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73)
금수저 투자백서 173화(173/231)
173. 이해해줘서 고마워.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Mountain View).
아침부터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한 대가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5층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이내 조수석에서 건장한 덩치의 흑인 사내가 선글라스를 낀 채 내렸는데 바로 석원의 개인 경호원인 보커스였다.
검은 정장을 입은 보커스가 몸을 움직이자 단추를 푼 윗도리 안에 숨겨둔 권총이 살짝 보였다.
보커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확인하고는 뒷좌석 차 문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보스.”
“고마워요.”
차에서 내린 석원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정문 한쪽에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Netscape Communications)라고 적힌 현판에 시선을 고정했다.
“괜찮은 곳으로 옮겼네.”
적어도 그 전에 있던 사무실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들어가죠.”
석원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넷스케이프 창업자인 톰 하퍼의 사무실은 여전히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회사가 잘 나가는 만큼 전보다 크고 넓어지긴 했지만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려대는 생활 패턴은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톰 하퍼는 청바지에 성조기가 그려진 낡은 티셔츠를 입은 채 모니터에 코를 박고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사장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여비서가 손으로 노크를 하며 말했다.
“바쁘니까 나중에 오라고 하던지 아님 빌 보고 대신 만나라고 해요.”
톰은 쳐다보는 척도 하지 않고 곧바로 빌에게 귀찮은 일을 떠넘겼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여비서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대꾸했다.
“엘도라도 펀드 박석원 대표님이신데요.”
“석원이가 왔다고?”
“예.”
그제야 톰이 고개를 들고는 서둘러 말했다.
“어서 들어오라고 해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가벼운 린넨 재킷에 구찌 홀스빗 로퍼를 신은 석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 미국에 온 거야?”
톰이 환하게 웃으며 일어서서 그를 반겼다.
반갑게 악수를 나눈 석원은 억만장자가 됐는데도 변한 것 없이 처음 본 그대로인 톰의 모습에 내심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 통화할 때 널 보러 샌프란시스코로 갈 거라고 했었잖아.”
“그게 오늘이었어? 일이 너무 바빠서 깜빡했네.”
톰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힐끗 책상을 쳐다보니 온갖 잡동사니들로 지저분하게 어질러져 있는 가운데 먹다 만 피자 박스와 콜라 캔이 널려 있었다.
“하하, 청소할 때도 내 책상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거든. 어쩌다 보니 이런 거고 평소엔 안 그래! 진짜야!”
시선을 눈치챈 톰이 부끄러운 듯 변명하면서 손으로 책상 위의 쓰레기들을 죄다 휴지통에 쓸어 담았다.
“대체 뭐가 그렇게 바빠?”
“3.0 버전 개발에 들어갔거든.”
뜻밖의 대답에 석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넷스케이프 3.0 개발을 벌써 시작했다고?”
“맞아.”
“2.0 버전을 출시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잖아. 그러면 중간에 버그 수정이나 업데이트 패치를 먼저 내놓는 것이 정상아냐?”
시선을 받은 톰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받았다.
“보통은 그렇지.”
“그런데 패치를 하는 게 아니라 바로 3.0 개발에 들어갔다는 거야?”
“물론 2.0에서 발견된 크고 작은 버그들을 수정하는 패치 작업도 진행 중이야. 늦어도 다음 달쯤에 업데이트가 될 거고.”
석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상장을 하면서 새로 개발 인력을 많이 채용한 건 알지만 차라리 패치 작업을 먼저 집중해서 끝낸 다음에 3.0 버전 개발로 넘어가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아.”
“처음에는 그렇게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급하게 서둘러야 될 이유가 생겨서 말이야.”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석원이 살짝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때문이야?”
“그래.”
감추지 않고 톰이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웹 브라우저 기술력은 우리가 훨씬 앞서지만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가 경쟁자로 등장했는데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
지난번 통화할 때는 마이크로소프트쯤은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다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더니 막상 정면으로 맞붙게 되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다른 곳도 아니고 윈도우로 컴퓨터 운영체계를 석권한 소프트웨어 업계의 공룡인 마이크로소프트이니 그럴 만도 하지.’
미래에도 그렇지만 이때도 경쟁 업체들을 집어삼키거나 무지막지하게 짓밟으며 소프트웨어 업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곳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아직 반독점법의 눈치를 보지 않고 창업자인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도 젊고 혈기 왕성한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는 말 그대로 거침없이 사업을 벌여 나갈 때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석원 못지않게 잘 알고 있는 톰일 테니 경계심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모자이크 특허 라이선스를 준 걸 서운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혹시나 싶어 묻자 톰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난 겉과 속이 다른 놈이 아니라고. 그리고 모자이크 기술은 누군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사용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마이크로소프트가 모자이크 기술을 쓰게 되면 넷스케이프와 기술 격차를 빠르게 줄일 수도 있잖아.”
그러자 톰이 어깨를 펴고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웹 브라우저 시장을 혼자 독점하면 나태해질 수도 있는데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생겼으니까.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어서 오히려 좋은걸.”
“자신감이 넘치네.”
그제야 걱정을 던 석원이 피식 웃었다.
“실력도 되니까 하는 소리지. 마이크로소프트가 어설픈 웹 브라우저를 급하게 만들어서 내놓으면 기능이 월등하게 향상된 3.0 버전으로 바로 밟아줄 테니까 두고 봐.”
“제발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네.”
“흥. 조만간 3.0 버전이 나오면 너도 깜짝 놀랄 걸?”
코웃음을 치며 대꾸한 톰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황급히 자리를 권했다.
“그러고 보니 계속 서서 이야기를 했네. 일단 자리에 앉자.”
“그래.”
머리를 끄덕인 석원은 통 사용한 흔적이 없는 새 소파에 톰과 마주 보며 앉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넷스케이프를 윈도우에 탑재하자는 제안을 했었다면서?”
“응. 3번인가 만나서 협상까지 했었어.”
“그러면 꽤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됐다는 건데 왜 제안을 거부한 거야?”
그러자 톰이 대뜸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더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날 만만하게 봤는지.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먼저 소스 코드를 전부 보여달라고 하더라고.”
“소스 코드를?”
“그래! 그걸 주면 팬티까지 다 벗어주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미쳤다고 넘겨주겠어?”
하긴 소스 코드까지 요구하는 건 석원이 생각해도 선을 많이 넘은 거였다.
“욕심이 과하긴 했네.”
다시 생각해봐도 괘씸한지 톰이 잔뜩 인상을 구긴 채 씩씩거렸다.
“보나마나 소스 코드를 분석해서 넷스케이프를 다 뜯어보고 단물만 쭉쭉 빨아간 다음에 우릴 버리고 자기들이 개발한 웹 브라우저를 윈도우에 탑재하려는 속셈이겠지.”
대기업이 하청 업체로부터 핵심 기술을 탈취하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마이크로소프트가 비슷한 짓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너드인 줄 알고 쉽게 본 모양인데 NCSA 놈들한테 뒤통수를 맞고 또 당할 줄 알았나.”
이미지를 표시할 수 있는 최초의 웹 브라우저인 모자이크(Mosaic)를 개발했지만 몸담고 있던 NCSA 연구소에 토사구팽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는 톰이었다.
그랬기에 더욱 자신을 이용하려고 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동에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체 웹 브라우저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두 회사가 함께 공존하는 건 어려울 테니까 잘했어.”
“그래서 놈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려고 3.0 개발을 서둘러 진행하는 거야.”
톰도 나름대로 마이크로소프트에 맞서서 칼날을 갈고 있던 거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웹 브라우저 시장에 관심을 드러낸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점유율을 가져가려고 할 거야.”
석원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하자 톰도 사뭇 진지하게 대답했다.
“각오하고 있어.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결국 손을 드는 건 상대편이 될 거야.”
굳게 결심한 듯한 톰을 보면서 석원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상대가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한 게임을 벌일 수도 있어.”
“무슨 말이야?”
미간을 좁힌 톰의 시선을 받으며 석원이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독점 운영체제나 마찬가지인 윈도우에 자체 개발한 웹 브라우저를 무료로 끼워서 판다면 어떻게 할 거야.”
“……!”
생각지도 못한 방법에 순간 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렇게 하면 애써 만든 웹 브라우저로 아무런 수익을 내지 못할 텐데. 설마 그러겠어.”
“넷스케이프가 90% 이상 장악한 웹 브라우저 점유율을 빼앗아 오겠다고 독하게 마음을 먹는다면 충분히 그런 강수를 둘 수 있지. 그리고 어차피 유료 버전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얼마 안 되니까 마이크로소프트 정도 되는 기업이라면 경쟁 업체를 죽이기 위해 그쯤은 포기할 수 있을 거야.”
넷스케이프도 유료와 무료 두 가지 버전 가운데 실제 유저들이 다운받아서 사용하는 건 대부분 돈을 내지 않는 무료 버전이었다.
그 때문에 시가총액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IT기업이 됐지만 한 해 매출은 고작 수백만 달러에 불과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IT 버블이 결국 붕괴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거지.’
넷스케이프 역시 이런 치명적인 약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던 톰이 이내 고개를 들었다.
“네 말대로 마이크로소프트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지. 하지만 우리 역시 무료 버전이 있으니까 시장을 빼앗기는 일은 없을 거야. 결국 유저들은 가장 기능이 뛰어난 웹 브라우저를 쓰게 되어 있어.”
톰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웹 브라우저 시장이 어떻게 마이크로소프트에 넘어가는지 잘 알고 있던 석원은 그런 톰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컴퓨터를 구동하는데 필수적인 윈도우를 가진 마이크로소프트와 하는 싸움은 애초에 공평한 대결이 될 수가 없지.’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고 그걸 바꿀 방법도 마땅치 않았기에 석원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넷스케이프 지분 매각을 확실히 마음 굳힐 수 있었다.
석원은 양손을 맞잡은 채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널 찾아온 건 한 가지 이야기해 줄 것이 있어서야.”
“뭔데? 말해 봐.”
“내가 가진 지분을 매각할 생각이야.”
그러자 톰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왜? 설마 마이크로소프트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건 아니야.”
석원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럼 뭣 때문에 지분을 판다는 건데?”
“가능성이 큰 벤처 기업에 투자해 성장하도록 돕다가 IPO를 해서 가치가 커지면 수익을 실현하고 나오는 게 벤처 캐피탈의 목적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다행히 IPO에 성공해서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뒀고 무엇보다 더 이상 내가 없어도 문제없이 회사가 돌아갈 정도로 틀이 갖춰졌으니까 이제는 내가 빠질 때라고 생각해.”
석원은 어떠한 사감도 없이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결정이라는 듯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덕분에 큰돈을 벌었으니 넷스케이프처럼 또 다른 잭팟을 안겨줄 유망한 벤처 기업들을 찾아 투자하려고 해.”
“그래…….”
딱히 이야기에 반박할 구석을 찾지 못한 톰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친구의 결정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으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이해해줘서 고마워.”
“아니야. 나야말로 네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톰이 애써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사실 든든한 후원자이자 투자자로 계속 함께 해줬으면 좋겠지만 혼자만의 욕심으로 붙잡아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석원은 잠시 말이 없다가 진지하게 톰을 쳐다봤다.
“친구로서 충고하는 건데 절대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만하게 보지 마. 그리고 도저히 상대를 이길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과감하게 가진 걸 포기하는 용기를 가져야 해.”
마지막 말에 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내 말 꼭 명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