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51)
Chap. 3 레드 드래곤 브릴켄드
“왜, 놀랐는가? 마계의 대공이여.”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브릴켄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베르아문트의 시선을 여유 있게 받아내며 입을 열었다.
“크으으…….”
베르아문트는 전신을 덮쳐 오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 어찌…….”
“아, 되도록 구경을 하려고 했지. 그런데 싸우는 것이 너무 따분하더군. 게다가 신검의 주인이 패배를 하니 내가 어찌 나서지 않을 수 있나? 중간계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로서 당연히 내가 나서야 하는 게 옳지. 갑작스럽게 공격한 점, 미안하네.”
그렇게 말은 하지만 브릴켄드의 얼굴에 전혀 미안한 표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기야 언제 마족과 드래곤 사이에 예의란 것이 존재했고, 규칙이 존재했던가? 그들은 서로 보면 죽여야 할 사이였고, 지금 베르아문트와 브릴켄드의 관계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크윽, 네 이놈…….”
참혹하게 일그러진 베르아문트가 무시무시한 눈길로 브릴켄드를 노려보았다.
만약 정면 대결로 싸운다면 미친 어둠의 세계인 이곳에서 그가 브릴켄드에게 패할 리 없다. 그러나 그는 아이넨스의 공격에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비록 데몬 하트를 본체로 옮겼다가 다시 가지고 왔다고 하나 신검에 의해 입은 상처는 결코 만만한 성질이 아니 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갑작스럽게 레드 드래곤의 기습을 받게 되었다.
더군다나 브릴켄드는 드래곤 족 중 가장 강한 힘을 지닌 레드 드래곤임과 동시에 그 힘의 크기가 절정에 달한 에이션트 급이다. 정면 대결로도 함부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데 부상 까지 입고, 기습을 받았으니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이미 상황은 만들어졌고, 자신의 목숨은 경각에 달린 상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마계의 대공이었기에.
베르아문트는 모든 힘을 끌어올려 최후의 공격을 준비 했다. 그러나 브릴켄드는 그런 베르아문트의 심정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최강의 에이션트 드래곤 중 하나다. 수많은 인간 들을 경험해 보았으며, 그런 인간들과 지내면서 **지닌바 심계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그가 베르아문트의 생각을 모를 리 없다.
그는 한차례 고개를 으쓱하더니, 곧이어 입가에 잔혹한 미소를 그려 넣으며 말했다.
“그럼 잘 가시게, 마계의 대공.”
콰직! 끼아아아아!
베르아문트의 내부에 남아 있던 마지막 데몬 하트 조각 이 부서지는 소리가 퍼졌다. 베르아문트의 전신이 검은 기류로 변하며 사라졌다.
마계의 열두 대공 중 하나인 베르아문트의 허망한 최후 였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베르아문트가 소멸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할 말을 잃었다.
어찌 이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무시무시한 마계의 대공이 폴리모프한 드래곤이 장난치듯 한 공격에 소멸해 버렸다. 마치 장난감을 부숴 버리는 악동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한 건 해결했군.”
마치 간단한 일을 처리한 듯한 모습을 보이며 브릴켄드가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지크릴과 흑탑의 장로들이 있었다.
“감히 이곳 중간계에 마족을 소환할 생각을 하다니, 간덩이가 부은 흑마법사구나.”
브릴켄드의 눈동자가 세로 꼴로 세워지며 이내 무시무시한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생물의 정점에 위치한 드래곤의 포식자 능력 중 하나인 드래곤 아이와 드래곤.피어가 동시에 펼쳐진 것이다.
부르르!
전신을 휘감는 항거할 수 없는 공포에 지크릴과 흑탑의 장로들이 빳빳하게 굳어 갔다. 그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브릴켄드가 입을 열었다.
“마족을 소환한 너희들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지, 이 세상에서 사라져라.”
딱!
브릴켄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함께 마나가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더니, 이내 그들의 몸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드래곤은 달리 마나의 지배자라 불린다. 그런 그가 다크 오러로 이루어진 흑마법사들에게 마나를 간섭하게 함으로써 전신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한 줌의 마나로 되돌려 버린 것이다.
파사사!
금탑의 인물들에게 있어 그토록 무서운 힘을 발휘하던 흑탑의 인물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소멸되었다.
특히 엘과 골든 나이트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연신 우위를 점하던 지크릴의 소멸 모습은 금탑의 인물들의 몰골을 송연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원인 제공을 한 이들도 모두 제거했군. 이제…….”
브릴켄드의 시선이 금탑의 인물들에게 향했다.
단시 시선을 옮겼을 뿐인데 금탑의 인물들은 숨이 턱턱 막혀 옴을 느꼈다. 그의 시선을 받은 것만으로도 심신이 사로잡힌 듯한 충격에 휩싸인 것이다.
특히 마법을 익힌 실피르와 세레나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들은 공간 전체를 뒤덮는 브릴켄드의 존재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엘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브릴켄드에게 압도된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베르아문트를 손쉽게 제거하는 브릴켄드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 충격도 잠시, 이내 그의 머 리가 재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족을 막기 위해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드래곤이 나타난 것일 것이다. 이곳 골든 벨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드래곤.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엘이 이런 생각에 잠긴 이유는 간단했다. 엘은 이 드래곤의 비위를 맞추어 최소한의 피해로 사태를 모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소중한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엘의 시선이 빠르게 드래곤에게 향했다.
대륙에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의 총 숫자는 백다섯. 그 중 레드 드래곤은 물경 서른일곱에 이른다.
이곳 골든 벨리가 존재하는 곳에서 주변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사는 드래곤은 셋이다. 그중 하나는 골드 드래곤이니 제외하고, 그렇다면 나머지 두 마리 드래곤이 남는다.
그중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드래곤은…… 톨리안 왕국 북부에 사는 레드 드래곤이다. 추정 나이 팔천 살. 에이션트 급에 이르렀으며, 그 이름은…… 레드 드래곤의 이름을 떠올린 순간 엘의 눈이 부릅 뜨였다.
그 드래곤의 이름이 무엇인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브릴켄드! 맞아, 레드 드래곤의 이름은 브릴켄드야. 그리고 톨리안 왕국 내에도…… 브릴켄드 후작이 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드디어 드래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드래곤의 정체! 그것은 다름 아닌 톨리안 왕국 북부에 사는 레드 드래곤이며, 현재 톨리안 왕국 제2왕자파를 이끄는 귀족 중 하나인 브릴켄드 후작이 바로 드래곤의 정체였던 것이다! 그의 정체를 떠올리자 엘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말을 흘렸다.
“브릴켄드 후작…….”
작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를 놓칠 브릴켄드가 아니었다.
“호오, 내 정체를 알아차린 것인가.”
그의 눈이 좁혀지며 엘에게 시선이 향했다.
순간 엄청난 마나 기류가 엘의 전신을 휩쓸어 나갔다.
“크윽!”
엘은 그 마나 기류에 대항하길 포기했다.
그러자 마나 기류는 삽시간에 엘을 휘감으며 그를 내동댕이쳤다.
털썩!
마나 기류에 휩쓸린 엘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0……If”
실피르를 비롯한 여인들이 내동댕이쳐지는 엘의 모습 에 소리치며 달려들려 했지만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직 드래곤의 의도를 확실히 모르는데 괜히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을 하면 안 되었던 것이다.
자잘한 상처와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엘의 안색은 지극히 평온했다.
그는 브릴켄드에게 물었다.
“저희를 어쩌시렵니까?”
그러자 되레 무안해진 건 브릴켄드였다.
사실 그는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다. 왜냐하면 엘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았고, 그렇게 된 이상 더 이상의 유희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공들인 유희를 포기해야 한다니, 순간 아까운 마음이 들어 자신의 정체를 알아본 엘에게 욱한 마음을 풀어 버린 것이다. 이는 모든 종족의 정점에 선 자로서 할 일이 아니었다. 비록 드래곤도 감정이 있지만 중간계를 수호하는 그들은 유구한 세월을 살면서 자신의 감정쯤은 간단하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금 전 엘을 공격한 건 일종의 화풀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한편의 기대도 있었다. 자신의 공격으로 엘이 흥분하여 자신에게 덤벼들길 바라는……. 그런 종류의 기대 말이다.
하지만 역시 7클래스 정도에 이르니 그런 의도에 말려들지 않았다.
브릴켄드는 엘을 보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방금 전 공격으로 네가 덤벼들길 바랐다. 하지만 덤벼들지 않더군. 과연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마 탑주의 행동답다.”
한껏 비꼼이 들어가 있었지만 엘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감사합니다.”
“너의 등장으로 내 유희는 깨진 것과 마찬가지. 수십 년 동안 공을 들인 것이 일시에 물거품이 되니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생기더군. 그래서 금탑을 제거할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 내용이 너무나 무시무시한 내용이었기에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엘은 침착했다. 브릴켄드가 지금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럴 의도가 없다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하시는 건 그렇게 하시지 않겠다는 것으로 들리는군요.”
엘의 말에 브릴켄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얄미운 녀석이군. 맞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내가 너무 억울하군.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무엇을……?”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로 말이다.”
브릴켄드의 입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이 들렸다. 그 손이 가리키는 이는 바로 카이나였다.
브릴켄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여자는 너에게 무척 소중한 존재로 보이더군. 이제 부터 나는 저 여자를 너에게서 빼앗을 것이다.”
그 말과 함께 브릴켄드의 손이 움직였다.
휘유우우!
무시무시한 마나가 브릴켄드의 손에 휘몰아치기 시작 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이 무서운 흡입력을 발휘하더니, 카이나의 가녀린 동체가 서서히 그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카이나!”
엘이 소리쳐 그녀를 불렀지만 그녀의 신형은 빨려들 듯 브릴켄드에게 움직여졌다.
틱!
브릴켄드의 손에 카이나가 잡혔다. 그와 함께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가 카이나를 찬찬히 살피며 입을 열었다.
“과연, 인간으로 치면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러니 망가뜨리는 재미가 있겠지.”
“안 돼!”
브릴켄드의 말뜻을 어렴풋 알아들은 엘이 소리치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엘의 손에 금빛 화살이 생겨나며 브릴켄드를 향해 맹렬 히 쏘아졌다.
제련 제강의 마법이 브릴켄드에게 시전된 것이다. 다섯 개의 금빛 화살이 브릴켄드의 치명적인 급소를 노렸다. 그러나 그것은 브릴켄드에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이건!”
자신에게 향하는 금빛 화살을 보며 눈을 부릅뜨는 브릴켄드. 그는 알고 있다. 자신에게 향하는 금빛 화살의 정체를.
브릴켄드가 자유로운 왼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반투명한 막이 브릴켄드를 뒤덮었다.
쩌엉!
다섯 개의 금빛 화살이 반투명한 막에 막혀 더 이상 전진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방어막에 막힌 금빛 화살을 보며 브릴켄드가 손을 움켜쥐었다.
쩌저적!
그러자 다섯 개의 금빛 화살이 유리처럼 부서져 내렸다.
“이럴 수가. 제련 제강의 마법이.”
자신의 마법이 부서져 내리는 걸 본 엘은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제련 제강의 마법으로 제련된 올 플리체는 오러 블레이드도 튕겨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마법을 간단한 방어 마법으로 막아낼 수 있다니? 방어 마법을 시전한 것만으로도 엘은 드래곤의 힘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힘을 품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하여 포기할 엘이 아니다. 그는 재차 브릴켄드에게 달려들 준비를 하였다.
“잠깐.”
브릴켄드가 손을 들어 엘을 제지했다.
그의 제지에 엘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브릴켄드가 강제로 멈추게 한 것이다.
엘의 주변으로 맹렬히 회전하던 마나의 흐름이 일시에 흩어져 맥이 끊겨 버렸고, 순간 무력화되었다.
“**f!”
브릴켄드에게는 별것 아니겠지만 엘에게 있어 운용하던 마나의 양은 결코 만만한 양이 아니었다. 그것이 일시에 풀려 버리니 엘은 내부가 순간 흔들리는 충격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그가 브릴켄드에게 시선을 옮기자 그가 물었다.
“제련 제강의 마법은 어떻게 익혔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브릴켄드의 주변에 맴돌고 있었다.
제련 제강의 마법. 엘은 이것을 익히게 된 것은 트를 벨 리를 수중에 넣었을 때였다. 당시 트를 킹을 사로잡고 골든 나이트를 앞세워 차지한 곳이 바로 트를 킹의 거처였다.
트를 킹의 거처에는 수많은 보물들이 있었다. 제련되지 않은 원석의 매직 메탈도 있었으며, 각종 보 석과 금, 은 등이 쌓여 있었으며, 그동안 트를 킹에게 도전하였던 기사들이 썼던 검과 갑옷 등도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수습한 엘에게 눈에 띈 낡은 책 한 권이 있었다. 그것에는 어느 한 연금술사의 평생이 적혀 있던 책이었는데, 그곳에 놀랍게도 난생 처음 보는 제련 제강의 마법이 적혀 있었다.
제련 제강의 마법은 총 일곱 종류로 펼칠 수 있다고 한다. 그중 엘이 손에 넣은 책은 금으로 제련 제강의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부분이었으며, 그것을 익혀 오늘날 제련 제강의 마법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훔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엘은 그렇기에 떳떳했다. 그는 브릴켄드를 보며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소.”
“조건?”
브릴켄드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엘이 조건을 걸자 조용히 분노한 것이다.
깍직! 파지직!
그의 주변에 응집한 마나가 거칠게 움직이면 흥성을 드러냈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엘을 찢어발길 듯한 기세였다. 하지만 엘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제련 제강 마법보다 중요한 존재가 있다.
그는 브릴켄드의 손에 잡혀 있는 카이나를 가리키며 말 했다.
“제련 제강에 대해 말한다면 카이나를 풀어준다고 약속하시오.”
“호오……”
왼손으로 턱 가를 매만지며 자신의 손에 잡혀 있는 카이나를 바라보는 브릴켄드.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지워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가 제련 제강의 마법에 대해서 말한다면 이 인간 여자를 놓아 주지.”
“드래곤의 약속, 믿겠소.”
드래곤은 하늘을 찌를 듯한 자존심으로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 들었기에 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련 제강 마법을 얻은 연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가 끝나자 브릴켄드의 입가에 미소가 다시금 맺혔다.
“그러니까 우연하게 얻었다는 거로군.”
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두뇌를 지닌 브릴켄드라면 이미 모든 걸 알았을 테니 말이다.
“뭐 좋다. 약속을 지키지.”
브릴켄드는 카이나를 손에서 놓았다.
엘은 황급히 달려가 카이나의 동체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카이나! 정신차려!”
하지만 카이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깨어나지 않는 카이나의 모습을 본 엘이 황급히 그녀의 체내에 마나를 주입해 보았다.
“이, 이건!”
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카이나의 몸속에 불가사의한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듯하면서 형용할 수 없이 뜨겁고 강대한 기운을 지닌……
엘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네가 한 짓이냐!”
엘이 소리친 곳에는 브릴켄드가 서 있었다.
그러나 막상 브릴켄드는 뭘 그런 반응을 보이냐는 듯한 얼굴로 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이 소리쳤다.
“카이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말에 브릴켄드가 반응을 보였다.
“아, 그거 말인가? 후후후!”
웃음을 지으며 잠시 말을 멈춘 브릴켄드.
그 모습에 엘의 분노는 한층 강해지고 있었다.
다시 그가 소리치려 할 때, 브릴켄드가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어쨌든 약속대로 순순히 넘겨 주지 않았나? 그 여자가 그렇게 된 건 약속하기 이전이라고.”
“**3f!”
엘은 브릴켄드가 일부러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걸 알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분노가 강하게 치밀어 올랐다. 만약 상대가 인간이라면 엘은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브릴켄드를 압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결코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 드래곤이다. 지금 분노에 가득 차서 그에게 덤비는 짓은 그야 말로 개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았기에 엘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미쳤지만 가까스로 참아 넘길 수 있었다.
힘겹게 심호흡을 한 그가 물었다.
“카이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가까스로 화를 참는 데 성공했지만 그나마 사용하던 말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는 브릴켄드는 엘의 이런 말투를 따지지 않았다.
“무슨 짓이라고 말할까…… 뭐 좋은 일이지. 대륙인들이 그토록 바라는 내 피를 조금 주입한 정도?”
그의 말에 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카이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브릴켄드를 향해 물었다.
“서, 설마…… 드래곤 블러드?”
“너도 마법사이니 드래곤 블러드를 잘 알겠군.”
브릴켄드가 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래곤 블러드. 말 그대로 드래곤의 피를 일컫는 것으로, 마법사들에게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다.
드래곤에게는 세 가지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드래곤의 심장와 드래곤 의 뼈, 그리고 드래곤 피가 바로 그것이다.
드래곤 블러드는 마나의 응집체라는 드래곤 하트보다 다소 급수가 떨어지지만 몇 방울이면 소드 마스터가 지닌 마나량과 비슷할 정도로 농도가 높다. 너무나 농도가 짙기에 이것을 마법 작용으로 희석시켜 복용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단숨에 몇 배에 달하는 마나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야 말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무가지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방법으로 복용했을 때의 이야기다. 너무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말과 같이 드래곤 블러드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복용하게 되면 그 짙은 드래곤의 피로 내부가 망가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가령 레드 드래곤의 블러드를 그냥 복용했다고 해 보자. 그럼 레드 드래곤 특유의 뜨거운 성질이 발현되어 자칫 내부가 타 버리고 빈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 그만큼 드래곤 블러드는 귀한 보물임과 동시에 위험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런 드래곤 블러드가 지금 카이나의 내부로 스며든 것 이다. 범인은 눈앞의 에이션트 레드 드래곤 브릴켄드이고.
엘이 브릴켄드에게 물었다.
“카이나에게 얼마만큼의 드래곤 블러드를 주입한 거야!”
“**팎다고 할 수 있지. 후후, 인간의 양으로 따지면 이 정도 될까?”
브릴켄드가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 정도에 해당하는 드래곤 블러드를 주입했다는 이야기다.
“미친…….”
엘은 브릴켄드의 말에 저도 모르게 그 말을 흘렸다. 그러나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드래곤 블러드를 한 움큼이나 주입하다니! 한 방울만 잘못 복용해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게 바로 드래곤 블러드다. 그런 것을 무려 한 움큼이나 주입하다니.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엘이 소리쳤다.
“카이나를 죽이려는 셈이냐!”
“죽이기는. 내가 그럴 리가 있나.”
브릴켄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그의 눈동자가 세로 꼴로 변하기 시작했다. 포식자의 눈, 모든 존재를 압도하는 드래곤 아이다.
그는 드래곤 아이로 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인간 여자 따위를 죽이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굳이 내 아까운 피를 낭비할 필요가 없지. 내가 원하는 건 내 유희가 끝나 버린 것에 화풀이를 할 기회일 뿐이다.”
“너의 유희를 망친 건 나잖아! 어째서 카이나를 괴롭히 는 거지?”
“그야 물론.”
브릴젠드가 히죽 웃었다. 눈동자도 본래대로 돌아왔다.
“너를 괴롭히는 것보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이 더욱 너를 괴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지.”
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눈에 비친 브릴켄드는 마족보다 더욱 잔인하고 음흉한 악마였다.
“크으…… 이 사악한! 네가 그러고도 중간계의 수호자 라 불리는 드래곤이더냐!”
“드래곤도 땅 파먹고 장사하는 거 아니잖나? 가끔 이렇게 유희도 즐겨 줘야 하지.”
브릴켄드는 즐겁게 키득였다. 엘이 괴로워하는 모습이 그에게 이렇게 즐겁게 다가올 줄 몰랐다. 수십 년 동안 공들인 계획에서 느끼는 재미보다 지금 엘을 괴롭히는 게 더 즐거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뭐라 말하려던 엘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 할 가치도 없었다. 저 드래곤은 지금 자신이 괴로워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고 있는 것이다.
엘이 더 이상 자신에게 화내지 않자 브릴켄드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인간 중에서 영특한 인간이니 사태 파악이 빠른 듯했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브릴켄드는 그것을 상기하고는 다시 웃음을 지었다.
“아, 한 가지 말을 안 해 줬군.”
엘이 그에게 시선을 향하자 브릴켄드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좋은 이야기니까.”
그리면서 그는 카이나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드래곤 블러드를 많이 주입하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을 거야. 특별히 조치를 취해 놓았지.”
그의 말에 엘이 눈을 번쩍 떴다.
사실 엘이 가장 염려하던 것도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그 부분을 브릴켄드가 정확히 짚어 주고, 확실한 언질까지 주니 엘의 안색이 살짝 밝아졌다. 카이나가 목숨을 잃지 않는다면 자신이 어떤 방법을 찾아서라도 그녀를 회복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브릴켄드가 **됫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죽지 않을 뿐, 그 고통은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것이야. 죽지 않는 대신이라 여기면 되겠지, 후후후! 그 고통의 강도가 결코 적지 않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야.”
“네 이놈!”
엘의 이성이 뚝 끊겼다.
그의 양손에선 강렬한 금빛이 휘몰아쳤다. 제련 제강의 마법을 펼치는 것이다.
그와 함께 그는 골든 나이트에게 명령을 내렸다.
“타나! 저 인간을 죽여라!”
“명령을, 받들음.”
파앗!
골든 나이트의 몸이 금빛 잔영을 남기며 브릴켄드를 향해 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키이잉!
공간의 균열음과 함께 룬 블레이드의 힘이 발한되었다.
룬 블레이드의 힘은 모든 걸 베어 버리는 데에 있다. 공기의 응집으로 모든 걸 베어 버리는 칼날을 만든다. 하지만 그 능력은 어디까지나 엘이 룬 블레이드에 새긴 것에 불과하다. 그 능력을 꺼내드는 것은 당사자가 발휘해야 할 몫, 그런 점에 있어 골든 나이트는 룬 블레이드의 힘을 이끌어 내는데 최적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든 나이트의 에고를 이루고 있는 것은 수많은 사념들 이다. 사념들의 종류는 다양했고, 그 사념들에는 각자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들도 있고,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존재했다.
즉, 골든 나이트의 에고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 생각의 폭이 넓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념들이 서로 부딪치며 때로는 상쇄를, 때로는 서로 상승시켜 주는 효과를 발휘하여 조금씩이지만 그 사고의 폭을 높여 가고 있었다. 이는 엘이 예측하지 못한 사항이지만 골든 나이트에게 있어 나의 주인은 오로지 한 분! 주인께 절대 충성! 이라 는 절대 명제는 여전히 지켜지고 있었다. 어찌 됐든 엘이 의도하고 만든 룬 블레이드의 능력은 공기를 응집시켜 모든 것을 베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골든 나이트는 그것을 다르게 활용하였다. 주변의 공기를 응집시킬 수 있다면 비단 검 주변만이 아닌 좀 더 넓은 범위의 공기 또한 응집시킬 수 있단 이야기. 이것은 엘이 원거리 캐스팅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막대한 침력이 소모되지만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 골든 나이트의 오러로 그것을 손쉽게 해냈다.
순간 진공 상태로 변한 듯한 대기에서 한줄기 날카로운 기운이 브릴켄드를 갈라 왔다.
따당! 땅!
엘이 시전한 제련 제강의 마법을 손쉽게 물리친 브릴켄드가 자신에게 휘둘러지는 룬 블레이드의 기운을 느끼고는 화들짝 놀랐다.
“헛!”
놀란 소리와 함께 브릴켄드가 몸을 빠르게 뒤틀었다.
그와 동시에 진공의 칼날이 그를 베어 냈다.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브릴켄드의 옷 허리 부분이 잘려 나갔다. 하지만 완벽하게 피하지 못한 탓인지 그의 허리에 피가 옅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뚝뚝.
심하지는 않지만 피 몇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무사히 진공의 칼날을 피해낸 브릴켄드가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골든 나이트를 바라보았다. 골든 나이트는 그런 브릴켄드의 시선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그를 재차 공격하기 위해 검을 치켜들었다.
다시 한 번 공기의 기운이 응집되며 날카로운 칼날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좀 전에 브릴켄드를 베었던 진공의 칼날을 재차 시전했다.
“그렇군. 그런 거였어.”
브릴켄드는 룬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골든 나이트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골든 나이트는 비교적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지만 폴리모프를 하면서 모든 신체가 최상의 상태로 변하기에 브릴켄드의 눈에는 룬 블레이드에 새겨진 룬어가 자세하게 보였다.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형태를 갖추고 있는 룬어를 살피며 브릴켄드는 몸을 피했다.
한 번 공격을 허용하긴 했지만 같은 공격에 또다시 당 할 그가 아니었다. 드래곤의 학습 능력은 그 누구도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니 말이다.
슈악!
매서운 진공의 칼날이 브릴켄드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천천히 룬어를 살피던 브릴켄드는 이윽고 탄성을 자아냈다.
“정말 대단하군. 이런 조합을 생각해 내다니.”
룬 블레이드를 자세히 살핀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엘 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가 살핀 룬 블레이드는 도저히 7클래스 마법사 수준으로 만들기 힘든 것이다. 마법적 수준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룬 블레이드에 새겨진 마법진은 대체로 고위 클래스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실용적이면서 대중적으로 활용되는 3클래스에서 5클래스까지의 마법이 다양하게 조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조합으로 드래곤인 자신에게 한순간 위기감을 심어 줄 만큼의 무기로 탈바꿈하게 하였다.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하려면 마 법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전체적인 상황을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필요로 하며, 마지막으로 마법 전체의 균형 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균형감이 필요했다. 룬 블레이드를 만든 이를 한순간 드래곤으로 착각할 정도였으니 그 위력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단번에 이해가 갈 정도라 할 수 있다.
처음 공격을 허용했지만 그 뒤로 룬 블레이드는 브릴켄드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미 10,000년 가깝게 살아 온 그에게 이 정도 공격은 얼마든지 흘려 넘길 수 있는 성질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하지.”
한동안 공격을 피하던 브릴켄드가 돌연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양손을 내뻗었다.
화르륵!
붉은 화염이 일렁이며 무서운 기세를 품고 골든 나이트와 엘에게 향했다.
우선 골든 나이트는 룬 블레이드를 들고 그 화염을 베어갔다.
화염은 그대로 돌진하여 룬 블레이드와 충돌하였다. 짙은 마나를 머금고 있는 화염은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쩌어엉!
응집된 공기의 절삭력과 화염이 부딪치며 기묘한 소리를 내었다.
쿵!
브릴켄드가 뿜어낸 화염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골든 나이트는 무려 일곱 걸음을 물러서야 했다.
골든 나이트의 육중한 동체에 짓눌린 대지는 깊게 파여 있었다.
엘 또한 브릴켄드가 뿜어낸 화염을 막아 내기 위해 실 마법을 시전했다. 하지만 골든 나이트를 물러서게 만든 화염의 위력은 결코 간단하게 막아 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화염과 실드가 서로 부딪쳤다.
“**3-f·!”
엘은 실드에서 전해져 오는 무시무시한 반탄력에 신음을 집어삼켰다.
그 기운이 점점 더 거세지자 엘은 자신의 모든 마나를 끌어올려 실드 마법을 한층 강화했고, 이윽고 화염을 막아 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막아 내기 위해 그는 무려 십여 미터를 밀려나야 했다.
브릴켄드의 강함에 엘은 할 말을 잃었다. 간단하게 공격했던 것 같은데 이 정도 위력이라니! 그는 이 눈앞의 드래곤이 자신을 얼마나 간단하게 상대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엘이 멈추고, 골든 나이트도 움직임을 멈추자 잠시 휴전 상태로 돌입하였다.
브릴켄드가 엘에게 물었다.
“저 나이트 골렘이 가지고 있는 검은 네가 만든 것이냐?”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막대한 제작비와 제작 기간이 있었지만 내가 만든 것이 틀림없다.”
그의 어조에 거짓이 없음을 느낀 브릴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참으로 대단한 검이다. 설마하니 인간계에 와서 내가 드래곤이 만든 검에 떨어지지 않는 아티팩트를 보게 될 줄 몰랐군.”
그의 시선이 엘에게 향했다.
“실력은 별로지만 마법에 대한 이해력은 대단하군. 방금 전 나를 죽이려 했던 것에 대응하자면 너를 죽여야 함이 옳으나 너의 뛰어난 실력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구나.”
엘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너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내게 있어 너는 나의 연인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후후후! 하지만 말이지…….”
갑자기 말끝을 흐리는 브릴켄드.
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웃는 낯으로 말하였다.
“난 이제 돌아갈 것이다. 너에게 정체를 들켰기 때문에 더 이상 유희는 할 수 없다. 난 나의 레어로 돌아가 휴식 을 취할 것이다.”
브릴켄드의 주변에 새하얀 기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텔레포트를 시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엘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안 돼! 넌 카이나를 본래대로 돌려놔야 해!”
그와 함께 엘의 신형이 브릴켄드에게 향했다.
분노와 전신의 모든 힘을 끌어올렸기에 그가 접근하는 속도는 섬전을 방불케 하였다.
하지만 이미 브릴켄드의 공간 이동 마법은 완성된 상태였다.
그는 코앞에 다다른 엘의 얼굴을 보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위기를 잘 극복해 내는자, 어디 이번 위기도 잘 극복 해 보라고. 내 즐겁게 지켜봐 주지.”
스팟!
그 말과 함께 브릴켄드의 신형이 빛으로 화하며 사라졌다.
틱!
브릴켄드의 신형이 존재했던 곳에 엘이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브릴켄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럴 수가…….”
엘은 사라진 브릴켄드의 모습을 쫓으며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있어 장난에 불과하지만 엘에게 있어 사랑하는 여인의 목숨이 단번에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자신이 그녀를 완치시키지 못한다면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될 거라니. 견디기 힘든 고통을 연이어 겪게 된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죽음이라는 선택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던 엘은 문득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골든 나이트의 공격에 상처 입어 브릴켄드가 흘린 몇 방울의 피가 있었다. 순간 엘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곧장 그 피를 수습했다.
드래곤 블러드. 구하기 힘든 이 보물을 연구한다면 카이나를 고칠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엘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엉거주춤 서 있는 금탑의 인물들에게 소리쳤다.
“아이넨스님을 안으로 모시고 모두 몸을 추스르세요. 연이어 힘든 싸움을 하였으니 특별한 일이 생길 때까지는 최대한 쉬도록 하겠습니다.”
엘의 말에 금탑의 인물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엘은 카이나를 안아 들었다.
가벼운 무게. 엘은 잠든 듯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뚫어질 듯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더 이상 내 힘이 약하여 너희들을 곤경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세레나에 이어 너까지……. 반드시 고쳐 줄게. 그때까지 힘들겠지만 참아 봐, 카이나.”
엘은 그녀의 몸에서 요동치는 드래곤 블러드의 기운을 느끼며 그녀를 안고 금탑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소동은 끝이 났다. 금탑을 멸하기 위해 등장한 흑탑. 그들은 마족 소환이 라는 패를 꺼내 들음으로써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드래곤의 힘이 작용했지만 이것으로 금탑은 또 다시 한 차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번 싸움은 금탑에게 있어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힘의 한계를 알게 됨으로써 자신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더 강한 힘이 필요함을 느꼈고, 그것으로 정체되어있던 골든 벨리의 분위기를 활발하게끔 만들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언제까지 미약하다고 볼 수 없는 법. 골든 벨리는 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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