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91)
1. 마도 제국의 선언 part 2
“이제 때가 되었다.”
루이아스는 주변에 도열한 이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주변에는 9명의 사람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 9명 개개인에게 풍기는 기운은 보통이 아니었다.
잘 갈무리되어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기운은 감히 범인이 견딜 수 있을 만한 성질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각 분야에서 인정받은 대륙의 초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다시금 둘러보며 루이아스가 다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오랫동안 염원해 오던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다섯 개의 제국을 모두 통합하고 선포하려던 것이 빗나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5대 제국은 대륙 문명의 시초라 할 수 있을 만큼 그 힘과 영향력이 대단하다.
국력 같은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역사가 있었기에, 대륙의 왕국들에 있어서는 제국이, 막아야 할 적임과 동시에 넘보지 못할 견고한 벽과도 같았다.
루이아스는 그런 5대 제국을 모두 통합하여 서부 왕국들로서는 범접하지 못할 거대한 대제국을 이룩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은 우리의 편. 지난 수십 년 동안 준비해 온 나에게 대적할 존재는 없다.’
지난 50여 년간 루이아스는 마도 제국을 세우기 위해 수많은 준비를 해 왔다.
우선 그는 대륙에 존재하는 초인들의 존재를 주목해 왔다.
검으로서 본디 인간의 한계를 벗어 버린 그랜드 마스터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 8클래스 마법사들은 루이아스라 할지라도 결코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아니, 일 대 다수로 맞붙어도 능히 그들을 이겨 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세력은 만만치 않고, 결코 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현재 그를 따르는 초인의 숫자는 대륙에 존재하는 초인의 절반가량이 되었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이 아니다.
하늘같은 자존심을 지닌 그들이 그에게 굴복할 가능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진심으로 따르게 하는 것보다 압도적인 힘으로 두려움을 심어줘,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을 지배해 나가기 시작했다.
9클래스에 이른 그의 힘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그뿐이었다면 쉽게 엄두를 내진 못했을 것이다.
때마침 그의 손에 들어온 카르마 링이 그런 그의 야망을 실현시키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카르마 링은 대륙에 존재하는 마병들 중 가장 극악한 것으로 손꼽힌다.
왜냐하면 카르마 링의 압도적인 힘은 중간계 최강의 존재인 드래곤조차 제약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힘을 보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을 두려워한 드래곤들은 강력한 봉인 마법을 전개하여 중간계 가장 은밀한 곳에 카르마 링을 영원히 숨겨 놓으려 하였다.
하지만 카르마 링은 저주받은 마병.
데몬 하트를 이식 하여 자신의 힘으로 만든 루이아스에게 끌리지 않을 리 없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봉인되어 그 구속력이 점점 약해지던 카르마 링은, 마침내 데몬 하트에 이끌려 스스로 봉인을 해제했다.
루이아스는 그걸 바탕으로 8클래스 마법사들부터 굴복 시킨 뒤 세력을 형성하여 마침내 그랜드 마스터들을 굴복 시킨 것이다.
가장 먼저 굴복시킨 초인들은 벨로세크 제국의 초인들이다.
대륙의 종주국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벨로세크 제국을 굴복시키자 그 뒤로 일은 쉽사리 진행되었다.
많은 초인들을 휘하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고, 마도 제국의 대계를 본격적으로 진행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5대 제국을 통합시켜 누구도 넘보지 못 할 마도 제국 건국의 1번째 계획 달성을 코앞에 이르기에 이른다.
그러나 돌연 등장한 금탑주와 최강의 적으로 존재하던 아토빌 공작이 손을 잡았다.
그들이 동맹을 맺음으로써 일이 수월치 않게 되었다.
당장 그들을 제거하려면 여러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초인들을 모두 동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신까지 가세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제거하는 데 많은 피해를 초래할 것이다.
쉽사리 집어삼킨 루이디스, 데이제크 제국과 달리 아일라스 제국은 아토빌 공작 1인 체제로 빈틈 하나없이 견고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 만큼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힘들었고, 오히려 아토빌 공작에게 꼬리를 잡혀 변변찮은 세력 형성조차 못 했던 것이다.
블리어드 제국 또한 오스칼 대제의 지배력이 만만치 않아 지크릴을 계기로 세력을 심어놓으려 했는데 멍청하게도 마족을 소환하여 드래곤에게 소멸을 당했다.
그 때문에 지금쯤 5개의 제국을 아우르고 있어야 할 자신의 세력이 불과 3개의 제국에 머물게 된 것이다.
“별수 없지.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비록 3개의 제국을 통합하는 데 그쳤지만 그 세력은 엄청났다.
우선 벨로세크 제국의 근위 기사단을 그대로 흡수했기에 휘하에 300명의 소드 마스터를 둘 수 있었다.
루이디스 또한 유혈 사태 없이 흡수하여 100여 명의 소드 마스터를 흡수했으며, 루이넨스, 그레시오스 공작, 지크리스 후작, 트루먼 공작이 키워 온 소드 마스터가 도합 200이었다.
무려 600명의 소드 마스터가 루이아스의 휘하에 존재 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힘은 초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었고, 또 충성심 또한 바닥을 길 것이 뻔한 일이었지만, 그렇다 한들 그 존재만으로도 공포나 다름없는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당장 전 대륙의 소드 마스터들을 모아도 루이아스가 거느린 소드 마스터의 숫자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전력뿐만이 아니라 현재 루이아스에게는 소드 마스터와 대등한 힘을 발휘하는 나이트 골렘 500여 기가 존재 한다.
청탑주 라이젠의 오랜 연구가 빛을 발하여 무인 나이트 골렘을 개발해 냈기 때문이다.
설사 대륙 전체가 적으로 돌아선다 하더라도 압도할 수 있을 만한 엄청난 전력을 보유하게 된 셈이다.
남아 있는 초인들의 존재가 다소 거치적거렸지만 그것이 루이아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루이아스는 아홉 초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열흘 후, 마도 제국을 선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각국의 군주들에게 말하겠다. 가급적 아무런 저항없이 마도 제국에게 항복하라고 말이야.”
루이아스는 한쪽에 서 있는 자, 지크리스 후작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에게는 따로 명령이 내려져 있을 터. 지금 즉시 임 무를 수행하라.”
“알겠습니다.”
지크리스 후작이 고개를 깊게 숙이며 사라지자 루이아 스는 웃음을 머금었다.
“드디어 첫발을 내딛는군. 나의 원대한 꿈이.”
수백 수천 쌍의 시선이 한곳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20대 초반의 준수한 청년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청년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엘, 요즘 대륙에 풍운을 몰고 다니는 금탑주가 바로 그였다.
엘은 지금 난감한 상황에 놓여 있다.
바로톨리안왕국의 공주인 에리스 공주가 돌연 그에게 청혼을 해 왔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어떤 여인이 청혼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어찌 황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여인이 미인이라면 누구라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사정이 있다면 무척 난감해 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 엘이 그러했다.
“나는……”
엘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뭐라 말을 해 줘야 하는가!
놀란 귀족들도 귀족들이지만 제일 놀란 것은 엘이었다.
에리스 공주가 자신에게 청혼을 하다니?
여성이 남성에게 청혼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귀족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청혼을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거절당할 경우 체면은 물론 사회적인 입장 또한 완전히 망가지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러한 방법을 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을 연모하다 못한 여성들이 과거에 일을 벌인 적이 있다.
몇 번 이러한 결과는 대부분 승낙이었다.
거절할 시 한 여 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쳤다는 지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딱 그랬다.
톨리안 왕가에서는 엘을 잡아 두기 위해 에리스 공주를 동원하는 초강수를 둔 셈이다.
귀족들은 그러한 사정을 대충 이해하면서 한편으로는 떡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설마하니 왕가에서 이런 초강수를 둘 줄이야.
금탑주의 가치가 그만큼 대단하다고 하나 고귀한 공주로 하여금 이렇게 화젯거리로 만들어 버린다면 제아무리 엘이라고 해도 운신에 지장이 갈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지?’
엘은 섣불리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공주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자신에게는 장래를 약속한 여인이 있지 않은가?
세레나와 카이나를 생각해서라도 에리스 공주의 청혼은 받아들일 수 없는 성질이었다.
엘은 전생은 대한민국에서 살던 청년이었다.
대한민국은 1명의 남자와 1명의 여인이 결혼하는 일부일처제의 제도를 가지고 있다.
물론 권력을 지닌 몇몇 사람들은 숨겨 놓은 여인들이 있겠지만 법적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었기에 모든 사람들은 선택된 1명의 여인을 맞아들여 평생을 함께 한다.
아직 문화적 관념이 대한민국에 맞춰져 있는 엘이었다.
그랬기에 엘의 머리에서는 일부일처제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엘의 능력이라면 능히 수십 명의 여인들을 부인으로 맞이할 수 있다.
만약 다른 8클래스 마법사나 그랜드 마스터가 그랬다면 대륙에서는 크게 비난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태까진 최소 50대를 넘어서야 그와 같은 경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은 아직 20대 초반에 불과하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할 뿐더러 후일 그가 9클래스의 경지에 들게 된다면 대륙은 그의 뜻대로 좌지우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그의 힘이 되어 줄 귀족들 혹은 왕가와 혼인으로서 인연을 맺는다면 엘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엘도 이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엘에게는 목표가 있다.
이 세계에서 잘살아 보자는, 비록 거창한 목표는 아니지만 그 목표를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전적인 측면이나 세력적인 측면에서 엘은 그러한 조건을 충분히 충족시킨 상태이다.
톨리안 왕국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앞으로의 생활을 영위한다면 엘이 바라는 것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루이아스의 존재로 인해 엘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9클래스 마법사의 야욕은 광범위한 전 대륙에 뻗어 나갈 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루이아스에게 가장 걸리는 것은 바로 대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그랜드 마스터와 8클래스 마법사일 것이다.
그들 모두 초인의 경지에 이르러 각국에 각별한 대접을 받으며 왕과도 같은 위치에 군림하고 있다.
그런 그들은 루이아스에게 눈엣가시일 것이 분명했다.
회유가 통하지 않으면 제거할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엘이 루이아스의 편에 섰다면 횔씬 일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겠으나 불행하게도 그는 루이아스와 돌이킬 수 없는 척을 진 상태다.
이미 엘을 제거하기 위해 파견한 흑탑주 지크릴과 적탑주 카로스만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행복은 스스로 만들기로 결심한 상태.
그랬기에 루이아스와 대적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현재 그의 입장에서 톨리안 왕국은 단순히 협력 상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만 에리스 공주가 얽힌다면 달라진다.
레도프 국왕의 의도대로 한평생 톨리안 왕국과 엮여 도움을 줘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엘은 그런 것에 굳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차피 도움을 주는 것 같으니 말이다.
다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에리스 공주의 심정이다.
에리스 공주는 무척 아름답다. 세레나, 카이나와 비견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그녀의 마음이다.
사랑 없는 결혼은 그 결말이 무척 참혹하다.
그것은 제아무리 사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엘이라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엘은 메시지 마법으로 에리스 공주의 의중을 물었다.
– 공주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
엘의 물음에 에리스 공주는 생각에 잠겼다.
사실 엘의 물음은 그녀가 청혼을 하기 전 해 본 내용과 같았다.
‘난 금탑주님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이성에게 전혀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다.
자신 또한 어렸을 적 백마 탄 왕자님을 동경했고, 기사가 자신을 데려가는 낭만적인 꿈을 꿨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일찍 깨달았다.
한 나라에서 공주의 결혼이란 왕실의 힘을 보태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결혼이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 그녀는 자신에게 접근하던 귀족가 자제들이 모두 목적을 지닌 이들이란 걸 깨달았고, 속으로 단단하게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눈앞의 금탑주는 그녀로 하여금 새로운 감정을 불어넣어 준 인물이다.
물론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외모를 보고 담담한 그의 모습에 다른 귀족 청년들과 다른 무엇을 느꼈던 것이 처음이고, 고작 몇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아버지인 국왕은 물론 고위 귀족들도 쉽사리 대하지 못하는 그의 고강한 실력이 놀라움을 심어 줬을 뿐이다.
첫 대면 때, 그는 자신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하였다.
한눈에 자신의 처지를 간파한 것이다.
그때의 그 심정이란……
그 후로 성국의 침공에 이어 반란이 일어나는 등 수많은 사건에서 금탑주는 그 존재감이 급격히 상승하더니 마침내 적탑주 카로스만을 죽이고 일약 8클래스의 경지에 올랐음을 선보였다.
금탑주의 입지는 한없이 높아만 갔고, 그에 따라 에리스 공주에게 찝쩍거리던 이들 또한 자연히 줄어 갔다.
금탑주가 공식적으로 뒤를 봐주겠다고 천명한 이상 에리스 공주 근처에 떠돌며 미움 받을 일을 살 바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녀는 금탑주에게 고마움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묘한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남녀 간에는 우정이란 존재할 수 없고, 오로지 사랑만 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에리스 공주다.
묘한 감정을 갖게 되니 자연히 그것이 호감으로 변했고, 지금은 그녀의 마음속에 심각한 논제로 남아 있었다.
‘나는 과연 금탑주를 좋아하는 걸까?’
그렇게 고민하길 잠시, 고개를 젓는다.
‘어차피 중요한 건 내 생각이 아니야. 진정으로 중요한 건 왕국이지…… 아바마마도 그걸 아셨기에 내게 부탁한 것이고……’
호감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목적이 있는 청혼이다.
에리스 공주는 순간 엘의 물음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 질문이 자신을 위해서 해 준 질문이란 것을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
영특한 엘이 톨리안 왕실 측의 의도를 모를 리 없다.
그런 와중에도 당사자를 염려해 준다는 것, 드높은 위치에 서 있는 존재답지 않은 자상한 마음씨였다.
좋게 느끼니 좋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
에리스 공주는 엘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하는 걸 느끼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신의 감정을 속인 채……
‘후우우!’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에리스 공주의 모습을 보고는 엘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엘의 눈빛이 가라앉으며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이자 에리스 공주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었지만 혼인 관계는 인간의 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
더군다나 말 한마디로 엄청난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엘에게 호의와 혼인은 더욱더 별개의 문제이리라.
당장 나올 몇 마디에 자신의 인생이 좌우된다는 것이 못내 괴로웠다.
불안했다.
거절당하면 어쩔까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심 엘만큼 뛰어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고, 승낙을 바라는 마음도 존재했다.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것아 바로 여인의 마음이었다.
장시간 생각에 잠겨 있던 엘은 마침내 마음을 굳힌 듯 시선을 에리스 공주에게 향했다.
막 에리스 공주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려던 엘의 눈에 세레나와 카이나가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여인들.
어찌 하나의 남자로서 자신을 사랑해 주는 여인들을 배신할 수 있을까?
짐승이 아닌 이상 절대 그렇게 하지 못 할 것이다.
단지 한 여인의 신세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지만 엘은 차마 그녀들을 배신할 수 없었다.
에리스 공주가 측은하기는 하지만 혼인은 인간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대한 일이다.
만약 개인적인 호감이 사랑으로 발전하여 자신에게 청혼을 한 것이라면 분명 엘은 시간을 두고 서로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을 것이다.
아직 그에게는 마음의 준비가 덜되었기에 다른 여인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청혼은 그러한 차원이 아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엘과 에리스 공주를 혼인시키려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가 작용했다기보다는 이익을 위해 작용한 혼인, 그렇게 생각하자 엘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은 다시 에리스 공주를 바라보았다.
미안했다.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입장이.
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만약 에리스 공주를 받아들이면 선례를 남기는 것이 되기에 다른 누가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고 장담 못한다.
그럼 엘은 당연히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사랑이 우선되어야 할 혼인에 이러한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깔려 있는 것이다.
다시금 생각에 잠긴 엘이 한참 뒤 조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에리스 공주님은 누구보다 아름다우시고 현명하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무언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공주님 은 누구보다 아름다우십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미 장래를 약속한 여인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공주님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군요. 제 입장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공주님.”
“……!”
엘의 말은 큰 충격을 동반하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휘청!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에리스 공주의 몸이 힘없이 비틀거렸다.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 에리스 공주의 모습에 시녀가 놀라 소리쳤다.
“아악! 공주님!”
그리고 서둘러 에리스 공주에게 달려가 그녀를 부축하였다.
에리스 공주가 쓰러지고, 엘의 선언 덕에 왕족들과 귀족들의 안색이 여러 번 변했다.
지금 엘의 발언 때문에 에리스 공주는 앞으로 누구와도 결혼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비록 에리스 공주가 아름답고 현명하다지만 공개적으로 다른 남자에게 결혼해 달라고 부탁한 몸이 되었다.
왕족 혹은 귀족의 품위와 명성을 생각하면 누구도 에리스 공주와 결혼하지 않으려 들 것이 분명했다.
귀족들의 시선이 슬금슬금 왕가 사람들에게 향했다.
에리스 공주의 청혼이 거절당한 이상 톨리안 왕가의 명예에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
이럴 경우 보통 결투를 청한다.
손상된 명예를 되살리기 위한 방법 중 그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 나름이다.
금탑주 엘은 대륙에 공인된 8클래스 마법사 중 한 사람이다.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이는 대륙에 공인된 그랜드 마스터와 8클래스 마법사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톨리안 왕가가 지금 같은 초강수를 둘 리 만무했다.
게다가 다른 면으로 보면 금탑주는 톨리안 왕가에 은인과도 같은 존재, 만약 결투를 신청하게 된다면 도리어 욕을 먹는 것은 톨리안 왕국이 된다.
본래 톨리안 왕국은 그리 왕권이 강한 국가가 아니다.
대부분의 서부 대왕국이 그러하듯이 대왕국들은 풍부한 식량과 자원을 바탕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게 되어 대왕국으로 군림한다.
그것은 왕국 내의 영지에서 생산되는 것이기에 왕에게 바쳐지는 것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다.
풍부한 자원과 식량이 생산되는 영지를 지니고 있으니 어찌 귀족의 힘이 약할 수 있겠는가.
왕국이란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왕을 중심으로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들이 모인 것이듯, 전체적인 왕국의 힘은 무척 강하지만 실상은 개개인 귀족의 힘이 무척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귀족들의 힘이 강하니 자연히 상대적으로 왕의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대왕국들 대부분이 권력을 귀족들이 쥐고 있는 형태가 나오게 된 것이다.
톨리안 왕국도 다른 대왕국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모든 것이 새롭게 재편되기 시작했다.
기존에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던 귀족들이 맥셀 왕자로 위장한 카로스만을 따라 반란에 동참한 것이다.
만약 정상적인 진행으로 이어졌다면 반란군과 정규군의 충돌은 필연적이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톨리안 왕국 주변에 위치한 왕국들이 톨리안 왕국을 침공하였을 것이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톨리안 왕국은 멸망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톨리안 왕국에는 금탑주가 있었다.
그는 실로 대륙에 1명 나올까 말까 한 놀라운 천재로, 20대 초반에 8클래스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8클래스 마법사 중 하나이자 불의 왕이라 불리며 모든 마법사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었던 카로스만을 죽였다.
엘이 카로스만을 처리하자 구심점을 잃은 반란군은 빠르게 힘을 잃어 갔다.
당초 예상과 달리 정규군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채 라이어스 공작의 지휘 하에 반란을 빠르게 진압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할 수 있었다.
반란을 진압한 뒤 레도프 국왕과 라이어스 공작은 그 성과에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예로부터 반란을 일으키면 무조건 귀족 자격을 박탈하며 목을 벤다.
레도프 국왕은 그것을 그대로 시행했으며, 그로 인해 톨리안 왕국 전체 영토의 30퍼센트에 해당하는 영토를 왕실 직할지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게다가 반란에 가담한 귀족들이 어디 그냥 귀족이던가.
나름대로 중앙 정계에 굴러먹던 귀족이니 만큼 그들에게서 압수한 금액은 가히 천문학적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여기서 로웰린이 사리사욕이 강한 사람이었다면 이 중 상당 부분을 독식하여 힘을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하나도 가지지 않은 채 모두 레도프 국왕에게 바쳤다.
그로 인해 톨리안 왕국의 왕권은 비약적으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국토의 절반을 왕실 직할지로 지니고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중앙 귀족들이 사라짐으로써 제3왕자파의 근간을 이루던 지방 귀족들이 그 자리를 채웠지만 레도프 국왕의 한 마디에 눈치를 보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레도프 국왕이 이렇게 왕권을 굳힐 수 있었던 것도 엄연히 말하면 모두 금탑주 덕분이다.
금탑주를 자국에 받아들임으로써 마탑에 대한 근심을 덜 수 있게 되었고, 왕권 또한 강해졌으니 말이다.
그랬기에 레도프 국왕으로서는 더더욱 엘에게 밉보이면 안 되었다.
엘은 혼절한 에리스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자신의 결정으로 한 여인의 운명이 기구하게 변했으니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면 달게 받아 들여야 했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여인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미안합니다.’
미안한 눈으로 에리스 공주를 일별한 엘은 연회장 한쪽에 서 있는 레도프 국왕에게 시선을 주었다.
레도프 국왕은 엘의 시선을 받으면서 표정을 굳혔다.
그로서는 나름대로 초강수를 두었음에도 먹혀들지 않았으니 착잡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초강수가 자신의 딸이었으니 그 감정이 더욱 컸다.
그렇다고 엘을 붙잡고 늘어져 더욱 사이를 악화시킬 수 없는 노릇, 레도프 국왕은 한숨을 내쉬면서 연회장을 벗어났다.
“후우.”
레도프 국왕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엘의 모습을 귀족들은 안절부절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기회가 온 거야.’
‘이건 기회다!’
지금 중앙에 자리를 잡은 귀족들은 현재 왕가가 강대한 권력을 장악한 데에 큰 불만을 지니고 있다.
자신들이 중앙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떨어지는 파이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 떨어질 파이는 무궁무진했지만 당장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마당에 아무런 포상도 없다는 데에 귀족들의 불만은 지대했다.
그런 톨리안 왕국의 사정을 다른 왕국들이 모를 리 없다.
비록 서부의 왕국들이 제국을 견제하면서 서로 간에 긴밀한 상호 협정을 맺었다지만 제국이 준동하지 않을 때에는 어디까지나 경쟁자에 불과했다.
경쟁국인 톨리안 왕국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에 타국들은 관심을 보여 밀정을 파견하였고, 그들은 비교적 톨리안 왕국의 사정을 상세하게 꿰뚫고 있었다.
서부를 대표하는 몇몇 대왕국에서는 이미 중앙으로 올라선 귀족들과 어느 정도 연결 고리를 만든 상태였다.
그와 함께 대왕국들은 귀족들에게 달콤한 제안을 한다.
바로 금탑주를 자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도와달란 이야기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금탑주는 서부 대륙을 대표하는 8클래스 마법사 중 한 사람이다.
초인 1명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타국의 그러한 제안은 코웃음을 치게 할 정도로 어리석은 유혹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끔 만들었다.
현재 중앙 귀족들은 왕가에게 큰 불만을 품고 있지만 또 다른 인물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
바로 로웰린, 루비어스 백작이었다.
그녀는 정규군 부사령관이라는 직책으로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의 수많은 재산들을 압류하였다.
만약 그녀가 그 재물들을 적당히 다른 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면 귀족들은 불만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로웰린은 귀족들에게 단 하나의 재물도 건네주지 않았고, 그것을 모두 레도프 국왕에게 바쳤다.
귀족들로서는 당연히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로웰린은 제3왕자인 유드미온 왕자를 지지하는 한 파 벌의 수장이다.
거대한 귀족 연합체를 이끌려고 하면 당연히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에게 어떠한 이권을 약속하고, 그것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제3왕자파 귀족들이 대부분 시골 귀족 출신이었고, 생각지도 못한 권력의 중심에 다가가게 되었지만 인간이란 본래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동물 아닌가?
귀족들로서는 자신들 몫을 챙기지 않은 로웰린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로웰린에게 불만을 표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로웰린의 뒤에는 금탑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금탑주와 그의 수호 기사인 골든 나이트, 둘이라면 제국에 존재하는 두 초인과 맞먹는 위력을 발휘한다.
그런 존재가 로웰린의 뒤에 있으니 당연히 귀족들이 불만을 토로할 수 없다.
하지만 금탑주가 다른 국가로 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귀족들의 정보에 의하면 금탑주가 로웰린을 지지하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인접한 이웃이란 점.
그리고 주변 상황을 모두 생각해, 톨리안 왕국에 쉽게 자리하기 위해서는 왕국의 귀족 중 하나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 놓음이 유리하기 때문이란 추측을 내놨다.
그 상황이 진실이라면 금탑주가 다른 국가로 가면 자연히 로웰린과 금탑주의 협력 관계는 사라진다. 더이상 금탑주가 로웰린을 감싸고 돌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로웰린이 실은 금탑주의 사촌 누나가 되는 것을 모르는 귀족들의 생각은 그러했다.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귀족들은 어떻게든 금탑주가 톨리안 왕국을 떠나길 원했다.
자신들이 더욱 큰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금탑주란 존재가 방해되는 탓이다.
졸지에 왕국의 수호신이 권력의 장애물이 된 셈이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금탑주를 타국으로 보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지만 귀족들은 자신이 있었다.
현재 톨리안 왕국으로서는 금탑주를 자국에 묶어 둘 매력적인 요소가 어느 하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탑주와 만날 자리만 만들면 된다.
그러면 해당 국가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롤프 자작에 휘말려 섣불리 나섰다간 이미지가 좋지 않다.
후일 조금씩 환심을 사면서 나서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귀족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귀족들이 썰물처럼 물러나자 모양새가 순식간에 엘과 롤프 자작의 대치 형태로 변했다.
롤프 자작의 안색은 창백했다.
하기야 금탑주에게 큰 소리를 쳤으니 그럴 만했다.
금탑주는 어느 국가, 혹은 제국을 가도 능히 공작의 작위를 받을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런 존재에게 큰 소리를 치며 마치 손아귀에 올라간 벌레처럼 죽이느니 마느니를 지껄여 댔으니 큰일 나도 한 참 큰일 났다.
엘은 그런 롤프 자작의 표정 변화를 보면서 순간 분노가 몰려오는 것을 느쪘다.
에리스 공주를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고 나니 엉뚱한 데에 화가 몰려온 것이다.
콰아아아아! 가공할 기세가 엘의 주변에 퍼져 나갔다.
순식간에 공간을 장악하는 압도적인 존재감.
엘이 뿜어내는 기세로 인해 연회장 구석으로 피했던 귀족들까지 안색이 새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엘의 기세를 접하게 되자 왜 8클래스 마법사를 이토록 떠받드는지 단편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치 물먹은 솜처럼 전신은 너무나 무겁게 변하며 옴짝 달싹할 수 없었으며, 뿜어지는 기세는 숨을 턱틱 막히게 하였다.
더군다나 근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치밀어 오르면서 순식간에 귀족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
소드 마스터 최상급에 이른 라이어스 공작조차 그렇게 느꼈을 정도였으니 다른 귀족들이 느꼈을 압박은 그야말로 보통이 아니었다.
이것이 8클래스 마법사의 힘인가.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엘은 짙게 뿜어내던 기운을 회수했다.
썰물 빠져나가듯 연회장을 잠식했던 기세가 사라지자 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엘의 실력에 경악했다.
귀족들이 괜히 귀족들이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 한 수 재간을 지니고 있고, 긴 세월 귀족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그들 나름대로의 노력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특히 그들 중 검을 배운 귀족들은 이렇게 기세를 빠르게 갈무리한다는 것은 금탑주가 방금 전 기세를 내뿜은 것이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공간 전체를 잠식하는 듯 하던 그 기세가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니, 새삼 왜 모두들 금탑주 하면 꼼짝 못하는 지 귀족들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기세를 모두 갈무리한 엘은 잠시 에리스 공주가 사라진 곳을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발길을 돌렸다.
파티를 즐기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다가 참으로 마음이 무거워지고 말았다.
그렇게 사라지는 엘의 됫모습을 귀족들은 저마다의 감정을 담은 채 바라보았다.
“……”
그런 귀족들 중 유독 다른 의미가 섞인 눈으로 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로웰린이었다.
로웰린은 엘이 에리스 공주의 청혼을 거절한 것보다 당장 드는 의문이 온통 머릿속을 지배했다.
‘왜지? 왜 금탑주님이 아버지처럼……’
그녀는 방금 전 느낀 것이 자신의 착각이 결코 아님을 느꼈다.
처음에는 단순한 착각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금 엘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뜯어보아도 엘의 모습이 자신의 아버지와 닮은 점이 무척 많았다.
그냥 닮은 사람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공통점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사람이 이토록 많은 공통점을 공유할 수 있을까?
핏줄이 통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닮기도 드물었다.
‘무언가가 있어.’
그동안 정계에서 활동해 오며 갈고 닦인 로웰린의 눈에 엘이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사실을 감추고 있음을 간파했다.
어쩌면 이것이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금탑주가 자신에게 베푸는 이유 없는 호의의 근원을 말이다.
로웰린은 사라지는 엘의 됫모습을 일별하며 중얼거렸다.
“한번…… 조사를 해 봐야겠어.”
왕족들은 더없이 절망스러운, 갓 중앙 귀족이 된 귀족들에게 심정이 무척 복잡한 날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로웰린이 품은 의심은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 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