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28)
우선 생각난 것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끝나야 해? ….왜, 내가 왜!
그 찬란하고도 위대한 전설은 아름다운 여인과 그녀를 쏙 빼닮은 아들이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시작되었다!
모든 것 에는 그 의미와 이유가 뒤따르니 전생의 억울한 삶과 죽음도 새 삶을 판타지 세계에서 시작한 것도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태어난 것 또한 분명 그 이유와 의미가 존재하리라.
이제 과거의 굴레는 씻어 버리고 느껴라, 그리고 즐겨라.
이 시간은, 몰아칠 마법을 느낄 시간이다!
Chap.1 급변하는 세력
대륙의 이목을 끌었던 금탑과 성국의 분쟁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뜻밖이었다.
성녀가 출현했다는 소식과 성녀가 될 여인을 금탑주가 데리고 있다는 소식이 퍼져 나갔던 것이다. 더구나 금탑 주가 성녀가 될 여인을 내주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무척 뜻밖의 소식이 되었다.
대륙 사람들은 성국의 인물들이 얼마나 독실한 신앙심 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안다. 수백 년 만에 신탁이 내려 졌다.
성국의 인물들은 대륙 전체와 싸우는 한이 있어도 신의 말씀을 이행하겠다고 결심을 표명했다.
약 반년 후.
기나긴 탐색 끝에 성국의 인물들은 마침내 성녀가 위치 한 곳을 찾아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트롤 벨리였다.
하지만 트롤 벨리에는 이미 주인이 존재했다. 금탑주가 바로 그 주인이었다. 여기서 금탑주가 성녀를 순순히 내 주었다면 일은 손쉽게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탑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성녀가 될 여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라 외쳤고, 성국의 대신관과 광휘의 기사단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리고 벌어진 전쟁.
자신의 여인을 지키기 위해 성국과 적대했다지만 대륙 의 모든 존재들은 금탑이 속절없이 허물어질 것이라 생각 했다.
신앙심으로 무장한 1만의 성기사와 수십만의 성군, 그 리고 마법사의 자리를 채워 주는 신관의 존재는 제국이라 해도 무시할 수 없는 대단한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금탑의 전력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성국의 12대신관 중 하나인 볼레크와 광휘의 기사단을 아무 피해 없이 사로잡았다. 그리고 뒤이어 파견된 그랜드 마스터 다이어드 공작과 은십자 기사단을 막아 냈다. 도리어 교황청을 급습하여 성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삼십만 성군을 투입하여 금탑을 단숨에 쓸어 버리고 싶지만 그랜드 마스터에 달하는 골렘과 7클래스 마법사의 존재는 성국으로 하여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끔 하였다.
때문에 완벽한 해결책이 나타날 때까지 성국은 긴 대책 회의에 들어갔으며, 대륙은 일시적인 평화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성국과의 분쟁에서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톨리안 왕국 의 왕권 다툼이 다시금 대두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양상은 금탑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알려 진 루비어스 백작에 의해 기존의 구도와 판이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대가 힘을 더해 주어서 정말 다행이네.”
로웰린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국왕 전하, 저는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허허, 아니네. 모든 귀족들이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 어 등을 돌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대는 왕가에 변함없는 충성을 바치고 있어. 짐은 그 점이 무척 고맙네.”
레도프 국왕의 만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웰린과 그녀를 중심으로 뭉친 지방 귀족들 덕택에 제3왕자파는 상당한 힘을 얻어 정계에 무척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숨겨진 왕가의 힘은 어디까지나 힘에 불과하다. 후일 나라를 이끌어갈 귀족들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닌 힘을 바탕으로 왕위에 오른다면 왕국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왕국의 중심은 국왕이고,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귀족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로웰린이 이끌고 있는 귀족은 제3왕자파에 충분한 힘과 바탕을 깔아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지방 귀족들 하나하나가 모은 힘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로웰린의 뒤에는 금탑주 엘이 있다.
금탑주 엘리미스!
홀로 성국과 맞선, 대륙에 어마어마한 폭풍을 일으킨 남자다.
그랜드 마스터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골렘까지 거느리고 있는 엘은 레도프 국왕은커녕 제국조차도 방심할 수없는 큰 사람이 되었다.
그런 남자가 로웰린의 뒤에 있으니 제1왕자파와 제2왕자파가 감히 정면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레도프 국왕과 로웰린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시종장의 목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전하, 유드미온 왕자님께서 오셨습니다.”
“이제 왔나. 들라 하라!”
시종장의 목소리에 레도프 국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올 것을 허락하자 대전 문이 열리며 한 청년이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은 무척 부드러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살짝 처진 눈꼬리는 청년으로 하여금 편안한 느낌을 들게 하였고, 완만한 이목구비는 부드러움과 편안함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눈이 무척 강한 기운 을 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자칫 유약한 느낌이 들 수 있는 청년의 이미지를 상쇄하고 있었다.
이 청년이 바로 톨리안 왕국의 제3왕자인 유드미온 왕자였다.
대외적인 행사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유드미온 왕자가 레도프 국왕에게 고개를 숙였다.
“전하를 뵙습니다.”
“이리로 오거라.”
레도프 국왕이 손짓을 하자 유드미온 왕자가 조용히 다가왔다.
다가온 유드미온 왕자에게 그는 로웰린을 소개시켰다.
“인사하여라, 이분은 이번 너의 왕권 계승에 힘을 실어 준 루비어스 백작이다.”
“루비어스……”
잠시 말끝을 흐린 유드미온 왕자. 곧이어 그는 두 눈에 강렬한 이채를 담고는 로웰린에게 인사를 하였다.
“반갑습니다. 백작님. 유드미온이라고 합니다.”
로웰린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예, 반갑습니다, 왕자님 로웰린 루비어스라고 합니다.”
“어려운 판단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난 것도 모두 인연.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괜찮은 왕자님이야. 한시름 놓았어.’
로웰린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유드미온 왕자 에 대해 말이 많았다.
대외적인 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무슨 장애 때문이라고 추측하던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소문과 다르게 유드미온 왕자에게 어떠한 문제점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역시 한 왕국의 왕자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로웰린의 생각을 모를 리 없는 레도프 국왕이다.
그는 연신 웃음을 지으며 유드미온 왕자와 로웰린에게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루비어스 백작이 우리 유드미온을 도와주기로 한 경사스러운 날이지. 앞으로 유드미온과 루비어스 백작 의 앞날은 밝을 걸세.”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성심을 다해 왕자님을 돕겠습니다.”
왕위 계승 문제로, 가문의 문제로 길게 근심을 가져왔 던 그들은 자신들의 근심을 모두 털어 버리려는 것처럼 연신 웃고 떠들며 축배를 들었다.
화기애애한 대전 분위기와 달리 제1왕자인 맥셀 왕자 가 머무는 궁에는 조용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지는 제3왕자파의 행보를 막기 위해 맥셀 왕자를 찾은 테란델 후작은 궁 한편에 마련된 접대실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테란델 후작은 근심이 태산과 같았다.
제1왕자파와 제2왕자파로 굳어지던 양대 산맥 체제에 서 난데없이 치고 올라온 제3왕자파의 힘은 도저히 감당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레도프 국왕이 왕가에 숨겨진 힘을 사용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 힘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하여도 그걸 받쳐 주는 귀족들이 없는 이상 제3왕자파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금탑주를 등에 업은 로웰린이 지방 귀족들을 대거 규합해 제3왕자 파로 들어간 이상 제3왕자파는 모든 면에서 다른 파벌을 압도하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왕위를 제3왕자 유드미온이 계승하게 된다면 제1왕자락의 중추인 테란델 후작 본인은 물론 가문까지 저 먼 서쪽으로 밀려날 것이 자명했다. 그것 때문에 테란 델 후작은 위기감을 느껴 맥셀 왕자를 만나러 온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없다. 역시, 마지막 방법인 제2왕자파와 힘을 합쳐야 하는 방향을 택해야 하는 건가?”
테란델 후작이 최후의 수단을 생각할 때, 그의 귓가에 한줄기 목소리가 흘러들어 갔다.
“이런 이런,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그렇지 제2왕자파와 연합할 생각을 하다니. 테란델 후작답지 않아.”
테란델 후작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의 눈에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삼십 대 초반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맥셀 왕자 전하!”
맥셀 왕자라 불린 사내는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은 채 조용히 테란델 후작에게 다가왔다.
그 후, 그는 테란델 후작 맞은 자리에 털썩 앉으며 실망 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국왕 전하와 유드미온이 날뛴다고 하나 후작 이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을 줄이야.”
“소, 송구합니다.”
테란델 후작이 고개를 숙였다.
이는 놀라운 모습이었다.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테란델 후작의 능력은 왕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다.
그런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자신보다 한 수 높다고 생각하는 라이어스 공작이나 트겐발리 공작에게도 결코 보이지 않았던 태도를 지금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테란델 후작의 모습도 맥셀 왕자에게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하나 보다.
그는 테란델 후작을 힐끗 보더니 무미건조한 어조로 입 을 열었다.
“아, 뭐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일 뿐이니 별로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나저나 날 찾아온 이유는 루비어스 백작 건 때문이겠지?”
맥셀 왕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테란델 후작. 그는 자신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를 밝혔다.
“그렇습니다. 사실 루비어스 백작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녀 뒤에 금탑주만 없다면 어떻게든 은밀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외적인 제1왕자파 수장은 저로 되어있지만 실제로 저희들을 이끌고 계신 건 다름 아닌 왕자 전하가 아니십니까? 그렇기에 왕자 전하의 조언을 구하고자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왕자 전하의 처소를 방문한 것입니다.”
“금탑주라……”
맥셀 왕자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테란델 후작은 그런 맥셀 왕자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잠시 후, 맥셀 왕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결론은 금탑주라는 자가 문제라는 건가? 다른 건 문제가 되지 않고?”
맥셀 왕자의 말에 테란델 후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왕가의 힘…… 제2왕자파……’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모두 떠올려 본 테란델 후작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금탑주의 위세를 등에 업은 로웰린은 사라진다면 나머지는 자신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왕자 전하.”
그에 맥셀 왕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란델 후작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럼 금탑주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지. 이만 가 봐.”
“알겠습니다.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장소를 벗어나는 테란델 후작.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맥셀 왕자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제아무리 7클래스 마스터에 그랜드 마스터급 골렘을 지녔다고는 하나 나의 뒤에는 위대한 마스터가 계시다. 그분이 나를 후원해 주시는 이상, 나의 앞을 가로막을 상대는 없다. 금탑주! 너는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후후후!”
맥셀 왕자의 의미심장한 말과 함에 방 안에 그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
로웩린의 움직임에 의해 술렁인 건 비단 제1왕자파뿐 만이 아니었다.
제2왕자파 또한 갑작스런 제3왕자파의 세력 팽창에 잔뜩 긴장해 있었다. 때문에 제2왕자파의 수장인 트겐발리 공작은 이 사태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제2왕자파 주축 귀족들을 소집했다.
제2왕자파 주축 귀족들이 긴 탁자에 착석한 가운데, 가장 상석에 앉은 트겐발리 공작이 잔뜩 불편한 표정을 짓 고 있었다.
“……”
수장이 생각에 잠겨 있으니 다른 귀족들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트겐발리 공작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단 말이지. 정말 그놈들과 손을 잡는 것밖에 없는 건가?”
여기서 그놈들이란 바로 제1왕자파를 가리킨다.
제아무리 정치에 능한 능구렁이 트겐발리 공작이라 하여도 지금 이 상황에 Qy족한 수를 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내키지 않는 방법이다.
제1왕자파와는 언젠가 서로의 목을 노려야 하는, 최대의 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를 죽이려 들던 상대에게 돌연 힘을 합치자고 제의를 할 수 있겠는가?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에 인간의 감정이 개입된다면 그 말은 상당히 신빙성 없는 말이 된다.
그러나 별수 없다. 방법이 없는 것이다.
방법이 없는데 별수 있으랴? 가장 확실한 방법을 사용 하는 수밖에……
트겐발리 공작의 시선이 좌측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브릴켄드 후작이 앉아 있었다.
“끄응, 나도 이제 늙었나 보군. 젊었을 때는 이런 묘수가 기가 막히게 잘 떠오르더니, 이제는 떠오르지도 않는 군. 브릴켄드 후작.”
“예, 공작님.”
트겐발리 공작의 호명에 브릴켄드 후작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자 트겐발리 공작이 기대를 품으며 브릴켄드 후작 에게 물음을 던졌다.
“자네에게는 무언가 뾰족한 수가 있나?”
이리저리 생각해도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젊고, 제2왕자파의 책사 역할을 하는 브릴켄드 후작이 라면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트겐발리 공작의 기대에 부흥하듯 브릴켄드 후작 이 빙긋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뾰족한 수인지 아닌지는 공작님과 다른 귀족들이 듣고난 뒤 판단하면 될 듯합니다.”
트겐발리 공작이 눈을 반짝이며 브릴켄드 후작을 재촉했다.
“호오, 과연. 어서 말해 보게.”
“예, 우선 제가 생각한 방법은 공작님이 생각하신 제1왕자파와 힘을 합치는 방법입니다.”
브릴켄드 후작의 말에 트겐발리 공작이 인상을 찡그렸다. 제1왕자파와 힘을 합쳐 대응하는 것은 여기 있는 귀족들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대책이었던 것이다.
트젠발리 공작이 실망감 어린 어조로 말했다.
“음! 자네가 생각한 게 그건가?”
그에 브릴켄드 후작이 미소 지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공작님. 제1왕자파와 저희는 어 디까지나 적 입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뒤통수를 얻어맞을 수 있는,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이지요. 그 런 이들과 힘을 합치는 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때나 가능한 것입니다.”
“그럼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보게.”
“예, 공작님.”
트겐발리 공작의 채근에 짧게 대답한 브릴켄드 후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생각한 것은 간단한 발상입니다. 제일 간단한 방법은 제1왕자파와 힘을 합치는 거다. 하지만 제1왕자파와 힘을 합치기에는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들과 손을 잡지 않기에는 우리의 힘이 제3왕자파에 비해 약하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두 파벌을 모두…… 한꺼번에 제거하는 방법은 어떨까? 바로 이 생각이 저로 하여금 한 가지 방법을 떠 올리게 하였습니다.”
“두 파벌을 모두 제거해? 그게 정말인가?”
트겐발리 공작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비단 그뿐만이 아닌, 제2왕자파 귀족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브릴켄드 후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하다. 현 제2왕자파 힘으로는 제1왕자파조차 섣불리 건드릴 수 있는 힘이 아닌 것이다. 그야 말로 호각이어서 누군가 실수를 한다면 그 실수 하나로 파벌이 송두리 째 무너져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힘에 있어 팽팽함을 이루 고 있던 것이다.
그런 제1왕자파를 제거한다니? 게다가 힘으로는 상대 할 수 없는 제3왕자파마저 제거한다니? 이는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다.
모두가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을 짓자 브릴켄드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가 궁금해 하시는군요. 그럼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목을 가다듬은 그는 모두가 기대하는 그 방법에 대해 천천히 늘어놓았다.
“우선 제일 이상적인 구도는 저희가 힘을 하나도 쓰지 않은 채 제1왕자파가 모든 힘을 다해 제3왕자파를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1왕자파는 모든 힘을 소진 하여 사라질 것이고, 제3왕자파 또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 틈을 노리면 간단하게 일이 해결되지요.”
“그렇지.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저쪽에 바보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어서 자네 가 생각한 바를 말해 보게.”
“예,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간질을 시켜 두 세력을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드는 것입 니다.”
트겐발리 공작의 눈이 빛났다.
“두 세력을 싸울 수밖에? 어떻게 그렇게 한단 말인가?”
“지금부터 잘 들으십시오.”
그와 함께 브릴켄드 후작의 입에서 계획이 술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는 제2왕자파 귀족들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마침내 브릴켄드 후작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트겐발리 공작이 연신 감탄사를 흘렸다.
“정말 대단하군. 열세에 몰린 상태에서 도리어 반격을 가할 생각을 하다니. 후작은 정말 대단해.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 할 것이야.”
브릴켄드 후작이 빙긋 웃었다.
“너무 칭찬을 과하게 받은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는군요. 만약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제3왕자파 에서는 제1왕자파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저희가 도화선을 놓아준다면 뻥 터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확신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조건의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 계획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바로그것입니다.”
트겐발리 공작이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충분한 병 력이라……”
그러면서 그는 자세를 바로하고 귀족들을 한 차례 스윽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세 귀족을 지명했다.
“로드멜 백작, 미칸 백작, 아드보카 백작.”
트겐발리 공작의 호명에 세 귀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예, 공작 전하.”
그들은 모두 톨리안 왕국의 소드 마스터다. 브릴켄드 후작이 설명한 계획에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아떨어지는 이들이기도 했다.
트겐발리 공작이 명령을 내렸다.
“이번 일은 그대들에게 맡기겠다. 우리 모두의 염원이 담긴 계획이니 만큼 가진 바 힘을 모두 사용하도록 하라. 단, 브릴켄드 후작이 말 한대로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면 곧장 몸을 빼야 한다. 이번 일은 기밀이 생명이다. 알겠나?”
세 백작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힘차게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계획을 시작하겠다. 기밀 보완을 위해 여기 있는 귀족들은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 수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장내에 위치한 모든 귀족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런 귀족들의 모습을 보며 트겐발리 공작이 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우리는 이곳에서 기다리며 축배를 들자고. 하하하!”
제1왕자파와 마찬가지로 제2왕자파 또한 다른 종류의 해결책을 가진 채 승리자라도 된 것처럼 즐겁게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깊은 밤, 브릴켄드 후작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적막하기만 한 후작가 집무실에 브릴켄드 후작이 와인 잔을 만지작거리며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웃음이 맺혀 있었는데, 그 웃음이 회의 때 보였던 미소와는 너무나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브릴켄드 후작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비릿한 조소를 터뜨렸다.
“후후후! 역시 인간이란 것들은 재미있군. 다 늙어서 권력을 탐하는 것이나 허울뿐인 자리에 집착하는 이들의 모습이나 모두 재미있어.”
그러면서 브릴켄드 후작은 다른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웃음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권력을 탐하는 이들이나, 허울뿐인 자리 에 집착하는 이들이나 나나 다를바가 없군. 하등한 것들에 섞여 그것들을 싸움붙이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데에 재미를 느끼니 말이야.”
브릴켄드 후작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배경 위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조만간 큰일이 일어날 테지. 그리고 피바람이 불거야. 아주 큰 피바람이 후후후!”
그의 웃음은 음산한 기운과 함께 주변에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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