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86)
7. 금탑주를 사칭하는 사기꾼
백탑주 유클레이와 성공적으로 동맹을 맺은 엘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금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엘이 금탑주로 가자 많은 사람이 엘을 반겼다.
“어서 와, 엘리!”
실피르부터 시작하여,
“어서 오세요, 엘님.”
“너무 늦으셨어요.”
출장 나간 남편을 다소곳이 받아들이는 듯한 세레나와 카이나의 태도,
“탑주님, 명하신 명령을 완수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매직 나이트들까지 말이다. 엘은 그들의 환대에 오랜만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반갑습니다, 여러분들. 응?“
매직 나이트에게 시선을 주던 엘은 12명의 매직 나이트 중 한 사람이 부족함을 느끼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엘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마이더가 설명했다.
“모스 대장님은 아직 조건에 부합되는 아이들을 찾아 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하기야 제가 내세운 조건이 쉽게 이룰 수 있는 조건이 아니지요.”
확실히 자질이 뛰어나면서 고아인 아이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나는 것처럼 고아이면서 자질 있는 아이들이 흔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흐음, 하지만 시기가 촉박한데.”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지금 시기가 별로 좋지 않아 금탑의 소속원이라는 이유로 루이아스에게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랬기에 지금쯤이면 모두들 임무를 완수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요구가 예상외로 까다로웠던 것이다.
“좋아. 어쩔 수 없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엘은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모스를 돕기로 말이다. 엘은 실피르 등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모스 경을 도와야 할 것 같아. 그러니 길지는 않겠지만 기다려 줘.”
그리고 아이넨스와 엘리엔에게 시선을 옮겼다.
“제가 없는 동안 금탑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끄덕.
엘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안심하고 금탑을 떠날 수 있었다.
스팟!
텔레포트에 휩싸여 엘이 모습을 감추자 세레나와 카이나가 거의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야속해도 이렇게 야속한 사람이 또 없었다. 엘이 모습을 감추자 실피르가 앞으로 나서며 아이넨스와 엘리엔에게 말을 건넸다.
“오랜 여행으로 지치셨을 거예요. 편안히 쉬세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월트만 왕국은 대륙 북서부에 위치한 소국이다. 본래 대륙 북서부는 기름진 옥토가 많아 부유한 왕국이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 월트만 왕국은 그런 왕국들에 비해 상당히 가난한 왕국이었다. 바로 기름진 평원을 인근 왕국들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트만 왕국은 북부에서 국력이 강한 축에 속하는 퓨린 왕국과 레이어드 왕국 사이의 요충지로서 국토의 90%가 간지로 이루어져 있다. 국토에 별다른 광물도 나지 않고, 단지 나라가 유지될 정도의 철광만 존재했기에 퓨린 왕국과 레이어드 왕국도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월트만 왕국을 침공하지 않았다. 그러했기에 철광에서 나는 철로 월트만 왕국은 유지되고 있었고, 인구가 채 10만도 되지 않는 월트만 왕국이 긴 세월 명맥을 유지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후, 탑주님의 명령이 이토록 어려운 거였다니.”
월트만 왕국에서 몇 존재하지 않는 영지 중 하나인 하이엔 백작령에 위치한 여관에서 모스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엘의 명령을 받고 세상에 나와 자신의 뒤를 이을 만한 재목을 찾기에 바빴다. 그가 배정받은 영역은 레이어드 왕국을 시작으로 월트만 왕국과 퓨린 왕국까지였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는 세 국가를 돌아다니며 엘이 내세 운 조건에 걸맞은 인재를 찾기에 바빴지만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자질이 뛰어나면서 고아인 아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은 못한 것. 더군다나 다른 매직 나이트들은 모두 임무 수행을 완료했는데 자신 혼자 실패를 하다니……
“후, 운이 나쁜 거라고 하기에는 차마 변명도 안 되겠군.”
끼익.
그가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 있을 때, 여관 문이 열렸다. 여관 안에 들어온 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평범한 여행복을 입었지만 준수한 얼굴에 금발, 거기에 푸른 눈……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의 모습이었기에 모스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탑……”
“쉿!”
재빨리 모스의 말을 가로막은 엘이 손을 저어 보이자 말을 끝맺지 않았다. 모스는 엘이 자신의 맞은편에 털썩 앉자 한껏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여기는 어쩐 일로……”
“모스 경이 고생한다는 말을 들어서 말입니다. 마침 할 일을 모두 끝마친 참이라 도우러 왔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엘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편안한 미소였다. 전혀 자신을 책망하지 않는 엘의 태도에 모스는 절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후!”
모스는 그런 엘의 모습에 절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는 그동안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데에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엘은 시원한 차 한 잔을 한 모금에 비워 내고는 들이켜며 말했다.
“일단 주변을 둘러보도록 하지요. 제가 내세운 조건은 반드시 지켜야 할 전제 조건이 아니니까요. 어느 정도 융통성을 보인다면 금방 조건에 부합되는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이엔 백작령은 분지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에 대부분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엘과 모스는 하이엔 백작령 곳곳을 둘러보았다. 주로 빈민가 쪽을 둘러봄으로써 부합되는 인재를 찾아보려 했으나 자질이 뛰어난 아이는 없었다. 워낙 좁은 영지여서 하루 만에 모두 다 둘러볼 수 있었다.
“과연, 힘든 일이었겠군요.”
처음 만났던 여관에 마주앉은 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검을 다루는 기사가 아닌 엘로서는 누가 자질이 뛰어난 지 한눈에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대신 마나에 대한 자질이 뛰어난 아이들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나마 오늘 본 아이들 중 그런 아이들도 없었다. 출신이 미천하면서 자질이 뛰어난 것. 그런 경우는 거의 없던 것이다. 엘은 오늘 왜 평민 출신 소드 마스터가 그렇게 드문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지.’
엘은 모스를 바라보며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모스는 매직 나이트의 대장이다. 매직 나이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으며, 통솔력이나 그 밖의 것도 매직 나이트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그런 그가 엘이 내린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알게 모르게 후일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엘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엘로서는 반드시 자질이 뛰어난 아이를 찾아 모스의 체면을 세워 주어야 했다. 모스는 엘이 생각에 빠진 모습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탑주님께는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여 이런 일을 하게 만들고……“
“음, 아니에요. 단지 제가 돕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모스 경은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요.”
엘의 말에 모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식당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의 내용은 놀랍게도 엘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봐, 이곳 하이엔 영지에 금탑주가 왔다면서?”
“월트만 왕국에 볼일이 있다면서 왔다더군.”
“허어, 금탑주 같은 인물이 어째서 이런 척박한 왕국에……“
그들의 이야기에 엘과 모스의 귀가 쫑긋 섰다. 엘은 속으로 경악했다.
‘내가 이곳에 온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도대체 누가 퍼뜨린 거야?’
금탑의 일원들에게만 일러두고 왔는데 설마하니 저런 평범한 상인들이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을 알고 있다니. 엘은 순간 루이아스의 정보망이 금탑 안쪽까지 뻗어 있나 생각하며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다음 말을 들은 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런데 금탑주가 무슨 볼일로 하이엔 백작님을 방문 한 거지? 제국에서도 능히 후작과 동급의 대우를 받는 금탑주가 이런 척박한 곳에……”
“뭐든지 뭐에 쓰려면 필요한 곳이 있는 게 아닌가? 하이엔 백작님은 작은 영지를 다스리고 있다 해도 국왕 전하와 친분이 있으니 이곳을 방문한 것일 수도 있지.”
“그런데 어떻게 금탑주인 것을 안 것이지? 사칭하는 사기꾼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말도 말게. 의심하는 기사들 앞에서 무려 일곱 가지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했다는 게 아닌가? 그 정도 실력에 젊은 외모라면 금탑주가 틀림없겠지.”
이야기를 들어 본 엘은 자세한 정황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사칭하고 이곳 하이엔 영지에 방문한 것이다. 엘은 전생에서 겪어 봤던 것을 이곳에서도 겪자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전생에서도 나를 사칭하던 게이머가 많더니 이곳도 그리 다르지 않군. 하기야, 대부분 금탑에 머물고 있다고 알려진 나는 사칭하기에 최고의 대상이지. 그나저나, 그런 대담한 행동을 하는 게 누구지? 한번 보고 싶군.’
이상하게 분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좋은 기분도 아니었기에 엘은 약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엘에게 모스가 강한 기세를 담은 어조로 말했다. “누군가가 탑주님으로 행세하고 사기를 치고 있나 보군요. 당장 찾아가서 본때를 보여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모스의 말에 엘은 손을 살짝 저었다.
“아니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절 사칭하는지 궁금하긴 하군요.”
엘은 사기꾼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측은함이 들었다.
‘나를 사칭하다가는 루이아스의 손에 무사하지 못할 텐데 굳이 내가 손을 쓸 필요는 없지,’ 하지만 궁금했다. 도대체 자신을 사칭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엘은 모스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한 번쯤 확인해 보는 게 좋겠군요. 불법이지만 하이엔 백작 저택에 한번 잠입해 볼까요?“
모스가 고개를 숙였다.
“탑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한번 가 보죠.”
여관을 벗어난 엘은 곧장 하이엔 백작이 머물고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워낙 작은 영지라 약 10분여를 걷자 하이엔 백작의 저택이 보였다. 저 멀리 정문에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기에 엘은 자신과 모스에게 투명화 마법을 전개했다.
“인비저빌리티!”
마법의 전개과 함께 엘과 모스의 모습이 주변 환경에 완전히 동화되었다. 인비저빌리티가 완전히 전개되었음을 확인한 엘은 플라이 마법으로 자신과 모스를 끌어올려 가볍게 하이엔 백작의 저택으로 잠입할 수 있었다. 행여 소드 마스터 같은 이가 있다면 엘과 모스의 기척 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지만 엘은 그것까지 염두해 두고 기척 차단 마법까지 걸어 놓은 상태였다. 물론 하이엔 백작가에는 소드 마스터는커녕 모스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기사도 없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선 엘은 곧장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여러 번 귀족가의 저택을방문했기에 어디에 집무실이 있는지 파악하는 건 간단했다. 집무실 앞에 이르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은 살짝 문을 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집무실 안에는 40대 초반의 중년인과 금색 로브와 후드를 눌러써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얼펏 보기에도 20대 중반을 넘지 않아 보이는 모습, 엘은 그가 자신을 사칭하는 가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중년인, 하이엔 백작은 금탑주를 사칭한 가짜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방 놀라움을 표했다.
“오! 그래서 아인하트 후작님과 글레톤 님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이군요.”
가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무척 강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마법과 전혀 다른 체제를 세운 저에게는 모자람이 있었지요.”
가짜는 마치 자신이 진짜 금탑주인 것처럼 여러 가지 상황을 실감나게 하이엔 백작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대부분 사실이었던 것이어서 엘로 하여금 놀라게 하였다.
‘이 사람 날 언제 본 적이 있던가?‘
아인하트 후작과 글레톤, 둘과 겨룬 이야기가 끝나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골든 나이트와 클라이언 공작의 대결로 넘어갔다. 가짜는 유창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골든 나이트는 본인의 모든 마법 정수가 총 망라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누가 조종하지 않는 무인 골렘이면서 그랜드 마스터와 대등한 실력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이죠.”
누가 보면 진짜 금탑주라고 의심치 않을 말을 가짜는 정말로 자신이 겪었던 일인 것처럼 늘어놓았다. 그것이 워낙 실감났기에 하이엔 백작은 시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며 연방 감탄사를 토해 놓기에 바빴다.
“정말 대단하군요! 그런데 금탑주님, 제가 그 골든 나이트를 한번 보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무척 난감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가짜에게 골든 나이트가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가짜는 익숙하다는 듯, 하이엔 백작의 말을 받았다.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직 다이어드 공작과의 대결에서 입은 파손이 회복되지 않아 보여 드리기 여의치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한참 전의 일이 아닙니까?”
하이엔 백작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가짜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랜드 마스터 에 이르면 이미 그 오러의 위력은 전설상의 드래곤 본도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입니다. 그만큼 대단한 파괴력이지요. 제아무리 골든 나이트가 자체적인 수복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랜드 마스터의 오러에 당한 이상 수복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때마침 거의 다 수복되었으니 나중에 하이엔 백작님에게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약 없는 말이었지만 그 말에 하이엔 백작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금탑주가 다시 방문해 준다는 것은 그만큼 기쁜 일이었다.
“그렇게 해 주시기만 한다면 본인은 영광 또 영광입니다.”
“하하,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너무 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
엘은 하이엔 백작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가짜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얼마나 담이 큰 자란 말인가 제아무리 소국의 백작이래도 백작은 백작이다. 엘은 하이엔 백작 앞에서 뻔뻔스레 거짓말을 늘어놓는 가짜를 보며 차마 화내는 것조차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모스는 그렇지 않은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모습이었다. 엘은 그런 모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그를 제지하였다. 여기서 모습을 드러내 봤자 좋을 것 하나 없다는 판단에 의해서다. 엘은 메시지 마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모스에게 전달했다.
-지금 우리는 무단 침입을 한 상태예요. 여기서 정체를 밝혀 봤자 진실을 들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우리가 오해를 받을 공산이 커요.
엘의 논리정연한 말에 모스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가짜와 하이엔 백작은 이야기를 끝낸 듯했다. 막 자리에 일어서려던 가짜. 그러나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기사로 인해 엉거주춤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냐?“
갑자기 들어온 기사를 보며 하이엔 백작이 입을 열자 기사가 짧게 숨을 고르고는 말했다. “백작님, 지금 저택 밖에서 금탑주님에게 도전하겠다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뭣이?“
하이엔 백작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금탑주는 당금 9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8클래스 마법사 중 한 사람이다. 그런 자에게 도전이라니? 금탑주와 맞서 싸울 만한 존재는 동급의 8클래스 마법사나 그랜드 마스터밖에 없다. 하이엔 백작의 분노한 표정을 본 기사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것이…… 금탑주님에게 도전하는 마법사가 다름 아닌 스톰 메이지입니다.”
“뭐라? 스톰 메이지?“
하이엔 백작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스톰 메이지는 대륙에 100명이 약간 넘는 7클래스 마법사 중 한 사람이다. 물론 그것만이라면 금탑주에게 도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격이다. 그러나 스톰 메이지는 그것보다 더욱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바로 스톰 메이지는 불과 20대에 7클래스의 경지에 이른 천재 중의 천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대왕국 중 하나인 카시아스 왕국 출신으로 어렸을 적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이십 대 중반에 7클래스의 벽을 돌파했다. 만약 금탑주 엘리미스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모든 관심은 그에게 돌아갔을 정도로 당금 대륙의 기대를 한데 모으고 있는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런 천재가 금탑주에게 도전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이엔 백작의 시선이 가짜에게 향했다. 그의 눈에는 한껏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는 기대감에 찬 어조로 말했다.
“스톰 메이지가 도전을 했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금 탑주님?“
저렇게 기대에 찬 눈을 보내면 응당 기대에 부흥해 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하지만 가짜는 그런 하이엔 백작의 시선을 외면했다. 가짜인 그로서 7클래스의 경지에 이른 스톰 메이지를 이길 수 있는 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얼마 전 겨뤘던 적탑주와의 대전으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전해 주십시오. 몸이 온전해지거든 한 수 가르쳐 주겠노라고.”
이런 말을 했으면 응당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야 했지만 기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사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스톰 메이지께서 말하길, 금탑주가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8클래스 마법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 그러니 부디 거절하지 말아 달라고 하셨습니다.”
“으음……“
가짜가 신음을 흘렸다. 눈치가 빠른 가짜로서는 더 이상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골든 나이트를 보여 달라는 요구와, 방금 전 실력 행사를 거부함으로써 하이엔 백작과 기사의 눈에 의심이 서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데 어쩌랴. 그들의 눈빛에 가짜는 승낙하는 수밖에 없었다.
“후우, 어쩔 수 없군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기사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스톰 메이지께 말을 전하겠습니다.”
“허허, 여기서 금탑주님의 실력을 견식하게 되다니, 무척 영광이로군요.”
기사는 물론 하이엔 백작도 기대에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8클래스 마법사가 실력을 선보이는 것은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다. 그런데 오늘 8클래스 마법사의 실력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자, 그럼 가시지요.”
가짜는 하이엔 백작이 이끌자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 가짜의 모습을 엘이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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