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34)
금수저 투자백서 134화(134/231)
134. 에라이 독한 놈.
마포 대흥그룹 본사 회장실.
“결재 끝냈으니까 가져가라고 해.”
“예. 회장님.”
짧게 대답한 정윤경 대리가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 한쪽에 쌓인 결재 서류를 한아름 챙겨 들었다.
“휴…….글자만 계속 보고 있었더니 피곤하군. 진하게 커피 한 잔 타서 갖다 주게나.”
“알겠습니다.”
박태홍 회장은 서류를 볼 때 쓰는 돋보기안경을 빼서 내려놓으며 푹신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약간 지친 기색으로 코 위를 주무르면서 기다리고 있자 잠시 후 정윤경 대리가 쟁반에 따뜻한 커피를 가지고 들어왔다.
“오늘자 석간신문 초판이 나왔습니다.”
앞으로 가까이 온 정윤경 대리는 커피와 함께 신문 한 부를 내려놨다.
초판 신문은 말 그대로 첫 번째 판형으로 찍어낸 신문을 뜻했다.
수백 부에서 1,000부 정도 아주 소량만 인쇄됐는데 오탈자 등 대량으로 찍어내기에 앞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 수정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 판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꾸로 말하면 윤전기를 돌려 신문이 전국에 뿌려지기 전에 껄끄러운 기사를 빼 버리거나 내용을 조금 부드럽게 다듬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그냥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신문사들은 대가로 해당 기업들로부터 광고를 받아 매출을 올렸다.
어떤 신문사나 데스크는 아예 처음부터 광고 압력을 넣으려는 목적으로 특정 기업을 저격하는 기사를 싣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런 이유로 정치인이나 관공서 그리고 기업들이 소량으로 인쇄되는 신문 초판의 주 구독자들이었다.
박태홍 회장 역시 매일 일반인들보다 서너 시간 앞서 신문 초판본을 받아서 봤다.
“어. 그래.”
꾸벅 목례를 한 정윤경 대리가 밖으로 나가자 상체를 바로 세운 박태홍 회장은 잉크 냄새가 진하게 나는 석간신문 초판을 집어 들었다.
“어디 무슨 기사들이 실렸나 한번 볼까.”
박태홍 회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1면부터 꼼꼼하게 신문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김성규 대통령과 방한 중인 불가리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오늘 가장 큰 뉴스였기에 아니나 다를까 관련 기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딱히 특별한 내용이 없었기에 경제면으로 넘긴 박태홍 회장의 눈에 기사 하나가 크게 들어왔다.
[천호제강 무더기 매도에 폭락최근 주식 시장에 불고 있는 저 PER주 열풍을 타고 10배 이상 크게 올랐던 천호제강이 오전부터 쏟아진 무더기 매도 물량에 4% 이상 크게 하락했다.
천호제강은 부산과 창원 등에 보유한 공장부지의 높은 부동산 가치에 자산주로 인식되어 그동안 외국인들을 비롯한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천호제강 주가가 폭락했다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던 박태홍 회장은 눈을 크게 뜨며 찻잔을 내려놨다.
신문을 양손으로 펼쳐 들고 다시 한번 기사를 자세히 읽은 박태홍 회장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런.”
대흥 그룹 계열사나 관계가 있는 회사도 아닌데 천호제강 주가 폭락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바로 둘째 아들인 석원 때문이었다.
박태홍 회장이 맡긴 돈으로 석원이 매입해서 크게 불린 두 종목 중에 하나가 바로 천호제강 주식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맡겼던 돈인데 몇 배로 불려놨으니 여간 대견한 것이 아니었다.
박태홍 회장 역시 매달 투자 수익률을 받아 볼 때마다 콩나물처럼 쑥쑥 불어나 있는 돈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그런데 크게 올라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흐뭇하게 만들던 천호제강 주가가 박살 났다고 하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4%면 대체 얼마나 까먹은 거야?”
박태홍 회장은 신문에 거의 코를 박을 듯이 들이대며 중얼거렸다.
지난달에 받았던 수익금 액수를 생각하면 못해도 10억 이상은 빠졌을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더 하락하기 전에 팔아야 되는 거 아니야.”
박태홍 회장은 안절부절못하다가 얼른 한쪽 팔을 뻗어 책상에 설치된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빨리 둘째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서 주식을 매도하라고 재촉하려 했지만 순간 든 생각에 멈칫하며 다시 수화기를 내려놨다.
“아니, 아니지. 알아서 돈을 굴리라고 맡겼는데 주가가 조금 떨어졌다고 대뜸 전화를 걸면 모양이 빠지잖아.”
원금을 날린 것도 아니고 수익이 조금 깎였을 뿐인데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는 걸 보고 뭐라 생각하겠냐는 말이다.
“크흠.”
까딱 잘못했다가 영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뻔한 걸 깨달은 박태홍 회장은 헛기침을 하며 불안한 속을 진정시켰다.
“그런데 석원이 이 녀석이 일을 너무 잘 해놨단 말이야.”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돈을 엄청 불려놔서 까먹는 걸 허허 웃으며 넘기는 것도 어려운 액수였다.
“끙.”
박태홍 회장은 초조한 얼굴로 몇 번이나 전화기에 손을 뻗었다가 다시 거두면서 혼자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 * *
그날 저녁.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박태홍 회장은 편한 복장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웬일로 거실에 나와 있어요?”
차분한 색깔의 홈드레스를 입은 조덕례 여사가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내 집인데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이야.”
“밥만 먹고 나면 서재에 들어앉아 있던 양반이 떡하니 거실 소파를 차지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죠.”
“이 사람이. 서재는 뭐 노는 장소인 줄 알아? 바깥 일이 바빠서 그런 건데 사람 속도 모르고.”
“어휴 알았어요. 계속 밖에 나와계실 거면 과일이라도 좀 깎아드려요?”
“됐어. 저녁을 많이 먹었더니 별로 당기지도 않아.”
박태홍 회장은 손목에 찬 시계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슬쩍 말을 던졌다.
“석원이는 늦는구만.”
“아직 7시도 안 됐어요.”
“회사 일이 끝났으면 재깍재깍 집에 와야지. 어딜 빨빨거리며 싸돌아다니는 거야?”
그러자 조덕례 여사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아니 애도 아니고 좀 늦게 올 수도 있죠. 그리고 당신이나 맨날 골프 약속이니 술자리니 하면서 밖으로 나돌지 말고 건강 생각해서 집에 좀 일찍 들어와요. 맨날 술 취해서 비서한테 업혀 들어오지 말고!”
“내가 언제 그랬다고…….”
괜히 말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은 박태홍 회장은 신문을 들어 째려보는 아내의 시선을 가렸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 주방에 있던 군산댁에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얼른 나와 인터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누구세요?”
[저예요.]인터폰 스피커에서 들리는 석원의 목소리에 군산댁이 바로 열림 버튼을 눌렀다.
“이제 왔나 보네요.”
“크흠.”
조덕례 여사가 현관으로 가자 곧이어 한 손에 서류 가방을 든 석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왔니?”
“네.”
“고생했다. 저녁은?”
“회사 앞에서 간단히 먹고 왔어요.”
“그래. 네 방에 올라가기 전에 아버지 좀 보고 가렴.”
조덕례 여사가 거실 쪽을 힐끔이며 속삭였다.
“아버지요?”
“아까부터 너 오는 것만 기다리고 계시더라. 괜히 읽지도 않는 신문은 왜 들고 있는지 몰라.”
아까부터 신문이 한 장도 안 넘어가고 있는 걸 진작 눈치챈 조덕례 여사였다.
석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 쪽으로 걸어가 박태홍 회장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그래.”
처음부터 귀를 쫑긋 세우고 모자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박태홍 회장은 짐짓 태연한 척 신문을 내리며 인사를 받았다.
“잠깐 서재에서 나 좀 보자.”
“네.”
박태홍 회장이 먼저 몸을 일으키자 석원도 곧바로 뒤를 따랐다.
서재로 들어간 박태홍 회장은 익숙한 가운데 상석에 앉아서 그제야 편한 표정을 지었다.
“왜 부르셨어요?”
왼쪽 소파에 앉은 석원이 궁금한 듯 물었다.
“다른 게 아니라 오늘 석간신문을 보니 천호제강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고 하더구나.”
“아, 그거요.”
뭐 때문에 서재로 불렀는지 눈치챈 석원이 내심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투자금에 관해 드릴 이야기가 있었는데 잘됐네요.”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태홍 회장은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길게 말을 늘어놨다.
“네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냐만은 분위기가 안 좋을 때는 적당히 먹고…….”
더 떨어질까 봐 염려되니 이쯤에서 일부라도 매도하라고 설득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석원이 옆에 놔둔 가방에서 얇은 서류철을 꺼내 내미는 걸 보고 말이 끊겼다.
“이게 뭐냐?”
“수익 보고서예요.”
“이번 달 보고서는 아직 받으려면 멀었을 텐데?”
“포지션을 다 정리해서 수익을 확정지었거든요. 이건 최종 수익률 내역서예요.”
박태홍 회장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투자한 걸 몽땅 팔았다고?”
“네.”
“천호제강은 그렇다고 쳐도 오광산업까지 전부 다 처분한 거냐?”
다그치듯 묻는 말에 석원이 여유롭게 머리를 끄덕였다.
“예. 깔끔하게 모두 털어냈어요.”
태연한 석원과 달리 박태홍 회장은 언제 주가가 떨어지는 걸 보고 안절부절못했다는 듯 아쉬운 기색이 가득했다.
“오광산업은 오늘도 올랐던데 너무 성급하게 매도한 거 아니냐.”
“두 회사 다 적정 주가를 한참 전에 넘어서서 오늘 천호제강이 하락한 것처럼 언제 매물이 쏟아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상태예요. 그리고 이미 충분히 목표했던 수익을 냈으니까 차익 실현을 한 거고요.”
석원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박태홍 회장이 미련이 남은 얼굴을 하고 있자 석원은 괜찮다는 듯 그를 달랬다.
“이미 꼭대기까지 찬 상태인데 더 벌려고 욕심을 내다가 삐끗해서 빠져나올 타이밍을 놓치고 허우적거리는 꼴을 보고 싶으신 건 아니잖아요. 조금 덜 먹어도 깔끔하게 털고 나오는 게 낫죠.”
젊은 혈기에 더 욕심이 날만한데도 그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과감하게 손을 털고 나올 줄 아는 둘째 아들의 모습에 박태홍 회장은 내심 감탄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냉철하게 판단한 둘째 아들과 달리 돈 욕심에 못난 꼴을 보인 것 같아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눈치챈 석원은 일부러 슬쩍 화제를 돌렸다.
“본격적으로 주가가 오르기 전에 일찍 투자한 덕분에 수익률이 나쁘지 않게 나왔으니까 한 번 확인해보세요.”
“그럼 어디 볼까.”
박태홍 회장은 사뭇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서류철을 집어 펼쳤다.
오광산업 : 원금 11,300,000,000 ₩
수익률 5.3배
수익금 48,590,000,000 ₩ (원금 제외)
천호제강 : 원금 5,000,000,000 ₩
수익률 10.4배
수익금 47,000,000,000 ₩ (원금 제외)
수익금 합계 : 95,590,000,000 ₩
(구백오십오억 구천만 원)
“구…… 구백오십 억을 넘게 벌었다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익금 액수에 박태홍 회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눈으로 내역서에 적힌 숫자를 훑다가 결국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보기까지 했으나 950억이라는 숫자는 변함이 없었다.
그걸 보며 석원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주가가 계속 오른 덕분에 수익률이 괜찮게 나왔어요.”
“하하! 무슨 말이냐. 일 년도 안 돼서 950억을 넘게 벌었는데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한동안 경악에 잠겨 있던 박태홍 회장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했다.
“정확히는 669억 1,300만 원이에요.”
“응?”
의아해하는 시선에 석원이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수익금에서 30%를 저한테 보너스로 주시기로 약정하신 걸 잊지 않으셨죠?”
“!”
“286억 7,700만 원을 제하면 딱 669억 1,300만 원이에요. 아, 거기에 회사 수수료 1%가 있으니 9억 5,590만 원을 더 빼야겠네요.”
안색이 거무죽죽해진 박태홍 회장이 버럭 소리쳤다.
“1%면 6억 6,913만 원이지 왜 9억 5,590만 원이야!”
“제 수수료를 빼기 전 수익금에서 1%인데요. 못미더우시면 지난번에 새로 적으신 위탁 계약서를 확인시켜드릴까요?”
박태홍 회장은 얄밉게 웃는 석원을 노려보며 끙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칼만 안 들었지 완전 날강도가 따로 없구만.”
“대신 돈값은 확실히 하잖아요.”
투자로 돈을 불리는 실력 하나만큼은 박태홍 회장도 인정할 정도였기에 딱히 더 할 말이 없었다.
불퉁해진 박태홍 회장을 향해 석원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내일 거래 계좌로 매각 대금이 들어오니까 그때부터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출금해서 쓰시면 됩니다.”
“다시 투자를 맡기면 또 30%를 떼가는 거고?”
“물론이죠.”
“에라이 독한 놈.”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석원은 능청맞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전 일어나 볼게요.”
“가 봐라.”
석원은 소파에서 일어나 서재를 나갔다.
문이 닫히자 박태홍 회장은 잔뜩 인상을 구긴 채 다시 수익금 내역서를 들어서 천천히 살펴봤다.
숫자를 하나하나 세어볼 때마다 미간에 접힌 주름이 접히더니 이내 박태홍 회장의 얼굴에 대견하다는 미소가 퍼졌다.
“녀석. 돈 버는 재주는 나보다 나은 것 같구만.”
그래도 보너스 30%는 조금…… 아니 속이 아주 많이 쓰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