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6)
5. 성장하는 엘, 기반을 세우다
아침이 왔다. 창문 사이로 새하얀 햇살이 스며들어 와 사내의 몸 곳곳을 비춰 주었다.
하지만 철야 작업을 했기 때문인지 사내는 날이 밝았음에도 쉽게 깨지 않았다.
잠든 그의 모습.
허리까지 길은 금발이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으며, 꼭 닫힌 눈의 긴 속눈썹이 마치 여자와 같았지만 그는 엄연한 남자였다.
밝은 햇살이 괴로운 듯 인상을 미약하게 찡그리는 모습조차도 여성스럽다.
문득 그의 방문이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한 여인이 들어와 잠든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어나세요.”
더 없이 감미롭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다.
이윽고 인상을 찌푸렸던 소년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막 잠에서 깬 터라 초점이 잡히지 않은 푸른 눈동자가 묘한 백치미를 자아내고 있었다.
눈을 뜬 그의 모습에 여인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새하dis 치아와 새하얀 목덜미는 마치 백설을 연상시켰다
“일어나셨어요? 세숫물 준비했답니다.”
그 말에 정신이 덜 든 듯한 소년의 눈동자가 점차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음‥‥‥ 세레나야?”
점점 또렷하게 맺히는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니 자신을 향해 미소 짓고 있는 한 소녀를 볼 수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신비한 느낌의 은발. 그리고 온화한 에메랄드 빛 눈동자와 입가에 맺힌 미소는 자애의 여신을 연상시키는 듯 편안한 느낌을 자아냈다
올해로 엘은 열두 살이 되었다. 그동안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라면 바로 그의 모습이다.
성장기라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 일 년인 지날 때마다 쭉쭉 자라난 덕분에, 지금에는 어린 티를 찾을 수 없는 소년이 되어 있었다.
미녀인 실피르를 꼭 닮은 외모에 남자인 것을 증명하는 얼굴 라인은 갸름한 미소년의 이미지를 주면서도 동시에 중성적인 이미지를 풍겼다.
물론 7살 때, 그러니까 5년 전 마탑 사건이 있고 난 뒤 변한 것은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5년 전 그날, 집으로 돌아온 실피르는 곧장 엘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어디서 마법을 익혔니? 그리고 브리온 탑주님이 탐낼 정도인 그 마법 수식과 마나 호응은 어디서 얻은 거야?”
엘은 능수능란하게 대꾸했다. 실피르가 가져온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과 그녀가 매달 사 온 책에서 봤다는 걸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낼 것이었으면 애초에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엘은 실피르를 설득했다.
마나 호응과 마법 수식만 있다면 더 높은 경지로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고 말이다.
그 말이 실피르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그녀 또한 더 높은 경지를 갈망하는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7클래스 마스터인 브리온도 관심을 보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보증을 얻은 거라 할 수 있다.
엘은 그녀에게 단전호흡과 마법 수식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미 이곳 마법에 맞게 틀이 형성된 실피르는 단전호흡므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존보다 더 마나 호응을 끌어 올릴 수 있었으니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마법 수식은 기존의 것을 약간 비틀었다.
지구의 수학과 이곳의 마법 수식은 모든 게 가감되어 결론이 돌출되는 건 동일했다.
하지만 이곳의 공식은 지구의 것보다 더 복잡하고 더 난해했다.
애초에 지구의 수학과 개념 자체가 틀렸기에 엘은 실피르에게 지구의 수학을 응용한 마법을 가르치지 않고 기존의 마법 수식에서 불필요한 공식을 빼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무척 까다롭고 번거로운 작업이었으나 이것은 브리온에게 줄 것과 겹쳤기에 기꺼이 번거로움을 겪었다.
엘은 수식 수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마탑에서 에너지 볼트를 캐스팅할 때 천천히 하기를 무척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전력을 다했다면 마나 호응을 더 끌어 올리고 캐스팅 시간을 더욱 단축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 더 골치가 아파졌을 테고.
아무튼 그렇게 전체적인 마법 수식 수정을 마치자 곧장 실피르에게 그것을 보여 주었다.
“세, 세상에!”
그것을 본 실피르는 경악했다.
엘이 보여 준 마법서대로 마나를 배열하니 기존의 마법과 위력은 동일하면서 캐스팅 시간은 절반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엘은 그것을 브리온에게 건넸다.
마법서를 받은 브리온은 마법 수식을 꼼꼼하게 살피며 분석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엘이 마법 수식을 수정할 수 있었던 것은 지구의 수학과 이곳의 마법 수식을 서로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단면만 보고 모든 모양을 유추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이치였다.
이것만으로 마나석 100개와 마법서를 얻었으니 엘에게는 철저하게 남는 거래였다.
게다가 브리온과도 친분을 쌓았다고 할 수 있으니, 첫 나들이치곤 성과가 엄청났다.
그리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마법 실험을 할 장소를 구입하고 여러 가지 물품을 구입하여 어엿한 마법사의 실험실을 갖출 수 있었다.
엘이 실피르에게 이사할 것을 끊임없이 권한 결과였다.
실피른가 룬크 마을 같은 산골 마을에서 사는 것을 엘 스스로가 용납 못했기 때문이다. 실피르는 그 말을 그대로 따라 반자크 근처 조용한 곳으로 이사를 했던 것이다.
엘은 실피르의 마법 실험을 옆에서 도우려는 목적이었다.
“엄마는 마법 실험 같은 건 필요 없단다. 엄마는 단지 실력 높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실피르는 마법 실험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엘에게 마법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다보니 엘 혼자서 단독으로 마법 실험을 한 것과 같았다.
‘현대 지식과 마법을 합치면 무적이다.’
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지구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많은 마법 서적을 탐독하고 그것을 지구식으로 바꾸어 놀라운 발명을 할 수 있었다.
개발된 지 불과 3년 만에 대륙 전역에서 마법사들에게 ‘마나석의 기적’이라 불리는 매직 스톤(Magic Stone)을 개발한 것이다.
매직 스톤은 말 그대로 마술의 돌이다.
그것은 마나석을 대체할 수 있는 충격적인 결과물이었다.
기존의 마나석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 변화 폭이 심하기도 하지만 비싸다는 것.
아무리 마법사들이 마법 재료에 가격을 따지지 않는다고 해도, 마나석의 가격이 점점 올라감에 따라 마법사들의 부담도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엘은 마나석과 같은 성질을 발휘하는 매직 스톤을 개발해 냈다.
매직 스톤을 만드는 데에는 두 가지 마법이 필요했다.
평범한 돌에 마나를 깃들게 하는 마나 저장 마법과 그 마나를 활성화시켜 마나석과 같은 성질을 띠게 하는 마나 활성화 마법이 그 두 가지였다.
하지만 이것은 대륙의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평범한 돌은 물론 일반 마나석에도 마법을 한 개 그려 넣는 건 무척 힘든 작업이다. 극도로 세밀한 작업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무래도 좋다.
숙달만 된다면 보통 마나석에 5분 정도면 하나를 그려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나석과 마법의 연결 고리였다. 두 개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엘은 그 점을 착안하여 그 연결 고리에 지구의 수식을 사용하였다.
서로 다른 식을 연립하고 대치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했기에 이 대륙의 치명적인 수식의 단점을 단번에 해결한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마법진을 그리는 데 중첩 마법진을 사용했다. 그것도 평범한 중첩 마법진이 아닌 수식과 수식을 잇는 마법진이었다. 이것 또한 식과 식을 연결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손쉽게 해결되었다.
그 후 엘은 매직 스톤을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를 만들었다.
매직 스톤이 처음 보유한 마나는 상급 마나석에 버금가는 양. 하지만 영구적인 게 아닌 소비 제품으로 만들어 지속적인 수요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총 열 번을 충전하면 보통의 돌로 돌아가 버리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한 번 쓰고 거의 몇 년 동안 기다려야 마나가 재충전 되는 마나석과 달리 3일이면 그 용량이 다 채워지는 매직 스톤은 불티나게 팔렸다.
충전기는 100골드, 매직 스톤의 가격은 개당 50골드로 결코 싼 값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이거야말로 하나를 생산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별로 길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앉아서 돈 버는 셈이었다.
매직 스톤을 파는 유통로는 디벨 상단으로 정했다. 45 골드로 상단에 팔고 상단은 5골드의 이문을 붙여 팔았다.
그럼에도 한 달에 백 개가 넘는 매직 스톤을 팔았기에 500골드가 넘는 이익이 생겨났다. 엘은 실피르가 조금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수련에 몰두하는 그녀였지만 엘이 그 방법을 제시한 이후로는 엘과 거의 마주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수련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2년이 지나가는 시점에 4클래스 마스터가 되고 또 2년이 흘렀을 때는 5클래스 익스퍼트에 드는 데 성공 하였다.
그제야 실피르는 엘의 말대로 조금 여유를 가지며 생활하기 시작했다.
엘은 피나게 수련하는 실피르의 모습에 무언가 사연이 있음을 알았지만 조금 더 성장한 뒤에 묻기로 하고 궁금함을 속으로 꾹 삼켰다.
그렇게 그들 모자가 조금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을 때 실피르가 사고를 쳤다.
마탑에 다녀을 일이 있어 반자크에 갔던 그녀가 엘 또래의 소녀 두 명을 데리고 집에 왔기 때문이다. 세레나와 카이나였다.
세레나라 불린 소녀는 엘보다 두 살 많은 소녀로, 그녀의 부모가 교단의 성녀로 데려가겠다는 노예 상단의 꼬임에 넘어가 그녀를 노예 상단에 넘겼다고 한다.
우연히 그 전말을 알게 된 실피르는 크게 분노했다. 한 참 후, 노예 상단을 몰살시킨 뒤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노예 상단의 본거지에서 또다른 소녀를 발견했다.
카이나라는 소녀였는데, 그 소녀는 영지전에서 패한 귀족의 숨겨진 딸이었는데 너무 예쁜 외모 때문에 노예로 팔렸다고 했다.
실피르는 소녀들의 부모를 찾으려 했지만, 죽거나 스스로가 돌아가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가진 미모들 때문에 순탄하게 살 수 없을 것 같아 데려왔다고 한다.
둘은 일단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신분이었기에 표면적으로는 실피르와 엘의 하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로, 그녀들이 이 집에 온 지 1년이 약간 안되는 지금은 가족으로 완전히 융화된 상태였다.
“세레나는 대단해. 어떻게 하면 아침에 그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는 거야?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나한테 마법을 배우면서, 힘들지도 않아7”
엘은 세레나의 방문에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레나를 보며 감탄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 말에 세레나는 미소 지었다. 무척 부드럽고 포근한 미소였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마법을 배우는 재미를 알아서 그런지 이젠 하나도 안 힘들어요.”
부드럽고 차분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마법을 배울 때는 무척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처음 얼굴은 귀족 영애보다 예쁘지만 지식이라고는 전무한 세레나를 가르친 것이 바로 엘이다. 세레나를 가르치면서 엘은 그녀가 마법을 익히는 데 적합한 체질이란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녀를 가르치면서 끊임없이 교육을 하였다.
세레나는 상당히 불행한 소녀였다.
광적인 신도인 그녀의 부모가 세레나가 성녀가 될 것이 라며 매일같이 집에 가두어 지내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배울 기회조차 가지질 못했었다.
덕분에 그녀는 유일하게 대화를 한 이가 바로 실피르와 엘이다. 그것도 엘이 세레나의 교육을 전부 전담했으니 세레나에게 있어 엘은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즉 엘밖에 모르고 엘만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낌새를 모르는 엘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맹세하에 그녀에게 마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철저한 기초를 다지고 단전호흡으로 틀을 만들며 지구의 공식을 완벽하게 숙달시키니, 그녀가 이곳에 온 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1클래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엘과 세레나가 1층으로 내려가자 세레나와 비슷한 차림새의 소녀가 나타났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그녀는 엘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번져 있는 걸로 보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기에 엘은 빙긋 웃으며 인사했다.
“응, 카이나. 나야 항상 잘 자다가 세레나 때문에 깨 버리는 거 알잖아. 너도 잘 잤어?”
그녀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그녀의 이름은 카이나, 붉은 머리와 붉은 눈동자가 새 하얀 피부와 매치되어 불꽃의 여신을 연상시키는 소녀였다.
엘에게는 무척 부끄러움을 타는 소녀였지만 실피르와 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대할 때는 싸늘하기가 그지없는 소녀였다.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또 사연이 있다.
카이나는 반자크 인근 자그마한 영지를 가진 자작가의 숨겨진 딸이었다.
카이나의 어머니는 평민이었지만 무척 아름다워 자작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질투한 자작 부인이 그녀를 죽이고, 그녀가 낳은 카이나 마저 죽이려 하였다.
자작은 재빨리 손을 써 카이나를 숨기는 데 성공하였지만 그것은 카이나에게 있어 또 다른 지옥이었다.
그녀 또한 세레나와 비슷하게 거의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했던 것이다. 텅 빈 공간에서 무려 3년이라는 시간동안 살아온 그녀는 말이 없고 무뚝뚝했다.
그러나 그녀는 세레나와 함께 엘의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변해 갔다.
카이나는 자신의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듯한 실피르의 모습에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고, 그 후 엘과 함께 있으면서 점차 그녀의 마음 모든 곳에 엘로 가득 들어차기 시작 했다.
덕분에 카이나는 실피르와 엘에게는 한없이 수줍음을 타는 소녀였지만 외부 사람들과 만날 때는 한기가 몰아치는 냉랭함을 뿌리고 다녔다.
일종의 자기 방어 수단인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며 엘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검술은 어때? 힘들지는 않고?”
엘의 물음에 카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검을 휘두른 뒤에 호흡을 하면 더 힘이 넘쳐 나는걸요.”
“그래? 잘됐네.”
엘이 미소 지었다.
세레나와 마찬가지로 카이나를 가르치던 엘은 그녀가 상당한 운동 신경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엘은 그녀에게 검을 익혀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그녀 또한 검에 흥미가 있었기에 검을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엘은 그녀에게 세레나와 마찬가지로 배신하지 않겠다는 조건하에 단전호흡을 가르쳤다. 기사가 오러를 뿜어내려면 체내에 마나를 축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카이나가 기본 검술을 수련할 때 엘은 기사에 대한 서적을 읽고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어느 정도 방향을 잡을수 있게 되었다.
마법사에게 마나 호응을 극도로 끌어 올려 주는 단전호흡의 가치도 대단했지만 기사가 지닌 체내의 오러 양을 늘려 주는 단전호흡의 가치도 엄청났던 것이다.
때문에 엘은 그녀에게 단전호흡을 중심으로 하고 그 후에 검을 수련하라고 하였다. 검술 서적이 부족한 이상 기본 검술보다 더 뛰어난 것을 구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카이나는 엘의 생각보다 휠씬 뛰어난 재능을 지닌 소녀였다. 그녀는 기본 검술을 토대로 자신에게 알맞은 검로를 그려 냈고, 지금에 와서는 그녀만의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검법을 완성하게 되었다.
“카이나 덕분에 도둑 걱정은 하지 않게 됐단 말이지. 고마워?”
“처, 천만의 말씀을요.”
카이나가 고개를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엘은 그런 카이나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어서 오렴, 엘리.”
이윽고 세레나와 카이나를 데리고 식당으로 가자 실피르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엘을 반겼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엘은 실피르를 보며 인사했다. 아름다운 실피르는 외모가 여전히 찬란하여, 아직도 20대 초반으로 보일 정도였다.
“잘 자고말고. 원래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게 수면 아니겠니.”
엘은 연신 미소 짓는 실피르의 모습에 그녀가 무언가 성취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었다. 주변 마나 호응도 호응 이지만 평소 수척해 보이던 그녀의 모습이 한결 여유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엘은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좋은 일이 있으신 것 같아요. 혹 성취가 있으셨나요?”
그 말에 실피르는 웃음을 지었다.
“호호! 내가 너무 티를 냈나? 축하해 주렴, 엘리! 엄마가 어제 5클래스를 마스터했단다. ”
엘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와, 축하드려요!”
“축하드려요, 어머님.”
“저도 축하드려요.”
세레나와 카이나도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축하의 인사를 받은 실피르는 미소 지었다.
“고마워, 얘들아 이제 이 엄마도 어엿한 고 클래스 마스터가 되었단다.”
그녀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하기야 그럴 만했다. 실피르, 그녀의 나이 이제 스물여덟. 서른 살 이전에 5클래스 마스터를 한 이는 극히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소한 한 나라에 천재라 꼽히는 마법사들 중 서넛만이 서른 이전에 5클래스 마스터를 하는 것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4클래스 익스퍼트였던 그녀로서는 너무나 놀라운 성취임이 분명했다. 이게 다 엘이 전수해 준 단전호흡과 마법 수식 때문이었다.
단전호흡으로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엘의 입장에서 본 것이기 때문이다. 단전호흡으로 인해 실피르는 마나 호응을 크게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마법의 클래스를 높이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마법의 숙달이다. 마법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마나를 배열이 점차 익숙해져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마나를 다루는 데도 익숙해진다.
두 번째가 바로 마나와의 호응이다.
마법은 대기에 있는 마나를 공명시켜 그것을 정해진 수식대로 배열함으로써 시전되는 것이다. 마나의 호응이 좋으면 마법의 위력이 더 강해지고 좀 더 빠르게 마법을 시전할 수 있다. 마지막은 깨달음이다. 사실 이것은 명확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방향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클래스 마스터까지는 어느 정도의 지식과 이해만 있으면 되지만 7클래스부터는 자신만의 방향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야 했다.
아직 7클래스가 아닌 실피르는 나머지 두 개 중 올리기 힘든 마나 호응을 단전호흡으로써 이룰 수 있게 되었으니 자연히 마법을 숙달시켜 클래스를 더 높인 것이다.
실피르는 엘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엘도 실피르를 바라보자 그녀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엘리가 있어 엄마가 성취를 얻을수 있었단다. 엄마는 엘리가 너무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러워.”
믿음이 듬뿍 담긴 실피르의 말에 엘은 미소 지었다.
“엄마가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저도 기뻐요. 아, 이럴 게 아니라 엄마가 성취를 이룬 걸 축하할 겸 반자크로 놀러 가는 건 어때요? 이럴 때 기분을 한번 내야죠?”
“그럴까?”
그 말에 실피르는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 5클래스를 마스터하기 위해 지난 3개월 동안 수련에만 매진했었기에 바깥바람을 조금 쐬고 싶기도 하였다
그녀는 슬쩍 시선을 돌려 세레나와 카이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엘의 제안에 몹시 흥분된 듯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하기야 그녀들이 이곳에 온 뒤 마을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는 것이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들의 심정을 알아차린 실피르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엘리. 물론 엘리가 다 사 줘야 한다? 매직 스톤으로 엘리가 돈 많이 버는 거 아니까. 이 엄마가 5클래스 마스터에 올랐는데 설마 못 해 주겠다는 건 아니겠지?”
“하하, 설마요.”
엘이 웃음을 지었다. 그가 전생에 겪은 일로 돈을 광적으로 모아 엄마를 모시고 대륙 제일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지만 씀씀이가 작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도리어 쓸데없는 소비는 절대 안 하지만 한번 해 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 누구보다 통이 큰 그였다.
매직 스톤의 판매로 엄청난 돈을 벌었기에 엘에게 그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엘은 고개를 돌려 세레나와 카이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한껏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엘을 바라보다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훗!’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엘은 미소 지었다. 평소 성숙해 보이는 세레나와 남에게는 차가운 카이나가 이럴 때는 또래의 여자 아이처럼 보였다.
엘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피르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좋아요! 아무리 써도 다 못 쓸 정도로 가져갈 테니까 각오하세요.”
엘의 말에 실피르가 웃었다. 세레나와 카이나도 웃음을 지었다.
실피르는 자신만만해하는 엘을 향해 말했다.
“과연 우리 엘이 이 엄마의 소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엘은 당당하게 말했다. 열두 살 소년의 모습으로 그렇게 하니 치기 어린 행동으로 보였다. 실제로 약간 치기 어린 행동이기도 했다.
“그 정도야 문제없어요.”
“좋아! 그럼 식사를 하고 곧장 준비하렴.”
그 말과 함께 실피르와 엘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세레나와 카이나 또한 자리에 앉아 같이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준비를 모두 마치고 반자크를 향했다.
엘이 사는 마을은 반자크와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약 한 시간 정도만 걸어가면 반자크가 나타났기에 일행은 마을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자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기분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엘은 일행을 반자크 최고급 여관으로 이끌었다. 웬만한 귀족이 아니고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그런 여관이었다.
실피르는 여관 숙박비를 보고 입을 헤 벌렸다.
“너무 비싸지 않아?”
그 말에 엘은 웃었다. 많이 소비하겠다고 당당히 말한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태도였던 것이다.
엘은 실피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능력 있어요. 이 정도는 걱정 마세요.”
“하지만‥‥‥.”
머뭇거리는 실피르를 보며 엘은 웃었다. 실피르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생전 처음 오는 고급 여관에 어색해하는 세레나와 카이나를 보며 말했다.
“엘리가 마음껏 즐기게 해 주겠다는데 거절할 필요 없겠지 가자, 얘들아.”
실피르는 세 아이를 이끌고 4인실 방으로 향했다.
본래 엘은 여자들이 지낼 3인실 방과 자신이 지낼 1인실 방을 잡으려 했다.
엘 스스로가 이제 한 남자라고 주장하며 여자들과 같은 방을 쓸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엘이 어찌 실피르를 이길 수 있으랴.
스스로 이제 어엿한 남자라고 주장하던 엘의 의견이 무참하게 묵살 당했다. 그럼 네가 우리를 덮치기라도 하겠냐는 실피르의 말에 그대로 침몰된 것이다.
당당하게 자기가 남자라고 주장하던 엘에게 있어 조금 부끄러운 사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목욕은 같이 안 했다는 점이다. 엘에게 있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는 사실이었다. 이튿날, 일행은 여관을 나와 반자크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엘은 실피르가 일찍 남편을 여의고 오직 자신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쉬웠다. 그렇다고 해서 재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엘은 실피르가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닌 모자 간의 사랑이다. 전생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엘은 그런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독점욕이 강했기에 실피르가 재혼하는 것만큼은 철저하게 막을 생각이었다.
물론 실피르 또한 그런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귀족들만 쇼핑하는 ‘귀족의 길’로 들어선 일행은 곧장 드레스 집으로 향하였다. 매일 평범한 옷에 로브만 두르는 실피르에게 모처럼 아름다운 드레스를 선물할 생각이었다.
실피르 또한 그런 엘의 생각을 알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여인의 심리가 발동하여 순순히 엘을 따랐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세레나와 카이나가 따르고 있었다.
“어서 오세‥‥‥ 와, 정말 미인이시군요.”
드레스 집으로 들어서자 우아한 중년 미부가 엘 일행을 반겼다.
그리고 실피르를 본 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세레나와 카이나에게 시선이 미치자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뜨였다.
실피르를 비롯한 세레나와 카이나가 보기 드문 엄청난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복장을 보아 실피르는 마법사로 보였다.
여인이 환대를 하자 엘이 앞으로 나섰다.
“가장 어울리는 예쁜 드레스로 하나씩 맞춰 주세요. 가격 신경 쓰지 마시고요.”
그 말에 여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입을 가리며 조신하게 웃었다.
“호호! 맡겨 주세요. 최고의 미인들에게 어울릴 최고의 드레스를 선사해 드릴 테니까요.”
“부탁드릴게요.”
그 후에 엘은 그야말로 눈 호강을 하였다.
금발의 여신과도 같은 실피르가 여러 드레스를 입는 모습이 나왔는데 도저히 아들이 있는 여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세레나와 카이나도 마찬가지였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세레나는 마치 성스러운 성녀와도 같은 분위기를 풍겼으며, 카이나는 정열적인 불꽃의 여신 같은 이미지를 주었다.
그렇게 여러 벌의 옷을 입어 가며 쇼핑을 마친 실피르가 문득 엘에게 시선을 옮겼다.
엘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브리온 탑주님이 엘리를 보고 싶다고 했던 게 기억났어.”
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탑주 할아버지가요?”
마법 수식을 얻은 브리온과 엘의 관계는 사실상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인연의 끈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그 인연을 먼저 찾아야 할 사람은 브리온이 아니라 엘이어야 했다. 갑자기 브리온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엘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맺혔다.
‘그렇군.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이었어.’
엘이 실피르를 보며 말했다.
“별로 늦지 않았으니까 가도록 해요. 이참에 세레나와 카이나도 마탑 구경 한번 하는 것도 좋겠죠?”
모처럼 만의 외출이었기에 엘은 세레나와 카이나에게 이것저곳 둘러보게 해 주고 싶었다. 게다가 디벨 상단도 한번 찾아가 봐야 할 참이었다. 순식간에 일정을 정리한 엘이 세레나와 카이나를 바라보았다.
“세레나와 카이나는 어때? 마탑이란 곳 한번 가 보고 싶지 않아?”
그러자 세레나가 약간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마탑,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답니다. 아무래도 마법을 익혔다 보니까‥‥‥‥.”
엘의 시선이 카이나에게 향했다.
“카이나는 어때?”
카이나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저 또한 좋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원하시는 일이니까‥‥‥.”
그 모습에 엘은 싱긋 웃으며 카이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그녀가 몹시 고마웠다.
“고마워. 그럼 결정된 거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엘의 물음에 실피르는 짐짓 삐친 듯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하여간 벌써부터 자기 여자 챙기는 거라 이거니?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 내게 물으면 할 말이 없잖아. 힘들게 키운 아들이 벌써부터 다른 여자를 챙기다니‥‥‥ 이 엄마는 슬프단다.” 그러면서 짐짓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는 실피르를 보며 엘이 질겁했다.
벌써부터 자기 여자를 챙긴다니‥‥‥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단 말인가?
실피르의 말에 엘은 기겁한 채 손을 저었다.
“저,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닌‥‥‥.”
모두 알고 있어. 그러니 엄마는 더 이상 엘리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단다.”
엘로서는 난감한 노릇이었다. 그런 엘의 심정을 알아차렸는지 실피르는 엘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엄마가 넓은 마음으로 참아야겠지. 자, 어서 마탑으로 가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녀의 모습에 엘은 그녀에게 속은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 엄마도 참‥‥‥.”
그렇게 말하며 엘은 실피르의 뒤를 따라 마탑으로 향했다.
그런 둘의 뒤를 얼굴이 붉게 변한 세레나와 카이나가 조심스럽게 따르고 있었다. ‘자기 여자’라는 말에 몹시 뛰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소녀들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마탑에 들어선 엘 일행은 마법사들의 환영을 받았다.
5클래스 익스퍼트로 알려진 실피르의 방문은 마탑의 환영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피르가 한 마법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브리온 탑주님이 일전에 뵙고 싶다고 하셔서 왔어요. 기별을 넣어 주시겠어요?”
“아! 그렇습니까?”
마법사는 반색하며 수정구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탑 꼭 대기와 통신을 하는 것이다.
‘예예.’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마법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실피르를 향해 말했다. “탑주님께서 어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이 위로 올라 가 주세요.”
마법사가 가리킨 마법진 위로 올라가자 새하얀 빛과 함께 텔레포트 되었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은 언젠가 한 번 보았던 마탑의 집무실이었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순백의 수염과 백발을 하고 로브를 걸친 브리온이었다.
브리온은 실피르와 엘을 보고 양손을 벌렸다. 무척 반가운 표정이었다.
“어서 오너라. 기다리고 있었다.”
실피르가 먼저 인사했다. 그녀는 우아한 동작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랜만에 뵈어요, 탑주님.”
“허허!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구나. 어째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아?”
“호호! 탑주님도 참.”
예쁘다는 칭찬에 기분 나빠 할 여성은 없다.
실피르가 방긋 웃자 브리온도 웃었다.
“후후, 그래도 좋아하는 걸 보니 기분은 좋은가 보구나.”
그러면서 브리온은 실피르 옆에 서 있는 엘에게 시선을 옮겼다. 실피르와 쏙 빼닳아서 알아본 게 아니라 5년 전 잊을 수 없던 만남 때문이다.
엘이 먼저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탑주님.”
“오랜만이구나. 그래, 많이 컸구나. 후후!”
브리온은 엘을 보며 미소 지었다. 엘을 보니 흐뭇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엘에게 받은 마법 수식을 익힌 브리온은 전보다 수배는 강해질 수 있었다.
7클래스 마스터 마법사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소드 마스터(Sword Master)를 상대로 승리한 것이 그 증거였다.
보통 7클래스 마스터와 소드 마스터는 동급의 경지로 생각하지만 실제 일대일 전투에서는 7클래스 마스터가 소드 마스터를 이기지 못한다.
소드 마스터의 공격을 피하면서 무빙 캐스팅과 더블 캐스팅을 할 수 있는 마법은 5클래스 이하의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드 마스터를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한 6클래스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6클래스 마법을 사용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고, 그 틈을 소드 마스터가 놓칠 리 없는 것이다.
때문에 대륙은 7클래스 마스터와 소드 마스터를 동급에 두었지만 실제 무력에 있어서는 소드 마스터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브리온은 압도적으로 짧아진 마법 수식으로 허무하다고 할 정도로 소드 마스터를 제압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다. 무려 세 명의 소드 마스터가 브리온의 마법에 무릎을 꿇었다.
그 사실이 대륙에 퍼져 나가자 마법 학계에서는 난리가 났다. 7클래스 마스터가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던 소드 마스터를 이기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대륙에 열 명만 존재하는 8클래스 마스터 마법사 중 세 명이 브리온과 만남을 가졌다는 건 비밀이라면 비밀일 수 있다.
단번에 대륙 모든 마법사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니 브리온이 어찌 엘을 안 반길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번에 엘을 부른 것도 자신을 비롯한 마탑의 위상을 한 번 더 껑충 뛰어오르게 할 수 있는 사항이었다.
브리온은 실피르 등에게 자리를 권했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불렀으니 편하게 앉지.”
네 사람이 자리에 앉자 브리온이 엘을 보며 말했다.
“음, 말 돌리지 않고 말하지. 엘, 매직 스톤을 개발한 마법사가 너라는 말을 들었다.”
‘역시 매직 스톤인가?’
매직 스톤을 언급하는 말에 엘의 눈이 번쩍였다.
브리온이 마탑에 부른 시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이야기다.
실피르의 표정도 올 게 왔다는 표정이다. 매직 스톤은 그 누구도 뿌리치지 못할 달콤한 유혹과도 같았다.
매직 스톤은 현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요구하는 물량은 수만 개가 넘는데 실제 풀리는 물량은 한 달에 백 개가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지의 마탑에서 정보망을 풀고 있었다. 매직 스톤을 팔고 있는 디벨 상단을 중심으로 말이다.
브리온 또한 매직 스톤의 출처를 찾았다. 그리고 매직 스톤을 만든 이가 엘이라는 것도 그가 알아냈다.
매직 스톤이 나왔을 때쯤 마법 실험을 하고 싶다면서 마나석을 달라던 일곱 살 어린 꼬마를 떠올린 것이다.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고, 엘이 매직 스톤을 만든 사람이란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실피르에게 부탁해 엘을 데리고 오게 한 것이다.
브리온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지금 매직 스톤을 노리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자칫하면 신변의 위협을 당할 수도 있어.”
엘이 고개를 끄덕 였다.
“그렇더라고요. 말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몇 개월 동안 저희 집 근처를 감시하던 이들이 있었어요.”
“그게 정말이니 , 엘리?”
“네, 다행히 감시만 하는 거라서 그런지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어요.”
놀란 실피르의 말에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들은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 대륙 각지 마탑에서 보낸 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몇몇 마탑은 너의 말대로 이미 그 소재를 파악하고 있지.”
“그래서 할아버지가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에요? 매직 스톤을 달라는 건가요?”
엘도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상대방이 중앙 싸움을 원할 때 자신 또한 그에 응한다! 잔꾀를 부리지 않는 정면 대결! 곁다리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상대방에게 내심을 숨기지 않는다.
엘이 묻자 브리온은 웃음을 지었다.
“후후, 넌 여전하구나. 어릴 때와 전혀 변한 게 없어.”
“사람이 쉽게 변하나요. 그런데 아직 제 물음에 답을 안 해 주셨어요, 할아버지.”
“그렇구나. 네 말 그대로다. 매직 스톤을 달라는 거지.”
그 말에 엘이 웃었다.
“후후! 매직 스톤은 충분한 값어치가 있지요. 하지만 그냥 달라고 하기에는 탑주 할아버지의 체면도 있지 않겠어요?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공짜로는 절대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엘의 말에 브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간단하게 말하마. 지금 매직 스톤으로 인해 네가 표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네가 매직 스톤의 소유권을 표면적으로 우리에게 넘겨주었으면 하는구나,”
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표면적으로요?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 표면적으로 매직 스톤의 소유를 우리에게 넘기라는 것이다. 대륙에서 인정받는 우리 마탑이 매직 스톤을 생산한다면 다른 마탑들도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다. 매직 스톤의 가격이 기존의 마탑보다 비싸지 않은 이상 돈만 주면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지. 너도 알겠지만 마법사들은 연구 재료를 구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공급이 수요를 채운다면 다른 마탑들도 너를 주시하는 눈길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그렇군요.”
엘이나 실피르는 브리온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매직 스톤을 넘기는 대신 방패막이 되어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다. 브리온이 표면적이라 말한 것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의문을 브리온이 풀어 주었다.
“말 그대로 우리에게 매직 스톤의 비법을 알려 주면 좋겠구나. 그리고 우리 마탑 마법사들이 그것을 생산해서 디벨 상단에게 팔겠다. 우리에게 개당 오 골드의 이익만 보장해 주면 된다.”
엘이 피식 웃었다.
“후후! 그리고 마법진을 분석하려는 것도 있겠죠. 안 그런가요?”
“허허! 실피르, 참 자식 하난 잘 두었단 말야? 욘석을 속이기란 불가능한 것 같으니. 허허, 그래. 네 말이 맞다. 기존의 상식을 송두리째 뒤엎는 마법진이 나타났으니 당연히 연구해 보고 싶다. 그런 마음도 있고 우리가 매직 스톤을 생산하게 되면 우리가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떠냐? 너는 안전해서 좋고 우리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음‥‥ 그것도 그러네요.”
그러면서 엘은 실피르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무리 자신 이 매직 스톤을 개발했다고 하나 실피르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왜냐하면 실피르는 아직 엘 본인의 행동을 살피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줘야 하는 엄마였기 때문이다.
엘의 시선에 실피르는 아름다운 웃음을 지었다. 벌써 다 큰 것 같아 조금 서운한 기분도 들었지만 아들이 마탑주와 당당하게 협상하는 모습이 듬직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엘리의 결정을 듣고 싶단다.”
그에 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신 몇 가지 부탁이 있어요.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말해 보아라.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들어주겠다.”
브리온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부탁 정도는 흥정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었다.
매직 스톤 제작 방법을 아는 대가는 그 정도로 컸으니까 말이다.
물론 마법진을 연결하는 중첩 마법진의 정체는 파악하지 믓할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매직 스톤을 제작하면서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수한 지구의 수식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은 이곳과 전혀 소통이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엘은 자신만만했다. 지구의 수학은 아라비아 숫자 즉, 인도 숫자부터 시작하여 대부분이 다른 나라의 수식이 혼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이 절대 수식의 비밀을 풀 수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였다.
“일단 검법을 하나 부탁하고 싶어요. 왕국 도서관을 능가하는 책을 가지고 있으니 검술 교본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기초 검법과 고급 검법 하나씩이요.”
“검법? 검법이야 충분히 있다만‥‥‥ 왜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나?”
엘은 싱긋 웃으며 카이나를 가리켰다.
“카이나가 검을 익히고 있거든요. 기본적인 기초는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마탑의 책보다는 정확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이왕 고급 검법 주는 거 여성에 게 적합한 것으로 주세요.”
카이나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엘이 자신을 위해 부탁하는 것이 몹시 기쁜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브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검술이야 사본이 많으니 몇 개 준다고 해도 괜찮지. 아예 마탑에 있는 검술 사본 하나씩 전부 다 주겠다. 그런데 일단이라고 하는 걸 보면 부탁이 더 있는 듯하군.”
“이왕 받을 거 좀 더 많으면 좋잖아요.”
눈을 반짝이는 엘의 모습에 브리온은 웃음을 터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허허! 그래, 좋다 좋아 뭘 바라느냐?”
“골렘 제작 책을 하나 받고 싶어요.”
그 말에 브리온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조금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음, 골렘이라면 조금 생각해 볼 문제다. 자칫하면 이 나라의 모든 마법사들이 들고일어날 수 있어.”
엘이 피식 웃었다. 브리온의 말을 예상한 듯한 태도였다.
“그럴 리가요. 그래서 매직 스톤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어차피 설계도가 있어도 만들지 못하는 나이트 골렘, 혹시 제가 복원하면 탑주 할아버지에게 당연히 그 방법을 알려 드릴 거고요.”
‘물론 알려 줄 뿐이지, 만들 수 있는 건 장담 못하지요.’
엘이 골렘 설계도를 원하는 것은 육탄전에 약찬 마법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따로 있다.
현재 대륙에 골렘은 존재한다. 하지만 전쟁용이 아닌 말 그대로 일꾼용 골렘이다. 움직임이 느릿느릿하고 굼떠 마법사의 호위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단점을 극복할 골렘이 있다.
바로 골렘 중 최강이라 불리는 나이트 골렘이다.
기사가 타고 조종할 수 있는 나이트 골렘은 한때 기사의 시대를 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마법의 쇠퇴가 일어나 지금은 설계도가 있지만 만들 수는 없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엘에게 방법이 있었다.
엘이 따로 연구한 결과 마법진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지구의 수식이라면 가능할 거라 판단하여 이렇게 브리온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흐음!”
엘의 말에 브리온은 상당히 흥미가 있다는 얼굴을 하였다. 확실히 엘은 그가 보아 온 어떠한 천재보다 뛰어났다.
이 아이라면 혹시 나이트 골렘을 부활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 브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 이라면 혹시 나이트 골렘을 부활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차피 주는 책도 사본인데 괜히 아껴 봤자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좋다. 주겠다. 그럼 되겠지?”
엘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고맙습니다. 꼭 제게 필요했던 거였거든요.”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매직 스톤은 그러한 것을 감수할 정도가 되지. 좋다. 그럼 거래는 성립이다. 계약서는 쓸 필요 없겠지?”
엘이 웃었다.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가 거짓말을 하면 그때부터 마법사가 아니지요.”
“허허! 그렇구나, 그래, 네 말이 맞다. ”
브리온이 탄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마법사라면 말에 언령이 배어 자신의 말을 꼭 지키고야 만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브리온은 약간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실수했구나. 그럼 언제쯤 매직 말해 줄 수 있겠느냐?”
엘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삼 일 뒤에 오겠어요.”
“그럼 기다리겠다. ”
그렇게 이야기는 끝났다. 협상이 끝나자 브리온은 실픽르가 5클래스 마스터에 이른 것을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세레나와 카이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
카이나가 냉랭하게 대하는 통에 조금 소란이 있었지만 브리온은 오랜만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마탑에서 시간을 보낸 엘 등은 시간이 꽤 지나자 마탑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여관을 향해 돌아갔다.
여관을 향해 돌아가는 도중 카이나가 엘의 옷을 붙잡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엘이 바라보니 카이나가 고개를 붉힌 채 조용히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
그 말에 엘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카이나의 붉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붉은 실크 같은 촉감이 손을 간질였다.
“그럼 강해져. 그리고 나와 엄마를 지켜 줘. 알았지?”
“네‥‥‥. ”
“그걸로 된 거야. 카이나도 우리와 같은 가족이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엘은 카이나의 손을 잡았다. 카이나는 부끄러워했으나 그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 행동 덕분에 샐쭉 해진 세레나의 눈을 보고는 엘은 그녀의 손도 잡아 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실피르를 향해 찰싹 달라붙어 웃음을 지었다.
실피르는 그런 엘의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더 없이 평화로운 모습.
이것이야말로 엘이 바라고, 실피르가 바라던 모습이다.
때는 엘의 나이 열두 살, 더없이 행복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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