 우리보다 네게 더 좋은 일 아닌가?”
“그렇긴 하지. 강적 하나를 제거해 줘서 우리가 움직이기 더 쉬워졌으니까.”
“…….”
준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구 신의 제거는 자신이 바라던 만큼 신족도 원하던 부분이었을 테니 말이다.
“귀찮은 장애물을 없애줘서 우리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졌는데.”
“그렇게 생각하나?”
“아닌가? 고작 네이트 하나를 잃었다고 우리가 불리해졌을 거라 본 거야?”
“하고 싶은 말이나 해라.”
테라도 이미 자신이 유리한 입장임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 자신이 뭐라고 말을 한다고 해도 먹혀들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리고 지켜보던 준성은 테라가 자신을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듣고자 했다.
“간단해, 당분간 휴전을 맺자는 의미에서 불렀어.”
“……휴전을?”
“세계의 운명을 건 대결이 벌어지기 전에 서로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
예상치 못한 테라의 제안.
이것은 준성을 고민으로 밀어 넣었다. 분명 그녀의 말마따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지만 테라가 무엇을 의도한 건지 알 수 없던 것이다.
“필요하지 않으면 말고.”
“이걸 제안하는 이유는 뭐지?”
“그걸 내가 왜 말해줘야 하는데? 어차피 서로 시간이 필요하다면 요구에 응하면 되는 거 아니야?”
“…….”
테라의 말이 맞았다. 자신에게 물어보았어도 같은 대답을 했을 테니 말이다.
이것이 함정인지 아닌지는 준성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시간이었고, 테라는 그 부분에 대한 협의를 원했으니까.
“얼마 동안 휴전하길 원하지?”
“1년?”
“반년!”
“좋아, 그렇게 수명을 재촉하고 싶다면 굳이 길게 잡지 않아도 좋아.”
“그때가 되면 죽는 게 누가 될지는 기대해도 좋겠군.”
“물론 우리는 아닐 테니까.”
서로를 노려보는 둘의 눈동자는 매서웠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협상을 위한 곳. 충돌을 일으켜 봤자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그 약속, 지키길 바라지.”
“신의가 없는 인간을 믿어주는 걸 고맙게 여겨.”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진 뒤, 준성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몸을 돌린 뒤 공간 이동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테라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내 몇 마디에 말려든 걸 보면 결국 인간이야. 신의 힘을 지녀봤자 과거 오랜 시간 인간을 상대한 우리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는 없지.”
본래 테라가 원한 시간은 삼 개월.
하지만 준성이 순순히 협상에 응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1년을 불렀다.
그는 반년으로 줄이고 테라가 받아들였지만 그것이 상대에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가 원하는 시간 안에 전력이 갖춰지면 그다음은 약속이 필요 없지. 역사는 승자를 위해 기록될 뿐, 패자에 대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때가 다가오는 걸 느낀 테라는 낮게 웃었다.
테라와 맺은 협정 기간 동안 준성은 영웅이의 몸을 복구하는데 힘을 썼다.
그동안 연성해 온 모든 방법을 총동원, 두 달이라는 시간 만에 영웅이의 동체를 만들어냈다.
“……최강의 골렘이야.”
그 스스로도 이 이상 강력한 골렘을 만들어낼 수 없을 거라 자부할 만큼 영웅이의 동체는 준성의 모든 깨달음이 녹아 있었다.
그동안 골렘을 제작할 때 준성은 마법진을 겹쳐 넣음으로써 강도를 높였다.
이번에는 그 방법을 달리했는데, 바로 제련제강의 마법을 응용한 것이다.
모든 것을 부숴 버리는 제련제강의 마법은 때때로 신언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것이 고스란히 강도로 바뀌어 동체를 구성한 영웅이의 몸은 그야말로 최강의 내구성을 지니게 되었다.
우웅!
겉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환두대도와 롱기누스를 지닌 영웅이는 신족과 대결을 벌일 때도 큰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콰콰콰콰!
에고가 안착되면서 강렬한 기세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아무런 빛도 없던 동공에서 푸른빛이 뿜어졌다.
“새로운 몸은 어때?”
[크하하하! 이것이 나의 몸인가, 주인?]“맞아.”
[크크크! 크크! 크하하하하! 이 몸이면 충분히 가능해! 여태까지 이 몸이 겪은 그 치욕적인 순간을 모조리 되갚아줄 수 있어!]지구 신과 자폭한 영웅이의 에고는 한동안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준성의 마법에 의해 동체에 안착하면서 정신이 깨어났는데, 전신에서 느껴지는 충만한 힘은 이전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 타나와 결전을 치루더라도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날 이길 수 있다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영웅이의 동체가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자신이 얻은 힘을 떠올리고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그렇다! 오늘에야말로 네 녀석을 반드시 꺾어주겠다.]“…….”
타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영웅이를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표정이 없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귀기가 느껴질 정도로 싸늘했다.
“한 번 상대해 보겠어?”
[주인! 무서워서 도망치려고 하는데 나랑 붙겠나? 흐흐흐! 드디어 내 본신의 힘을 다 발휘할 수 있는 몸을 얻었으니 겁에 질렸겠지.]어림잡기만 해도 현재 느껴지는 힘은 이전보다 세 배 이상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타나에게 당하던 자신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때?”
준성도 달라진 영웅이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의 기대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조용히 영웅이를 지켜보고 있던 타나가 말했다.
“저거 부숴도 돼?”
“그렇다는데?”
[덤벼라! 무식한 년!]“부숴줄게.”
타나의 양손에는 어느새 골든 소드와 룬 블레이드가 들려 있었다.
“…….”
숨 막히는 긴장감이 주변을 맴돌았다.
지켜보는 준성의 얼굴에는 흥미진진함이 가득했다.
‘과연 영웅이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영웅이는 자신이 만든 골렘 중에서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기존의 마법진 한계를 돌파하여 제련제강의 마법으로 동체를 만든 영웅이다. 그 단단함은 물론 동체 내의 마나는 신언을 바탕으로 증폭 기능을 거쳤다.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성능.
그렇다고 힘을 다루지 못할 만큼 요령이 없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타나에게 지독할 정도로 당하면서 자신이 지닌 힘을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했으니 말이다.
[흐흐흐! 이제 덤비지도 못하나? 오는 게 두렵다면 내가 먼저…….]꽈앙!
영웅이의 말이 끝을 맺지 못했다. 단숨에 공간을 가르고 달려든 타나의 검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금광을 뿌리며 동체를 후려친 것이다.
공처럼 굴러간 영웅이의 동체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구석에 처박혔다.
자욱한 흙먼지가 시야를 가릴 정도였지만 타나는 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아프지 않다! 하나도 안 아프다고! 으하하하!]몸을 일으킨 영웅이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멀쩡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광소를 터뜨리며 타나에게 푸른 안광을 뿜어냈다.
그녀의 공격이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한다면 승리는 자신의 것이다.
[어디 한 번 더 덤벼보시지?]“…….”
영웅이의 도발에 타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모든 걸 포기했음인가? 영웅이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웃음이 더욱 짙어질 무렵, 그녀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낀 준성이 물었다.
“타나, 괜찮아?”
“괜찮아. 오히려 너무 괜찮아서 문제야.”
“그럼 왜…….”
“때리는 맛이 있어.”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준성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 개의치 않고 타나는 자신의 말만 차분하게 이어나갔다.
“검이 강타하는 순간, 그 소리가 너무 청명했어. 이 정도 강도면 힘을 조절하지 않고 마음껏 후려쳐도 무사할 것 같아.”
[닥쳐라! 내가 샌드백인 줄 아는 거냐!]“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어.”
[어디서 개소리를…….]꽈앙!
영웅이의 말은 조금 전처럼 끝을 맺지 못했다. 쏜살같이 달려든 타나가 검으로 후려치기 시작한 것이다.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이어지는 연속 공격. 반격이라고는 허용하지 않는 무자비한 공격에 영웅이는 처참하게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크억! 컥! 이, 이 비겁한! 일어나지도 않았는…….]꽈과과광!
조금 전과 차원이 다른 힘이 실린 공격에 영웅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날 죽일 셈이냐!]“이 정도에도 무사하네. 정말 굉장해.”
하지만 타나의 귀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황홀한 표정을 지은 채 조금 전 충격을 말끔하게 복구하고 있는 영웅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좀 더 강하게 해도 버텨내겠지?”
[그, 그만! 컥!]다시 이어지는 타나의 연속 공격.
단숨에 동체를 분쇄해 버리고 에고마저 부숴 버릴 듯한 신위에 준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분간 맞으면서 실력을 체득할 수밖에 없겠어.”
하지만 수확은 있었다.
예전이라면 타나의 공격에 형체도 간직하지 못한 채 망가지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온전한 상태에서 두드려 맞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타나에게는 같은 전개였지만 준성이 보기에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결국 영웅이의 교육은 타나에게 일임되었다.
그만큼 영웅이의 무위가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세희는 영웅이가 타나의 공격을 버텨냈다는 사실에 반색했다.
“타나의 공격을 막아낼 정도라면 신언도 버텨낼 수 있는 것 아냐?”
처음부터 타나의 승리를 기정사실로 못 박은 물음이었다. 준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확실하지 않지만 타격이 제법 클 거야. 신언은 제련제강의 마법마저도 부숴 버릴 수 있으니까.”
“그래도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잖아. 무시무시한데? 난 영웅이가 이 정도로 업그레이드 될 줄은 몰랐어.”
“그만큼 성능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지.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 좀 더 자신이 지닌 힘을 활용할 수 있어야겠지만 지금 수준은 충분히 만족스러워.”
“전력 하나가 늘었네. 다행이야, 매우 불리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불리하다고?”
“당연하지. 신족은 이미 모든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어.”
“……모든 전력이라면?”
“대신족은 총 열 명이야. 그중 셋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걸 알고 있잖아.”
“아아, 그랬지.”
그중 준성 등에게 소멸된 대신족의 숫자는 총 둘이다. 완 제이드와 네이트가 바로 그들이다.
완 제이드의 경우 드래곤과 합공을 통해 소멸시킬 수 있었고, 네이트는 이나가 소멸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대신족 중에서 가장 약한 개체에 지나지 않았다.
남은 여덟의 무위는 만만치 않았고, 남은 백여 명의 신족은 그야말로 극강 그 자체였다.
그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집결했다는 말은?”
“이제 알았어? 테라는 서방에게 간을 보고 동시에 속인 거야.”
“…….”
잊고 있던 진실을 알아차린 준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설마하니 테라가 자신을 향해 이런 잔수작을 펼칠 줄이야.
처음부터 약속한 기간은 삼 개월이 아닌 반년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결과물은 신족의 경우 당장 전투를 치를 것처럼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엘리엔과 이나를 불러올 수도 있겠지만 집중하는 상황을 방해받는 기분인 결코 좋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할래?”
“신족이 협정을 배신하고 공격해 올 거라 보는 건가?”
“그럼 아니라고 생각해?”
“아니, 나였어도 지금이 최고의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비밀병기가 있어. 그러니 함정을 파도 좋아.”
“비밀병기가 둘이나 된다고?”
“맞아, 타나와 영웅이가 비밀병기야. 아직 상대에게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세희가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타나는 신족을 상대로 아직 전력을 발휘한 적이 없었고, 영웅이의 경우 지구 신을 소멸시키면서 소멸된 것으로 알려졌으니 말이다. 그러니 신족과의 전투에서 비장의 수단으로 써먹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함정이라…….”
“우리를 속인 건 상대야. 그런데 협정을 존중하려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약속은 신성해. 그것을 어기면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잘 알잖아.”
“서방은 정말!”
답답한 마음에 세희가 목소리를 높이려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준성의 말에 표정을 풀 수 있었다.
“그래도 미리 대비하는 건 나쁘지 않겠지. 상대를 속이려는 게 아니라 좀 더 집안 단속을 철저하게 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맞아, 그렇게 말을 하니 약속을 어기는 것도 아니네.”
눈이 마주친 둘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뭡니까?]“사실은 없습니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재앙과도 같으니까요.”
준성이 신족과 충돌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자 김기정의 음성이 거칠어졌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알려주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하지만 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대한 인명피해가 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의장님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제가 신호를 보내면 그 지역의 사람들을 최대한 빠르게 피신시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헤아리기 힘든 인명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로군요.]한참 동안 이어진 침묵 끝에 나온 김기정의 대답이었다. 준성도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노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장이 되는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천재지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대결이 될 것임이 분명했기에 김기정은 그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준성도 그걸 부인하지 않았다.
“언제쯤 공격할 것 같아?”
준성의 물음에 세희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어차피 공격하는 권한은 신족에게 주어진 거니까. 아마 모든 전력을 집결시켰으니까 곧 공격하지 않을까?”
“곧 공격이라…… 그럼 대비를 해야겠군.”
김기정에게 굳이 말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전장이 될 곳은 금탑이 있는 서울이기 때문이다.
신족이 진군하는 틈을 타 평양으로 이동을 하더라도 거리상 차이는 거의 나지 않았고 신족의 공격 여파가 얼마나 멀리 퍼져 나갈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어서 와.”
테라는 모두 집결한 동족들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준성 일행에게 소멸당한 완 제이드와 네이트가 없었지만 지구에서 처음으로 모두 모인 대신족의 모임은 마치 신들의 회의처럼 경건한 분위기였다.
“여전히 바뀐 점은 없군, 테라. 언젠가 그 얼굴을 짓뭉개주고 싶었는데 말이지.”
“내게 도전하는 일은 모든 거사가 끝난 뒤에 하도록 해.”
“그럴 거다. 널 꺾고 내 발바닥으로 짓누르는 것밖에 삶의 목표가 없으니까.”
연신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은 대신족 서열 4위 아수라였다. 오로지 전투에 미쳐 있는 그는 테라를 꺾고 최강의 자리에 올라서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했다.
“테라를 넘기 전에 나부터 상대해야 할 것이다.”
“오시리스, 테라의 딸랑이 녀석이 날 상대하겠다고 하니 웃긴 일이다.”
“네 녀석이…….”
본신의 무위에 대한 자존심이라면 결코 적지 않은 오시리스가 발끈했다. 둘의 기류가 험악하게 바뀌어 가자 나선 것은 오늘 자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신족이었다.
“아직도 도발이에요? 이제 좀 그만 싸워요.”
“아, 아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매번 말투가 그러면 전투가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좀 진정해요.”
“알았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오시리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던 아수라도 혀를 차면서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방금 전 제지하고 나선 여신은 그들로서도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여신의 이름은 네프티스. 오시리스의 부인이자, 신족 내에서도 유명한 남편 잡는 여신이었다.
물러나는 오시리스를 보며 유쾌하게 웃던 테라는 남은 한 신에 고개를 돌렸다.
“지내기는 어떻지, 테티스?”
“바다가 더 편해요.”
“모든 일이 끝나면 네가 원하는 바다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거다.”
“그걸 원해요. 결행 일은 언제죠?”
모두의 시선이 테라에게 집중되었다. 각자의 개성이 지나칠 정도로 강해진 신족에게 있어 단체 움직임보다 개인의 움직임 중요했다.
“이틀 후다. 우리의 가장 난적인 금탑을 침공에서 단숨에 쓸어버리겠어!”
확신을 담아 외치는 테라의 두 눈에 강렬한 투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