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94)
4. 성국으로향하다
대륙 서부가 술렁였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소문이 톨리안 왕국으로부터 은밀하게 흘러나온 까닭이다.
금탑주 엘리미스가 톨리안 왕국의 재녀 에리스 끙주의 공개 청혼을 거절했다!
이 소문은 홀리안 전역으로 은밀하게 퍼져 나가더니, 각국에 포섭된 귀족들이 각국의 정보 단체에게 정보를 전달하니 곧이어 대륙 전역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타국은 이러한 소문을 무척 반겼다.
“여인의 몸으로 청혼할 생각을 하다니. 톨리안 왕가도 참 큰 결정을 내렸군.”
“하지만 실패를 했으니 다행이야. 그렇다는 건 금탑주 에게 아름다운 여인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로군. 새로운 정보를 얻었어.”
이렇듯 그들은 톨리안 왕국의 실패를 반김으로써 금탑주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으로 만족했다.
에리스 공주가 청혼을 하였다가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곳은 서부의 대왕국들이다.
그들은 이미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탑주를 포섭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뒤였다.
특히 아드리안 왕국과 덱스론 왕국이 가장 그러했는데 그들은 최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에게 습격당하여 각국의 초인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체도 알 수 없는 괴인들 때문에 초인을 잃은 두 왕국은 발칵 뒤집혔다.
그랜드 마스터는 그들을 제국의 야욕으로부터 지켜 줄 방패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괴인들에게 초인들을 잃어버렸으니 순식간에 그들은 제국의 날카로운 칼에 노출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초인을 키우자니 너무나 방대한 자금과 시간이 소요된다.
그 시간에 언제 제국에게 침공을 당할지 모르는 게 바로 그들의 입장이었다.
제국의 야욕을 막기 위해서는 초인의 경지에 든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이 눈독 들인 것이 바로 금탑주였다.
우선 그들이 착수한 것은 엘의 행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엘의 어머니가 블리어드 제국의 명문 중 명문인 아인하트 후작가의 직계 영애임을 알아냈고, 어렸을 적 카시아스 왕국에서 자랐음을 알게 되었다.
배일에 가려진 것이라면 그의 아버지가 어디 출신이냐는 것인데 그것은 심지어 블리어드 제국 출신 사람도 몰랐기에 아마 이름없는 평민일 것으로 추측했다.
엘에 대한 조사를 끝낸 그들이 곧장 조사에 착수한 것 바로 톨리안 왕국과 금탑의 관계였다.
보통 왕국이 마탑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제시하는 조건이 후작에 준하는 대우와 방대한 지원금이었다.
물론 이것은 8클래스 마법사가 아닌 7클래스 마법사가 마탑을 세울 때 해 주는 대우다.
8클래스 마법사가 마탑을 세울 때에는 공작에 버금가는 대우와 7클래스 마법사가 세운 마탑에 비해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을 지원한다.
두 왕국은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곧장 힘을 합쳤다.
8클래스 마법사에게 지원해 주는 금액은 가히 천문학적인 것이었기에 톨리안 왕국이 도저히 혼자서 감내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두 왕국이 힘을 합친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정보에 능통한 이유는 바로 서부에도 8클래스 마법사가 세운 마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3명의 8클래스 마법사가 세운 마탑은 한 왕국에 자리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8클래스 마법사가 세운 마탑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한 왕국의 재정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8클래스 마법사들은 최소 3개, 많게는 5개의 국가에서 지원을 받고 그들 국가를 보호해 준다.
제아무리 톨리안 왕국이 강국이라고 해도 3개의 국가를 합친 것보다 많은 세금을 받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점을 파악한 아드리안 왕국과 덱스론 왕국이 톨리안 왕국에서 금탑으로 흘러가는 자금을 조사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자 두 왕국은 경악했다.
톨리안 왕국에서는 금탑에 단 한 푼의 금액도 지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하니 8클래스 마법사가 자국에 마탑을 세웠는데 단 한 푼의 돈도 지원하지 않다니.
그제야 두 왕국은 금탑이 디벨 상단에 의지하여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왕국은 그것이 금탑주가 물욕이 강한 것이 아니라 금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단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다면 금탑주는 톨리안 왕국에 별다른 미련이 없을 확률이 높아, 그렇다면 막대한 조건을 제시하여 금탑을 끌어들이자.”
아드리안 왕국과 덱스론 왕국은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서 합의를 본 상태였다.
마침 두 왕국의 국경선에 왕실의 직할지가 있었다.
그 넓이는 대충 백작령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두 개를 합치면 거의 공작령 정도의 크기가 나온다.
거기에 막대한 지원금과 원한다면 왕실에서 가장 아리따운 왕녀를 혼약의 상대로서 넘길 준비를 했다.
금탑주를 끌어들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것들을 준비한 것이다.
사실 왕녀를 혼약의 상대로서 넘긴다는 것은 두 국가의 바람에 불과했다.
혼약을 맺으면 금탑은 확실하게 그 국가에 정착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 국가로서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조건을 갖췄음에도 금탑주가 오지 않을 확률이 높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미 금탑주에게는 이미 아름다운 두 여인을 혼약의 상대로 데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여인의 외모는 외부 활동을 하지 않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소문으로는 대륙 전역에 퍼져 나갈 정도로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금탑주인 만큼 굳이 여인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그랬기에 두 국가는 다른 미끼를 준비했다.
바로 금탑주가 자신의 국가로 올 경우 공작의 작위를 하사한다는 내용이다.
예로부터 마탑주들에게 작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마탑주에게 작위가 주어진다는 것은 세습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마탑주들의 후손이 반드시 유능하다는 보장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우 후손을 보면 체계적인 단계를 밟게 하여 못해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는 오른다.
그리고 그랜드 마스터를 배출한 만큼 후대에 그랜드 마스터를 배출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마탑과는 다른 것이다.
후손을 보지 않는 마탑주라면 문제가 없지만 금탑주는 아직 젊고 유능하다. 후일 9클래스에 오를 가능성도 있는 천재 마법사니 그에게 세습이 가능한 작위는 활용하기에 따라서 엄청난 유혹이 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공작의 작위까지 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과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금탑주 말고도 골든 나이트가 그의 것이란 것을 감안하면 결코 과한 조건이 아니다.
다른 국가들도 금탑주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조건을 준비했지만 두 대왕국이 준비한 파격적인 조건에 비해 격이 훨씬 떨어졌다.
“반드시 금탑주를 끌어들여야 한다.”
그것이 두 왕국으로서 취해야 할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 시각 엘은 톨리안 왕국을 벗어나 도보를 걷고 있었다.
“후우! 일이 크게 되어서 어쩐담.”
한숨을 내쉬면서 엘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파티가 끝내고 엘은 이대로 금탑에 갈 수 없었다.
추후 퍼져나갈 소문에 세레나와 카이나를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잘못한 점은 없지만 그래도 미안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네.”
엘이 잘못한 일은 없지만 그는 이미 공인된 존재로서 존재 자체가 풍운을 몰고 갈 수 있는 인물이었다.
톨리안 왕국이 이미 그럴 수 있다는 것은 계산 범위에 존재했는데도 미처 방비하지 못한 엘은 원인 제공을 누가 했던 간에 자신의 잘못도 존재한다고 판단하였다.
엘은 차마 세레나와 카이나를 웃는 낯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일단 성국을 설득하고 나서 그 일을 생각해 보자. 당장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엘은 세레나와 카이나를 어떻게 대할지 나중에 고민하기로 결심하며 근시일 내에 처리해야 할 일을 먼저 처리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근시일 내에 처리해야 할 일이란 바로 성국을 설득하는 일이다.
파티에서 에리스 공주의 깜짝 청혼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엘은 파티장을 벗어난 뒤 베르디스 여관에서 정체를 감춘 채 하루를 머문 뒤 곧장 가이아 성국의 수도로 텔레포트를 하려 했다.
그런데 일전에 엘에게 톡톡히 당하던 탓인지 가이아 성국에는 빈틈없이 마법 방해가 쳐져 있었다.
8클래스 마법사인 엘이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마법 방해의 틈 사이에 껴서 죽을 뻔하였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엘은 가이아 성국 수도 인근에 텔레포트를 하여 수도를 향해 발걸음을 옳기는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하루를 꼬박 걷자 성국의 수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성국은 서부의 왕국에서 유일하게 일개 국가로 제국과 맞설 수 있는 강한 힘을 지닌 국가이다.
거기에 가이아 여신을 믿는 인근 왕국의 힘을 합하면 제국과도 일전을 맞이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국가로 탈바꿈한다.
그랬기에 제국들도 감히 성국을 무시하지 못했고, 그런 성국의 입지는 대륙에 존재하는 왕국에서도 독보적이라 할 수 있었다.
엘은 내심 자신이 성국과 맞섰던 것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무모한 짓이었지. 감히 성국과 맞서려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개 마탑이 성국과 싸운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성국은 그랜드 마스터인 다이어드 공작 외에도 마스터 급 실력을 지닌 성기사 100명이 넘 었다.
게다가 그 아래에는 여신을 위한 일이라면 목숨을 바칠 익스퍼트 급 성기사가 무려 수천 명에 달했다.
그에 비해 금탑의 전력은 초라했다.
당시 다이어드 공작을 막아낼 수 있는 존재는 골든 나이트가 유일했고, 기껏해야 서너 명의 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엘 본인과 6클래스의 실피르, 익스퍼트 급의 카이나와 열두 명의 매직 나이트가 전부였다.
하지만 결과는 엘, 금탑의 승리였다.
전생의 게이머였던 시절을 떠올려 창안한 다크 포그가 성국의 발걸음을 막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골든 나이트와 엘이 적절하게 다이어드 공작을 상대하여 성국의 공격을 막아 낸 까닭이다.
그러나 성국은 여전히 대단해서 엘이 8클래스에 오른 지금도 결코 적으로 삼고 싶지 않은 국가였다.
그래서 엘은 성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겸, 루이아스의 강대한 힘에 대항하기 위해 다이어드 공작의 힘을 빌릴 겸해서 성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성국의 수도에 들어선 엘은 수도로 들어서기 위해 늘어선 긴 줄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한산한 곳이라면 귀족과 신관들이 드나드는 통로밖에 없었는데 자신은 그중 어느 계층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탑주도 귀족에 준하니까 포함이 되겠지,”
지극히 자기 합리화적인 생각을 하며 엘은 비어 있는 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성문을 지키는 성기사와 병사들은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는 청년이 접근하자 경계의 눈초리로 엘을 살펴보았다.
수도의 성문을 지키다 보니 그들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신관과 성기사, 귀족들을 보아 왔다. 그런 그들의 기억 속 에 결코 엘같이 생긴 사람은 없었다.
엘이 성문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성기사가 함부로 접근 하지 못하게 손을 들어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
“정지! 어디서 온 누구인지 말하지 않으면 성문을 통과 할 수 없소.”
성기사의 주변에서 무시 못 할 기운이 일순간 뿜어졌다.
그렇다는 건 성기사의 실력이 익스퍼트 급에 들었다는 걸 의미한다.
굳이 성기사를 자극할 필요가 없었기에 엘은 성기사의 제지에 따라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성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음, 사실 여기로 오면서 통과할 자격이 되는지 안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질문을 해도 될까요?”
성국의 고위층들이 드나들 수 있는 성문은 귀족들과 신관, 성기사들만 통과할 수 있다.
거기에 마법사는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법사가 성국을 드나드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관과 마법사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신의 존재를 믿고, 그 신의 힘을 빌려 물리력을 행사하는 신관은 자연의 법칙을 비틀어 버리는 마법사들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예로 대륙에서 성국만큼 마법사가 천대받는 곳은 없었다.
내심 마법사의 힘은 인정하면서도 공식적으로 그들을 인정하면 신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여 마법사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법사들로서도 자신들을 홀대하는 성국에 굳이 갈 필요가 없었기에 성국에 가 본 마법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들 대부분도 공간 이동으로 간 것이지, 성문을 통과 한 적은 없다.
그랬기에 엘은 성기사에게 물음을 던지려 한 것이다.
엘의 물음에 성기사의 표정이 굳어 갔다.
“말해 보라.”
성기사는 내심 속으로 엘을 욕하면서도 차마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성기사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격식과 예의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속으로 이곳에 통과할 자격이 되지 않으면 단단히 혼내 줄 것이라 생각하며 성기사가 엘에게 시선을 주었다.
“마법사는 성문을 통과할 자격이 됩니까?”
“으음!”
엘의 물음에 성기사가 나직이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마법사의 신분은 엄연히 말하면 평민이다.
하지만 그들을 결코 평민으로 대하는 이는 없다.
활용하기에 따라서 그들은 나라의 운명을 정할 수도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실력 있는 마법사들은 기사보다 더욱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니 성국의 입장에서 보면 마법사도 충분히 성문을 통과할 자격이 된다.
하지만 성기사는 눈앞의 엘이 결코 마법사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사의 상징인 로브를 쓰지 않았을 뿐더러 번지르르하게 생긴 얼굴이 결코 마법사가 아닌, 무슨 귀부인들이나 꾀어내는 존재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엘이 이미 금탑주의 상징이 되어 버린 금색 안경과 금색 로브를 쓰지 않았기에 살 수 있는 오해였다.
성기사는 고개를 끄덕 였다.
“마법사라면 통과할 수 있소. 단,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마법사에 한해서 가능하오.”
엘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행여 안 될까 염려했는데 무척 다행이군요. 실력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래봬도 마탑주니까요.”
‘마탑주? 요즘은 개나 소나 다 마탑주인가?’
성기사는 그런 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딱 봐도 20대 초반인 얼굴로 마탑주라 주장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성문 담당 경력 5년 동안 이렇게 허황된 녀석은 처음이었다.
물론 그놈의 성기사가 갖춰야 할 예의와 격식 때문에 티를 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자신 있는 마법을 펼친다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소. 하지만 장난이었을 경우 큰 벌을 받게 될 것이오.”
사심이 가득 섞인 성기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엘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되는군요. 음! 하지만 제가 자신 있는 마법을 펼치면 용건을 보기도 전에 난리가 날 테니…… 이건 어떠려나……“
엘의 손이 허공으로 향하며 손가락으로 원을 한 바퀴 그리자 공간의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잉!
공간 특유의 균열음과 함께 엘의 위로 거대한 공간이 생겨났다.
고위 마법사들만 전개할 수 있는 아공간 마법이 펼쳐진 것이다.
성기사를 비롯한 수도로 들어서려던 사람은 갑자기 허공에서 거대한 공간이 열리자 입을 떡 벌렸다.
아공간은 웬만한 고위 마법사가 아니고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수준 높은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엘이 충분히 고위 마법사라는 것을 증명 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엘은 거기에 그치지 않은 채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바로 안경과 로브였다.
우선 안경을 쓴 엘은 로브를 전신에 둘렀다.
그러자 순 간 엘의 모습이 완벽한 금탑주의 모습으로 변했다.
다시 손가락을 저어 아공간을 닫은 엘은 아직도 입을 떡 벌린 성기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소개를 하지요. 제 이름은 엘리미스, 대륙 사람들은 저를 금탑주라 부릅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성문을 경비하던 성기사는 물론 수도로 들어서려던 사람들까지 한동안 넋을 놓은 사람들처럼 엘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잠시, 곧이어 성기사들은 체면을 잊은 채 비명을 질렀다.
“그, 금탑주가 나타났다!”
땡땡땡땡땡!
요란한 종소리가 수도 곳곳에 울려 퍼졌다.
성국 최대의 오점인 금탑주가 설마하니 수도에 나타날 줄이야!
종이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 명의 성기사가 우르르 성문 앞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중무장을 한 채였다.
방금 전 성기사가 울린 종은 수도에 위기가 처했을 해나 울리는 특급 종이었다.
몰려나온 성기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성기사 1명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그, 그게…… 다, 단장님! 금탑주가 나타났습니다.”
“뭣이?”
성기사의 대답에 단장이라 불린 늙은 성기사의 안색이 빠르게 변했다.
그리고 엘에게 시선이 향하자 그의 표정이 무섭게 변하더니, 이내 무시무시한 분노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금탑주, 네 이노옴!” 분노를 표출함과 동시에 늙은 성기사의 해머가 섬광처럼 뽑혀 나오며 삽시간에 엘을 향해 휘둘러져 왔다.
신성력을 충만하게 머금은 해머였기에 적중당하면 전신의 뼈가 으스러져 버릴 만큼의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늙은 성기사의 공격을 그대로 수용할 엘이 아니었다.
“거기까지. 더 이상 적의를 내뿜으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20미터가 넘는 거리를 순식간에 5미터까지 좁힌 늙은 성기사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어느새 그의 주변 네 방위에서 찬란한 금빛을 발하는 화살이 급소를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늙은 성기사는 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가이아 여신님을 믿는 성기사에게 목숨에 연연하는 일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이런 이런.”
단호한 늙은 성기사의 말에 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만약 적이었다면 진즉에 당신을 살려 두지 않았을 테지요. 안 그런가요, 네이그람 후작님?”
“으음……“
엘의 말에 네이그람 후작이라 불린 늙은 성기사는 안면 근육을 씰룩이며 살기를 제어했다.
둘은 과거 엘이 교황청을 습격했을 때 악연으로 엮인 사이다.
그때 네이그람 후작은 엘을 막고자 필사적이었지만 결국 그를 막지 못했다.
당시 엘의 제련제강의 마법에 죽어 간 성기사들을 떠올린 네이그람 후작은 극도의 분노로 얼굴을 붉게 상기시킨 채 입을 열었다.
“적의가 없다고 해도 금탑주는 성국의 최대의 적. 그런 그대가 이곳에 무슨 일인가?”
“후우!”
적대감을 보일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예상을 휠씬 뛰어 넘는 네이그람 후작의 태도에 엘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건 적대적이어도 너무 적대적이다.
엘은 네이그람 후작에게 말했다.
“교황 성하를 만나 뵙고 싶어 왔습니다. 그런데 네이그람 후작님의 태도로 보아 결코 만나게 해 줄 것 같지 않군요.”
네이그람 후작이 당연하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그럼 본국의 성기사들을 죽인 그대를 어찌 믿겠는가.”
엘과 네이그람 후작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성문 밖으로 나오는 성기사들의 숫자가 더욱 늘어났다.
거의 100에 달하는 성기사들은 네이그람 후작이 꼼짝 없이 제압된 상태를 보고는 당장이라도 뛰어들 듯한 자세였지만 상대가 금탑주란 점과 네이그람 후작의 목숨이 금탑주의 손에 달려 있어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엘은 그런 성기사들의 모습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는 네이그람 후작을 보며 말했다.
“교황 성하를 뵙게 해 주실 수 없다면 어쩔 수 없군요. 네이그람 후작님의 목숨을 담보로 하여 교황 성하를 만날 수밖에.”
예상대로 네이그람 후작이 팔팔 뛰었다
“감히…… 그런 치졸한 협박을 하다니! 내 목숨은 괜찮으니 어서 금탑주를 공격해라!”
네이그람 후작이 성기사들을 향해 소리치지만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건 네이그람 후작의 입장이었고 성기사들에게 있어 네이그람 후작은 하늘과 같은 성기사의 표본 중의 표본.
그런 존재가 그냥 죽게 놔둘 리 없다.
“이익!”
네이그람 후작은 머뭇거리는 성기사들을 보며 분통 터지는 표정을 짓다가 손에 쥔 해머를 들어 휘둘렀다.
그대로 자신에게 휘두르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걸 두고 볼 엘이 아니었다.
이미 인질로 삼겠다는 말의 시점에서 엘은 이러한 네이그람 후작의 반응을 예상했다.
그와 동시에 네이그람 후작의 동작이 멈추었다.
엘은 네이그람 후작에게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혹시나 해서 은밀하게 마비 마법을 전개해 두었지요. 성기사의 항마력은 무척 강하지만 무지막지하게 마나를 퍼부으니 그것도 뚫리는군요. 후후! 그럼 이제 네이그람 후작님을 인질로 교황 성하를 만나 볼까요?”
이 순간 네이그람 후작은 엘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마치 악마의 미소처럼 보였다.
그는 엘의 말에 치를 떨었다.
“이, 이 비겁한……“
만약 엘이 그런 행동을 보인다면 네이그람 후작은 명성에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된다.
아니, 무엇보다 본인이 스스로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짧은 시간에 네이그람 후작의 눈이 여러 번 변했다 그러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칼자루는 엘이 쥐고 있었다.
“그럼 맹세할 수 있겠나? 결코 교황 성하께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엘이 입가에 웃음을 지웠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교황 성하는 물론 성국 전체에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 맹세하겠습니다.”
“믿겠네.”
네이그람 후작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움직일 수 없던 몸이 자유로워졌다.
깜짝 놀란 네이그람 후작을 보며 엘이 입을 열었다.
“그런 대답을 할 줄 알고 이미 마법을 해제한 상태였습니다.”
“…… 과연 대륙의 일축으로 성장할 만한 사람이군. 책임지고 교황 성하께 안내하겠네. 따라오게.”
몸이 자유로워진 네이그람 후작이 터벅터벅 걷자 엘이 그 뒤를 따랐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성기사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그러다 뒤늦게 엘이 다가오는 걸 보고는 경계의 태세를 취하자 네이그람 후작이 외쳤다.
“그만! 금탑주는 교황 성하께 할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경계의 자세를 취하지 말라 ”
“하지만 단장님!”
성기사들이 염려스럽게 외치자 네이그람 후작이 재차 외쳤다.
“그만! 교황 성하를 만나 뵙게 하는 데 생길 책임은 모두 내가 뒤집어쓰겠다. 그러니 더 이상 말을 말라.”
네이그람 후작의 단호한 외침에 성기사들은 다른 말을 하지 못한 채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모든 의심을 푼 것은 아니기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엘을 포위했다.
그것까지는 제지할 수 없었기에 네이그람 후작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수도에서 교황청으로 들어갈 때까지, 속속 합류하는 성 기사의 숫자는 더욱 늘어갔다.
마침내 교황청에 다다랐을 때, 엘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성기사의 숫자는 물경 300에 이르렀다.
엘은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성기사들을 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이거야 원, 내가 무슨 죄인도 아니고.’
아니, 성국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죄인이겠지만 엘은 스스로가 결코 꿀리는 짓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당당했다.
그렇게 교황청에 도착하자, 네이그람 후작은 성기사들을 보며 외쳤다.
“여기서부터는 따라 올 필요가 없다.”
그 말과 함께 교황청을 지키는 성기사들이 도열했다.
그리고 300명의 성기사 대신 그들이 엘을 포위하며 교황청 안쪽으로 향했다.
교황청 안으로 들어서고, 마스터 급 성기사 다섯에게 포위당한 채 객실 한 곳에 안내되어야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교황 성하를 뵐 수 있을 것이다.”
그 말과 함께 네이그람 후작은 객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 객실의 문을 마스터 급 성기사가 물샐틈없이 포위 했다.
졸지에 객실에 감금되어 버린 엘은 볼을 긁적였다.
“휴우! 이거 완전 취급이 죄인이로군.”
어차피 저지른 일이 있으니, 엘은 고민해 봤자 자신이 손해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휴식을 취했다.
당장 즐기는 것이 최고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로부터 다섯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면서? 벌써 다섯 시간이 넘었는데……“
서서히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 왔다.
잠시 후, 객실 문이 열리면서 부드러운 인상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인은 엘을 보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인사를 했다.
“처음 뵙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금탑주님.”
왠지 모르게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미소였다.
엘은 저도 모르게 응어리졌던 속마음이 풀리는 걸 느끼면서 속으로 놀랐다.
‘의도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사람을 은연중 조종할 줄 아는 사람이야. 휘둘리지 않게 주의해야겠어.’
“저 또한 반갑습니다. 금탑을 다스리고 있는 엘리미스 입니다.”
엘의 소개에 중년인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아, 제 소개를 미처 못했군요. 죄송합니다. 제 이름은 아르디모스. 부족하지만 여신님의 은총을 받아 대신관의 직위에 있습니다.”
아르디모스의 부드러운 음성이 객실에 울려 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