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10)
금수저 투자백서 110화(110/231)
110. 파운드를 무너뜨렸으니 엔화 역시 그럴 수 있지 않겠어요.
미국 뉴욕, 맨해튼 원 뉴욕 플라자 빌딩.
햇살이 가득 비치는 창가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새파란 이스트 강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엘도라도 펀드 대표실 소파에 석원을 가운데 두고 랜든과 앤드루가 양쪽으로 앉아 있었다.
남색 스트라이프 정장에 행거치프로 포인트를 준 석원은 원두향이 진하게 풍기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뗐다.
“어제 장에서 닛케이가 다시 500포인트가량 올랐더군요.”
그러자 트레이딩을 책임지고 있는 앤드루가 바로 대답했다.
“네. 싱가포르 쪽에서 대거 닛케이 선물 매입 주문이 들어오면서 18,414.23까지 지수를 끌어 올렸습니다. 하지만 매수세가 그리 강하게 따라붙고 있진 않아 여기서 바닥을 찍고 다시 반등했다고 보긴 어려워 보입니다.”
싱가포르라는 말에 석원은 대충 누가 선물을 매입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닛케이 롱에 베팅한 브래드 쿠퍼가 어떻게든 포지션을 지켜내려고 발버둥을 치는 모양이네요.”
“그래도 혼자 닛케이를 500포인트나 끌어올린 걸 보면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랜든의 이야기에 앤드루가 맞은편에서 코웃음을 쳤다.
“그래봤자 거짓말쟁이 사기꾼에 불과한 녀석이죠.”
지금까지 브래드 쿠퍼가 쌓아 올린 명성이 거짓으로 만들어진 거란 걸 알고 나서부터 앤드루는 줄곧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브래드 쿠퍼의 실력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한때 그를 스카웃해 올 생각까지 했었던 앤드루였기에 더욱 실망이 크고 배신감까지 느끼는 모습이었다.
석원은 한쪽 다리를 꼰 자세로 동의하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앤드루의 말이 맞아요. 있는 걸 다 쥐어 짜내면서 필사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혼자 거대한 시장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고는 눈을 차갑게 번득였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를 파멸로 끌고 가겠죠.”
그러자 앤드루가 살짝 몸을 당겨 앉으며 말을 덧붙였다.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지난 며칠 동안 브래드 쿠퍼가 가진 포지션이 엄청나게 늘어났을 겁니다.”
맞은편에 있던 랜든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지수 하락을 막으려면 선물 매도가 나오는 족족 쓸어 담아야 됐을 테니 그렇겠지.”
“문제는 규모가 작은 후진국 증시도 아니고 미국 다음으로 큰 닛케이는 트레이더 한 명이 혼자 장난질을 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시장이 아니라는 거죠.”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는 앤드루의 모습에 석원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더군다나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엔고로 인해 수출까지 타격을 받게 생겼으니 증시에 악재만 가득한 상황 아니겠어요.”
석원은 딱 잘라 단언하듯 말했다.
“이런데 상승에 돈을 거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죠.”
엔화 강세가 되면 수출품 가격이 비싸져 수출 기업 입장에서는 치명적이었다.
‘비싸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상품이 없다면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겠지.’
하지만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가전 그리고 조선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턱밑까지 쫓아와 자리를 위협하는 한국이 있었다.
겉으로는 한국을 경쟁 상대로 안 보는 척하면서도 내심 바짝 경계하고 있던 일본 기업들로서는 연이은 악재에 더욱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랜든이 정말 궁금하단 표정으로 두 사람을 둘러보며 물었다.
“브래드 쿠퍼도 이런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왜 포기하지 않고 무모한 행동을 계속하는 걸까요.”
석원이 뒤로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대답했다.
“포기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걸 거예요.”
“으음.”
얼굴을 굳힌 랜든이 낮게 침음성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발을 빼지 못할 정도라면 일이 터졌을 때 정말 심각해질 수도 있겠군요.”
그러다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랜든이 설마하며 그를 쳐다봤다.
“이번 사건으로 베어링스 은행이 파산하지는 않겠죠?”
“그건 모르는 일이죠.”
“……!”
눈을 동그랗게 뜬 랜든과 앤드루를 보며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23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은행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문을 닫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어요.”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베어링스 은행이 발행한 채권은 한순간에 휴짓조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석원의 지시로 베어링스 은행 채권을 대량 매도해 둔 엘도라도 펀드는 앉아서 아주 큰 수익을 거두게 되는 거였다.
“처음부터 여기까지 내다보신 겁니까?”
랜든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크게 입을 벌려 감탄했다.
앤드루 역시 궁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럴 리가요. 하지만 브래드 쿠퍼의 장난질이 선을 넘긴 걸 확인했을 때 일이 터지면 베어링스 은행이 휘청거릴 건 예상했죠.”
어깨를 으쓱인 석원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브래드 쿠퍼가 멈추지 않고 저렇게 폭주하는 걸 보니 베어링스 은행의 운명이 다했다는 확신이 드네요.”
경영진도 아니고 고작 총괄 매니저 한 명이 수년에 걸쳐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있는데도, 자체 감사로 전혀 걸러내지 못하고 까맣게 몰랐다면 은행으로서 기본적인 기능조차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아니, 경영진들이 싱가포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브래드 쿠퍼의 일탈을 정말로 몰랐을까?’
어쩌면 선을 넘는 행위를 알고도 브래드 쿠퍼가 벌어오는 많은 수익에 그냥 모른 척 눈을 감아 버린 걸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때를 놓쳐 불이 집까지 몽땅 다 태워 버린 거지.’
그렇게 석원이 짧은 상념을 이어가는 동안 랜든과 앤드루는 설령 파산까진 예상하지 않았다고 해도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걸 꿰뚫어 본 통찰력에 혀를 내둘렀다.
“일단 베어링스 은행 채권은 파산까지 염두에 두고 두 사람이 알아서 적당한 타이밍에 포지션을 청산하도록 해요.”
두 사람의 능력을 믿고 거래를 완전히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 랜든과 앤드루는 반사적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동안 석원의 밑에서 손발을 맞추다 보니 이젠 눈만 마주쳐도 대충 의견이 통하는 두 사람이었다.
“저희가 알아서 거래를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랜든이 확인하듯 되묻자 석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요.”
석원은 여전히 놀란 표정을 한 두 사람을 보면서 담담하게 물었다.
“왜, 자신 없어요?”
“그럴 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랜든이 곧장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최대한 많은 수익을 낼 테니 맡겨만 주십시오.”
앤드루 역시 강하게 의욕을 드러내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과를 기대하도록 하죠.”
겉으로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내심 옅은 미소를 지은 석원이 말했다.
펀드 규모가 커지고 있는 만큼 모든 걸 그가 다 컨트롤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굵직한 결정은 자신이 내리더라도 세부적인 일들은 랜든과 앤드루가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체계를 갖춰나갈 생각이었다.
‘꿈을 이루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기적처럼 회귀를 하게 됐는데 재미없게 돈만 벌며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지.’
새로운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려면 신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능력도 갖춘 측근이 필요했다.
때문에 그는 앞으로 점점 더 큰일을 맡기면서 두 사람의 능력을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원래 똑똑한 부하직원을 밑에 둬야 편한 법이거든.’
석원은 두 사람을 데굴데굴 굴릴 생각을 하며 그윽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왠지 모를 오한을 느낀 랜든과 앤드루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들 그래요?”
“죄송합니다. 갑자기 몸이 오슬오슬 떨리고 추워서…….”
“저도 비슷한데 이것 참 이상한 일이군요.”
“둘 다 몸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석원이 짐짓 걱정스러워하는 말투로 물었다.
앞으로 열심히 갈려 나가야 하는 두 사람인데 벌써 몸이라도 상하면 안 될 말이었다.
“그건 아닙니다.”
“지금은 괜찮은 걸 보니 그냥 잠깐 그랬나 봅니다.”
랜든과 앤드루 둘 다 별것 아니었다는 듯 웃으면서 대꾸했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매 순간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되는 것이 트레이딩인 만큼 건강 관리도 중요해요.”
“아…….”
“죄송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펀드 직원들한테 제공하는 메디컬 보험에 1년마다 주기적으로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추가하도록 하죠.”
“네, 그러겠습니다.”
석원이 왜 갑자기 건강 관리에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었으므로 펀드 운영을 맡고 있는 랜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과 달리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없는 미국에서는 회사가 지원해 주는 메디컬 보험이야말로 직장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혜택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값비싼 건강 검진을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건 상당한 혜택이었다.
‘분명 그렇긴 한데…….’
‘왜 이렇게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지?’
랜든과 앤드루는 기뻐하면서도 왠지 모를 찝찝한 기분을 느꼈다.
왜지하고 내심 머리를 갸웃거리던 두 사람은 곧 이어진 석원의 이야기에 금방 잡념을 지우고 대화에 집중했다.
“오늘 달러-엔 환율은 어때요?”
시선을 받은 앤드루가 바로 대답했다.
“95.20엔대를 유지하며 큰 변화 없이 숨 고르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지난 며칠간 100엔에서 90엔까지 몇 번이나 크게 요동쳤으니 잠시 쉬어갈 타이밍도 됐을 겁니다.”
랜든의 이야기에 그는 동의하듯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움직임이 격렬하긴 했죠.”
“어휴 그 정도가 아니라 아주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정신이 없었죠. 월가에서도 파도를 잘못 탔다가 큰 손해를 보고 짐을 싼 트레이더들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호들갑을 떤 랜든이 힐끔 그를 쳐다보곤 이내 씨익 웃었다.
“물론 저희는 반대로 수익을 엄청 올렸지만 말입니다.”
그러자 앤드루가 슬쩍 석원의 눈치를 살피고는 입을 뗐다.
“앞서 말씀하셨던 수출 문제 때문에라도 여기서 엔고가 더 심해지는 걸 일본 정부도 꺼려할 테니, 이쯤에서 환율이 큰 등락 없이 횡보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다 올라온 것 같으니 이제 그만 포지션을 정리하자는 거예요?”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석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앤드루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석원은 고개를 돌려 왼편 소파에 자리한 랜든한테 시선을 주며 물었다.
“랜든 생각은 어때요?”
“이미 충분한 수익을 올린데다가 여기서 더 올라간다고 해도 폭이 그리 크진 않을 겁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석원의 표정을 살피며 랜든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이어 말했다.
“그러니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 환율이 폭락할 위험을 감안해 볼 때,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라도 그만 털고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꼭지까지 먹으려고 했다가 당장 오늘이라도 환율이 폭락해 버리면 그나마 번 수익까지 날려 버릴 수 있으니 나름 타당한 의견이었다.
하지만 석원의 판단은 달랐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꼭대기가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아직 산허리 정도밖에 안 왔어요.”
“엔이 여기서 더 오를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랜든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래요. 내 예상이 들어맞는다면 80엔 언저리까지도 갈 수 있을 거예요.”
약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확신에 찬 태도에 도리어 랜든과 앤드루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도 미친 듯이 높은 환율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90엔도 아니고 무려 80엔까지 치솟을 거라고 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앤드루가 바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반박했다.
“80엔이면 초강세를 넘어 외환 시장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갈 수 있는 수준인데 거기까지 가겠습니까.”
“저도 앤드루와 같은 의견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까진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그러자 석원이 자세를 바로 하고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상적이라면 그렇겠죠.”
“…….”
“그런데 만약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해서 의도적으로 환율을 끌어 올린다면 어떨 것 같아요?”
앤드루가 설마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파운드, 마르크와 함께 달러 다음으로 많이 거래되는 통화가 엔인데 누가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겠습니까.”
“엔화가 준 기축통화처럼 사용되긴 하지만 미국 정부와 연준이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달러하고 완전히 같은 건 아니죠. 그리고 이미 비슷한 선례로 파운드화도 한번 무너진 적이 있잖아요.”
“!”
“조지 해밀턴이 영란은행을 공격했던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석원은 여기서 그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파운드를 무너뜨렸으니 엔화 역시 그럴 수 있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