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48)
금수저 투자백서 149화(148/231)
149. 설마 엔이 다시 폭락하는 일이 생기진 않겠지.
시원하게 쭉 뻗은 올림픽대로를 따라 벤츠 대형 세단 한 대가 김포 국제공항을 향해 가고 있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막힘 없이 빠르게 달려갔다.
승용차 뒷자리에는 넥타이 없이 캐주얼한 정장 차림의 석원이 시트에 기대앉아 차창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운전대를 잡고 있는 김형기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흥미를 끄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다음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미국 워싱턴에서 진행되고 있는 서방 선진공업 7개국, G7 재무장관회담에서 일본이 현행 변동환율제도에 대해 재검토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후지모토 마사키 일본 대장성 장관은 변동환율제도를 재검토하고 환율 목표 범위 등과 같은 구상을 서로 협의하는 한편 각국이 통화에 대한 개입을 보다 강화하는 것에 대한 토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엔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런 일본의 요청은 다른 G7 국가들의 호응을 받아 의제로 채택돼 정식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현재까지는 거의 없는 분위기입니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런 일본의 주장은 올해 들어 크게 급등한 엔화 가치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일본 중앙은행도 최근 발행한 분기 보고서를 통해 고베 대지진과 엔화 급등으로 인해 일본 경제의 회복세가 크게 꺾였다고 전망했습니다.
한편 독일 총리는 지난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을 향해 “달러를 더 이상 침몰시키지 말도록” 촉구하면서 의도적으로 약 달러를 만들고 있는 미국의 경제 정책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앵커의 멘트를 들으면 이번 G7 재무장관회담이 각국의 첨예한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별소득 없이 끝날 것이라 예견하고 있었지만 석원의 생각은 달랐다.
“원래 진짜 큰 거래는 요란하게 떠드는 것이 아니라 물밑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법이지.”
그러자 운전을 하고 있던 김형기가 살짝 시선을 들어 룸미러로 뒤에 앉은 그를 보며 물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석원의 말에 김형기는 더 묻지 않고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지금은 몰랐지만 오래지 않아 달러 강세를 유도하기 위해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떨어뜨리는 역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될 터였다.
이때를 위해 미리 뿌려둔 씨앗들이 조만간 크게 불어나 되돌아올 것을 생각하자 석원은 저절로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는 사이 석원을 태운 벤츠는 올림픽 대로를 빠져나와 김포 국제공항 부지로 들어섰다.
속도를 천천히 줄인 벤츠 세단이 국제선 청사 건물 앞에 멈춰 서자 석원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정말 출국장까지 모셔다 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트렁크에서 여행용 캐리어를 꺼낸 김형기가 재차 물었다.
안 그래도 공항 안까지 따라가겠다는 걸 몇 번이나 말리면서 사양한 뒤였다.
“괜찮으니까 그만 들어가 보세요.”
김형기는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그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작은 도련님.”
“그럴게요.”
꾸벅 머리를 숙였다가 바로 한 김형기가 갓길에 세워둔 벤츠 운전석에 다시 올라탔다.
이내 벤츠가 떠나자 석원은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2번 게이트 앞에 있어요.”
간단히 통화를 끝낸 석원은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고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글라스를 끼고 정장을 입은 건장한 덩치의 사내 한 명이 청사 건물에서 나왔다.
사내는 석원을 보더니 곧장 앞으로 다가와 선글라스를 벗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보스.”
눈앞의 흑인 사내는 바로 커프를 만나러 시카고로 갔을 때 경호를 맡았던 보커스였다.
1티어 급 미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Navy SEAL) 출신으로 걸프 전쟁을 비롯해 다수의 특수 작전에 참여한 베테랑이었다.
원래는 시카고에 체류할 때만 단기 고용을 했었는데 과묵하고 눈치 빠르게 할 일을 알아서 하는 모습이 석원의 마음에 들었다.
안 그래도 미국에 머물 때 수행할 인원이 필요했었기에 랜든한테 말해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보커스를 정식 채용했다.
자연스럽게 한쪽에 놓인 캐리어 손잡이를 붙잡은 보커스가 안내하듯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전용기가 대기 중이니 출국장으로 바로 가시면 됩니다.”
작게 머리를 끄덕인 석원은 성큼 걸음을 옮겨 국제선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곧장 따로 설치된 VIP 전용 게이트에서 간단히 출국 절차를 밟은 뒤 주기장에 세워져 있는 비즈니스 제트기에 탑승했다.
대기하고 있던 비즈니스 제트기는 바로 석원 혼자만을 위한 전용 기체로 한 달 전에 걸프스트림(Gulfstream) 공장에서 갓 출고된 따끈따끈한 신상이었다.
날렵하게 생긴 걸프스트림Ⅳ 기체는 상하부를 나눠 각각 노틱 블루와 크리스털 화이트 조합의 투톤 컬러로 도색되어 고급스러움과 차별성을 줬다.
붉은색 카펫이 깔린 10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금발의 날씬한 미녀가 몸에 착 달라붙는 짧은 치마 유니폼을 입고 서 있다가 그를 보곤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탑승을 환영합니다.”
가볍게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준 석원이 안으로 들어가자 최고급 호텔처럼 꾸며진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색 가죽시트와 브라운 톤의 하이글로시 테이블, 그 위를 장식한 하얀 꽃병까지 마치 펜트하우스 응접실을 가져다 놓은 듯 모던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이었다.
원래 승무원을 제외하고 14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었지만 좌석을 8개만 넣어 공간을 넉넉히 사용하도록 했다.
스튜어디스의 안내를 받아 앞쪽으로 걸어간 석원은 일반 여객기 퍼스트 클래스보다 훨씬 넓고 좋은 독립형 풀 플랫베드 좌석에 앉았다.
“윗도리를 넣어드릴까요?”
“고마워요.”
석원이 자켓을 벗어주자 스튜어디스가 벽에 붙은 옷장을 열어 옷을 걸어 끼웠다.
“이름이 뭐죠?”
“벨라(Bella)입니다.”
미모에 잘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었다.
석원은 싱긋 웃으며 벨라에게 가볍게 말을 걸었다.
“벨라, 커피 한 잔 가져다 주겠어요?”
“잠시 뒤에 출발하니 이륙하는 대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지금은 딱히 없네요.”
“그럼 안전을 위해 벨트를 착용해 주시겠습니까.”
석원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좌석에 있는 안전벨트를 허리에 찼다.
“감사합니다.”
안전벨트가 제대로 착용된 것까지 확인한 벨라는 뒤로 가서 능숙하게 탑승구를 닫았다.
그렇게 이륙 준비가 진행되는 사이 석원은 푹신한 시트에 몸을 기대고 일반 비행기보다 두 배 이상 큰 방풍창으로 바깥을 바라봤다.
그렇게 몇 분쯤 있었을까.
작은 소음과 함께 양옆에 있는 비행기 엔진이 켜진 듯 동체를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잠시 후 관제탑의 통제를 받아 천천히 주기장을 빠져나온 전용기가 활주로 한쪽 끝에 섰다.
그 상태로 엔진 출력을 최대로 높여 앞으로 달려 나간 전용기는 이내 활주로를 힘차게 박차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륙을 하는데도 방음이 잘 된 전용기 내부는 소음과 진동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순식간에 5만 피트 상공까지 올라간 전용기는 기수를 목적지인 뉴욕 방향으로 잡고 수평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방풍창 아래로 새하얀 구름이 짙게 깔려 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벨라가 바퀴가 달린 트레이를 끌고 다가왔다.
“말씀하신 커피입니다.”
벨라가 목이 긴 주전자로 직접 찻잔에 커피를 따라주자 갓 내린 원두의 향이 그윽하게 코끝을 맴돌았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벨라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편히 쉬시라며 이내 자리를 떠났다.
구두를 벗고 한쪽에 놓인 슬리퍼로 갈아 신은 그는 다리를 편하게 쭉 뻗은 자세로 찻잔을 손에 들었다.
“맛있네.”
구름 위에서 마시는 커피라고 생각하니 더욱 각별한 맛이었다.
석원은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비행을 즐겼다.
* *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니시구, 닛산 자동차 본사.
살집이 조금 있는 체격에 금테 안경을 쓴 야마모토 다이토 재무 이사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손에 든 서류철을 내려놨다.
그러고는 왼편 소파에 앉아 있는 모리야마 재무부장을 보며 입을 뗐다.
“이번 달에만 환차손으로 입은 손해가 103억 엔이나 된다고?”
시선을 받은 모리야마 부장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알고 계시다시피 보수적으로 잡아 올해 환율을 99~103엔 정도로 예상하고 재무 계획을 짰는데. 갑작스럽게 생각지도 못한 엔화 초강세가 만들어지면서 환차손이 크게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끄으응. 빌어먹을 헤지펀드 놈들 때문에 엄한 우리까지 유탄을 맞는군.”
열이 오른 야마모토 이사는 뒤로 몸을 기대면서 거친 손길로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런 상사의 눈치를 보며 모리야마 부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면서 헤지펀드들의 공격도 끝났지만, 여전히 달러당 81엔대를 오르내리는 엔고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다음 달에도 상당한 액수의 환차손이 날 걸로 보입니다.”
“젠장!”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야마모토 이사가 욕설을 내뱉었다.
“자동차를 아무리 많이 수출하면 뭐해. 환차손으로 이익의 상당 부분을 까먹어 버리는데! 이런 상황을 사장님이 아시면 뭐라고 하시겠나!”
야마모토 이사는 손바닥으로 소파 팔걸이를 탁탁 치면서 언성을 높였다.
이처럼 엔화가 갑자기 초강세로 갈 거라곤 소리를 치고 있는 야마모토 이사를 비롯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모리야마 부장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큰소리를 쳐대는 상사 앞에서 모리야마 부장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한바탕 짜증을 쏟아낸 야마모토 이사는 머리가 아픈 듯한 쪽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
“자네가 보기엔 엔고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것 같나?”
“환율 변동이 워낙 심해 예측하기가 쉽지 않지만 엔고가 상당히 오랫동안 갈 것으로 보입니다.”
모리야마 부장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야마모토 이사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저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잠시 뜸을 들인 야마모토 이사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된다면 올해 환차손이 얼마나 더 발생할 것 같나.”
모리야마 부장은 눈에 띄게 어두워진 낯빛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81엔으로 가정했을 때 2분기에만 200억 엔을 넘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야마모토 이사의 얼굴이 대번에 구겨졌다.
2분기라고 해봤자 이제 고작 5월 한 달밖에 안 남았는데 그사이에 100억 엔 가까운 손실에 더 발생할 거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끄응…….”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고심하던 야마모토 이사는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지금이라도 환율 변동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순수 외환을 선물환 등으로 헤지해 놔야 되겠어.”
환율이 다시 크게 떨어지면 손해를 보겠지만 지금처럼 변동이 심할 때는 이익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나았기에 모리야마 부장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저도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 사이 뭔가 떠올린 야마모토 이사가 모리야마 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난번에 엘도라도인가 뭔가하는 곳에서 제안한 녹인 아웃 옵션의 약정 환율이 90엔이라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변동 구간이 78~100엔이었던 걸로 아는데 맞나?”
“예.”
그러자 야마모토 이사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녹아웃 옵션으로 퀀텀 펀드가 장난질을 친 것이 있어서 찝찝하긴 하지만 변동 구간이 그 정도로 넓다면 계약을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옵션 계약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환헤지를 해야 된다면 조금이라도 유리한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모리야마 부장이 생각하기에도 엘도라도 펀드가 제안한 옵션 조건이 상당히 좋았기에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액수는 얼마나 설정하면 되겠습니까?”
“음. 1억…… 아니, 이왕 하는 거 5억 달러 정도 계약을 해.”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법무팀에 숨겨진 독소 조항이 없는지 검토를 받아보고 이상이 없으면 바로 계약을 진행하도록 해.”
“예.”
잠시 뒤 모리야마 부장이 방을 나가고 혼자 남은 야마모토 이사는 환차손 액수를 다시 확인하곤 쯧하고 혀를 찼다.
미친 듯이 치솟은 엔화 환율을 신경 쓰느라 머리털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엘도라도 펀드에서 판매하는 옵션을 사라고 지시했던 걸 떠올리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설마 엔이 다시 폭락해 100엔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생기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