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14)
금수저 투자백서 114화(114/231)
114. 주당 24달러 정도면 적당할 것 같군요.
전 세계 경제 수도로 불리는 뉴욕 그중에서도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는 평일 낮인데도 사람과 차량들로 가득 차 혼잡했다.
높은 고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좁은 거리는 바쁘게 오가는 인파들과 여기저기에서 울리는 자동차 경적소리로 시끄러웠다.
꽉 막힌 도로 위를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기어가는 자동차들 속에 석원 일행이 탄 리무진도 섞여 있었다.
빵빵! 빵빵!
“맙소사. 이게 무슨 난리야.”
톰 하퍼는 연신 울려대는 경적소리를 들으면서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앞뒤로 막혀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도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뉴욕 시민들이 왜 화가 많은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톰 하퍼는 질린 눈빛을 하고는 몸에 정확하게 핏되는 수제 슈트를 입고 가죽시트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는 석원을 쳐다봤다.
“정말 지독할 정도로 막히네. 이건 뭐 걷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그러자 맞은편에 랜든과 함께 자리한 빌 넬슨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석원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느긋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내가 맨해튼의 교통 체증은 지옥이라고 했잖아.”
“그래도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톰 하퍼는 한숨을 내쉬며 뒷머리를 시트에 기댔다.
“뉴욕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난 이런 곳에서 못 살 것 같아. 매일 이 짓을 어떻게 하냐.”
“돈이 많은데 왜 그런 고생을 해.”
석원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복잡한 맨해튼 대신 깨끗하고 조용한 롱아일랜드 저택에서 가족들과 지내면서 막힐 일이 없는 헬리콥터로 여유롭게 출퇴근을 하면 되잖아.”
“뭐?”
톰 하퍼가 황당한 얼굴을 하자 랜든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실제로 아침만 되면 출근하는 월가 거물들을 태운 헬리콥터들이 맨해튼 하늘을 요란스럽게 오가곤 하죠.”
“아니…… 아무리 돈이 많아도 헬리콥터로 출퇴근을 하다니 그건 좀 너무 심하지 않아?”
톰 하퍼의 상식으로는 진짜 돈이 썩어나는 인간들이나 할 법한 짓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톰 한 사람뿐인지 석원이나 랜든은 딱히 놀랄 일도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차들 사이에 갇혀서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대신 큰 딜을 하나 성공시키면 수백만에서 많이는 수천만 달러까지 벌어들일 수 있는데. 그게 더 효율적이지.”
석원은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차들을 쳐다보면서 턱을 괴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가치까지 다 같은 건 아니야.”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톰 하퍼는 입맛을 다셨을 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일행이 탄 리무진은 그리스 판테온 신전처럼 16미터가 넘는 6개의 커다란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어 웅장하고 위압감을 주는 뉴욕증권거래소를 지나 목적지인 골드만삭스 본사에 도착했다.
브라운색에 43층 높이의 고층 건물인 골드만삭스 본사는 정문 양쪽에 걸린 성조기 아래 브로드 스트리트(Broad Street) 85라는 주소만 달랑 적혀 있을 뿐.
특이하게 어디에도 골드만삭스라는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리무진에서 내린 일행은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회색톤 대리석이 바닥에 깔린 넓은 로비에는 정장을 입은 직원과 방문객들이 바쁘게 오가거나 소파에 앉아 무언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랜든이 함께 온 직원을 시켜 데스크에 도착 사실을 알리려고 할 때 누군가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석원이 고개를 돌리자 갈색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백인 사내가 부하 직원과 함께 웃으며 서 있었다.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내려와 있었군요.”
안면이 있는지 랜든이 갈색 머리 사내와 악수하며 말했다.
“귀한 손님이 오시는데 당연하지요.”
갈색 머리 사내가 유쾌하게 대답하며 소개를 바라는 듯 옆을 힐끔거렸다.
그런 시선을 눈치챈 랜든이 한쪽 팔을 들어 석원을 가리켰다.
“인사하십시오. 이분은 저희 펀드의 박석원 대표님이십니다.”
그러자 갈색머리 사내가 이채 어린 눈빛으로 석원을 빠르게 살피더니 먼저 악수를 청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골드만삭스 ECM 부서 팀장으로 있는 반즈라고 합니다.”
“박석원이에요.”
“랜든 씨한테 대표님이 젊으신 분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군요.”
그를 바라보는 반즈의 시선은 놀라움과 감탄이 섞여 있었는데, 지난 몇 년간 엘도라도 펀드가 거둔 엄청난 성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젊다고 만만하게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완전히 확 달라진 평가였다.
뒤이어 톰 하퍼와 빌 넬슨하고도 간단히 인사를 나눈 반즈는 앞장서며 말했다.
“다들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일단 위로 올라가시죠.”
반즈의 말에 따라 일행은 따로 잡아둔 엘리베이터를 타고 30층에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긴 복도는 호텔처럼 두터운 카펫이 바닥에 깔려 있었고 생화로 장식한 꽃병과 고상한 그림들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잠시 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월가 고층 빌딩들이 보이는 회의실 안에 들어서자 큰 키의 금발 중년인과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에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사내가 기다리고 있다가 일행을 보고 일어나 반갑게 맞이했다.
“이쪽에 계신 금발 신사분은 저희 은행 임원이신 러셀 씨입니다. 그리고 옆의 분은 데만 본부장님이시고요.”
그러자 잘 손질된 금발 머리에 쓰리피스 슈트 그리고 비싸 보이는 가죽 구두를 신어 전형적인 월가 금융맨의 모습을 한 러셀이 미소 띤 얼굴로 말을 걸었다.
“반갑습니다. 리처드 러셀입니다.”
올라오기 전에 미리 귀띔을 받았는지 러셀은 정확하게 석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박석원입니다.”
석원은 이어서 옆에 있는 데만 본부장하고도 손을 맞잡고 통성명을 나눴다.
함께 온 톰 하퍼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도 상대편하고 잠시 가벼운 인사가 오갔다.
그러고 나서 준비된 긴 테이블에 양측이 마주 앉자 러셀 이사가 먼저 운을 띄웠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은행도 얼마 전부터 넷스케이프에서 출시한 웹브라우저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직접 사용해보니 다른 제품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더군요. 그걸 보고 왜 요즘 업계에서 가장 핫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개발한 웹브라우저를 칭찬하자 약간 경직된 모습으로 앉아 있던 톰 하퍼의 표정이 조금 느슨하게 풀렸다.
“좋게 보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렇게 능숙하게 분위기를 푼 러셀 이사는 시선을 석원한테 고정시켰다.
사람들 사이에 미묘하게 오가는 눈짓이나 행동을 보고 이번 회의의 카운트 파트가 석원인 걸 단번에 알아차린 거였다.
“그럼 다들 바쁘실 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요.”
그러자 러셀 이사의 왼편에 자리한 반츠 팀장이 곧장 말을 이어받았다.
“먼저 앉아 계신 테이블 위에 저희 쪽에서 계획한 IPO 요약본을 놔뒀으니 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석원과 일행들은 각자 앞에 놓인 얇은 서류철을 펼쳐 내용을 살펴봤다.
이미 랜든을 통해 상세 내용을 다 알고 있던 석원은 다른 점이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로 빠르게 훑어내렸다.
“우선 요약본에도 나와 있지만 여러 가지를 검토한 결과 뉴욕증권거래소보다는 나스닥에 상장시키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빌 넬슨이 손에 든 서류철을 내려놓으며 의문을 표시했다.
“역사가 짧고 규모도 작은 나스닥보단 뉴욕증권거래소로 가는 것이 자금을 유치하기에 더 나은 거 아닙니까?”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보잉과 GE, 코카콜라, 포드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기업들이 모두 상장된 미국을 대표하는 주식시장이었다.
그에 비해 나스닥(NASDAQ)은 1971년 2월 첫 거래를 시작한 장외 주식시장이었기에 아무래도 거래 규모나 이름값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나스닥이 뉴욕증권거래소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닷컴 버블과 주요 IT 기업들이 쏟아지기 전이었기에 더욱 격차가 컸다.
“말씀대로 시장 크기나 움직이는 자금 규모를 생각한다면 뉴욕증권거래소가 훨씬 나을 겁니다.”
그런데 왜 나스닥에 상장시키려는 거냐는 눈빛으로 빌이 쳐다보자 반즈 팀장이 부드럽게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가장 큰 시장인 만큼 뉴욕증권거래소는 상장 조건이 아주 까다롭죠.”
“…….”
“기본적으로 충분한 사업 이력과 재무구조가 튼실하지 못한다면 심사 신청조차 받아주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톰 하퍼와 빌 넬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부실기업이 상장되는 걸 예방하기 위한 일종의 거름망 같은 거지요.”
반즈 팀장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물론 넷스케이프가 그런 부실한 회사라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 다가올 인터넷 시대의 선두 주자로 IBM이나 애플 같은 큰 회사로 성장할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석원과 일행을 쳐다본 반즈 팀장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요구하는 조건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
“반면에 나스닥은 적자를 내는 신생 회사라도 사업성과 미래 성장 가능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상장시킬 수 있을 만큼 진입 문턱이 낮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함께 나란히 앉아 있던 데만 본부장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자동차나 철강, 가전 같은 전통 산업들 위주인 뉴욕 증권 거래소와 달리 나스닥은 첨단기술주들이 모인 곳이란 이미지가 있죠. 그게 오히려 넷스케이프의 회사 색깔하고도 맞고 장점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연이은 설명에 빌 넬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으음, 그렇군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옆에 있던 톰 하퍼 역시 어느 정도 납득한 표정이었다.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석원이 조용히 입을 떼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리고 위험성이 있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나스닥 쪽이 기업 가치를 더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거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맞는 거겠지.”
톰 하퍼는 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냉큼 그렇게 대답했다.
그걸 본 러셀 이사를 비롯한 골드만삭스 측 인사들은 역시나 예상한 대로 석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그럼 상장하는 곳을 나스닥으로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반즈 팀장이 묻자 석원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
“이의 없습니다.”
“그렇게 하죠.”
곧이어 톰 하퍼까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협의 사항이 별 다른 문제없이 수월하게 넘어가자 반즈 팀장은 내심 긴장을 느슨하게 풀며 서류를 넘겼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장 중요한 공모가는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대략 주당 13~14달러로 책정할 예정입니다.”
“!”
공모가를 들은 톰 하퍼와 빌 넬슨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반즈 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롭게 웃으며 계속 말했다.
“공모 때 추가로 발행할 주식을 포함해서 대략 기업 가치를 6억 달러 넘게 평가받는 겁니다.”
이 정도면 회사 가치를 아주 넉넉하게 평가해줬다는 투였다.
아니나 다를까, 골드만삭스에서 제시한 공모가대로 주식이 상장된다면 석원이 말한 대로 한순간에 억만장자가 되게 된 톰 하퍼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옆에 있는 두 사람의 반응은 냉정했다.
특히 랜든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석원은 뭔가 마뜩잖은 듯 눈썹을 찌푸리기까지 했다.
“그게 최선입니까?”
“예?”
당연히 괜찮게 공모가가 책정됐다고 만족할 줄 알았던 반즈 팀장은 뜻밖의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그렇다면 정말 실망이군요.”
곧바로 평정심을 회복한 반즈 팀장이 석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공모가가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그러자 랜든이 대신 나서서 대답했다.
“나스닥에 신규 상장되는 주식 공모가가 평균 15~18달러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아래라니 솔직히 많이 실망스럽군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넷스케이프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창업한지 1년이 조금 넘었고 무엇보다 적자 상태라는 것이 디스카운트 요소로 작용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3~14달러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대화를 듣던 석원이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묵직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뗐다.
“그렇다고 해도 공모가가 너무 싸게 책정된 것 같군요.”
상황이 이쯤 되자 반즈 팀장은 일부러 가격을 비싸게 받으려고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얼마를 받길 원하시는 겁니까?”
은근히 불쾌한 티를 드러내며 묻자 석원이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가격을 이야기했다.
“주당 24달러 정도면 적당할 것 같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