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8)
금수저 투자백서 18화(18/231)
18.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결승전 경기가 열리는 모비딕 앞에 스쿠터가 멈춰 서자 뒤에 타고 있던 석원이 내리며 헬멧을 벗었다.
“으, 왜 이렇게 떨리냐.”
로이가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가득 찬 가게를 보면서 말하자 석원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시합은 내가 하는데 네가 왜 떨려?”
“거 말 섭섭하게 하네. 예선부터 여기까지 한 몸처럼 같이 올라온 사이잖아. 솔직히 나 아니었으면 대회에 나오지도 않았을 거면서.”
“그래서 뭐.”
로이가 슬쩍 눈을 흘겨도 석원은 전혀 타격감이 없는 얼굴로 대꾸했다.
“애초에 네가 마음대로 참가 신청서를 낸 거지. 나는 대회에 관심도 없었어.”
팩트로 때리자 로이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솔직히 억지로 끌고 온 건 사실이었기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결승전인데 아무렇지도 않은 네가 이상한 거야.”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라는 말도 모르냐. 마인드 컨트롤을 제대로 못해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지.”
“우웩.”
로이가 토하는 시늉을 하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완전 재수!”
서로 투덕거리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로이도 긴장이 풀린 듯 어깨에 힘이 빠져 있었다.
그걸 눈치챈 석원은 턱으로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제 갈까.”
“그래.”
로이가 잔뜩 파이팅이 들어간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들어가서 다 박살 내고 오자고.”
그 모습에 석원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케이. 나만 믿어.”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늦은 오후인데도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시합을 위해 테이블이 전부 다 치워진 가운데 홀한 가운데에 스트리트 파이터2 오락기 두 대가 마주 보는 형태로 설치되어 있는 게 보였다.
석원이 로이와 함께 가게로 들어서자 한 손에 맥주를 들고서 서 있던 사람들이 대번에 그를 알아보고 여기저기서 응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 왔다.”
“너한테 10달러 걸었으니까. 꼭 이기라고!”
“MIT 녀석들 콧대를 확 눌러 버려.”
“길게 끌거 없이 스트레이트로 단번에 끝내버리라고!”
입에 손가락을 넣고 삐익 휘파람을 부는 녀석, 손수 만든 플랜카드를 들고 흔들어대는 녀석 등 종류도 다양했다.
시합을 보러 온 하버드 학생들이 길을 비켜주면서 양쪽에서 어깨를 두드리며 뜨겁게 격려를 해주는 반면 반대쪽에서는 우우하며 야유가 튀어나왔다.
“겁먹고 도망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타나긴 했구나!”
“어이 하버드 범생이들 졌다고 울진 말라고!”
MIT 학생들로 보이는 이들이 엄지를 아래로 내리고 소리치자 삽시간에 가게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왠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에 석원이 옆에 있는 로이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야 내기까지 하는 거야?”
“당연하지. 설마 몰랐어?”
“몰랐으니까 묻는 거잖아.”
“아는 사람들끼리 개인적으로 돈을 걸기도 하고 대회 주최 측에서 공식적으로 배팅을 하는 것도 있어.”
어쩐지 아까부터 사람들 눈이 반쯤 돌아 있는 것 같더라니!
“그래도 되는 거야? 겉으론 MIT와의 건전한 학생 교류를 위한 친선시합 뭐 그런 거 아니었냐고.”
“그냥 소소하게 얼마씩 거는 건데 뭐 어때.”
로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오락기랑 여기 가게 빌리는 건 뭔 돈으로 했겠어.”
“그럼 배팅 수수료를 떼서 비용을 충당하는 거?”
“맞아.”
로이가 씩 웃으면서 눈매를 가늘게 휘었다.
“예선부터 너한테 걸어서 나도 짭짤하게 재미를 좀 봤지.”
“미친놈…….너 혹시 이번에도 돈 걸었냐?”
“당연하지. 무려 500달러나 배팅했으니까 무조건 이겨야 돼. 알았지!”
석원은 기가 차는 얼굴로 로이를 쳐다보다가 이내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하…… 그냥 기권해 버릴까.”
“야! 그럼 안 되지!”
혼자 중얼거린 말에 로이가 기겁을 하며 소매를 붙들었다.
“장난이야.”
석원이 시크하게 고개를 들고 대꾸했다.
아무리 그래도 결승전까지 올라온 마당에 기권해 버리는 건 안 될 말이었다.
‘게다가 교수님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소문이 쫙 퍼져 있으니까.’
이대로 그냥 돌아 가버리면 하버드 안에서 매장당할지도.
“어우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런 속내를 모르는 로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눈을 흘겼다.
“쫄기는.”
“안 쫄았어! 내 돈이 걸려 있으니까 그런 거지!”
피식 코웃음 치면서 앞으로 걸어가자 오늘 심판 겸 진행을 맡은 오브라이언이 서 있다가 두 사람을 보곤 반갑게 말을 걸었다.
“어서 와.”
가볍게 눈인사를 건넨 석원은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왼편 오락기 앞에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흑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대충 비슷한 또래 같은데 더벅머리에 검은색 뿔테 안경, 그리고 전형적인 공대 패션인 체크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상대가 몸을 일으켜 먼저 가까이 다가왔다.
“쟤가 오늘 너하고 붙을 케네스 로고프야. 내가 준 자료 봤지? 저렇게 보여도 실력이 보통 아니니까 조심해.”
옆에서 로이가 재빨리 찰싹 달라붙어 속삭였다.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로고프는 한쪽 손으로 안경을 치켜 올리더니 먼저 악수를 청했다.
“석원 박이지? 난 로고프야. 반가워.”
“이름이 석원이고 박은 성이야. 한국에서는 누굴 부를 때 성을 앞에 붙여서 박석원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불러줘.”
석원이 손을 맞잡으면서 말하자 로고프가 금세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아, 그래? 미안해.”
“모를 수도 있지. 괜찮아.”
석원은 두꺼운 안경렌즈 너머로 순박해 보이는 갈색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로고프라고 했지. 시합 재미있게 하자.”
“그래.”
살짝 미소짓는 로고프를 보면서 석원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전에 그 럭비팀 녀석처럼 싸가지 없는 놈은 아닌 것 같네.’
그때 오브라이언이 말을 걸어와 석원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알고 있겠지만 결승전은 3판 2선승제야.”
오브라이언은 작게 머리를 끄덕이는 두 사람을 보면서 계속 규칙을 설명했다.
“그리고 얍삽이를 쓰면 경고야. 경고 두 번을 받으면 몰수패니까 잊지 말도록 해.”
인기가 많은 게임이다 보니까 여러 가지 꼼수와 얍삽이들이 난무했다.
그중 하나가 장풍을 연속해서 쓰다가 상대가 그걸 피해 앞으로 점프해오면 승룡권 같은 대공기를 써서 꼼짝 못 하도록 만드는 거였다.
실제로 예선전에서 이 방법으로 석원을 이기려고 하던 놈도 하나 있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오락실에서 쓴 돈이 얼만데 당연히 단번에 참교육을 확실히 시켜줬지.’
오브라이언이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확인하곤 두 사람에게 말했다.
“시간이 됐으니까 이제 시작할 건데 둘 다 괜찮지?”
“그래.”
석원의 대답에 이어 로고프도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각자 자리로 가서 준비해.”
로고프와 마지막으로 시선을 맞춘 석원은 이내 몸을 돌려 배정된 오락기 앞에 앉았다.
그는 양손에 깍지를 끼고 가볍게 몸을 풀고는 대회 내내 그래왔듯 여러 캐릭터들 가운데 류를 선택했다.
반면 상대가 고른 건 특이하게 주류 캐릭터가 아닌 일본 스모 선수인 에드먼드 혼다였다.
가게를 가득 채운 구경꾼들이 두 사람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흥미진진한 얼굴로 쳐다보는 가운데 마침내 결승 대결이 시작됐다.
후지산 그림이 들어간 타일을 배경으로 한 일본 목욕탕 스테이지가 열리자 관객들의 입에서 뜨거운 응원이 터져 나왔다.
“파이팅!”
“한 방에 끝내버려!”
[라운드(round)1] [파이트(fight)!]시작과 동시에 상대가 거리를 좁혀오자 석원은 곧장 파동권을 썼다.
[하도켄!]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점프해서 파동권을 피한 혼다가 그대로 한쪽 손바닥을 내리쳤다.
타격을 입은 류가 쓰러지자 혼다는 육중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으로 쉴 틈을 주지 않고 필살기인 백열장수를 사용했다.
[훅훅! 훅훅!]마치 신이 들린 듯한 로고프의 빠른 버튼 연타와 같이 혼다의 손바닥이 여러 개의 잔상을 남기며 류를 타격했다.
체력 게이지가 팍팍 깎여 나가는 가운데 석원도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하단차기로 거리를 벌린 류가 그대로 몸을 띄워 용권선풍각을 시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눈치챈 로고프가 번개같이 조이스틱을 조작하면서 한 템포 빠르게 류의 몸을 잡아채 그대로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마치 복싱 선수가 로프 구석으로 모는 것처럼 가까이 붙어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 만들고는 또다시 백열장수를 시전했다.
“오오!”
“저거 위험한데.”
관객들의 놀란 함성이 터져 나오는 것과 함께 순식간에 체력 게이지가 바닥나 버리면서 석원의 캐릭터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우와아!”
숨을 죽인 채 대결을 지켜보던 MIT 학생들이 위로 손을 번쩍 치켜들고 소리를 질렀다.
반대로 석원 뒤에 있던 하버드 학생들은 침울한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수근거렸다.
“쟤 장난 아닌데?”
“그러게.”
“역시 결승전은 다르다는 건가.”
계속 연전연승만 하며 올라온 석원이었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
로이 역시 굳은 얼굴로 등 뒤에 다가와선 낮은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물었다.
“야 괜찮아?”
하지만 주변의 염려와 달리 석원의 입가엔 재밌다는 듯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호들갑 떨 거 없어. 좀 치긴 하지만 결과가 바뀔 일은 없으니까.”
여전히 자신 있는 말투에 조금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그래도 대회 통틀어 첫 패배였기에 우려가 되는 건 여전했다.
“한 번 더 지면 끝인 거 알지? 제대로 해!”
“염려 마.”
“오케이 믿는다.”
로이가 힘을 전해주듯 어깨를 꽉 움켜쥐고는 뒤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다음 게임이 시작됐다.
[라운드(round)2]“길게 끌지 말고 바로 끝내버려!”
“Go Go!”
첫판 승리로 기세가 오른 MIT 학생들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하버드 학생들도 지지 않고 야유와 함성을 쏟아내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스트레이트로 이기면 불쌍해서 봐준 거야! 그것도 모르냐?”
“이제 진짜 실력을 보여줄 테니까. 눈 똑바로 뜨고 보라고!”
사방이 떠들썩한 가운데 석원의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중 상태에 돌입한 그는 시작과 동시에 상대가 바로 앞으로 점프를 하며 발차기를 하자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조이스틱과 버튼을 눌러 승룡권을 펼쳤다.
[쇼류켄!]간발의 차이로 승룡권을 맞고 뒤로 넘어진 혼다가 다시 일어나는 순간을 노려 석원이 파동권을 곧바로 시전했다.
[하도켄!]퍼퍽!
혼다가 양손으로 앞으로 교차하며 파동권을 막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거리를 좁혀온 석원은 재차 승룡권을 사용했다.
또다시 뒤로 널브러진 혼다에게 석원이 조작하는 류가 앉은 자세로 하단 차기를 해서 재차 데미지를 줬다.
더 이상 몰리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혼다가 코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크게 점프해서 류 뒤로 넘어갔다.
반사적으로 류가 몸을 돌리자 혼다가 곧장 다시 반대로 점프를 하려고 했다.
양쪽으로왔다 갔다하며 혼란스럽게 만들고 기술 시전을 하지 못하게 타이밍을 뺏어오려는 거였다.
‘어림없지!’
석원은 혼다가 몸을 띄우는 순간을 노려 잽싸게 공중에 떠서 용권선풍각을 시전했다.
몸이 허공에 떠 있어서 피할 방법이 없던 혼다는 앞으로 회전하면서 날리는 발차기를 맞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체력바가 쭉 줄어들면서 어느새 3분의 2 아래로 떨어졌다.
“아, 안 돼!”
딱 한 방만 더 맞으면 그대로 패배할 것을 직감한 로고프가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려는 혼다에게 석원이 마지막 일격으로 파동권을 날렸고, 으아아악하는 소리를 내며 혼다가 뒤로 널브러졌다.
“2라운드는 하버드 승!”
“우워어어어!!”
시합을 지켜보던 오브라이언이 2차전 승리를 알리자 하버드 쪽에서 함성을 내질렀다.
“그렇지!”
“이럴 줄 알았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니까!”
“이대로 다음 판까지 싹 쓸어 버려!”
반대로 한 번 승기를 잡았다가 다시 무승부가 되어 버린 MIT 학생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로고프를 응원했다.
“이제 1대1이잖아. 그냥 원점으로 돌아온 것뿐이라고.”
“그래! 다음 판에서 승부를 내면 돼!”
시끄럽게 엇갈리는 응원 속에서 석원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반대편에 있는 로고프와 시선이 마주쳤다.
석원이 먼저 씩 미소를 지어주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던 로고프 역시 웃으며 즐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마지막 대결이야!”
오브라이언이 큰소리로 외치는 것과 동시에 게임이 다시 시작됐다.
마지막 대결이었기에 침 넘기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해진 가운데 두 사람은 물론이고 관객들 모두 경기에 집중했다.
이미 연속된 두 경기로 서로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확인한 두 사람은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일단은 거리를 벌린 채 서로 견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석원이 먼저 류의 전매특허인 파동권을 쓰자 로고프가 기다렸다는 것처럼 앞으로 점프를 해왔다.
이에 석원이 승룡권으로 응수를 하려고 했지만 이번엔 상대가 더 빨랐다.
쿠웅!
혼다의 손바닥 내려치기에 맞은 류가 바닥을 튕기며 쓰러졌다.
곧장 일어나려는 류를 향해 혼다가 바로 이어서 필살기인 백열장수를 쓰면서 덮쳐왔다.
[훅훅! 훅훅!]앉은 자세로 팔을 들어서 방어를 한 석원은 백열장수의 스킬 모션이 끝나자 지체 없이 하단 차기로 혼다를 넘어뜨렸다.
그 상태에서 일어나는 혼다에게 승룡권으로 재차 타격을 입히는 류.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 없이 팽팽한 대결에 지켜보던 관객들은 환호성을 터트리면서 손에 땀을 쥐고 대결을 지켜봤다.
“그래 더 공격해!”
“아 방금은 아까운데.”
“저걸 피했어야지!”
체력 게이지 역시 양쪽 다 비슷하게 깎여나가 누가 이길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석원 역시 예선전 때하곤 달리 집중력을 한껏 발휘해서 조이스틱과 버튼을 신들린 듯 눌러댔다.
마침내 구석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데 성공한 석원이 곧바로 용권선풍각을 이용해 재차 결정타를 날리려고 했다.
[아따따뚜겐!]그러자 이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혼다가 몸을 숙여 공중에서 회전하며 킥을 날리는 류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고는 바로 거리를 좁힌 다음 착지한 류를 붙잡고 샅바 당기기 기술을 사용했다.
퍽퍽퍽!
체력 게이지가 깎여 나간 류가 뒤로 점프하면서 거리를 벌리려고 하자 혼다는 어림도 없다는 것처럼 앞으로 움직이면서 백열장수로 응수했다.
필살기가 제대로 들어가면 자칫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석원은 침착하게 앉은 자세로 방어해서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그래도 연속된 공격을 맞은 탓에 류의 체력 게이지는 벌써 3분의 1도 남지 않아 불리한 상황이 됐다.
하지만 석원은 머뭇거리는 것 없이 오히려 과감하게 행동했다.
백열장수가 끝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곧장 몸을 띄워 용권선풍각을 사용한 것이다.
“우와!”
“방어보다 공격이라는 거지? 대담한데!”
“그래 그거지!”
관객들이 감탄하는 가운데 기술에 당한 혼다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려고 하자 바로 앞에 바짝 붙은 류가 재차 승룡권을 사용했다.
[쇼류켄!]제대로 기술이 들어가자 체력 게이지가 완전히 깎인 혼다가 천천히 허공에 붕 텄다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석원의 완벽한 승리였다.
“와아아아!!”
지켜보던 관객들이 기대 이상의 멋진 승부에 가게가 떠나가라 환호성을 내질렀다.
뒤에서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로이 역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면서 석원에게 달려왔다.
“이겼어! 네가 챔피언이야!!”
마치 자기가 우승한 것마냥 기뻐하던 로이가 들뜬 관객들을 돌아보며 석원의 이름을 연호했다.
별생각이 없던 대회였지만 막상 우승을 하고 나니 그 역시 관객들의 환호성에 동화됐는지 흥분되고 벅찬 감정을 느꼈다.
몸을 일으킨 석원은 맞은편으로 걸어가서 로고프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재미있었어.”
“하…… 설마 질 줄이야.”
조금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로고프는 이내 다시 웃으며 석원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져서 아쉽지만 그래도 나도 즐거웠어.”
훈훈한 모습에 주위에 있던 관객들이 박수를 쳐줬다.
MIT와 하버드를 가리지 않고 멋진 대결을 보여준 두 사람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그런 가운데 오브라이언이 가까이 와서 마이크를 들고 큰 소리로 선언했다.
“이번 스트리트 파이터 대회 우승자는 하버드 대학!”
“와아아아!”
“하버드! 하버드!”
오브라이언이 금메달을 석원의 목에 걸어주는 순간엔 가게 지붕이 날아갈 것처럼 우렁찬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석원은 목에 건 금메달을 만지작거리면서 스리슬쩍 옆에 붙은 로이에게 속삭였다.
“야 이거 진짜 금은 아니겠지?”
“당연하지.”
“쩝…….”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신 석원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나한테 배팅했다며.”
“히히히. 그래. 덕분에 짭짤하게 벌었어.”
로이가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반띵이다.”
“엥? 뭔소리야!”
“내 덕분에 번 돈이잖아.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대회 참가 신청서를 냈으니까 그 정도 수고비는 줘야지.”
뻔뻔하게 대꾸하는 석원의 말에 로이가 팍 얼굴을 구겼다.
“하여튼 있는 것들이 더하다니깐.”
“그래서 줄 거야 안 줄 거야. 줄 거지?”
“알았다고! 공평하게 5대5. 됐지!”
로이가 입가를 삐죽거리면서 투덜대든 말든 석원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축하를 들으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주변에서 말을 거는 이들 중엔 아는 얼굴도 꽤 있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심지어 MIT 학생들도 그를 둘러싼 채 축하의 말과 함께 손을 내밀거나 어깨를 두드렸다.
“우승 축하해요.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반사적으로 고맙다고 대답하려던 석원은 방금 말을 건넨 흑인 사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짧은 머리, 흰 셔츠에 회색 니트를 겹쳐 입은 흑인 사내가 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악수라도 하고 싶은지 한쪽 손을 내밀고 있는 걸 보고 엉겁결에 손을 잡은 그는 속으로 놀라움을 삼켰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인물의 등장이었다.