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64)
5. 루비어스 백작가를 방어하라!
맥셀 왕자의 반란! 그것은 톨리안 왕국을 삽시간에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가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맥셀 왕자를 따라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의 힘은 무려 톨리안 왕국의 국력 절반에 해당했다. 톨리안 왕국의 힘이 응집되어 있는 서부 영지 전체가 맥셀 왕자의 편에 섬으로써 사실상 왕국은 둘로 분열되어 멸망에 치닫는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왕국 서부 영지들은 대부분 제1왕자파 소속이어서 맥셀 왕자를 지지했지만 서부 영지 중 유일하게 제1왕자파에 속하지 않은 영지가 있다. 루비어스 백작령.
바다와 인접하여 풍부한 해산물이 나는 루비어스 백작가는 당대에 이르러 제3왕자파 수장 역할을 할 정도로 그 세력이 커져 있었다. 제2왕자파의 음모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적이 있지만 도리어 보복을 하여 백작령 3곳을 빼앗기도 할 정도로 루비어스 백작가의 힘은 강성했다. 하지만 루비어스 백작령이 진짜 강한 것은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루비어스 백작령이 강한 이유, 그것은 바로 루비어스 백작령 서부에 금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금탑주 엘리미스와 루비어스 백작이 친한 사이라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금탑주는 쓰레기와 다름없는 루비어스 백작의 해산물을 비싼 가격에 사주었고, 정치적 입장에서 뒷받침을 해 주어 루비어스 백작가가 부흥의 깃발을 올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세 백작가가 침공했을 때 직접적으로 돕기까지 했으니 두 곳의 사이가 얼마나 친한지는 다른 나라도 알 정도였다. 그런 루비어스 백작령을 침공하는 군대는 무려 15만에 이르렀다. 총사령관은 맥셀 왕자였고, 부사령관은 테란델 후작과 아스텔 후작이었다. 제1왕자파를 대표하는 테란델 후작은 상급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아스텔 후작 또한 중급에 이른 소드 마스터였다. 게다가 300명의 소드 익스퍼트 기사들이 루비어스 백작령을 공격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에 반해 루비어스 백작령의 힘은 처참할 정도였다. 전 병력을 동원해야 간신히 1만 5천에 이르며, 기사는 불과 10여 명에 이른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소드 마스터를 막을 검사가 없다. 무려 병력이 10배 차이이고, 소드 마스터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맥셀 왕자는 7클래스 마법사. 금탑주가 날고 긴다 하여도 7클래스 마법사와 2명의 소드 마스터면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에 테란델 후작이 골든 나이트의 존재에 염려를 표했지만 맥셀 왕자는 그것에 대한 대책이 있다는 말로 걱정을 축약시켰다. 그러나 실제 방안이 있을 리 없었다. 맥셀 왕자가 믿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실력이었으니 말이다. 8클래스 마스터에 이른 자신의 힘이라면 그랜드 마스터급 골렘과 7클래스 마법사를 상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지크릴도 했다지 않은가?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후후!‘
흑탑주 지크릴이 8클래스 마법사였지만 그것에서도 엄연히 실력 차가 존재한다. 지크릴은 8클래스 마법사였지만 익스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맥셀 왕자, 카로스만은 8클래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다. 익스퍼트와 마스터! 그 실력의 차이는 대단했다. 제아무리 지크릴이 흑마법을 익혀 한층 강한 공격을 펼칠 수 있다고 하나 카로스만을 비롯한 다른 탑주들은 자신들이 지크릴보다 약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자신보다 약한 지크릴이 엘과 골든 나이트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밀리지 않았는데 자신이 밀릴 리 없었다. 때문에 카로스만은 엘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제거할 자신이 있었다.
‘제아무리 강해 봤자 결국 7클래스 마법사이고, 깡통 나이트 골렘이니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진군을 하니 반란군은 마침내 루비어스 백작령에 접어들었다. 루비어스 백작령은 그 전력 자체가 형편없지만 그 방어력만큼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금탑이 들어서기 전까지 루비어스 백작령은 몬스터들과 매년 싸워 왔다. 때문에 성벽을 좀 더 견고하게 쌓을 필요를 느꼈고, 어떻게 하면 몬스터들이 함락시키기 어려울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성벽을 쌓았다. 그렇게 긴 역사를 거친 루비어스 백작령의 성벽 내구도는 톨리안 왕국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침내 반란군은 루비어스 백작령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에 반란군은 곧장 진영을 짜기 시작했다. 루비어스 백작령의 방어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 더군다나 지금 공격하려는 성은 루비어스 백작령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벨리튼 성이었다. 단번에 넘을 수 있을 만한 관문이 아니었다.
“까다롭겠군,”
육안으로도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먼 거리였지만 8클래스에 이른 맥셀 왕자는 성벽이 뚜렷하게 보였다. 옆에 있던 테란델 후작이 맞장구쳤다.
“그렇습니다. 오크 포레스트와 인접했던 저희 영지와 달리 루비어스 백작령은 오크의 침공과 트롤들의 침공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성벽을 다른 곳들보다 훨씬 높게 쌓았고, 언제 고립될지 모르는 것을 염려하여 풍부한 식량을 비축해 놓았습니다. 벨리튼 성은 그런 루비어스 백작령의 성들 중 최고로 견고한 성입니다. 십만의 병사로 백만의 군대를 막을 수 있다고 알려질 정도니 말입니다.”
“확실히 그래.”
맥셀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8클래스에 이른 그에게도 골치 아플 만큼 벨리튼 성의 방어력은 대단해 보였다. 처음에는 ‘마법으로 다 부숴 버릴까?’ 라고 생각했다가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벨리튼 성에는 놀랍게도 대마법진이 새겨져 있던 것이다. 물론 그리 고위급은 아니었기에 7클래스 마법을 연달아 시전하면 뚫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이 왕자로 변장하고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없어진다. 단순히 그렇게 하려면 본래 모습으로 와서 맥셀 왕자를 도와 죄다 태워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영웅은 위기의 순간에서 탄생하는 법. 카로스만은 맥셀 왕자의 탈을 쓰고 톨리안 왕국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반란이 성공하여 혁명으로 탈바꿈하고, 백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의 자리를 차지하면 곧장 전쟁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주변 왕국을 침공할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다른 왕국을 병탄하고, 마침내 몇 배에 달하는 영토를 얻게 되면 제국이라 칭할 것이다. 그 후 황제 자리에 올라 미친 척하고 폭정을 일삼을 것 이며, 백성들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루이아스가 건국한 마도제국에 흡수된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왕국이 단 한 번의 전쟁으로 마도제국에 편입하게 되는 것이다. 연이은 전쟁에 피폐해진 백성들은 맥셀 국왕을 욕할 것이다. 그에 반해 자신들에게 선정을 베푼 루이아스에게는 호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 감정을 갖게 되면 모든 공작은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이다. 영토도 영토일뿐더러 민심마저도 루이아스에게 모조리 기울게 된다.
카로스만은 그것을 노리고 있다. 때문에 이번 전쟁은 매우 중요했다. 맥셀 왕자라는 녀석의 껍데기를 이용하여 영웅의 자리에 오르려면 그런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루비어스 백작령을 칠 때에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15만의 군사로 고작 1만의 군대를 거느린 백작가를 공격하는데 자신이 나선다면 도리어 숫자로 찍어 눌렀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전쟁은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의 능력을 한 번 지켜볼 생각이었다. 자신이 나설 때는 바로 왕국군과 전쟁을 벌이는 때, 그 때 톨리안 왕국에서는 새로운 영웅 한 명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변수라면 금탑주인데, 금탑주가 나타난다면 맥셀 왕자는 그를 죽일 것이다. 금탑주는 자신들에게 방해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이제 시작일 뿐, 아직 이루어진 건 없다.”
맥셀 왕자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모든 것은 그의 계획이라는 범위 안에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벨리튼 성. 그곳 성벽 위에는 로웰린이 서 있었다. 15만 군대가 공격해 온다는 이야기에
1만 군대를 모두 끌고 온 그녀. 그녀는 15만이라는 엄청난 숫자에 초조했는지 옆의 기사에게 물었다.
“왕국에 연락이 왔나요?”
“예! 지금 본 성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려면 최소한 하루는 걸립니다.”
“하루, 하루요.”
로웰린은 하루란 것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상대가 몬스터였다면 그녀가 이렇게 초조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인간이었다. 그것도 같은 나라의 군대였 다. 만약 상대가 순수 병사들로 성을 차지하려 든다면 하루쯤은 간단하게 막아 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기사였다. 성에는 대마법진이 새겨져 있어 마법을 견뎌 낼 수 있다. 마법을 견뎌 낼 수 있다면 마법사들은 그리 겁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기사. 기사들이 성벽을 넘어 성문을 열려고 한다면 루비어스 백작군은 상당한 난처함을 겪을 것이다. 왜냐하면 적들의 기사 전력은 루비어스 백작군의 수십 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드 마스터의 부재는 심각한 것이어서, 소드 마스터가 앞장서서 돌격해 오면 그를 견제할 수 있는 이가 없다.
“하지만 하루야. 하루만 버티면 지원군이 와. 그때까지는 버텨야 해.”
그녀의 눈에 굳은 결의가 떠올랐다. 제아무리 루비어스 백작가가 부흥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하지만 그 힘은 아직 여느 백작가보다 딱히 뛰어나지 않았다. 도리어 제2왕자파의 음모로 기사들을 잃고, 병사들을 잃었기에 그 전력은 현저히 감소해 있는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루비어스 백작가의 힘이 강해졌다고 말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하나다. 금탑과의 친밀한 관계 때문이다. 지금 벨리튼 성을 노리는 적들의 세력이 무시무시한 것을 자신이 모를 리 없다. 기사 전력은 수십 배 차이였고 군사력도 15배 차이였다. 금탑에 도움을 청해야 하지만 공교롭게도 금탑에서는 당분간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엘이 8클래스의 경지에 올라 당분간 수련에 전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심하게 방치한 것은 아니다. 엘이 곧장 조치를 취하여 왕궁과 루비어스 백작가로 직통할 수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해 준 것이다. 엘이 말한 것은 하나다.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달라. 그가 당부한 것은 그거다. 지금 엘에게 있어서 수련할 시간은 반드시 필요했다. 8클래스의 경지에 올랐지만 정작 익힌 마법은 하나도 없을뿐더러 월등히 향상된 힘에 적응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그 힘에 적응하고, 새로운 마법 체제를 확립해야 8클래스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랬기에 엘은 사촌 누나인 로웰린의 부탁에도 거절하고 당분간 버텨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왕국의 도움이 있다면 로웰린이 충분 히 반란군을 막아 낼 수 있을 거란 계산이 깔려 있었다.
“후우!”
로웰린은 눈에 마나를 집중하여 적들의 모습을 살폈다. 그녀가 살핀 제1왕자파의 모습은 들려오는 이야기와 사뭇 달랐다. 소문에 듣길, 제1왕자파는 자신들이 반란군임을 깨닫고 그 사기가 무척 저하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길, 제1왕자파의 사기는 무척 높아 보였다. 아니, 마치 사기가 최고조로 올라간 상태처럼 보였다.
“소문이 틀린 건가?”
지니고 있던 정보와 전혀 다른 모습이니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을 만하다.
“적들의 사기가 높으면 불리한데……“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군사와 기사였다.
“기사들도 충분히 성벽을 의지하여 버텨 낼 수는 있어. 희생은 있겠지만, 하지만 소드 마스터는 견제할 수 없어……“
적의 진영을 살피던 그녀의 표정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진영을 짜고 식사를 한 반란군의 군대 진영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적들이 공격하려는 것이다.
“굳이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지.”
맥셀 왕자는 병사들에게 식사를 하게끔 하고 곧장 공격 준비를 하게 했다. 지금 루비어스 백작가는 반란군에게 있어 별로 위협이 되지 못하는 존재였다. 저 높은 성벽과 곳곳에 설치된 엄폐물들은 분명 일반 병사들에게 위협이 되었지만 소드 마스터란 존재에게는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들까지는 어떻게 막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사들이 마나를 사용하지만 성벽에 의지하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병사들이 힘을 합한다면 기사들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는 다르다. 그들은 기사처럼 마나를 사용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벽을 넘은 존재. 그들에게 있어 성벽은 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당장 지면을 박차고 도약하면 성벽의 중간까지 뛰어오를 수 있고, 성벽 위에 떨어져도 큰 부상을 입지 않는데, 어찌 성벽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때문에 맥셀 왕자는 소드 마스터를 앞세워 곧장 벨리튼 성을 넘어 빠르게 루비어스 백작령을 접수할 생각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성벽을 넘는 일은 테란델 후작이 하라.”
“예, 전하.”
테란델 후작이 고개를 숙였다. 상급 소드 마스터인 테란델 후작이라면 벨리튼 성을 넘는 대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그는 몬스터들의 침공을 겪으면서 풍부한 실전을 거쳤고, 대규모 싸움을 자주 한 탓에 반란군 첫 전쟁의 통솔자로 적합했다.
“모두 적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주자.”
테란델 후작은 선봉군으로 선발된 기사 50명과 5만의 병사들을 이끌었다. 이 정도로 벨리튼 성을 넘는 데 충분할 것이다.
“소드 마스터의 유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적에게 알려 주는 첫 싸움이 되겠군.”
맥셀 왕자의 입에 미소가 맺혔다.
“오는군요.”
로웰린은 적들의 선봉군이 앞으로 나오자 긴장한 얼굴로 살폈다. 서서히 벨리튼 성으로 다가오는 병사들의 숫자는 어림잡아 5~6만 정도로 보였다. 일반 병사만으로 성을 차지하려면 그 숫자는 현재 벨리튼 성에 있는 1만 군대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선봉군을 이끄는 존재를 보게 되자 로웰린의 안색이 사색으로 변했다.
“테란델 후작……“
왕국제일기사인 라이어스 공작의 뒤를 이어 트겐발리 공작과 함께 왕국의 두 번째 실력자로 알려진 기사. 그 경지가 상급 소드 마스터에 이르렀다고 하며, 풍부한 몬스터들을 상대한 경험은 테란델 후작의 최대 강점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선봉장이라니……“
그녀는 맥셀 왕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보통 선봉장은 공적을 차지하기 위한 남작이나 자작이 차지한다. 때로는 백작도 차지하는데, 보통 후작이 선봉장이 되는 경우는 없다. 왜냐하면 선봉장은 무척 전사율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선봉장으로 임명된 이들의 실력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테란델 후작같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검사가 선봉장이라면 죽이려 해도 죽일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당장 그를 맞상대할 기사가 있다면 모를까, 루비어스 백작령에는 그를 상대할 검사가 없기 때문이다. 5만에 이르는 군대들이 벨리트 성 앞을 가득 메우며 접근해 왔다. 그리고 일정 거리에서 멈춰 서고, 테란델 후작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성벽 위에 있는 로웰린을 정확히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왕국의 후작 테란델 후작이다.”
웅성웅성. 테란델 후작의 소개에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작게 수군거렸다. 병사들도 잘 안다. 테란델 후작이라면 왕국을 대표하는 소드 마스터 중 한 사람인 것이다. 로웰린이 나섰다. 그녀는 테란델 후작이 앞으로 나설 줄 몰랐기에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테란델 후작을 꾸짖듯 말했다.
“반란을 일으킨 주범 중 하나가 당당하게 후작이라 주장하는 게 조금 우습군요. 저는 톨리안 왕국의 루비어스 백작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왕궁에서 몇 번이나 얼굴을 본 사이지만 로웰린은 테란델 후작을 모르는 척했다. 그는 어차피 반란군. 굳이 아는 척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로웰린의 일침에 테란델 후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한 방 먹었군. 과연 왕국을 대표하는 여장부 중 하나로세! 하지만 반란군이라는 말은 좀 거슬리는군. 왜냐하면 나는 반란군 소속이 아니라 이 나라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일어선 혁명군 소속이기 때문이네.”
“흔히 성공하면 혁명군, 패배하면 반란군이 되는 법이죠. 저는 이번 당신들의 반란이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네요.”
로웰린은 테란델 후작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러자 테란델 후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네. 우리의 혁명은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네. 왜냐하면 우리의 전력은 왕국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방대하기 때문이네.”
테란델 후작의 말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다. 그 진심을 느껴서일까? 병사들의 표정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본래 드러난 것보다 숨겨져 있는 것이 두 무서운 법이다. 만약 드러난 것보다 반란군의 힘이 훨씬 강하다면? 상상만 해도 오싹했다. 하지만 로웰린은 그 말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믿을 만한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왕국 측에는 금탑이 있어요. 성국과 블리어드 제국의 합공도 막아 낸 금탑! 과연 금탑이 합류하면 당신들이 무사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말은 병사들의 불안한 표정을 말끔하게 걷히게 하기에 충분했다. 금탑! 이미 금탑은 전설이 되어 있었다. 대륙을 대표하는 두 국가의 합공도 막아 낸 금탑이 자신들의 편인데 무엇이 두려우랴? 병사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걷힘은 물론 한층 사기가 충천된 표정을 하였다.
“하, 하하! 이거 정말 한 마디도 지지 않는군.”
테란델 후작은 자신의 말에 노련하게 대처하는 로웰린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된 이상 대화는 어렵다. 그렇다면 행동으로 보여 주는 수밖에.
“금탑을 믿는 건 대충 이해가 가네. 하지만 곧 그걸 후 회하게 될 것이네.”
“누가 후회할지는 뚜껑을 열어 보면 알겠지요.”
로웰린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겠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반란군에게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왕국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혁명군이여! 불행하게도 저들은 이 왕국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적에게 현혹되어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바로잡을 위대 한 혁명군! 저들이 스스로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을 인지시켜 줄 의무가 있다. 모두 공격하라! 저들의 피로써 누가 옳은지 증명하라!”
“전군 공격!”
50명에 이르는 기사들이 모두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와아아아아!”
공격 명령에 반란군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테란델 루작이 존재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맥셀 왕자가 자신을 선봉으로 내세운 것.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이 제일 먼저 성벽을 넘고 적들을 휩쓸어 성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적에게는 소드 마스터가 없다. 그렇다는 건 자신을 해할 존재는 아무도 없다는 뜻. 테란델 후작이 빠르게 성벽을 향해 접근해 왔다.
“막아! 모두 목숨을 걸고 이곳을 지켜라!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다른 곳도 지키지 못한다! 궁수는 모두 선두에 달려오는 저자를 쏴라!”
로웰린은 테란델 후작이 선두에 달려오는 걸 보고는 소리쳤다. 그가 성벽을 넘어오면 자신들은 대항할 수단을 잃는다. 그를 어떻게든 견제하려면 성벽에 근접하지 못한 지금밖에 방법이 없다.
피 비비비빙!
로웰린의 명령에 수백 발의 화살이 테란델 후작을 노리고 쏘아졌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보며 테란델 후작은 손에 든 검을 휘둘렀다.
쓰쓰쓰!
그러자 솟아오르는 오러 블레이드! 테란델 후작은 그것을 휘둘러 자신에게 향하는 화살들 을 쳐냈다.
팅! 티디딩!
매끄럽게 검을 놀리며 화살들을 쳐 내는 테란델 후작의 모습은 가히 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백 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지만 모두 그의 몸을 채 스치지 못한 채 오러 블레이드에 베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점점 성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초조해진 로웰린이 외쳤다.
“막아! 어떻게든 접근을 막아야 한다! 궁수들은 계속해서 활을 쏘고 기사들은 오러를 사용하여 투창을 한다.”
로웰린의 명령에 병사들은 물론 기사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계속해서 테란델 후작에게 화살을 쏘았다. 그리고 그 틈을 타 기사들은 랜스보다 3배 정도 작은 투창 용 재블린을 쥐고 오러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재블린에 충만한 마나가 서리기 시작했다. 로웰린 본인 또한 재블린을 쥐고서 오러를 주입하고는 외쳤다.
“투창!”
후웅!
10개가 넘는 재블린이 테란델 후작에게 투척되었다. 투척된 재블린은 10발에 2~3발 정도 테란델 후작에게 가는 수준과는 달랐다. 모두가 정규 기사였고, 실력도 녹록지 않았기에 재블린은 정확히 테란델 후작을 노리고 있었다. 오러를 머금어 강한 힘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쏘아진 힘과 회전력이 더해져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채 테란델 후작에게 향하고 있었다. 단순히 관통력만 따지면 오러 블레이드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허!”
테란델 후작도 날아오는 재블린을 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화살은 무리 없이 쳐 낼 수 있지만 저것은 다르다. 정확하게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재블린. 오러를 머금고 가속력과 회전력을 머금었기에 정면으로 막는다면 위험해질 것이 분명했다. 테란델 후작은 재빨리 상황 판단을 했다. 그의 몸이 살짝 기울어졌고, 동시에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러 재블린의 측면을 정확하게 튕겨 내기 시작했다.
땅! 따당!
테란델 후작의 검은 정확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재블린들을 순간 옆으로 쳐 내 충격을 최소화하고 재블린을 피해 내고 있던 것이다
“이럴 수가.”
로웰린은 테란델 후작이 재블린마저 손쉽게 피해 내는 것을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비단 그만이 문제인 게 아니라 그의 뒤를 기사들이, 그리고 그 뒤를 5만의 병사들이 파죽지세로 몰려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테란델 후작에 의해 성벽이 정리되고, 성문이 열려 성이 함락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는 안 돼!”
로웰린은 어느새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 테란델 후작을 보며 검에 오러를 뿜어냈다. 그녀의 검에 흐릿하게 맺히는 오러 블레이드! 최상급 경지에 올라 어느 정도 오러 블레이드를 시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테란델 후작이 성벽을 넘자 곧장 검을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다.
“훗!”
하지만 그 기습도 그의 예상 범주에 있었던 것일까? 테란델 후작은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검을 들어 로웰린의 검과 부딪쳐 나갔다. 그의 검에는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가 맺혀 있었다. 로웰린의 검과 테란델 후작의 검이 부딪쳤다.
쩌엉!
파사사!
로웰린의 검에 서린 오러 블레이드가 맥없이 부서져 나갔다. 경지의 차이가 확실했고, 지닌 오러의 양 또한 차이가 확실했던 것이다.
“아악!”
로웰린은 부서지는 오러 블레이드로 인해 손아귀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아직 소드 익스퍼트이면서 내 검을 버텨 내는 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그녀는 속절없이 밀렸지만 테란델 후작은 약간 감탄을 한 듯하다. 왜냐하면 그녀의 나이에 오러 블레이드를 흉내 낼 수 있다는 건 그녀가 보통 재능을 지닌 여인이 아니란 걸 뜻했기 때문이다.
‘순순히 내 며느리가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가족이 되었을 테지만 지금은 적일 뿐.’
로웰린은 결코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테란델 후작이다. 미래의 될 성싶은 싹은 일찌감치 잘라 버리는 것이 옳다. 테란델 후작의 검에 서린 오러 블레이드가 이글거리며 선명한 푸른빛을 뿜어냈다. 그리로 그것은 곧장 로웰린의 머리를 양단해 나갔다.
‘끝이다!’
그의 눈에 승리감이 감돌았다. 로웰린을 벤다면 루비어스 백작령은 그대로 무너진다! 첫 전쟁을 승리로 장식하고 맥셀 왕자를 왕으로 추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순순히 그가 로웰린을 죽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갑자기 뻗은 검이 로웰린을 향해 휘둘러지는 테란델 후 작의 검을 튕겨 낸 것이다.
꽈앙!
검이 충돌하면서 무시무시한 폭음을 냈다.
“큭!”
“윽!”
두 신음이 들려왔다.
“어떻게……“
테란델 후작은 갑자기 자신의 검을 막아 내는 이가 나타나자 경악한 눈을 하였다. 왜냐하면 자신의 검을 막아 내는 찰나의 순간에 상대방의 검에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났던 것이다.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테란델 후작은 똑똑히 보았다. 그의 눈이 검이 비집고 들어온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뜨였다.
“어, 어떻게!”
테란델 후작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는지 눈을 깜빡 이며 상대를 살폈다. 그러나 몇 번을 반복해도 변함이 없었다. 지금 자신의 검을 받아 낸 검사! 그 정체는 바로 젊디젊은 여인이었던 것이다. 정열을 상징하는 붉은 머리와 침착하게 가라앉은 눈 그리고 검에 솟아난 오러 블레이드! 그녀는 다름 아닌 엘의 여인인 카이나!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가 차분한 기색으로 테란델 후작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괜찮아요, 언니?“
카이나는 테란델 후작을 경계하면서 로웰린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으, 음! 난 괜찮아. 구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넌…… 아니?!”
로웰린은 자신을 구해 준 이가 카이나임을 깨닫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다가 그녀의 검에 서린 오러 블레이드를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 또한 테란델 후작과 마찬가지로 경악에 빠진 것이다.
“너, 너 어떻게……“
너무나 놀란 나머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로웰 린. 그럴 수밖에 없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그녀와 자신은 검을 나누던 사이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실력 면에서 자신이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오러 블레이드를 시전하고 있다니? 순간 로웰린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지 착각을 할 정도였다. 놀라움과 여러 가지 감각으로 뒤범벅된 로웰린의 시선에 카이나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중에 운이 좋아 소드 마스터에 오를 수 있었어요. 아,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카이나는 정면을 응시했다. 벌써 반란군과 루비어스 백작군과의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벽 위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견제하느라 전투 의 양상은 유리할 듯하면서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일단 저자를 제거해야 해요. 그러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할게요.”
카이나는 침착한 표정으로 테란델 후작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러자 테란델 후작도 긴장하며 검을 겨누었다. 지금 그의 심정은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눈앞에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보라! 기껏해야 20대 초반, 많이 쳐주어야 20대 중반 정도가 아닌가? 그런데 소드 마스터라니! 대륙 어디에서도 이 나이에 소드 마스터에 오른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금탑주 또한 20대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와 동급인 7클래스의 경지에 올랐으니까.
“가만.”
금탑주를 떠올리는 순간 테란델 후작의 뇌리에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20대 소드 마스터. 그런 존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다. 더군다나 지금 전쟁은 톨리안 왕국의 내전. 다른 왕국 소속이라면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전쟁에 개입할 만한 곳 하나를 테란델 후작은 잘 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금탑?“
대답은 로웰린이 해 주었다.
“그녀는 금탑의 소속입니다. 이 전쟁에 금탑도 끼어들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죠.”
로웰린이 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녀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었다. 엘이 카이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는 자신이 당분간 수련을 해야 하니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카이나를 보낸 것이다. 소드 마스터에 이른 카이나는 당장 위기에 처한 루비어스 백작가에 합류해도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루비어스 백작령을 침공한 반란군 중 소드 마스터가 있다는 걸 알았기에 그녀를 보낸 것이다. 카이나 또한소드 마스터에 갓 올라 아직 미흡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도 말이다.
“과연, 소드 마스터이긴 하군,”
테란델 후작은 카이나의 검에 솟아난 오러 블레이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차분한 오러 블레이드를 시전할 정도니 이 여인은 두말이 필요 없는 소드 마스터가 분명했다. 하지만……
“분명 소드 마스터이긴 하지만 그 실력이 모두 비슷한 것은 아니지. 소드 마스터에도 상당한 실력 차이가 존재 한다. 내가 오늘 그것을 알려 주겠다.”
분명 20대 초반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에 오른 것은 대단하지만 경험, 실력 모든 면에서 자신이 이 여인보다 우월하다. 결코 뒤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수십 년의 경험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테란델 후작은 몬스터 침공에 맞서면서 끊임없이 오러를 연마하였고, 덕분에 그의 오러 위력은 라이어스 공작과 맞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에 반해 갓 소드 마스터에 오른 카이나는 그렇지 못 할 터. 초급 소드 마스터와 상급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 위력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것은 카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랬기에 카이나는 신중한 표정으로 테란델 후작을 경계했다. 두 소드 마스터의 숨 막히는 대립이 첨예하게 이루어졌다.
‘음! 나이는 어리지만 대단하군.’
테란델 후작은 경계의 자세를 취하는 카이나를 보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모든 면에서 자신이 우월한데다가 선공으로 기선을 제압하면 승부는 자신의 승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카이나가 검을 겨누고 있는 방향과 살짝 옆으로 몸을 틀고 있는 그녀의 몸은 테란델 후작의 검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한없이 작게 만들고 있었다. 자신이 공격을 가하면 곧장 역공을 가할 수 있는 자세. 첫 공격을 하면 도리어 자신이 선공을 빼앗기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었기에 테란델 후작은 함부로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상급 소드 마스터. 과연 강해.’
속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테란델 후작과 다르게 카이 나는 상대가 뿜어내는 기세에 자신이 압도되는 걸 느끼며 식은땀을 한 방울 흘렸다. 과연 상급 소드 마스터의 실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실력 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그녀가 선공을 가해 기선을 잡고 몰아붙여야 하는데 상대방의 틈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게 남은 무기는 있지만 일단 내 실력으로 상급 소드 마스터와 맞붙어 보고 싶어.’
카이나에게는 본신의 실력을 더욱 강하게 해 줄 여러 가지 실용적인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소드 마스터에 오른 자신이 어느 정도 실력을 지니고 있는지 테란델 후작을 통해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두 소드 마스터가 대립할 때 전투는 점점 루비어스 백작군에게 승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기사들을 처치하고 성문을 열어야 할 테란델 후작이 제 역할을 못하니 벨리튼 성의 험준한 성벽을 의지하고 싸우는 루비어스 백작군에게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던 것이다. 이대로만 계속 전세가 유지된다면 루비어스 백작군의 승리가 확실시될 터. 하지만 로웰린은 아직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카이나가 테란델 후작을 막아 내지 못하면 어려워진다.’
카이나가 소드 마스터에 올랐지만 과연 어느 정도 실력 일지 몰랐기에 로웰린은 불안했다. 만약 카이나의 실력이 부족하다면 테란델 후작에게 별 다른 위협이 되지 못한 채 패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전세는 역전될 것이고, 그 결과는 베이튼 성의 함락이다. 그것을 막아야 하기에 로웰린은 속으로 간절히 기원했다.
‘제발 테란델 후작을 막아 줘, 카이나! 지금 넌 우리의 희망이야!’
테란델 후작이 힐끗 시선을 돌려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상황이 안 좋았다. 그의 가슴속에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면 불리해지는 건 나다.’
성벽에 의지하여 전투를 벌이는 루비어스 백작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였다. 만약 이대로 자신이 성문을 열지 못한다면 군사들의 사기는 꺾일 것이고, 결과는 섬 함락의 실패로 이어질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어떤 함정이 오든 간에 상관하지 않겠다. 일단 이 전투에서 이겨야 하니까.’
마침내 마음을 굳힌 테란델 후작의 검이 움직였다. 그의 검이 대기를 가르며 카이나를 베어 왔다. 놀랍도록 빠른 속도였다.
“맞선다!”
카이나는 테란델 후작의 검을 정확하게 보며 그의 검과 부딪쳐 나갔다. 차앙!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두 오러가 폭발 할 듯 어그러졌다. 하지만 역시 시간의 힘은 극복하기 힘든지 카이나의 오러 블레이드가 테란델 후작에 비해 밀리고 있었다. 그때, 돌연 카이나의 검이 마치 미끄러운 것에 밀려가 듯 테란델 후작의 검을 타고 찔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헉!”
갑작스러운 공격에 화들짝 놀란 테란델 후작이 검을 치켜 올렸다. 그러자 테란델 후작의 목을 찔러 가던 검의 궤도가 바뀌며 튕겨 나갔다. 그런데 반해 테란델 후작은 검을 튕긴 반동을 이용하여 카이나를 베어 갔다.
쐐액!
충만한 오러를 머금은 검의 예기는 닿지 않았음에도 살갗을 벨만큼 예리했다.
“이런!”
카이나는 테란델 후작의 공격에 살짝 당황했다. 여태껏 그녀가 겪은 실전 중 이런 공격을 펼친 검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지만 완벽하게 피하지 못한 나머지 경장 갑옷 옆구리 부분이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슈악!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을 베어 버리는 오러 블레이드였기에 그녀의 갑옷은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다.
“음!”
회심의 일격을 피하자 테란델 후작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스쳤다. 생각보다 카이나가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또 오는 법이지.”
한 번의 기회를 놓쳤다고 안타까워할 이유가 없다. 기회는 앞으로도 계속 올 테니 말이다.
카이나는 오러 블레이드가 스친 자신의 옆구리를 바라보았다. 살짝 스쳤지만 갑옷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버렸다. 만약 자신의 반응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내 실력은 여기까지구나.’
상급 소드 마스터와의 격차는 컸다. 게다가 아직 자신은 소드 마스터의 힘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실전도 부족하며, 오러의 위력도 부족하다. 결국 승산이 없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지.’
카이나는 가슴 부분에 단 브로치에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전어를 외쳤다.
“마테리얼라이즈(Materialize)!”
파아앗! 카이나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가슴 부분에 달린 브로치가 푸른 광채를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휘감는 전신 갑옷! 푸른 광채가 사라졌을 때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얼굴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무장된 전신 갑옷 차림이었다.
“이건……“
테란델 후작은 카이나를 감싼 갑옷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매직 아머?“
들어 본 적이 있다. 그 방어력은 오러조차 견뎌 낼 수 있다는 마법의 갑옷을…… 금탑 출신 소드 마스터는 매직 아머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이런 것을 숨기고 있었나.”
매직 아머를 착용했다면 자신의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도 상당히 감소시킬 것이다. 가뜩이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 골치 아픈 방어력을 손에 넣은 것이다.
“하지만 못 이길 것도 없다.”
방어력이 강하다고 하나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은 자신이 위다. 매직 아머가 견고하다고 한다지만 오러 블레이드에 의해 결국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카이나가 숨겨 두고 있는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디유 레임!”
우웅! 외침과 함께 빛에 휩싸인 그녀의 검! 오러 블레이드에도 견딜 수 있는 디유 레임을 시전한 것이다.
“저건 뭐지?“
테란델 후작은 카이나의 검에 일어난 빛이 무엇인지 몰랐다. 물론 자신에게 상관없는 일이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카이나를 베는 것이기에. 그의 검에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지며 카이나에게 달려 들었다. 카이나는 디유 레임에 오러 블레이드를 시전하여 테란델 후작의 검에 맞서 나갔다. 차앙! 창! 창!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칠 때마다 부서진 오러의 파편들이 찬란한 빛을 발했다. 두 소드 마스터는 검을 부딪치며 검격을 교환하더니, 순식간에 30여 합을 겨루기 시작했다. 테란델 후작은 카이나와 검을 나누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강하다! 분명 나보다 부족한 실력이었는데 이렇게 강해지다니. 게다가 오러의 위력도 나보다 약했다. 그런데 대등하다니.’
아까 처음 충돌했을 때 카이나의 오러는 테란델 후작보다 역력히 약했다. 그런데 지금은 밀리기는커녕 팽팽한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설마 아까 전 검에 일어난 빛 때문인가?’
테란델 후작의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그사이 카이나와 그는 검을 나누었고, 둘의 대결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보다 강해. 그리고 이대로 가다가 내가 당하겠어,’
그리고 검을 나누면 나눌수록 카이나는 자신이 밀릴 거라는 걸 깨달았다. 오러의 양은 카이나가 테란델 후작보다 월등히 많이 보유하고 있다. 장기전으로 간다면 분명 카이나가 유리해질 것임이 분명했으나 테란델 후작도 수십 년 전에 소드 마스터에 올라 축적한 오러의 양이 만만치 않았다. 더군다나 검을 나누면서 검을 응용하는 면에서 자신이 부족함을 느꼈다. 이러다가는 지구전으로 가는 게 아니라 검초에 져서 패하게 될 것이다.
‘젠장!’
서서히 승기를 잡아 가고 있음에도 테란델 후작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전장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또한 이대로 싸움을 계속 벌이면 자신이 이길 것이 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당장 제압할 수 없다는 면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가 이 여인을 제압하려면 최소한 몇 시간은 걸릴 것이 분명했다. 승리는 확신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선봉군은 패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선택해야 했다. 이 여인을 죽이느냐, 아니면 물러나느냐. 대답은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다. 지금 자신이 후퇴 명령을 하지 않으면 기사들이 밀릴 것이 분명했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루비어스 백작가 기사들에게 합공을 받을 것이다. 결국 그는 다 잡은 고기를 놓아줘야만 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큭! 어쩔 수 없군.”
입술을 질끈 깨문 그는 강한 힘을 담아 카이나를 밀어 냈다.
쾅!
“읏!”
큰 폭음과 함께 카이나가 뒤로 밀려났다. 테란델 후작도 뒤로 물러났는데, 그는 그 반동을 이용하여 성벽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쉴 새 없이 공격을 펼치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후퇴한다! 오늘은 이만 후퇴한다!”
“후퇴하라! 후퇴하라!”
테랄델 후작의 외침에 기사들이 후퇴를 명령했다. 지휘관들의 명령에 병사들이 물살처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루비어스 백작군은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만세! 우리가 승리했다!”
그리 길지 않은 전투였지만 정말 힘들었다. 적들은 자신의 몇 배였고, 뒤에 10만에 이르는 대군이 버티고 있으니 병사들에게 심리적 압박이 상당했던 것이다. 반란군이 뒤로 물러나자 병사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자리에 틸썩 주저앉는 이가 다반사였다. 지휘관들은 그런 병사들을 타박하지 않았다. 자신들도 긴장감이 풀려 주저앉고 싶을 정돈데 직접 전투를 치른 병사들은 오죽하겠는가.
“카이나!”
전투가 끝나자 로웰린은 곧장 카이나를 찾았다. 그녀는 무사한 카이나의 모습을 보며 안색에 화색이 돌았다.
“다행이야! 어떻게 된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다고!”
로웰린의 말에 카이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계속 전투를 했다면 졌을 거예요. 걱정해 주신 덕분에 무사했어요.”
카이나의 말에 로웰린이 기쁜 기색을 맘껏 드러내며 답했다.
“고마워! 카이나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 성은 적들에게 넘어갔을 거야. 정말 고마워! 그런데 다치지는 않았니?”
카이나의 상대는 톨리안 왕국에서 이름 높은 테란델 후작이다. 상급 소드 마스터로 이름 높은 그에게 카이나가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로웰린의 걱정에 카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몇 군데 자상이 있고 크게 다치지는 않았어요. 이런 것은 힐링으로 치료가 가능해요.”
카이나는 어느새 디유 레임이 풀린 매직 소드를 들어 상처 입은 곳에 힐링을 시전하였다. 로웰린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카이나가 상처를 모두 치료하자 그녀를 이끌었다.
“힘든 싸움을 벌였으니 좀 쉬어. 내가 안내할게.”
카이나는 자신을 잡아끄는 로웰린의 심정을 이해했는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제가 어떻게 소드 마스터에 올랐는지 궁금하겠지요.”
“너무 노골적이었나? 호호!”
잠시 멈칫하더니 웃음을 짓는 로웰린. 역시 카이나가 어떻게 소드 마스터에 올랐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가서 이야기해 드릴게요. 그럼, 안내해 주세요.”
흔쾌히 이야기해 주겠다는 말에 로웰린의 안색이 밝아 졌다.
“응! 나에게 맡겨!”
그 말과 함께 로웰린은 카이나를 쉴 곳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루비어스 백작군과 반란군의 첫 전투는 백작군의 힘든 승리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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