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43)
금수저 투자백서 143화(143/231)
143. 잘 알아서 하겠지만 입조심들 하도록 해요.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회사에 출근한 조철래 과장은 밤새 잠을 못 잤는지 초췌한 얼굴이었다.
통정 거래를 하던 중간에 누군가 끼어들어 일을 망쳐놓은 데다가 우호근한테 무리한 지시까지 받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없이 당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어.”
두 번 실수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한 우호근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조철래 과장은 자리에 앉은 채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컴퓨터를 켜고 개인 패스워드를 넣어서 거래 프로그램에 접속한 그는 먼저 보성통신 주가 창을 띄워 개장 전 매수 호가가 얼마에 들어와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응?”
하지만 동시 호가 가격이 나오지 않고 보이는 거라곤 거래 중지 종목 표시뿐이었다.
“거래 중지라니. 이게 뭐야!”
조철래 과장이 놀라서 외치는 것과 동시에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갑자기 검은색 정장을 입은 일단의 사내들이 예고도 없이 사무실 안으로 우르르 들이닥쳤다.
“증권감독원에서 나왔습니다!”
금테 안경을 쓴 최복락 과장이 신분증을 꺼내 위로 들어 보이며 크게 소리쳤다.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그러자 소란을 듣고 나온 손오승 부장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니 증권감독원에서 무슨 일입니까?”
“금융실명제 위반과 주가조작 혐의가 있어 압수수색을 실시하려고 왔습니다. 그러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압수수색이라는 말에 직원들이 크게 술렁였다.
특히나 손오승 부장은 압수수색영장을 내보이는 최복락 과장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그런 손오승 부장을 위아래로 훑은 최복락 과장이 차갑게 물었다.
“손오승 부장 아니십니까?”
“그, 그렇습니다만.”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낀 손오승 부장이 주춤거리며 대답했다.
최복락 과장은 그 모습을 보고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 잘 됐군요. 저희하고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그러자 손오승 부장이 기겁하며 반발했다.
“아니 날 왜 데려간다는 겁니까!”
“그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요.”
“……!”
얼굴이 하얗게 굳은 손오승 부장의 모습에 최복락 과장은 혐의를 확신했다.
“어서 데려가지 않고 뭣들하고 있어요.”
“예.”
함께 온 특별사법경찰들이 짧게 대답하고는 앞으로 나와 손오승 부장을 양옆에서 붙잡았다.
“아니 선량한 시민을 이렇게 마음대로 잡아가도 되는 거요!”
손오승 부장이 몸부림을 치며 거세게 저항하자 최복락 과장이 차갑게 웃으며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코앞에 펼쳤다.
“긴급체포 영장입니다.”
“이럴 수가…….”
“자꾸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우리도 거칠게 대할 수밖에 없으니까. 순순히 따라 나가는 것이 좋을 겁니다.”
“…….”
체포영장을 보자 체념한 듯 손오승 부장이 힘없이 머리를 떨궜다.
최복락 과장은 순식간에 쪼그라든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품속에 다시 영장을 집어넣었다.
“데려가.”
“예!”
지시를 받은 특사경들이 손오승 부장을 양옆에서 단단히 붙잡고는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부, 부장님이.”
“맙소사.”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우리 어떻게 되는 거냐고. 갑자기 압수수색이라니.”
그런 모습을 모두 지켜본 본 직원들은 일제히 웅성거리며 동요했다.
다들 왜 증권감독원에서 들이닥쳤는지 이유를 몰라 당황하고 겁먹은 표정이었다.
그런 가운데 최복락 과장은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사무실을 스윽 하고 한 번 둘러봤다.
“조철래 과장이 누굽니까?”
입을 열어 묻자 증권사 직원들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한쪽을 쳐다봤다.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최복락은 책상에서 일어나 다른 직원들과 함께 서 있던 조철래 과장을 발견했다.
이름이 불리자 화들짝 놀라 몸을 덜덜 떨던 그는 최복락이 가까이 다가오자 식은땀까지 흘리며 겁에 질렸다.
“조철래 씨 맞습니까?”
“……예.”
조철래 과장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그쪽도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이유는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죠.”
차가운 목소리에 조철래 과장은 순식간에 넋을 잃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는 다 들통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 * *
우우우웅. 우우우웅.
호텔 침대에 드러누워 있던 우호근은 계속해서 울려대는 진동벨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지난번 전건우가 별장에 데려와 알게 된 모델과 만나서 진탕 술을 마시고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였다.
“으응.”
하얀 피부를 드러낸 채 옆에 누워 있던 여자가 잠에 취해 몸을 뒤척이며 시트를 끌어당겼다.
“오빠, 전화…….”
“일어났으니까 그냥 잠이나 자.”
우호근은 팬티만 입은 알몸으로 상체를 일으켜 협탁 위에 놔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오상현 과장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실장님 어디십니까?]우호근은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댄 채 반쯤 마시고 남겨둔 생수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대꾸했다.
“바깥인데 왜 그래.”
[지금 바로 회사로 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감지한 우호근이 미간을 확 좁혔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30분쯤 전에 증권감독원 특사경들이 동해 페레그린 증권사에 들이닥쳐 현재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습니다.]“뭐야!”
날벼락 같은 소식에 우호근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버럭 언성을 높였다.
[보성통신이 거래 정지되고 손오승 부장과 조철래 과장이 연행되어 간 걸로 볼 때…… 아무래도 작전이 발각된 것 같습니다.]“제기랄!”
어제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느낌이 안 좋더니 결국 일이 터진 거였다.
손에 든 휴대폰을 고쳐쥐며 우호근이 다그치듯 물었다.
“어디까지 드러난 거야?”
[그건 아직 확인 중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콕 짚어서 바로 데려간 걸 보면 상당 부분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클 겁니다.]“젠장!”
우호근이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말했다.
“지금 바로 갈 테니까. 일단 누구든 선을 대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해 봐!”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 채 통화를 끝낸 우호근은 마구 욕설을 내뱉었다.
“어쩐지 느낌이 안 좋더라니 씨X!”
우호근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객실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바지를 찾아 입었다.
뒤이어 셔츠를 걸치고 단추를 잠그고 있을 때 어느새 잠에서 깬 여자가 시트로 몸을 둘둘 말고 물었다.
“오빠. 어디 가요?”
우호근은 성가신 얼굴로 여자를 힐끔 쳐다보곤 다시 소매 단추를 여몄다.
“일이 있어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
“그치만 오늘 백화점에 가서 내 생일 선물 사주기로 했잖아. 그런데 그냥 가려고?”
“야. 갑자기 일이 생겼다는 말 못 들었어!”
우호근이 괜히 화풀이하듯 버럭 소리쳤다.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해 죽겠는데 별것 아닌 여자까지 옆에서 칭얼대고 있으니 짜증이 확 치솟아 올랐다.
“아니 나는…….”
찔끔한 여자가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우물쭈물대는 모양새에 더 기분을 잡친 우호근은 윗도리를 집어 들고 지갑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 네 장을 꺼내 침대 위에 던졌다.
“이거 가지고 가방이든 옷이든 사고 다시는 연락 하지 마.”
“오빠! 난 그게 아니고…….”
갑자기 흩뿌려진 수표에 여자가 당황한 얼굴로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우호근은 옷을 다 입고 나더니 더 볼 일이 없다는 듯 그대로 몸을 돌려 객실을 나가 버렸다.
* * *
흰색 와이셔츠에 세련된 줄무늬 넥타이를 한 석원은 팔짱을 낀 채 커다란 통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맞은편 건물에 위치한 동해페레그린 증권사 본점을 향해 있었다.
어느새 소식을 듣고 달려온 취재진이 잔뜩 몰려 있는 가운데 검은색 양복을 입은 증권감독원 직원들이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압수물이 든 커다란 박스를 하나씩 가지고 나와 세워둔 승합차에 실었다.
갑작스러운 압수수색에 놀란 증권사 고객과 행인들은 삼삼오오 주위에 모여 수근거리면서 그 광경을 구경했다.
“작전이 어그러졌으니 보성통신에 넣었던 돈은 몽땅 다 날렸다고 봐야겠지.”
지금쯤 연락을 받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 우호근을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남색 원피스 정장을 입은 나성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최호근 팀장님이 오셨습니다.”
“들여보내요.”
“네.”
얼마 있지 않아 최호근 팀장이 정환엽 대리와 함께 나성미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로 앉아요.”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왼쪽 소파에 나란히 자리하자 석원은 자연스럽게 가운데 상석에 한쪽 다리를 꼬고 앉았다.
“일을 아주 잘 처리했어요.”
“하하, 그 정도는 껌이죠.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좀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호근 팀장이 말을 가려서 하라는 듯 팔꿈치로 정환엽 대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석원을 보며 대답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시침을 뚝 떼고 있는 최호근 팀장과 꽤 아팠는지 한 손으로 옆구리를 문지르고 있는 정환엽 대리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볼 때마다 아웅다웅 다투고 있지만 사실 찰떡 콤비가 따로 없었다.
석원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최호근 팀장에게 물었다.
“주당 2만 7천 원에 매도했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그럼 대략 2배를 넘게 번 거네요.”
그러자 정환엽 대리가 쓱 끼어들어 말했다.
“더 놔뒀으면 3배는 훨씬 넘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입맛을 쩝 다시는 표정에 석원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너무 많이 벌었으면 자칫 우리도 증권감독원의 조사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테니 지금이 딱 좋아요.”
“아, 그렇군요.”
빠르게 수긍한 정환엽 대리는 또 뭔가 궁금한 게 생겼는지 슬쩍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저희가 물량을 다 파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증감원 조사가 들어왔는데. 혹시 이것도 본부장님께서 계획하신 겁니까?”
“정 대리!”
그러자 최호근 팀장이 깜짝 놀라며 눈을 부라렸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쓸데없는 말이 많아!”
“아 죄송합니다.”
정환엽 대리도 호기심이 과했다는 걸 아는지 바로 머리를 숙였다.
그걸 보면서 석원이 뒤로 몸을 기대고는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화를 부른다는 이야기가 있는 거 알죠.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다른 곳에서 이번 일에 관련된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말도록 해요.”
석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부하 직원들에겐 항상 친절한 상사였기에 그가 정색하는 건 무게감이 남달랐다.
그러자 정환엽 대리도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하고는 대답했다.
“예.”
항상 가볍게 행동하지만 중요한 부분에선 믿을만한 사람인 걸 아는 석원은 작게 머리를 끄덕이고는 화제를 바꿨다.
“거래 대금이 입금되면 전액 현금으로 출금한 뒤에 사용한 차명계좌들은 모두 폐기하도록 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호근 팀장이 대답했다.
그러자 석원은 소파 아래에 놔둔 검은색 하드케이스 가방을 집어 탁자 위에 올려놨다.
“열어봐요.”
최호근 팀장이 잠금장치를 풀고 눕혀진 가방을 열자 안에는 백만 원권 지폐 뭉치가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석원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일을 잘 처리한 보너스에요.”
“……!”
“2억이니까. 1억씩 나눠 가지도록 해요.”
최호근 팀장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가방을 닫고는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본부장님.”
반면 정환엽 대리는 한껏 신이 난 표정이었다.
너무 상반된 반응에 석원은 피식 웃고는 가볍게 주의를 줬다.
“알아서들 잘 하겠지만 입조심들 하도록 해요.”
“예!”
“염려 마십시오. 오늘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습니다.”
최호근 팀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것에 비해 정환엽 대리는 그저 생각지도 못한 큰돈을 받은 게 좋은지 연신 싱글거리며 웃어댔다.
석원은 머리를 끄덕이곤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럼 이만 나가봐요.”
“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대답하고는 돈가방을 챙겨 소파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