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42)
접전 Part. 1
쿠당탕.
마법에 적중 당한 엘이 피를 흘리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어떤 마법이라 정의할 수 없지만 게이런즈의 공격은 정말 강했다. 뇌전 마법보다 더욱 강력한 듯한 그의 공격은 항상 상황을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엘에게 처음으로 ‘패배’란 단어를 떠올리게끔 하였다. 게이런즈는 그동안 엘이 상대한 그 누구보다 강한 상대였던 것이다. 경험, 실력, 연륜에서 모조리 밀린다. 게다가 피뢰침으로 뇌전 마법을 제한했는데도 도리어 그걸 이용하여 엘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한줄기 희망이던 근접전에서 결정타를 먹었고,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지금 공격을 받았다. 붉은 피를 흘리며 엘은 몸을 일으켰다. 비록 패색이 짙은 상황이지만 포기할 수 없다. 자신에 게는 지킬 것이 있다. 가족, 소중한 인연들, 그리고 자신을 믿고 있는 골든 벨리 사람들…….. 그들을 위해 엘은 결코 쓰러질 수 없었다.
“아직도 할 마음이 있는 건가? 재미있군. 후후후!”
이미 상황이 기울 데로 기울어졌는데 계속해서 일어나 전의를 불태우는 엘을 보며 게이런즈가 미소를 지었다. 본래 그러하지 않는가. 반항하지 않는 상대보다 열심히 반항하는 상대가 더욱 괴롭히는 맛이 있는 게. 게이런즈는 한때 자신을 곤경에 빠뜨렸던 엘을 괴롭히는 재미에 빠졌다.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금탑주.”
게이런즈가 가학적인 미소를 지으며 붉은 마법을 뿜어냈다. 엘은 이대로 질 수 없다고 수십 번 의지를 불살랐다. 그는 좋지 않은 몸 상태에서 계속해서 마법을 전개했고, 그럴수록 내상은 깊어져만 갔다. 간간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최대한 방어 마법을 두텁게 전개했다. 그것 때문인지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 낼 수 있었고, 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무려 10분 동안 버텨 낼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 냈다는 것이지, 전혀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데미지는 착실하게 엘의 내부에 쌓이고 있었고, 그것이 점점 견디기 힘든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게이런즈는 그런 엘의 상태를 안 봐도 잘 알았기에 천천히, 여유롭게 엘을 몰아쳤다. 지금도 엘은 게이런즈의 마법을 막아 내지 못했다.
“크억!”
몸 상태가 최악이어서 실드 마법조차 전개하지 못한 채 엘은 게이런즈의 마법에 적중되어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 나갔다. 그럼에도 엘은 일어났다. 이미 전신 가득 피 칠을 하고 있지만 지킬 것이 있는 그는 꺾일 줄을 모르는 의지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이른 듯하다. 당장 움직이는 것조차 벅찼으며, 게이런즈는 언제라도 그를 죽일 수 있다는 듯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게이런즈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엘을 향해 말했다.
“이제 한계인가 보군. 쾌 오래 버텼어. 후후후!”
그러면서 그가 마법을 전개하려던 찰나, 한줄기 간절한 고음이 들려왔다.
“안 돼, 엘리!”
“안 돼요! 이대로 쓰러지면!”
“엉?”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게이런즈와 엘의 시선이 목소리의 진원지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실피르와 카이나가 있었다. 엘이 게이런즈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고 외친 것이다. 당장이라도 다가올 듯한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엘은 외쳤다.
“난 괜찮아! 그러니 걱정하지 마!”
지금 그녀들이 이곳에 온다면 게이런즈에 의해 허망하게 희생당할 뿐이다. 더군다나 그녀들도 트롤 킹을 중심으로 성기사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팽팽하기 그지없는 전투에 그녀들이 빠진다면 단번에 전투 상황이 기울 것이 분명했다. 전신 가득 피를 흘리며 외치는 엘의 모습을 부며 게이런즈가 웃음을 지었다.
“후후! 눈물 나는 가족애로군 정말 보기가 좋아. 하지만 그것뿐이야.”
게이런즈가 마법을 뿜어냈다. 그 마법을 엘은 몸을 틀어 가까스로 피했다.
“큭!”
하지만 원활한 움직임이 불가능했기에 엘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그런 엘의 모습에 게이런즈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만 포기하는 게 어떤가? 승부는 이미 났는데 말이지.”
“난 포기하지 않아.”
엘이 몸을 곧추 세우며 말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흠!”
상황이 절망적임에도 전의가 꺾이지 않은 엘을 보며 게이런즈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이내 표정을 바꾸고는 엘에게 말했다.
“후후! 그러고 보니 황제 폐하께서 이런 말씀도 하셨지. 금탑주를 생포해 오고 그의 어머니 또한 생포하라는 말을. 과거의 정혼녀를 데려오라고 해서 왠지 궁금했지. 여색을 탐하기에는 지금 그녀의 나이가 삼십 대 중반이기에 말이지. 헌데 오늘 보니 왜인지 이해가 가더군. 과거 블리어드 제일 미녀라는 호칭을 얻을 만해. 안 그런가? 후후후! 아들을 잃은 채 황제 폐하께 넘어간 그녀의 표정이 궁금하군.”
“네놈………”
엘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을 얼마든지 모욕하든 그런 건 넘겨 버릴 수 있지만 실피르를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게이런즈도 다 그걸 알면서 엘을 자극한 것이다. 그는 엘을 보며 말했다.
“뭐, 이제 가지고 놀기도 질렸으니 슬슬 끝내 주마.”
게이런즈의 손이 붉게 빛날 때, 돌연 마법이 그에게 쏘아졌다. 그는 재빨리 양손을 교차하며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콰앙!
“큭!”
마법의 폭발과 함께 게이런즈가 비틀거렸다. 그의 앞에는 엘이 마법을 전개한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의표를 찔러 게이런즈를 공격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맹수의 분노에 불을 지핀 것과 같았다. 게이런즈의 눈에 무시무시한 분노가 서렸다.
“네 이노옴!”
방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자신에게 일격을 먹이다니! 그것은 게이런즈의 자존심을 금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게이런즈는 엘을 완벽하게 끝내 버릴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확실하게 끝내 주겠다.”
게이런즈의 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극도로 분노한 그는 가장 확실한 8클래스 마법을 전개 하여 엘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 엘을 죽일 수 있다고 알카이드 황제에게 말했기에 게이런즈는 거리낌이 없었다. 어차피 골든 나이트의 비법 같은 거야 서먼 소울로 캐내면 되니 말이다. 허공으로 올라간 게이런즈가 캐스팅을 하기 시작했다. 엘을 확실하게 끝장내 버릴 8클래스 마법을!
우웅! 파아앗!
게이런즈가 캐스팅을 시작하자 엄청난 양의 마나가 그의 주변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자연의 법칙조차 흔들어 버릴 수 있는 힘, 그것이야 말로 재앙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8클래스 최강의 화염계 마법 헬 파이어가 캐스팅되고 있는 것이다. 엘은 게이런즈가 8클래스 마법을 캐스팅 하고 있음을 눈치채고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이 기회를 얼마나 노렸는지 모른다. 게이런즈가 큰 마법을 사용하기를, 빈틈이 드러나는 8클래스 마법을 캐스팅하는 그 순간을 말이다. 엘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 주먹에는 1골드짜리 동전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강의 마법, 제련제강의 마법을 전개했다. 그의 손에 금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올 플리체.”
전개어를 외치자 금빛 화살이 엘의 손에 쥐어졌다. 엘은 그것을 힘껏 게이런즈에게 던졌다. 쐐액!
금빛 화살이 광채를 뿌리며 빠른 속도로 게이런즈에게 쏘아졌다. 그것은 정확히 게이런즈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헬 파이어 캐스팅에 몰두하고 있는 게이런즈는 그야 말로 무방비 상태. 아까 전 골드 피닉스를 막아 내느라 세이지 실드도 써 버렸으니 필시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라. 엘의 얼굴에 한줄기 빛이 생겨났다. 게이런즈만 물리친다면 성국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이 한층 더 쉬워진다. 황금 화살이 게이런즈의 심장을 꿰뚫기 직전! 엘은 승리를 확신했다. 그런데, 캐스팅을 하던 게이런즈의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씨익.
명백한 비웃음. 그것을 본 엘의 가슴에 불안감이 싹텄다. 아니다 다를까, 게이런즈는 캐스팅 하던 동중 한손을 뻗으며 마법을 전개했다.
“세이지 실드!”
8클래스 최강의 방어 마법 세이지 실드! 지금 그것이 다시 한 번 게이런즈에 의해 전개된 것이다. 더군다나 캐스팅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황금 화살은 그대로 게이런즈의 세이지 실드에 부딪쳤다.
푸캉!
그 위력은 소드 마스터조차 물러서게 만들었지만 8클래스 최강의 방어 마법 세이지 실드를 꿰뚫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한동안 세이지 실드를 관통하기 위해 애쓰던 황금 화살이 점점 기세를 잃더니, 이윽고 소멸하고야 말았다.
“이럴 수가!”
엘은 자신의 회심의 일격이 막혀 버린 것을 보고는 경악성을 터뜨렸다. 어찌 안 놀라겠는가! 분명 골드 피닉스를 막을 때 세이지 실드를 전개했다. 캐스팅 없이 전개한 것은 메모라이즈를 한 마법을 전개 했다는 뜻, 그렇다면 세이지 실드는 여분이 없을 텐데……. 그 순간 엘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엘은 게이런즈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게이런즈를 바라보는 엘의 눈에는 꺾이지 않던 전의가 서서히 수그러들고 있었다. 회심의 일격을 실패한 것에 패배를 직감한 것이다. 그런 엘의 기색을 읽은 걸까? 게이런즈가 웃음을 터뜨렸다. 엘의 전의가 꺾인 걸 그도 느끼고 있었다.
“후허허! 드디어 포기한 것인가! 아무렴. 너무 늦게 포기했어. 후후후!”
게이런즈는 언제나 자신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는 메모라이즈를 할 때도 유사시 몸을 뺄 수 있는 텔레포트와 방어 마법인 여분의 세이지 실드를 저장해 놓는다. 그렇기에 방금 전 엘의 회심의 일격도 세이지 실드로 막아낼 수 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이제 남은 세이지 실드는 없지만 지금 이 공격으로 끝장을 본다면 그런 것도 상관없게 된다. 언제나 목숨을 우선시했기에 엘의 회심의 일격을 막아낼 호구책을 지니고 있을 수 있던 것이다.
“얌전히 죽음을 기다리라!”
게이런즈의 캐스팅에 의해 헬 파이어가 조금씩 그 찬란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지옥의 불꽃.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수만에 달하는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헬 파이어는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캐스팅이 지연되고 있다. “큭! 마나의 흐름을 꼬아 놓았군, 워낙 교묘해서 눈치 채지 못했군그래.”
왜 마법이 좀 더 느리게 캐스팅되는지 알아차린 게이런즈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마법만 완성시킨다면 상관없으니까. 그때, 엘이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게이런즈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냐?”
게이런즈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붉은 기운이 맺히더니 엘에게 쏘아졌다.
피슉!
게이런즈의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엘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
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마법이 빗나간 건 그의 실수가 아니다. 헬 파이어 캐스팅 때문에 정신이 분산되어 제대로 적중시키지 못한 것이다. 엘은 그의 마법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죽기를 원하는 것처럼 정면으로 게이런즈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 엘의 모습에 게이런즈가 순간 멈칫했다. 마치 죽으러 오는 듯한 엘의 모습에 정면으로 공격을 퍼부을 수 없던 것이다. 게이런즈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제기랄.’
엘을 죽여 버리겠다고 단호하게 마음을 먹은 때가 있지 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에서 먹은 마음이다. 엘의 머리에는 수많은 유용한 정보가 있기에 죽이기보다 살려서 데려가면 그 가치가 훨씬 뛰어날 것이 분명했다. 게이런즈는 이미 엘이 매직 스톤에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엘을 사로잡아 매직 스톤의 제조 비법만 알아내도 그는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다. 분명 그 사실을 알카이드 황제도 알고 있을 터, 그런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부분에 대해서 묵인 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 게이런즈의 입장에서 엘은 꼭 사로잡아서 데려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죽자 살자 정면으로 다가오니 게이런즈 로서는 내심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헬 파이어를 캐스팅한 것도 엘이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여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엘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극도로 적어지게 된다. 게이런즈가 격렬한 갈등에 빠져든 사이 엘의 신형이 어느덧 그의 근처에 접근하였다. 그 순간 짙은 절망을 띠고 있던 엘의 눈에 빛이 서렸다. 그는 순간 게이런즈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황금 화살 2개가 생겨났다.
“올 플리체!”
파앗!
황금 화살이 맹렬한 기세로 게이런즈에게 쏘아졌다.
“이럴 수가!”
방금 전까지 보인 엘의 모습은 거짓이었단 말인가! 경악의 표정을 짓고 있는 게이런즈에게 황금 화살이 박혀들었다. 세이지 실드도 2발의 황금 화살을 막아 내지 못한 것이다. 그는 경악의 표정을 지은 채 더듬더듬 말했다.
“어떻게……. 설마……. 그 모든 것이 연극이었단 말인가?”
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반쯤은 진실이었습니다. 정말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으니까요. 하지만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분명 적이라면 날 생포하려 들 것이다. 죽이는 것보다 그 것이 훨씬 이익이 된다.’ 고. 그렇게 생각하니 이렇게 모험을 걸 수 있던 것입니다. 보기 좋게 성공했고요.”
“큭! 그런가……. 자신을 미끼로 사용했다는 거로군.”
“도박은 멋지게 성공했지요. 현격한 실력 차가 존재했지만 당신은 패했고 저는 승리를 했습니다.”
“그런가……. 게이런즈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 엘에게 뻗었다. “응?”
게이런즈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낀 엘이 고개를 살짝 갸웃할 때, 그의 손에서 붉은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
그것을 본 엘이 화들짝 놀라려던 찰나, 게이런즈의 손에서 마법이 전개되었다.
푸학!
엘의 옆구리 부분 로브가 단번에 날아갔다. 본능적인 위험을 느껴 몸을 틀어 가까스로 피해 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게이런즈의 주변에 수십여 개의 마법이 생겨나더니, 그 대로 엘에게 쏘아진 것이다.
“큭!”
엘은 일이 잘못되감을 알아차리고 신음을 흘리며 블링크를 전개했다.
콰아앙!
엘의 신형이 사라지자 그곳에 수십여 개의 마법이 충돌하면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여전히 황금 화살에 꿰뚫려 있는 게이런즈를 바라보았다. 게이런즈는 그런 엘의 시선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 믿기 힘든 건가?”
파사삭!
그 말과 함께 게이런즈의 몸이 유리처럼 부서져 나갔다. 그러면서 드러난 게이런즈의 모습은 전과 달리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엘이 그런 게이런즈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신음을 흘렸다.
“설마……. 환각 마법을 전개한 것인가?”
게이런즈가 피식 웃었다.
“너무 늦게 알아차리는군.”
“이럴 수가.”
망연한 표정을 짓는 엘. 그럴 수밖에 없다. 회심의 한 수라 생각했던 제련제강의 마법이 막혀 버린 이상 자신에게 희망은 없던 것이다.
“그래, 그래야 옳지.”
절망에 젖어드는 엘의 얼굴을 보며 게이런즈가 만족의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지닌 모든 방법을 잃고 거대한 존재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인간은 절망에 빠진다. 지금 엘의 모습은 그것과 한 치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 이만 끝내지.”
게이런즈는 캐스팅하고 있던 헬 파이어에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이걸 전개한다면 엘은 완벽하게 무력화가 될 것이다.
“자, 가라! 헬 파이어!”
마지막 캐스팅까지 마친 게이런즈가 지름이 무려 10m나 되는 축소판 태양, 헬 파이어를 전개했다.
화아아아앗!
헬 파이어의 등장으로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허공에 태양이 뜬 듯한 착각을 주었다. 그리고 게이런즈의 의지에 따라 헬 파이어는 서서히 엘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한 엘은 허공에서 자신만만한 웃음을 홀리는 게이런즈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자신이 지닌 모든 패를 활용했지만 게이런즈를 처치하는데 실패했고, 모든 수단을 잃은 그는 8클래스 최강의 화염 마법 헬 파이어를 앞에 두고 있었다. 8클래스 마법. 그건 제아무리 엘이 최강의 7클래스라 하여도 8클래스를 막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눈앞에 8클래스 마법이 캐스팅되고 있다. 보아 하니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캐스팅이 다 끝나가는 듯했다.
‘내게 8클래스 마법을 막을 능력이 없다. 정말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건가?’
엘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니곤 있는 패를 하나하나 점검해 보았다.
‘빠른 캐스팅, 피뢰침, 제련제강의 마법, 근접전…….’
하지만 모두 게이런즈에 의해 봉쇄되었다. 그것도 완벽 하리라만치. 이제 자신에게 남은 패는 없다. 상식을 뛰어넘는 마법으로 다른 이들을 압도했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몸뚱아리밖에 없던 것이다.
‘아냐, 포기할 수 없다. 수를 마련해야 해.’
엘은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리고 천천히 살아온 지난날들을 되돌아보았다. 처음 게드릭과 얽히면서 보여 준 마법과 브리온에게 보여 준 마법 실력…….. 그리고 아인하트 후작가의 사건……. 알카이드 황태자와 만나면서 그를 공격하던…….
‘알카이드 황태자를 공격하던? 그래, 바로 그거야!’
짙은 절망이 드리웠던 엘의 눈에 한줄기 빛이 서렸다. 돌파구를 찾아낸 것이다! 그가 알카이드 황태자를 공격할 때 사용했던 그 수법, 그것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확실하지 않은 방법이다. 그때도 거의 우연적으로 성공한 것이기에 이것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것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언젠가 이걸 완성한다면 자신에게 있어 최강의 무기가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이것에 모든 희망을 걸겠어.”
엘이 눈을 감고 캐스팅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게이런즈는 헬 파이어 캐스팅을 끝냈다. 그리고 헬 파이어를 엘에게 전개했다.
화아아아앗!
지옥의 불꽃이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열기가 피부에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
엘은 그것을 보며 조용히 손을 뻗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나가 손에 아른거리는 순간, 엘이 힘차게 외쳤다. 자신이 생각하던 최강의 무기! 그것은 바로…….
“하트 브레이크!”
콰직!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 지면을 향해 쏘아지던 헬 파이어가 움직임을 멈췄다. 엘이 힘겹게 시선을 위로 옮겼다. 게이런즈 또한 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의 시선 교환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돌연 게이런즈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허공에 떠 있던 그의 몸이 비틀거리더니, 지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엘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그는 처참한 몰골로 자신을 바라보는 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경악을 담은 채.
“워……. 원거……. 리 캐…….스팅…….. 이라니…….”
그 말과 함께 그는 눈을 감았다. 그것이 대륙에 존재하는 10대 현자의 최후였다.
콰우우우!
전개자가 죽음을 당하자 마나 공급이 끊긴 헬 파이어가 고삐 풀린 그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잠시 멈춰 있던 헬 파이어는 이윽고 자잘한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한순간 새하얀 광채를 일으키며 작게 쪼개졌다. 그러자 수백여 개의 화염구로 나눠진 헬 파이어는 우박처럼 지면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드득!
콰광! 콰과광!
지면에 닿은 화염구는 사방에서 폭발을 일으켰고, 엘이 있는 곳 또한 화염의 폭발에 휩쓸렸다.
“엘!!”
멀리서 실피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화염은 그대로 엘이 있는 곳도 휩쓸었고, 골든 벨리의 한편은 순식간에 불의 지옥으로 화했다.
쿠우우우!
위력이 반감되었지만 헬 파이어의 위력은 무시무시하여 한동안 거센 불길을 일으켰다. 하지만 전개자의 마나 공급이 되지 않는 헬 파이어의 기세는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했고, 이윽고 헬 파이어의 불꽃은 완전히 소멸하기에 이르렀다.
“…….”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에 반투명한 막이 은은한 빛을 발한 채 존재하고 있었다. 그 속에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엘! 만신창이의 몸이었지만 어렵사리 실드를 전개하여 화염을 막아 낸 것이다. 기본적인 실드 마법인지라 화염을 완벽하게 막아 내지 못해 곳곳이 불그스름하게 그을렸지만 엘의 안색은 편안했다. 꿈이 아니다. 자신은 대륙에 단 10명뿐인 마법계의 지존, 8클래스 마법사 게이런즈를 꺾은 것이다.
“이제 쉴 수 있는 건가……..”
게이런즈를 제외하더라도 적은 많다. 그러나 엘은 다른 이들을 믿었다. 자신의 가족들을,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을.
“제일 힘든 상대를 물리쳤으니 이제 나를 좀 쉬게 해 달라고……..”
그 말과 함께 엘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렇게 금탑에 침입한 성군의 주요 전력 중 하나였던 게이런즈가 죽음을 당하였다. 절대 뒤집을 수 없는 상식이란 걸 완전히 뒤집어 버린 금탑주, 엘리미스라는 존재에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