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63)
금수저 투자백서 163화(163/231)
163. 우리가 가진 독점권에 관심이 있으시다고요?
홍콩 완차이(Wan Chai).
해안과 맞닿은 홍콩섬 북쪽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층 빌딩들 위로 우뚝 솟아 유독 눈에 들어오는 마천루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센트럴 플라자(Central Plaza)였다.
높게 세워져 있는 꼭대기 첨탑이 아주 인상적인 센트럴 플라자는 전체 높이가 373.9m에 달하는 78층 초고층 빌딩으로 이때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로 유명했다.
수백 톤에 이르는 화강암과 여러 가지 색깔의 강화유리로 외관을 장식해 낮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지만 진짜는 야경이었다.
어두운 밤 외벽에 천여 개가 넘게 설치된 네온등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야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이 나오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곳 43층에 동해그룹 홍콩 지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들어오시랍니다.”
홍콩 현지 여직원이 영어로 하는 말에 오상현 과장은 소파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안쪽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탁 트인 새파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개인 사무실의 풍경이 드러났다.
바다 위에는 새하얀 요트들이 떠다녔고 햇빛을 받아 반사된 파도의 빛깔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책상 앞에 명품 로고가 들어간 푸른색 넥타이를 한 우호근이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실장님.”
오상현 과장이 깍듯하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유배를 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잘 있겠어?”
빈정거리는 말투에 오상현 과장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거기 앉아.”
“네.”
몸을 일으킨 우호근이 사무실 한쪽에 있는 소파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오상현 과장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왼쪽 소파로 가서 앉았다.
책상을 돌아 나온 우호근은 상석 가운데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자 오상현 과장이 재빨리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여줬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당연하다는 태도로 시중을 받은 우호근은 뒤로 몸을 기댄 채 하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오상현 과장을 봤다.
“보성통신 건은 대충 마무리됐다고 했지.”
“예.”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오상현 과장이 경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회사와 무관하게 구속된 손오승 부장과 조철래 과장이 욕심을 부려 고객 돈에 손을 대 주가조작을 하려 한 것으로 정리가 됐습니다.”
“아무리 변호사를 잘 쓴다고 해도 증감원이 떠들썩하게 압수수색까지 벌인 사건이라 징역을 피하긴 어려울 텐데 용케도 입을 막았군.”
“전 비서실장님이 직접 나서서 손을 쓰셨다고 합니다.”
아버지 우용갑 회장의 최측근인 전해철 비서실장의 얼굴을 떠올린 우호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잔소리가 많은 게 살짝 재수 없긴 해도 전 실장이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하지.”
그러면서 다시 오상현 과장에게 시선을 줬다.
“그럼 이제 일이 다 해결됐으니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그건…….”
오상현 과장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대답을 머뭇거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우호근이 콧잔등을 찡그렸다.
“보나마나 아버지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처박아 두라고 하셨겠지.”
“사건이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직 재판까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조심하시는 걸 겁니다. 그리고 이왕 한국을 떠나 넓은 곳으로 나오셨으니 국제 금융 중심지인 홍콩에서 많은 걸 보고 배워서 돌아오라는 뜻도 계실 테고요.”
오상현 과장이 애써 달래 보려고 했지만 그딴 꿀 바른말에 넘어갈 우호근이 아니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아니까 억지로 포장할 필요 없어.”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문 그를 보고 우호근이 쯧 혀를 찼다.
“그건 그렇고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그러자 오상현 과장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압수수색이 들어오기 전날 대량 매도 주문을 낸 곳이 대흥 증권이라고 합니다.”
“……!”
뜻밖의 말에 우호근이 굵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니까 날 물 먹였던 매도 주문이 대흥 증권에서 나온 거라고?”
“그렇습니다.”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오상현 과장이 말을 덧붙였다.
“여러 계좌에서 나눠서 매도가 이루어졌지만 주문이 동시에 나온 걸로 볼 때 누군지는 몰라도 한 명이 벌인 짓이 분명합니다.”
“분명 그럴 거야. 아님 그렇게 될 수가 없지.”
우호근은 눈빛을 매섭게 번득이며 이를 갈았다.
도망치듯 홍콩으로 오고 나서 처음 얼마 동안은 술로 울분을 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래지 않아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생각한 우호근은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러고 나선 완벽하다 여겼던 계획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틀어진 건지 하나하나 찬찬히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개미 털기를 다 끝내고 다시 주가를 끌어올릴 때 누군가 통정 거래 중간에 끼어들어 매물을 대거 떠안겼던 일이 자꾸만 그의 신경에 거슬렸다.
더군다나 바로 다음 날 증감원이 압수수색을 벌인 것도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우호근은 한국에 있는 오상현 과장에게 연락해 그때 대량 매도를 한 놈들이 누군지 뒤를 캐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흥 증권이 튀어나온 거였다.
불현듯이 우호근의 머릿속에 재수 없는 석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그 자식이 벌인 짓은 아니겠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건 맞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억지스러운 추측이었다.
그가 주가조작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도 힘들 거니와 설사 눈치챘다고 해도 증감원까지 움직여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두 그룹이 완전히 척을 지게 될 수도 있는데 고작 날 물 먹이려고 그런 위험을 감수할 리가 없지.’
머리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우호근은 왠지 모르게 께름칙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한쪽 손으로 턱밑을 만지며 껄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오상현 과장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상체를 바로 세운 우호근은 반쯤 타들어 간 담배를 크리스털 재떨이에 비벼서 끄며 말했다.
“대흥 증권을 통해 물량을 우리한테 떠넘긴 놈이 누군지 뒤를 더 캐보도록 해.”
“설마 그자들이 증감원에 저희를 신고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오상현 과장이 단박에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그게 아니라면 타이밍이 너무 딱 들어맞잖아.”
우호근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비해 신중한 성격인 오상현 과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살짝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저들이 얻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나도 그게 의문이야. 그래서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건지 알아내려는 거야.”
설마 싶었지만 괜히 더 말을 했다가는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아는 바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증감원에서 이번 사건 조사를 주도한 놈 주변을 파 봐. 그럼 분명 나오는 게 있을 거야.”
“예.”
몸을 뒤로 기댄 우호근은 사나운 눈빛으로 정면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어떤 놈이든 날 건드린 걸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겠어.”
* * *
짙게 썬팅이 된 BMW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워커힐 호텔 현관 앞에 멈춰 섰다.
완벽하게 핏 되는 수트에 선글라스를 낀 석원이 운전석에서 내리자 유니폼을 입은 도어맨이 얼른 다가와 차 문을 잡아주며 살짝 머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은 석원이 만 원짜리 지폐와 함께 손에 든 차키를 건네자 도어맨이 깍듯한 태도로 받았다.
그렇게 차를 맡긴 석원은 익숙한 걸음걸이로 회전문을 지나 호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천연 대리석 바닥과 화려한 대형 샹들리에로 고급스럽게 꾸며진 로비를 가로지른 석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위층에 있는 일식당으로 올라갔다.
은은한 조명이 켜진 복도를 지나 일식당 입구로 가자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종업원이 데스크에 서 있다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일행이 있으신가요?”
“랜든 쇼어라는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을 텐데요.”
“아. 특실 손님이시군요. 절 따라오시겠어요.”
친절하게 말한 여종업원은 가게 안쪽에 있는 특실로 그를 안내했다.
“일행분이 오셨습니다.”
가볍게 노크를 한 여종업원이 갈색 미닫이로 된 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석원이 성큼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탁 트인 한강 풍경이 일품인 특실 테이블에 랜든이 먼저 와 있는 게 보였다.
테이블 반대쪽에는 동양인 사내 두 명이 함께 앉아 있었는데 바로 석원을 만나기 위해 한국까지 찾아온 조정광 소프트뱅크 사장과 요코우치 상무였다.
“오셨군요.”
랜든이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함께 있던 일행들에게 영어로 말했다.
“인사들 하십시오. 저희 엘도라도 펀드 대표님이십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살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석원을 쳐다봤다.
공청회 증인으로 참석했던 조지 해밀턴이 기자들 앞에서 한 발언이 크게 이슈가 되면서 최근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핫한 곳이 바로 엘도라도 펀드였다.
그런데 이렇게 젊은 사람이 엔화 공격으로 엄청난 수익을 낸 엘도라도 펀드 대표라고 하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차별받는 재일동포 출신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해 온갖 힘든 일들을 다 겪으며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답게 조정광은 금방 평정심을 되찾았다.
바로 놀란 기색을 감춘 조정광은 태연하게 한국어로 미리 연습한 인사말을 꺼냈다.
“처음 뵙겠습니다. 조정광이라고 합니다.”
물론 꽤 노력하긴 했어도 억양에서 상당히 어색한 티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석원은 앞으로 내민 조정광의 손을 맞잡으며 유창한 영어로 대답했다.
“박석원입니다. 편하게 영어로 말씀하시죠.”
“아,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조정광은 살짝 밝아진 얼굴로 옆에 있는 일행을 한쪽 손으로 가리켰다.
“이쪽은 저와 같이 일하는 요코우치 상무입니다.”
그러자 회색 정장을 입은 요코우치 상무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일본인 특유의 억양이 느껴지는 영어로 입을 열었다.
“요코우치 쓰요시라고 합니다.”
조정광과 요코우치 상무가 내민 금박을 입힌 명함을 받아든 석원은 자신도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석원이 건넨 명함은 심플하게 영어와 한글로 된 이름 그리고 휴대폰 번호만 적혀 있었다.
“영어가 굉장히 유창하시군요.”
조정광이 칭찬하자 석원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조 사장님처럼 저도 미국에서 유학을 했었거든요.”
“어쩐지, 그러셨군요.”
조정광이 머리를 끄덕이는 가운데 랜든이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다들 인사를 하셨으면 앉아서 이야기를 계속 나누시죠.”
“그러죠.”
“그럼 식사부터 주문할까요?”
네 사람은 널찍한 식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는 형태로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종업원이 다가와 일행 앞에 메뉴판을 하나씩 내려놓고는 물었다.
“주문을 하시겠습니까?”
석원은 메뉴판을 펼치지 않고 익숙한 태도로 상대를 보며 말했다.
“이 집은 주방장 코스 요리가 괜찮습니다.”
“아, 그럼 그걸로 하도록 하죠.”
남은 두 사람도 그렇게 하시죠, 하며 석원의 추천에 따르기로 했다.
“코스 요리로 4인분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메뉴판을 챙겨든 여종업원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별실 안에 네 사람만 남게 되자 석원이 따뜻한 녹차로 먼저 목을 축였다.
그러고는 맞은편에 있는 조정광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뗐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야후 포털 서비스 독점권에 관심이 있으시다고요.”
탐색전 없이 곧바로 본론을 꺼내자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던 조정광은 이내 표정을 바로 하곤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귀측이 가지고 있는 독점권을 저희가 매수하고 싶습니다.”
석원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눈매를 휘며 물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