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78)
제158장 대전쟁
아수라도의 구현으로 메테오가 작렬하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그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콰직! 콰지지직!
주변 공간 전체가 어그러지는 듯하며 거센 힘이 요동쳤다.
이것은 지구 전체로 번질 만큼 커다란 여파를 동원했는데, 그로 인해 전반적인 시스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봤지?”
“…….”
준성의 말에 이나는 긍정도, 부정도 표현할 수 없었다.
메테오는 지구를 몇 번이나 멸망시킬 만큼 강력한 위력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준성이 예상했던 것처럼 지구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수라의 희생이 뒷받침된 것이다.
“자발적이었을까요?”
“그럴 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럼 강제로…….”
“아마 다른 수작을 부렸겠지. 동족의 희생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녀석이니까.”
“하아!”
한숨을 푹 내쉬는 이나였다. 비록 적대하는 신족이라고 하나 같은 종족의 계략에 휘말려 한꺼번에 사라진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호재야. 대신족 하나와 한꺼번에 오십이 넘는 신족들을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너무 심란해하지 마.”
“그래야 되는데 마음은 좋지 않아요.”
“그렇겠지. 하지만 그 감정도 살아남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것들이야.”
“알아요, 전투에 들어가면 최선을 다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준.”
“물론이야. 이제 슬슬 손님이 나오고 있네.”
준성 일행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아틀란티스 상공이었다.
그곳으로 테라를 비롯한 대신족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각자 맡은 상대를 명심해. 그들을 꺾어야만 우리에게 미래가 있으니까.”
준성의 말에 모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나와 엘리엔의 얼굴에는 결연함마저 서려 있었다.
쏴아아아!
강렬한 기세가 폭발적으로 솟구치면서 준성 일행을 덮쳐왔다.
빛줄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대신족들이었다. 이제 다섯밖에 남지 않은 그들의 기세는 하나같이 흉흉했다.
“잘도 이런 수법을 구사했어.”
“동족을 희생양으로 사용하는 대응 방법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
준성과 테라 사이에 흉흉한 기세가 자리했다.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분위기는 주변 공간을 진득하게 억눌렀다.
“남은 우리 동족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 거라 생각해?”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지?”
“알아둬야 해. 왜냐하면 그들 모두 네가 살고 있는 곳으로 향했으니까.”
“양동작전인가.”
이번 전투에 참여시킬 거라고 생각했지만 테라의 분노는 준성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신족들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터전을 쓸어버리려고 하니 말이다.
“상관없다. 빠르게 처리하고 남은 녀석들도 처리하면 되니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도 재미있어. 아직도 헛된 마음을 품고 있는 건 어떤 자신감의 발로인지 잘 모르겠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로 알아주면 될 것 같은데.”
“준비?”
“보면 알게 될 거야.”
의문을 표하는 테라에게 준성은 싸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남은 대신족의 숫자는 다섯이고, 준성 일행도 다섯이었다.
영웅이는 대기하고 있던 상황에서 준성의 명령에 따라 금탑을 수호하기 위해 대한민국으로 향한 상황이었다.
자연히 준성 일행과 신족의 대치가 이루어졌고, 일대일 상황으로 이끌었다.
준성은 테라의 앞을 가로막았고, 일대일 전투에 취약점을 보이는 세희는 가장 전투력이 약한 테티스를 맡았다. 이나는 과거의 악연 칼리를, 엘리엔은 저번 전투에서 대치했던 이슈타르를 막았다. 마지막으로 타나의 앞은 헤스티아가 가로막았다.
“동족을 희생하면서 영광을 취하려는 테라의 수법이 감명 깊지 않나?”
“…….”
준성의 말에 헤스티아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지나쳤다.
그녀를 흔들고자 하는 준성의 수작에 테라가 개입했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마. 헤스티아,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어. 다른 생각은 하지 마.”
“알아요.”
“눈앞에서 본 것들이 있는데 과연 그럴까?”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헤스티아가 흔들릴 거라고 생각하지 마. 그리고 너…… 말이 많아.”
파아앗!
테라가 준성에게 손을 뻗자, 강렬한 바람이 둘을 휘감았다.
자연히 뒤로 밀려났는데, 그를 바라보는 헤스티아의 눈은 착잡함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 없는 노릇,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오시리스와 네프티스를 차례대로 소멸시킨 타나를 상대하는 것이다.
잠깐의 방심이 소멸을 불러올 수 있었기에 타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또 왔네.”
무미건조한 타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헤스티아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긴 금발과 아름다운 외모는 어디에도 강함이 묻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타나의 전신을 휘감은 기류는 무엇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강자의 것이다.
“당신을 맡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죠.”
“의미 없는 말이야.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에요.”
타나와 대치하고 있으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테라가 아수라와 동족 오십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걸 눈치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로 인해 헤스티아는 그동안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전투에 임한다고 하니 그 생각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래, 확실하게 하는 거야.’
모든 걸 잊기 위해 전투에 임한다.
그것이 헤스티아의 생각이었다.
자연히 타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오로지 ‘전의’만 깃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몸조리 잘했고?”
“한 번 이득을 본 것 가지고 아주 신이 났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이나를 보면서 칼리는 입매를 비틀었다.
이전의 전투는 그녀에게 있어 치욕 그 자체였다. 한 수 아래로 봤던 이나에게 패배하면서 자존심에 금이 갔고, 육체는 뼈아픈 손실을 입었다.
동족들의 도움으로 회복되었지만 정신에 금이 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눈앞의 이나를 갈가리 찢어 죽이지 않고서는 분이 풀리지 않을 정도였다.
“아주 몸이 달아올랐네?”
“이 자리에서 널 처참하게 죽일 거니까. 이 정도로 들뜨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하긴, 틀린 말은 아니야. 왜냐면 나도 너무 기뻐서 잔뜩 들떠 있거든.”
칼리만큼이나 전의를 다지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이나였다.
전투에서 우위를 점했음에도 상대를 확실하게 끝내지 못한 것은 확실한 자신의 실수였다. 기회가 왔을 때 마무리를 하는 것도 능력이고, 승부사가 가져야 할 자질이었다. 그걸 해내지 못했기에 지금의 일대일 대결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기도 했다.
“이전과 같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이나를 상대하기 위해 칼리는 칼을 갈아왔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맹렬한 살기가 이나에게 전해졌다.
“당연한 거 아니야? 오히려 난 네가 더 강해져 있길 원하고 있어.”
“……?”
“그래야 쓰러뜨리는 맛이 있을 거 아냐? 그러지 않으면 너무 쉬운 결과가 나올 테니까.”
이나를 중심으로 공간 전체가 뒤틀리는 것처럼 거대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그녀를 바라보는 칼리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손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또 만나게 되는군. 이 질긴 악연도 어떻게 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
“동감이야.”
이슈타르와 엘리엔의 대화는 무미건조함 그 자체였다.
당장에라도 충돌을 일으킬 것처럼 살벌한 기운을 연신 흩뿌리고 있었지만 감정이 메마른 목소리는 심각한 분위기를 반감시키고 있었다.
“테라는 오늘 널 확실하게 끝내길 원하고 있어. 더 이상 시간을 끌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게 너만의 생각이라고 여기면 곤란해. 왜냐면 우리도 널 확실하게 처리하고 싶어 하니까.”
“생각이 동일하네.”
“…….”
엘리엔과 이슈타르의 눈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말주변이 뛰어나지 않은 둘에게 많은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행동으로 말할 뿐.
서서히 다가오는 이슈타르를 보며 엘리엔은 손에 쥔 네이처 소드를 움켜쥐었다.
이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를 해야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걸 의도했어?”
일대일로 대치가 이루어진 상황을 보며 테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각자 풀어야 할 매듭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매듭이라, 맞는 말이야. 우리도 반드시 네녀석들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의 전력을 얕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겠지.”
하지만 말이 이어질수록 테라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동족들의 앞을 가로막은 준성 일행의 실력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음을 감지한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했다.
타나는 오시리스와 네프티스를 소멸시킨 강자였고, 이나는 한 차례 칼리를 꺾은 적이 있다. 세희나 엘리엔이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고 해도 두 곳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상황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었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것 같은데?”
“상관없어.”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도?”
굳어있던 테라의 표정은 한순간 풀려 있었다.
무엇을 떠올렸기에 저렇게 여유로울까.
그것은 이어진 테라의 말을 듣고 고스란히 풀렸다.
“널 최대한 빠르게 제거하고 내가 합류하면 되는 일이니까.”
“과연, 정답이로군.”
하지만 그래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만 했다.
전신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준성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세희가 대신족 중 최약체인 테티스를 만난 것은 일대일 대결에 적합하지 않은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준성의 의도는 일대일 대결을 통해 최대한 많은 대신족을 처리하는 것이고,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곳으로 타나와 이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백중세, 혹은 근소한 우위라는 걸 알았기에 세희는 부담감을 갖지 않았다.
“가장 약한 우리들끼리 잘해보자고.”
“…….”
쾌활한 세희의 목소리에 테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준성 일행이 대신족과 대치하고 있을 무렵, 테라의 명령을 받은 신족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메테오를 소환해서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했던 준성이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제거함과 동시에 세계 전반을 장악하려는 속셈이었다.
남은 오십의 신족들은 세계를 멸망시키고자 메테오를 소환했던 준성에게 맹렬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열둘의 신족은 대한민국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준성의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금탑을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장악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신족들의 접근은 처음부터 급격한 제동에 걸리게 되었다.
[더 이상 못 간다!]“…….”
앞을 가로막은 존재는 다름 아닌 영웅이었다.
준성에게 명령을 받고 금탑을 수호하라는 말을 들은 그가 신족의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고 나섰던 것이다.
“하찮은 골렘 녀석이!”
영웅이의 등장에 신족 하나가 손을 뻗어 공격을 해왔다.
강렬한 빛이 번쩍이면서 영웅이한테 쏘아졌다. 매서운 기세가 사방에 휘몰아치자, 환두대도가 휘둘러지며 맞대응을 펼쳤다.
카가가각!
두 힘이 얽혀들면서 불꽃을 일으켰다.
신족과 영웅이는 힘겨루기 양상에 들어갔지만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강렬한 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영웅이가 다른 손으로 롱기누스를 휘둘렀던 것이다.
공간을 가르며 휘둘러진 창은 아슬아슬하게 신족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간담이 서늘하게 만드는 일격이었다.
[피하는 것 하나는 일품이로군.]“네놈이…….”
[이 정도도 못 버텨내면 곤란하다고!]동족의 곤란에 신족들이 영웅이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숫자에서 명백한 열세였지만 영웅이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이었다.
[크흐흐! 숫자로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을 거다.]파앗! 팟! 팟!
주변에 빛이 연속으로 반짝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폴리모프를 해제한 드래곤이 영웅이 뒤로 자리하고 있었다.
여전히 숫자는 부족했지만 영웅이는 여전히 해볼 만하다는 기세였다.
[뼈가 녹도록 싸워보자!]그 외침과 함께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
엘리엔은 이미 이슈타르와 한 차례 격전을 벌인 적이 있었기에 섣불리 접근하지 않았다.
전의 대결에서 보인 양상은 이슈타르의 우위였다.
일방적으로 기울어지지 않았지만 대결을 흐름을 주도하던 것은 이슈타르였고, 엘리엔은 무게추가 기울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 흐름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전보다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간의 수련을 통해 한 단계 실력의 발전을 이뤄냈지만 아직까지 확신이 없었다.
“안 온다면 내가 움직이는 수밖에.”
엘리엔의 신중함에 이슈타르는 더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였다.
양손을 펼치는 순간, 회색 기류가 휘몰아치면서 사방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혀를 날름거렸지만 엘리엔은 동요하는 기색 없이 검을 휘둘렀다.
푸캉!
회색 기류와 녹빛 오러가 충돌하면서 날카로운 굉음이 울려 퍼졌다.
엘리엔은 비틀거림 없이 균형을 잡고 버티고 섰고, 이슈타르는 날카로운 눈을 한 채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놀지 않았다는 건가.”
“덤벼.”
상대에 대한 긴장을 완전히 떨쳐낸 엘리엔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이슈타르의 몸이 좌우로 흔들리면서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전장의 지배자인 그녀는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승부의 화신!
절대 패하지 않는 권능은 승리할 수 없는 전투에 임하지 않게 만들고, 이길 수 있는 전투는 철저하게 승리로 이끄는 권능이다.
이슈타르는 자신의 권능이 오시리스, 네프티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반드시 승리하게 만드는 이 권능이야말로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웅! 우우웅!
회색 기류가 연이어 요동치면서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물처럼 촘촘하게 형성된 힘은 엘리엔이 움직일 경로를 차단하고 동시에 보이지 않는 사각까지 점유하면서 언제든지 공격을 퍼부을 태세를 취했다.
“칫!”
엘리엔도 이슈타르의 의도를 눈치채고 혀를 찼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네이처 소드로 빠르게 검을 내리그으면서 녹빛 오러를 형성했지만 회색 기류와 충돌하면서 동수를 이룰 뿐, 그 이상의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엘리엔에게 만족을, 이슈타르에게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이전이라면 엘리엔이 확연하게 밀렸을 양상이 지금은 팽팽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제법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등하게 맞서는 수준이었다.
단기간에 기량을 끌어 올렸다고 하나, 그 정도일 뿐. 이슈타르에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두 신형이 빠르게 얽히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엘리엔의 검술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장점이라면 이슈타르는 기운을 운용하는 것이 뛰어났다.
두 힘이 연이어 충돌할 때마다 강렬한 충격파를 동원했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고 대결에 임했기에 팽팽한 전황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겨우 이 정도…….’
짧은 기간이지만 이나와 수련을 하면서 힘을 길렀던 엘리엔은 상대와 동수를 이루는 것이 고작이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렇게 팽팽한 접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집중력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엘리엔은 더욱 무섭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검격이 한 층 더 매서워지고, 상대의 공격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에서 덮쳐오듯 휘몰아치는 힘을 피해내고 반격을 가했지만 찰나에 드러난 틈은 검을 휘두르는 사이 사라져 있었다.
그것은 이슈타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엘리엔과 맞서면서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지만 언제든지 기울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흘러가다가는 장기전 상황으로 치닫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집중력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고, 어떤 변수를 가질지 몰랐기에 엘리엔을 바라보는 이슈타르의 기세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지금 당장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이에 엘리엔도 물러서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기세가 먹혀들면 언제 꺾여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뛰어들 듯 날아든 엘리엔이 연거푸 검격을 날렸다.
녹빛이 번쩍일 때마다 이슈타르의 몸을 노리고 날카로운 예기가 곳곳을 휘갈겼다.
카각! 가각!
회색 기류는 엘리엔을 공략하는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막아내는 철벽이 되기도 했다.
공수를 완벽하게 조화시키는 비기 중 비기였지만 엘리엔에게도 한 가지 노림수가 존재했다.
그것을 위해 여태까지 집요한 검격을 날리고 있던 것이다.
“더 이상 잔재주를 받아줄 생각은…… 없다!”
이슈타르의 두 눈이 번뜩이면서 양손을 뻗자, 강렬한 기류가 쇄도했다.
공세를 취하려던 둘의 입장이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맹렬하게 달려들던 엘리엔이 공격을 막기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녹빛 오러를 사방에 흩뿌리면서 방어에 임하려 들었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습에 이슈타르의 회색 기류가 더욱 사납게 달려들었다.
꽈과과광!
“으…….”
“방어가 그렇게 어설퍼서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엘리엔을 향해 말하는 이슈타르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렸다.
그녀의 적극적인 공세는 결국 상대적으로 미숙한 방어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기 위함임을 눈치챈 것이다.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듯 사납게 폭주하는 회색 기류는 조금 전까지 보여주던 성질과 확연하게 달랐다.
분분히 뒤로 물러서는 엘리엔은 수세에 몰려 패색이 짙어졌다.
마치 몰이사냥을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몰아친 이슈타르는 전혀 흥분에 물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독해 보일 정도로 냉정하게 차근차근 엘리엔을 무너뜨렸다.
꽝!
회색 기류와 충돌한 네이처 소드가 뒤로 젖혀졌다. 육체적인 움직임을 극복하지 못했기에 엘리엔 앞으로 훤히 드러난 빈틈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끝이구나.”
뱀처럼 꿈틀거리는 회색 기류는 그대로 엘리엔의 가슴을 향해 쇄도했다.
가슴을 꿰뚫고 심장을 파괴해서 질긴 생을 끊어주리라 했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승리를 완전히 쥐었다고 여긴 이슈타르의 얼굴에 비친 것은 미소가 지어진 엘리엔의 얼굴이었다.
“프로미넌스!”
“꺄아아악!”
지독한 열기가 전신을 휘감는 순간, 이슈타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몸부림을 치며 피하려고 들었지만 엘리엔이 철저한 계산 끝에 시전한 마법은 그녀의 전신을 불태워 나갔다.
쾅!
하지만 회심의 공격을 펼친 엘리엔은 끝까지 웃지 못했다. 뒤늦게 네이처 소드를 막아보았지만 불완전한 자세로 회색기류를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던 것이다.
가슴이 꿰뚫리는 건 막아냈지만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뒤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으으…….”
신음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신의 의도가 완전히 먹혀들었던 것이다.
9클래스 프로미넌스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최강의 화염 마법이었다.
자신에게 마법이 있음을 감추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회심의 일격을 가할 기회가 생기자, 기꺼이 가슴을 열어주고 마법을 적중시켰다.
그 결과 불꽃에 휩싸인 이슈타르는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미소도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여전히 불꽃에 휩싸인 이슈타르가 몸을 일으킨 것이다. 사납게 일렁이는 눈동자는 당장에라도 엘리엔의 전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처럼 사나웠다.
“이게 무슨…….”
프로미넌스가 신의 육체를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저렇게 노려보고 있을 수 있다니.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엘리엔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너, 실수한 거야.”
“실수라고?”
“내가 왜 이슈타르라고 생각해? 상처를 입을수록, 전의가 강렬해질수록 나는 더 강해져.”
이슈타르가 지닌 권능 자체가 그러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최강의 힘을 지녔지만 전쟁에서 상처 하나 없이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랬기에 상처가 늘어날수록 이슈타르는 더욱 강해졌다.
광기로 상대를 몰아치고, 냉정해진 머리로 상대를 조종했다.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며 광기가 공존하는 이슈타르의 존재는 모순을 지닌 존재임과 동시에 그것마저 승리로 승화시키는 전쟁의 신이었다.
“그리고 지금 난, 그 어느 때보다 너를 무너뜨리고 싶어.”
섬뜩한 이슈타르의 음성이 엘리엔의 귓가를 울리고 있었다.
상처 입은 야수의 공격은 매서웠다.
공간을 격하고 달려드는 이슈타르의 회색 기류는 엘리엔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버릴 만큼 날카로운 예기를 품고 있었다.
꽈광! 꽝!
“으…….”
전신을 울리는 강렬한 타격에 엘리엔이 신음을 흘렸다.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부숴 버릴 것처럼 사나운 회색 기류는 이슈타르의 마음 상태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내 전의가 타오를수록 네가 맞이할 최후는 처참할 거야. 각오해도 좋아.”
콰콰콰콰!
폭주하는 회색 기류는 엘리엔을 집어삼킬 것 같은 거대한 해일로 변하고 있었다.
그것을 앞에 둔 엘리엔은 조금씩 초조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자 꾹꾹 억눌렀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상처 입은 이슈타르가 이렇게 사나운 모습을 보일 줄 몰랐지만 상대가 흥분할수록 엘리엔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갔다.
기회는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그때까지 조용히 기회를 엿보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만이 엘리엔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쩌억!
마치 채찍처럼 휘둘러진 회색 기류를 막아냈지만 강렬한 충격과 함께 엘리엔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신성조차 부숴 버릴 강맹한 힘은 영리하게 자신의 우세를 만들어 나가던 지금까지의 이슈타르와 전혀 다른 전투 스타일이었다.
“죽어! 죽으라고!”
“…….”
앞뒤 가리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이슈타르의 귀기 어린 얼굴에도 엘리엔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자 애썼고, 부지런히 네이처 소드를 휘둘렀다.
쩌엉!
하지만 연이은 회색 기류 채찍에 네이처 소드에 금이 갔다. 엘리엔이 신성을 지녔다면 이슈타르 또한 신의 권능을 얻어 신의 반열에 올라선 존재였다.
강렬한 충격이 연이어 덮쳐올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엘리엔이 집중력은 더욱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슈타르의 말대로 전의가 강렬해질수록 공격도 한층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엘리엔은 신의 육체가 갈가리 찢어지는 것처럼 괴로웠고, 둔중한 충격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슈타르의 공격은 눈에 띄게 동작이 커지고 있었다.
그 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엘리엔밖에 없었다.
쩌적! 쩌저적!
번번이 부서지는 네이처 소드를 재소환하며 버텨내던 엘리엔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마무리를 위해 동작이 커지는 이슈타르에게서 빈틈을 포착한 것이다.
‘기회!’
파앗!
그것을 깨닫기 무섭게 엘리엔의 몸이 튕겨 나갔다. 단숨에 공간을 좁힌 그녀는 네이처 소드로 빈틈을 파고들려고 했지만 가까이 다가온 엘리엔을 맞이한 것은 이슈타르의 빈틈이 아니라 섬뜩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속았지?”
처음부터 동작을 크게 만든 것은 엘리엔을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상처를 입고 전의가 강렬해져도 이슈타르는 전쟁의 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승리를 위해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엘리엔이 한 방 먹인 이후, 눈에 띄게 수세로 들어갔고, 빈틈을 노리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거북이처럼 단단히 웅크리고 있는 그녀를 끌어들이고자 의도적으로 동작을 크게 했고, 결정적인 순간 이슈타르에게 달려든 것이다.
“이제 끝내자.”
회색 기류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쏘아졌다. 그물처럼 촘촘하게 얽혀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려던 순간, 엘리엔의 외침이 귓가를 뒤흔들었다.
“끝나는 건…… 너야!”
“뭐, 뭐야? 이건 대체 뭔데!”
자신의 생명과도 같았던 회색 기류가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이슈타르의 눈이 커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자신의 권능이 산산이 흩어지고 있단 말인가.
경악한 이슈타르의 눈가에 비친 것은 엘리엔의 미소였다.
“신언, 자연의 모든 현상을 뒤틀어 버릴 수 있는 비기가 내게 존재하는 걸 너는 몰랐겠지.”
“신언이라고? 말도 안 돼! 그것은 모든 자연만물을 움직일 수 있는…… 꺄아아아!”
전신을 갉아먹는 지독한 고통에 이슈타르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신언의 절대적인 ‘소멸’에 각인된 이슈타르의 몸은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었다.
엘리엔이 처음부터 노리고 있던 것은 신언의 발동 기회였다. 최강의 그랜드 마스터였지만 마법까지 익힌 그녀는 신성을 얻는 순간 준성에게 신언의 일부를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준성의 것에 비해 미약한 위력을 지녔지만 적의 방심을 이용하면 결정적인 순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모험을 감행했고, 신언을 발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치열한 노림수가 부딪치면서 마침내 성공을 거뒀지만 엘리엔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만약 이슈타르가 신언까지 버텨내면 더 이상 자신에게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파삭! 파사사!
하지만 그것은 엘리엔의 기우에 불과했다.
신언의 소멸을 버텨내지 못한 이슈타르의 몸이 산산이 부서졌던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허공에서 흩어지는 모습은 장엄했고, 동시에 초라했다.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가 겹치면서 복잡한 감정을 자아냈으나, 엘리엔은 그 감정 속에서 혼란을 겪지 않고 담담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내 승리야…….”
이슈타르가 완전히 소멸한 것을 확인한 엘리엔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엘리엔과 이슈타르가 본격적으로 충돌할 무렵, 이나와 칼리는 첨예한 대치 상황을 이루고 있었다.
“…….”
칼리의 얼굴에 땀이 맺혔다.
이전과 확연하게 다른 이나의 기세는 정면으로 접하면 손이 축축하게 젖어들 만큼 강렬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달라진 것일까.
한 발자국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전신이 베여 버릴 것 같은 느낌에 쉽게 공격조차 할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시끄러!”
이나가 이죽거리는 순간, 칼리의 몸이 고무공처럼 튕기더니 그대로 쇄도했다.
파앗!
빛이 번쩍이면서 지그재그로 얽혀들었다. 그것은 삽시간에 이나의 주변을 포위했고, 그대로 옭아매기 위해 조여들기 시작했다.
카각! 카가가각!
듀란달에서 푸른빛이 번쩍이자, 신성을 띤 푸른 오러가 사방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태풍처럼 모든 것을 튕겨내고, 베어버렸다.
부족한 위력을 그물 형태의 힘의 중첩으로 버텨내려던 칼리는 손쉽게 베어버린 자신의 공격에 허탈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고작 이 정도라면 매우 실망이야.”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한 차례 패배 이후, 복수를 다짐한 뒤 다시 만났지만 차이는 더 벌어져 있었다.
가슴을 가득 채워 나가는 패배감에 칼리는 괴성을 지른 뒤 재차 달려들었다.
빛이 칼리의 의지대로 불규칙하게 움직이면서 뿜어졌고, 알아차릴 수 없는 궤적을 끝까지 응시한 이나의 검이 허공을 뒤덮었다.
파팟! 파파팟!
그것은 검이면서 동시에 검이 아니었다. 이나의 의지가 깃든 검의 형상은 듀란달의 위력을 고스란히 담아냈고, 칼리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분쇄했다.
“마, 말도 안 돼!”
믿기지 않는 광경에 칼리는 비명을 질렀다. 단 한 자루의 검으로 만들어낸 압도적인 신위는 칼리의 기가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런 거였네.”
잔뜩 굳은 칼리와 다르게 이나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승리했다는 자신감? 아니었다. 상대가 완전히 쓰러질 때까지 이나는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구사하는 힘이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는지 작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신성이란 게, 꽤나 재미있네.”
자신의 의지가 실리면 고스란히 형체를 갖출 수 있고, 이것을 거짓으로 활용도 가능했다.
마치 자신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신성은 이나가 그동안 상상으로 해오던 모든 공격을 구현해 낼 수 있었다.
이 격한 떨림을 이나가 어찌 참아낼 수 있으랴.
신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아직까지 준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으며, 세희를 향한 질투심은 북풍한철처럼 차가웠다.
자신은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는 인간의 감정을 지녔다.
그럼에도 신의 힘을 지녔으니 인간인지 신인지 본인조차 헷갈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을 손에 넣었고, 그것을 가지고 눈앞의 숙적을 제거함으로써 완벽하게 자신의 힘으로 체득하면 되는 일이다.
그것은 곧바로 실전에 접목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부딪쳐 볼까.”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칼리의 입에서 섬뜩한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 여러 차례 충돌에서 이나는 다분히 실험적인 공격을 펼쳤던 것이다.
분노에 가득 찬 외침에도 불구하고 이나의 태도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강자가 약자를 무시할 수도 있잖아? 난 강자고 넌 약자.”
“닥쳐! 닥쳐!”
괴성을 터뜨린 칼리는 모든 권능을 격발시켜 빛의 힘과 합일했다.
강력한 위력을 가진 두 가지 힘이 합쳐지면서 파괴력이 한층 높아졌지만 이나 입장에서는 오히려 상대하기 더 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부터 합일된 힘이 아니었고, 자신의 공격에 맞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수법이기 때문이다.
“아, 아아…….”
자신의 힘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광경에 칼리의 입에서 암담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힘의 운용을 깨닫고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기 시작한 이나는 무적 그 자체였다.
“대단하지? 이토록 강렬한 힘이 내 손에 쥐어질 줄 나도 몰랐어. 이걸 알았다면 네게 그런 망신을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아니, 그런 망신을 당해서 내가 더 강해질 수 있었던 건가? 아무래도 상관없어.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충만한 상태니까.”
츠츠! 츠츠츠츠!
신성과 마나가 공명했다. 이나가 지닌 모든 힘이 하나로 뒤섞이고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이 현실로 ‘구현’되었을 때 진정한 위력이 발휘되었다.
순백의 빛에 휩싸인 한 자루의 검. 그것은 준성이 이나를 위해 만들어준 검이지만 지금 이 순간, 이나의 모든 깨달음이 접목되어 새로운 검으로 탄생했다.
“이전까지 이름은 듀란달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듀란달도 아니네. 검이 지니고 있는 역사보다 더 강한 힘이 덧씌워졌으니까.”
“…….”
눈앞의 검에 압도된 칼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렬한 성검 앞에 자신의 존재는 한없이 퇴색되고, 그동안 쌓아온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었다.
슈아악!
이나의 검이 칼리를 베어버렸다. 검에 베였지만 그녀의 몸은 온전했다. 이나는 육체가 아닌 칼리의 정신체를 베어버린 것이다.
“내 성장의 밑거름으로 만족스러웠어. 헛꿈 꾸지 말고 편히 쉬어.”
일격에 칼리를 베어버린 이나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듀란달에서 자신의 깨달음으로 새로 태어난 검에 이름을 지어줄 차례였다.
“이제부터 넌 아이러브 준성이야.”
우웅! 우우웅!
이나의 작명에 성검은 낮은 공명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좋다고 우는 것인지 싫다고 우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엘리엔에 이어 이나도 칼리에게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너는 내 상대가 될 수 없어.”
“…….”
타나의 냉정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헤스티아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그 속에 깃든 강렬한 전의를 타나는 놓치지 않았다.
“동족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제가 당신에게 겁먹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순순히 포기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고개를 끄덕이는 타나의 얼굴에는 자만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두 명의 대신족을 처리한 타나는 신보다 강한 힘을 손에 쥐고 있지만 눈앞의 헤스티아는 방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 어떠한 자신감도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동족을 향한 복수심이 내부에 충만했다.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릴 매서운 힘이 들끓고 있지만 이성적으로 제어하는 모습에서 헤스티아가 지닌 내면의 강함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겠지.”
타나의 양손에는 골든 소드와 룬 블레이드가 들려 있었다.
헤스티아가 대항하겠다면 그녀의 선택도 오로지 적을 향한 말살만 있을 뿐이다.
화르륵!
헤스티아의 몸을 중심으로 화염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본래 빛을 다루는 신족이었으나 신에게 화염의 권능을 빼앗으면서 힘과 권능을 하나로 합일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빛의 특징과 화염의 권능이 하나로 어우러지니, 누구도 헤스티아의 권위를 넘보지 못했다.
대신족에서 테라, 오시리스에 이은 세 번째였으나 그녀가 지닌 무위는 누구도 쉬이 측정하지 못했다.
신족 내 온건파에 속하는 헤스티아이기에 자신의 힘을 보일 기회가 적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적으로 규정하면 상대를 철저하게 말살하는 것이 바로 헤스티아였다.
두 신형이 겹치는 순간, 붉은 화염과 푸른 오러가 충돌했다.
푸캉!
산산이 부서진 쪽은 타나의 오러였다. 헤스티아의 전신을 휘감은 화염의 색이 점점 더 진해지는가 싶더니 빠르게 확장되어 전신을 뒤덮은 것이다.
헤스티아가 화염이고 화염이 곧 헤스티아가 되었다.
하나로 합일된 존재와 권능은 타나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힘이었다.
꽈광! 꽝! 꽈아앙!
무시무시한 폭음이 연이어 울려 퍼지면서 타나의 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화염이 지닌 파괴력과 빛의 속도를 결합시킨 헤스티아의 권능은 세상의 무엇보다 빠르게 모든 것을 파괴하는 힘을 지녔다.
“으음!”
뒤로 밀려난 타나의 입에서 참지 못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오시리스나 네프티스를 상대할 때도 나오지 않았던 반응이었다.
하지만 헤스티아는 그런 타나의 반응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거세게 휘몰아칠 뿐이었다.
치이익!
열기에 옷이 타버리면서 백옥 같은 나신이 드러났지만 타나의 얼굴에는 어떠한 수치심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헤스티아에게 모든 정신을 집중하면서 철저한 공략을 위해 집중하는 기색이었다.
타나와 헤스티아의 몸이 연이어 얽혀들었다.
화염 그 자체가 되면서 자연의 일부분이 된 헤스티아는 어떠한 공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고 들었다.
우우웅!
검에서 맑은 공명음이 울리면서 타나가 두 자루의 검을 허공에 띄웠다.
푸른 오러에 휩싸인 검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부신 속도로 헤스티아를 향해 쇄도했다.
꽈광! 꽝! 꽈르릉!
연이어 울려 퍼지는 폭음이 주변 전체를 울렸지만 타나와 헤스티아는 상대에게 집중하느라 그 소리마저도 자각하지 못했다.
한순간의 방심이 존재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까다로워.”
종횡무진 공간을 누비며 자신의 오러 파이어마저 억누르는 힘에 타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야말로 강함 그 자체였다.
억지로 위력을 키우려 들지도 않고 힘에 의존도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승화해 내니, 충돌이 거듭 이어질 때마다 타나가 밀리고 있었다.
전심전력을 다하는 쪽은 헤스티아였고, 타나는 완급 조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면서 타나가 뒤로 밀리는 형국이 이어졌다.
오러 파이어로 검을 조종하면서 뒤로 물러난 타나의 손에는 어느새 골든 피닉스가 소환되어 있었다.
시위를 당기니 자연히 푸른 기운이 휘몰아치면서 화살이 생성되었다.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이며 위력을 배가시키는 화살은 그대로 헤스티아의 불꽃을 향해 쏘아졌다.
꽈광!
화살에 적중당한 헤스티아의 몸이 멈칫했다. 커다란 충격을 받고 멈췄지만 열기가 누그러지면서 형상을 갖춘 헤스티아에게는 어떠한 상처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동족의 복수도 가능할 것 같네요.”
골든 소드와 룬 블레이드, 두 검이 어떠한 타격도 주지 못했고 골든 피닉스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타나의 주력임을 감안하면 확고한 우위를 점한 것은 헤스티아 쪽이었다.
“이 정도로 밀릴 줄 몰랐어. 이런 힘을 지닌 네가 그런 쭉정이랑 같은 반열로 취급을 받을지도 몰랐고.”
“……오시리스에 대한 모욕은 제가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싸늘하게 표정을 굳힌 헤스티아가 말했지만 타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힘의 차이는 명확하니까.”
“정녕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어설픈 수법으로 널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았어. 그래야 나도 전력을 다하는 맛이 있으니까. 그게 옳겠지.”
쓰쓰! 쓰쓰쓰!
헤스티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타나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에 들려 있던 골든 피닉스가 어느새 앞에 떠올라 있었고, 골든 소드와 룬 블레이드도 빠르게 접근하면서 푸른빛에 휩싸였다.
세 개의 무기가 찬란한 빛을 발할 때, 하나로 합쳐지면서 놀라울 정도로 투명한 색을 띠기 시작했다.
웅웅! 웅웅웅!
모습을 드러낸 무기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검신이 가느다란 실처럼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고, 온통 금빛으로 되어 강렬한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손에 쥐니, 푸른빛이 폭발적으로 뿜어지다가 그대로 사라졌다. 흔들리던 검신도 단단하게 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 그건…….”
무기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파장에 헤스티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냥 이름 없는 무기야. 상대도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듣지 못하게 만들어주기도 해.”
파앗!
타나의 몸이 한 줄기 빛처럼 쇄도했다.
헤스티아도 지지 않고 마주 달려 나갔지만 화염을 일으키기 전, 그녀의 눈이 부릅뜨였다.
고정되었던 검신이 가느다랗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활시위처럼 바뀌었던 것이다.
그것을 망설이지 않고 잡아당긴 타나는 헤스티아를 향해 연사했다.
피빙! 피비비빙!
순식간에 십여 발이 넘는 화살이 쏟아졌다. 헤스티아의 전신을 휘감은 불꽃이 강렬한 열기를 발산했으나 타나가 발사한 화살의 위력은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꽈과광!
[아아…….]자리에 멈춰 선 불꽃에서 헤스티아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존재 자체에 타격을 주는 것처럼 매서운 위력의 화살은 육체가 아닌 영혼에 충격을 가했다.
어느새 화염 앞에 도달한 타나는 검의 형태로 고정된 것을 휘둘렀다.
아무런 멋도 없는 일격이었지만 모든 것을 분쇄하는 파괴력을 품고 있었다.
쩌저적!
[흐윽!]영혼의 파편이 부서져 나가는 느낌에 헤스티아가 신음을 흘렸다. 직접 충돌하여 화염을 가로막았으니 충격은 영혼에 전해졌다.
타나는 헤스티아가 물러나는 만큼 따라붙으면서 검격을 퍼부었다.
금색으로 빛나는 검신이 화염과 충돌할 때마다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때마다 헤스티아의 영혼은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든 인과를 무로 돌린 뒤, 오로지 존재 그 자체에 타격을 가하는 타나의 신검 앞에서 헤스티아를 둘러싼 화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포기해.”
[저, 절대…….]파스스.
마침내 헤스티아를 둘러싼 화염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단단히 걸어 잠갔던 빗장이 타나의 검에 의해 벗겨지고 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형상을 갖춘 헤스티아의 육체는 엉망이었다.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처럼 전신이 망가져 있었다.
그것은 타나의 공격이 본질을 꿰뚫고 헤스티아의 영혼을 공략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존재와 권능의 결합은 참신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야. 내 검 앞에서 모든 존재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영혼만 마주할 수 있어. 그 영혼을 베는 것이 이 검이야.”
신조차 죽일 수 있는 신살검이었다.
모든 세계에 신은 존재하나 신살검의 위력은 완전한 신이 되지 못한 대신족에게 치명적이었다.
“이대로 포기할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에요.”
“덧없는 몸부림이야. 더 이상 반항은 너만 더 괴롭게 만들겠지.”
“닥쳐요!”
영혼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었지만 헤스티아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타나를 가로막는 것이고, 그 시간 동안 테라는 준성 등 다른 이들을 처리해 줄 것이다.
버텨내기만 한다면 전황은 신족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것 하나로 무너지려는 전의를 다잡으며 거리를 두고자 했다.
하지만 타나는 물러나는 헤스티아를 쫓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내게 감정이 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것뿐이야. 날 막을 수 없어.”
“동족을 위해서라도 당신을 막을 거예요.”
“그래도 불가능해. 이미 전황은 기울고 있으니까.”
“…….”
확신 어린 타나의 목소리에 헤스티아가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엘리엔과 이슈타르의 대결에서 엘리엔이 승리를 거뒀고, 이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칼리를 소멸시키면서 검을 정비하고 있다.
테라가 준성과 대치하고 테티스가 세희와 대치하고 있지만 전황은 급속도로 한쪽에 기울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타나에게 패하기라도 한다면 일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나라도 나서서 자폭을…….’
타나만 처리하면 테라가 어떻게든 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이미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끝까지 살아남아 타나를 처리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종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타나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가장 좋았다.
“아쉽네, 그런 결정이라니.”
“뭐, 뭐? 어떻게 그걸!”
“눈빛만 봐도 알아. 그만 끝내자.”
“……!”
몸을 움직이려던 헤스티아는 복부가 따끔한 느낌이 들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검 한 자루가 몸을 꿰뚫고 있는 걸 보고 눈을 부릅떴다.
‘대, 대체 어떻게?’
“인과를 앞당겼을 뿐이야. 결국 너는 내게 소멸을 맞이할 운명이었다는 이야기야.”
화르륵!
헤스티아의 빛의 능력과 불의 권능이 나눠지면서 전신이 불길에 휩싸였다.
신의 육체가 지닌 축복이 사라지고 처음 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으니 살아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동족들만큼은…….”
어떻게든 애원해 보려고 했지만 타나는 단호했다.
“신족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돼.”
“아, 안 돼!”
파앗!
불길에 휩싸인 헤스티아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폭주하는 권능에 묻혀 버린 채 그대로 소멸.
한 줌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한 모습을 보며 타나가 손을 뻗었다.
헤스티아의 복부를 꿰뚫었던 검이 빛과 함께 두 자루의 검과 한 대의 활로 분리되었다.
골든 피닉스를 잡으려고 하던 타나의 몸이 공중에서 기울어졌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고는 타나가 쓰게 웃었다.
“나도 꽤나 무리했나…….”
치열하게 이어졌던 헤스티아와 접전을 떠올리며 타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리했지만 그들이 얻는 과실은 달콤했다.
전황은 한 방향으로 확 기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