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44)
금수저 투자백서 144화(144/231)
144. 오늘따라 더 맥주맛이 좋은 것 같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상석에 자리한 우용갑 회장이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왼편 소파에 앉아 있는 전해철 비서실장을 보며 다그치듯 물었다.
“보성 통신이라고 최근 주가가 급등한 회사가 있는데 증권사 간부급 직원 몇 명이 차명 계좌를 이용해 주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망할 것들이. 안 그래도 대통령 비자금 문제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이딴 사고를 쳐!”
얼마나 화가 많이 났는지 우용갑 회장의 목소리가 방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증권감독원이 바로 거래정지를 시키고 전격적으로 압수수색까지 진행한 걸로 볼 때 이미 상당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난리를 쳤는데 털어서 아무것도 안 나온다면 자신들이 곤란해질 테니까. 그렇겠지.”
우용갑 회장은 뒤로 몸을 기대고는 차갑게 말했다.
“일이 커지기 전에 관련된 놈들을 모두 해고하고 회사와 아무런 관련 없이 직원 개인의 일탈로 사건을 마무리 짓도록 해.”
그러자 전해철 비서실장이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라니?”
눈썹을 치켜올리며 우용갑 회장이 전해철 비서실장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번 일에 우 실장이 개입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
우용갑 회장이 눈을 부릅뜨고는 성난 목소리로 되물었다.
“우 실장이라면 큰놈을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이런 썩을 놈이!”
대답을 들은 우용갑 회장은 앉아 있는 소파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치며 얼굴을 와락 구겼다.
“큰놈이 관여된 것이 확실해?”
“증감원 고위 인사를 통해 들은 이야기이니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닐 겁니다.”
“이놈의 자식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우용갑 회장을 보며 전해철 비서실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직은 이런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 실장이 주가 조작을 주도했다는 게 드러난다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재벌 3세가 연관된 주가 조작이라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심을 끌기에 딱 좋은 사건이었다.
그룹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건 물론이고 아버지인 우용갑 회장 역시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전경련에 속한 다른 그룹 회장들이 뒤에서 숙덕거리며 얼마나 비웃을지 생각하자 우용갑 회장은 더욱 열이 뻗쳤다.
“으윽.”
혈압이 오른 우용갑 회장이 뒷목을 잡고 인상을 쓰자 전채철 비서실장이 화들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옆으로 달려온 전재철 비서실장이 놀란 얼굴로 안색을 살폈다.
“이런 제길. 후욱, 후…….”
우용갑 회장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거칠게 호흡하며 숨을 골랐다.
“하아…… 됐어. 잠깐 혈압이 올라온 것뿐이야.”
“당장 최 박사를 부르라고 하겠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니까 호들갑 떨 필요 없어.”
우용갑 회장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귀찮다는 듯 말을 잘랐다.
“그보다 당장 이 자식을 잡아 와!”
“예. 알겠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아들놈 얼굴을 보기도 전에 우용갑 회장이 먼저 쓰러지게 생긴 판이었다.
전해철 비서실장은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이내 대답하곤 밖으로 나갔다.
혼자가 된 우용갑 회장은 소파 팔걸이를 주먹으로 세게 퍽 내리쳤다.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이딴 사고를 쳐?”
그는 온몸으로 사나운 기세를 뿜어내며 이를 부득 갈았다.
* * *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물줄기가 석원의 탄탄한 어깨와 가슴팍을 적시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꾸준히 운동을 계속한 덕분에 선명하게 갈라진 복근은 마치 조각칼로 다듬은 듯 완벽한 균형을 이뤘다.
그리고 높은 코와 뚜렷한 턱선이 남성적인 매력을 더해줬으며 물줄기가 타고 흘러내리는 투명한 유리벽에 비친 실루엣은 마치 뛰어난 예술가가 빚어놓은 조각상을 연상케 했다.
샤워기를 잠그고 부스 밖으로 나온 석원은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아냈다.
거울 앞에 서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간단하게 말린 뒤 남성용 스킨로션까지 발라주고 나자 평소처럼 말끔한 낯이 됐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욕실을 나온 석원은 한쪽에 있는 미니 냉장고를 열어 맥주 한 캔을 꺼냈다.
뚜껑을 따고 꿀꺽 한 모금을 마시자 목구멍으로 시원한 청량감과 함께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휴우. 역시 샤워 후에 마시는 맥주는 각별하다니까.”
석원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 손에 맥주캔을 든 채 왼쪽 벽을 바라봤다.
거기엔 앤디 워홀의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과 코카콜라 병을 그린 두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지난번 MP3 특허권을 사들이기 위해 유럽에 갔을 때 스위스를 들러 한국에서 전시 중이던 두 작품의 소유자를 만나 4천 백만 달러를 주고 매입한 거였다.
“복사본이 아니라 진품을 내 방에 걸어두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네.”
과거로 회귀하기 전부터 좋아하던 작품이었기에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나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은 판화의 한 기법인 실크스크린으로 여러 점을 찍어내 희소성이 다소 떨어지는 앤디 워홀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그림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한마디로 히스토리가 있다는 거지.”
샷(shot)이라는 이름처럼 각기 다른 다섯 가지 색깔로 찍어낸 마릴린 시리즈를 겹쳐 세워 놓고 권총을 쏴 버린 사건에서 총알에 관통되지 않았던 세 작품 중에 하나였다.
거기다가 앤드 워홀 본인 역시 권총에 저격을 당했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 일이 있었기에 더욱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졌다.
이런 히스토리와 희귀성이 합쳐지면 작품의 가치가 더욱 크게 뛰는 법이었다.
“27년 뒤에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이 뉴욕 맨해튼 크리스티 경매장에 나왔을 때 낙찰된 가격이 1억 9,500만달러였었지.”
그걸 생각하면 두 작품을 5천만 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매입한 건 정말 헐값에 가져온 거였다.
“물론 나중에 다시 팔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석원은 흡족한 얼굴로 그림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홀짝였다.
지금은 비록 두 점뿐이지만 앤디 워홀의 다른 작품도 이렇게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렇게 석원이 모처럼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 진동벨이 울렸다.
석원은 다른 한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들어 전화를 받았다.
“네.”
[랜든입니다. 보스.]“보너스를 받아서 산 요트를 타고 푸에르토리코로 휴가를 간다고 하더니 어쩐 일이에요?”
그동안 벌인 투자로 큰 수익을 거둔 석원은 고생한 엘도라도 펀드 직원들에게 통 크게 보너스를 뿌렸다.
앤드루와 함께 무려 천만 달러라는 거금을 받은 랜든은 바로 멋들어진 요트를 한 척 구입했다.
[떠나기 전에 기쁜 소식이 있어서 알려드리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무슨 일인지 말해 봐요?”
[IPO를 위해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 신고서가 오늘 통과됐다고 합니다.]“그래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던 소식에 석원이 반색했다.
[공모가는 원하시던 대로 주당 28달러로 확정됐습니다.]“골드만삭스가 실망시키지 않고 돈값을 제대로 했네요.”
랜든이 살짝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상장이 확정돼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공모에서 미달된 물량을 전부 저희가 가져가기로 한 것이 조금 걱정스럽습니다.]“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상장일은 언제예요?”
[아직 완전히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다음 달 내로 결정될 걸로 보입니다.]“넷스케이프가 나스닥에 상장되는 순간이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첫 벤처 투자가 드디어 결실을 거두는 것일 뿐만 아니라 향후 몇 년간 전 세계 주식 시장을 말 그대로 광풍으로 몰아갈 닷컴 버블의 신호탄이 될 역사적인 IPO였기에 더욱 기대가 컸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기억에 석원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 예전에 한 내기는 잊지 않았죠.”
[무슨 내기 말씀이십니까?]“처음 넷스케이프에 투자할 때 3년 안에 회사 가치가 10억 달러를 넘길 수 있냐는 걸로 100달러 내기를 했잖아요.”
그러자 랜든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말씀을 들으니 생각나는군요. 아니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계셨습니까.]“그럼요. 중요한 내기인데.”
석원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싱글거리며 대꾸했다.
“이대로 상장되면 신규 발행되는 주식까지 합쳐 시가총액이 16억 달러를 넘기는 거니까 내기에서 내가 이긴 거죠?”
[엄밀하게 따져서 상장 전이니 아직은 아니지요. 기껏 IPO를 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 나오면 말짱 꽝이지 않겠습니까.]“상장하는 날까지 기다리자 이거죠? 뭐 꼭 그러고 싶다면야.”
[솔직히 내기에서 져서 100달러를 드리더라도 상장이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그러자 석원이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다.
“거래를 시작하자마자 주가가 하늘을 뚫고 올라가게 될 테니까 상장식 날 빳빳한 새 지폐로 100달러나 준비해둬요.”
[얼마든지요. 참, 그리고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석원이 손에 든 핸드폰을 고쳐 쥐면서 말했다.
“말해 봐요.”
[일본 금융기관과 기업들을 상대로 녹인-녹아웃 옵션을 판매하는 것 있잖습니까.]“그런데요.”
[지난주부터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몇 군데 있는 것 같더니 이토추와 미쓰비시 상사에서 옵션 계약을 하고 싶다는 의향을 보내왔습니다.]“그게 정말이에요?”
석원이 눈에 이채를 띠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이토추와 미쓰비시는 소위 5대 상사라고 불리는 일본 굴지의 종합상사였다.
“내각과 일본 은행이 헤지펀드의 공격에 항복해 금리를 내리고 엔 강세가 계속 이어질 것 같으니까. 옵션 계약을 해서 환차손을 줄이려는 생각인 모양이네요.”
[외환 거래를 하는 종합상사나 수출기업들 입장에서 위든 아래든 환율 변동이 큰 것만큼 골치 아픈 일도 없을 테니까요.]“그럴 거예요.”
실제로 짧은 기간 동안 엔화가 급등하면서 도요타 자동차나 소니 같은 수출 기업들은 수익이 줄어들고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종합상사들 역시 손해를 보긴 마찬가지였다.
이걸 잘 알고 있는 내각과 일본 은행이 헤지펀드들한테 항복 선언을 한 이후에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외환 시장에 쏟아붓고 있었지만 엔 강세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원하는 계약 규모가 얼마나 되죠?”
[일단 두 곳을 합쳐 3억 달러 정도 됩니다.]그러자 석원이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크진 않네요.”
적어도 두 회사의 이름값에 비하면 소소한 규모였다.
[아무래도 첫 계약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상황에 따라 액수가 추가로 더 늘어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지금 분위기라면 다른 회사들도 옵션 계약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원래 다들 간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 우르르 따라오는 법이었다.
석원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겠죠. 환율 문제로 고민하는 회사들이 많을 테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세일즈를 하라고 해요.”
[알겠습니다.]석원은 책상 달력에 적어놓은 일정을 보면서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넷스케이프 상장식에도 참석해야 되니까 다음 달에는 미국에서 직접 볼 수 있겠네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그 뒤로도 한참 동안 대화를 더 나누고 통화를 끝낸 석원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러고는 넷스케이프 IPO와 옵션 판매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에 흡족해하며 두 번째로 새 맥주캔을 땄다.
“오늘따라 더 맥주맛이 좋은 것 같네.”
이런 날은 술이 술술 잘 넘어가는 법이라니까.
석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차가운 맥주를 입안에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