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95)
5. 갈등의 해소
중년인의 자기소개에 엘의 눈이 반짝였다.
아르디모스 대신관!
대륙에서는 교황보다 더욱 유명한 이름이었다.
그는 신관이면서 책략이 무척 밝았다.
더군다나 다방면에 뛰어나서 교황조차도 그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뛰어난 자라고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이번 가이아 여신의 신탁을 해석하여 세레나가 어디에 있는지 밝혀 낸 것에는 그의 공이 지대했다.
엘의 입장에서 결코 반가운 자는 아니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이라면 여신의 신탁을 해석해 내고, 성국의 두뇌라 불리는 자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야.’
상대의 정체를 안 엘은 속으로 잔뜩 경계하면서 겉으로 미소 지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님의 뛰어남은 누누이 들어왔습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금탑주님의 명성에 비하면 제 이름은 드래곤 앞에 오크에 불과하지요. 위명이 자자하신 금탑주님이 오셨다기에 제가 이렇게 와 교황 성하께 안내해 드리고자 온 것입니다.”
‘정확히 탐색하러 온 것이겠지.’
성국으로서는 갑작스러운 엘의 방문에 당혹스러울 터, 그러니 아르디모스 대신관을 파견하여 엘이 무슨 속내를 지니고 있는지 떠보려는 것일 터였다.
그 수를 단번에 알아차린 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 또한 이렇게 아르디모스 대신관님을 뵙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무슨 말씀을,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겉치레 인사를 마친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손으로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제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앞장서자 엘이 그 뒤를 따랐다.
교황청 안은 정말 화려했다.
엘이 여태까지 본 곳 중에서 가장 화려한 곳은 블리어드 제국의 황궁이었다.
그야말로 대륙의 주축인 제국이란 말이 절로 나을 정도로……
압도당할 정도의 웅장함과 사치스러움은 그야말로 제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다음은 카시아스 왕국의 왕궁이었다.
부유한 왕국답게 그 화려함은 다른 곳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교황청은 그런 화려함과는 약간 다르게 느껴졌다.
교황청 곳곳이 일정한 법칙을 가진 그림과 여러 장식이 되어 있었는데, 그 속에 마치 일정한 법칙과 함께 절로 경건함이 드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을 믿지 않는 엘이 절로 신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날 정도였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제국의 황궁보다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교황이 머무는 대전으로 가기까지 엘과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아무래도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주도하는 쪽이었는데, 그는 요즘 대륙의 정세가 무언가 알 수 없는 심각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국에는 딱히 정보 단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륙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상인들이 많이 지나고, 그로 인해 정보가 많이 흘러오지요. 요 근래에 제국의 정황이 무척 어수선하다고 들리더군요. 그 것도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그러니 무언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금탑주님도 이번에 블리어드 제국을 다녀가셨으니 그러한 것에 잘 아시리라 생각되는데…… 무언가 아시는 게 있으신지요?”
‘으음, 어쩐다?’
엘은 속으로 고민하며 아르디모스 대신관을 힐끗 보았다.
지금 자신은 성국을 설득하여 추후 루이아스를 견제하는데 성국을 합류시켜야 한다.
아르디모스는 그런 걸로 치면 적임자다.
그의 입김이 작용하면 교황도 찬성할 확률이 높고, 성국을 끌어들이기가 한층 쉬워진다.
하지만 문제는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순순히 엘의 이야기에 찬성하겠냐는 것이다.
사실 엘은 성국으로 오면서 과연 그들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엘과 성국은 무척 사이가 좋지 않다.
게다가 엘이 루이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경우 무척 허황되게 들릴 확률도 높다.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허황된 이야기를 해 대면 누가 믿겠는가?
이건 어린아이도 알 만한 이치 아닌가?
자칫 잘못하면 성국과 제국 간의 사이를 이간질하여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공분을 살 수도 있다.
특히 엘을 싫어하는 성국의 입장상 그렇게 해서라도 엘을 처리하려 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르디모스 대신관에게 미리 솔직하게 얘기를 해 둬서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판단일 확률이 높다.
엘은 아르디모스 대신관을 보며 말했다.
“대신관님은 제가 모든 사실을 말해 주신다면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예?”
갑자기 심각해지는 엘의 태도에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엘의 목적이 무엇인가 알아보기 위해 찔러 본 것에 불과했다.
그 또한 자신의 앞에 선 상대, 엘이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대륙의 한 축이 되어 있는 청년은 실제 명성에 걸맞게끔 힘과 지략을 갖추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방금 전 질문도 단순히 찔러 보는 용으로 사용 했던 것인데 상대가 돌연 진지하게 나오니 그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엘이 무언가 심각한 얘기를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간략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엘은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최대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간략하게 이야기를 간추려 말을 해 주었다.
우선 대륙에 9클래스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점.
그가 벨로세크 제국에 자리하여 수십 년 동안 대륙 통일의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과 도합 아홉 명의 초인이 그의 휘하에 있다는 것, 그리고 현재 벨로세크, 데이제크, 루이디스 제 국이 그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아일라스 제국과 블리어드 제국에 간 이유를 말했다.
“루이아스는 아토빌 공작님을 제거하고 아일라스 제국을 차지하려 했습니다. 그걸 돕고, 아토빌 공작님의 협력을 얻어 낸 것이지요. 그리고 블리어드 제국에 가서도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협력을 구했습니다. 그 후 서부의 초인들을 초빙하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두 그랜드 마스터는 루이아스가 미리 손을 썼더군요. 그래서 유클레이님을 비롯한 두 분과 힘을 합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골든 나이트까지 도합 열 명의 초인이 힘을 합친 상태 입니다.”
놀란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엘의 이야기는 정말 소설이라도 되는 양 허구성이 짙은 이야기 투성이었다.
우선 9클래스 마법사의 존재부터 그러하다.
인간이 9클래스에 오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9클래스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랜드 마스터에 버금가는 방대한 마나와 튼튼한 육체, 그리고 깨달음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일반 8클래스 마법사가 그랜드 마스터에 달하는 마나를 보유하고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사실상 9클래스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도합 9명의 초인이 휘하에 있단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초인의 자존심이 얼마나 대단한 지 잘 알고 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움직여 버릴 수 있는 그들의 자존심은 그야말로 높고 높은 산과도 같다.
그런데 그들 9명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다?
아무리 상대가 9클래스 마법사래도 초인이 휘하에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과 같다.
성국에도 초인인 다이어드 공작이 있기에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초인이 결코 힘에 굴복하지도, 재물에 현혹되지도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의 말은 마치 잘 짜인 정밀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그가 왜 아일라스 제국에 갔는지, 왜 블리어드 제국에 갔는지 모두 설명되었으며, 갑자기 두 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것도 설명이 되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순간 왜 신탁이 내려왔는지 어렴풋 알 수 있었다.
보통 신들은 대륙에 위기가 닥쳤을 때 신탁을 내림으로써 경고를 한다.
여태껏 그렇게 신탁을 내려 받아 대륙의 환란을 모두 막아 낸 건 아니지만 확실히 신탁은 큰 위기에 봉착했을 때 내려진다.
‘그러고 보니 가이아 여신님께서 신탁을 내리실 이유가 특별히 없다. 겉으로 평화로운 지금 이때에 성녀님을 내려 보낼 이유가 없을 터. 그렇다는 건 금탑주님의 말이 사실일 확률이 높군.’
정말 믿기 힘든 일이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인 것 이다.
한참동안 침묵하던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입이 열렸다.
엘의 말이 사실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사실 같군요, 금탑주님.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실입니다, 대신관님. 제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에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엘의 말에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금탑주님이 성국에 방문한 이유도 한 가지 뿐이군요. 본 성국의 힘과 다이어드 공작님의 힘을 빌리 기 위한 것이겠지요?”
엘이 고개를 끄덕 였다.
“그렇습니다, 대신관님. 제가 이렇게 모든 것을 틸어놓는 이유는 제가 성국과 그리 사이가 안 좋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며, 제 이야기 자체가 허황되게 느껴질 만큼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거기까지만 말해도 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서 제게 먼저 연유를 말한 뒤 제게 협력을 구할 생각이셨군요.”
“그렇습니다.”
“흐음,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이건 너무 믿기 힘든 현실인데……“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제아무리 자신이라 해도 어느 정도 한계선에서 교황을 설득할 수 있다.
지금 이렇게 허황된 듯 한 이야기를 해대 면 교황은 물론 다른 대신관들이 믿어 줄 리 만무했다.
그랬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엘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루이아스란 9클래스 마법사는 대륙을 통일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만약 그때까지 긴밀한 협조망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성국은 압도적인 전력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순간 떠오른 생각에 손뼉을 쳤다.
짝!
“이 방법을 쓰면 되겠군요.”
“무슨 방법입니까?”
엘이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로서는 도저히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을 생각해 냈으니 궁금할 법도 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말했다.
“아마 이것은 신탁에 관련된 일일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신탁이요? 호오……“
신탁이란 말에 엘이 무언가를 알아차린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분명 가이아 여신님께서 성녀님을 내려보내시려 한 까닭은 앞으로 대륙에 들이닥칠 환란을 막기 위함일 것입니다. 점성술에 따르면 성녀님은 아마 홀리 스타일 확률이 높을 것이고 그 루이아스라는 9클래스 마법사는 다크 스타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는 건 가이아 여신님께서 저희에게 성녀님을 중심으로 다크 스타를 정벌할 기회를 주셨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가이아 성국은 오로지 여신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곳. 여신님의 말씀이시라면 교황 성하는 물론 다른 대신관님들께서도 순순히 협력에 응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방법이……“
엘의 얼굴에 절로 감탄이 떠올랐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생각은 정말 기발했다.
교황과 대신관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점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그의 말에 거짓이 없었다.
실제로 성녀가 홀리 스타였을 것이고, 루이아스가 다크 스타가 맞으니 말이다.
그렇다는 건 가이아 여신이 성국으로 하여금 다크 스타 에게 맞서게 하려던 말이 성립된다.
즉, 교황을 설득할 여지가 충분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것이다.
“정말 대단합니다, 대신관님.”
엘은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뛰어난 책략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만약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직도 이 생각을 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그런데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잠시간의 고민으로 깔끔하게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웬만한 책략가라 하더라도 꿈도 못 꿀 뛰어난 책략이었다.
엘의 거듭된 칭찬에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미소 지었다.
“과찬이십니다. 일단 결과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칭찬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지만 아직 진행 중이니 지금은 과하게 들리는군요.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그 칭찬을 얼마든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하시지요.”
‘아르디모스 대신관을 끌어들인 건 현명한 판단이었어.’
엘은 내심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느끼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자신의 의견을 지지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운이 솟았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교황과 대신관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에 도착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교황 성하와 다른 대신관님들을 자극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른 분들은 금탑주님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안 좋기 때문입니다.”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대신관님.”
“그럼……“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회의장을 지키고 있는 성기사에게 눈짓을 하자 병사 2명이 회의장 문을 열었다.
거대한 회의장의 문이 열리면서 엘의 시야에 족히 수천 평은 되어 보이는 회의장이 들어왔다.
엄청난 크기의 회의장을 보며 엘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호오……“
그 모습을 보며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조용히 미소를 흘렸다.
그의 얼굴에는 금탑주가 감탄할 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교황청에 대한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생각과 다르게 엘은 다른 의미로 감탄하고 있었다. ‘
‘돈을 어지간히 발랐나 보군. 이걸 돈으로 치면 도대체 얼마인 거야……’
이렇든 저렇든 어찌하든 간에 엘은 앞장서는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뒤를 따라 거침없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엘의 눈에 거대한 원탁이 보였고, 가장 상석에 자리한 교황과 빙 둘러앉은 대신관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엘은 교황을 발견하자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황 성하.”
교황은 탐탁치 않은 얼굴이었다.
하기야 과거 목숨을 노리던 인물을 이렇게 면전에서 보게 되니 반가울 리가 없다.
하지만 개인적인 원한은 개인적 원한.
지금은 손님의 입장으로 온 것이기에 교황은 엘의 인사를 받았다.
‘결코 반갑지 않은 얼굴이로군 ‘
불쾌한 표정을 짓는 이는 비단 교황만이 아니었다.
회의장에 자리한 모든 대신관들이 엘을 향해 불쾌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엘은 그런 시선에 기분이 나빠지면서도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은 어디까지나 도움을 청하러 온 몸.
상대방의 심기를 자극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황과 대신관들이 엘을 냉대하자 분위기는 삽시간에 싸늘하게 식어 갔다.
그때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인물이 있었다.
중년의 모습에 순백의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이,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다이어드 공작이었다.
다이어드 공작은 회의장 안으로 들어서다가 엘을 보고는 멈칫했다.
엘은 그런 다이어드 공작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다이어드 공작님.”
어떻게 보면 능청스럽기까지 한 엘의 모습에 다이어드 공작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 갔다.
“그렇군.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구려, 금탑주.”
다이어드 공작도 결코 엘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금탑의 힘을 가장 앞에서 지켜 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눈앞의 청년이 얼마나 치밀하고 얼마나 계획적인지 잘 알고 있다.
눈앞에서는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적으로 삼았을 때는 사상 최악의 인물이 되는 게 바로 금탑주였다.
그런 그를 보니 과거 성국이 지독하게 당하던 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자신이 나서야 함을 깨달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금탑에 적대감을 가진 교황과 대신관들로 인해 금탑주가 제대로 이야기조차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회의에 참석하실 분들이 모두 모였으니 모두 자리에 앉으시고 금탑주님이 왜 성국을 찾았는지 이야기를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교황에게 시선을 주자 교황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렇게 하게. 단,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일말의 기대라도 접어 두라 말하고 싶군.”
그 말과 함께 교황은 고개를 휙 돌렸다.
전혀 이야기를 들을 자세가 아니었다.
하지만 엘은 그런 교황의 반응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은 채 대신관들의 면면과 다이어드 공작을 살폈다.
막연히 적대감을 가진 교황과 다르게 대신관들과 다이어드 공작은 엘을 불쾌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성국을 찾았는지 궁금함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엘은 이야기를 자신이 아닌,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슬쩍 아르디모스 대신관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러자 엘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제가 금탑주님을 회의장으로 모셔오면서 금탑주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중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금탑주님은 그 부분을 말씀드리기 위해 온 것이며, 저는 그것이 보통 심각한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한 바, 금탑주님께 최대한 협력을 약속한 상태입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고개까지 돌리고 있던 교황이 더욱 그러했다.
“뭣이? 아르디모스 대신관 그대가?”
아르디모스 대신관은 교황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측근 중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금탑주를 돕겠다고 말할 정도라면 사항이 평범한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제가 금탑주님께 들은 사실을 말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입에서 엘이 이야기해 주었던 내용이 흘러 나왔다.
9클래스 마법사가 대륙 최강의 제국인 벨로세크 제국 에서 오랫동안 야망을 키워왔으며, 무려 8명의 초인이 그의 휘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미 대륙을 일통하기 위한 계획이 시작되어 3개의 제국이 그의 수중에 있다는 것까지 말이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실 하나하나가 모두 경악스러운 것들뿐이었다.
“……”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가 놀란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다이어드 공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이어드 공작은 정녕 믿기 힘들었다.
한참 후, 그는 엘을 쏘아보며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난 대신관의 말을 믿기가 힘드오. 제아무리 9클래스 마법사라지만 어떻게 그의 휘하에 아홉 명의 초인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초인의 오른 그의 입장에 대비한 후 말한 것이니 그의 말에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다이어드 공작은 자신이 이룬 무위에 무한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주인은 오로지 여신님이라는 일념 하에 때에 따라서는 교황의 명령까지 거부하던 자신이다.
그런 자신이 대륙 10대 그랜드 마스터 중 하위권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하위권으로 평가되고 있는 자신의 자부심이 이럴진데 그보다 먼저, 더욱 강하다고 평가되는 그랜드 마스터들의 자존심은 오죽하겠는가
아마 그들 중 황제도 자신보다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존재했으면 존재했지 결코 그보다 떨어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초인이란 그런 것이다.
무한한 자부심을 지닐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런데 그런 초인이 무려 9명이나 한 사람의 휘하에 있다니?
정녕 믿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으며,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나 허구성이 짙은 이야기 였다.
때문에 다이어드 공작은 금탑주의 이야기가 거짓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은 이미 예상한 바,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공작님도 요 근래에 제국들에게 기이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거기에 금탑주님의 말을 맞춰 보면 퍼즐처럼 정확히 들어맞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우리 성국의 힘을 이용하여 제국과 상잔 시키려는 것일지도 모르오. 과거 금탑을 침공했다는 이유로 말이오.”
다이어드 공작의 반응은 지극히 부정적이었다.
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엘이 나섰다.
“그건 억지에 가까운 말입니다, 공작님. 제가 성국과 맞섰던 이유는 저의 여인인 세레나가 성녀가 되는 걸 막기 위함이었지 결코 성국에 사사로운 원한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꾸밀 때 전면으로 나설 만큼 저는 바보가 아니고요. 만약 제가 성국의 힘을 약화시키고자 했다면 카르메인 왕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를 동원하여 일을 추진했을 것입니다. 결코 단신으로 이렇게 찾아오진 않았겠죠.”
엘의 설명에 다이어드 공작은 꿀 먹은 벙어리인 양 아무 말도 못했다.
무어라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엘의 말이 구구절절 모두 옳았기 때문이다.
금탑주가 이렇게 어설프게 계획을 꾸몄다면 감히 성국과 맞서지도 못했을 것이고,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더 이상 말해 봤자 억지란 걸 본인이 가장 잘 알았기에 다이어드 공작은 반박하지 않은 채 납득했다.
“그래, 그렇다 쳐도 여전히 믿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요. 초인이라면 그 국가의 보배이자 수호신인 법. 그런 그들의 자존심은 하늘과도 같을 터. 그런데 그런 그들을 아홉 명이나 거느리고 있다니.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7″
다이어드 공작의 물음에 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점은 저도 자세하게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마법사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대륙에서 가장 가공스러운 위력을 지닌 오대 마병 중 하나인 카르마 링을 지니 고 있습니다.”
엘의 말에 교황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카, 카르마 링? 그, 그게 사실인가!”
어찌나 놀랐는지 교황은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그 물음에 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카르마 링에 제가 직접 당해 보았습니다. 당시 8클래스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는데 그의 카르마 링에 의해 마나가 강제로 분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위력을 지닌 것은 대륙에 단 하나, 카르마 링뿐입니다.”
“그런 저주받은 마병을 가지고 있다니……”
교황은 여전히 경악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엘은 교황이 자신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을 얻고 있는 듯하자 말을 이어 나갔다.
“아마도 그는 카르마 링을 바탕으로 8클래스 마법사들을 굴복시켜 나갔을 확률이 큽니다. 아시다시피 카르마 링은 마법사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바탕으로 마법사의 세력을 이루고, 뒤이어 어떠한 수단으로 그랜드 마스터들을 끌어들였을 확률이 큽니다.”
“으음……”
엘의 말에 일리가 있기에 교황은 신음을 길게 흘렸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에게 들은 설명과 엘의 말을 종합해 보면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였다.
이건 개인적으로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난 중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고민에 빠진 교황에게 아르디모스 대신관이 결정타를 날렸다.
“교황 성하! 가이아 여신님께서 왜 신탁을 내려주셨는지 생각을 해 보면 간단하옵니다. 여신님께서 무엇 때문에 저희에게 성녀님을 내리시려 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루이아스를 견제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점성술에 의거해서 본다면 그는 다크 스타일 확률이 높습니다. 예로부터 다크 스타가 생기면 반드시 홀리 스타를 이 세상에 내린다고 했습니다. 성녀님을 홀리 스타로 생각한다면, 현재 대륙에는 다크 스타가 재림해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설명에는 점성술의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말에 교황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교황은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구려. 과거 마왕의 강림 때도 다크 스타가 떴고, 홀리 스타로 임명받은 신 검의 주인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마왕을 막기란 불가능했을 테니…… 이번 일도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전보다 더욱 큰일이 일어난 것이로군.”
그래도 마왕의 강림 때에는 중간계 최후의 보루인 드래곤이 있어서 어느 정도 괜찮았다.
하지만 루이아스는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힘을 초월한 자였다.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국한된 일이었기에 드래곤이 끼어들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드래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결국 인간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사태는 절망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교황이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말에 반응을 달리한 까닭은 여신의 신탁도 설득력이 있지만 무엇보다 과거 마왕의 강림으로 대륙에 점성술이 크게 인정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동안 생각하던 교황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결정을 내리겠소. 본 성국은 앞으로 루이아스를 타도하는 데 최대한 힘을 보태도록 하겠소. 다이어드 공작, 경의 생각은 어떻소?”
교황의 힘으로 성국을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다이어드 공작은 제아무리 교황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다이어드 공작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마치 엘에 의해 끌려가는 듯 하여 내심 참가를 하겠다고 말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아르디모스 대신관의 입에서 여신님의 안배란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도 감정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것이 여신님을 따르는 것보다 먼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이어드 공작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결정했습니다. 금탑주, 나 또한 루이아스를 타도하는 데 최대한 협력을 하겠소.”
교황에 이어 다이어드 공작도 협력하겠다고 하자 엘의 표정이 밝아졌다.
“옳은 판단을 하셨습니다.”
정말 설득하기 어려운 난적을 설득한 것이다.
엘의 얼굴에는 화색이 만면했다.
그는 아르디모스 대신관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아르디모스 대신관 또한 엘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르디모스 대신관을 끌어들인 건 정말 잘한 일이었어.’
가장 설득하기 어렵다고 여긴 성국을 설득한 지금, 엘은 비로소 루이아스에게 대항할 힘을 지니게 되었다.
엘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초인은 도합 열둘.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
성국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엘의 표정은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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