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21)
금수저 투자백서 121화(121/231)
121. 싱가포르에서 기다리던 일이 터진 것 같습니다!
본부장실 소파에 석원이 최호근 4팀장하고 앉아 있었다.
검은색 슈트를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질한 석원은 손에 든 서류철을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오른편 소파에 자리한 최호근 팀장한테 돌려주며 말했다.
“이번 달에도 4팀 성적이 좋네요.”
“본부장님이 계실 때 기록하신 수익률을 따라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아부 섞인 말에 피식 웃으며 석원은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었다.
서류를 읽어 보는 사이에 커피가 살짝 식어 마시기에 딱 좋았다.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은 석원은 푹신한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오광산업과 천호제강 둘 다 이번 달에도 꽤 많이 올랐죠.”
“오른 정도가 아니라 오광산업은 주당 60만 원을 넘겼고 천호제강 역시 30만 원을 넘겨 이제 어디까지 오를지 겁이 날 지경입니다.”
석원이 매수한 평단가를 기준으로 오광산업은 4배, 천호제강은 무려 10배나 뛰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상승세가 얼마나 센지. 얼마 못 가 폭락할 거라고 했던 비관론자들까지도 계속 오르는 주가에 태도를 바꿔 오광산업과 천호제강 주식을 사지 못해 안달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석원은 눈에서 이채를 띠며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가파르게 올라 겁이 나기도 하지만 주가가 폭등해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은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저라도 욕심이 생길 것 같습니다.”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을 한 석원은 이내 최호근 팀장을 보며 말했다.
“비관론자들까지 돌아설 정도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면 이제 슬슬 정리하고 수익을 챙길 때가 된 것 같네요.”
“예?”
뜻밖의 말에 최호근 팀장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관론이 사라지고 막차라도 올라타려고 너나할 것 없이 매수에 나선다면 이제 고점이 가까워졌다는 신호 아니겠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시장 분위기로 볼 때 아직은 더 오를 여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미련을 보이는 최호근 팀장하고 달리 석원은 오히려 담담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양손을 깍지를 낀 석원의 물음에 최호근 팀장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대답했다.
“부담스러운 가격인 건 맞지만 개인들의 매수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추세가 꺾이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석원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거기다가 정부에서도 증시 부양에 힘을 실어 주고 있는 걸 감안해볼 때. 당분간은 주식시장 호황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에요.”
최호근 팀장의 이야기대로 호황을 가리키는 지표인 증시 예탁금 액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정부에서도 주식시장을 부양하려는 모습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실제로 내년에는 외국인 보유 한도를 10%에서 20%로 크게 늘려주며 외국인들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도 하지.’
이로 인해 얼마 안 있어 큰 홍역을 치르게 되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기에 지금 중요하진 않았다.
석원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최호근 팀장을 보며 말했다.
“최 팀장 말대로 적어도 올해 안에 주식시장이 침체되거나 폭락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 반색하던 최호근 팀장은 이어진 말에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지수가 안 떨어진다고 개별 종목들이 모두 다 하락하지 않고 상승하는 건 아니죠.”
“……?”
“애초에 오광산업과 천호제강이 폭등하게 된 이유가 뭐예요.”
“그야 보유한 기업가치 대비 주가가 낮은 저 PER 주라 투자가 몰렸고. 천호제강은 가지고 있는 부동산 때문에 주가가 치솟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맞아요. 그런데 지금 두 회사를 저 PER 주라고 할 수 있어요?”
“……!”
“처음 외국인 투자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오광산업의 PER이 2배 남짓밖에 안 돼 저평가된 것이 확실했지만 지금은 아니죠.”
말뜻을 알아차린 최호근 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히려 지금은 원래 가치보다 훨씬 더 높게 고평가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천호제강 역시 마찬가지예요.”
“…….”
“이미 주가가 천호제강이 보유한 부동산 가치를 뛰어넘어 훨씬 더 올라간 지 오래인데. 이게 과열이 아니면 뭐겠어요.”
논리적인 설명에 최호근 팀장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닫곤 실수를 인정했다.
“누가 봐도 오버슈팅된 상황인데 그걸 놓치다니…….제가 수익률을 높이려는 욕심에 시야가 좁아져 있었나 봅니다.”
“일반 투자자라면 주가가 오르는 걸 보고 흥분할 수도 있지만 프로인 최 팀장이 그러면 곤란하죠. 그럴 때일수록 더욱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시장을 바라봐야 되지 않겠어요.”
석원의 따끔한 충고를 들은 최호근 팀장이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면목 없습니다.”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건 사실인 데다가 주식판에서 실수는 곧 돈을 잃는 걸 뜻했기에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터였기에 석원도 더 질책하지 않고 간결한 말투로 끝맺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도록 해요.”
“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깔끔하게 본인의 실수를 받아들이고 반성하는 모습에 석원은 내심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외국인들도 방금 내가 지적한 것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테니. 조만간 주식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려고 할 거예요.”
“국내 투자자들하고 달리 철저하게 데이터와 숫자를 보고 매매하는 것이 외국인이니 분명 그럴 겁니다.”
어쩌면 벌써 매도를 결정하고 타이밍을 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한꺼번에 물량을 쏟아내면 외국인을 비롯해 눈치를 보던 투자자들이 따라서 매도에 나서 폭락의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주가가 너무 높이 치솟아 다들 더 올라갈 걸 기대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석원이 보유한 물량이 적지 않았기에 한 번에 매도한다면 자칫 살얼음판 위로 던져진 돌멩이처럼 시장에 공포심을 자극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선 주가가 목까지 찬 천호제강부터 보유 물량을 천천히 덜어내도록 해요.”
“매도 기한은 얼마나 잡으면 되겠습니까?”
외국인에 더해 작전세력까지 붙어 다음 달 첫날에 31만 6천 원을 찍으며 최고가를 기록하는 걸 알고 있던 석원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이번 달 안에 전부 매도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광산업은 어떻게 할까요?”
“거기도 같이 포지션을 정리하죠.”
“네. 말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최호근 팀장이 짧게 대답하자 석원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높은 수익을 거둔만큼 최 팀장을 비롯해 4팀 전원한테 두둑한 보너스가 지급될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요.”
“본부장님이 직접 운용하시는 펀드인데 저희한테도 보너스를 주시는 겁니까?”
깜짝 놀란 표정에 석원이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보너스를 처음 주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놀라요.”
“하지만 그때는 저희 4팀에 계셨고 지금은 아닌데 이렇게 챙겨주시니. 조금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최호근 팀장이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자리를 옮기긴 했지만 방금 지시한 것처럼 여전히 내 지시를 받아 4팀이 매매를 대신하고 있으니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해 일정 부분은 지분이 있지 않겠어요.”
솔직히 그냥 입을 닦아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잊지 않게 챙겨주는 석원의 행동에 최호근 팀장은 내심 다시 한번 크게 감동했다.
이내 활짝 웃으며 최호근 팀장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팀원들이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크게 좋아하겠습니다.”
“팀원들만요? 최 팀장은 안 좋아요?”
“하하! 당연히 좋지요. 안 그래도 큰아이가 이번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것저것 돈 들어갈 데가 많은데. 본부장님 덕분에 아내한테 위신을 세울 수 있게 됐습니다.”
1996년부터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기에 아직은 국민학교였다.
“큰 아이가 딸이었죠?”
“네. 맞습니다.”
“둘이나 대학까지 보내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애들이 더 크면 집도 넓혀서 이사를 가야 되는데. 안 그래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지금 집이 몇 평이나 되는데요?”
그러자 최호근 팀장이 조금 쑥스러운 듯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24평 주공 아파트입니다.”
“아이가 둘이면 좁긴 하겠네요.”
“예. 아직은 어려서 괜찮긴 한데 조만간 이사를 가야 하지 않겠냐고 아내가 계속 찔러대서…… 크흠.”
괜히 헛기침을 터트린 최호근 팀장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했다.
“바쁘신데 제가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떠들었군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최호근 팀장이 막 사무실을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 벨이 울렸다.
소파에서 일어나 석원은 책상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보스. 저 랜든입니다.]그때 비서인 나성미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 조용히 탁자 위에 놓인 빈 찻잔 두 개를 치우고 테이블을 정리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석원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책상 의자에 앉았다.
“지금 뉴욕은 밤일 텐데 어쩐 일이에요.”
[아무래도 싱가포르에서 기다리던 일이 터진 것 같습니다!]번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석원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었다.
“브래드 쿠퍼를 말하는 거예요?”
[네. 어제부터 놈이 트레이딩 플로어에 나오지 않고 종적을 감췄다고 합니다.]“그렇다면…….”
[최근 연이어서 큰 손해를 본 걸 확인했는데. 아무래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손실액이 커지자 도망을 친 것 같습니다.]원래 역사에서도 일이 커지자 무책임하게 모든 걸 내팽개치고 아내와 휴양지인 코타키나발루로 달아났다가 체포됐던 걸 떠올리며 석원이 물었다.
“베어링스 은행 움직임은 어때요?”
[런던에서 급히 감사팀이 날아오며 싱가포르 사무실이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사이맥스(SIMEX)가 베어링스 은행의 거래를 금지하고 직원 출입까지 막은 걸 보면 브래드 쿠퍼가 던져놓고 간 폭탄이 예상보다 훨씬 더 클지도 모르겠습니다.]통화 중이라 훔쳐 들을 사람이 없는데도 랜든이 목소리를 낮춰 심각하게 말했다.
[돌아다니는 소문에는 감추고 있던 투자 손실액이 6억 달러가 훌쩍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그의 기억이 맞다면 브래드 쿠퍼가 날린 돈이 8억 2,700만 달러였다.
하지만 석원이 개입하면서 닛케이 지수와 일본 엔화 가격이 더 크게 흔들렸으니 어쩌면 이것보다 많은 돈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베어링스 은행은 자산보다 많은 돈을 잃은 거네요.”
[그것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문제가 터졌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너나할 것 없이 베어링스 은행에서 발행한 채권을 던지면서 가격이 정크 본드 수준으로 추락했습니다.]“은행이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나라도 은행채를 가지고 있었다면 투매를 했을 거예요.”
[물론이죠. 저도 그랬을 겁니다.]확연히 들뜬 목소리로 동감한 랜든이 이내 낮게 웃었다.
[사기꾼 한 놈 때문에 날벼락을 맞은 베어링스 은행은 안 됐지만 덕분에 숏을 친 저희들은 돈벼락을 맞게 됐군요.]석원 역시 휴대폰을 손에 든 채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