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6)
금수저 투자백서 16화(16/231)
16. 정말 난 놈은 난 놈이군.
[억만장자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카페테리아 야외 테이블에 앉아 통화하던 석원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익금은 주식 포지션으로 전부 다시 넣어줘요.”
[레버리지도 함께 쓰실 겁니까?]콕스의 물음에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안 되는 건 아니겠죠.”
[파트장님한테 말씀을 드려야 되겠지만 이미 10배까지 레버리지를 사용하실 수 있게 승인이 난 상태이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그럼 그렇게 해줘요.”
[그런데 이러면 포지션이 단번에 30억 달러까지 늘어날 텐데. 지금 바로 들어가시는 것보다 상황을 조금 보다가 런던 증시가 바닥을 찍고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때 추가로 매수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ERM 탈퇴 충격에 파운드화와 함께 런던 증시도 속절없이 동반 추락하는 중이었기에 일리 있는 조언이었다.
실제로 ERM 탈퇴 발표 직전 3,233.80포인트였던 런던 증시는 며칠 만에 2,582.00포인트까지 가파르게 폭락해 버렸다.
지금도 공포 분위기가 진정되지 않은 채 하락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다들 주식을 내던지기 바쁜데 이런 상황에서 거액을 들여 매수에 들어가는 것이 조금 성급해 보일만도 했다.
하지만 석원의 생각은 달랐다.
“크게 벌려면 공포에 사라는 말도 있잖아요. 난 오히려 지금이 적기라고 봐요.”
[확실히 파운드 하락으로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정부의 부양책이 실시되면 영국 경제에 활력이 돌겠지만 반대로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겁니다.]살짝 목소리를 낮춘 콕스는 사뭇 심각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자칫 영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뭐 이미 한 차례 받은 전력이 있으니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겠죠.”
불과 16년 전인 1976년 1차 오일 쇼크로 인한 경기 침체와 누적된 재정 적자를 더 버티지 못한 영국은 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한 치욕적인 과거가 있었다.
그랬기에 투자자들이 더욱 겁을 먹고 파운드화와 영국 주식을 마구 집어 던지고 있는 거였다.
‘거기다 이런 시장의 패닉에 올라타서 크게 한몫 챙기기 위해 헤지펀드들이 알게 모르게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겠지.’
그 역시 시장의 혼란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헤지펀드들을 비난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더욱 신중하게 움직여야 되지 않겠습니까?]“같은 나라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요.”
손에 든 휴대폰을 고쳐쥐며 석원이 차분히 말했다.
“당시에는 영국이 2차대전의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기력을 회복한 상황이잖아요.”
[…….]“무엇보다 영국이 무너지는 걸 워싱턴에서 바라지 않을 거예요.”
소련의 붕괴로 오랫동안 이어진 냉전이 끝났다지만 여전히 영국은 유럽에 미국이 영향력을 투사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 동맹국이었다.
[말씀을 들어 보니 그렇기도 하군요.]잠시 침묵하던 콕스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수긍했다.
[투자 결정은 고객께서 하시는 건데 제가 너무 주제넘었습니다.]“아니에요. 괜찮으니까 앞으로도 이런 조언은 언제든 해줘요.”
기분 나빠하는 기색 없이 쿨하게 받아주자 콕스가 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아 그리고 하나 더 부탁할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파운드화에 투자한 것만 따로 뺀 수익 내역서를 우편으로 보내줄 수 있나요?”
[어렵지 않은 일이군요. 계좌를 개설할 때 알려주신 주소로 보내드리면 되겠습니까.]“아니요. 서울로 보내줬으면 해요.”
석원은 주소를 알려주고는 손에 쥔 휴대폰을 내려놨다.
“무슨 통화를 그렇게 오래 해. 여자친구야?”
“그런 게 있겠냐.”
석원은 태평하게 감자튀김을 손으로 집어 먹는 로이를 슬쩍 노려봤다.
맞은편에 앉은 로이는 그새 햄버거를 다 먹어치우고 플라스틱 접시에 올려진 감자튀김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럼 누군데?”
“몰라도 돼. 아무튼 나도 이래저래 바쁜 몸이라고.”
대충 둘러댄 석원은 피자 조각을 입에 밀어 넣었다.
테이블 위에는 두 사람이 먹고 있던 음식 접시와 음료수 컵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비밀도 많은 녀석.”
로이는 감자튀김을 케찹에 찍어 먹다가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옆자리에 놔둔 백팩을 뒤적거렸다.
“아, 참. 까먹을 뻔했다.”
“뭔데?”
석원은 피자를 우물거리며 로이가 가방에서 꺼낸 종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준결승전에서 붙을 상대에 관한 자료야.”
로이는 완전히 매니저 흉내를 내기로 작정했는지 예선 시합을 치를 때마다 이런 걸 가져와선 내밀었다.
게다가 준결승전이라고 나름대로 더 신경을 쓴 듯 평소엔 A4 용지 한 장이었던 게 오늘은 서너 장으로 불어 있었다.
“참 쓸데없는데 열정을 불태운다니까.”
자신 있게 내민 로이와 달리 석원의 반응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걸 구해오는 거야?”
“내가 발이 좀 넓잖냐.”
로이가 우쭐한 표정으로 가슴을 쫙 펼쳤다.
“대전 상대가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캐릭터부터 즐겨 쓰는 기술까지 아주 탈탈 털어서 조사해왔으니까 꼼꼼히 다 외워.”
“필요 없어.”
“왜!”
석원은 우물거리던 피자를 꿀꺽 삼키고는 기름기가 묻은 손끝을 냅킨으로 꼼꼼하게 닦았다.
“그런 거 없어도 이길 수 있으니까.”
칙 소리를 내며 콜라캔 뚜껑을 딴 석원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로이가 잠깐 어이가 없었는지 기가 막힌 표정을 짓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지금 진짜 재수 없었던 거 아냐.”
“뭐 어쩌라고. 그게 사실인데.”
실제로 지금까지 여섯 번의 예선 대결을 벌이면서 석원은 공격을 거의 허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시합을 끝냈다.
‘빡세기로는 거의 헬급이라는 K-오락실에서도 짱을 먹었던 난데 하버드 샌님들한테 지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그가 속으로 코웃음을 치는 동안 로이는 머쓱한 듯 입맛을 쩝 다셨다.
“엄청 재수 없는데 또 사실이라서 반박할 수가 없네.”
“그치? 그냥 인정해.”
“야 그래도 이번에 붙는 녀석은 실력이 장난 아니니까 무조건 읽어! 알았지?”
로이는 열심히 조사해온 게 아까웠는지 종이를 돌돌 말아 그의 백팩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시간 나면.”
“나중에 확인할 거니까 꼭 봐! 그냥 훑어보기라도 하라고.”
“귀찮은데.”
“야!”
로이가 버럭 소리치자 그제야 석원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았어.”
* * *
일주일 뒤, 서울 마포 대흥그룹 본사 회장실.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은 박태홍 회장이 결재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흐음.”
주력 계열사인 대흥 방직의 월말 결산보고서를 내려놓으며 박태홍 회장은 고민에 찬 표정을 지었다.
“매출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데 순이익이 갈수록 줄어드는군.”
국내 경제가 발전하면서 직원들의 임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제반비용들이 상승한 만큼 이익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한 박태홍 회장은 백화점을 비롯해 호텔과 골프장 그리고 건설 중장비 제조업체 등을 인수하며 일찌감치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방직업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여러 분야로 나눠 위험을 분산시키면서 동시에 그룹의 덩치를 키울 수 있으니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다른 계열사들의 월말 결산보고서에 시선을 준 박태홍 회장은 쓴 한약을 삼킨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계열사가 20개로 늘어나고 재계 순위도 크게 올랐지만 방직과 백화점을 빼곤 전부 돈만 잡아먹고 있으니.”
인수, 설립한 계열사 대부분이 기대한만큼 성장하지 못한 채 적자가 누적되고 있었다.
이렇게 난 손실을 방직과 백화점에서 지급 보증을 써서 메꾸고 있었다.
그런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방직의 수익이 줄어들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들처럼 국내 공장을 정리하고 중국으로 옮겨야 하나…….”
중국이 개혁, 개방을 실시하자 많은 국내 업체들이 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생산거점을 옮기고 있었다.
특히 섬유와 신발, 장난감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들이 공장 이전에 적극적이었다.
“국내보다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월급을 주고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엉덩이가 들썩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마진율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임금을 싸게 지급하면 그만큼 수익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대흥그룹 역시 중국 선전(深圳)에 첫 번째 해외 공장을 만들어 운영 중이었다.
처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중국 공장의 가동률이 금방 올라와 잘 돌아가고 있었기에 더욱 고민이 됐다.
“가능하면 국내에 생산거점을 계속 유지하고 싶지만 수익률이 이렇게 떨어진다면 전면 이전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군.”
복잡한 마음에 박태홍 회장은 책상 한쪽에 놔둔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한 개비를 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푹신한 의자 등받이에 기댄 자세로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면서 생각에 잠겼을 때.
노크 소리와 함께 길성호 비서실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그러자 책상 앞으로 다가온 길성호 비서실장이 손에 든 서류 봉투를 내려놨다.
“미국에서 우편물이 왔습니다.”
“미국?”
박태홍 회장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스쳤다.
“그렇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봉투를 집어 든 박태홍 회장이 겉에 영어로 적혀 있는 글자를 읽었다.
“살로몬 브라더스(Salomon Brothers)?”
그러자 길성호 비서실장이 얼른 설명을 해줬다.
“뉴욕에 본점을 두고 있는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한 곳입니다.”
“우리 그룹하고 연관된 것이 있나?”
“없습니다.”
대답을 들은 박태홍 회장은 한 손에 서류 봉투를 든 채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나한테 이런 걸 보낸 거지.”
“둘째 도련님이 파운드 투자를 할 때 계약을 맺은 곳이 바로 살로몬 브라더스입니다.”
“그래?”
파운드에 투자했다는 것에만 관심을 뒀지 어딜 이용했는지는 몰랐던 박태홍 회장은 바로 상체를 바로 세웠다.
손에 든 담배를 크리스털 재떨이에 비벼서 끈 뒤 봉투를 뜯자 안에서 반듯하게 철이 된 서류가 나왔다.
내용물은 고작해야 종이 한두 장 밖에 안 됐지만 서류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박태홍 회장의 눈은 점점 커지기만 했다.
“허어.”
이내 멍하니 입을 벌리곤 헛바람을 내뱉는 박태홍 회장의 모습에 길성호 비서실장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무슨 내용인데 그러십니까?”
“이것 참.”
박태홍 회장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재차 내용을 확인해 보더니 손에 든 서류를 건넸다.
“직접 보게.”
조심스럽게 서류를 받아 든 길성호 비서실장 역시 곧 놀란 듯 말했다.
“이건 투자 수익 내역서 아닙니까.”
“제일 끝에 액수를 봐.”
시선을 아래로 내린 길성호 비서실장은 수익률과 금액을 확인하곤 헉하고 숨을 삼켰다.
[총 수익률 : 31.12% 수익금액 : 311,200,000 USD]“3…….3억 1,120만 달러…….”
이게 진짜인가 싶어 고개를 홱 들어 올리자 박태홍 회장 역시 기가 막힌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수익이 천만 달러 정도일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 사이 파운드 환율이 더 떨어졌으니 수익률이 올라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금액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데.”
박태홍 회장이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그 말에 내역서를 다시 자세히 살핀 길성호 비서실장은 뭔가를 발견하곤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둘째 도련님께서 레버리지를 써서 투자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수익률이었다.
“레버리지면 빚을 냈다는 거야?”
“예.”
박태홍 회장의 눈썹이 대뜸 찌푸려졌다.
“녀석이 빚을 얼마나 썼기에 그만한 수익이 난 거야.”
“아마 10배 레버리지를 쓰신 것 같습니다.”
“뭐, 10배!”
레버리지를 그렇게나 많이 쓴 걸 처음 알게 된 박태홍 회장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길성호 비서실장은 겁 없이 빚을 내서 투자한 석원의 행동에 박태홍 회장이 크게 화를 낼 거라 생각하고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일이 잘 풀려서 대박을 치긴 했지만 10배나 되는 레버리지는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길성호 비서실장의 예상과 달리 박태홍 회장은 굳어 있던 얼굴을 풀고는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방 안이 떠나가라 웃는 박태홍 회장의 모습에 길성호 비서실장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만 깜박였다.
“이렇게 과감한 배팅을 하다니 담력이 보통이 아닌걸. 암! 사내라면 확신이 있을 때 과감하게 모험을 할 줄도 알아야지.”
박태홍 회장은 두툼한 손바닥으로 의자 팔걸이까지 탕탕 치면서 한바탕 시원하게 웃어댔다.
당연히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던 길성호 비서실장은 내심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또 그렇게 해석이 되나.’
하긴 한 번 콩깍지가 씌면 무슨 짓을 해도 좋게 보이는 법이었다.
박태홍 회장은 흡족한 얼굴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앞에 있는 길성호 비서실장을 봤다.
“얼마 전에 태산 증권이 매물로 나와 있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증시 활황에 몸값이 많이 올라 망설이고 있던 거였지만 박태홍 회장은 시원하게 결정을 내렸다.
“인수를 추진해.”
“하지만 가격이 상당히 비싼데 괜찮겠습니까.”
“지를 땐 질러야지. 머뭇거리면 경쟁자가 붙어서 가격만 더 오를 뿐이야. 내 말대로 일을 진행시켜!”
결심이 확고한 걸 눈치챈 길성호 비서실장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머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길성호 비서실장이 나가자 혼자가 된 박태홍 회장은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보낸 수익 내역서를 한 번 더 천천히 읽어보고는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투자 한 번에 이 정도 수익이라…….정말 난 놈은 난 놈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