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26)
금수저 투자백서 126화(126/231)
126. 아주 흥미로운 걸 잘 찾아왔어요.
“뭐하냐?”
여느 때처럼 좁은 구둣방에 혼자 앉아 구두를 닦고 있던 석원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점심을 먹고 오는 길인지 입에 이쑤시개를 하나 문 오 부장이 건들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를 끌고 와 엉덩이에 대고 툭 걸쳐 앉는 것이 누가 가게 주인이고 손님인지 모를 모양새였다.
매일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하다 보니 이젠 하루라도 안 나타나면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하고 궁금해할 정도였기에 석원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 닦은 구두를 바닥에 가지런히 내려놨다.
“오셨어요.”
“손님이 왔는데 커피 한 잔 안 주냐?”
“식사하고 나오시면서 자판기 커피 안 드셨어요?”
“여기 와서 마시려고 그냥 왔지.”
당연하다는 듯 대꾸하는 말에 석원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아니 누가 들으면 맡겨 놓은 줄 알겠네. 왜 가게에서 주는 공짜 커피는 마다하고 여기 와서 내놓으라고 그래요.”
“그래서 아깝냐?”
오 부장의 뻔뻔한 태도에 석원은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에휴 됐어요, 됐어.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으시다니 내가 타 드려야지.”
석원은 구두약을 묻힌 헝겊을 한쪽으로 밀어놓고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선반에서 커피 믹스를 두 개 꺼내 종이컵에 부은 뒤 뜨겁게 끓인 물을 붓고 티스푼으로 휘저었다.
이렇게 하면 달달하면서도 두 배로 진한 커피가 완성이었다.
“여기요.”
“땡큐.”
종이컵을 받아든 오 부장은 후후 김을 불어서 식히며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캬아. 역시 이 맛이야. 내가 이래서 네가 끓여주는 커피를 못 끊는다니까.”
“구둣방 주인한테 커피 잘 끓인다고 칭찬하는 게 맞아요? 이럴 거면 차라리 다방이나 차렸지.”
영 신통치 않은 반응에 오 부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어제 제수씨하고 싸우기라도 했냐. 왜 이렇게 까칠해?”
“아니거든요.”
석원은 투덜대다가 깨끗하게 닦아놓은 구두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안 그래도 신발 가져다드리러 가야 되는데 잘됐네요. 잠깐 가게 좀 봐주세요.”
“어디 가는데?”
“요 아래 빌딩에 있는 ST 증권이요.”
그러자 오 부장이 능글맞게 웃고 있던 표정을 싹 감추며 말했다.
“아. 거긴 지금 분위기 별로 안 좋을 테니까 조금 있다가 가.”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말도 마라. 고객 한 명이 휘발유 통을 들고 객장에 쳐들어와서 불을 질러 버린다고 고래고래 고함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던데.”
그 말에 석원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경찰차도 오고 완전 야단법석이었는데 넌 몰랐냐?”
“아. 어쩐지 경찰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난다고 했더니 그게 그거였어요?”
오 부장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쯧쯧 찼다.
“너도 참 둔하다. 아무리 한 블록 떨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 난리가 났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
“한창 일하고 있었다고요. 구두 닦는 데 집중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어이구. 그러셔요.”
오 부장은 발끈한 석원을 대충 무시하고는 커피를 홀짝였다.
그런 오부장에게 눈을 흘기면서 다시 자리에 앉은 석원이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재차 말을 꺼냈다.
“그런데 뭐 때문에 그런 소동을 벌였대요?”
“객장에서 손님이 난동을 부렸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더 있겠냐.”
“돈이요?”
“그래.”
양복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낸 오 부장은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하얀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가 내뱉으며 말했다.
“객장 직원 한 명이 담당하던 고객들한테 곧 크게 뛸 작전주를 알고 있다면서 몰래 투자를 권했다나 봐.”
“작전주요?”
한쪽 손에 담배를 끼운 채 오 부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너도 이 바닥에 오래 있었으니까 알겠지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작전주잖냐.”
“그렇죠.”
오 부장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나불나불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는 걸 보면 한눈에 사기인 걸 눈치챘어야지. 나 참, 왜 그걸 몰라?”
“평소 친분이 깊은 사이였을 수도 있죠. 그리고 큰돈을 벌 기회가 있다고 꼬드기면 욕심에 눈이 가려질 수도 있지 않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의심을 해봤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런 말에 홀랑 넘어간 걸 들으니 내 속이 다 터진다고.”
오 부장은 담배를 뻑뻑 피워대다가 결국 쩝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셨다.
“하긴 작정하고 사기를 치려고 덤비는데 안 당하기 쉽지 않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결말이야 뻔하지 뭐. 사기를 친 놈은 맡긴 돈을 홀라당 챙겨서 외국으로 튀었고, 뒤늦게 당한 걸 안 고객이 증권사를 찾아와서 따졌지만 보상을 해줄 턱이 있겠냐. 회사의 승인을 받지 않은 개인 간에 거래를 하다 벌어진 문제니 책임질 의무가 없다고 선을 그어 버렸다더라.”
석원이 이해가 됐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서 화가 난 사기 피해자가 객장을 찾아가서 난동을 부린 거군요.”
“맞아.”
“미수로 그쳐서 다행이지 정말 불이라도 질렀으면 큰 사고가 날 뻔했네요.”
“그러게 말이야. 하여간 그런 자식들은 빗자루로 싹 다 쓸어서 이 바닥에서 깨끗하게 청소해 버려야돼. 쯧!”
그러다가 오 부장이 담배를 입에 문 채 앞에 앉아 있는 석원을 보며 충고하듯 말했다.
“너도 괜히 그런데 꼬이지 말고 조심해.”
“에이 저 같은 녀석이 무슨 작전이에요.”
“너도 주식한다며?”
“그건 그냥 심심풀이 삼아 조금씩 하는 거죠.”
그래도 오 부장은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원래 도박도 한두 푼 장난으로 시작했다가 끝에는 집 팔고 논 팔면서 패가망신하는 거야.”
석원은 장난스레 대꾸하려다가 정색한 오 부장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알던 놈들 가운데 작전에 끼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은 녀석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던가?”
“아니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오 부장은 잠시 과거 기억을 회상하는 듯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웠다.
“그래. 강남에 있는 술집에서 늦게까지 마시고 새벽에 택시를 타려고 나오다가 괴한이 휘두른 칼에 찔려서 죽는 일이 있었어.”
“세상에.”
석원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다.
“처음에는 단순 강도 살인 사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지 뭐냐.”
“그러면요.”
“얼마 안 돼서 경찰이 범인 두 명을 체포했는데 한 명이 같은 회사 동료였어.”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막장 드라마 뺨치는 의외의 전개에 석원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가운데 오 부장이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회사 동료였던 범인이 피해자한테 7천만 원의 빚이 있었는데. 살해당한 피해자가 차명계좌로 고객 돈 수억 원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걸 가로채려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거야.”
“허어.”
“그리고 공범한테는 피해자를 죽이는 대가로 1억을 주기로 했고 말이야.”
오 부장은 어느새 거의 다 타들어 간 담배를 깡통 통조림을 잘라서 만든 재떨이에 비벼끄며 욕설을 내뱉듯 말했다.
“다 개소리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돈을 가로채려고 했다는 놈이 납치를 한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칼질을 해서 사람을 죽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러고 보니 피해자가 죽으면 차명계좌에 있다는 돈도 꺼낼 수 없으니 뭔가 아귀가 안 맞았다.
“어. 정말 그렇네요.”
“돈을 훔치려고 했다는 건 핑계고 진짜는 입막음을 하려는 거였을 거야.”
“입막음이요?”
“그래.”
오 부장은 커피가 든 종이컵을 손에 든 채 말했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보성 통신이라는 종목에 작전이 걸려서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며 두 달 만에 네 배가 넘게 뛰어오른 일이 있었거든.”
“설마 살해당하신 분이 거기에 연관되어 있었던 거예요?”
“맞아. 갑자기 가격이 급등하니까 증권감독원에서 작전을 의심하고 조사에 들어갔거든. 그러고 나서 며칠도 안 돼서 갑자기 피살을 당한 거야.”
“말씀을 듣고 보니까 이상하긴 하네요.”
석원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설령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도 너무 공교로운 타이밍이라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더 기가 막힌 건 누가 봐도 석연치 않은 구석 투성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사건이 종결됐다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석원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뒤에 있던 배후가 거물이었거든.”
“그게 누구였는데요.”
오 부장은 종이컵에 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대답했다.
“동해 그룹이라고 알지?”
“IMF 때 부도가 난 회사잖아요.”
“거기 장남이 배후였어. 물론 사실로 확인된 건 아니고 여의도에서 돌던 소문이었지만 말이야.”
소문이라고 하지만 오 부장이 이렇게 확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 진짜일 가능성이 컸다.
“당시에 동해 그룹으로 들어가 후계자 수업을 받던 중이었는데 주가조작 사건에 관련됐다고 하면 여러 가지로 껄끄럽지 않겠어.”
“그래서…… 꼬리 자르기를 했다는 거네요.”
오 부장은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냉혹한 여의도 증권가라고 하지만 사람 목숨까지 서슴없이 앗아갔다는 소리를 들으니 마치 어두운 일면을 엿본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석원이 굳은 얼굴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자 오 부장이 입으로 씁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너도 조심하라는 거야.”
“……네.”
오 부장은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는 슬슬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난 이만 가봐야겠다.”
* * *
“본부…… 본부장님.”
최호근 팀장이 부르는 목소리에 석원은 예전 기억에서 돌아왔다.
“아. 미안해요. 잠깐 뭘 좀 생각하느라.”
“아닙니다.”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뒤로 기대며 석원이 말했다.
“그러니까. 동해 페레그린 증권이 여기 관련되어 있다는 거죠?”
“아직까지는 추측이지만 그렇습니다.”
석원은 팔짱을 낀 채 한 손으로 매끈하게 면도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거 정말 재미있네요.”
회귀 전 오 부장이 해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번 작전의 배후에 우호근이 있을 터였다.
꼴 보기 싫은 우호근의 면상을 떠올리며 이걸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지 잠시 고민했다.
프린트해 온 보성 통신 주가 차트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던 석원은 이내 눈에 이채를 떠올렸다.
“차트대로라면 곧 개미털기를 하겠네요.”
“그럴 겁니다.”
필요한 지분 매집 과정에서 오른 주가를 인위적으로 크게 떨어뜨려서 개인 투자자들이 겁을 먹고 주식을 팔도록 만드는 걸 개미털기라고 불렀다.
“개미들을 털어내고 지분 확보를 끝내면 본격적으로 주가를 끌어 올릴 겁니다.”
매집과 개미털기 그리고 주가 폭등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이 전형적인 작전주의 패턴이었다.
“일단 보성 통신 주가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면서 변화가 있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걸 잘 찾아왔어요.”
“감사합니다.”
석원의 칭찬에 한시름 놓은 표정이 된 최호근 팀장이 사무실을 나갔다.
그러자 혼자가 된 석원은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커다란 창문 맞은편.
동해 페레그린 증권사 간판이 커다랗게 걸려 있는 빌딩이 이차선 아스팔트 도로 건너편에 바로 마주 보며 우뚝 서 있었다.
“카운터 펀치는 안 되겠지만 본 게임을 벌이기 전에 가볍게 잽을 날려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석원은 입가에 짙은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