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08)
금수저 투자백서 109화(108/231)
109. 언제 기회가 생기면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군.
미국 뉴욕.
커다란 통유리창 밖으로 맨해튼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이 아름답게 펼쳐진 최고급 레스토랑.
전체적으로 앤티크한 느낌의 인테리어로 고급스럽게 꾸며진 실내는 상류층이 드나드는 곳 특유의 세련된 분위기가 흘렀다.
한쪽에 설치된 무대 위에는 은은한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여가수가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느릿한 재즈를 라이브로 부르고 있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서정적인 재즈곡은 창밖으로 보이는 화려한 뉴욕의 야경과 무척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최고급 레스토랑답게 아늑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메인 요리 하나 가격이 웬만한 직장인 주급에 해당할 만큼 값비싼 레스토랑이었지만 이른 저녁부터 빈 테이블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약간 거리를 두고 배치된 테이블에는 얼굴만 봐도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유명인들의 모습도 몇몇 보였다.
이것만 봐도 여기가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라 막대한 부를 가졌거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진짜 거물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한 병에 수천 달러씩 하는 와인을 마시며 식사 중인 거물들 가운데 퀀텀펀드 설립자이자 CEO인 조지 해밀턴과 그의 후계자로 불리는 로드니 CIO가 있었다.
나이프로 자른 양고기를 포크로 찍어서 입으로 가져가며 조지 해밀턴이 말했다.
“오늘 달러-엔 환율이 95엔을 깰 뻔했다고 들었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로드니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잠시 95엔을 찍기는 했지만 다시 95.14엔으로 내려왔습니다.”
“자네가 보기에 앞으로 어떨 것 같나?”
“달러-엔 환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잠시 고심한 로드니는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는 조지 해밀턴을 보며 다시 입을 뗐다.
“95엔에 근접하면서 상승 압력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크게 꺾여 떨어지진 않을 걸로 보입니다.”
“한동안 엔 강세가 이어질 거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비슷한 생각인지 조지 해밀턴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지난번 중간 선거 패배로 데이비슨 대통령의 정책 기조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고금리로 바뀌어서 강달러로 갈 줄 알았는데. 이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군.”
실제로 중간 선거가 끝난 이후 진행된 분석에서 고물가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중산층들의 이탈이 결정적인 여당의 패인으로 꼽혔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핵심 지지기반이었던 중산층의 지지율 하락은 백악관과 여당으로서는 정말 뼈아픈 일이었다.
특히나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필립 데이비슨 입장에서는 완전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데이비슨 대통령은 그동안 취하던 저금리 정책을 버리고 고금리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멕시코가 갑작스러운 외환 위기를 맞으며 휘청거리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른 유탄을 맞은 거였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지 해밀턴을 비롯한 대부분의 월가 거물 투자자들이 작년 말부터 달러 강세에 베팅했다.
앞에 있는 조지 해밀턴을 슬쩍 쳐다본 로드니는 위로하듯 말했다.
“멕시코 위기는 예상 범위 안에 있었지만 솔직히 일본에서 그렇게 큰 지진이 터질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조지 해밀턴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리자 웨이터가 다가와 빈 와인잔을 다시 채워줬다.
“지금까지 일본으로 돌아간 자금이 얼마나 된다고 했지?”
“대략 1조 엔이 조금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조지 해밀턴이 살짝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일본의 저력이 대단하군. 한때 미국을 넘어설 뻔한 경제 대국다워.”
흔히 와타나베 부인이라고 불리며 일본 밖으로 나와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무서움을 로드니 역시 이번에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고베 대지진 피해액이 10조 엔이라고 했었나?”
“그렇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엔캐리 자금의 반입이 상당 기간 이어지겠군.”
로드니가 조금 난감해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달러 강세를 예상한 월가 투자자들은 엔과 독일 마르크화를 팔고 달러를 대거 매수했다.
조지 해밀턴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가 이끄는 퀀텀 펀드는 특히 일본 엔을 팔고 달러를 사는 포지션을 구축했다.
거기에 더해 영란은행 공격으로 유명인사가 된 조지 해밀턴은 주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달러가 엔화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하며 공개적으로 엔화 하락과 달러 강세를 주장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만에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면서 사람들의 비아냥을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망신을 당하게 된 것도 굴욕적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예측이 빗나가면서 퀀텀펀드가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조지 해밀턴은 초조하거나 안절부절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느긋하게 와인잔을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것이 다행이군.”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로드니가 몸을 앞으로 살짝 당기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옵션 조건이 충족되려면 환율이 95엔을 깨고 올라가야 되는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원래 어려운 싸움일수록 보상도 큰 법이지.”
조지 해밀턴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저항 따윈 더 큰 힘으로 찍어 눌러 버리면 그뿐이지 않겠나.”
그러자 로드니가 조지 해밀턴을 마주 보면서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환율이 너무 치솟으면 일본 은행이 직접 방어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와인잔을 내려놓은 조지 해밀턴이 뒤로 몸을 기대고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내 별명이 뭔지 알고 있겠지.”
“영란은행을 무릎 꿇린 사나이 아니십니까.”
로드니가 존경심을 담아 대답했다.
세계 경제사에 영원히 이름이 남을 만한 업적은 아무나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를 바라보는 로드니의 눈빛도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원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 아니겠나.”
눈치 빠르게 조지 해밀턴의 의도를 알아챈 로드니가 허리를 바로 세웠다.
“영란은행에 이어서 일본은행까지 백기를 들게 만든다면 그야말로 전설을 새로 쓰시는 것이 되겠군요.”
“자네와 내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전설이지.”
조지 해밀턴이 로드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60대를 넘겼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여전히 정력적인 모습에 로드니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함께 만들어 갈 전설이라…… 말씀만 들어도 의욕이 마구 솟구치는군요.”
식사를 끝낸 조지 해밀턴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는 테이블에 내려놨다.
“대지진으로 휘청거리는 지금이 일본은행이 가장 약한 타이밍일 걸세. 그러니 이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새로 판을 짜서 나한테 가져오게.”
“언제까지 보고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내일 아침 사무실 책상 위에 계획안을 올려두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이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자 로드니가 벌써 플랜B를 마련해 둔 걸 알아차린 조지 해밀턴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 내가 자넬 좋아한다니까.”
후계자로 생각 중인 로드니를 믿음직스럽게 바라보던 조지 해밀턴은 문득 뭔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일본 건은 그렇게 처리하기로 하고 얼마 전에 아주 재미있는 논문을 하나 읽었는데. 자네도 시간이 나면 한번 보도록 하게.”
원래 투자보다는 학문에 더 관심이 많았던 조지 해밀턴은 자신의 경제 이론을 학문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했다.
그래서인지 월가의 거물이 된 이후에도 시간 날 때마다 경제 관련 논문을 읽는 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였다.
그걸 잘 알고 있던 로드니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말을 받았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니 내용이 꽤 흥미로우셨나 봅니다.”
“테크놀러지의 발달과 경제 위기의 상관관계라는 제목인데. 요점만 말하자면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인해 정보의 전달이 빨라지면서 공포와 불안감의 확산 또한 급속하게 이루어져 투자자들의 심리가 과거보다 경제 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질 거라는 내용이네.”
“상당히 재미있는 발상이군요.”
이야기를 들은 로드니가 호오, 하고 작게 감탄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해는 본질적으로 불안전하고. 예측과 현실은 크게 동떨어져 있어 그게 상황 전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평소 내 지론하고도 통하는 부분이 많더군.”
“그래서 더 관심이 가셨나 보군요.”
“꼭 그게 아니더라도 투자에 참고가 될만한 참신한 내용이 많았네.”
“누가 쓴 논문입니까?”
“프랭크 교수라고 자네도 알 거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하버드 대학의 필립 프랭크 교수 말씀이십니까?”
머리를 끄덕이며 조지 해밀턴이 말했다.
“맞네.”
“프랭크 교수라면 학계뿐만 아니라 월가에서도 인정하는 인물이니 정말 꼭 한번 읽어 봐야 되겠군요.”
“그런데 이번 논문은 프랭크 교수 혼자 쓴 것이 아니라 공동 저자가 한 명 더 있더군.”
“프랭크 교수와 함께 논문을 쓸 정도면 상당히 명망 높은 학자겠군요.”
그러자 조지 해밀턴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알아보고 나선 깜짝 놀랐네.”
로드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왜인지 조지 해밀턴의 얼굴이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약간 들떠있었다.
“글쎄 명문 대학 교수나 유명 학자가 아니라 몇 년 전에 하버드를 졸업한 청년이 공동저자더군.”
“예? 그게 정말입니까?”
로드니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농담을 하는 것 같겠지만 진짜네. 나도 믿기지가 않아서 몇 번을 확인해봤는데 사실이더군.”
“그게 정말이라면 대단한 천재인 모양입니다.”
“프랭크 교수가 주변 지인들한테 만약 그 친구가 학계에 남았더라면 자신처럼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을 거라고 말하고 다니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아.”
“그 말씀은 지금은 학계에 몸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겁니까?”
“하버드를 졸업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하더군. 그래서 말인데, 그 친구를 우리 펀드로 스카웃하고 싶네만 자네 생각은 어떤가?”
노벨상 수상자가 인정한 재능이라면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뛰어난 인재는 많을수록 좋지요.”
곧바로 대답한 로드니가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귀국을 했다는 걸 보면 미국인이 아닌 모양입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라고 들었네. 이름이…… 그래, 석원 박이었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에 미간을 좁힌 로드니가 이내 누굴 떠올리곤 짧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
“왜 그러나?”
“만약 동명이인이 아니라 제가 아는 인물과 같은 사람이라면 저희하고 함께 일하긴 어려울 겁니다.”
“뭣 때문에 그렇지?”
“엘도라도 펀드라고 기억하십니까?”
“지난번에 채권으로 크게 재미를 봤다는 곳 말인가.”
“최근에는 멕시코 페소와 엔을 거래해서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지요.”
최근 몇 년간 놀라운 수익률을 올리며 월가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 바로 엘도라도 펀드였기에 조지 해밀턴 역시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설마 벌써 거기에 스카웃 된 건가.”
조지 해밀턴이 눈썹을 찡그리며 묻자 로드니가 쓰게 웃었다.
“그게 아니라 엘도라도 펀드의 주인이 바로 석원 박입니다.”
“뭐!”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조지 해밀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조지 해밀턴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헛웃음을 지었다.
“신생 펀드가 말도 안 되는 수익률을 내서 의아했었는데 자네 말을 듣고 나니 조금 납득이 되는군.”
“저도 그렇습니다.”
내심 앤드루 카드가 아니라 석원이 엘도라도 펀드의 투자를 이끄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던 로드니는 이걸로 확신을 굳힐 수 있었다.
“경쟁 펀드 대표라니…… 자네 말대로 영입은 힘들겠군.”
영 아쉬워진 조지 해밀턴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이러니 어떤 자인지 더 궁금해지는 것 같단 말이야. 언제 기회가 생기면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