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47)
금수저 투자백서 148화(147/231)
148. 재무부 금고를 채워줄 큰 손인데 그 정도 편의는 봐줘야지.
다음날 오후 1시 10분, 마포 대흥 그룹 본사 회장실.
박태홍 회장은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는 소파 팔걸이를 손가락 끝으로 두드리면서 앞에 놓인 전화기를 주시했다.
양옆에 앉아 있는 큰아들 박진형 대흥 방직 사장과 길성호 비서실장 역시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소매를 걷어 시계를 확인한 박태홍 회장은 갑갑한지 한 손으로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
“입찰 결과가 나올 시간이 지났는데 왜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거야?”
“현장 상황에 따라 결과가 조금 늦게 나올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시죠.”
길성호 실장의 말에 쯧하고 혀를 찬 박태홍 회장은 애가 타는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었다.
그걸 본 길성호 실장이 얼른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여줬다.
박태홍 회장이 하얀 담배 연기를 폐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니코틴이 몸속을 파고들자 안절부절못하던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탁자 위에 설치된 전화기에서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금방 다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여보세요.”
길성호 실장이 얼른 수화기를 집어 들고 말했다.
그새를 기다리지 못한 박태홍 회장은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던 담배를 크리스털 재떨이에 비벼끄면서 다그치듯 물었다.
“민 사장이야?”
함께 있던 박진형 사장도 마른침을 삼키며 전화를 받고 있는 길성호 실장을 쳐다봤다.
“네. 맞습니다.”
길성호 실장이 두 손으로 공손히 수화기를 내밀며 말했다.
곧바로 수화기를 건네받은 박태홍 회장은 다짜고짜 큰 소리로 물었다.
“결과는 어떻게 됐나?”
[2천 5백억에 저희가 삼풍 백화점 부지를 최종 낙찰 받았습니다!]대답을 들은 박태홍 회장은 손에 든 수화기를 꽉 움켜쥐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낙찰을 받았다고! 그게 정말이지?”
[예. 로테가 저희보다 50억이 적은 2천 450억을 써내서 하마터면 간발의 차이로 부지를 빼앗길 뻔했습니다.]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박진형 사장과 길성호 실장도 낙찰을 받았다는 말에 환성을 터트렸다.
“잘 됐군요!”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그런 가운데 박태홍 회장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마음을 먹고 최소 입찰액보다 천억이나 더 써냈는데도 2등하고 겨우 50억밖에 차이가 안 났다니.
“2천 5백억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까딱했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군.”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로테와 유토피아에서 써낸 입찰액수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습니다.]“그만큼 상대도 이번 입찰을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는 승부처라고 생각한 것 아니겠나.”
[맞는 말씀입니다.]박태홍 회장은 한결 여유로워진 태도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자네하고 인수팀 모두 정말 수고했네. 마무리까지 잘하고 돌아오도록 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장님.]통화를 끝낸 박태홍 회장이 수화기를 귀에서 떼자 길성호 실장이 받아서 제자리에 내려놨다.
“드디어 저희가 로테와 유토피아를 제치게 됐군요.”
“이게 다 회장님의 결단 덕분입니다.”
박태홍 회장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두 사람이 건네는 축하 인사를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우리가 이겼지만 로테와 유토피아가 이대로 순순히 물러나진 않을 거야. 분명 다른 곳에 땅을 사서 삼풍 백화점 부지를 놓친 걸 만회하려고 할 테니 그 전에 강남에서 확실히 승기를 굳혀야 돼.”
유통 대기업인 로테와 사성그룹을 뒤에 두고 있는 유토피아가 곧바로 반격에 나설 거라는 건 두 사람 다 염두에 두고 있던 바였다.
박태홍 회장은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는 둘을 쳐다보다가 길성호 실장을 향해 말했다.
“민 사장이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 은행장하고 밥 한 끼 하게 약속을 잡아둬.”
“알겠습니다.”
어쨌든 가장 큰 고비를 넘기게 된 박태홍 회장은 느긋하게 풀어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기분이 평온해지면 저절로 지갑도 활짝 열리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기쁜 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다들 입찰 결과를 기다리느라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을 텐데 그동안 노고도 치하해 줄 겸 좋은 곳으로 식당을 예약해두게. 금일봉도 두둑하게 준비해놓고.”
“태원장에 예약을 해두겠습니다.”
“거기가 조용하고 여럿이 편하게 먹고 마시기에 좋지. 그렇게 하게.”
박태홍 회장은 큰아들인 박진형 사장을 보며 말했다.
“그룹을 맡게 되면 전부 네가 챙겨야 될 직원들이니까 너도 같이 가자꾸나.”
“네.”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 박태홍 회장은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니까 안사람이 잔소리를 하더라도 술을 좀 마셔야 되겠어.”
* * *
미국 백악관 웨스트윙(West Wing).
커다란 창문 밖으로 백악관 서쪽 정원인 로즈가든이 내다보이는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Oval Office) 소파에 세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한쪽 다리를 꼬고 가운데 자리에 앉은 필립 데이비슨 대통령은 금박이 입혀진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뗐다.
“그러니까 이번 G7 재무장관 회담에서 내수 침체와 슈퍼 엔고로 급격하게 진행되는 수출 둔화를 막기 위해 엔화를 약세로 전환 시킬 수 있게 도와달라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들어주자는 건가?”
얼마 전 새롭게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프랭크가 데이비슨 대통령의 시선을 받으며 차분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헉슬리 비서실장이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대지진에 엔고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굳이 나서서 도와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군요.”
“나 역시 같은 생각이네. 일본과 자동차 수출 협상을 계속 벌이고 있을 만큼 대일 무역 적자가 심각해 골칫거리였는데 엔화 강세가 계속 이어지면 수입 가격이 그만큼 비싸지는 거니까. 오히려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지 않나?”
헉슬리 비서실장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회의적인 반응에 프랭크 장관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말했다.
“얼핏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엔화 강세는 저희한테도 그리 좋은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지?”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문제가 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강한 달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이야기를 해보라는 듯이 데이비슨 대통령은 팔짱을 낀 채 프랭크 장관을 바라봤다.
“작년부터 연준이 기준 금리를 6%까지 빠르게 인상시켜 인플레이션을 성공적으로 잡아가고 있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있는 것 말인가?”
“맞습니다. 긴급 구제 금융을 지원해서 틀어막은 멕시코 위기는 둘째 치더라도 높은 금리로 인해 미국 국내 경기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살짝 얼굴이 굳어진 데이비슨 대통령을 보며 프랭크 장관이 말을 이었다.
“경기가 얼마나 안 좋은지는 최근 나온 실업률만 봐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플레이션에 더해 불황을 걱정해야 될 수도 있습니다.”
“으음.”
데이비슨 대통령이 낮게 침음성을 내뱉으며 표정이 심각해지자 헉슬리 비서실장이 반박하듯 말했다.
“그걸 막기 위해 연준이 다시 기준 금리를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금리 인하로 경기 침체를 막을 수는 있겠지만 인플레이션에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죠.”
그 정도 경제 지식은 헉슬리 비서실장 역시 가지고 있었기에 바로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해결책이 강한 달러(strong dollar)라는 건가?”
데이비슨 대통령의 물음에 프랭크 장관이 확신에 찬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강 달러가 만들어지면 수입품 가격이 낮아져 자연스럽게 물가를 하락시켜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
“거기에 더해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면 전 세계 유동 자금들이 미국으로 쏠리게 될 겁니다. 그렇게 들어온 돈들이 증시로 몰리게 되면 주가가 올라 주식에 투자한 국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질 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재무 상황도 좋아져 식어가던 경기가 다시 뜨겁게 돌아가게 될 겁니다.”
슬쩍 데이비슨 대통령을 쳐다본 프랭크 장관은 절대 뿌리칠 수 없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경기가 좋아지고 다우와 나스닥이 오르면 내년에 있을 재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재선에 플러스 요인이 될 거라고 하자 데이비슨 대통령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쁘지 않은 생각같군.”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면서 데이비슨 대통령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헉슬리 비서실장 역시 선거가 있는 해에 경제와 증시가 좋으면 투표에서 이긴다는 정치 격언을 알고 있었기에 강달러를 유도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납득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 헉슬리 비서실장이 프랭크 장관을 쳐다보며 말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강 달러로 가야 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우리가 엔화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예상한 듯, 프랭크 장관이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경기를 활성화시키려면 필연적으로 확장 재정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국채를 대량 발행해 재원을 충당해야 됩니다.”
만성 적자국인 미국이었기에 부족한 예산을 메꾸기 위해서 매년 엄청난 액수의 채권을 발행하고 있었다.
이처럼 무역과 재정에서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를 내고 있는데도 국가 부도가 나지 않고 미국이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패권국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채권을 대량으로 찍어 내게 되면 강 달러를 만들어낼 수가 없죠.”
국채 발행액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달러가 시중에 풀린다는 뜻이었으니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특정 국가에서 발행되는 채권을 대량으로 그리고 꾸준히 매입해 준다면 어떻겠습니까?”
데이비슨 대통령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일본이 그 역할을 해준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프랭크 장관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미국 국채를 대량 매입한다는 건 엔화를 풀어서 달러를 사는 것이니 일본 정부는 엔화를 원하는 대로 떨어뜨릴 수 있어서 좋고. 저희는 경기 부양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유동성을 그대로 흡수해 달러를 강세로 만들 수 있으니 두 국가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과연.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군.”
설명을 들은 데이비슨 대통령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저 역시 나쁘지 않은 거래 같습니다.”
처음부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던 헉슬리도 곰곰이 생각을 해 보더니 슬쩍 태도를 바꿨다.
“안 그래도 부채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이렇게 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겠어.”
“대신 일본이 큰 양보를 하는 만큼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하니 자동차 교섭에서 저희가 조금 양보를 해야 될 겁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자동차 회사들이 밀집한 러스트 벨트 (rust belt) 지역의 표를 의식해 절대 안 된다고 했을 대통령이지만 더 큰 걸 얻은 후라서 그런지 흔쾌히 수락했다.
“국채를 사서 재무부 금고를 채워줄 큰 손인데 그 정도 편의는 봐줘야지.”
프랭크 장관이 내놓은 해법이 매우 마음에 든 데이비슨 대통령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