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75)
제155장 아수라도
‘반드시 죽일 거야!’
오시리스까지 잃은 네프티스에게 더 이상 희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고스란히 타나를 향한 살의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타나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네프티스의 마음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네프티스를 철저하게 파괴하겠다는 생각뿐.
파팟! 파바바밧!
빛이 발산되며 네프티스의 전신을 뒤덮었다.
“헛수작.”
조금 전과 다르지 않은 수법에 타나는 코웃음을 치며 손을 들었다.
여전히 하늘에는 생성된 골든 소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걸 이용해서 단숨에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네프티스의 행동은 타나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콰광! 꽝! 꽈앙!
날아드는 골든 소드가 연신 빛의 장막을 두들겼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네프티스가 전진하더니 빠른 속도로 접근해 왔다.
“…….”
섬뜩한 귀기를 띠고 있는 네프티스가 다가오는 모습은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타나는 골든 소드 공격이 그녀의 빛의 장막을 부수기 전에 공간을 허용할 거라 생각하고는 허공을 가득 채운 검을 없앤 뒤 양손에 골든 소드와 룬 블레이드를 쥐었다.
카앙!
검과 빛의 장막이 충돌하자, 청명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놀라운 현상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다짜고짜 손을 뻗은 네프티스가 두 자루의 검을 움켜쥔 것이다. 날카로운 예기에 피범벅이 되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학습을 할 줄 아는 건 너만이라고 생각했어?”
우웅! 우우웅!
전신에서 폭주하듯 뿜어지던 빛이 타나와 네프티스를 뒤덮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
이상기류를 감지한 타나가 벗어나려고 했지만 네프티스가 단단히 옭아매면서 불가능하게 되었다.
콰지직!
타나의 왼팔이 덜렁이며 부서졌다. 강렬한 압박이 덮쳐왔지만 네프티스는 멀쩡했다.
“신의 육체가 아닌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그녀가 지닌 유일한 단점.
그것은 신의 육체가 아닌 일반 육신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외부의 압력에 신의 육체보다 견뎌내는 게 약하다는 걸 의미했다.
어떤 원리로 재생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네프티스는 자폭에 가까운 공격을 통해 타나를 확실하게 압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계획은 무서울 정도로 적중하고 있었다.
콰득! 콰드득!
타나의 사지가 맥없이 부러졌다. 빛의 힘을 이용한 지독한 압박은 신의 육체에도 타격을 주었지만 일반 몸인 타나가 받는 충격이 더 컸다.
“…….”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면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질 법한데도 타나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네프티스를 바라볼 뿐. 하지만 그마저도 압력으로 우그러지고 있었다.
“죽어! 죽어버리라고! 꺄하하하! 드디어 죽고 있어!”
광기에 물든 네프티스는 죽어가는 타나의 모습에 광소를 터뜨렸다.
모든 힘을 폭발시켜 압력을 가했기에 자신도 죽어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이 목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이 네프티스의 생각이었다.
콰콰콰콰!
완전히 부서진 타나의 몸은 빛의 힘에 곤죽이 되고 소멸하고 말았다.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다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네프티스가 광기에 물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녀 또한 빛의 힘을 폭발시키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피융!
그 순간, 날카로운 한 줄기 기세가 파고들었다.
그것은 웃음을 터뜨리는 네프티스의 안면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꽈과과광!
곧이어 이어진 무시무시한 폭발. 그것은 압력으로 쇠약해진 신의 육체를 단숨에 파괴했다.
소멸되는 그 순간까지 네프티스는 자신의 승리를 마음껏 만끽했다.
하지만 그것은 허망한 희생이었음을 끝까지 알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육체를 지녔던 타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차림새는 조금 전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반투명한 모습은 흡사 유령과 같았다.
츠츳! 츠츠츳!
곧이어 그녀의 전신에 금빛이 아른거리는가 싶더니 반투명한 부분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던 육체가 다시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한 인간의 몸을 얻었지만 타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난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 쉽지 않은걸.”
그녀의 음성은 씁쓸했다.
“……세희 넌 알고 있었어?”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준성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타나가 보여준 신위는 경악 그 자체였다.
대신족 둘을 상대하고서 승리를 거둔 타나의 힘은 지구 신과 비교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알고 있고말고.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또 없을 거야.”
“대체 어떻게 된 건데?”
“내가 말해주고 싶지만 타나가 원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알고 싶어.”
준성은 강경하게 말했다. 그의 태도에 세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하지만 이 자리에서 말해주기 힘든 건 알고 있지? 전투가 끝나면 다 알려줄 테니까 우선 여기부터 승리로 이끌자고. 한 가지 말하자면 우리에게 나쁜 건 없어. 그러니 안심해도 돼.”
“그래.”
당장에라도 자세한 부분을 듣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을 끝맺는 세희로 인해 준성도 더 이상 물어볼 여지가 없었다.
“일단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해진 건 확실하네.”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타나의 무위는 믿어도 좋다니까?”
“그랬었지.”
타나의 선전으로 상황은 역전되었다.
더 이상 신족은 숫자의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준성과 세희, 엘리엔, 영웅이와 타나가 버티고 있다면 남은 대신족은 테라, 헤스티아, 아수라, 이슈타르, 테티스만 남아 있었다.
당장 전투에 합류하기 힘든 이나와 칼리를 제외하더라도 숫자는 동일했던 것이다.
“타나가 지쳤을 수 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잖아?”
“극복할 수 있지.”
“그럼 해보자고.”
활기찬 세희의 말에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타나의 분전으로 역전의 기회를 붙잡게 된 준성이었다.
“테, 테라. 이걸 어떻게 하죠?”
믿기지 않는 상황에 헤스티아의 음성은 떨렸다.
지구 신에게 붙어 있던 존재감 없던 여자의 무위가 이토록 강할 줄 몰랐다.
그로 인해 대신족의 숫자는 칼리까지 합쳐 여섯에 불과하게 되었다.
열이나 되던 대신족의 숫자가 넷이나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타나라는 존재에 의해 두 명의 대신족이 소멸되었다.
“헤스티아.”
“말해요, 테라.”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더 이상 고귀한 척할 이유가 사라졌다.”
“…….”
테라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헤스티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말하는 ‘고귀함’이라는 것은 세계를 지배할 자신들이 지켜야 할 마지막 마지노선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내려놓는다는 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처절한 투쟁을 벌이던 시절로 돌아가는 걸 의미했다.
“너는 그걸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나?”
“복수를 위해서라면…… 당연해요.”
눈앞에서 동료를 잃은 헤스티아의 복수심은 결코 작지 않았다.
반드시 복수하고 싶었다. 눈엣가시처럼 걸리적거리는 녀석들을 치워 버리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고귀함을 벗겨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지. 아수라.”
“불렀나, 테라.”
테라 앞에 나타난 것은 실눈을 뜨고 있는 흑발의 미남자였다. 입가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전신에서는 모든 것을 베어버릴 예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이제부터 적을 말살한다. 선두에 서는 건 너만큼 적합한 자가 없는 것 같다.”
“그 말을 기다렸지.”
아수라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눈앞에서 동족 둘을 잃었음에도 그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자였다.
“내가 어떻게 움직여 주길 원하나?”
“네 모든 힘을 개방해라. 상대를 끊이지 않는 전투의 지옥으로 빠뜨리도록. 우리가 뒤에서 너를 지원하도록 하겠다.”
“흥미로운 말이로군. 적을 진창에 빠뜨려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또 없지.”
파아앗!
아수라가 양손을 위로 뻗자, 잿빛 기운이 발산되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아수라도의 왕답게 자신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공간의 권능을 얻은 아수라는 그 힘을 자신이 원하는 아수라도를 소환하는 힘으로 승화시켰다.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는 전투의 늪은 아수라가 가장 좋아하는 환경이다. 이곳에 갇힌 존재는 오로지 아수라의 허락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장소다.
피잉!
삽시간에 주변을 뒤덮기 시작한 잿빛 기운은 아수라도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의도는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하늘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무시무시한 기운이 쇄도했던 것이다.
아수라도의 구현을 가로막으려는 세희가 신의 지팡이를 시전한 것이다.
그 순간, 하늘로 솟구친 헤스티아가 양손을 휘둘렀다. 거대한 불길이 손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면서 신의 지팡이를 그대로 후려쳤다.
꽈광! 꽝! 꽝!
무시무시한 폭음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거센 충격파가 공간을 뒤흔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수라도의 구현을 가로막지 못했다.
“됐군.”
자신이 원하는 세계의 완성이 다가오자, 아수라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는 거라 보았지만 한 줄기 빛이 번쩍이며 아수라에게 접근했다.
카앙!
날카로운 예기가 휘몰아치자, 아수라는 양손을 휘둘러 가로막혔다. 그로 인해 공간 구현이 가로막혔지만 아수라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이 정도로 뭘 어떻게 해보려는 것 자체가 웃기지.”
“…….”
아수라 앞에서 검을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엘리엔이었다. 공간의 구현을 가로막으려고 했지만 그의 완벽한 방어를 부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수라도는 여전히 구현되고 있는 중이고, 완성되면 높은 하늘 위에서 강력한 공격을 구사하는 세희는 완전히 무력화가 된다.
키이잉!
그때, 공간의 균열음이 울려 퍼졌다. 귀를 자극하는 소리에 반응한 아수라의 표정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어째서……!”
그가 놀라움을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구현한 아수라도가 빠른 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미세한 균열이었지만 그 속도는 빠르게 이어지면서 곧이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콰직! 콰지직! 꽈아아앙!
급기야 아수라도는 붕괴되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아수라의 표정은 구겨진 채 펴질 줄 몰랐다.
“공간의 개입이 이루어지면 손쉽게 부서지는 것도 모르나 보군.”
아수라도를 붕괴시킨 것은 다름 아닌 준성이었다.
공간의 균열이 일어나며 부서졌지만 아수라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아수라도는 그의 권능이자,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을 구현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전황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엘리엔이 집요하게 달라붙으면서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접근한 뒤, 검을 휘두르는 엘리엔의 공격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기에 아수라는 양손을 맹렬하게 휘둘러 막아내야 했다.
카아앙!
손에서 전해지는 둔중한 충격에 아수라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으음!”
침음을 흘린 아수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엘리엔을 바라보았다. 평온한 표정으로 검을 겨누고 있는 모습은 위협적이었다.
당장에라도 아수라도를 구현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황을 이끌고자 했지만 상대측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절대로 공간 구현을 하게 두지 않아.”
콰콰콰콰!
폭발적으로 기세가 발산되면서 엘리엔의 굳은 결의가 아수라에게도 전해졌다.
지구 신을 상대할 때 맥없이 무너져야 했던 그녀로서는 아수라가 활개 칠 여지를 절대 허용할 수 없었다.
“너 정도로 가능하다고 보나?”
“가능해, 충분히.”
이번 전투가 자신들의 운명을 가를 마지막 순간임을 엘리엔은 잊지 않았다.
마지막 관문이었다. 이곳에서 아수라를 꺾고 신족을 전멸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지긋지긋한 전투에 휘말리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필사적이었고, 아수라가 어떤 반응을 보여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완수할 생각이었다.
“어디 한번 해봐라.”
콰콰콰콰!
피식 웃은 아수라가 손을 드니, 공간 구현이 펼쳐졌다. 엘리엔이 달려들어 검격을 퍼부으며 방해를 하자, 방어에 임하면서 그 속도가 느려졌지만 다시 아수라도가 구현되고 있었다.
키이잉!
지켜보던 준성이 공간 겹치기를 통해 아수라도를 부수려고 했다. 간단한 공간의 개입으로 아수라도를 무너뜨릴 수 있기에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준성의 공간을 가로막는 물줄기가 있었다.
쏴아아아!
그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바다가 별안간 솟구치는가 싶더니 거대한 기둥을 형성했다. 그것은 준성의 공간 개입을 차단했고, 엘리엔이 아수라를 공격하는 경로를 교묘하게 가로막았다.
“어서 공간을 구현해, 아수라.”
테라 뒤에 서 있던 대신족, 테티스가 나섰다. 바다의 여신을 이름으로 얻은 그녀는 신에게서 바다의 권능을 얻었다.
그녀보다 강한 권능을 지닌 대신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테티스는 전투보다 지원 능력에 치중되어 있는 대신족이었다.
직접적인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지원 역할을 맡으면 그 비중은 눈에 띄게 높아진다.
“칫!”
엘리엔은 자신을 가로막는 바다 기둥을 보며 혀를 찼다.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앞만 가로막는 것인데, 이것만 해도 아수라가 자신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좋지 못한 상황임을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세희!”
준성도 상황의 불리함을 깨닫고 목소리를 높여 세희를 불렀다. 그러자 허공에서 순백의 빛줄기가 번뜩이더니, 이내 무수히 많은 폭격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콰광! 꽈과과광!
신의 지팡이로 주변 일대를 모조리 휩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바다 기둥은 속절없이 흩어졌고, 주변 바다가 모조리 뒤집어져 거대한 해일을 일으켰다.
엘리엔은 그 틈을 파고들어 아수라를 공격했다. 빠른 속도로 구현되던 공간이 다시 느려지자, 아수라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빌어먹을 정도로 집요하군.”
이렇게 느린 공간 구현은 아수라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언제라도 준성의 공간 개입이 아수라도를 부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테티스의 도움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때 공간 구현을 마쳐야 했다.
“이슈타르! 도와…….”
입을 열려던 아수라의 말이 끝을 맺지 못했다. 저 너머로 금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섬뜩한 파공음이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진 것이다.
피이이잉!
반사적으로 양손을 교차한 아수라 앞으로 칠흑처럼 검은 기운이 생겨났다. 그것은 날아드는 한 줄기 화살, 골든 피닉스를 받아냈다.
꽈광! 꽈과광!
“크으윽!”
무시무시한 충격에 휩쓸린 아수라의 몸이 들썩였다. 그와 함께 아수라도는 준성의 공간 개입으로 인해 또다시 붕괴되고 말았다.
“테라!”
연이은 실패로 분노한 아수라의 표정이 구겨지면서 지켜보고 있는 테라를 불렀다.
그들의 개입은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준이 아니었다.
“헤스티아.”
“말해요.”
전장을 주시하던 테라의 부름에 헤스티아가 대답했다.
“네가 오시리스와 네프티스를 죽인 저 여자를 맡아줘야겠어.”
테라의 시선은 정확하게 골든 피닉스를 들고 있는 타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정확하고 강력한 공격을 구사하는 존재는 전황을 유리하게 이끄는 데 큰 방해가 되고 있었다.
“가능하겠어?”
“내게 정확하게 원하는 게 뭔가요?”
상대는 두 명의 대신족을 소멸시킨 강적이었다. 대신족 서열 세 번째인 헤스티아로서는 오시리스를 소멸시킨 타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확률이 거의 없었다.
“붙잡아두기만 하면 돼.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고.”
“그래 보여요?”
“오시리스는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과신했어. 빛과 권능의 결합을 실패하기도 했고. 네프티스는 오시리스에게 지나칠 정도로 의지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어.”
두 대신족을 허망하게 잃은 것이 가장 큰 손실이었다. 반대로 그러한 데이터가 있기에 테라는 타나를 막는 데 헤스티아를 동원하고자 했다.
“신중한 너라면 상대를 봉쇄하는 게 가능할 거야.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야. 더 이상 전황에 개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전황의 개입을 막는 거라면 해볼게요.”
“너만 믿겠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헤스티아의 몸이 한 줄기 빛으로 변하면서 타나에게 쇄도했다.
타나는 당황하지 않고 골든 피닉스를 겨누고 있던 방향을 바꿔 헤스티아에게 한 발 쏘았다.
화르륵!
그녀의 전신에 거대한 불길이 일어났다. 그것은 삽시간에 골든 피닉스를 휘감았다.
콰아아앙!
먼발치에서 거대한 폭발이 이어졌지만 헤스티아는 그곳에 없었다. 권능을 발현하여 골든 피닉스를 감쌌을 뿐, 그녀의 몸은 어느새 타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골든 피닉스를 소환해제하고 두 자루의 검을 든 타나가 헤스티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불꽃과 두 검이 얽혀들면서 짧은 순간 수십 번의 충돌을 만들어냈다.
“…….”
충돌을 일으키며 뒤로 물러선 둘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또 죽으러 온 거야?”
“앞선 동료들의 복수를 해주겠어.”
테라는 최대한 버텨보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적을 제거할 수 있다면 마다할 리 없는 헤스티아였다. 두 눈 가득 살기를 띤 채 양손에 불꽃을 생성하고 있는 모습은 섬뜩함 그 자체였다.
“복수는 불가능해. 왜냐면 너도 이 자리에서 소멸될 테니까.”
“시끄러!”
일갈을 터뜨린 헤스티아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였다. 빛과 불꽃의 조화를 완전히 이끌어낸 그녀는 한 번 불이 붙으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강렬한 화염의 소유자였다.
“허튼 짓을.”
가볍게 혀를 찬 타나의 시선은 헤스티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연이어 대신족 둘을 상대한 상황에서 헤스티아와 맞서는 것은 타나 입장에서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타나의 개입을 덜어낸 것만으로도 상황은 크게 호전되었다.
더 이상 저격이 없다는 사실은 아수라도 구현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테라는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마지막 대신족을 불렀다.
“이슈타르.”
“말씀하세요, 테라.”
“전투에 개입하도록. 아수라를 도와서 그가 원하는 공간을 구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알겠습니다.”
이슈타르라 칭해진 대신족은 다소곳한 자태를 지닌 여성체였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이슈타르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어느새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로 이동해 있었다.
[네 상대는 나다!]이슈타르가 나서길 기다리고 있던 영웅이가 즉각 나섰다. 남은 대신족 하나를 상대하고자 하던 영웅이는 환두대도를 들어 이슈타르에게 달려들었다.
츠츠! 츠츠츠!
유령처럼 뒤로 물러난 이슈타르는 영웅이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지 않았다.
대신 그가 달려든 주변 공간이 짙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눈에 띄게 동체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 영웅이가 놀라움을 표했다.
[이, 이게 무슨…….]“당신하고 놀아줄 시간이 없으니 잠시 그곳에서 기다려 주시길.”
그 말과 함께 이슈타르가 오른손을 위로 뻗자, 회색빛 공간이 점점 영역을 넓혀 나갔다.
아수라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전장이 펼쳐진 것이다.
그곳에 영웅이를 묶어두고, 다른 이들의 공격마저도 둔화시켰다.
“역시 이슈타르로군.”
한결 몸놀림이 가벼워진 아수라가 즐겁게 웃으면서 아수라도를 구현했다.
엘리엔이 달려들고 세희가 폭격을 가했지만 그것을 온전히 감당한 것은 이슈타르였다. 준성의 공간 개입은 테티스에게 막혀 있었다.
우웅! 콰콰콰!
“드디어 완성이다! 하하하!”
마침내 아수라도 구현이 끝나자, 눈을 빛낸 아수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 공간 안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곳은 주변과 완전히 괴리된 공간이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맹렬하게 공격하던 세희의 비기는 더 이상 효과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족들이 강대한 힘을 보다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전황을 뒤집기에는 충분했다.
“…….”
아수라가 엘리엔과 시선을 마주했다. 아수라도 구현을 막지 못한 엘리엔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아수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불타는 그녀의 전의를 뿌리칠 아수라가 아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보자고.”
아수라도의 구현은 세희의 공격을 묶어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공간에서 고공폭격을 하는 세희의 공격은 대신족이라고 해도 부담스러웠다.
그것을 공간 구현으로 차단하는 데 성공했으니 그녀의 힘은 반감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좋지는 않은데.”
작게 중얼거린 세희는 힐끗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준성이 서 있었는데, 그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세희와 시선을 마주쳤다.
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상황은 그들에게 그리 좋지 못했지만 반대로 기회이기도 했다.
아수라도의 구현을 위해 힘을 보태던 대신족, 테티스 또한 바다를 잃게 됨으로써 온전히 권능을 발현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진득하게 손만 섞으면 된다.”
아수라의 시선은 세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아니나, 언제 어느 순간 가장 큰 위협으로 작용할지 모르는 것이 세희였다.
그러니 약세가 뚜렷해진 지금 확실하게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게 가능한 것처럼 생각되나 봐?”
“흐흐, 네가 구사하는 힘이 무엇인지 내가 모를 것 같나? 이미 파악은 다 끝났나. 그렇게 허세를 부려도 달라지는 건 없지.”
“재미있네, 과연 그게 가능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럼 지금 보면 돼.”
입심을 발휘하면서도 경계태세를 풀지 않을 만큼 현재 정황은 팽팽함 그 자체였다.
현재 아수라도에는 준성 일행과 대신족이 정확하게 4대 4의 구도를 그리고 있었다.
준성을 비롯해서 세희와 엘리엔, 영웅이가 자리하고 있었고, 대신족 측은 테라와 아수라, 이슈타르, 테티스가 자리를 지켰다.
숫자도 동일했고 전력도 엇비슷했다.
엄밀히 말하면 준성 측이 유리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여유를 잃지 않았다.
“날 막으려고?”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게 너니까.”
준성은 노골적으로 테라를 저지하고 나섰다.
그는 흥미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만큼 자신의 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야. 이미 너희 일행은 아수라도에 걸려들었으니까.”
“너희 일행도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면서 말은 잘하는군.”
“그래 봤자 너희 깡통보다 약할 것 같지는 않은데.”
카앙!
테라의 말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영웅이는 테티스를 향해 환두대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준성 일행 중 가장 열세인 것이 영웅이기에 가장 약해 보이는 테티스를 잡고 늘어진 것이다.
“약해도 대신족 하나를 묶어놓으면 남는 장사가 되겠지.”
“나도 묶어놓는다고 했으니 저 둘이 우리 대신족 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물론.”
“큰 오산이란 걸 알게 될 거야.”
테라는 전투를 치를 의사가 없는 것처럼 팔짱을 껴보였다.
그럼에도 준성은 경계를 거두지 않았으나,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는 것에 적잖이 안도했다.
둘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세희와 엘리엔, 아수라와 이슈타르의 대결 구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케헷! 재미있군, 재미있어! 그렇게 자신 있다면 어디 한번 견뎌봐라.”
아수라는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지 눈치채고는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손을 위로 번쩍 들면서 본격적인 전투에 참전했다.
귀신의 왕이자, 아수라도를 지배하는 아수라의 이름은 모든 전투에서 항상 가장 위로 올라간다.
근접전의 달인이자, 모든 것을 부숴 버리는 파괴력의 소유자인 아수라의 몸이 튕겨 나가자, 삽시간에 거리를 좁히면서 세희를 향해 쇄도했다.
꽈아아앙!
무시무시한 폭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세희의 몸은 부드럽게 충격을 사방으로 분산시키며 뒤로 밀려났는데, 어느새 그녀 앞에 생성된 신의 방패가 모든 충격을 흘려내고 있었다.
“이 정도 잔재주도 없으면 재미가 없지.”
광소를 터뜨린 아수라의 손이 열두 개로 늘어나면서 쉬지 않고 신의 방패를 두드렸다.
강력한 힘이 응축된 주먹은 빠른 속도로 방패를 부숴 나갔다.
꽈앙! 꽈과과광!
신의 방패가 연신 출렁일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 전달되었지만 세희는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고 버텨내고 있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과 핏발이 선 아수라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공격 수단을 잃은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없지.”
“아, 진짜 말 많네.”
공격을 하면서 입을 쉬지 않는 모습에 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수라는 개의치 않고 주먹을 뻗었다.
쩌적!
신의 방패에 균열이 일어나고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할 무렵, 재차 달려들던 아수라는 놀라운 것을 목격했다.
거대한 무언가가 그를 후려치고 있던 것이다.
꽈아앙!
“크윽!”
무지막지한 충격이었다. 황급히 팔을 교차하며 방어를 했기에 버텨낼 수 있었지만 한순간 무력화 되어 무방비한 모습을 드러낼 뻔했다.
“신도 때려죽일 수 있나?”
양손에 신의 방패를 움켜쥔 세희가 섬뜩하게 웃어 보였다.
엘리엔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이슈타르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느꼈다.
아수라가 뜨거운 불과 같다면 이슈타르는 잔잔한 호수와 같았다.
담담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 얕볼 수도 있겠지만 그녀 또한 약점을 찾고자 감각이 활성화 되어 있는 것을 느꼈다.
“너는 전투 경험이 많구나.”
“…….”
엘리엔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슈타르가 입을 여는 순간, 찰나에 드러난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날린 것이다.
네이처 소드에 녹빛 기류가 형성되면서 엘리엔을 향해 뻗어나갔다.
이슈타르가 손을 뻗자 회색빛 기류가 뭉치며 녹빛 기류에 쏘아졌다.
카가각!
두 힘이 얽혀들면서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엘리엔은 전력을 기울인 힘이 회색빛 기류에 가로막힌 것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상대가 발현한 권능의 힘은 자신이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파앗!
결국 힘이 다한 두 기류는 허공에 흩어지고 말았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경계태세를 취하는 엘리엔을 향해 이번에는 이슈타르가 달려들었다.
그녀 주변으로 발산되는 회색 기류가 넓은 반경을 커버할수록 엘리엔의 자유도는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으음!”
전신에 가해지는 압박이 강해지자 그녀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하지만 몸은 반사적으로 이슈타르의 공격에 반응하고 있었다.
전쟁의 여신의 이름을 딴 이슈타르는 모든 전투 상황에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언제나 신족의 전쟁에서 전장을 총괄하며 승리를 쟁취했다.
직접 전투 또한 냉철하게 적의 약점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승리를 만들어냈다.
엘리엔을 압박한 수단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권능이 깃든 힘을 주변에 흘려 일대를 모조리 장악한 뒤 상대를 위축시키니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우위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슈타르의 의도는 거기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엘리엔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기세가 휘몰아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콰콰콰콰!
무시무시한 힘의 폭주였다. 네이처 소드에서 뻗어나간 녹빛 기류는 이슈타르 주변을 장악하던 회색 기류를 모조리 날려 버렸다.
“그런 무리수를…….”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슈타르의 눈이 거세게 떨렸다. 방금 전 엘리엔의 행동이 얼마나 무리수였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큰 힘을 동원해서 일거에 주변 기세를 달리하는 것은 막대한 양의 힘이 소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엘리엔의 표정은 잠잠하기만 했다.
“네가 신이라면 나도 신의 힘을 지녔어. 전투는 이제부터야.”
“……숨겨놓은 비기가 있었다는 건가?”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며 이슈타르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부웅!
신의 방패를 둔기처럼 휘두르는 세희의 공격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공간마저 부숴 버리는 신의 방패는 가장 단단한 방어수단이자 치명적인 공격수단으로 바뀌었다.
“이 무식한…….”
아수라는 양손으로 신의 방패를 휘두르는 세희를 공략할 수 없었다.
자신의 주특기인 근접전을 신의 방패가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공격과 방어 전환이 자유로우니 아수라로서는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희는 그 여유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가면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신의 방패가 휘둘러졌다. 적중하면 신의 육체가 으깨질 것 같은 파괴력이었다.
“큭!”
결국 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당장에라도 세희를 공략하고 싶었지만 아낌없이 신성력을 퍼붓는 공격은 완급조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음에도 아수라가 여유를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한정된 신성력이 그것이다.
신의 방패는 탁월한 방어력만큼이나 많은 양의 신성력을 소모시킨다. 그녀가 신의 방패를 두 개나 들고 날뛴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갈을 맞이할 게 분명했다.
‘엉성하지.’
무엇보다 아수라를 자신감 갖게 한 것은 엉성한 공격 방식 때문이었다.
세희의 전투 스타일은 신의 방패로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신의 회초리, 지팡이로 이어지는 고공폭격으로 존재 자체를 말살시키는 것이다.
근접전에서는 취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처럼 공격의 콤비네이션을 펼칠 때 엉성한 연계는 아수라가 공략할 수 있는 틈을 만들었다.
“엉성하다고!”
완전히 열린 틈을 타 아수라가 뛰어들었다. 신의 방패 두 개가 완전히 무용지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기에 세희를 바라보는 아수라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카아앙!
하지만 공격은 그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새 세희 앞에는 신의 방패가 소환되어 아수라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낸 것이다.
“……!”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충격이 해소되기 무섭게 세희가 신의 방패를 소멸시키고 아수라를 끌어안은 것이다.
“기분 좋아? 하지만 여기까지야.”
“네년……!”
그제야 세희의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아차린 아수라가 이를 바득 갈았다.
처음부터 이걸 의도하고 자신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아수라도가 구현되면서 세희는 가장 큰 무기를 잃고 말았고, 신의 방패를 무기처럼 휘둘러 허장성세를 펼쳤다.
아수라가 참을성을 잃고 달려드는 순간, 의도했던 대로 그와 함께 자폭하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서방! 뒤를 부탁해!”
우웅! 파아앗!
빛에 휩싸인 세희와 아수라의 몸이 소멸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육체의 소멸이지, 정신체의 소멸이 아니었다.
준성과 테라는 세희와 아수라가 육체를 잃기 무섭게 뛰어들고 있었다.
날듯이 달려든 둘은 세희와 아수라의 정신체를 수습했다.
테라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준성을 향하고 있었다.
“요망한 수법을 쓰는군.”
“…….”
그는 긍정도 부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이런 수법을 쓸 수밖에 없는 세희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다.
무기를 잃은 그녀로서는 이렇게라도 전황에 틈을 만들 수밖에 없었으리라.
“사라지고 있군.”
그 결과, 아수라도는 빠른 속도로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