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04)
금수저 투자백서 104화(104/231)
104. 팔 수 있는 만큼 가능한 많이! 어서 서둘러!
뜻밖의 지시에 앤드루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되물었다.
[포지션을 정리하라고 하셨습니까?]깜짝 놀란 앤드루와 달리 석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요.”
[이제 막 폭락을 시작해서 놔두면 더 떨어질 텐데 너무 매도가 빠른 것 아닐까요.]에둘러 반대했지만 석원은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아니. 지금이 매도할 타이밍이에요.”
[…….]앤드루는 확신에 찬 석원의 태도에 그동안 곁에서 목격했던 수많은 성공들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뭔가 자신이 놓친 것이 있다는 걸 직감하곤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어차피 하루도 되지 않아 다 알게 될 일이었다.
거기다가 다음 행동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이유를 명확하게 납득한 채 움직이는 것이 나았기에 왜 지금이 매도할 타이밍인지 설명해 줬다.
“이번 대지진으로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는 건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포지션을 더 들고 가야되지 않겠습니까?]대지진으로 인한 투자심리 위축과 위험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일본 주식은 물론이고 엔화까지 무차별적인 투매가 일어나고 있었기에 투자자라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정확한 액수는 시간이 더 지나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보험사들이 최소 1조엔 이상의 보험금을 지불해야 될 거예요.”
[그것 때문에 지금 일본 보험사들의 주가가 박살 나고 있지 않습니까.]“맞아요. 그런데 보험사들이 보험금으로 내줘야 될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 같아요?”
[그거야 이럴 때를 대비해 각 보험사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처분해서…….]무심코 대답하던 앤드루는 번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멈칫했다.
그러다가 다급히 말을 쏟아냈다.
[보험금 지급을 위해 일본 보험사들이 외국에 투자해둔 자산을 대규모로 매각한 뒤, 달러를 엔화로 바꿔서 들여오면 환율이 거꾸로 치솟을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금방 상황을 알아차리는 앤드루의 모습에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에 예상되는 보험금이 최소 1조 엔이라고 했었죠. 그만한 돈이 한꺼번에 일본으로 유입된다면 엔화는 약세가 아니라 초강세로 가게 될 거예요.”
앤드루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 그렇군요…… 조금만 유추를 해봐도 알 수 있었을 텐데. 도대체 왜 이걸 생각 못 한 건지…….]스스로 자책하던 앤드루는 자신이 실수한 것이 아니라 다들 엔화와 일본 증시 폭락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때 여기까지 내다본 석원이 특별한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 보는 시야가 우리하곤 달라.’
속으로 크게 감탄한 엔드루는 석원이 왜 포지션을 정리하라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포지션을 팔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난 뒤 바로 엔화를 사들이란 말씀이시겠죠?]일일이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다음에 취해야 할 스텝을 이야기하는 앤드루의 모습에 석원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양팔로 책상을 짚고 서서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던 석원은 상체를 바로 세우며 말했다.
“닛케이에 숏 베팅을 해둔 것도 다 청산해서 롱으로 포지션을 바꾸도록 해요.”
그러자 앤드루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닛케이도 폭락을 멈추고 반전할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피해가 큰 만큼 곧 일본 정부의 대규모 재건 계획이 발표될 거예요.”
[아하.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뿌려진다면 버블 붕괴로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에 활력이 돌게 될 테니까. 증시에 엄청난 호재가 되겠군요.]“제대로 봤어요.”
재건 사업으로 인해 내수에 반짝 활기가 돌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걸로 깊은 침체의 늪을 빠져나오진 못할 터였다.
오히려 과도한 재정 지출로 인해 휘청이던 일본 경제에 치명타를 안겨주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거기까지 알 필요가 없었기에 석원은 굳이 말을 꺼내지 않고 넘어갔다.
“대지진으로 인한 혼란과 불안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재건 계획이 나올 테니까. 오늘까지 모든 작업을 끝내도록 해요.”
[포지션을 전부 바꿔 놓으려면 보통 일이 아닌데 아주 바쁜 하루가 되겠군요.]“고된 만큼 뒤따라오는 보상은 아주 달달할 거예요.”
그러자 앤드루가 경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늘 안에 일을 마무리해야겠군요. 물론 레버리지는 최대한으로 쓰시겠죠?]“당연히 그래야죠.”
석원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흔치 않은 기회인데 왔을 때 확실하게 수익을 올려야 되지 않겠어요.”
[옳으신 말씀입니다.]“포지션 조정이 끝나면 다시 전화로 알려줘요.”
[알겠습니다.]통화를 끝낸 석원은 최신 정보들을 빠르게 업데이트해주고 있는 블룸버그 단말기를 잠시 살펴보고는 팔을 뻗어 한쪽에 설치된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스피커에서 석원이 본부장으로 승진하고 나서 전속 여비서로 새롭게 배정된 나성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본부장님.]“1팀 팀장한테 연락해서 지금 바로 내 방으로 오라고 해요.”
[알겠습니다.]의자에 앉은 그는 어느새 18,600선도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깨지면서 계속 추락하고 있는 닛케이 지수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얼마 뒤면 달러가 아주 많이 필요해질 테니까. 챙길 수 있을 때 확실히 챙겨 둬야지.”
* * *
일본 도쿄도 주오구, 노무라 증권 본점.
거세게 몰아치는 태풍의 한가운데 있는 만큼 노무라 증권 트레이딩 센터는 가히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소니 3,990엔에 2만 5천 주 매도!”
“시장가에 토요타 자동차 5만 주 팔자!”
“미쓰비시 전자가 30% 넘게 빠지고 있습니다!”
“도쿄 전력도 급락 중입니다.”
“주문을 넣는 것보다 가격이 떨어지는 게 더 빠르니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이러다 시장이 박살 나겠어.”
트레이더들이 사방에서 내지르는 비명 같은 외침에 요시무라 본부장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말 그대로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버블 붕괴의 여파로 인해 닛케이가 전체적으로 약세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하루 아침에 이런 패닉이 시장을 덮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회사 내 주류인 야마카와 사장 파벌의 일원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승승장구하며 재작년엔 핵심 보직인 본사 트레이딩 센터 본부장이 된 요시무라였다.
평탄하게 실적을 쌓아 올해 연말에 있을 인사 때 임원 승진을 노리고 있었는데 이런 재앙이 터지다니!
애써 참고 있지만 속으론 온갖 욕설을 쏟아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하고 계속 일어나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던 요시무라 본부장은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쳐다봤다.
나란히 여섯 대가 설치된 텔레비전에서는 일본 주요 방송사와 CNN, ABC 뉴스가 틀어져 있었다.
여섯 개 채널 모두 오늘 새벽 발생한 대지진의 직격타를 입어 폐허로 변한 고베시의 모습을 속보로 보여주고 있었다.
옆으로 힘없이 무너져 있는 한신 고속도로 고가와 곳곳에서 건물들이 붕괴된 채 시커먼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는 시가지의 모습에 요시무라는 자신의 임원 승진을 향한 꿈도 사라진 것 같아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자리라도 보전하려면 어떻게든 손실을 줄여야 했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그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손절매를 하려면 손해를 보더라도 보유한 물량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시장에 퍼진 공포심과 가파르게 수직 낙하 중인 지수에 아무도 매수를 하려고 들지 않아 거래 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젠장!’
요시무라가 속으로 소리쳤을 때 선임 트레이더인 우에무라 과장이 얼굴을 잔뜩 구긴 그의 옆으로 황급히 다가와 말했다.
“본부장님! 시장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요시무라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누군가 닛케이 선물을 대량 매수하고 있습니다.”
“……!”
뜻밖의 이야기에 요시무라 본부장이 눈썹을 모으며 우에무라 과장을 봤다.
“닛케이 선물을 파는 게 아니라 매수한다고 했나?”
“예.”
대답을 들은 요시무라 본부장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미친놈들이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일본의 경제신문사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사가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들 가운데 유동성이 높은 225개 종목을 뽑아서 가격가중평균 주가지수를 만들어 발표하는 것을 닛케이 지수라고 불렀다.
도쿄증시 1부 시가총액의 절반을 넘길 정도로 일본을 대표하는 회사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기에 사실상 도쿄증시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때문에 일본 증시를 낙관적으로 본다면 닛케이 지수 선물을 매수하고 반대로 생각할 경우 선물을 매도해서 숏포지션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주가가 무섭게 폭락하고 공포에 질려 너도나도 주식을 내던지고 있는 상황에 닛케이 선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산다고 하니 미친놈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미간을 좁힌 요시무라 본부장을 보며 우에무라 과장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매수를 하고 있으니 그쪽에 선물을 대량으로 팔면 이번 폭락에서 입은 손실은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요시무라 본부장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렇군. 지금 상황에서 지수가 더 떨어지면 떨어졌지 오르지는 않을 테니까. 닛케이 선물을 팔아 손실을 메꿀 수 있겠어.”
“바로 그겁니다.”
“하하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날 길이 생긴 요시무라 본부장은 얼굴에 활기를 띠었다.
사실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누군가 닛케이 선물을 대량 매수하는 미친 짓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이걸 떠올리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도대체 선물을 매수하는 곳이 어디야?”
“미국계 펀드인 엘도라도입니다.”
요시무라 본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낯선 이름인데…… 뭐, 그런 건 상관없지.”
어쨌든 지금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인데 매수 주체가 어떤 곳이건 상관없었다.
“매수 주문은 얼마나 냈어?”
“이미 500건 이상 샀고 지금도 매물을 싹쓸이하듯 가져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급해진 요시무라 본부장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그 친구들 주머니에 총알이 다 떨어지기 전에 우리도 얼른 선물을 팔아!”
“물량은 얼마나 내놓을까요?”
“팔 수 있는 만큼 가능한 많이! 어서 서둘러!”
요시무라 본부장이 다그치듯 외쳤다.
닛게이 선물 매도를 통해 손실을 최대한 줄일 작정이었다.
‘시장 전체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손실을 최소화시킨다면 오히려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우에하라 과장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요시무라 본부장은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시세판을 바라보면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 여기서 주저앉을 내가 아니지.”
그는 역전 한방을 꿈꾸면서 희망에 찬 눈빛을 반짝였다.
하지만 방금 한 결정이 지옥의 구렁텅이를 빠져나올 동아줄이 아니라 더 깊은 수렁으로 향하는 티켓이 될 거라고는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