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72)
금수저 투자백서 172화(172/231)
172. 내 꿀단지에 딴 놈들이 숟가락을 대는 꼴은 못 보지.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프라운호퍼 게젤샤프트(Gesellshaft) 연구소.
금발에 턱수염을 기른 중년의 디트리히 겐셔 박사가 흰색 가운을 입은 채 초조한 얼굴로 연구실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발걸음을 멈추고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고는 다시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중이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한쪽에 앉아 있던 젊은 연구원이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박사님. 아무래도 오늘 결과가 안 나올 모양인데 그만 댁으로 돌아가시죠.”
“으음. 늦게라도 연락이 올지 모르니 조금 더 기다려보지.”
“제가 연구실에 남아 있다가 전화가 오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늦은 오후라 그가 봐도 오늘은 연락이 올 가능성이 낮아 보였지만 겐셔 박사는 미련이 남는 듯 손목시계를 한 번 더 들여다봤다.
“30분만 더 있다가 가도록 하지.”
“그러시죠.”
겐셔 박사는 서성거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애써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노력했다.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면서 앉아 있으면 조금 기분이 진정될 것 같았다.
가운 주머니에서 막 담뱃갑을 찾아 꺼내 들었을 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연구원이 전화를 받으려고 일어났지만 그것보다 더 빨리 달려온 겐셔 박사가 수화기를 집어 들고는 바로 말했다.
“여보세요.”
[프라운호퍼 연구소죠.]“그렇습니다.”
[디트리히 겐셔 박사님과 통화를 하고 싶은데 계십니까?]“제가 겐셔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전 IEEE 3분과 담당관 요제프라고 합니다.]IEEE라는 말에 겐셔 박사는 수화기를 손에 든 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전기전자 공학자 협회(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를 줄여서 IEEE라고 불렀는데 전기, 전자 관련 기술 표준을 정하고 이를 공표하기 위해서 만든 국제기구였다.
겐셔 박사가 동료들과 오랫동안 연구해서 만든 디지털음악 기록방식이 표준으로 채택되도록 신청했는데 오늘 드디어 결과가 나온 거였다.
[축하드립니다. 제출하신 디지털 음악 기록방식이 기술 표준으로 채택됐고, 이름을 MP3라고 부르기로 결정됐습니다.]“정말입니까?”
믿기지 않는 얼굴로 겐셔 박사가 되묻자 상대가 웃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공식 문서는 잠시 뒤에 팩스로 보내질 겁니다.]“고맙습니다!”
겐셔 박사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쳐다보던 연구원 역시 표준 채택이 된 걸 눈치채곤 소리 없이 주먹을 꽉 움켜쥐며 기뻐했다.
[다음 회보에 보내주신 자료와 함께 표준 채택 사실이 정식으로 실릴 예정입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협회로 문의를 주십시오.]“예. 그러죠.”
통화를 끝낸 겐셔 박사가 수화기를 내려놓자 연구원이 참지 못하고 바로 물었다.
“박사님! 표준 채택이 된 거죠?”
“그래. 위원회에서 결정이 내려졌다고 방금 이야기를 들었어.”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러자 겐셔 박사도 감회어린 표정으로 연구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도 그동안 고생이 많았어.”
잠시 그렇게 기쁨을 나눈 겐셔 박사는 뒤늦게 허둥지둥거리며 돌아섰다.
“이럴 게아니라 다른 동료들한테도 소식을 알려줘야지.”
“그러셔야죠. 모두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럴 거야.”
수화기를 다시 집어든 겐셔 박사는 스승이자 기술 개발에 많은 도움을 준 엘랑겐 대학의 게오르크 교수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걸었다.
* * *
서명한 결재서류를 덮어서 책상 앞에 서 있는 나성미한테 돌려주며 석원이 입을 뗐다.
“커피 한 잔 가져다주겠어요.”
“예. 본부장님.”
나성미가 결재서류를 받아서 나가자 혼자 남은 석원은 컴퓨터로 증시 움직임을 확인했다.
외국인 자금 추가 유입으로 반등에 성공한 증시는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 오늘도 10포인트가량 오르고 있었다.
PI부서에서 투자한 주요 종목들의 주가 움직임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있을 때, 책상 한쪽에 놔둔 휴대폰 진동벨이 울렸다.
휴대폰을 집어든 석원이 전화를 받자 익숙한 랜든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스, 접니다.]“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좋은 소식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그때 노크와 함께 나성미가 안으로 들어와 진한 커피향이 풍기는 찻잔을 앞에 내려놨다.
석원이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살짝 고맙다는 눈짓을 하자 나성미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다시 밖으로 나갔다.
뒤로 몸을 편하게 기댄 석원은 손에 든 휴대폰을 고쳐 쥐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봐요.”
[지난번에 프랑스 톰슨 사로부터 사들인 특허들 가운데 디지털 오디오 압출 기술이 IEEE 표준으로 정식 채택됐다고 합니다.]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었기에 석원은 반색을 하며 상체를 바로 세웠다.
“그게 정말이에요?”
[네. 독일에 있는 겐셔 박사가 직접 소식을 알려왔고 IEEE로부터도 채택 사실을 공식 문서로 전달받았습니다.]“잘됐네요.”
[아. 그리고 표준으로 채택된 기술을 MP3라고 명명하기로 했다고 합니다.]“부르기도 간편하고 좋네요.”
지금은 아무도 몰랐지만 앞으로 디지털 음악의 혁명을 몰고 올 기술이 국제 공인을 받고 무대 위로 올라서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더불어서 난 매년 가만히 앉아서 수억 달러를 꼬박꼬박 벌어다 주는 꿀단지를 가지게 된 거지.’
원천 기술 특허를 가지고 있는 이상 앞으로 MP3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려면 무조건 그에게 사용료를 내야 했다.
‘애플 아이팟이 제일 잘 나갈 때 한 해 판매량이 5천만 대를 훌쩍 넘겼었지.’
기기 하나당 5달러씩만 특허 사용료를 받아도 2억 5천만 달러가 넘었다.
애플뿐만 아니라 다른 MP3 플레이어 제조사로부터 걷는 사용료까지 합치면 액수는 더 커질 터였다.
‘거기다가 몇 년 뒤에 나올 스마트폰에도 MP3 기능이 필수적으로 들어갈 테니까. 완전 노다지가 따로 없네.’
앞으로 걷어 들일 막대한 액수의 특허 사용료를 생각하자 가만히 있어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MP3 특허에 관한 권리는 100% 토트에 귀속된 거겠죠?”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신 이름을 따서 만든 토트(Thoth)는 석원이 설립한 특허 전문 기업이었다.
[물론입니다. 개발한 기술 특허권을 완전히 가져오는 조건으로 톰슨 사가 연구비를 지원했고, 계약을 그대로 저희가 계승했기에 MP3 특허는 온전히 토트 소유입니다.]“아주 좋네요.”
흡족한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석원이 말을 이었다.
“겐셔 박사와 연구팀 모두한테 정말 수고했다고 말을 전해주고 보너스를 두둑하게 챙겨주도록 해요.”
[얼마나 지급할까요?]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석원이 대답했다.
“겐셔 박사를 비롯한 핵심 연구원들은 각각 백만 달러씩을 주고. 나머지 기술 개발에 기여한 인원들도 빠뜨리지 말고 십만 달러씩 보너스를 주도록 해요.”
예상보다 많은 액수에 랜든이 당황한 듯 되물었다.
[그렇게나 많이 주시는 겁니까?]“열심히 해서 성과를 냈으니 보상을 주는 게 당연하죠.”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더 챙겨주고 싶었지만 아직 MP3가 얼마나 가치있는 기술인지 드러나지 않은 시기였기에 이 정도만 주는 거였다.
‘원래대로라면 MP3 기술을 개발해 국제 표준으로 만들었지만 연구비를 지원받은 것 말고는 아무런 보상이 없었지.’
훗날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지를 알면 너무 보잘것없는 결과였다.
[맞는 말씀이기는 합니다만 가치가 그리 크지 않은 기술인데 보상이 너무 큰 것 아닙니까?]랜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프랑스 톰슨 사로부터 MP3 권리를 사들인 가격이 백만 달러인데 그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보너스로 주라고 하니 당혹스러워 할만도 했다.
“지금은 그렇게 보여도 얼마 안 있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거예요.”
[…….]기대가 큰 듯한 석원이었지만 랜든은 과연 그렇게 될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결정권자는 석원인 데다 무엇보다 몇백만 달러씩 보너스를 준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불어나고 있는 석원의 개인 재산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티도 나지 않을 수준이었기에 그냥 순순히 지시에 따랐다.
‘얼마 전에 주가가 너무 올라 주식 분할을 결정한 넷스케이프 지분 가치만 거의 10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니 더 말할 것이 없지.’
좀처럼 식지 않아 오히려 더 거세게 타오르는 인터넷 열풍에 넷스케이프 주식은 주당 백 달러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자 창업자인 톰 하퍼는 석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너무 비싸진 넷스케이프 주식 한 주를 두 주로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주식 분할 소식에 투자자들이 크게 환호하며 넷스케이프 주가는 더욱 강세를 이어갔다.
[알겠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보너스를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아. 그리고 우리가 가진 원천 기술뿐만 아니라 관련된 주변 기술들에 대한 특허도 전부 사들여서 다 확보하도록 해요.”
[매입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까요?]“조금이라도 관련된 거면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모두 매입해요.”
[그렇게 하면 매입할 특허 숫자가 상당히 많아질 텐데요.]“열 개든 백 개든 상관없으니까 몽땅 사들여요.”
MP3 사용이 크게 늘어나면 관련 기술을 가지고 특허 사용료를 받아내려는 소위 “특허 괴물(Patent Troll)”들이 나타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내가 먼저 침을 발라둔 꿀단지에 딴 놈들이 숟가락을 대는 꼴은 못 보지.’
석원이 원천 기술뿐만 아니라 주변 기술까지 전부 쥐고 있다면 특허 괴물들도 감히 MP3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지 못할 터였다.
‘거기다가 관련 특허까지 다 들고 있으면 MP3 기술을 사용하려는 기업들과 협상을 할 때도 유리하게 작용할 테지.’
어떤 방식을 쓰더라도 석원이 보유한 특허를 피해가기 어려울 테니 무조건 갑(甲)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얘기해 봐요.”
[블리자드 경영진과 최종 인수 가격을 합의했습니다.]석원이 눈에서 이채를 띄며 물었다.
“얼마예요?”
[부채 천만 달러를 포함해 총 2천 3백만 달러에 지분 100%를 인수하는 조건입니다.]아직 큰 히트작 없이 중소 게임사에 불과한 걸 생각하면 상당히 몸값을 비싸게 쳐준 거였다.
하지만 곧 디아블로를 비롯한 히트작들이 줄줄이 쏟아질 걸 알고 있는 석원은 망설임 없이 지시했다.
“나쁘지 않은 액수네요. 그대로 계약을 진행해요.”
석원의 블리자드 인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던 랜든은 내심 너무 비싸게 사는 거 아닌가 생각했으나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씀대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통화를 끝낸 석원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그사이 적당히 식은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는 기대에 찬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블리자드를 인수하게 됐으니까 지금쯤이면 거의 완성됐을 디아블로 베타 버전을 플레이해볼 수도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