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58)
금수저 투자백서 158화(158/231)
158. 이걸 잊어서는 안 됐는데…….
오랜만에 출근한 석원은 먼저 대표실로 올라가 고영일 사장한테 얼굴 도장을 찍었다.
그러고는 PI(자기자본투자) 부서 팀장들을 불러 회의를 했다.
“지난달 10일에 나온 증시규제 완화조치에 이어 안 계신 동안 정부가 증시 부양대책을 추가로 발표했지만 아직은 약발이 크게 먹히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상석에 자리한 석원은 연차가 제일 높은 김정식 1팀장의 브리핑을 진지하게 들었다.
“종합주가지수도 지난달 24일 876.89까지 떨어져 올해 최저치를 찍은 이후로 좀처럼 900선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초만 해도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기며 상쾌하게 출발했던 것하곤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정부에서 두 번이나 대책을 내놨는데도 증시가 힘을 못 쓰는 이유가 뭔 것 같아요?”
“주가가 크게 오르자 차익을 실현하려는 물량이 대거 쏟아졌고, 거기에 더해 보성통신을 비롯해 증권가를 떠들썩하게 만든 굵직굵직한 주가 조작 사건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러 건 발생하면서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보성통신 이야기가 나오자 왼편에 앉아 있던 최호근 4팀장이 움찔했다.
“내년부터 실행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도 분위기를 꺾는데 한몫했겠죠.”
석원의 말에 김정식 1팀장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영향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겁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이자와 배당을 통해 생긴 금융소득을 다른 소득세하고 합쳐서 세금을 부과하는 거였다.
소득세는 금액이 커질수록 세금 역시 늘어나는 누진세였기에 이렇게 되면 기존에 내던 것보다 세금을 훨씬 많이 납부해야 됐다.
참석한 팀장 중 한 명이 살짝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실시되면 은행에 묻어뒀던 시중 자금이 대거 증시로 들어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오히려 있던 돈까지 빠져나가는 상황이니 정말 허탈할 지경입니다.”
“세금을 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거기다가 돈을 주식에 넣어둔다고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시중 자금이 증시로 들어갈 거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걸 거예요.”
냉철하게 문제점을 지적하는 석원의 이야기에 팀장들이 머리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되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큰손들이 연말에 배당주를 대거 매각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증시에 변동성만 커지게 될 거예요.”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습니까?”
김정식 1팀장이 너무 과한 우려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석원의 생각은 달랐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세금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만약 김 팀장이 연말 배당으로 1억을 받는데 소득세로 1억 5천을 내야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봐요. 그런데 연말에 주식을 매각하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5천 이상을 남길 수 있다고 할 때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시선을 받은 김정식 1팀장이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대답했다.
“주식을 팔 것 같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석원은 소파에 앉은 다른 팀장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런저런 그럴듯한 말을 가져다 붙이지만 결국은 정부가 국민들한테 세금을 더 거두려는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는 거죠.”
실제로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실행되자 매년 연말만 되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큰손들의 대량 매도가 반복적으로 일어나 지수가 크게 출렁였다.
‘연초에는 잘 나가다가 연말만 되면 코스피가 비실비실 힘을 못 쓰는 원인이 바로 이거지.’
거기에 더해 한국 기업들이 현금을 잔뜩 쌓아두면서도 배당을 쥐꼬리만큼 주는데도 영향을 끼쳤다.
‘배당금을 늘려봤자 세금으로 왕창 뜯어가 버리니까 오너나 대주주 입장에서는 배당을 많이 할 이유가 없지.’
이처럼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지만 제일 억울한 사람은 목돈을 은행 예금에 넣어두고 이자를 받아서 생활하던 고령 은퇴자들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1년 정기예금 금리가 8.5%정도였기 때문에 퇴직금과 그동안 모은 저축을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를 받아 생활비로 쓰는 게 가능했었는데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됐던 거였다.
석원은 짧은 상념을 지우고는 입을 열어 말했다.
“지수가 여기서 더 떨어지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크게 반등하지도 못하는 횡보세가 한동안 계속될 거예요.”
석원의 시장 예측에 김정식 1팀장이 슬쩍 눈치를 보고는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다음 달에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는데 정부에서 추가 부양책을 내놓지 않을까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선거가 있을 때 주식 시장이 안 좋으면 집권 여당에 불리한 건 똑같았다.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정부가 무려 두 차례나 연거푸 증시 부양책을 발표한 것도 선거에 악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부양책들 때문에 지수가 더 하락하지 않고 버티는 거겠죠.”
“…….”
“무엇보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증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외국인 투자 한도가 꽉 차서 추가 자금 유입이 어려운 이상, 당분간은 분위기가 반전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커요.”
그러자 참석자 중 한 명이 안경을 고쳐쓰며 말했다.
“그러면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추가확대가 시행되는 7월이나 되어서야 지수가 바닥을 찍고 오를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제대로 봤어요.”
석원은 이야기를 한 안순환 투자 2팀장을 눈여겨보며 말을 계속했다.
“자금 유입만큼 가장 확실한 지수 상승 요인이 없지 않겠어요. 내 예상이 맞다면 6월까지 바닥을 다지다가 7월부터 반등을 시작해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9월쯤에는 어쩌면 1,000포인트를 다시 넘길 수 있을 거예요.”
그러자 소파에 앉아 있던 팀장들이 크게 술렁였다.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종합주가지수가 연초부터 힘없이 주저앉으며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영원히 멀어진 것 같은 1,000포인트를 재탈환할 수 있을 거라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참석자들의 얼굴에 회의적인 기색이 가득했지만 석원은 일부러 모른 척하며 말했다.
“일단 그렇게 큰 틀을 잡고 3분기 운용 계획을 잡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지수 반등은 가능해 보여도 1,000포인트 탈환은 여전히 힘들 것 같다는 게 팀장들의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오너 일가인 건 둘째치고라도 그동안 석원이 보여준 능력이 있었기에 다들 군말 없이 지시에 따랐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기대보다 상승세가 약하면 그때 가서 계획을 수정하면 되겠지하고 생각했다.
“보험주에 투자한 건 어떻게 됐어요?”
그러자 김정식 1팀장이 준비해놨던 자료를 손에 들며 대답했다.
“말씀하셨던 대로 성수대교 붕괴 때문에 불안 심리가 커진 상황에서 출장을 가신 동안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가 터지면서 보험주 주가가 폭등해 오늘까지 수익률이 15%를 넘겼습니다.”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는 대구 지하철 1호선 공사 현장 부근에서 건물 신축 공사 중에 땅 아래 묻혀 있는 도시가스관을 잘못 건드려 도시가스가 대량으로 유출됐는데 그걸 모르고 용접 작업을 했다가 폭발해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였다.
“보험주를 대거 매수하자마자 주가가 폭등하다니 타이밍이 정말 절묘했습니다.”
안순환 2팀장이 높은 수익률에 잔뜩 고무된 목소리로 말했지만 석원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큰 수익을 내긴 했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대형 참사가 주가 폭등의 원인이 됐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최호근이 팔꿈치로 툭 쳐서 눈치를 주자 그제야 굳어 있는 석원의 얼굴을 발견한 안순환 2팀장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으며 팀장들이 눈치를 보자 석원이 애써 표정을 풀고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보험주는 연말까지 강세가 계속될 테니까.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해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들 이번 주까지 후정 건설 주식을 최대한 매수하도록 해요.”
뜻밖의 지시에 최호근 4팀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후정 건설이라면 최근 자금 악화로 주가가 엉망인 회사지 않습니까?”
“맞아요.”
말하지 않아도 회사 상황이 안 좋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주식을 매수하라는 걸까, 하고 잠시 고민한 최호근 4팀장은 이내 머리를 번득 스치는 생각에 몸을 앞으로 당겨 앉았다.
“혹시 저희가 모르는 호재를 알고 계신 겁니까?”
그러자 다른 참석자들도 눈을 반짝이며 석원을 바라봤다.
“다음 주쯤에 서울 시내에 건축 중인 고층 빌딩을 매각한다는 뉴스가 나올 거예요.”
“빌딩을 팔면 매각 대금이 들어올 테니 호재가 되겠군요.”
최호근 4팀장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정식 1팀장도 좋은 소식이라는 듯 맞장구를 쳤다.
“그걸로 자금 압박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가는 확실히 반응하겠습니다.”
팀장들은 이런 중요한 내부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해했지만 차마 석원한테 곧바로 묻진 못했다.
석원도 주식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 매일 구둣방에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하며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던 오 부장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터였다.
석원은 앞에 놓인 서류철을 덮으면서 팀장들에게 말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쯤하고 다들 나가봐요.”
“네.”
팀장들이 짧게 대답하곤 하나둘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갔다.
잠시 뒤 혼자 남은 석원도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 문득 한쪽에 놔둔 조간신문이 눈에 들어오자 집어서 사회면을 펼쳤다.
대구 지하철 도시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한지 보름이 넘어가는 현재 80여 명이 넘는 부상자들이 아직 병원에서 힘든 치료를 받고 있다.
대부분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아야 되는 중환자들인 데다가 일부는 회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라 더욱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번 참사로 101명이 사망하고 202명이 부상을 당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인근 건물과 차량 150여대가 부서지는 재산 피해를 입었다.
사고수습대책본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접수된 성금은 6백 90건 97억 원에 이르고 수많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해 3백31만5천㏄의 혈액을 기증했다.
정부 역시 피해자들에 대한 신속한 보상을 위해 4백억 원의 긴급 자금 지원을 승인했지만 워낙 사상자 숫자가 많고 피해 규모가 크다 보니…….]
사고 규모로 보면 성수대교에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더 큰 대형 참사였다.
하지만 서울이 아니라 지방인 대구에서 벌어진 사고라 그랬는지.
하루 종일 참사 현장을 생방송으로 중계한 성수대교 붕괴 때와 달리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는 자막이나 짧은 뉴스 특보로 소식을 전한 것이 전부였다.
거기다가 불과 몇 달 뒤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마저도 묻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걸 잊어서는 안 됐는데…….’
석원 역시 까맣게 잊고 넷스케이프 상장을 위해 미국에 갔다가 사고가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물론 기억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삼풍백화점처럼 참사를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죄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신문 기사를 보고 있을 때 노크를 하고 들어온 나성미가 탁자 위에 놓인 빈 찻잔을 치우며 테이블을 정리했다.
‘비록 참사를 막진 못했지만 피해자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줘야겠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계속 가슴 한구석에 불편한 기분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결심한 석원은 고개를 들어 말했다.
“나성미 씨.”
“네. 본부장님.”
빈 찻잔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나가려던 나성미가 발걸음을 멈췄다.
“대구 가스 폭발사건 알죠? 거기 사고수습 대책본부에 연락해서 피해자들 명단과 연락처를 좀 알아보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건 어디에 쓰시려고 하는지…….”
나성미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고를 당하신 분들한테 개인적으로 도움을 좀 드리려고 해요.”
“아, 네. 개인 정보라 알려줄지 모르겠지만 일단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