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57)
Chap. 9 어둠의 별과 황금의 별
세르디아 대륙의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은 인간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각각의 이념에 따라 혹은 이익에 따라 수십 수 백 개로 분열되어 각각의 왕국과 제국을 세웠으며, 매일 같이 서로 치고받으며 때로는 멸망을, 때로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제 해당하는 면적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다양한 유사인종파 몬스터, 그리고 중간계 의 수호자 드래곤이다.
대륙의 절반을 차지한 인간들이 나머지 반을 차지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이 드래곤의 영토이거나 혹은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곳, 그리고 다른 유사인종의 땅이 라는 것 때문이다.
그중에서 인간들에게 가장 친숙한 유사인종을 꼽으라면 당연히 엘프다.
특히 자연의 축복을 받은 종족 엘프. 대륙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인간들은 자신들의 자존심 때문에 그들을 유사인종이라 깎아 내리지만 엘프는 인간보다 월등한 재능과 수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인간보다 수백 배 적은 숫자인 그들이 이제껏 인간에게 터전을 침범당하지 않은 이유는 웬만한 나이에 이른 엘프는 거의 최상급 정령술사요, 대마법사이며, 소드 마스터였으니 감히 인간이 침범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것 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한 가지 벽은 존재했다.
바로 초월의 경지, 인간이 말하는 초인의 경지는 엘프에게 있어서 큰 벽이었다.
긴 세월을 살아가기에 엘프들은 수련을 함에 있어 상당히 느긋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수명보다 족히 열 배는 넘는 천 년의 세월을 살아가기에 검술이나 마법, 정령술을 천천히 두고 익혀도 인간이 평생 익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가 모두 정령사요, 마법사이며 검사이니 어찌 인간들이 이곳으로 침범할 수 있겠는가. 엘프 숲은 대륙 제일 서부인 몬스터 랜드에서 동북쪽 방향, 톨리안 왕국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대륙 전도에 펼쳐진 대륙 서북부 엘프 숲의 영역은 무척 컸는데, 그 영토의 넓이가 무려 다섯 배에 이르렀다. 가히 제국에 버금가는 크기였다.
사람들은 그곳을 엘프들의 왕국 엘븐즈라 불렀다.
엘프들의 왕국 엘븐즈 인간들은 이곳 엘프 숲을 그렇게 칭하였지만 실제 엘프들은 인간들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체제를 구축하였다.
12장로! 수백만이 넘는 엘프들을 다스리는 12명의 장로를 일컫는 말이며, 그들은 엘프들 중 가장 강한 자들, 가장 현명 한 자들 중에서 선발되고 선발된 엘프들의 지도자를 일컫는 말이다.
엘프들을 이끄는 장로들은 모두 개개인이 소드 마스터 보우 마스터, 7클래스, 최상급 정령을 소환하는 경지에 다다랐으며, 엘프들 중에서 가장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12명의 엘프 장로들 중 가장 강한 자를 대장로라 칭하는데, 그를 중심으로 열한 명의 장로들이 의견을 나누어 엘프 숲에 사는 전체 엘프들의 방향이 결정되곤 한다. 현 엘프 숲의 대장로는 아카벨이란 엘프로서, 올해 나이가 800살이 넘은 엘프들의 노장 중 노장이었다. 그런 그가 대장로가 될 수 있는 건 단순히 나이가 많고, 현명하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다. 그가 대장로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엘프 장로들 중 가장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카벨 대장로는 엘프들 중 유일한 8클래스 대마법사였다.
그는 과거 사람들이 일컫던 현자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언제나 신중하고, 올바른 정책으로 엘프들이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한 엘프들의 우상이었다.
그런 그가 최근부터 걱정하는 것이 있었다. 800년 동안 살아온 노장답게 그는 하늘의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도 어느 정도 익히고 있다.
말이 어느 정도지 대륙 어딜 뒤져 봐도 그보다 점성술을 잘 아는 이는 드물었는데, 그는 최근 50년 전부터 하늘의 별들이 급격한 이동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는 균형이라는 것이 있다. 찬란한 빛을 발하는 별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도 마찬가 지로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별이 있다. 모든 것이 서로 상생하는 기운을 지니고 있는 별이 있기 마련이며, 그런 것이 서로 순환적으로 빛을 발휘함으로써 세상의 균형이 맞춰지고 혼란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50년 전에 돌연 하나의 별이 떠올랐다. 그 별의 이름은 다크 스타. 말 그대로 어두운 별로, 이 세상을 혼란과 도탄에 빠뜨리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별을 일컫는다.
과거 다크 스타가 떠올랐으면 예외 없이 대륙에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
그 옛날 용신전쟁이 그러했고, 용마전쟁 또한 그러했다. 가장 최근인 마왕 강림 때도 다크 스타가 떠올랐으니 이 별이 의미하는 것이 얼마나 불길한 것인지는 말이 필요 없다.
세상의 불길함을 상징하는 다크 스타가 떠올랐으니 그것에 대응할 별이 떠올라야 옳았다. 마왕 강림 당시 다크 스타에 대항할 홀리 스타가 떠올라 결국 마왕을 마계로 강제 귀환시키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다크 스타가 떠올랐으니 홀리 스타가 떠올라야 하는 건 당연지사. 아카벨 대장로의 예상대로 최근 몇 년 전 홀리 스타로 보이는 별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직 그 빛은 미약하지만 훗날 다크 스타의 음모를 분쇄할 홀리 스타. 그 빛이 점점 커진다면 다크 스타를 막아 내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돌연 홀리 스타가 빛을 잃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그 빛이 꺼져 버린 것이다. 그것을 본 아카벨 대장로는 대경했다.
홀리 스타가 빛을 잃다니! 이 세상에서 다크 스타를 막을 별은 홀리 스타밖에 없는데 그것이 빛을 잃는다면 도대체 누가 다크 스타를 막는단 말인가? 하늘에 빛을 발하는 여러 별이 존재했지만 다크 스타를 막을만한 별은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아니?”
그러던 중 최근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 있다.
여태껏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별, 골드 스타였다.
황금색 별이 하늘에 떠올라 빛을 발한 적은 아카벨 대장로 생애 전혀 보지 못했던 현상이다.
하지만 아카벨 대장로는 점성술을 공부할 당시 골드 스타에 대한 것도 들어서 알고 있다.
점성술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골드 스타, 찬란한 황금빛 별은 때로는 대륙을 구원할 구세주가 될 것이고, 때로는 대륙을 멸망시킬 다크 스타 보다 무서운 존재가 될 것이다. 찬란한 빛 속에 숨겨진 그 정체를 밝혀내야 하는 것이 오로지 점성술사의 임무. 그를 찾아 그의 진정한 정체를 밝혀라.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골드 스타의 정체는 아카벨 대장로의 마음을 착잡하게 하였다.
때문에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다. 그가 본 현 다크 스타는 그의 생애 보아왔던 그 어떤 다크 스타보다도 뚜렷하고 강한 빛을 뿜어냈기 때문이다. 이대로 방치해 둔다면 필시 그 영향이 엘프 숲까지 미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하던 아카벨 대장로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곧장 엘프 장로 회의를 소집했다.
“무슨 일로 저희를 소집하셨습니까, 대장로님?”
장로 중 한 사람인 일리아 장로가 아카벨 장로를 보며 물음을 건넸다.
그러자 모든 엘프 장로들의 시선이 아카벨 장로에게 집중 되었다. 그들의 시선에도 아카벨 대장로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했다.
아카벨 대장로는 평소 회의를 소집하는 엘프가 아니다.
언제나 정해진 때에 회의를 열고, 정해진 사항을 막힘없이 처리하는 이가 바로 아카벨 대장로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평소 보이지 않던 행동을 하다니, 갑자기 장로들을 모으고 회의를 소집할 정도라면 필시 범상치 않은 주제임을 장로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일리아 장로의 말에 아카벨 장로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 내가 이렇게 회의를 소집한 데에는 많은 의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워낙 중요한 사항이라 이렇게 여러분을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아카벨 장로의 말에 모든 엘프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 되었다.
그러자 그가 턱 가를 매만지더니 자신이 말하고자 하던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여러분들은 내가 점성술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장로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아카벨 대장로는 스스로 점성술을 조금 한다 겸손하게 말하지만 실제로 그의 점성술은 단 한 번도 어긋나지 않을 만큼 정확함을 자랑했다. 때문에 아카벨 대장로의 점성술에 대한 엘프들의 신뢰는 대단했고, 그것은 장로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모든 장로들이 동의하자 아카벨 대장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오십 년 전부터 점성술을 하면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요동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관찰 끝에 다시금 대륙에 다크 스타가 재림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크 스타!”
모든 장로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서렸다.
그들 또한 어찌 모르겠는가. 다크 스타! 대륙을 어둠으로 몰고 가는 이것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다크 스타가 재림했을 때 대륙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재림하였던 마왕의 경우 몬스터들을 조종 하여 엘프 숲을 침공하게 하였고, 그 과정에서 십만에 이르는 엘프들이 몬스터들을 막아 내다 목숨을 잃었다.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엘프들에게 있어 그 정도 숫자는 어마어마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다크 스타가 어떤 상징성을 띠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카벨 대장로가 당황하는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 하늘에 뜬 다크 스타는 마왕이 강림할 당시의 다크 스타보다 훨씬 강한 빛을 띠고 있습니다. 즉, 그 당시 보다 더욱 강한 여파가 대륙에 미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다크 스타가 떴다면 홀리 스타, 홀리 스타도 떴을 것 아닙니까, 대장로님.”
당혹해하던 장로들 중 일리아 장로가 다크 스타가 뜰 때면 어김없이 뜨는 홀리 스타를 떠올리며 물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부정적인 것, 그 자체였다.
“물론 홀리 스타가 하늘에 나타나 빛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돌연 그 빛을·잃더군요. 그러더니 이내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때문에 홀리 스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홀리 스타가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엘프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대륙을 어둠으로 뒤덮는 다크 스타가 있다면 당연히 그 것을 막아 낼 홀리 스타가 등장하는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홀리 스타가 사라지다니? 그렇다면 누가 다크 스타를 막아 낸단 말인가? 드래곤에게 의지할 수도 있지만 드래곤은 마족이나 천족이 등장할 때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 즉, 현 다크 스타가 과거의 전처를 밟지 않고 인간들과 유사인종에게 국한된 어둠을 전파한다면 드래곤이 나설 명분이 없다. 그랬기에 흘리 스타가 필요한 것이고, 다크 스타와 유일한 상극의 힘을 지닌 그것과 연합하여 대륙을 방어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대륙을 지탱하는 수많은 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엘프들 중 가장 강하다고 불리는 나와 같은 경지에 든 마법사들이 대륙에 무려 열 명이나 존재합니다.”
“8클래스 마법사가 열 명…….”
장로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그럴 만도 하다. 엘프 숲에서 8클래스 마법사는 오로지 아카벨 대장로 1명뿐이다. 그런 그와 동급의 경지에 이른 마법사가 무려 10명이나 존재하다니. 엘프들은 새삼 인간들의 탐욕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그들의 저력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놀라움도 잠시, 그 뒤에 흘러나온 말은 절망적 이었다.
“분명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 힘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륙에 존재하는 인간 출신 8클래스 마법사는 도합 아홉 명입니다. 그중 다섯 명이 다크 스타의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 명이나…….”
8클래스 마법사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카벨 대장로를 보면서 그 힘을 톡톡히 느껴 온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실력을 지닌 다섯 명의 사람이 다크 스타의 편에 섰다는 건 절망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현존하는 그랜드 마스터는 도합 열세 명입니다. 원래 열네 명이었으나 얼마 전 그 별 하나가 급속히 별을 잃더군요. 아무래도 다크 스타의 수하에게 목숨을 잃은 듯합니다. 게다가 그들 중 다섯 명이 다크 스타의 수하입니다.”
대륙에 존재하는 초인들 중 절반이 다크 스타의 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아카벨 대장로의 말에 장로들의 얼굴 표정은 점점 굳어 갔다.
그런 그들에게 아카벨 대장로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안심할 것은 전대 홀리 스타의 후인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신께서 내려 주신 신검을 소유하고 있으며, 일신의 무위가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렀습니다.”
“오오!”
장로들의 얼굴에 처음으로 희망이 서렸다.
마왕 강림 당시 지금 장로가 된 엘프들 대부분이 신검의 힘을 목격할 수 있었다.
차원을 지배하는 신검. 본신의 실력이 그랜드 마스터에 조합된 신검의 힘은 가히 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대륙에 존재하니 아직 한줄기 희망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카벨 대장로는 희망어린 그들을 보며 살짝 웃고는 설명하였다.
“신검의 계승자는 분명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검의 계승자 혼자의 힘으로 다크 스타를 상대하기 벅찹니다. 현재 다크 스타인 사람은 아마도 과거 마왕을 소환하여 드래곤을 자극하는 멍청한 짓을 벌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철저히 드래곤을 배제한 우리 모두를 상대로 검을 겨눌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카벨 대장로는 마지막 희망이 될 만한 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제가 점성술을 배우면서 그 점성술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태껏 뜨지 않은 별, 때로는 더없이 든든한 아군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죽음보다 무서운 적군이 될 수 있는 존재. 그 존재를 아군으로 삼을 수 있다면 복이요, 적으로 삼는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 라는 구절이 말입니다. 책자에서 그 별은 골드 스타라 칭하며 더없이 찬란하지만 그 내용물은 더없이 무서울 수 있으며, 더없이 선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꿀꺽.
아카벨 대장로의 말에 모든 이들의 침이 삼켜 졌다.
실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아카벨 대장로가 누구에게 점성술을 배웠는지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엘프 최강의 정령술사 이리안. 물과 바람의 정령왕과 동시에 계약을 한 엘프 최고의 정령술사. 그 존재에게 점성술을 배운 아카벨 대장로의 점성술은 결코 의심할 성질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리안도 점성술로 예언한 내용이 틀린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가 이렇게 경고할 정도라면 누구보다 무서울 것이 분명했다.
아카벨 대장로가 말했다.
“최고의 아군이 될 수 있으면서 최악의 적이 될 수 있는 존재. 저는 그 존재의 정체를 알아보고 그것이 아군이 될 수 있다면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할 것이며, 그것이 적이 된다면 제거하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만약 골드 스타와 다크 스타가 힘을 합친다면 대륙은 그대로 파멸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카벨 대장로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장로들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들이 언제 이런 아카벨 대장로의 모습을 보아 왔겠는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던 아카벨 대장로다. 그런 그가 이 정도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필시 책자에 적힌 내용대로일 것이 분명했으며, 그것은 분명 막아야 하는 일임이 분명했다.
일리아가 맡했다.
“대장로님의 말씀은 모두 이해했습니다.”
그 말은 아카벨 대장로가 생각한 방안을 말해 보란 뜻 이었다.
일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아카벨 대장로가 한차례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나는 아카벨은…… 아니, 나 아카벨은 엘프 대장로로서 단 한 번 할 수 있는 엘프 전체에게 내릴 수 있는 명령권을 지금 행사하려고 합니다.”
두둥!
아카벨 대장로의 선언! 그것은 장로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 그게 무슨!”
“대장로님! 지금 그게……”
장로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지금 아카벨 대장로의 선언은 엘프 역사에 있어서도 거의 전무후무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장로의 선언! 그것은 엘프가 대장로 자리에 있으면서 단 한 번 엘프 전체에게 강제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대장로에게 딱 한 번 주어진 절대 명령권이다. 그런 명령권을 지금 행사하겠다니. 그들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카벨 대장로도 그 나름대로 단단히 각오를 굳힌 것이다.
지금부터 자신이 할 말을 장로들은 반드시 반대할 것이다. 아카벨 대장로는 그런 그들의 반대를 애당초 차단하기 위해 이런 선언을 한 것이다.
경악에 빠진 장로들의 시선을 받으며 아카벨 대장로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골드 스타를 찾기 위해 엘프 최강의 검사, 네이처 소드를 외부로 내보내기 위함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장로들의 입에서 다시 한 번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네, 네이처 소드를!”
“대장로님! 지금 그것이 참말입니까!”
어찌나 놀랐던지 몇몇 대장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네이처 소드. 대륙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신검이라 불리는 검은 대륙 5대 신검 중 한 축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처 소드는 엘프들에게 있어 존재가치나 마찬가지다.
이 신검은 엘프들을 창조했다고 알려진 자연의 여신 엘리아나가 내려준 검이고, 이것을 수호하면서 여신의 축복으로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엘프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엘프의 신물을 밖으로 내보내자니! 엘프 전체가 놀랄 만한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카벨 대장로는 단호했다.
“그래서 대장로로서 한 번 내릴 수 있는 명령권을 행사 한 것입니다. 네이처 소드와 그 검이 선택한주인, 엘리엔이 밖으로 나간다면 골드 스타가 적일 경우 충분히 제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장로들은 아카벨 대장로의 의도를 깨닫고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아카벨 대장로는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최상, 최악의 아군과 적군이 될 가능성이 있는 골드 스타. 엘프 최고의 검사인 엘리엔을 파견함으로써 만약 골드 스타가 적일 경우 그를 제거하기 위해 네이처 소드와 엘리엔을 밖으로 보내려는 것이다.
“반대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제가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놓은 최선의 방법. 모두 찬성한다는 전제 하에 의견을 내주십시오.”
아카벨 대장로는 수군거리는 대장로들을 보며 못을 박았다.
어찌 아카벨 대장로라고 해서 신검을 외부로 유출하고 싶겠는가. 더군다나 엘리엔은 엘프들 중 최고의 검술을 소유했다. 이미 그랜드 마스터라는 경지에 올랐을 뿐더러, 신검의 능력을 정확히 사용하는 그녀의 능력은 대륙 10대 그랜드 마스터 그 누구도 당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아카벨 대장로의 생각이었다.
한동안 장로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말이 오고 갔다.
몇몇 말은 그 말을 철회할 수 없느냐는 내용이었지만 아카벨 대장로는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재차 못을 박았다.
모두가 찬성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갈 때, 일리아가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만, 엘리엔은 인간에게 원한이 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으음!”
일리아의 말에 아카벨 대장로도 신음을 흘렸다.
사실 그가 가장 걱정한 부분도 그것이다. 엘리엔은 인간들에게 원한이 무척 깊었다. 그 원한 때문에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여 그랜드 마스터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원한 부분은 아카벨 대장로가 염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지금 그에게 있어 가장 최선의 선택은 엘리엔을 외부로 내보내 골드 스타와 만나게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원활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이는 엘리엔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 엘프들을 위한 일이니 엘리엔 또한 거절하지 않을 터, 저는 그녀를 믿으려고 합니다.”
아카벨 대장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장로들은 다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이라고 해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아카벨 대장로가 오랫동안 생각해 온 것이고, 장로들에 대한 아카벨 대장로의 신뢰가 깊었기에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엔과 네이처 소드를 외부로 내보내 는 걸 찬성했다.
회의 결과는 삽시간에 엘프 숲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가장 먼저 정해진 것은 바로 엘리엔의 거처였다.
엘리엔은 엘프들 중에서도 비교적 젊은 이백 칠십의 나이였다.
그녀는 과거 엘프 숲 외곽에 사는 엘프였는데, 마왕의 강림으로 인해 대륙이 술렁였던 적이 있었다.
그 여파는 엘프 숲도 비껴가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마왕이 강림한 레베탄 고원에서 엘프 숲은 지리적으로 그리 먼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엘프 숲은 연일 몬스터 침공으로 바빴고, 그러자 자연히 외곽에 사는 엘프들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경계가 소홀해지자 그 틈을 노린 이들이 존재한다.
바로 엘프 사냥꾼이 그 정체였다. 엘프는 대륙에서 무척 비싼 값으로 통한다. 그러나 엘 프의 본신 능력이 만만치 않을 뿐더러 경계 또한 철저하여 엘프 사냥을 성공한 이는 전무하다.
그런데 때마침 경계가 풀렸으니 엘프 사냥꾼에게 있어 이것은 최고의 기회라 할 수 있었다.
50명으로 조직된 엘프 사냥꾼은 곧장 엘프 숲으로 침입하였고, 그러던 중 엘리안이 사는 곳에 포위망을 구축, 포획하기 위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엘리엔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엘리엔을 지키기 위해 인간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중급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엘리엔의 아버지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른 엘리엔의 어머니는 종횡무진 엘프 사냥꾼들을 휩쓸었다.
하지만 한 손이 열 손을 감당할 수 없는 법. 서서히 그들의 힘은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엘프 사냥꾼들이 엘리엔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도 만만치 않아 결국 싸움이 종결되었을 때 양패구상이었다.
살아남은 몇몇 엘프 사냥꾼은 도망갔고, 엘리엔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치료할 시기를 놓쳐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때부터 엘리엔의 분노는 시작되었다.
엘프들이 모여 사는 중앙 마을로 들어간 엘리엔은 검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엘프들은 보통 긴 수명 때문에 수련 같은 것은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하는 편이다.
그러나 엘리엔은 한시라도 인간들에게 빨리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에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으며, 소드 마스터에 든 엘프 검사들에게 대련과 지도를 부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그녀의 노력은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다. 천부적인 자질과 노력이 밑바탕이 되어 수련을 시작한 지 10년 후에 소드 마스터에 올랐으며, 30년 후에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는 전무후무한 기염을 토해 냈다.
그녀가 그랜드 마스터에 올랐을 때가 나이 백팔십 살이었을 때이니 엘프 역사상 최연소 그랜드 마스터가 탄생했던 셈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수련에 수련을 하였다. 그렇게 수련의 나날이 계속되자 잠자고 있던 엘프의 전설이 깨어났다.
바로 엘프의 신물,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신검 네이처 소드가 그녀를 주인으로 택한 것이다.
그때부터 그녀는 네이처 소드의 주인으로서 엘프들의 수호신이 되었다.
그녀는 가끔 엘프들을 사냥하기 위해 엘프 숲으로 들어오는 인간들을 잔인하게 도륙했으며, 그 성격이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성격 때문에 엘프들은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았고, 그녀는 매일매일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마침내 인간 세계로 나갈 기회가 왔다.
그녀가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시간이었다.
“제가…… 인간 세계로 말입니까?”
떨리는 목소리 엘리엔은 지금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생생하게 느꼈다.
언제 그녀가 이런 떨림을 느껴보았겠는가.
생각해 보면 그녀가 떨었던 적은 정확히 140년 전이다. 바로 인간들에게 자신의 부모를 잃었을 때. 그때를 제 외하고 떨어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떨림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때는 두려움으로 인해 떨었던 것이라면 지금은 기쁨과 환희 때문에 떨고 있는 것이다.
인간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적인 인간들을 마음껏 제거할 수 있어. 그녀에게 인간은 추악하고, 탐욕스러우며 죽여야 할 사냥감에 불과했다. 왜냐고 말하면 그녀도 할 말이 없다.
언제부턴가 그녀의 머릿속에 인간은 반드시 죽여야 할 존재에 불과했으므로.
그런 엘리엔의 모습을 아카벨 대장로는 염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생각을 정확히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생각을 모를 리 없는 그였다.
그는 엘리엔에게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명심해야한다, 엘리엔. 분명 인간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동물이지만 지금의 상황은 우리만이 아닌 대륙 전체의 안위가 달린 일이다. 복수, 그런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지켜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과 힘을 합쳐야 하고. 그러니 잠시 너의 복수심을 자제 해 주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엘리엔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럴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엘프 사냥꾼의 검에 관통되었을 때, 웃던 인간의 모습을.
‘케케케! 드디어 엘프를 잡을 수 있겠군! 엘프의 속살은 어떨까, 정말 궁금해, 케혜혜!’
추악하고 더럽고 역겨웠다.
그녀에게 인간은 모두 그런 존재로 각인되었고, 지금에 와서 그 생각을 바꿀 이유를 못 느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아카벨 대장로. 엘리엔이 알았다고 하자 그녀의 대답을 믿은 그가 회의 때 말했던 것을 짧게 축약해서 말해 주기 시작했다.
“네가 인간 세상에 나가서 찾아야 할 존재는 바로 골드 스타, 황금의 별이 지칭하는 존재다.”
“황금의 별?”
엘리엔의 고개가 첨으로 갸웃했다.
아카벨 대장로가 설명했다.
“대륙을 어둠으로 뒤덮는 존재가 다크 스타이고, 그런 어둠에서 빛으로 구원할 존재가 홀리 스타라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이 골드 스타다. 때로는 대륙을 비추는 별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대륙을 다크 스타보다 사악한 어둠으로 뒤덮을 수 있는 존재. 지금 네가 찾아야 할 존재는 그 골드 스타의 존재다.”
“그렇군요.”
엘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방식대로 단번에 이해했다.
적인지 아군인지 확신이 안 서는 존재, 반드시 죽여야 할 존재로.
그녀의 생각을 모르는 아카벨 대장로는 그녀에게 연신 당부했다.
“골드 스타는 어쩌면 우리에게 있어 홀리 스타보다 더욱 든든한 원군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엘리엔, 너는 가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그가 대륙에 도움이 될 인물인지 아닌지를 파악하여라,”
엘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세계로 나가기로 한 이상 한시라도 빨리 인간 세계로 나가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대장로님.”
“그럼 너를 믿겠다.”
아카벨 장로는 몇 가지 사실을 엘리엔에게 당부시킨 뒤 엘리엔의 거처를 나섰다.
엘리엔은 창문 너머로 아카벨 대장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죄송하지만 대장로님의 말에 따를 수 없어요. 제게 있어 인간은 모두 죽여야 할 대상에 불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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